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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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하다는 건 무엇일까? 모두 똑같다는 획일화의 뜻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무서운 말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은 폭력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평범하다는 건 ​보통의 사고로 타인과 공감하고 살아간다는 말이기도 하다. 상대의 슬픔에 마음이 아프고 성공에 질투를 느끼지만 축하해 줄 수 있는 마음 말이다. 그러나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아니, 그것을 표현하지 못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2016년 제155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무라타 사야카『편의점 인간』속 주인공 게이코도 그런 부류라 할 수 있다.

 

 서른여섯 살 게이코에서 18년째 같은 편의점에서 일한다. 대학 입학 후 시작한 일이 졸업 후까지 이어진 것이다. 직원은 아니다. 아르바이트생이다. 연애도 결혼도 하지 않았고 고향을 떠나 혼자 생활한다. 게이코는 자신의 생활에 만족한다. 편의점의 매뉴얼 대로 손님에게 인사를 하고 지정된 물건의 판매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날짜가 지났지만 상하지 않은 편의점 음식을 먹는다. 처음부터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살아갈 생각은 아니었지만 면접을 보고 직장에 나가는 일이 게이코에게는 영 맞지 않았다. 그러니까 사회 부적응자라 할 수도 있다. 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가만두지 않는다. 친구들은 왜 연애를 하지 않느냐고 편의점은 그만두고 직장을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결혼은 언제 할 건지 재촉한다.

 

 편의점에서는 일하는 멤버의 일원이라는 게 무엇보다 중요시되고, 이렇게 복잡하지도 않다. 성별도 나이도 국적도 관계없이, 같은 제복을 몸에 걸치면 모두 점원이라는 균등한 존재다. (50쪽)

 

 연애도 한 하고 결혼에 생각도 없고 아르바이트만 하면서 살면 안 되는 것일까? 그래도 된다고, 선뜻 답을 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사실 게이코가 친구를 만나는 것도 평범한 삶을 흉내 내기 위한 것이다. 친구들이 나누는 육아, 결혼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도 없고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여동생의 조언으로 예상 질문에 답변을 하는 정도일 뿐이다. 게이코는 편의점에 있을 때 가장 완벽하고 손님을 대할 때 가장 편안하다. 규칙대로 행동하면 된다. 이상한 손님을 만났을 때, 물건이 떨어졌을 때, 모두 정해진 답이 있으니까. 그러나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다. 친구와 가족조차 어려운 존재다.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들, 이상한 시선들로 힘들기만 할 뿐이다.

 

 그런데 편의점에서도 그곳의 매뉴얼을 지키지 않으면 그들의 세계에 속할 수 없다. 지각에 근무태만인 시라하 씨가 편의점에서 쫓겨나 잘 곳도 없다는 걸 알게 된 게이코는 자신의 집에서 지내도 괜찮다고 말한다. 시라하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살고 싶다. 의도하지 않았던 동거가 시작되자 게이코의 동생은 언니의 연애를 반기고 시라하에게 남자 친구, 혹은 남편의 의무를 은근히 강요한다. 시라하의 제수도 빌려 간 돈을 갚으라며 게이코를 추궁한다. 시라하와 게이코는 연인 관계가 아닌 단순 동거인일 뿐인데 세상의 시선은 그렇지 않다.

 

 자신의 자리에서 즐겁게 열심히 일하고 생활하는 이를 우리는 평범이라는 잣대로 비정상으로 분류하는지도 모른다. 정상과 비정상,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편의점에서 나왔지만 다시 편의점으로 돌아가는 게이코. 그 안에서 게이코는 가장 빛나는 것이다.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인정해야 할 시대에 『편의점 인간』은 많은 질문과 생각을 안겨준다. 우리가 속한 사회가 삶의 가치와 개인의 행복에 대해 지정하고 강요하는 건 아닐까.

 

 “이제 깨달았어요. 나는 인간인 것 이상으로 편의점 점원이에요. 인간으로서는 비뚤어져 있어도, 먹고 살 수 없어서 결국 길가에 쓰러져 죽어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내 모든 세포가 편의점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고요.”(188~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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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막에 모래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모래와 모래 사이다.

 사막에는 모래보다 모래와 모래 사이가 더 많다.

 모래와 모래 사이에 사이가 더 많아서 모래는 사막에 사는 것이다.

 오래된 일이다. (사막 - 이문재)

 

 내가 단단히 결속되어 있다고 믿는 한 사람, 당신의 마음은 어떤가요? 당신은 어떻게 느끼는지 묻고 싶습니다. 오래된 일이에요. (62~63쪽)

 

 책장을 전부 시집으로 채우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시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깊이를 잴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한다고 믿었었다. 그러나 허울뿐인 사랑은 사랑이 아님을 안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알리고 더 많이 지켜봐 주어야 하는 사랑임을 안다. 최근 SNS를 시작으로 #문단_내_성폭력에 대한 진실이 쏟아져 나왔다. 내가 소장한 시집, 밑줄 긋고 옮겨 적은 시가 있었다. 시에 대한 애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양한 시를 알고 싶었던 때, 시인이 시를 통해 말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찾고 싶었던 때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흐트러진 애정을 응집시켜야 한다. 부서진 사랑을 모아야 한다. 깨어진 사랑에 베일지라도 말이다. 안부가 슬픔을 깨운다는 김소연 시인의 시처럼.

 

 잘 지내냐는 안부는 안 듣고 싶어요. 안부가 슬픔을 깨울 테니까요. 슬픔은 또다시 나를 살아 있게 할 테니까요. (그래서 - 김소연, 72쪽)

 

 그래도 시, 시를 읽는다. 시인이 고른 시, 시인이 속삭이는 시를 듣는다. 『시시하다』는 진은영 시인이 고른 92편의 시와 함께 시인의 짧은 감상(해설)을 만날 수 있다. 좋아하는 시도 있고 처음 만나는 시도 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외국 시인의 이름도 있다. 짧은 시도 있고 아주 긴 시도 있다. 詩時하다를, 시가 있는 시간이라고 읽는다. 시가 필요한 시간, 시가 있어 좋은 시간도 괜찮겠다. 한 편의 시를 읽는 시간은 길지 않으니 잠깐의 여유 혹은 잠깐의 바람이 통하는 시간이라도 할까. 가만히 시를 읽는 동안엔 시와 하나가 될 수도 있다는 믿음이 있다. 천천히 시를 읽는 동안에는 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도 좋다.

 

 검은 옷의 사람들 밀려 나온다. 볼펜을 쥔 손으로 나는 무력하다. 순간들 박히는 이 거룩함. 점점 어두워지는 손끝으로 더듬는 글자들, 날아오르네. 어둠은 깊어가고 우리가 밤이라고 읽는 것들이 빛나갈 때. 어디로 갔는지. 그러므로 이제 누구도 믿지 않는다. (금요일 - 유희경)

 

 너무 아파서 혼자만 깨어 있는 밤, 거울을 보면 한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찡그린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게 문득 우스워지곤 했어요. 그게 위로가 되었어요. (112~113쪽)

 

 유희경의 시는 금요일에 읽지 않아도 혼자 깊은 밤을 견디는 이라면 진은영의 감상처럼 충분히 위로가 될 것이다. 무리에 속하지 않고 ​밤의 무리에 스며드는 시간, 더 이상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않겠지. 불안한 세상, 어디에서도 소소한 기쁨과 작은 위안을 얻지 못하는 우리에게 불어오는 날카롭고 시린 바람을 막아줄지도 모른다. 때로는 우연히 만난 한 편의 시가 전하는 뜨거운 온기가 오랫동안 우리를 데워주기도 하니까.

 

 마치 죽음이 끝장을 낼 수나 있는 거처럼. 마치 삶이 승리할 수나 있는 것처럼. 마치 긍지가 응수가 되는 것처럼. 마치 사랑이 원군이나 되는 것처럼. 마치 실패가 무슨 허락이나 되는 것처럼. 마치 산사나무가 무슨 예언이나 되는 것처럼. 마치 신들이 우리를 사랑이나 했던 것처럼. (마치 뭐나 되는 것처럼 - 앙드레 프레노, 182쪽)

 

 최근에는 그림과 함께 읽는 시, 사진과 함께 읽는 시, 테마가 있는 시가 많다. 어떤 시를 읽어야 할까, 어떤 시가 좋을까. 92편의 시 가운데 맴도는 시가 나는 좋은 시라 생각한다. 어딘가 기록하고 싶은 시, 좋은 이에게 이런 시가 있다고 말해주고 싶은 시. 뭔가 내 마음을 더하고 싶은 시. 그냥 끌리는 대로 읽는다. 슈퍼문의 밤이 지나고 단단한 얼음처럼 곧게 뻗은 밤, 당신의 지친 영혼에 시가 내려앉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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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6-11-15 2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인의 성폭력,성추행 사건을 접한 이후로 시집을 넘긴다는 것이 꺼림칙해졌고 괜한 결벽증?이 생겨 시집을 읽는다는 행위가 두렵단 생각이 들더군요
어서 떨쳐버려야 할텐데~~~읽을 수 있는 어떤 계기가 빨리 생기길 바랄뿐입니다^^

자목련 2016-11-16 10:34   좋아요 1 | URL
저 역시 그랬어요. 사건의 가해자인 시인의 시집을 모두 과감하게 정리했어요. 좋아했던 시인, 작가의 이름까지 거론되고 나니 이제는 여류 시인의 시집만 읽어야 하나, 생각까지 했지요.
 
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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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이고 딸이고 엄마이다. 돌아가신 엄마는 딸이라 차별하지 않았지만 할머니는 대놓고 차별을 하셨다. 귀하고 좋은 건 모두 오빠와 남동생에게 주어진 몫이었다. 대학 진학에 있어서도 할머니는 딸이라는 이유로 강력하게 만류하셨다. 물론 고집이 센 나는 내 의지대로 밀고 나갔다. 엄마는 여유로운 뒷받침을 해주지 못하는 이유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내 손으로 돈을 벌어 밥을 사 먹고 나서야 엄마가 말하지 못한 진심을 짐작하게 되었다. 학교에서나 직장에서 성차별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차별 대우를 받지 않았던 건 아닌데도 그렇다. 관심이 많지 않았고 직장에서 부당대우를 받은 기억은 없었다. 같이 어울려 다녔던 여자 동료의 덕택인지도 모른다. 잊고 있던 시절이다. 조남주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 시절이 떠오르고 여자로 산다는 게 무엇인가 생각한다.

 

 ‘김지영씨의 어머니뿐 아니라 이미 아이를 낳아 키워 본 친척들, 선배들, 친구들 중 누구도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았다. TV나 영화에는 예쁘고 귀여운 아이들만 나왔고, 어머니는 아름답다고 위대하다고만 했다.’ (150쪽)​

 

 세대가 바뀌고 세상이 급속히 변해도 일과 육아로 지친 일상은 변함이 없다. 그저 남들이 다 하는 일이라고, 엄마니까 희생해야 한다고 암묵적으로 강요하고 있었다. 모성애가 있지 않냐고, 세상에서 제일 귀한 아이를 얻었으니 감내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육아휴직을 하는 아빠가 늘고 있는 현실이지만 아빠는 여전히 육아의 주체가 아니다. 대부분의 직장에서도 여자들의 승진은 남자들에 비해 느리다. 소설 속 김지영은 그 모든 것을 경험한 여자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고 맞벌이를 하다 아이가 생겼고 출산휴가와 양육에 대해 고민하다 퇴사를 했다. 엄마로 살아가면서 자존감은 떨어지고 김지영은 종종 다른 사람이 된다. 그러니까 친정 엄마가 되거나 대학 선배가 되어 김지영을 대변하는 말들을 쏟아낸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시원스레 하지 못하고 다른 누군가의 입을 빌려 말해야 하는 소설 속 상황이 현실과 너무 닮아서 가슴이 아프다가 화가 났다.

 

 ‘남자가 1번이고, 남자가 시작이고, 남자가 먼저인 것이 그냥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 남자아이들이 먼저 줄을 서고, 먼저 이동하고, 먼저 발표하고, 먼저 숙제 검사를 받는 동안 여자아이들은 조금은 지루해하면서, 가끔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전혀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으면서 조용히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주민등록번호가 남자는 1로 시작하고 여자는 2로 시작하는 것을 그냥 그런 줄로만 알고 살 듯이.’ (46쪽)

 

 소설은 엄마이자 여자로 살아가는 수많은 김지영들의 현재 삶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하다. 그러니까 1%도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보고서라고 할까. 딸 둘을 낳고 셋째가 딸이라서 유산을 선택한 어머니 세대의 고통, 남자아이가 우선이었던 학교생활, 이중적 시선으로 여자 후배를 보던 남자 선배, 아무렇지 않게 언어폭력을 행하는 남자 동료와 상사, 지친 육아에 잠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전업주부에게 ‘맘충이’라 부르는 직장인. 사회 곳곳에서 쏟아지는 차별과 비난을 받으며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몸부림치는 엄마의 삶이 얼마나 치열한지 알기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불쑥불쑥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만 같다. 존중받아 마땅한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인 여자의 삶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왜 우리는 이런 소설을 읽고 분노하고 공감하며 적지 않은 위로를 받아야 하는가. 작가의 치밀하고 탄탄한 취재가 오히려 씁쓸하다. 이 땅에서 태어난 살고 있는 여자라면 한 번쯤 경험한 에피소드라서 우울하다.

 

 문득,‘여자라서 행복하다’던 광고 카피가 떠오른다. 여자사람으로 온전하게 행복한 이는 얼마나 될까. 세대가 다르지만 결국엔 김지영의 삶에서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네 현실. 변화를 위해서는 우선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결혼과 육아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최고의 지침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들만을 위한 소설이 아니라는 거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함께 읽고 느끼고 공감해야 할 중요한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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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운 배 - 제2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이혁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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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을 한다. 각자 주어진 시간에 주어진 업무를 하고 월급을 받거나 일당을 받는다. 그것으로 누군가는 풍족하게 살고 누군가는 겨우 살아간다. 일하는 것만으로도 축복받은 인생이라고 말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열심히 일이라 하라고 말한다. 힘들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젊으니까 괜찮다고, 훈계 비슷한 조언을 내뱉는 이들도 있다. 모두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생각이 옳다고 확신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다른 말로 기성세대, 선배로 부른다. 처음 입사한 회사에서 어떤 상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직장생활은 그 판이 달라진다. 업무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에 대한 가치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일을 해주고 월급을 받는다는 생각만 하는 건 아니니까. 일을 할수록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회사에 대한 애정도 커지기 마련이니까. 때문에 일에 대한 가치가 흔들리면 매일 고민한다. 이 일을 때려치워야 하나, 참고 다녀야 하나. 일은 생계로 이어지기에 현재의 일이 어렵고 힘들다고 쉽게 다른 일로 바꿀 수 없기에.

 

 문 기사의 고민도 그렇게 시작되었을 것이다. 배가 쓰러지니 어서 회사로 들어오라는 팀장의 전화를 받았을 때는 짐작할 수 없었다. 진수식을 마친 2002호가 누워버렸다는 게 무슨 말인지도 몰랐다. 당연히 회사에서 누운 배를 세우든지 정리하든지 잘 해결할 거라 믿었으니까. 그러나 회사의 입장은 달랐다. 모든 것이 이익으로 귀결되었다. 원칙과 기준은 무용지물이었고 아무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았다. 보험 업무를 팀장이 맞지 않았다면 회사의 지시대로 움직이며 회사와 일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소모하며 살았을 것이다.

 

 ‘사실은 사실로 판가름 나지 않았다. 사실을 판가름하는 것은 힘이었다.’ (65쪽)

 

 수직관계로 이어지는 힘의 위력을 누운 배를 통해 절감했다. 줄을 잘 서야 한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회장의 측근은 책임이 아닌 권리만 주어졌고 진짜 일을 하는 이들에게는 싫으면 나가라는 식으로 대했다. 불합리했지만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전혀 상관없는 업무를 배당하고도 알려주는 이가 없었고 실적으로 내기를 바랐다. 사장이 바뀌고 기사에서 대리로 승진을 했지만 회사에 대한 애정은 2년째 누워 있는 배처럼 멈춰 있었다. 중국이라는 배경만 다를 뿐 한국 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이 곳곳에 있었다.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은 많고 협력할 업체도 많다며 으름장을 놓고 사람들을 무시했다. 회사란 등대의 불빛은 꺼지고 있었고 그것을 알아차린 이들은 그곳을 떠났다.

 

 ‘앞서간 사람들은 각자 이정표였다. 그만큼 갔다는 것일 뿐 그곳이 끝이라는 뜻도, 그 길로만 갈 수 있다는 뜻도 아니었다. 꿈이나 이상은 인생이 주는 것, 젊음이 주는 것이다. 가능성이 사그라지고 살아갈 날보다 더 많은 과거들이 자신의 뒤로 퇴적하면 꿈은 가벼워지고 옅어지며 이윽고 공기처럼 보이지 않게 된다.’ (298쪽)

 

 누구나 그렇게 사는 거라고, 그냥 이렇게 요령을 익히고 월급을 받고 때가 되면 승진하는 거라고 말했지만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의 선택은 오직 자신에게만 있다. 젊음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소모만 강요하는 회사의 미래는 어두울 뿐이다.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고민했을 문제라는 점에서 충분한 조사와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혁진의 『누운 배』는 많은 공감을 불러온다. 생생하고 세밀하게 그려낸 소설을 읽다 보면 2002호가 누워 있는 중국의 바닷가의 현장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단순하게 직장생활의 애환이나 한국을 떠난 해외로 눈을 돌린 청년실업의 문제를 거론했다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누운 배’자체가 우리의 현재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배가 처음 누웠을 때 올바른 판단으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며 어영부영 시간을 끄는 회사의 모습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정부나 기관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배가 누울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기초를 쌓고 기본에 충실하지도 않았으면서 말이다. 

 

 ‘보이는 대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라면, 인생은 단지 요행과 허무일 따름이다. 사람들은 보이는 대로만 봤기 때문에 저 배를 썩도록 내버려뒀고 썩은 다음에야 일으켰으며 일으킨 다음에야 썩은 줄 알았다. 내 인생을 보이는 대로 볼 수는 없다. 내가 알고 있는 이치와 진실을 통해 똑똑히 들여다봐야 한다. 선택하고 결정해야 한다. 아직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을 때 그래야 한다. 나는 이미 누웠는지도 모르지만, 너무 오래 누운 것은 아닐 것이다.’ (328~329쪽)

 

 우리네 인생도 그렇다. 주어진 시간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기본을 건너뛰면 무너지고 누울 수 있다. 언제나 젊음을 유지할 수 없다. 누구나 늙고 누구나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때가 온다. 소설 속 문 대리는 서른 초반이다. 젊은 나이로 가능성의 존재다. 소모한 시간 속에 누워있지 않고 가치에 대하여 고민하고 나가는 젊음, 부럽다. 무엇이 자신의 가치를 빛내줄 것인지 아는 젊음은 아름답다. 설령 그 젊음이 조금 늦었다 할지라도. 인생은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은 것이니 지금 일어나 한발 한발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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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기호 지음, 박선경 그림 / 마음산책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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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것들에 화가 나고 정작 화를 내야 할 일에는 무기력해진다. 아니다. 사소한 것들에도 점점 화를 내지 않는다. 사소한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면서도 말이다. 잘못된 것을 수정해 달라는 요구도 하지 않는다. 바뀔 수 없다는 한계를 경험했다고 할까. 어떤 제도에 대해 혹은 어떤 관계에 대해 열정이 식은 것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변해버렸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만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일까. 그러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떠올라 화들짝 놀란다. 생각하는 대로 살고 싶어 부단히 노력하는데 자꾸만 무너지니 어떻게 해야 하나. 이기호의 짧은 소설『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속 40편의 이야기도 그랬다.

 

 심각한 사회 문제인 청년 실업을 풍자한「낮은 곳으로 임하라」속 주인공은 강원도 고향집에 같이 가자는 친구를 따라 시골에 도착한다. 맛있는 집밥을 먹여주겠다던 친구는 아버지에게 사업 자금을 부탁하며 자신의 처지가 주인공보다 낫다고 말한다. 어떻게는 취직을 하려고 발버둥 치는 자신을 백수로 전락시킨 것이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낮은 곳을 찾아 나서는 수많은 취업자가 떠올라 씁쓸하다.

 

 ‘눈높이를 낮추라는 말과 땀에서 배우라는 말, 그 말들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점점 무표정하게 변해갔고, 결국은 지금 준수가 짓고 있는 저 표정, 그것이 평상이 얼굴이 되고 말았다. 웬만해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낮은 곳으로 임하라」, 27쪽)

 

 홀로 노년을 보내는 부모 세대의 쓸쓸한 자화상인 우리에겐 일 년 누군가에겐 칠 년」은 어머니 곁을 지켜주던 개(봉순이)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아픈 몸으로 자신을 지켜준 봉순이에 대한 어머니의 마음을 누가 짐작할 수 있을까. 늘어나는 수명으로 인해 노인 복지의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주는 「봄비」도 마음이 먹먹해진다.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가 계신 요양원에서 전화를 받고 달려가면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의 잠든 곳에 계신다. 아픈 어머니의 기억에 살아 있는 아버지.

 

 공유가 아닌 소유를 원하는 개인주의의 민낯을 보여주는 아파트먼트 세르파」는 서글프다. 고층 아파트 주민을 고객으로 하는 치킨집에 배달 알바를 하는 남자는 일을 시작하면서 높은 시급의 이유를 실감한다. 배달원은 오직 계단만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나 이런 일이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닌지. 행운으로 계단을 오르기 전 엘리베이터 앞에서 주문한 주민에게 치킨을 건네며 나눈 대화처럼 우리는 하나(나)만 생각하고 사는 게 아닐까 싶다.

 

 ‘“글쎄요. 아파트에 사니까 아파트만 생각해서 그런 거 아닐까요?”’(「아파트먼트 세르파」, 143쪽)

 

 어느 날 갑자기 방을 떠나 베란다에서 생활하던 아내가 감쪽같이 사라진 「아내의 방」과 SNS에서 멋진 남자인 척 살고 있는「남편의 이중생활」은 가족이지만 속내를 알지 못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 같다.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았던 아내와 남편의 허전한 마음을 무엇으로 채우고 달랠 수 있을까.

 

 ‘베란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것은, 바로 앞 동의 아파트의 불 켜진 주방이었습니다. 그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밥을 짓는 다른 많은 아내들……. 아내 또한 그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았겠죠.’ (「아내의 방」, 49쪽)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걱정과 고민, 그리고 슬픔의 소리를 듣는 것 같아 어느 하나 그냥 넘길 수가 없다.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데 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앞으로 직진하는 게 아니라 제자리걸음이다.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빠르게 걷고 심지어는 달려가는 것 같은데 말이다. 이기호는 그런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울고 웃는 우리네 이야기를 고스란히 들려준다. 때로 함께 웃고 때로 함께 울게 만드는 따뜻하면서도 재치 넘치는 짧은 이야기. 울고 싶은데 참아야 했던 사람들에게 울어도 좋다고, 웃을 일 없는 사람들에게 한 번 웃으라고 웃음을 권한다. 그러나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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