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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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의 글이 왜 좋은지 알 것다. 담담한 목소리와 거침없는 목소리의 적절한 조화. 중국에 대한 설명서로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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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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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의 방식과 목적은 다양하다. 궁극적으로는 잊지 않고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함이다. 소중한 것을 간직하기 위한 기록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누군가는 사진으로, 누군가는 그림으로, 누군가는 글로 기록한다. 남겨진 기록을 통해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고 확인하며 상상한다. 그것은 보여주기 위한 기록이 아니라 솔직한 삶의 기록일 때 가능하다. 때로 개인의 기록이 역사의 기록이 되기도 하는데 위화의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를 나는 그렇게 분류한다. 소설가 위화가 아니라 격동하는 중국의 정치, 사회, 문화를 지켜본 개인 위화가 들려주는 중국 이야기 정도라고 하면 맞을까. 어린 소년부터 청년을 지나 치과의사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가식 없이 솔직하게 말하는 중국.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나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무엇이 현재의 중국을 만들었는지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인민, 영수(領水), 독서, 글쓰기, 루쉰, 차이, 혁명, 풀뿌리, 산채(山寨), 홀유(忽悠), 10 개의 키워드를 통해 위화가 살아온 시대를 들려준다. 도저히 경험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과거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즐거움과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위화를 통해 중국의 정치를 마주하면서 도저히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는 점(서로가 서로를 고발하고 비판하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다니), 현재로는 상상할 수 없는 체제(국가에서 직업을 지정해주었다는 사실)로 사람들을 통제했다는 점에 소름이 돋으면서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았다. 중국의 역사와 발전이 우리의 그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여 어느 순간 과연 이 글이 중국에 대한 이야기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민주화 운동 텐안문 사건를 소재로 한 「인민」은 자연스레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떠올린다. 그곳에 모였던 사람들의 열정, 그들이 바랐던 자유, 수많은 인민의 희생과 거대한 역사의 기둥으로 존재하는 인민의 모습을 말이다. 「영수」는 예상했듯 마오쩌둥에 대한 기억이다. 그를 추억하면서 마오쩌둥 이후 중국 정치를 향한 열망은 다시 그 시대를 언급하게 된다니 뭔가 아이러니하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속담이 생각난다. 책은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이라 할 수 있기에 독자로써 「독서」와「글쓰기」에 대한 부분은 특히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 친구들과 한 권의 소설을 필사하며 함께 읽었다는 부분은 과연 그게 가능한가 싶다가도 그 열정은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로 결론을 맺었다. 글쓰기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대자보 쓰기부터 작가가 되기까지 수많은 원고를 투고한 이야기. 그 시작이 좋을 글을 쓰는 작가가 되겠다는 소망이 아니라 치과의사(단순 발치사)에서 벗어나 좀 더 편안한 직장생활로 이어지기를 바랐다는 단순한 이유라서 살짝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위화의 글쓰기 철학은 진솔한 여운으로 남는다.

 

 글쓰기는 경험과 같다. 혼자서 뭔가 경험하지 않으면 자신의 인생을 이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직접 써보지 않으면 자신이 무엇을 쓸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글쓰기」, 137쪽)

 

 글쓰기가 사람들에게 두 갈래의 인생의 길을 갈 수 있게 해준다고 할 수도 있다. 하나는 현실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허구의 길이다. 이 두 가지 길은 건강과 질병의 관계와 같아서 하나가 강대해지면 다른 하나가 필연적으로 쇠약해진다. 내 현실에서의 삶의 길이 갈수록 평범해지는 것은 허구에서의 내 삶이 갈수록 풍부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글쓰기」, 147쪽)

 

 위화의 말대로 자신의 인생을 이해할 수 없다면 타인의 인생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써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말은 최고의 진리가 아닐까 싶다. 「루쉰」과「혁명」은 앞서 들려준 「인민」과「영수」에서 확장된 듯한 글이다. 그러니 반드시 차례대로 읽지 않다도 괜찮다. 마음에 끌리는 단어를 먼저 읽어도 끊어지지 않고 맥은 이어진다. 나머지 「차이」,「풀뿌리」,「산채」,「홀유」는 현재의 중국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라 할 수 있다.

 

 중국 경제의 고속성장은 모든 것을 순간적으로 바꾸어버렸다. 우리는 멀리뛰기 경기라도 하듯 물질이 극단적으로 결핍된 시대에서 낭비가 넘치는 시대로, 정치 지상의 시대에서 금전 제일의 시대로, 본능이 억압된 시대에서 욕망이 넘쳐나는 시대로 건너뛰었다. 이 30년이란 세월이 몸을 한 번 웅크렸다가 도약하는 시간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차이」, 194쪽)

 

 우리는 현실과 역사의 거대한 차이 속에서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커다란 꿈의 차이 속에서 살고 있다. (「차이」, 216쪽)

 

 놀랍도록 빠른 성장의 이면, 갈수록 커지는 빈부 격차, 진짜와 똑같이 모방을 하는 능력으로 가짜가 주류가 된 세상,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중국 사회의 고발, 그 안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똑바로 보고 오늘을 살아야 한다고 위화는 말한다. 분명한 건 이 책은 위화 한 사람, 개인의 목소리로 전하는 기록이다. 하지만 그것은 곧 사회의 거울이자 자화상이 된다. 그가 쓴 것은 삶이기 때문이다. 위화 개인의 삶이자 현재를 살아가는 중국의 삶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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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문장 - 책 속의 한 문장이 여자의 삶을 일으켜 세운다
한귀은 지음 / 홍익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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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책과 하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착각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소설이라면 소설 속 주인공의 삶의 일부가 내가 지나온 삶과 닮았다고 느껴질 때 소설이 아닌 다른 책의 경우는 반복해서 읽게 만드는 문장을 지녔을 때가 그러하다. 공감을 부르는 문장과 내용이라고 이해하면 좋겠다. 따져보지 않았지만 그런 경우 저자는 대체로 여자다. 독자층을 여자로 겨냥하고 쓴 글도 있지만 다른 글에서도 묘한 끌림이 있다. 한귀은이라는 작가도 그러하다. 작가에 대한 애정과는 별개로 그녀의 글에는 부드러운 강함이 있다.

 

 『여자의 문장』은 제목이 암시하듯 문장이 주는 울림을 만날 수 있다. 여자에게 더 많은 답을 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문장은 한귀은이 읽고 선택한 문장에서 그녀의 문장으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나 같은 독자는 한귀은의 문장에서 힘과 위안을 받는다. 인문학을 가르치는 교수, 한 아들의 엄마,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여자 한귀은의 삶을 공감하는 것이다. 분명 타인의 삶이다. 그럼에도 그녀의 이야기는 문장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다 알고 있는 소설의 줄거리, 영화 속 주인공의 대사, 일정 부분 겹지는 감정을 나누는 시간을 통해 여전히 성장을 원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한귀은은 자신의 경험을 조금씩 내보이고 지인의 이야기를 통해 지난 삶을 어떻게 이겨왔는지 들려준다. 현재가 아닌 과거, 성숙한 사람이 아닌 불완전한 자아, 강요만 했던 아이와의 관계, 분노하지 않았기에 힘들었던 시절, 편안해진 일상까지. 행복한 삶을 원하지만 타인을 의식한 삶은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어떤 감정을 지나기 위해, 나를 견디기 위해 달렸다는 부분을 읽노라면 그녀와 함께 달리는 내가 보이기도 한다. 달리기의 다른 이름으로 채워졌던 시간들 말이다. 스스로에게 고통을 부여해야만 잊을 수 있었던 시간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안아주고 싶은 모습이다.

 

 ‘달리기나 걷기는 삶의 메타포이며, 내가 이겨야 할 것은 과거의 나 자신이다. 뛰기나 걷기는 온전히 자기 몸에 집중하게 해준다. 눈에 풍경이 들어오더라도 그 풍경은 자기 내면이 투과된 풍경이다. 바람 또한 내 몸과 부딪혀서 나의 체온이 된다. 내 몸에서 맺힌 땀은 쾌적한 공기와 만나 나의 체취가 된다.’ (66쪽)

 

 ‘모두들 자신만의 역사, 상흔을 안고 살아간다. 인생에 완전한 실패란 것은 없다. 단지 피득백을 받을 수 있는 경험이 있을 뿐이다. 실패에 내재한 의미를 찾으면 그것을 훌륭한 피드백이 된다. 자신의 아픈 역사와 상흔이 어느 시점에 결정화되는 것이다.’ (85쪽)

 

 그러나 한귀은의 말처럼 그렇게 달렸기에 피드백을 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 진심을 전할 수 있다. 지금까지 자신의 몫이라 여기는 삶을 살아내려 혼자 고통을 짊어지고 이겨냈다면 이제는 조금은 비우고 조금은 내려놓음으로 채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아픔이 있는 이가 아픔을 볼 수 있고 상처가 있는 이가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고 실패한 이가 실패의 원인을 분석할 수 있으니까. 지나간 사랑, 서툰 이별에 대해서도 정리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된다. 그리하여 앞으로 살아야 할 날들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이를테면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젊음에 대한 열망, 늙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한귀은이 제시한 계획은 이렇다.

 

 ‘우리도 한때는 더 아름다웠다. 젊음의 아름다움을 가진 적이 있었다는 거다. 나이 들어 아름다운 사람은 젊은 시절의 아름다움을 간직해서가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잘 떠나보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다른 아름다움을 계발해야 한다.’ (170쪽)

 

 아름다움과의 이별과 다른 아름다움의 계발이라. 그것은 육체적인 의미만을 뜻하는 게 아닐 것이다. 아름다운 삶에 대한 의미는 저마다 다를 터. 현재 자신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간직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을 계발한다는 건 성장하는 게 아닐까. 늦은 나이에 새롭게 도전하는 아름다움, 관계에 있어 주도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환대하기, 나를 더 사랑하고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 것. 나를 위한 시간을 갖는 건 더욱 중요하다. 그러므로 한귀은의 말처럼 우리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만 한다. 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나만의 여유를 찾기 위해, 나와 대화하기 위해.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것은 여전히 유요하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자기만의 삶, 충만한 자아를 갖기 위해서 필요하다. ‘방’이 아니라면 ‘틈’이라도 가져야 한다. 온전히 자신에게 올인할 수 있는 틈,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틈. 그 틈이 개성이 되고 자유와 자존감이 되고 품위가 된다.’ (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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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랭 레몽 지음, 김화영 옮김 / 비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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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는 고향을 떠난 적이 없다. 그러니까 이동이 아닌 고정된 삶이었다. 주어진 환경을 벗어난 적이 없다. 성격 때문일 수도 있고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다. 여하튼 돌아가실 때까지 나는 그것을 인식하지 않았다. 아니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게 정확하다. 내게 아버지는 아버지로만 존재했다. 소년이나 남자가 아닌 아버지로만. 알랭 레몽의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을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버지의 집이자 내가 태어난 곳으로 나의 마음을 데리고 가지 않았을 것이다.

 

 집은 이미 사라졌다. 부모도 떠나버렸다.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삶의 한 과정이다. 그러나 사랑할 대상이 사라졌다는 건 인정하기 어렵다. 사랑에 대해 인색했다면 더욱 그렇다. 가족은, 그런 존재다. 서로를 사랑하면서 사랑에 대해 인색하다. 형제보다 부모에게 특히. 그들의 생 일부가 불꽃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열다섯 살, 아버지와의 이별을 슬픔보다 낯선 느낌일 것이다. 전쟁을 겪고, 아주 작고 작은 집에서 10남매를 낳고 키우며 삶을 지탱해 온 아버지의 고단한 삶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어머니와의 다툼이 속상해서 미워하는 마음이 커져만 간다. 아버지가 없다는 삶이 가져올 상실의 슬픔을 예측할 수 없다. 돌이켜보면 언제 어디서든 아버지가 있어 든든했고 영원히 곁에 머물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말하지 못했다. 서툴게라도 말해야 했는데 말이다. 소설 속 주인공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자녀들이 그렇다.

 

 ‘칼을 산 것은 우리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을, 그가 죽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에게, 그리고 아버지에게 말하는 나름대로의 방식이었다.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어물어물 서투르게 속으로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족 속에서, 부모님들 사이에서 난파한 사랑, 죽은 사랑에 대해서는 서로 간에 절대로 말하지 않으려고 했던 삼 형제처럼. 그리하여 각기 저 혼자서 침묵을 지켰던, 침묵 속에서 괴로워했던 삼 형제, 멀어져가는, 자신들 스스로도 물리치고 있는 그 아버지에 대해서 감히 말하지 못했던 삼 형제처럼.’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87쪽)

 

 ‘삶은, 진짜 삶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이다. 그런 삶이 아닌 다른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아버지 없이 혼자 사는 것 말이다.’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120쪽)

 

 무뚝뚝한 아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아버지의 삶, 그를 향한 사랑은 뒤늦게 찾아왔다. 원망은 그리움의 다른 이름이었다.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알랭 레몽의 자전적 이야기라서 더욱 슬픔이 크게 밀려온다. 사라지지 않는다.

 

 유년 시절의 기억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를 통해 부모, 형제, 고향에 대한 애틋한 애정을 만났다면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는 알랭 레몽의 청년기,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다. 신부가 되기 위해 캐나다와 로마에서 공부를 했던 그가 다른 삶을 살게 된 과정, 아름다운 방황, 운명적인 사랑을 들려준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있다. 그가 모르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나는 아버지를 놓쳐버렸다. 나는 아버지를 그들처럼 알고 지내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아버지는 나를 사랑했을 거야. 그렇다, 아버지는 나를 사랑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모든 사람들 속에서 마음이 아주 편안해진다.’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 301쪽)

 

 상상할 수 없었던 소년이며 청년이었던 아버지를 만나는 일은 생경하다. 우리의 지난날이 그러했듯이 아버지의 삶도 그러했는 걸 뒤늦게 마주한다. 삶이 진행될수록 작별의 날들이 다가온다. 우리 삶은 작별과 동시에 전진한다. 어쩔 수 없다. 뒤늦은 이해, 뒤늦은 평안. 아름답고 찬연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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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06-16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포리즘 같은 제목도 와닿지만, 어릴 적 느꼈던 아버지의 존재감을 되짚어볼 수 있는 스토리라니 소설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자목련 2016-06-16 16:27   좋아요 0 | URL
소설 속 아버지를 통해 저마다의 아버지를 만나는 순간을 선물하는 소설이 아닐까 싶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레이야 2016-06-16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너무나 마음 닿는 리뷰! 고맙습니다. 몸은 많이 회복되셨나요? 알랭 레몽의 두 작품 모두 읽어봐야겠어요.

자목련 2016-06-16 16:26   좋아요 0 | URL
마음에 닿았다니, 참 좋습니다!!
몸은 많이 회복되었어요. 고맙습니다^^

blanca 2016-06-16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울 것 같아요. 장바구니에 담아요.

자목련 2016-06-16 16:25   좋아요 0 | URL
아름다운 그리움이라고 할까요. blanca 님의 글은 더 아름답지요. 기다려져요, 어떻게 담아내실까.

에이바 2016-06-17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좋죠. 리뷰도 좋아요, 자목련님. 서재가 산뜻해졌어요. 애비 코니쉬! 저도 브라이트 스타 좋아해요..

자목련 2016-06-20 17:19   좋아요 0 | URL
네, 정말 좋은 소설이었어요. 에이바 님의 리뷰 때문에 이 책이 더욱 궁금해졌으니까요. 저는 영화를 보지는 못했어요. 기회에 되면 꼭 보고 싶네요^^
 
탐독 - 10인의 예술가와 학자가 이야기하는, 운명을 바꾼 책
어수웅 지음 / 민음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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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는다.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이라서, 누군가 권해준 소설이라서, 언론의 호평에 관심이 생겨서 읽는다. 읽는다는 건 듣는다는 것이고 듣는다는 건 집중한다는 것이고 집중한다는 건 그것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책에 대한 책은 많다. 책을 읽는 것에 대해 말하는 책, 책을 읽고 쓰는 데 중점을 두는 책, 책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는 책, 책과 삶을 말하는 책. 어수웅의 『탐독』은 어떤 책일까. 인생 최고의 책에 대한 이야기, 책의 힘을 말하는 책, 책을 통해 변화하는 삶에 대한 책이 아닐까 한다. 그러니 잘 알려진 책이 등장하는 건 당연하다. 중요한 건 그 책에 대한 하나의 이야기가 아닌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기억에 남은 책이, 여러 번 읽은 책이, 다른 누군가에게 권하는 책이 모두 좋은 책은 아니다. 특정 부분이 재미있어 기억이 남을 수도 있고 필요에 의해 여러 번 읽어야 할 책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자꾸 생각이 나는 책, 책 속의 인물이 현실의 누군가와 겹쳐 보여서 힘든 책, 읽을 때마다 다른 목소리를 듣는 책이라면 진정 인생의 책이라 꼬집어 말할 수 있겠다. 누군가에게 특별한 책이 나에게도 같은 의미로 다가올 수는 없지만 그 책에 대한 이야기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특별한 책이 될 가능성이 생긴다.

 

 어수웅이 만난 열 명의 예술가는 저마다의 책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자신의 생각을 들려준다. 어떻게 그 책을 읽었는지, 책을 읽을 당시 자신의 상황, 책을 읽은 후 달라진 내면에 대해서 말이다. 한 권의 책과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있었던 놀라운 경험을 나눠주는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 책들은 내게 새로운 책이 된다. 그 책을 읽든 읽지 않았든. 아쉽게도 읽지 않은 책이 더 많았다. 더 안타까운 건 읽어야 할 책으로 오래전부터 책장에 안착한 책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읽어야 할 일만 남은 것.

 

 이제 책이 아닌 그들의 말에 집중해보려 한다. ‘나를 바꾼 책, 내가 바꾼 삶’이라는 주제의 인터뷰는 신선한 주제는 아니다. 열 명의 인터뷰이 가운데 일부는 이미 다른 책에서 다룬 적도 있으니까. 그럼에도 끌리는 이유는 책과 인간에 대한 그들의 믿음과 애정 때문이다. 기억하고 싶은 건 프란츠 카프카의 『심판』을 읽고 가족이 다시 보였다는 소설가 조너선 프랜즌과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는 우리의 대작가 움베르트 에코의 말이다. 알파고와 대결하며 살아남기 위해 고분분투해야 하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라고 할까. 조너선 프랜즌의 진짜 사람들이라는 말에 거대한 망치로 한 대 맞은 듯했다. 수없이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올바른 정보를 선택할 수 있도록 비교하고 회의하라는 에코의 말은 인터넷 세대에게 필요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스마트폰과 페이스북이 어떻게 인간의 질문에 답을 줄 수 있겠어요? 소설가의 임무가 더 중요해진 시점입니다. 진짜 사람들을 찾아내야 하니까요.” (46쪽, 조너선 프랜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 정보를 여과하고 걸러 내는 법을 가르치는 것. 분별력을 가르쳐야 해요.” (101쪽, 움베르트 에코)

 

 그뿐인가. 김영하, 정유정, 김중혁, 은희경은 어디서 만나든 반갑고 유쾌하다. 소설가로 산다는 것과 그들을 지탱해주는 한 권의 책과 소설 쓰기에 대한 이야기. 특히 하나의 소설이 탄생하는 집필실의 소개는 놀라웠다. 직접 그린 지도가 가득한 스케치북, 거기에 세밀화와 확대도, 주인공의 동선과 사건의 동선을 미리 그린다는 것이다. 다른 소설가 역시 몇 권의 집필 노트를 가지고 있겠지만. 그렇게 많은 시간을 쓰고 고친 후에 내게 온 소설이라니, 새삼 그 소설을 읽을 수 있어 감사하다.

 

  “‘책을 보고 인생이 바뀌었다.’ 이렇게는 말할 수는 없을지도 몰라도, 생각을 조금씩 바뀌게 해 줘요. 한꺼번에 바뀌는 게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136쪽, 은희경)

 

 은희경의 말처럼 한 권의 책으로 인해 인생이 통째로 바뀔 수는 없다. 더불어 세상의 모든 책이 인생의 책이 될 수도 없다. 어떤 책은 쉼을 위한 책이고 어떤 책은 위로를 전하는 책이고 어떤 책은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책이고 어떤 책은 여전히 읽지 않은 책이 된다. 읽지 않은 책이 읽은 책이 되기도 하고 소중하게 기억하고 싶은 책이 될 수도 있고 언젠가 당신에게 주고 싶은 책이 되기도 한다. 책이라는 미지의 세계, 읽어야만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인할 수 있으니 책은 정말 대단하고 신비로운 존재다. 한 권의 책이 인도하는 그곳에서 펼쳐질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당신의 삶은 조금씩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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