최인호의 어린이 유림 1 - 조광조- 뜨거운 피로 세상을 바꾸려 했던 젊은 사자
최인호 지음, 최석훈 엮음, 이영림 그림 / 파랑새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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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증정용으로 받은 비매품 도서다.

글도 제법 빡빡한 것 같고, 책 내용이 무게감이 있을 것 같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는데, 이번에 읽어보니, 부담없이 술술 잘 읽힌다.

중종시대의 개혁정치가로서 조광조라는 인물을 잘 서술하고 있어 한 인물에 삶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된다. 6학년 아이들도 무리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학급문고로 넣어 두어야겠다.

주초위왕, 소격서 폐지, 현량과 설치, 정국공신의 삭훈, 그리고 기묘사화, 사약을 받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조광조의 짧은 불꽃같은 생을 만났다.

(함께 실린 유림 독후감상문, 논술대회 수상작을 보면서, 참 글 잘 썼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이 책의 내용을 한 번 더 정리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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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 조선 시대를 담은 타임캡슐 신나는 교과서 체험학습 10
신병주 지음, 김영수.김순남 그림 / 스쿨김영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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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페이지에는 유네스코에서 인정한 세계문화유산, 세계기록유산, 세게무형유산이 사진과 함께 잘 소개 되어 있네요. 4학년 교과서에 나오지요. 이렇게 보니 또 새롭군요.

일단 정리 한 번 하고요.

세계문화유산-종묘, 수원화성, 창덕궁, 고창화순강화 고인돌유적, 석굴암과 불국사, 해인사장경판전, 경주역사유적지구

세계기록유산-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직지심체요절, 훈민정음

세계무형유산-종묘제례와 제례악, 판소리, 강릉단오제

조선의 역사를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 얼마나 철저하게 기록되고 보관되었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먼저, 27대 왕 중에서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의해 씌여진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은 제외된다는 사실도 알았고요, 왕조차도 사관이 써 놓은 사초를 함부로 볼수 없었기에 사관들은 자신의 일에 대한 자긍심이 무척 대단했다는 것, 대학자 정약용이 사관에 임명되었던 기록이 그러한 사실을 적어 두는 책인 <<한권록>>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 초초, 중초, 정초의 단계를 거쳐 실록이 완성된다는 것과 초초와 중초는 세검정에서 세초(씻기)를 하여 말려 다시 종이를 재활용했다는 사실도 알려주네요. 전쟁으로 인해 유실 될 뻔한 실록을 지키기 위해 애쓴 오희길, 손홍록, 안의 같은 분께 감사를 드려야겠고요. 실록이 보관되어 있는 사고에 한 번 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정족산 전등사, 적상산 안국사, 태백산 각화사, 오대산 월정사를 찾아 보면 된대요.) 책이 상하지 않도록 신경 쓴 뛰어난 보관법에 대해서도 자세히 소개 되어 있어요. 두 번 쓰인 실록도 있다네요.(현종실록과 현종개수실록, 경종실록과 경종수정실록,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당파간의 이해관계 때문이었다죠.) 그리고 실록에 실려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몇 가지 소개 되어 있어요.(홍길동, 의녀 장금, 코끼리 이야기, 독도 이야기, 청계천 공사 이야기, 자연재해 이야기...) 또 연산군과 광해군은 실록대신 일기라고 씌여져 있고, 단종은 일기라는 제목이 붙었다가 이후 다시 실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이 일(사냥하다 말에서 떨어진 일)은 기록하지 말아라고 하라." 했다가 그 말까지 기록으로 남긴 태종과 아버지의 태종실록을 보려다 거절당한 세종의 이야기도 있군요.

여러 가지 정보를 잘 소개 받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들려 줄 재미있는 이야기들 몇 가지 건지게 해 준 참 유익한 책이네요. 책은 얇지만, 왠지 손이 잘 가지 않았는데, 이제 교과서 체험학습 시리즈에 차례차례 손을 뻗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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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아버님께 진경문고 1
안소영 지음, 이승민 그림 / 보림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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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최고의 책이라며 권해주시는 분의 말씀에 책을 받아들자마자 설레임이 함께 했다.
내가 읽겠노라 산 <<책만 보는 바보>>를 나보다 먼저 읽은 남편은 이 책의 서평을 쓰면서 머리말에서부터 감동받은 책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리고 저자가 아버지와 함께 주고받았던 <<우리가 함께 부르는 노래>>를 읽고 싶어 검색해 봐도 잘 찾아지지 않는다며 안타까워 했다. 작가의 책이 또 있다면 언제든 다시 사 보겠다던 남편은 안소영의 책이라는 말에 나보다도 책을 더 반기는 눈치다. 다 읽은 남편의 책에 대한 이야기로 그날의 저녁식사 시간은 길어졌지만, 좋은 책을 만났다는 기쁨에 들떠 행복한 시간이었다.

억울한 유배생활 중에 나라를 원망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할 만도 했건만, 숭고한 정신으로 승화시켜 위대한 저술활동을 펼친 정약용에 대한 그 큰 감동 못지않게 길고 가혹한 기다림의 세월은 다산의 것만이 아니었다는 표현처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살아감에 대한 막막함, 아버지를 대신하여 져야 할 큰 짐에 그 평생이 힘들었을 학연과 학유형제의 아픔도 절절히 느껴진다.

초기 교회사에서 익은 이름들, 이벽, 황사영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103위 순교성인 중에서도 그 이름이 아주 친숙한 이승훈 베드로, 정하상 바오로, 정정혜 엘리사벳 등과 얽혀 있는 다산의 가족사는 그 당시 고난과 박해로 가세가 기울고, 나라의 역적으로 몰려 매일이 슬픔이었겠지만, 신자인 내게는 참으로 대단한 집안이었음을 생각하게 한다. 목숨까지 아끼지 않은 초대교회 성인성녀들에 대한 큰 감동과 함께 정약용의 집안을 다시 보게 된다.

15년 전 헤어진 동생이 쓴 『주역사전』의 서문을 쓰며 학유의 둘째 아버지, 정약전(그의 이야기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쓴 <<물고기 소년 과학자 되다>>가 궁금해진다. 빨리 읽어 봐야 겠다.)은 말한다.
“만약 약용이 부귀하고 영화로워 만족한 삶을 누렸다면 이러한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섬에 유배되어 죽을 날이 머지 않았으나, 약용과 같은 시대에 살고 한 형제가 되었으며 이 책을 읽고서 서문을 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나는 아무런 유감이 없다. 아! 약용 또한 아무런 유감이 없을 것이다.”
이 말과 아울러 개인적으로나 가족사적으로는 무척이나 불행한 18년이었지만, 우리 역사적으로는 그의 18년 유배 생활이 얼마나 축복된 선물이었을까 하고도 생각해 본다.

아버님의 해배를 위해 백방으로 애쓰던 학연이 한가닥 희망을 걸고 찾아간 외숙부님에게서 그간 아버님의 안부 편지 한 장 없음에 대한 서운함을 전해 듣고 망설임 끝에 정약용에게 편지를 쓴다. 그 때 정약용이 큰 아들 학연에게 쓴 편지가 맘에 크게 남는다.
“학연에게 답한다. 보내 준 편지 자세히 보았다. 내 너에게 일러 줄 말이 있으니, 천하에는 두 가지 큰 기준이 있다. 옳고 그름의 기준과 이롭고 해로움에 관한 기준이다. 여기에서 또 네 가지의 등급이 나온다. 가장 높은 것은 옳음을 지키면서 이익을 얻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옮음을 지키고도 해를 입는 경우이다. 세 번째는 그름을 쫓아 이익을 얻는 것이고, 가장 낮은 네 번째 등급은 그름을 쫓고 해를 보는 경우이다. 너는 나에게, 홍의호에게 편지를 해서 비굴하게 손을 내밀고, 강준흠과 이기경의 마음을 살 수 있도록 애걸해보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것은 앞서 말한 세 번째 등급으로, 그름을 쫓아 이익을 얻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조차 마침내는 아무런 이익이 없이 네 번째 등급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 무엇 때문에 내가 그리해야겠느냐....”
참으로 그 꼿꼿함이 그대로 전달되는 대목이다.
학문을 깊이 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바람만을 쫓기에는 짊어지고 나가야 할 짐이 너무나도 많았던 그의 두 아들, 학연과 학유. 기울어가는 가세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집에 찾아 와 도움을 달라고 하는 이웃 친지들을 내치지 않고 가지고 있는 의술을 이용하는 학연에 대한 아버지로서, 학자로서의 못마땅함의 표현은 실사구시의 실학자의 모습일까 의아한 맘도 들게 하지만, 그게 바로 시대적 상황이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한다.

억울한 누명으로 유배생활을 하는 아버지에 대한 근심스러움이 무척 컸겠지만, 집안을 돌 볼 수 없는 가장에 대한 원망과 현실의 어려움을 생각지 않고 학문을 게을리함에 대한 꾸짖음에 대한 섭섭함, 그리고 그 큰 그릇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속상함이 곳곳에 배어 나오는 학유의 글은 그대로 전달되어 가슴 찡하다.

아는 것이 부족하여 책의 그 큰 뜻을 잘 이해하여 풀어낼 수는 없으나 이 책은 분명 읽는 이를 만족시켜 주리라 생각하며 읽어 후회없을 책임을 이야기 하고 싶다.

*근데, 권장연령이 초등 5, 6학년인데, 과연 아이들이 힘들이지 않고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독서력이 뛰어난 아이들이라면 가능하겠다. 중학생들이라면 큰 감동을 느끼면서 즐거운 글읽기가 가능하겠다. -이건 순전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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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5-11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책만 보는 바보의 안소영이라면, 게다가 다산의 아들...찜합니다.

희망찬샘 2008-05-11 18:47   좋아요 0 | URL
이 책을 권해 주시는 분이 그러더라구요. 올해 최고의 책이라고요.^^

순오기 2008-05-21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리뷰 당선, 축하합니다~~~~ ^^

희망찬샘 2008-05-21 10:5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다 응원해 주신 덕분입니다. 추천을 받아야 후보가 되는 것 같던데... 너무 감격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책으로 한 권씩 쏜다고 그랬습니다. ㅋㅋ~

순오기 2008-05-23 20:27   좋아요 0 | URL
ㅎㅎ 쏘는 기분도 썩 괜찮지요?ㅎㅎ
저도 지난번 공지영 책으로 이주의 리뷰 먹었을때, 좋은 리뷰를 써 그 책을 읽게 한 세실님께 책 한권 선물했어요.^^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사 편지 2 - 후삼국 시대에서 고려 시대까지
박은봉 지음 / 웅진주니어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역사는 외우는 것이 아니라 느끼고 생각하는 공부라는 말을 다시 새기며 2권을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배워왔던 역사가 사실은 잘못 알려지거나 왜곡된 부분이 많이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역사서를 쓰는 사가들의 사관에 따라 역사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어떤 정권이 필요에 의해 역사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면 그저 그런가보다하고 수동적으로 느낄 수 밖에 없었던 평범한 우리네 같은 사람들에게 역사가들은 양심을 걸고 진실을 알려주는 책임을 다 하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 기억하고 싶었던 것들을 정리 해 보면

1. 견훤은 나라를 세우면서 백제의 원한을 갚겠다는 뜻으로 나라 이름을 '백제'라 지었단다. 이것은 견훤이 터전으로 삼은 곳이 옛날 백제의 땅이었기 때문에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기 위한 것이었고, 지금 우리가 후백제라고 알고 있는 이유는 후세 사람들이 편의에 의해 붙인 것이라고 한다.

2. 후백제, 후고구려, 신라가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힘을 겨루던 때를 '후삼국'이라고 하는데 이 때 한반도 북부와 만주를 차지하고 있는 발해를 역사에서 제외시키지 말고 '사국 시대'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말

3. 후고구려도 그 이름이 궁예에 의해 고려-마진-태봉으로 바뀌었었고, 왕건에 의해 고려라는 이름이 다시 사용되었다. 고구려는 장수왕때 이미 나라 이름을 고구려에서 고려로 바꾸었단다. 따라서 장수왕 이후의 고구려는 고려라고 부르는 게 맞단다. 후고구려의 후~도 후세 사람에 의해 붙여진 것이란다.

4. 조선시대와 달리 고려 시대의 백정은 천인이 아니라 농사짓는 농민으로 양인 신분이었고, 향, 소, 부곡에 사는 사람들은 천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요즘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들을 양인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같은 양인인 농민보다는 천대를 받았다고 한다.

5.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남의 나라를 침략한 적은 없고 침략만 당했다고 하면서 민족성이 나약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잘못 된 것ㅇ로 일제시대 일본인 사학자들에 의한 역사 왜곡이다.

6. 거란의 3차 침입을 지휘한 강감찬을 일흔 한 살의 백전노장. 강감찬이 소가죽으로 강물을 막아 대승을 거두었던 곳은 귀주대첩이 아니라 흥화진 전투다. 귀주대첩은 강이 아닌 귀주성이 있는 들판에서 이루어진 것.

7. 승려 중 최고 직책인 왕사는 왕의 스승, 국사는 나라의 스승이라는 뜻으로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과 의천 등이 국사에 해당.

8. 고려 제일의 명재판, 손변의 재판-이제현의 <역옹패설>에 소개. 책 84~87에 상세히 소개. 고려의 가족 제도, 상속 제도, 사회와 가정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위치와 권리 등을 잘 이야기 해 준다.

9. 고려시대는 시집살이가 아닌 처가살이를 하였다.

10. 천인인 노비는 고려 시대는 물론 조선 시대에도 이름만을 가졌다. 지금처럼 누구나 성씨와 본관을 가진 것은 1900년대에 새로운 호적 제도가 실시되면서부터란다. 또 조선 후기 이후로 호적과 족보에서 무조건 아들 먼저, 딸을 나중에 기록하게 되었다고 한다.

11. 고려장이라는 말은 고려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말. 불교경전에 나오는 '기로국(노인을 버리는 나라)' 이야기가 널리 퍼지면서 기로국이 고려국으로 기로의 장례가 기로장-고려장으로 변해 굳어진 것이 아닐까 추측. 고려의 장례는 화장. 단 왕족과 귀족은 매장.

12. 삼별초의 항전-좌별초, 우별초, 신의군으로 구성. 삼별초의 모체인 야별초는 백성들을 잡기 위해 만들어진 부대이며 삼별초는 최씨 무신정권의 군대. 개경 환도를 반대하던 무신정권과 함께 했기에 강화도에서 나오지 않고 왕의 강제 해산 명령을 어긴 채로 반란을 일으켰다. 고려 조정을 근본적으로 부정.즉 삼별초는 무신 정권의 호위병으로 출발하여 항쟁을 하게 된 동기도 민족이나 자주하고는 별 상관이 없었다는 사실. 하지만 4년 동안의 싸움은 몽골과 항쟁하는 유일한 군대로서 백성들의 지지와 사랑을 받았다 한다.

13.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 된 팔만대장경 장경각. 불교에서 8만이라는 숫자는 '많다'는 뜻. 8만 1258장. 앞뒤로 글자를 새겨서 인쇄하면 16만장의 분량. 나라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부처에 의지하여 위기를 극복하려고 불교 경전을 모아 대장경을 만들었다.

14. 팔만대장경의 위기-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숭상하던 조선이 일본의 끈질긴 요청에 팔만 대장경을 넘겨주려 했으나(세종), 더 큰 것을 계속 요구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신하의 반대로 그만 두게 되었다 한다. 또 해인사가 있는 가야산에 북한군이 숨어 있으니 해인사 일대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받고 공군 편대장이 팔만대장경을 잿더미로 만들 수 없다고 명령을 거부해서 6*25 저쟁에서도 살아 남았다고 한다. 군대에서 명령 불복종 죄는 중죄일텐데도 이렇게 용기있게 불복한 편대장 같은 사람 때문에 우리 역사가 아름답게 살아 남아 있나 보다.

15. 1권을 읽고 고구려 세운 동명왕-고주몽-부여의 시조 동명의 관계가 무척 궁금했었다. 그런데 2권을 읽으니 동명왕은 주몽을 말하고 이규보의 동명왕편에 보면 고구려를 세운 동명왕의 출생부터 고구려 건국까지의 역사를 장편의 서사시로 잘 적어 두었다고 이야기 해 주고 있다.

16. <고려사>에서 신돈은 나라를 망친 요망한 중이고 공민왕은 제대로 정치를 못하고 타락을 일삼은 왕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이 책이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운 사람들에 의해 쓰여졌기 때문이란다. 신돈과 공민왕은 기울어가는 고려를 개혁하기 위해 노력한 인물들이라는 사실.

17. 문익점은 붓뚜껍에 목화씨를 숨겨 온 것이 아니라 주머니에 넣어 왔다. <태조실록>에 보면 "문익점이 길가의 목면 나무를 보고 그 씨 10여 개를 따서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왔다. 그 중 절반을 정천익(장인)에게 심어 기르게 했는데 한 개만이 살게 되었다."라고 되어 있단다. 문익점은 공민왕의 개혁정치에 반대한 인물이어서 고려로 돌아오면 처벌을 면치 못하리라는 각오를 하면서도 길가의 목화씨를 주머니에 넣어 왔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역사적 사건. (문익점은 귀양살이를 한 것이 아니래요.) 목숨을 잃진 않았지만 벼슬을 잃고 고향으로 내려가서 장인과 함께 목화씨를 재배하여 3년 뒤에 이웃 사람들에게까지 씨를 나누어 줄 수 있게 되었단다. 많은 고려의 관리들이 목화씨를 쳐다보고도 가지고 올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문익점은 그걸 가지고 왔고 재배에 성공했으니!

18. 화약을 만든 최무선-원나라에는 당시 발달된 화약무기가 있었으나 그 비법을 알려 주지 않자 최무선은 원나라 상인 이원과 함께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 실험 도중 폭발사고로 이원이 죽기까지 하였지만 절망하지 않고 계속 염초 만들기에 도전하여 마침내 화약을 만들었다. 이는 20년에 걸친 노력의 결과였다고 하니!

이상!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새로운 사실들과, 기억하고 싶은 것들.

역사를 제대로 알아가려는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겠다. 우리 역사,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데. 지금껏 의미도 모른 채 달달 외우기만 했던 재미없었던 역사 공부가 이 책을 통해 참 재미있는 공부로 새롭게 자리매김 되었다. 참으로 고마운 책이다. 지금은 역사에 관한 책을 많이 읽지 않아서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것에 모두 고개를 끄덕끄덕하지만, 이책저책 폭넓게 읽다보면 나만의 비판적 안목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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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에서의 왕의 하루 전통문화 즐기기 1
청동말굽 지음, 박동국 그림, 한영우 감수 / 문학동네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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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은 태조 이성계가 도읍을 한양으로 정하고 세운 궁궐이나 임진왜란 때 불타 대원군이 다시 지은 것이 지금 남아 있다. 경복이라는 이름은 왕의 은혜와 어진 정치로 모든 백성이 아무 걱정없이 잘 살아간다는 뜻으로 정도전이 시경에 나와 있는 말을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강녕전-왕의 침질, 교태전-왕비의 침실, 자경전-대비가 사는 곳

사정전-사신을 맞고 보내던 곳, 해시계가 있음. 사정전의 동쪽에는 만춘전(왕이 책을 읽거나 신하들과 잔치를 벌이던 곳)이 있고 서쪽에는 천추전(왕이 책을 읽거나 신하들과 함께 나랏일을 살피던 곳)이 있다.

근정전-궁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로 외국에서 온 사신을 맞거나 왕의 즉위식과 혼례식 같은 중요한 궁중 행사를 치르기도 했으며 정식조회가 열리기도 한 곳으로서 왕의 부지런한 자세가 정치의 으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품계석-신하들의 위치를 표시하는 돌. 동쪽에는 문관인 동반이, 서쪽에는 무관인 서반이 서는 곳. 동반+서반=양반

일월오봉산도-근정전에 있는 어좌 뒤의 병풍. 다섯 봉우리의 산(동악-금강산, 서악-묘향산, 남악-지리산, 북악-백두산, 중악-삼각산)과 해(왕)와 달(왕비)이 그려져 있다.

경회루-연못 안에 있는 누각, 나라의 중요한 잔치를 하거나 외국 사신을 맞던 곳이다.

지와 매회틀(매우틀 혹은 매화틀)-왕과 왕비가 용변을 보던 곳, 용변을 보는 그릇 안에 매회(재)를 넣어 소리와 냄새가 나지 않게 하고, 왕이 용변을 보면 시중 드는 사람이 비단으로 뒤를 닦아 주었다 한다.

수라상과 기미상궁-12첩 반상, 왕보다 먼저 수저를 든 기미상궁

이상은 이 책에서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정리하여 본 것이다.

왕이 머무는 강녕전과 교태전에는 두 마리의 용이 있을 수 없다고 하여 용마루를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왕은 행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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