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비즈니스 레볼루션 - 챗gpt 활용 경영 전략
이진형 지음 / 포르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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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의 능력은 단순히 소통이나 검색 서비스를 대체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상의 패러다임을 바꿀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질문이나 명령을 하면 대답하는 것은 물론이고, 개인이나 기업의 업무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대화형 AI를 뛰어넘는 면모를 선보이고 있다. 챗GPT가 향후 각종 산업과 서비스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스마트폰의 등장 이상으로 판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을지 기대되는 상황이다. (「프롤로그」중에서, 5쪽)


류태호의 『챗GPT 활용 AI 교육 대전환』를 통해 챗GPT의 장점을 읽었다. 더불어 앞으로 교육 현장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개별적이고 창의적인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했다. 나 같은 독자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고 챗GPT가 어떤 것인지 이해를 돕는데 충분한 내용이었다. 그래서 이진형의 『AI 비즈니스 레볼루션』에 대한 책도 비슷할 거라 여겼다. 서울대학교 의료대학 의료정보학이라는 저자의 이력도 독특했다. 의사와 챗GPT, 외료업계와 챗GPT는 무슨 연관성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책이 아니었다. 챗GPT에 관심이 있었서 챗GPT와 대화를 나누고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최신 정보의 답을 얻는 단순 형태의 챗GPT에 대한 책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나 같은 독자에게는 전문적인 용어가 낯설고 어렵게 다가오는 그런 책이었다. 물론 챗GPT를 이용한 비즈니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갈지 챗GPT의 무궁한 능력과 활용법은 놀랍고 대단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이나 챗GPT를 경영에 적용하는 방법이나 해석은 어려웠다.


사람들은 기술에 굉장히 빠르게 적용한다. 간단한 정보 제공이나 채팅 기능은 ‘반짝’ 흥미를 끌고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는 단순히 챗GPT의 신기능을 선보이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챗GPT를 기업 서비스에 적용하여 서비스를 고도화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즉 챗GPT를 활용한 각 기억의 서비스가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일상에 자리 잡고 지속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이러한 프로세스를 구축했을 때 성공적으로 챗GPT를 비즈니스에 도입했다고 볼 수 있다. (35쪽)


챗GPT를 활용한 검색 엔진의 변화, 하나의 채널이 아닌 다양한 채널이 등장하여 선택할 수 있고 그 기능을 비교 설명하는 점을 흥미로웠다. 구글의 ‘바드’나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X’도 사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챗GPT와 바드이 가장 근본적인 차별점은 챗GPT가 2021년 9월 이후의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고 바드는 실시간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이용자의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많다는 건 정보 이용에 있어 나쁘지 않다. 챗GPT와 바드에 대해 창의성, 코딩 능력, 수학적 계산 능력, 판단력에 대해서도 비교 설명하는데 창의성은 챗GPT가 우세하고 계산 능력은 바드가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인상적인 것은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비즈니스 입장에서 보면 챗GPT를 활용해 최대한 더 좋은 답변을 유도해 이용자를 유입하는 방법, 즉 어떻게 프롬프트를 설계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렇다. 이 책은 그런 프롬프트를 설계하는 방법에 대해 소개하고 설명한다. 또한 챗GPT API를 연동한 비즈니스 사례(사용자 맞춤형 작문, 대화 요약, 사용자 지정 기술 자료, 다국어 및 자동 번역, 플랫폼 연동)도 만날 수 있다.


비즈니스나 경영, 경제를 모르는 나 같은 독자도 챗GPT가 가져올 혁명에 대해 알 것도 같다. 그러나 언제나 경제적 이익만을 보고 나가서는 안 된다. 분명한 것은 챗GP의 부작용도 있다는 점이다. 개인 정보 및 기밀 유출, 사이버 범죄, 허위 사실 유포, 저작권 침해에 대한 대책도 세워야 한다.


AI가 세상을 바꾸는 지금, 기업은 이 기술을 이용해 한 단계 도약을 꿈꾼다. 저자는 챗GPT를 어떻게 비즈니즈에 활용할 것인가 안내한다. 그런가 하면 챗GPT가 가져올 새로운 시대에서 인가의 능력은 어떻게 되는가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챗GPT와 현명하게 협력하는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어쩌면 챗GPT의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의 창의성이 0와 1의 계산으로 데이터를 잘 읽어 다음 패턴을 유추하는 것이라면, 인간의 창의성은 패턴을 잘게 부수고 새로운 연결을 통해 이전에는 없던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진정한 창조와 창의는 인간만의 능력인 만큼 인공지능과 함께하는 디지털 세상에서 인간은 이제 본연의 능력을 더욱 개발해 나가야 한다. (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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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커피를 마신다. 뜨겁지 않고 따뜻한 커피다. 한낮에도 얼음을 넣지 않은 커피를 마신다. 기가 꺾인 더위는 상냥해지고 부드러워졌다. 활짝 열렸던 창문은 닫힌다. 완전히 닫히지는 않고 조금 열린다. 가을이다. 이제 가을이라 말할 수 있다. 선풍기는 아직 내 곁에 있지만 그 바람을 쐬지는 않는다. 저녁에는 된장찌개를 끓였다. 뭔가를 끓이는 것, 그 뜨거운 국물을 한 술 떠 식혀가면 밥을 먹는 일, 가을인 것이다.


가을이라고 말해도 될까 싶은 마음은 사라졌다. 그런 마음은 이제 없다. 가을이 되었다. 아직 짧은 소매의 옷을 입고 있지만 여름의 옷차림이 아닌 가을의 옷차림이다. 작은언니의 가방에는 말아 쥐어 밀어 얇은 카디건이 있다. 가을인 것이다.


그런 가을이라서 그런 가을이 시작되어서 조금은 계획적이면서도 충동적인 책을 샀다. 모두 소설이다. 소설을 읽는 게 제일 좋으니까. 가을엔 소설이라고 할까. 아무튼 그렇다. 네 권 가운데 두 권은 계획적이고 나머지 두 권은 충동적이었다.






계절의 소설로 소개할 수 있는 『소설 보다 가을 2023』은 이주혜의 단편이 궁금해서 샀고,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잘못 걸려온 전화』는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을 읽기 전 짧은 단편을 먼저 만나려고. 사실은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책장에 몇 년째 깊은 잠에 빠져있다. 근데 받고 보니 진짜 진짜 짧은 단편이 가득하다. 그러니까 마음산책 짧은 소설 같은 거라고 할까.


문지혁의 소설은 충동적인 구매였다. 적립금이 없었다면, 기대평과 편집장의 퀴즈 같은 이벤트 적립금이 없었다면 나중에 구매했을지도 모를 소설이다. 근데, 문지혁의 소설이 자꾸 궁금한 거다. 그래서 먼저 읽은 리뷰도 꼼꼼하게 읽을 수가 없다. 계획적인 충동구매가 맞겠다.


비가 온다. 가을비다. 기상 캐스터는 가을장마라고 했다. 비가 오는데도 습한 정도가 약하다. 친구의 말처럼 여름비와 가을비는 다른 것 같다. 더위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매몰찬 기운이 아니라 상냥하고 부드러워졌다. 한 번에 등을 돌리며 떠나는 여름이 아니라 천천히 등을 돌리며 여름이 떠나고 있다. 가을이 그 여름을 배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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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3-09-13 2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름을 좋아해서 선선해 지니까 막 섭섭하고 그래요...근데 천천히 등을 돌리는 여름에 배웅하는 가을...자목련님 표현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감동ㅜㅜ

자목련 2023-09-14 17:29   좋아요 1 | URL
망고 님은 여름을 좋아하시는군요. 저는 추운 걸 조금 더 견딜 수 있어요.
망고 님의 댓글이야말로 감동입니다. 남은 여름 안에서 좋은 시간 보내시길 바라요^^

물감 2023-09-13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이 쌀쌀해졌어요. 이번 장마 지나가면 본격 가을 날씨올 듯! 건강 조심하셔요🙂

자목련 2023-09-14 17:29   좋아요 1 | URL
주말 지나면 여름의 흔적은 찾기 어려울 것 같아요.물감 님도 감기 조심하시고요^^

독서괭 2023-09-14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가 꺾인 더위는 상냥해지고” 라니 넘 멋진 제목입니다!! 비와 함께 정녕 가을이 왔네요^^

자목련 2023-09-14 17:32   좋아요 0 | URL
가을이 왔어요. 와락 달려든 가을이에요. 얼마나 빠르게 지날지 모르겠어요.

거리의화가 2023-09-14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은 정말 가을이란 느낌이 확연하네요! 주말쯤 비가 다시 온다고 하더군요. 그 후엔 정말 가을일 듯합니다^^* 자목련님의 문장 표현은 언제 봐도 아름다워요^^

자목련 2023-09-14 17:33   좋아요 0 | URL
내일부터 비가 내리고 주말이 지나면 완연한 가을과 만나겠지 싶어요. 긴 소매 옷도 챙겨야 하고. 이불 정리도 해야 하고, 계절 맞이 쉽지 않아요 ㅎ
 
완벽이 온다 창비교육 성장소설 10
이지애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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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짐의 때가 온다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건 슬픈 일이다. 아이들의 경우는 몰라야 한다. 눈치가 빠른 아이는 좋은 게 아니니까.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이 어른의 눈치를 보는 건 그들만의 생존방식이다. 아무리 괜찮다고 말해도 아이들은 다 안다. 자신이 어떤 위치인지,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지 말이다. 기관의 선생님이 애정을 갖고 지켜본다고 해도 아이들에게는 부족한 게 사랑이다. 아이들은 그 사랑을 어디서 채워야 하는지 그 사랑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스스로 학습하게 된다. 제2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대상 수상작 이지애의 『완벽이 온다』 속 민서도 다르지 않았다. 여섯 살에 그룹홈에 들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덩그러니 세상으로 나온 민서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도 같았다.


『완벽이 온다』는 그룹홈에서 나와 자립하며 일찍 사회에 흡수된 아이들, 어른이 아닌 데 어른인 척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그룹홈의 존재와 역할을 알 수 있었지만 소설 속 민서처럼 어린 나이의 아이가 생활하는 줄은 몰랐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잠시 부모와 떨어져 지내며 집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는 아이도 있었지만 민서에겐 그런 기대가 없었다. 해서 언니와 솔과 설 쌍둥이 언니들과는 달랐다. 해서 언니처럼 엄마도 없었고 쌍둥이 언니를 찾아오는 아빠도 없었다. 민서는 기다림에 익숙했지만 기다리지 않았다.


기다림이란 두려운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도망갔다는 말을 듣고 자란 아이에게 부모란 언제든 없어질 수 있는 존재였다. 나는 아빠도 언젠가 나를 버리지 않을까 늘 두려웠다. 그게 언제일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헤어짐이 오늘은 아니기를 바라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179쪽)


그런 아빠는 죽고 나서야 연락이 닿았다. 민서가 나름 혼자 살기에 적응하고 있을 때 그룹홈 선생님이 소식을 전했다.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아빠의 죽음은 가족이 없는 무연고자의 죽음 그 이상과 이하도 아니었다. 민서는 누구와도 가깝게 지내지 않았다. 그게 편했다. 누군가 관계를 맺고 지내다 버려질까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혼자여도 충분했다. 해서 언니는 민서와 달랐다. 항상 먼저 연락하고 미용실에 와서 머리를 하라고 했다. 이번에도 연락을 해서 임신 소식을 전했다. 남자 친구와 완벽한 가정을 이룰 거라며 태명도 완벽이라 했다. 그룹홈에서 같은 방을 쓰며 지냈던 해서 언니는 민서를 친동생처럼 아꼈다. 엄마와 살 거라 그룹홈을 떠났지만 곧 다시 돌아왔다. 쌍둥이 언니와 민서보다 먼저 그룹홈을 떠난 해서 언니가 엄마가 된다니, 이상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았다. 카톡을 보내고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었다. 미용실에 찾아가니 그만두었다고 했다. 어디 사는지 집도 몰랐다. 민서는 그제야 한 번도 먼저 연락을 하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그룹홈을 나오고 처음으로 솔 언니에게 연락을 했다. 솔과 설 쌍둥이 언니는 고등학교 때 아빠가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아빠가 술도 안 마시고 폭행도 사라졌다고, 그룹홈 선생님은 만류했지만 쌍둥이들은 가족을 택했다. 그 이후로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솔 언니는 설 언니의 죽음에 대해 말했다. 선생님의 걱정대로 아빠는 달라지지 않았다.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아빠는 감옥에 갔다고. 민서에게 밥을 사주면서 솔이 들려준 이야기다. 그리고 해서의 집을 안다고 한 번씩 그랬다며 기다려보자고 했다.


민서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솔 언니와 자주 만나고 솔 언니의 챙김을 받았다. 그룹홈에서처럼 말이다. 해서 언니가 연락을 해오면서 셋은 자주 어울렸다. 해서 언니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남자친구가 떠난 것이다. 완벽이면 남겨 놓고. 완벽하기를 바랐던 해서의 꿈은 부서졌다. 해서가 자란 것처럼 완벽이도 어떻게든 자랄 거라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었다. 민서, 해서, 솔은 삼각형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며 지냈다. 그건 나쁘지 않았다. 솔 언니가 돈을 빌려달라고 해도 선뜻 빌려줄 수 있었고 솔 언니의 자살 소식을 해서 언니가 아닌 자신에게 연락이 닿은 것도 다행이었다. 솔 언니는 그동안 모든 걸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민서를 챙겼다니, 민서는 그 마음을 알 것 같으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솔 언니와 해서 언니를 끊어 내고 싶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두렵다는 이유로 솔 언니와 해서 언니를 끊어 내는 게 아빠 같은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부 부질없더라도, 다시 상처받더라도, 결국 실패하더라도 나는 믿어 보기로 했다. 솔 언니는 아빠와 다르다. 아빠는 죽었고 솔 언니는 살았다. 배신의 순간에서 솔 언니는 마음을 바꾸고 돌아왔다. (197쪽)


캐리어 하나만 남은 솔, 완벽하지 않은 완벽이를 품은 해서,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소중함을 알게 된 민서. 셋은 같이 지내기로 한다. 누구라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충분하고 뻔한 결말이 이상하게 기쁘고 좋았다. 좁고 불편한 공간은 그룹홈과 닮았지만 그곳에 없던 게 있었다. 회복되는 설 언니를 지켜보는 마음, 완벽이와 같이 살아간 시간의 기쁨,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민서의 모습 말이다. 민서, 해서, 솔, 완벽이가 만들어 갈 소중하고 포근한 가족이 있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조금 일찍 세상에 나올 수밖에 없는 청년들이 자립하는 모습은 서툴고 아프다. 소설은 그런 청춘의 실상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안전한 울타리가 없어 스스로 울타리가 되어야 하는 삶. 상처투성이라 타인을 볼 여력이 없다. 민서가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같은 처지의 삶을 끌어안고 손을 내민다. 해서와 설이 그랬던 것처럼. 삼각형이었던 구도가 사각형이 되고 안정감은 커졌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괜찮다. 아니 완벽의 새 기준을 만들면 된다. 저기 완벽이 오고 있다는 걸 기대하고 기다릴 수 있다. 진정 아름다운 성장소설이다. 손을 잡고 연대하며 성장할 그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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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처블 러브 스토리
김수연 지음 / 엘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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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가 막연하게 꿈꾸고 바라는 사랑은 행복한 동화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랑이 어렵고 힘들다.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결말을 알려주는 동화는 어린 시절에만 존재했으니까. 그럼에도 사랑에 죽고 사랑에 살고, 사랑에 모든 걸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사랑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수연이 들려주는 알록달록한 사랑의 조각 모음집 『스위처블 러브 스토리』를 읽다 보면 그냥 사랑이란 그런 거라는 걸 알게 된다. 어떤 설명이나 이유를 찾을 필요 없다는 걸 말이다.


이 책에는 모두 여섯 개의 사랑이 있다. 서로 다른 빛과 서로 다른 형태를 지닌 사랑이다. 누군가 그 사랑 중 하나가 자신의 이야기처럼 다가올 수도 있고 이미 지난 사랑을 돌아보게 될지도 모른다. 혹시 아는가? 죽었다고 여겼던 사랑의 세포가 다시 살아나 기지개를 펼지도 모른다. 아무도 모르게 다가와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은 그런 것이니까.


표제작 「스위처블 러브 스토리」는 헤어진 연인의 영혼이 바꾼 이야기다. 헤어진 연인의 몸이 되었다고 상상해 보면 정말 싫을 것 같다. 그런데 살짝 미련이 있어가 이별의 이유를 찾아봐도 잘 모르겠다면 뭔가 기회가 있다고 여기지 않을까. 물론 소설에서는 그런 기미를 찾기는 어렵다. 여자친구의 몸이 된 남자는 직장 생활의 고단함을 알고 남자친구의 몸이 된 여자는 카페의 운영의 어려움을 알게 된다. 사흘 뒤 자신의 몸을 되찾고 드라마틱한 전개는 없지만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독자는 둘의 사랑이 다시 시작될 거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이런 게 연애 소설을 읽는 묘미가 아니겠는가.


“근데 생각해보니까…… 널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했는데, 완전하게 사랑하긴 했었던 것 같아. 부정해봤자 변하지 않는 사실이라면 그냥 인정해버리는 게 속 편할 것 같더라고.” (「스위처블 러브 스토리」, 85~86쪽)


그런 색다른 즐거움은 「전지적 처녀귀신 시점」에서 만날 수 있다. 제목에서 짐작했듯 ‘나’는 처녀귀신으로 이승에 남아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의 옆에 머물게 된다. 그러니까 성공한 귀신덕후라고 해야 할까. 평생의 소원을 죽어서 이룬 셈이라고 할까. 곁에서 바라보고 사랑하는 일, 그 사랑은 정말 행복할까. 그건 잘 모르겠다. 덕질의 즐거움을 아는 이라면 처녀귀신의 입장을 이해할지도.


그런가 하면 가장 현실적인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 「소도시의 사랑」이다. 지방의 소도시에 살던 남녀가 꿈을 찾아 도착한 서울. 그곳에서 만난 두 남녀. 배우인 태백의 여자, 뮤지션인 남해의 남자가 서로를 사랑하는 모습은 눈처럼 맑고 유자처럼 따뜻하고 달콤했다. 자연스럽게 남자의 집으로 여자가 들어왔고 함께 생활했다. 그러나 사랑이 전부가 될 수 없었다. 음악만으로 살 수 없었고 오디션에 붙는 일은 어려웠다. 둘의 사랑은 어떻게 될까? 살짝 공개하면 작가는 그들의 사랑을 응원하고 있다는 것. 현실과는 매우 다를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단편이 참 좋았다.


서울에 방(room)은 있지만 집(house)이 없는 두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의 집이 되어주기로 했다. 서울은 너무 잘게 쪼개져 있는 것 같아. 도시는 크고 집들은 너무 작고. (「소도시의 사랑」, 96쪽)


대도시에 산다는 것은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장소에 간다는 것. 달리 말하면 상처받을 기회가 많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소도시의 사랑」, 103쪽)


남들 연애 운만 봐주는 타로 리더가 옛 여자친구 문제로 타로점을 보면서 단골이 된 손님과 가까워지면서 사랑이란 아주 가까운 곳에 있구나 느끼게 만드는 「타로마녀 스텔라」, 완벽한 이상형과 만남은 AI를 통해서만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블라인드, 데이트」, 겨울만 존재하는 마을에 살고 있는 소녀 ‘아로루아’가 외부 문명세계에서 온 여행자 ‘욘’을 만난 일상을 그린 판타지 「어느 꿈의 겨울, 아로루아에게 생긴 일」는 사랑이란 동화를 완성시킨다.


무한 가능한 사랑의 세계, 사랑의 결말을 행복이라 불행이라 규정짓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도 사랑을 꿈꾸지 않을 테니까. 연애소설, 로맨스 소설 독자라면 놓치지 말길 바란다. 로맨스를 꿈꾸는 이라면 즐겁게 만날 수 있는 소설집이다. 연애 중이라면 잠시 미뤄도 괜찮다. 누구나 사랑을 할 때 가장 아름답고 가장 빛나는 소설의 주인공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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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현의 산문집 『환승 인간』 은 여행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환승’이란 말 때문이었다. 하지만 장소와 공간을 이동하는 뻔한 여행을 기대한 건 아니다. 경험하는 인간, 다른 나로 이동할 수 있는 삶 같은 그런 의미의 환승이었다. 갈아탈 수 있는 삶은 쉬운 것처럼 보이지만 그럴 수 없는 이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어쩔 수 없이 갈아타야만 하는 삶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삶에 대해 쓸 수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실 한정현의 소설은 단편 한두 개 정도가 전부였다.


한정현의 소설이 궁금하지 않았다. 적어도 『환승 인간』이란 산문집을 읽기 전에는 말이다. 그가 연구를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소설 속에 자기 이야기가 많다는 사실도, 그러니까 점점 더 나는 그가 쓴 소설이 궁금해지는 거다. 그는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하는 것일까. 이 산문집은 한정현이라는 인간의 삶의 이동경로인 셈이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좋아하는 것들, 좋아하는 사람을 어떻게 좋아하고 공부하는지, 그 모든 걸 그는 ‘환승’이라는 말로 압축했다.


자신을 설명하고 소설에 대해 말하는 방법, 하나의 관심사에서 다른 관심사로 이동하고 확장하며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 모두가 볼 수 있는 앞으로의 이동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뒷면이 궁금해 파고드는 사람. 그래서 하나가 아닌 다양한 시선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한 줄의 기사에 숨겨진 이면을 보는 사람, 국가나 사회의 폭력으로 아픈 삶을 들여다보는 사람, 결국 그것을 소설로 써야만 하는 사람.


산문집을 읽으면서 좋아서 좋구나 하면서도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까. 아니, 말하지 말아야 할까, 그런 생각을 했다. 알려주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프롤로그가 아닌 프롤로그 더하기의 이런 부분이 그랬다. 우리는 우리가 환승하고자 원하는 것들에만 관심을 둔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사회 속 일원으로 혼자만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므로 다른 삶의 환승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한정현은 바깥의 삶을 보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환승하는 삶.

환승할 수밖에 없는 삶.

좋아하는 것에서 좋아하는 것으로 환승할 수 있지만, 사실은 좋아해야만 하는 것을 만들고 좋아하게 만들어야 살아지는 삶도 있다. 마음과 사랑이라는 것을 손쉽게 쓰지만 사실 요즘은 그런 것마저 만들어내야만 견딜 수 있는 삶도 많다고 느낀다. 그런 삶의 환승의 수가 빈번하게 높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무수한 환승을 경험하면서도 순간 나 자신의 바깥에 놓은 삶에는 또 한 번 무감했던 것 같다. (「프롤로그 더하기」, 18~19쪽)


그러다 또 이런 구절에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은 사랑에 한정된 것으로 생각한다. 사랑의 최초이자 최후의 환승지는 자기 자신이라는 말. 가만 생각하고 돌이켜보니 사랑의 시작은 과연 그러하다. 사랑은 강요하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도 한 되는 것, 그건 사랑의 끝이 이별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결국 나가 남는 것. 헤어짐의 슬픔이든 실연의 아픔이든 감당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니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최초이자 최후의 환승지는 자기 자신이다. 정말 좋은 사랑이라는 기준은 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온전한 ‘나’가 남는 것이다. 오롯이 나로 환승하는 것이다. (69쪽)


감당하기 어려운 일,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삶의 해결책으로 제시한 이름을 만들어낸다는 것, 그 이름으로 환승하여 다른 이름 뒤에 숨어 버리는 일은 재미있다. 소위 부캐라고 할까. 여려 명의 나로 존재하여, 각각의 역할을 부여하면 비대한 하나로 힘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소설가 다운 발상으로만 치부할 게 아니라 한 번쯤 시도해 봐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니까 우리도 다른 우리로 환승하면 조금 쉽고 괜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작가의 산문집은 작가의 생각과 관심사, 가족, 친구에 대한 개인적인 것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는 무척 좋아할 것이고 누군가는 별로 일 것이다. 나는 경계에 있다고 해두겠다. 한정현 작가가 뉴질랜드에 갔다가 그곳에서 더 공부하게 되고 친구들을 사귀고 그들의 우정이 그를 살리고 위로가 되었다는 건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너는 한국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외국인 친구의 질문. 그것은 그의 소설과도 연결되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소수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다르다는 것. 그러니가 이 산문집을 읽고 그의 소설을 읽는다면 소설과 훨씬 더 가까워질 거라는 말이다.


영자원(한국영상자료원)에서 본 영화 이야기, 아빠와 함께 비디오테이프로 본 히치콕의 영화 <새>로 인해 생긴 조류 공포증부터 다양한 영화 리뷰도 흥미롭다. 그가 소개하는 영화는 제목도 낯선 영화가 많았는데 그 가운데 <이다>, <마스터>,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는 무척 궁금한 영화로 남았다. 대중적이지 않은 영화, 어쩌면 나만 몰랐던 영화일지도 모르지만 그가 영화를 통해 보고 전하려는 건 약자의 삶, 전쟁의 상흔, 진정한 자유 같은 게 아닐까 싶다.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삶, 다수의 목소리에 가려진 소수의 삶, 잊힌 개인의 이야기.


『환승 인간』에 대한 글로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그게 내가 원하던 바일 수도 있다. 나처럼 조금 더 한정현이 궁금해지기를, 한정현의 소설이 궁금해지기를 바라니까. 나는 읽지 않은 그의 소설이 궁금해졌다. 더 좋은 나로 환승하는, 더 좋은 쪽으로 나가는 그의 소설에 대한 기대가 생긴 것이다. 『마고』, 『줄리아나 도쿄』, 『소녀 연예인 이보나』에서 들려줄 한정현이 궁금해졌다. 그의 할아버지 ‘주희’가 어떻게 등장하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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