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패밀리
고종석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진 시대를 살고 있지만 혈연에 대한 애정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가까운 친구나 주변에 입양을 했거나 재혼을 한 경우가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가족 구성원의 조건이 있다면 최우선은 무엇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한 공간에서 함께 살고 가족이란 제도에 속한 구성원을 모을 수 있다면 말이다. 배우자가 아닌 가족에 대해서다.  고종석의 『해피 패밀리』는 그런 걸 묻는 것 같기도 하다.

 

 한 부모 밑에서 자란 형제들도 성장하면서 가족보다는 자신을 중심으로 생활한다. 당연한 일이다. 직업을 갖거나 결혼을 하면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고 본가를 찾는다. 그러나 소설 속 한민형처럼 부모를 가족의 울타리 밖으로 밀어내고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 분명한 건 그럴만한 계기가 있다는 것이다. 한 씨 집안에서도 금기가 된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부모와 아들은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다. 그 사건이 무엇일까,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궁금했다. 저마다의 시선으로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소설은 그것을 수수께끼처럼 던져놓는다.

 

 출판사를 하는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 4남매가 있다. 첫 번째 화자는 집안의 아들인 한민형이다. 낙하산으로 아버지의 출판사에 다닌다. 성실한 사람은 아니지만 직원들에게 나쁜 소리를 듣지는 않는다. 아버지와의 관계는 사장과 직원일 뿐이다.  자신이 부모에게 되돌릴 수 없는 죄를 지었다는 걸 알지만 그에게 부모는 가식덩어리로 존재한다. 특히 막내 여동생 영미를 입양한 어머니는 참을 수 없다. 가장 친한 친구의 딸을 입양했지만 결코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어머니의 지독한 위선에 한민형을 치를 떤다. 한민형은 가족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까. 소설 곳곳에서 죽은 한민희와 관련된 일이라는 걸 알려주면서도 정작 그 이유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아니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글을 쓰든 안 쓰든 나는 위선자다. 나는 그걸 안다. 내 가족에 대해서도, 내 술친구에 대해서도, 세계에 대해서도 나는 위선자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나는 위선자다.’ (한민형, 26쪽)

 

 부모는 부모의 입장으로 자식은 자식의 입장으로 상대에게 서운함을 토로한다. 아들의 생일에도 함께 밥 한 끼 먹지 못하는 시어머니가 며느리 서현주에게 전화를 걸어 마음을 털어놓는 부분은 묘한 감정을 발생시킨다. 한 씨 가족은 서현주에게로 통하는 것처럼 보인다. 죽은 한민희의 친구였던 서현주가 며느리로 들어오면서 그나마 한 씨 가족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장모를 부모 그 이상으로 여기며 살고 있어서 서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한민형에게 가족은 아내와 장모, 그리고 딸이 전부다. 남편과 시댁 사이를 조율하는 서현주, 그의 위선은 정녕 옳다.

 

 ‘내 위선은 지혜로운 위선이다. 가족들 사이에 평화를 만들어내는 위선. 가족들 사이에 사랑을 만들어내는 위선. 비록 그 평화가 당장이라도 바스러질 듯 위태위태한 것이고, 그 사랑이 보기에만 아름다운 치장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서현주, 82쪽)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가족 구성원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들려주는 건 마치 고해성사를 하는 것만 같다. 그러니까 공통된 비밀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가족. 비밀이라는 독을 품었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 과연 그들은 서로를 해피 패밀리라 부를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질문을 던지고, 통찰의 시선으로 세상을 말한다. 은밀하게 아름다운 산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년의 시간은 왜 이리 빠르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분명 수술 후 회복의 시간을 견디던 1월에는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흐르고 있었는데 말이다. 2016년을 채운 365일 가운데 5개월이 지났다. 곧 6월이다. 여름의 한가운데에 놓인 날들이 시작될 것이다. 눈앞에 놓인 달력을 보니 오늘은 월요일. 저마다 다른 이름의 요일들이 내게는 모두 같은 이름의 요일로 다가오는 일상을 산다. 그러다 이런 시를 읽으며 어제는 일요일이었구나 생각한다. 어떤 시는 과거를 불러오고 어떤 시는 현재를 마주 보게 만든다. 박은정의 시는 과거와 현재의 경계점에 서 있는 듯하다. 그러니까 어떤 시는 길을 잃고 헤매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누군가를 보여주고 어떤 시는 현재를 부정하고 과거에 매달리는 누군가를 떠올린다.

 

 

 일요일의 미로

 

 일요일, 손을 내밀어도 잡히지 않는 손, 발목이 비틀린 짐

승이 낮게 뒹굴었다 너의 머리 위를 지나는 구름을 기억하

렴 풀무치들과 죽은 해바라기까지,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것 같아, 우리는 걸었다 그쪽으로, 빛이 멀어지고 키 큰 나

무들이 두서없이 흔들렸다 혀를 말고 잠이 든 까마귀와 밤

사이 불어난 이끼들,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어 일

요일은 계속 걸었다 지겨운 짐승들의 울음이 위안이 될 때

까지, 오늘의 운세는 북쪽을 피하라 이곳은 어디에도 없는

곳이야 우리는 일요일처럼 설핏 웃었다 긴 밤이 덮쳤다 돌

아보아도 돌아갈 수 없는 어둠만 되풀이되는, 그럴수록 귓

바퀴를 돌던 물소리는 얼마나 환하게 반짝였던가 나가는 길

을 찾을 수 있을까 흔적만 남은 풍경이 너의 다리가 될 때까

지 그쪽으로, 일요일은 걷고 또 걸었다  (63쪽)

 

 

 창밖으로 쌓인 눈이 녹고 있는 산 중턱을 바라보던 지난 겨울의 시간과 지금의 시간을 더듬어 본다. 시간이라는 미로에 갇혀 요일의 이름을 잊고 사는 이들의 건조한 시선을 좇는다. 일요일 다음의 월요일을 향해 걷는다고 믿었던 시간도 존재했을 터. 여전히 시간이라는 미로 속에서 반복해서 걷고 또 걷는 놀이를 즐기는 이는 없다. 미로를 좋아하는 건 어른이 아니라 아이들. 아이들은 출구가 존재한다는 걸 믿기 때문이고 어른들은 그 출구를 끝내 찾을 수 없다고 단정하고 포기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아이였던 어른이 시간 속에 믿음은 사라졌다는 게 서글픈 현실이다. 그러니 계절이 바뀌는 일들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신비로움이 아니라 반복된 삶일 뿐이다.

 

 

 긴 겨울

 

 

 겨울이 지겨울 때마다 그 짓을 했다 길고 나른하게 서로의

몸을 껴안으며 둘 중 하나는 죽기를 바라듯 그럴 때마다 살

아 있다는 게 징글징글해져 눈이 길게 찢어졌다 사랑이 없

는 밤의 짙고 고요한 계절처럼 이 반복된 허기가 기나긴 겨

울을 연장시켰을까.

 

 네 손바닥에 모르는 주소를 쓰고 겨울의 조난자들처럼  방

을 찾던 저녁이었지 방은 아담했고 누런 벽지의 무늬와 흐

린 불빛이 섞여 흐르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언 몸을 녹이자

너는 더운 입김을 내뿜으며 웃었고 나는 네 얼굴을 핥는다

자꾸 잠이 오는데 괜찮을까

 

 흔들리는 벽지 아래 서로의 손목을 쥐여주면 꽤 멋진 연인

이 되었다 우리는 가짜와 진짜처럼 정말 닮았구나 시린 외

풍이 불어와 겹겹의 바닥으로 쌓이는 밤 이불을 덮는 지루

함도 없이 이 겨울을 나자 궁색하게 남은 목숨의 자국이나

껴안으며 가까워질수록 사라지는 표정처럼 지겨워 지겨워

태어난다는 건 무엇일까 나는 울고 있었을 뿐인데  (90쪽)

 

 

 그 겨울에 다녀간 선배 언니는 겨울이 길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말을 하는 언니의 모습은 마치 자신이 겨울인 양 보였다. 모든 요일을 같은 이름의 요일로 살고 있는 나는 언니의 말에서 겨울이 따뜻한 계절이란 걸 발견했다. 그 뒤로 나는 주문처럼 겨울이 길었도 괜찮겠다고 중얼거렸다. 겨울은 서로를 끌어당기는 계절, 혼자가 아닌 둘이 될 수 있는 계절이었다. 긴 겨울이 사라진 뒤 봄이 찾아오면 겨울은 얼마나 슬플까. 봄이 되면 조금은 이상한 방식으로 포근했던 겨울의 온기를 잊고 살겠지. 다시 추워진다는 일기 예보와는 상관없이 거실에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도 긴 겨울을 통과하는 걸 아쉬워하는 것만 같다. 하나의 계절을 통과한다는 건 성장한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겨울과 봄이 지났고 여름을 맞는 지금, 나는 조금이라도 성장했을까?

 

 

 대화의 방법

 

 평생 인형의 얼굴을 파먹으며

 배고픔을 달래는 아이

 네가 누구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내 이빨은 단단해졌다

 말을 해도 말이 하고 싶어

 죽을 때까지 자신의 살을 꼬집으며

 되물어보던 허기처럼

 형광등은 깜빡이고

 인형은 얼굴도 없이 던져졌다

 

 오늘 이 자리,

 용기가 있다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겠지만

 모두들 처음 보는 사람처럼 앉아

 손뼉을 치며 웃는다  (14쪽)

 

 

 내 목소리로 생성된 말을 잃은 시간, 아무 목적도 없이 눈으로 시를 따라 읽는다. 아이와 인형의 대화를 들을 수 있을까, 반복해서 읽는다. 그러나 둘은 서로에게만 들리는 눈빛 언어나 복화술을 쓰는지 나는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 수가 없다. 박은정은 그런 모호함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분명 입구와 출구가 존재하지만 쉽게 찾을 수 없는 미로를 즐기는 어른이라고 할까. 그녀가 선택한 시어는 밝거나 명랑하지 않다. 일부러 잔혹한 말들을 들려주는 것 같기도 하다. 끝을 알 수 없는 길을 걷다 발견한 이정표가 오히려 길을 잃게 만드는 것처럼. 하여 누군가는 도돌이표처럼 걷다가 걷기를 포기할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자신과 닮은 시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이런 풍경을 보며 웃게 될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 포기를 한 건 아니지만 온전한 웃음을 발견한 것도 아니다. 여전히 모두가 같은 이름의 요일들을 살고 있다.

 

 

 풍경

 

 

 아무것도 아닌 것이

 풍경이 되는 일은 아름답다

 회복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기도처럼

 

 가방을 열면

 너의 손이 담겨 있지

 의미도 무의미도 없이

 피어나는 꽃으로

 

 이상한 유언을 쓰다가

 부끄러워 살고 싶어질 때

 

 경계도 없이

 투명한 공중으로 던져올리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나는 왜 여기에 없고

 너는 왜 여기에 있는가

 

 고통스러운 두 사람을 본다

 

 내가 만지는 네가

 웃고 있는 풍경  (46~4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석 천 개의 유혹 - 욕망이 만든 뜻밖의 세계사
에이자 레이든 지음, 이가영 옮김 / 다른 / 201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욕망은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떠오르는 생각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싶다. 남들이 지닌 물건에 대한 욕심, 나는 왜 갖지 못했을까, 그들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갖고 싶은 마음. 그것을 소유하지 않았을 때 불행하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뇌. 『보석 천 개의 유혹 』을 읽으면서 나는 잠깐 가진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서랍에서 잠자는 다이아 반지, 목에 걸린 평범한 목걸이, 나중에 하나쯤 갖고 싶은 우아한 진주 반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고대사와 물리학을 전공하고 보석 디자이너이자 제작자인 저자 에이자 레이든은 독자가 이런 생각을 하기를 바라지 않았겠지만 나는 그랬다.

 

 책의 본문에 등장하는 보석은(사진, 그림) 정말 매혹적이다.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누군가는 사람을 속이고 심지어 사람을 죽이기도 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분쟁이 생겼다. 아름다운 보석에 숨겨진 역사라니, 얼마나 흥미로운가. 그렇다면 왜 보석일까. 인간의 욕망과 가장 많은 연결고리를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욕망도 누군가의 마케팅이라면 어떨까? 안타깝게도 그렇다. 다이아몬드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건 바로 드비어스였다. 대중에게 환상을 심어주고 영화 속 여배우에게 다이아몬드를 제공했다. 그저 광고에 불과하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의 뇌는 약혼, 결혼반지는 반드시 드비어스로 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보석의 가치는 결국 인간의 욕망이 만든 것이다.

 

 책은 이처럼 보석을 소재로 인간의 욕망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그러나 보석 전체를 다루는 게 아니라 다이아몬드, 에메랄드, 진주, 황금달걀과 역사 속 에피소드를 접목해 들려줄 뿐이다. 프랑스 혁명과 마리 앙투아네트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과 진주,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와 파베르제의 황금 달걀을 통해 보석의 상징적 의미를 보여준다. 거기다 양식진주 개발이 불러온 일본의 성장과 손목시계의 가치 변천사까지 들려준다. 저자는 보석이 정치적 수단이었고 권력의 상징임을 설명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여러 면에서 마케팅의 귀재라 할 만했다. 여왕이 판 물건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진주가 엘리자베스 여왕을 대표하게 된 것은 단지 여왕이 진주를 무척 많이 가지고 있었고 항상 몸에 둘렀기 때문은 아니었다. 엘리자베스는 일부러 진주와 진주가 연상시키는 모든 덕목을 자신과 결부시켰고, 진주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가장 핵심적인 통치 도구였던 거대한 상징화 작업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였다.’ (258~259쪽)

 

 저자는 보석을 통해 세계사를 들려준다. 색다른 시선이다. 그래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단순하게 보석과 세계사에 얽힌 에피소드가 아니라 보석을 통한 인간의 욕망과 경제학, 심리학을 두루 다룬다고 봐도 좋다. 그러니까 이 책은 누군가에게는 아주 흥미로운 역사서이고 누군가에는 물건의 가치, 광고, 가격을 매기는 경제학처럼 다가올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그저 아름다운 보석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읽든 우리는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은 바로 욕망이다.

 

 ‘진짜 ‘보석’은 땅속이나 실험실이 아닌 인간의 마음속에서 태어난다. 보석은 힘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보석의 힘으로 세상이 바뀌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보석은 그저 물건일 뿐이다. 보석은 우리를 살릴 수도 없고 죽일 수도 없으며 무언가를 만들지도 상상해내지도 못한다. 보석이 지닌 단 한 가지 본질이자 목적은 상을 맺고 다시 반사하는 것이다. 보석의 반짝이는 표면과 마찬가지로 보석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뿐이다. 바로 우리의 욕망을 반사해 다시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것이다. ’ (44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난주 월요일 친하게 지내는 언니의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았다. 한 시간 후에 온다는 것이다. 나는 언니에게 얼마의 시간이 허락되었는지 물었고 수목원에 가자고 제안했다. 작약이 피었을 것이고 나는 작약을 봐야 한다고. 커피와 빵을 먹으며 볼 일을 본 후 우리는 수목원으로 향했다. 수목원에 도착해서야 얼마 전 언니가 수목원에 다녀갔다는 걸 알았다. 작약을 좋아하는 내가 작약을 보고 싶어 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흔쾌히 수락한 것이다. 좋아하는 곳을 자주 찾는 걸 즐기는 나와는 달리 언니에게는 수목원을 찾을 이유가 없었을 텐데, 고마운 일이다.

 

 주차장에 관광버스가 많았다. 모자를 쓴 방문객과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보였다. 5월 중순의 수목원은 말 그대로 초록의 공간이었다. 제법 뜨거운 햇볕도 우리는 막을 수 없었다. 오로지 작약을 향한 전진, 작게 조성된 작약은 내게 기쁨을 안겨주었고 나는 그곳에서 내내 즐거웠다. 아지 피지 않은 작약은 봉오리도 예뻤다. 그곳의 풍경을, 그곳의 공기를 한 줌 가져오고 싶을 정도였다. 붉게 물든 얼굴과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비가 내리는 아침, 그 작약은 꽃잎을 떨구었을지도 모르겠다. 뜨거웠던 날들을 식혀주려고 꽃을 쉬게 하려고 비가 내리는지도 모르겠다. 작약을 떠올리면 유희경의 시집 『오늘 아침 단어』이 함께 온다.

 

 

 

  네가 심었다던 작약이 밤을 타고 굼실거리며 피어

나, 그게 언제 피는 꽃인지도 모르면서 이제 여름이

라 생각하고, 네게 마당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서

그게 아니면, 화분에다 심었는지 그 화분이 어떻게

허연빛을 떨어뜨리는지 아는 것도 없으면서 네가 심

은 작약이 어둠을 끌고 와 발아래서 머리 쪽으로 다

시 코로 숨으며 번지며 입에서 피어나고, 둥근 것들

은 왜 그리 환한지 그게 아니면 지금은 어떻게 설명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지도 않으면서, 봄은 이렇게 지

나고 다시 여름이구나 몸을 벽에 붙여보는 것이다 그

러니 작약이라니 나는 그게 어떻게 생긴 꽃인지도 모

르고 나도 아니고 너는 더구나 아닌 그 식물의 이름

이 둥그렇게 떠올라 나는 네가 심었다는 그것이 몹시

궁금하고 또 그런 작약이 마냥 지겨운 건 무슨 까닭

인지 심고 두 손을 소리 내어 털었을 네가, 그 꽃이.

심었다던 작약이 징그럽게 피어

 

-「심었다던 작약」, 전문

 

 

장석남의 작약도 있다.

 

빈방에서 속눈썹 떨어진 걸 하나 줍다

또 그 언저리에선 일회용 콘택트렌즈 마른 걸 줍다

이 눈썹과 눈으로는 무엇을 보았을까

이 눈썹과 눈의 주인을 생각한다

눈물 위에 이걸 띄워서 무엇을 보았을까

 

 

작약싹 올라온다

작약꽃이 피어 세상을 보다가

떨어질 것을 생각한다

 

 

작약 겹겹 꽃잎 속에

이 눈의 주인과 내가

눈 꿈쩍꿈적하며 나눈 말을

숨겨두리라

 

 

작약,

숨겨두리라

 

-「작약」, 전문

 

 

 

 

 

 

 작약을 보러 간 수목원은 언제나 그렇듯 평온한 생기가 넘쳤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새소리, 가장 매혹적인 향기, 기다렸다는 듯 인사를 건네는 나무들, 자세히 보게 만드는 잎사귀들, 우리가 그것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작약을 보고 온 후 『슈베르트와 나무』를 주문했다. 나무를 더 가까이하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