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일도 힘겨운 날들이다. 그저 읽기만 하면 되는데, 더위는 그조차 막아버린다. 그러니 쓰는 일도 힘들다. 올해가 제일 더운 것 같다. 더위보다 추위와 잘 지내는 나는 더위가 힘들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난다. 얼굴, 목, 등으로 땀이 흐른다. 작년에 이렇게 더웠나 싶은 거다. 아침부터 아이스크림을 먹게 될 줄이야. 이 더위가 끝이 있을까. 에어컨을 잘 켜지 않는 나인데 이번 여름은 자동적으로 리모컨을 찾는다.


며칠 뒤가 입추라는 데 이제 24절기도 맞지 않을 것 같다. 더위에 냉면, 아이스커피, 비빔면, 아이스크림처럼 반가운 건 이런 소설들이다. 정용준의 짧은 소설과 최은영의 단편집이다. 마음산책의 짧은 소설 시리즈, 이번엔 정용준이었다. 짧은 소설이므로 다 읽긴 했는데 리뷰는 언제 쓸지 모르겠다.


문학동네 30주년으로 최은영의 단편집은 예약 구매로 받았다. 출판사에서 신간 책값은 택배비를 생각해서 책정하는 것 같다. 음, 이건 나만의 생각은 아닐 듯. 물론 물가가 다 올랐으니 당연 책값도 올라야 하는데 맞지만 15000원 이상 무료배송에 14600, 14800원은 애매했다. 그래서 아예 15000원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15120원이다. 반갑고 기다렸던 작가의 소설이지만 그래도 책값은 비싸다.





정용준의 소설은 꽤 오랜만에 읽는 것 같다. 어쩌다 보니 장편 몇 편은 읽지 못했다. 좋아하는 소설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좋아함이 조금 시들었나. 그랬는지도 모른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모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는 가시를 봤는데 지금은 서울예술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다. 정용준은 어떻게 소설에 대해 수업할까. 그 강의, 한 번 듣고 싶네.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정용준을 좋아하는 마음, 시든 게 아니네.


최은영의 단편집은 그냥 좋다. 좋은 이유를 따로 찾을 필요가 없다. 이번 소설집은 정희진의 추천으로 더 많은 이들이 읽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누군가의 추천, 참 힘이 세구나 싶다. 내 경우도 김연수의 추천이 있는 책은 그냥 넘어가기 어려우니까. 나의 추천도 힘이 세면 좋겠다. 수록된 7개의 단편 가운데 세 편은 읽은 소설이다. 다시 읽어도 또 좋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 읽을지 알 수 없다. 너무 덥고 지금도 등에서 땀이 난다.


어쩌면 8월은 정용준과 최은영으로 채워질지도 모른다. 두 권의 소설로 이미 채워진 느낌. 조금은 가볍고, 꿈 같고 동화 같은 정용준의 소설과 연대와 공감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는 최은영의 소설, 둘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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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08-03 17: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년 더위의 강도가 강해지고 있는 듯 싶습니다. 저는 그제가 체감상 가장 더웠어요. 어제 저녁에는 퇴근 때 바람이 부는데 좀 달랐어요. ‘어랏! 좀 시원한데?‘ 했습니다. 며칠만 기다리면 시원해질거야 생각하게 되더군요. 한증막 같은 더위가 좀 덜해지길 기원해봅니다!^^;

자목련 2023-08-04 17:17   좋아요 0 | URL
작년의 더위가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요. 작년보다 더 강한 더위가 왔구나 느껴요. 주말이 지나면 아주 쬐금이라도 시원해질까 기대해요. 계절은 붙잡을 수 없고 흐르는 게 다행이다 싶고요.
화가 님도 남은 하루 건강하고 시원하게 보내세요^^

얄라알라 2023-08-03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에어컨이.잠시.작동 되지 않았었는데
순간 제가.느낀.감정이 공포에 가까웠어요. AS하면 대기탈텐데 당장 오늘 어쩌지??등등...제.반응에.스스로 더 놀랐어요 더위는 공포가 되었네요..

자목련 2023-08-04 17:18   좋아요 1 | URL
앗, 정말 무서웠을 것 같아요. 말씀처럼 더위가 공포가 되었어요. 여름이라는 계절이, 참 힘들다 싶어요.
아, 여름이다~ 신이 나서 노래 불렀던 여름은 어디에 있는지....

은오 2023-08-03 2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책장샷은 볼때마다 아름답습니다. 이 페이퍼 읽으니 여름이 더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네요. 자목련님 힘들게하지마..........

자목련 2023-08-04 17:20   좋아요 1 | URL
제가 붙잡아도 여름이 지나가긴 하겠죠. 그래도 요즘은 진짜 더워요. 은오 님의 시원한 마음이 도착했으니 이제 시원해질 일만 남았어요!

책읽는나무 2023-08-03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용준 작가도 글을 잘 쓰는 것 같다고...읽으며 생각했었던 적 있었네요. 그의 소설들을 찾아봐야지! 생각만 하곤...깜깜무소식!!^^
신간이 나와서 눈여겨보게 되었습니다.
서울예대에서 강의도 하시는군요? 와...

정희진 선생님 현대 소설 잘 안 읽으시는 줄 알았는데(정찬 작가님을 가장 좋아하신다고 하셔서) 지난 달 팟캐스트에서 김혜진 작가의 소설을 언급하시고 추천하셨는데 최은영 작가의 소설도 추천하셨군요.
정희진 선생님, 김연수 작가님의 추천도 눈여겨 읽었을테지만 제겐 자목련 님의 추천이 더 중요합니다. 힘이 무쟈게 세니까 계속 추천해 주세요^^

자목련 2023-08-04 17:22   좋아요 1 | URL
정용준의 소설은 아주 편안해서 쉽게 쓰여진 게 아닐까(절대 그럴 리 없는데 말이에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어느 순간 따라잡지 못한 책들, 기회가 되면 열심히 만나보고 싶어요.

김혜진, 최은영, 다음 추천 작가가 궁금해져요. 나무 님의 응원 댓글은 너무 고맙고 감사하고요!!

호시우행 2023-08-04 0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즈음 너무 더워요. 그래서 난 의무적으로 서평을 써야 하는 그런 일체의 일들을 모두 단절했어요. 독서생활도 버거운데 증정도장이 꽉 찍혀있는 그런책을 위해 며칠 간의 노동을 기울였다니라는 생각이 들어 슬그머니 부아가 치밀었기도 하구요. 그래서 내돈내산으로 여유로운 독서를 즐기기로 했어요. 그리고 리뷰나 서평을 올려야 할 의무감 같은 것도 없어서 좋구요. 언젠가부터 죽으면 이 모든 게 없어질 일에 왜 내가 매달리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면서 77세까지만 하자고 마음 먹었는데 이를 이삼년 앞당기기로 했어요. 또 증정도서를 쓰레기장으로 내보내면서 매일 고생하는 경비원에게 가졌던 미안한 마음도 이젠 들지 않아서 좋구요. 내돈내산 책들은 평소에도 그랬듯이 깨끗한 상태에서 지인들에게 책선물하거나 아니면 중고서점에 팔면 되니까요. 늙은이 주책 댓글인가요?

자목련 2023-08-04 17:24   좋아요 0 | URL
맞아요, 호시우행 님, 즐거운 독서가 즐거운 리뷰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요즘처럼 정말 더운 날씨에는 읽는 일도 쓰는 일도 고역이구나 싶어요. 말씀처럼 어떤 날은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고요. ㅎㅎ
늙은이 주책 댓글이라니요, 절대 아니에요.
호시우행 님, 건강하고 시원한 날들 이어가세요^^

blanca 2023-08-04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은영 작가의 소설 주문해야 하는데...저도 요새 배송료 안 나오게 주문하는 게 뭐랄까 숙제처럼 너무 힘들어요. 당연하다 싶으면서도 내 편의를 생각하면 번거로운 제도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용준 작가는 산문집도 정말 좋아요. 자목련님 추천도 힘이 있죠. 좋아하는 한국 작가들, 어제는 김금희 작가의 산문집 읽는데 와, 정말 너무 좋다! 이랬네요. 김금희, 김연수 작가는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음 주에는 입춘이라니 그래도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자목련 2023-08-04 17:27   좋아요 0 | URL
이 더운 여름에 수고하시는 택배 기사 님을 생각하면 배송료를 지불하는 게 당연하지만 책 주문할 때 고민은 생가보다 커요. ㅎ
추천하신 정용준 산문집 읽어야지 하면서 아직이에요. 우선은 곁에 두어야 읽겠죠? 음, 그럼 또 주문해야 하고, 그럼 배송료 숙제를 또 고민해야 하고 ㅎㅎ
저도 김연수 작가는 한 번 만나보고 싶어요. 그럴 수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블랑카 님도 건강하고 안전한 여름 이어가세요^^
 
챗GPT 활용 AI 교육 대전환
류태호 지음 / 포르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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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 프로그램들은 인간과 경쟁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활용할 도구로 만들어졌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인공지능 프로그램과의 경쟁에서 이길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크게 의미 있는 방법이 아니다. 그보다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81쪽)


시대의 흐름과 상관없이 살고 있는 나에게도 ‘챗GPT’ 는 익숙하다. 정작 정확한 뜻을 알지 못해도 대충 어떤 프로그램인지 안다. 방송에서도 많이 등장하고 ‘챗GPT’ 사용 후기를 접했기 때문이다. 키워드나 주제를 입력하면 그에 따른 정보를 습득하여 이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는 점과 ‘챗GPT’의 등장으로 인간의 노동력은 줄어들고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는 직업군도 사라질 수 있다는 염려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무분별하게 과제나 리포트, 논문을 대신하는 목적으로 ‘챗GPT’ 사용한다면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챗GPT’ 는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교육공학 전문가이자 미래교육학자인 저자 류태호의 『챗GPT 활용 AI 교육 대전환』에서 그 해답에 접근할 수 있다. 저자가 소개하는 ‘학습자 위한 챗GPT 활용법’을 통해 현명하게 챗GP를 활용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우선, 챗GPT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챗GPT는 단순히 데이터베이 중에서 검색한 결과만 제시하는 게 아니라 질문에 대해 가장 적합한 답을 사람이 직접 응답하는 것 같이 답을 만들어 내는 프로그램이다. 중요한 것은 챗GPT가 개별 사용자의 요구에 맞춘 서비스를 제공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 부분을 개인 맞춤형 교육과 연결시킨다.


우리는 챗GPT가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아니다. 챗GPT는 명령어가 입력되지 않으면 어떤 업무도 수행하지 않는다. 당연한 말이라고? 스스로 알아서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용자의 질문 스타일, 패턴, 말투에 따라 답이 달라지므로 가장 나다운 말투로 입력해야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챗GPT은 사전 훈련 과정에서 사용된 데이터를 벗어난 정보를 활용하지 못한다. 그러니 반드시 챗GPT의 결과값이 옳은 건 아니며 정보의 잘못과 허위를 인식하지 못한다. 이처럼 획일적인 시스템이 아닌 학생 개인별로 자기가 좋아하고 잘 하는 수업에 대해 챗GPT의 특성을 이용해 적용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코로나19로 교육 환경은 변화했다. 비대면 온라인 수업의 전환은 익숙해졌지만 교육의 질이나 학생들의 학습 성취는 여전히 수동적이다. 저자는 학생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 챗GPT가 도울 수 있다고 설명한다. 모르는 부분에 대해 반복적인 설명과 창의적인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챗GPT는 학생들이 똑같은 질문을 수십 번 해도 절대 지치지 않고 학생이 이해할 때까지 도울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맞춤형 학습을 위한 효과적인 도구라는 게 중요하다.


개인 맞춤형 교육의 필요성은 이미 교사, 교육계 종사자, 부모가 알고 있지만 그에 따른 학습 콘텐츠를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다. 거기다 개별 학생의 수준을 측정하는 것도 어렵고 이 모든 것을 교사 혼자 감당할 수 없기에 챗GPT가 필요하고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가 지식의 전달자로 다수의 학생에서 똑같은 수업 내용을 가르치고 이해와 암기 위주의 시험을 본 결과로 학생들을 평가해 온 시대가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 모든 아이들에게 일대일 맞춤형 교육을 진행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학교교육은 교육의 본질을 찾는 방법으로 달라질 것이다. 물론 기억하고 주의해야 점도 저자는 놓치지 않는다.


다만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내용은 참고용으로만 사용하고, 교사의 전문가적 관점을 토대로 내용이 신뢰성과 적정성을 평가한 후에 활용하는 것이 좋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보유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있어도 교육에 있어서는 학생들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교육에 대한 열정을 지닌 인간 교사와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145쪽)


저자는 챗GPT를 사용한 개인 맞춤형 학습, 챗GPT를 사용한 교사 업무 지원 활동, 대학 교육에서의 챗GPT 활용, 기업 및 직업교육에서의 챗GPT 활용 예시를 통해 현실에서 어떻게 챗GPT를 활용할 수 있는지 자세히 보여준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 교육 현장에 있는 이들과 챗GPT를 잘 알고 싶은 이들에게 유용한 도움을 줄 책이다. 물론 나처럼 챗GPT에 대해 대충 알고 있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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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8-02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소설도모자라서 챗gpt 책 리뷰까지 이렇게 잘써주시면 반칙아닌가요?! 😱

자목련 2023-08-03 17:39   좋아요 1 | URL
은오 님의 칭찬 댓글, 이 여름의 열기를 시원하게 만듭니다. 쓰는 게 힘든 요즘이에요 ㅎ
 
저스트 키딩 마음산책 짧은 소설
정용준 지음, 이영리 그림 / 마음산책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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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에 지쳐 아무것도 읽지 않고 읽기 싫은 날들, 정용준의 짧은 소설이 반갑다. 정용준의 소설, 내가 좋아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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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23-07-31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바벨>...

자목련 2023-08-02 08:36   좋아요 0 | URL
^^*

은오 2023-08-02 1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내가 좋아했지.... 지금도 좋아하지.. 앞으로도..

자목련 2023-08-03 17:40   좋아요 1 | URL
음, 하트를 날려야 할 순간입니다!!
8월이니 여덟 개의 하트를~~
❤️❤️❤️❤️❤️❤️❤️❤️
 
마음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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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몇 권 읽으면서 점차 환해지는 기분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내게 흐릿한 막 같았다. 막은 걷힐 것 같으면서도 쉽게 걷어 내기가 어려웠다. 소설마다 등장하는 주인공이나 주변 인물의 비슷한 성격이 그러했고 결말 또한 선명했던 또렷한 기억이 없다. 다시 읽으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우선은 그렇다. 그랬던 마음이 『마음』을 읽으면서 이전보다는 선명해졌고 그의 소설이 더 좋아졌다.


사실 이 소설의 단순하다. 화자인 ‘나’가 만난 ‘선생님’이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학교에서 가르침을 받은 선생님은 아니다. 이름 대신 선생님일 뿐, 인생 선배 정도도 무방하다. 어쨌든 나는 우연하게 만난 선생님과 친해진다. 물론 이건 나의 입장이다. 그러니까 선생님은 나에게 곁을 내주는 사람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이상할 정도로 냉정한 사람이다. 선생님을 찾아가는 나를 내치지 않았을 뿐이라고 할까. 그런 무심함에 끌렸던 것일까. 사람이 사람에게 끌리고 좋아하는 데 딱히 이유를 찾기 어려운 일이니까.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의 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을 손을 벌려 안아줄 수 없는 사람, 그가 바로 선생님이었다. (29쪽)


선생님은 비밀스러운 사람이다. 사모님이 있고 하녀가 있지만 일은 하지 않는다. (소세키의 소설에 이런 인물은 자주 등장한다.) 도쿄에서 대학에 다니는 나는 선생님이 찾는 묘지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궁금하고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 그러나 선생님은 선뜻 자신의 과거나 생각을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그는 철학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른 세계에 속하는 사람 같다. 한 번씩 그가 던지는 말의 진의를 나는 알아차릴 수 없다. 도대체 선생님에게 어떤 일이 있었길래 이토록 거리를 두고 벽을 쌓아두는 것일까.


“아무튼 날 너무 믿으면 안 되네. 곧 후회할 테니까. 그리고 자신이 속은 앙갚음으로 잔혹한 복수를 하게 되는 법이니까.”

“그건 또 무슨 뜻이지요?”

“예전에 그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기억이 이번에는 그 사람 머리 위에 발을 올리게 하는 거라네. 나는 미래의 모욕을 받지 않기 위해 지금의 존경을 물리치고 싶은 거지.” (50쪽)


나뿐만 아니라 독자는 더욱 그가 살아온 시간을 들여다보고 싶다. 물론 이제 독자인 나는 선생님의 사연을 다 앍게 되었지만 선뜻 말하기가 어렵다. 그가 그토록 조심하며 감추고 싶었던 이야기, 그 복잡한 마음에 대해 나는 함부로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마음의 그의 것이고, 그러므로 그의 마음을 알 수 없고 설령 안다고 해도 그건 착각에 불과하니까. 그러니까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내 마음이지만 나조차 알 수 없는 것, 이랬다저랬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그릇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상대하는 사람에 따라 옅어지기도 하고 단단해지기도 하는 그런 것.


“나쁜 사람이라는 부류가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나? 세상에 그렇게 틀에 박은 듯한 나쁜 사람이 있을 리 없지. 평소에는 다들 착한 사람들이네. 다들 적어도 평범한 사람들이지. 그런데 막상 어떤 일이 닥치면 갑자기 악인으로 변하니까 무서운 거네. 그래서 방심할 수 없는 거지.” (83쪽)


그런 소세키의 진의를 단 번에 알아차리는 이는 얼마나 될까. 그렇게 보면 소설 속 선생님을 알아가고 이해하는 건 소세키를 이해하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이 소설은 선생님의 유서를 통해 그 모든 걸 알려준다. 그러나 선생님의 유서를 읽고서도 그 마음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자신과 동시에 아내를 사랑했던 친구 K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롭고 힘들었던 시간을 끝내는 결단이라고 한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은 거다. 어려운 처지에 있던 친구 K를 자신의 하숙으로 데려오면서 묘하게 발생한 삼각관계. 선의를 베푼 행동이 가져온 예상치 못한 결과에 선생님의 마음을 복잡하다. 하숙집 딸(선생님의 아내)을 향한 K의 마음을 들은 선생님의 마음, 두 마음은 충돌한다. K의 고백을 들은 후 자신의 마음을 말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나는 내 과거의 선과 악 모두를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제공할 생각이네. 하지만 아내만은 단 하사람의 예외라고 생각해주게. 나는 아내에게 아무것도 알리고 싶지 않아. 아내가 내 과거에 대해 가진 기억을 되도록 순백의 상태로 있게 해주고 싶은 것이 나의 유일한 바람이니 내가 죽은 뒤에도 아내가 살아 있는 이상은 자네에게만 털어놓은 내 비밀로 모든 것을 가슴에 묻어두게. (274쪽)


어쩌면 선생님은 마지막까지 비밀로 간직하고 싶었던 마음을 나를 만나 털어놓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음이란 그런 것이니까. 나의 모든 걸 아는 이,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는 보여줄 수 없는 그런 마음 말이다. 마음을 말하는 일, 마음을 살피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분명 내 마음인데 주변 인물이나 상황 때문에 우리는 진짜가 아닌 가짜 마음을 내보인다. 소설 속 나의 대학 졸업을 기뻐하고 기대하는 부모님에게 진짜 마음을 보여줄 수 없는 이유다. 자리 보존하고 누운 아버지를 대하는 가족의 마음도 다르지 않다.


도대체 마음이란 무엇이기에 이렇게 어렵단 말인가. 그 마음을 끝내 말하지 못하고 죽음으로 보여 준 선생님의 마음은 무엇일까. 나는 그토록 알고 싶었던 그 마음을 모르고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끝내 알지 못한 것이다. 유서를 통해 마음의 일부는 알았다고 해야 할까.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의 마음을 얻고 마음을 아는 일, 그 마음 주인인 인간을 아는 일, 평생을 살아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더 알고자 하고 닿고자 애쓰는 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소설이 좋은 소설이고 훌륭한 성장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낳은 내 과거는 인간 경험의 한 부분으로서 나 이외에 누구도 말할 수 없는 것이니 그것을 거짓 없이 써서 남기는데 내 노력은 자네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인간을 아는 일에 헛수고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네. (273쪽)


『마음』 을 읽는 동안 여러 모양의 마음을 생각한다. 그 마음속에 어지러운 내 마음이 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마음, 그 마음을 다 담고 싶고 알고 싶은 내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이 고요해지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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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7-27 1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걸 읽긴 했는데요....?! 완전완전 독서 초보 시절에 읽어서 기억이 하나도 안나네요. 그리고 그땐 소설 읽으면서 뭔가 느낄 줄 몰라서 감흥도 별로 없었던 듯. 다시 읽어보고 싶은 소설입니다! 처음 읽는 책이나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ㅋㅋㅋ

자목련 2023-07-28 09:26   좋아요 2 | URL
은오 님은 일찍 만나셨군요. 저는 이제야 읽었습니다. 소세키 소설은 뭔가 밍밍하면서도 담백한, 그런데 자꾸 중독되는 그런 맛이 있는 듯해요. 다시 읽어보는 일, 슬그머니 추천해요!
무지 덥습니다. 시원하게 보내시고요^^

blanca 2023-07-28 18: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은 저와 독서 취향이 정말 같아요...신기해요. 저도 <마음> 정말정말 좋았거든요. 별 다섯 개 완전 공감합니다.

자목련 2023-07-31 08:53   좋아요 2 | URL
마음을 읽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싶어요. 소세키의 소설이 진짜 좋구나 느끼게 된 소설이었어요!

새파랑 2023-07-28 2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세키 작품중에 마음이 가장 좋더라구요. 저는 두번 읽었습니다 ㅋ

정말 마음이란 뭘까 궁금할때가 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어느정도 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ㅋ

자목련 2023-07-31 08:54   좋아요 2 | URL
두 번 읽는 마음!
마음이 뭘까, 마음은 여전히 어렵지만 그래도 어렴풋이 알게 되는 소설이 아닌가 싶어요^^

잠자냥 2023-07-31 10: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음, 진짜 좋죠. 읽고 또 읽어도 좋은 작품입니다. 제가 소설을 재독하는 경우는 드문데 소세키의 몇몇 작품은 그게 가능해요. 참 신기하죠!

자목련 2023-08-02 08:38   좋아요 0 | URL
소세키는 책장에 있는 책들만 읽고 끝내려고 했는데 <마음>은 구매하길 잘 했다고 생각해요. 더 욕심이 나지만 남은 3권만 읽고 참으려고요. ㅎ

그레이스 2023-07-31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좋았던 작품입니다.
서로의 마음을 알것만 같은 순간이 있고, 도무지 모르겠는 순간이 있죠.
동일한 죄의식과 회환을 안고 있는 두사람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전달되는게 마음이란 생각도!

자목련 2023-08-02 08:38   좋아요 0 | URL
아, 마음이 이렇게 어려운 건가 생각했어요. ㅎ
같은 마음이라고 여겼던 마음도 한 순간 다르게 흘러가는 게 마음이구나 싶고요!
 
소름이 돋는다 - 사랑스러운 겁쟁이들을 위한 호러 예찬
배예람 지음 / 참새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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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적끈적한 여름, 서늘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바야흐로 공포를 소비하는 시대가 되었다. 일상 곳곳에 도사리는 공포를 피하는 대신 그걸 즐기며 소화한다. 공포, 스릴러, 호러는 더위를 날리는 여름에 국한된 장르가 아니라 인기 장르가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호러 에세이 『소름이 돋는다』는 기발하고 신선하다. 어린 시절 귀신을 본 경험이나 담력 공포 체험은 익숙하다. 귀신의 실체 유무를 확인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도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고 할까.


호러를 좋아하는 겁쟁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배예람의 『소름이 돋는다』는 밤마다 소파에 앉아 있는 귀신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영화, 책, 게임을 통해 공포와 호러를 일상과 접목시켜 들려준다. 귀신을 본 어린아이는 귀신이 무섭지 않아서 가만히 옆에 앉아보았다고 한다. 귀신을 보고도 동요하지 않은 어린아이가 결국엔 이런 에세이까지 쓰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여름이면 생각나는 TV 드라마 <전설의 고향> 속 귀신이나 흥행 소재로 등장한 좀비, 괴물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입체적으로 살아나지만 그 이야기의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귀신의 경우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은 영혼이 많고 좀비는 영생을 꿈꾸며 부활을 준비하는 인간이라 할 수 있다. 대표로 괴물이라 칭하는 존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확인물체가 아닐까.


저자가 소개하는 작품은 대부분 모르는 것이 많지만 귀신에 대한 생각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아랑 설화를 시작으로 영화 <아랑>과 드라마 <아랑 사또전>으로 이어지는 글은 처녀 귀신을 통해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잘 그려낸다. 억울했던 사연의 주인공에서 서로의 문제를 해결하고 공감하고 연대하는 것으로 시대에 따른 인식의 변화를 설명한다.


귀신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는 것은 곧 현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는 뜻이다. 귀신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들이 결국 현실의 부조리함에 대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억압과 차별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귀신의 이야기는 곧 사회적 약자, 소수자 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이야기가 단순한 재미를 뛰어넘어 설명할 수 없는 쓸쓸함과 슬픔을 안겨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73쪽)


괴물을 현실 밀착형(돌연변이, 인간의 욕심으로 등장하는 괴물), 의심 유발형(어느 순간 괴물로 변하는 인간) 코스믹 호러형(인간이 대적할 수 없는 존재)로 분류하여 설명해 주는 부분은 나처럼 호러와 공포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이에게도 흥미롭고 유익하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으니까.


공포의 소재로 등장하는 집, 우주, 물을 소재로 한 영화는 직접 보지 않아도 공포를 어떻게 다루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꿈이었던 우주여행이 현실이 되었지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의심할 수밖에 없는 우주는 공포의 공간이라는 것, 더 이상 가장 안전한 곳이 아닌 집, 이렇게 쓰고 베란다 창고 속에서 뭔가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살짝 무섭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무서운 건 바로 사람이라는 사실이 안타깝다. 스치고 지나는 사람들, 인사를 나누는 이웃들, 친근한 공간에서 그들이 때로 무서운 존재로 돌변하는 일은 뉴스 속에서만 등장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층간 소음, 주차 문제, 헤어진 연인이 스토커가 되어 괴롭히는 일. 사소하고 민감한 것 같지만 걷잡을 수 없는 공포로 돌변하는 일. 우리 일상을 둘러싸고 있는 공포다.


이상적이라는 건 알지만, 나는 그 모든 범죄와 사건이 그저 괴담으로 남을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 세상에서,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모두가 안전한 가운데 괴담을 읽으며 소름이 돋는 감각을 즐기고 싶다. (165쪽)


책을 읽으면서 귀신들의 눈에만 보이는 호텔 이야기 <호텔 델루나>,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시키는 좀비를 만나는 김중혁의 소설 <좀비들>, 최근 가장 즐겁게 시청하는 <악귀>가 떠올랐다. 호러를 좋아한다면, 괴담 게시판을 찾는 이라면 『소름이 돋는다』 란 친절한 호러 안내서가 더욱 반가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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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7-26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사람이 제일 무서운 현실. 밤에 그것이 알고싶다 본 날엔 발을 이불 밖으로 못 내밀고 잡니다....😥

자목련 2023-07-27 10:50   좋아요 0 | URL
요즘 뉴스에 나오는 사건, 너무 무서워요. 독극물이 든 우편물, 묻지마 살인, 예고 살인.
그럼에도 의지하고 사랑할 존재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믿고 희망하는 삶...

잠자냥 2023-07-31 1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언젠가 자전거 여행 중 시간 계산을 잘못해서 해가 지고 나서 어두운 길을 달려야만 했던 때가 있었는데요. 귀신은 차라리 낫다, 제발 사람만 나오지 마라 하면서 페달을 열심히 밟았던 기억이 납니다. ㅎㅎㅎ

자목련 2023-08-03 17:42   좋아요 0 | URL
어둡고 낯선 곳에서는 사람이 더 무서울 것 같아요. 사람 무서운 뉴스는 그만 보고 싶은 날들이에요,ㅠ,ㅠ

은오 2023-08-04 00:10   좋아요 0 | URL
잠자냥님.. 자전거 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