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F가 된다
모리 히로시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먼저 이 책을 쓴 저자는 [모리 히로시]라는 일본 나고야 공대의 조교수로 재직하면서 이 책을 냈다 한다. 역시 이 소설의 주인공은 한 대학교의 건축학 교수이다. 먼저 이 책은 재밌기는 하다. 그렇지만, 소설의 플롯이라든지 주인공들에게 쏙 빠져들은 흡인력은 약하다. 가끔 추리소설이나 어떤 스릴러 소설들은 소설을 읽고 큰 의미를 던져주진 않는다. 그러한 소설들을 읽고 그 속에서 주제를 찾는 것은 어찌보면 멍청한 짓거리일 수 있다. 하지만, 소설의 기반이 인간의 가치나 인간이 추구하고자 하는 어떠한 사상위에 갖추어져 있을때는, 일반 추리소설이나, 스릴러, 심지어 SF까지도 어떠한 문학소설만큼이나 재미와 더불어 크나큰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심지어 심리적 위안거리마저도 얻을 수 있다. 이 작가를 높이 평가할 수 있는 이유는 윤리적 기반에 사고를 두고 그 위에 과학적 혹은 공학적 소재들로 차곡차곡 조립해나가는데 있다. 하지만, 반대로 그 두가지가 잘 조합되어있지 않고 후반부에 어거지 조립공정을 거친다면 그 소설은 실패한 것이 된다. 이 책이 어거지로 맞추어있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조립공정이 독자에게 큰 재미를 못주는데에 좀 실망을 했다. 한마디로 세련되게 추리적 단서들을 던져주지 않은 것에 있다. 그래서 몰입도도 떨어지는 듯 하다. 물론 번역과정에 있어서 딱딱한 번역을 했을 수도 있지만, 내가 보기엔 번역은 무난한것 같다.

하지만, 비록 몰입력에선 좀 떨어지는 부분이 있지만, 이 소설의 소재는 독특하다. <<모든 것이 F가 된다>> 가끔 이런 메세지의 역할이 소설의 반전내지, 이야기 흐름을 이끌어 가는 경우가 있지만, 이 소설의 경우 추리를 푸는데 있어서 한 가지의 열쇠가 될 뿐, F가 무엇인지 알고나서 '아 이것이었구나'하며 찬탄이 나오진 않았다. 그래도 앞서 언급했듯이 과학적 추리소설이기에 나는 이러한 열쇠나 메시지에 큰 점수를 준다. 그리고 오히려 나를 가장 매혹시켰던 재료는 바로 '감시카메라의 녹화'이다. 어떤 방안에 있는 것을 24시간 내내 녹화해놓는 과학적 방식의 오류를 찾는거야 말로 단순하면서도 과연 무얼까..독자들을 끊임없이 생각의 계곡으로 몰아넣는 그러한 소재인것 같다. 오히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열쇠인 'F'보다 더 공감을 하게되고 이 소설을 더욱 세련되게 만들었지않나 싶다. 또 하나의 이 소설의 거대한 뼈대는 바로 '밀실 살인사건'에 있다. 이러한 추리는 복고적인 추리 경향을 가지는데, 누가 사건을 저지렀느냐보다는 어떻게 사건을 저질렀느냐가 이 소설의 매력일 수도 있겠다. 이 소설의 밀실은 3중 밀실이다. 첫번째 밀실은 밀폐되어 있는 공간 혹은 방, 두번째 밀실은 그 방이 속해있는 연구센터, 마지막 세번째 밀실은 연구센터가 자리잡고 있는 섬.. 바로 이러한 공간적 특성을 가졌기에 독자들이 현실과 떨어진 상상의 그리고 환상적인 공간으로 만들어감으로써, 이 소설은 추리적 성격을 넘어서 어찌보면 SF적인 면모도 함께 내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욱 과학적 소재로 다가오지 않았나 싶기도하다.

이 소설은 분명 주제가 있다. 이 소설의 주제를 언급한다고 소설속의 추리적 성향까지 다 까발리진 않는 것이기에 주제에 관해 몇 마디 덧붙이자면, 이 소설의 주제는 '인간의 순수성과 과학의 발전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이기'이다.

인간의 편리성을 추구하기 위해 더욱 발전된 과학은 점점 시간이 흐르고 문명화되어짐에 따라 독립적이고 상호 보완적이 되어지지 않고, 점점 더 과학에 대한 의존적으로 발전되어 왔다. 인간은 과학을 이해하려고 하지만, 그 반대로 과학은 인간을 이해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과학이기에 과학은 인간을 생각하지 인간과 더불어 자연을 이루고 있는 다른 무수히 많은 생물들 입장은 더더욱 대변하지 않는다. 심지어 인간이라는 부류속의 개개인 까지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 세상에서 천재성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들에 의해 과학은 더욱 더 발전하고 인간은 더욱 더 그 영역에 종속되어만 갈 것이다. 그런데 천재성을 가진 아니, 천재라고 불리는 그러한 사람들은 과학의 본성을 가지지 아니한, 인간의 본성을 가진 그러한 인물로 이 책에서는 묘사되어진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게 있어서 과학은 하나의 이용가치일 뿐 더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따라서 이 책에 비극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 내용은 '사람들은 과학을 믿지, 인간의 순수성은 믿지 않는다'라는 것에 있겠다. 

참..이러한 주제를 소설속의 추리과정에서 찾는 다면, 그 독자는 추리소설을 그만 읽고 다른 인문서를 읽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그런지 이러한 주제를 가진 이 소설은 주인공의 회상내지 사건을 돌아보는 순간에 모든 것을 알아서 작가가 정리해주는 나름대로 친절한 면모도 가지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시 소설이다... 그런데..당연히 이 책은 소설이다. 이 책은 구차(苟且)한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글쎄... 삶이 구차하다는 말을 쓴 내가 책을 잘못 읽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역시나 삶은 구차하다. 

이 소설은 마치..거친 고난을 역경의 삶을 산 사람이 내 앞에서..앨범을 펼쳐놓고..사진 한장 한장 보여주며...이때는 이랬지...그래서 어떻게 된줄 아나?...라고...자신의 삶을 내게 회상하듯이 보여주는 것 같이 느껴졌다.

이 이야기가 보여주는 단 하나의 이야기는 인생은 새옹지마...이다. 우리의 주인공 허삼관이 피를 판 돈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개척하듯이..그의 인생은 피로써 이룩한 누차하지만..정이 있는 거룩한 삶이다. 하지만..어떤 특정한 에피소드들로 이 허삼관의 인생을 구현하다보니...허삼관의 지나온 삶이 그리 크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한권의 책으로는 좀 부족하지 않나 싶다.

소설에 나와있지 않은 허삼관의 띄엄띄엄한 인생들 사이 사이가 궁금증을 일으킨다. 비록 주인공이 허삼관이지만..이 소설은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기에 그의 가족들의 삶 또한 어느정도 제대로 다루어져있어야한다고 생각이 든다. 허삼관의 매혈(賣血)은 첫번째와 마지막번째를 제외하곤 자신을 위해 판 적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더 상세히 말한다면..첫번째 매혈 또한 호기심이었고, 마지막 매혈은 너무 나이가 들어 매혈을 거부당했기에..그는 전적으로 그 자신만을 위한 매혈은 없다고 봐야겟다.

이 책을 읽다 보면...매혈이라는 상황이 없었다면..허삼관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든다.

그의 첫번째 매혈은 호기심에 이루어졌고..그걸 통해 상당한 금액을 받았으며..결국 허옥란이라는 부인을 얻게된다. 이 허옥란은 이미 약혼자가 있었지만..허삼관이 허옥란의 아버지와의 끈질긴 설득과 회유를 통해..그리고 금전을 통해 결국 이 여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허삼관의 첫번째 보너스 인생이다. 그리고 허삼관은 자식을 낳게 되는데..일락, 이락, 삼락이라는 세명의 아들을 낳는다. 이게 바로 두번째 보너스이다.

허삼관에게 매혈은 곧 보너스이자..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단한 무기이다.

비록 삶이 구차하고 대단친 않지만... 생각해보면... 정말 부러운 인생이다.

자신이 힘들고 괴로울때마다...보너스가 주어진다면... 과연 어떨까..

이 책을 읽고...우리 스스로 보너스로 점철(點綴)된 그러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한번 생각해본다..

이 책...읽을만하다...가볍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 속의 세계 -상 - 우리는 어떻게 세계와 소통했는가
정수일 지음 / 창비 / 200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나에게 경탄과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안겨주었다. 약 1주간 이 책을 읽었는데, 읽을때마다 새로운 모험이고, 새로운 발견이었다. 또한, 이 책을 읽음으로써 우리 조상들의 실체에 조금 더 다가설 수 있음을 느끼며, 그들이 가지고 있었거나, 수용했던 여러 다양한 문화들을 제대로 세계만방에 알리지 못한 것에 애타는 감정이 솟는다.

우리가 그동안 책이나 교육을 통해 알아왔고, 본능적으로 예감했을 우리의 실체는 그동안 희뿌연 안개에 확실히 가려져 있는듯 하다. 그런 감추어져있던 실체들을 이 책을 통해 어느정도 통감하고 체감하였으나 역시 그것에 대해 더욱 더 호기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이 책에 빠져있던 기간동안 너무나 힘들었다. 결코 책이 두권으로 되어있어서가 아니다. 그리고 글이 재미없다거나 어렵게 쓰여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쉽게 빠져들 정도로 재미있으며, 내용 또한 쉬이 읽을 수 있게 되어있다. 하지만, 이 책은 너무 방대하다.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엄청난 긴 여정을 이 책과 같이 한 느낌이다. 수많은 인물들이 책 속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으며, 수많은 문물이 보물상자처럼 빽빽히 차 있다.

이 책이 주는 단 한가지 것은 '느껴라'이지 않을 까 싶다. 결코 과거 역사적 사실들을 '배워라'이거나 '습득하라'가 아니다. 단지 느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기 위해 보냈던 시간을 충분히 보상 받을 것이다. 아니 보상을 뛰어넘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말 그대로 '한국속의 세계'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지금 이 제목이 얼마나 반어적이며 그동안 알고 있다는 우리의 역사만큼이나 소박한 말인지 알 수 있다. 결코 한국속에 내재하고 있는 세계성이 아니다. 좀 지나친 말 일 수 있고 겸손하지 않은 말 일 수 있지만, 내가 느낀 바는 한국이 바로 세계이다. 좀 겸손을 부린다면, '한국 또한 세계이다'라고 바꿀 수는 있다.

우리는 세계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자리하고 있을까.. 물론 지정학적 위치로는 다들 아시다시피 동북아의 끄트머리이다. 하지만, 그 끄트머리의 땅은 여러 문화와 서로 교류하며 소통하고 있었다. 가까이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몽골. 저 멀리 나아가서는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그리고 전혀 다른 이질의 문화권인 아랍문명까지, 더 넘어간다면 로마와 그 주변의 서양까지. 우리는 육로로 그리고 해로로 수많은 이들을 만나고 대화하며 문물을 건내주고 건내받아왔던 것이다. 어찌 숨어있는 나라라 부를 수 있을까.

문화적으로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만들었으며, 세계 최고의 자기를 생산하였고, 역대 최고들 중 하나의 기행문인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세계 4대 기행문중 하나)'과 <최부>의 '표해록'(3대 중국 기행문중 하나)을 기록으로 남겼다.

또한  종교적으로는 신라시대때 받아들였던 고대 동방 기독교와 고려시대때 받아들였던 이슬람교, 그리고 각자 그들에 맞게 받아들였던, 삼국시대의 불교까지..이는 어느 한쪽만을 우대하고 배척하지 않은 우리 조상들의 관용정신과 특유의 종교문화적에 부드러운 면모를 볼 수 있다. 비록 우리 역사속에서 얼마간의 종교 배척도 있었지만, 말 그대로 그 시대에 처해있는 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면모도 있기 때문에 너무 부정적으로 볼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선사시대 때부터 일제강점시대에 이르기까지 역사, 문화, 무역, 종교등 인류가 그 동안 배출해온 모든 것들을 우리의 위치에서 소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얼핏보면 우리는 받기만 한 것 같지만, 우리는 스스로 길을 내어 문물을 전수도 하였으며, 특유의 소통문화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우리는 한 순간의 역사적 실수로 많은 부분을 상실하였고, 가리워졌지만 역사가 허구의 기록이 아닌이상 그 진실과 그 이면의 것들은 서서히 차근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지금의 우리 가슴속에도 우리 조상들이 가졌던 얼과 기술은 여전히 들어서 있으며, 우리는 그와 같은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채 세계속에서 서서히 살아나고 있다. 이 책은 이와같은 자각을 좀 더 빠르고 확실하게 보여주는데 많은 부분 도움을 줄 것이다.

과거에 있었거나 행했던 일들은 과거에만 묻혀있고, 과거속에서만 끝난것이 아님을 이 책을 보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현대나 미래의 사항을 보여주거나 예견하는 부분은 없지만, 충분히 우리의 미래를 투영시켜 볼 수 있는 시각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역사를 우리 안에서만 끌어안지 말고 확실하며 튼튼한 역사적 논리들을 찾아내 우리 역사를 지켜내는데 힘써야한다는 사실도 더불어 당부한다.



우리는 실크로드를 그들만의 길, 문화로 보아왔지만 더 이상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 것이기도 하며 그들의 것이기도 한 것이다. 앞으로 뻗어나갈 한국의 기상을 생각한다면 머지 않아 실현될 현대의 실크로드를 개척하여 다시금 조상들이 보여주었던 소통을 이끌어냄이 바람직 할 것이며 그 소통을 통해 우리의 생존을 넘어서 세계의 생존에 우리가 한 몫 한다면 또한 우리 스스로의 멋지고 독특한 문화를 다시한번 계승하고 이어나가는 것이 될 것이다.

여전한 세계 문화의 생산자로서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라이데이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로버트 하인라인 지음, 안정희 옮김 / 시공사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기 시작한지 얼마지 않아.. 난 내가 의도했던 소설의 방향이 아니라는 것을 감지했다. 이 책을 읽기 전.. 이 책의 주인공이 AP(Artificial Person : 인조인간)라는 것을 알았기에... 이 인조인간의 불완전한 정체성을 그려낼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사실.. 이 예상은 맞았다. 그런데..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결론은 이것이 아니다.

솔직히 나의 예상은 '스타워즈'에 나오는 "내가 니 애비다..." 와 같이...뒷통수를 내리치는 강렬한 느낌을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이 문장도 이젠 식상하지만 말이다. 암튼..이런식의 강렬한 통한의 한마디 정도는 남길 줄 알았다.

"내가 인조인간 이었다니... 이럴수가... 나를 이 더러운 세상에 잉태시킨 인간을 .....용서치않겠어..." 대충.. 이런 한 마디 정도는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실은 그게 아니다.  또한 '블레이드 러너'에서 나오는 <리플리컨트>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보전하려는 그들의 애절한 사투를 벌였던 것 처럼.. 이 Friday라는 인조인간 여성도 쫓고 쫓기는 처절한 삶을 살 줄 알았다. (사실...이 Friday 또한 좋은 환경에서 살진 않는다. 이 인조인간의 직업은 마피아 같은 조직의 밀사이다.)  사실.. 소설은 영화보다 더 디테일하게 묘사를 할 수 있기에, '블레이드 러너'의 [헤리슨 포드]가 "나 또한 리플리컨트인가?" 하며  상상하며...막을 내렸던 것 같이.. 끝낼 순 없다. 소설이 주는 엄청난 상상력 때문에 그와 같이 막을 내렸다가는 아마 뇌가 터질 것이다. 영화에선 애매모함이 인정되지만, 소설은 전혀 인정할 수 없다.(적어도 나는..)  그래서... 이 소설은 마지막에 회고 처리를 한 것인 지도 모르겠다. 하나..이는 중요치 않다.

하나... 내가 앞서 주저리 주저리..떠드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 SF소설은 스타워즈에서 나오는 정체성도 블레이드 러너에서 나오는 정체성과도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이 640여 페이지나 되는 이야기는 우리의 암울한 미래를 투영시킨 디스토피아에서 꽃피는 처절한 "성장소설"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며 계속 나의 뇌리에 남았던 것은.. 천진무구했던..'링컨 6-에코'나 '조던 2-델타'보다 더욱  천진무구한 'Christopher'를 느꼈기 때문이다. 참고로...'링컨 6-에코'와 '조던 2-델타'는 <마이클 베이>감독의 '아일랜드'에서 나오는 두 복제인간이다. 그리고 <Christopher>는 내가 얼마전에 읽었던...'Curious Incident in the Night-time'이란 책에서 나오는 자폐아 소년이다.

그만큼..이 소설은 SF형식의 성장소설이다. 사실 나는 400페이지나 넘게 읽는 동안 이 소설이 왜 SF소설이 되어야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단순히 인조인간이 등장해서 그런가...아니면...일부 지구인들이 정착하고 있는 정착행성들 때문인가..암튼.. 이 소설은 장르가 중요하지 않다. 초반엔 오히려.. 첩보 스릴러물(본 아이덴티티 같은)로 생각했었으니까..

그런데... 이 소설을 '성장소설'로 본다면... 이 소설은 훌륭하다. 비록 내가 원했던...SF적인 배경이 많이 등장하진 않지만, 또 이게 '하인라인'식이라고는 하지만, 암튼.. 인조인간 Friday의 끊임없는 자신에 대한 질문은 그녀를 결국 그녀가 바라는 환경으로 스스로 데려다주었다. 여기서 나오는 인조인간은 로봇과 같은 인조인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유전공학적 변칙 기술을 써서 만든 '강화인간'정도로 표현하면 맞을 듯 싶다. 건담 시리즈의 '코디네이터'라고 하는 것이 제일 나을 듯...모든 외형이 인간과 같고, 심지어 만든이 조차도 AP와 human을 구별하지 못할 정도이지만, AP는 그들만의 자격지심을 가지고 산다. 다만, Friday는 워낙 암흑가에서 활동하다 보니, 그녀 스스로 자신만만하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능력(인간보다 빨리 다닐 수 있고, 싸움을 훨씬 잘하며, 정신력 또한 강하다. 모든 것이 인간보다 낫다.)을 함부로 쓰진 않는다. 위급상황을 제외하고는.

이 책은 몇가지 사회적 이슈를 던져준다. 글로벌 기업간의 전쟁이라든지..이 부분에선 국가의 개념이 좀 희박해진다. 그리고 에너지 문제...그리고 성적인 문제.. 이 책에서 나오는 성적인 문제는 부부가 남,녀 한명씩이 아닌... 그룹으로 부부가 맺어질 수 있다는 히피 문화적 성격을 띄고 있다. 

그런데..이 책에 나오는 미래의 배경은 어떠할까... 솔직히 이 작품의 연대는 1982년이다. 그리고 2006년의 시각으로 봤을때, 지구 말고 우주에 다른 정착행성이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리 먼 과거는 아닌 것 같이 느껴졌다. 아니 오히려, 요즘 이야기라해도 크게 이상할 것도 없다. 하지만, 역시나 우주를 나갈 수 있고, 몇십광년을 짧은 시간에 갈 수 있다고 본다면..먼 미래의 일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우주를 나갈 수 있는 시대로 상상하기에는 많은 부분에서 부족함을 느끼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이 책의 결말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 아니..당연하다. 만약 직접적으로 언급했다가는 이 640여 페이지나 되는 이야기들이 시시해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 소설의 결말에 대해 이야기 안 할 수가 없다. 앞서 이 책을 '성장소설'로 한정 짓는다면..어느정도 이해는 간다. 그리고 그 속에는 충분히 로맨스와 사회성도 포함되므로, 특히 사회적 현상에 관한 한마디 교훈쯤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결론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준다는 것이다. 그럼 인조인간이 나오는 소설속에서 주는 결론이 무엇일까... 대체적으로 이런 이야기들 혹은 소설들이 주는 결론은 인조인간의 '새로운 탄생'이다. 혹은 '새로운 자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새로운 탄생'은 인조인간이 과학기술이든, 신적 계시든 어떤 것으로 인해 인간으로 새로이 탄생한다던지, 아니면, 인조인간 그 스스로의 새로운 자각으로 자신의 부류들을 새로이 볼 수 있는 눈을 갖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탄생 혹은 자각'은 '성장소설'이나 있을법한 이야기이고(그래서 성장소설일 수 있겠지만...), 미래소설, 혹은 SF소설이라 봤을 때는 마지막 이야기의 끝과 함께... 새로운 의문 혹은 궁금증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먼저...이 소설은 앞서 말했듯이...우주선을 통해...우주 이곳저곳을 옮겨 다닐 수 있는 과학기술력이 있다는 설정을 해 놓았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인조인간들은 인간과의 마찰에 매우 조심스러우며, 자신들의 정체성이 튀어 나오는 것을 꺼려한다. 하지만, 이는 지금 현대의 사회상에 비추어봤을때 나올 수 있는 현상이다. 이 책에는 '외계인'이 나오지 않는다. 생물학적으로 인간과는 전혀 본질이 다른, 그리고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외계인말이다. 이러한 외계인의 등장을 제한함으로써 이 소설은 완성되어지는 것이다. 왜.. 외계인의 등장이 없을까... <하인라인> 자신이 상상을 못했을까.. 외계인은 이 우주에 없다. 혹은 지구인이 우주를 떠돌아 다닌다해도..아직...'외계인'들과 조우할 그럴 기술력의 단계엔 아직 오지 않았다는 뜻일까? 아니면, 전지전능한 인간이 아주 미계한 외계인들을 찾아내지 못한 것일까...

물론...이 이야기속에 '외계인'이 나타난다면...이 소설은 한낱 종이쪼가리에 불과할 것이다. 이 책은 인조인간의 정체성, 인간과 다름을 한탄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모든 SF가 '스타트랙'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지구인들이 '워프'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지기 전부터 외계인이 지켜본다는 '스타트랙'의 설정은 이 소설과는 그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물론 전개방식조차도 다르다. 그럼...이 'Friday'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A.I.'와 닮아있을까? 이 'A.I.'라는 영화도 결국은 인조인간 꼬마의 이야기이다. 물론 성장소설이자 모험담으로도 충분히 통할 것이다. 내가 'A.I.'를 보고 정말 놀라웠던 순간은 이 꼬마의 모든 이야기가 끝났다 싶을때 ... 새로운 이야기의 전개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종말' 혹은 '외계인의 등장'이다. 지구의 새로운 종이 등장하며...이 꼬마와의 조우로 통해... 새로운 이야기로 끌고가며, 거의 끝부분까지 달려왔던 하나의 통일된 이야기가 완전 새롭게 변모했던것이다. SF의 특징에 더 놀라운 SF적 상상력을 더 했고..그것은 이야기속에서 충분히 발휘되었다. 그리고 이 꼬마 또한 소원을 이루며, 이것으로 이 영화가 주려는 메시지를 우리는 받게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A.I'처럼 또 다른 이야기를 끌어내진 못했다. 어찌됐든...'외계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이 인조인간은 그가 지난시절 겪었던 정체성에 대하여 극복한 일들을 통해 일생을 회고하며 웃음짓고 끝나기 때문이다.

얼마전..NFL(북미프로미식축구 리그)의 '슈퍼볼 영웅' <하인스 워드>가 내한하였다. 그리고 <노무현>대통령을 포함한 수많은 인사와 만남을 가졌다. 그의 이야기는 진정 드라마틱한 '성장소설'이다. 혼혈아의 벽을 넘고 세계의 빅 리그에서 그의 이름을 펄펄 날렸으니까.. 그런데..이는 오직 우리 사회에서만 통용된다는 점이 문제가 있다(물론 미국에서도 인종차별적인 문제 또한 가지고 있다.). 미국이 보는 <하인스 워드>의 관점에 우리 사회는 혼혈아라는 사회적 편견을 더 덧붙였으니까.. 이 'Friday'라는 소설이 이러한 식이다. "<하인스 워드>는 혼혈아라는 시각을 극복하고... 그는 슈퍼볼의 영웅으로 잘 먹고 잘 살았다..." 이런식으로 보았을때...이 <하인스 원드>가 우리 사회에 던진 질문과 이 소설이 던져주는 질문은 크게 다르지 않는다. 비록 이러한 사실 또한 우리에게 던지는 큰 질문이며, 풀어야될 숙제이지만... 끝을 너무 미화시킨 감이 없진 않다. 그래서 이 소설이 '성장소설'에만 국한되어 보이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말해 처음 이 소설이 SF일까..라는 의문이, 결국엔 처음 그 느낌대로 포장된 SF라는 답변으로 돌아온 꼴이다...

나는 이 부분이 아쉬웠다. 정말 무언가가 있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비록 인조인간이었던...우리의 'Friday'는 노후를 인간처럼 아니..인간과 인조인간을 구분짓는 세상이 아닌곳에서 편안히 보냈지만, 나는 결코 이 소설속에서 '그 후 이들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단다'라는 동화속 편집된 인생을 보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이 책을 봤을때.. 한권짜리 640여 페이지는 매우 많다라고 느꼈지만, 오히려 너무 짧았다. 무수한 에피소드들만 나열되어 있었지만..(물론 그 에피소드들이 다 연관은 되어있지만 말이다.) 충분치 않았다.

그런데..난 이 소설을 하룻만에 읽었다. 매우 재미있었다. 왜냐하면....나는 '성장소설'도 매우 좋아하고 잘 읽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커피 향기 - 어떤 기이한 음모 이야기
게르하르트 J. 레켈 지음, 김라합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개인에 따라서(정말 애매한 말...)스포일러일 수 있습니다. 책을 읽으셨거나..책을 아예 읽지 않으실 분만..보세요...
 
이 소설은 커피를 소재로 한 거대한 음모론에관한 이야기이다. 커피를 가지고 어떠한 음모론을 펼칠 수 있을까? 이 소설을 읽기전에 가졌던 짧은 의문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어보니 문화사적인 이야기들이 전반에 깔려있다. 그러니까 커피가 가지는 역사적 전통을 현대 사회를 겨냥한 음모론에 부드럽게 섞어넣었다. 여기서 부드럽다는 것은 긴박감이 흐르는 추리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커피의 주된 효과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각성제'가 가지는 효과일 것이다. 문화사적으로 봤을때(그러니까...커피가 가지는 전통적 관념에 견주어) 커피의 상반되는 음료는 '맥주'이다. 왜냐하면...이 '맥주'라는 것은 커피와는 전혀 다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들 알다시피...맥주는 알코올 음료이며, 다른말로는 '흥분제'라 말 할 수 있다.
 
커피는 인류사에 결코 빠질 수 없는 우리가 얻은 선물이다. 커피라는 것이 좋은 역할을 하던지, 못된 역할을 하던지 이제는 현대 사회에서 떼어버릴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런데 만약 커피를 마실 수 없다면?
 
이 소설의 출발점은 바로 이것이다. 물론 커피를 마시지 않고 다른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지만, 어찌됐든 커피 마시는 행위는 성인남녀라면 의례적으로 마시는 하나의 양식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그리고 이 책은 커피로 인한 습관적 중독이 만들어내는 습관적 망상으로 시작한다. (이 망상이 진실에 접근하는 하나의 수단일 수 있고, 구체적으로 혁명을 이루어내는 하나의 방편일 수 있다. 부정적으로 볼 일 만은 아니라는 뜻)
 
크리스마스를 9일 앞둔 12월 16일 독일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등지의 대형 커피 전문점에서 커피를 마신 사람들 250명이 독극물에 중독된다. 사람들은 커피 마시는 일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이 때는 독일 정부의 대개혁법안 또한 며칠 앞둔 시점이다.
 
음모론을 설정하고 그것을 풀어내려는소설속 인물은 독극물에 중독된 250명중의 한명인 한 소년의 아버지이자, 보수적 커피 로스터(커피 생두를 열을 가해 볶아내는 기계 혹은 그런 기계를 다루는 사람...그리고 여기에서 생두를 볶아낸것이 바로 원두이다.)인 한 남자이다. 그는 음모론을 다룬 영화 '컨스피러시'의 '멜 깁슨'을 연상하면 좋을 듯 하다. 그는 이 세계의 문화사의 한 위상을 차지하는 커피의 지식과 애정으로 수수께끼같은 사건에 접근한다. 그리고 방송사의 인턴기자와 함께 점차적으로 퍼즐을 맞추어간다. 커피 로스터의 집요한 추적은 결국 그가 이 사건의 범인이라는 의혹까지 불러오고 경찰에 쫒기기까지 하는데...
 
이 책의 제목...'커피 향기'는 단순히 이 소설이 커피 이야기를 풀어놓는다고 해서 달아놓은 것이 아닌 듯 하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서 설명해 주지만... 커피 향기는 바로 '계몽'을 뜻한다. 그러니까 닫혀있는 지식인의 지각을 열어놓음을 뜻한다.
 
"선동가들이 어디에서 만났겠습니까? 머리를 맑게 해 주는 커피하우스에서 만났습니다! 그 전까지는 역사가 커피하우스에서와 같은 식으로 이루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커피하우스에는 열렬한 웅변이 있고 열띤 토론이 있었어요. 커피는 밤을 낮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돌이킬 수 없게요. 사람들은 밤마다 논쟁을 벌이고 회의를 열고 계획을 짰습니다. ....(중략).... 그런 카페들은 그림자정부(프리메이슨을 가리킨다)와 이상주의자들과 혁명가들의 집합소였지요. 점점 많은 사람들이 계몽의 전당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바스티유 감옥으로 돌격하기 바로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
...(중략)...
 
"계몽의 시작을 특징짓는 것은 하나의 냄새입니다. 바로 '커피 향기'지요!"
 
p. 229 ~ 230
 
문화사에서 커피는 닫혀있는 세상들의 교류를 만들어준 매개물중 하나이다. 그리고 커피를 통한 교류는 이 세상의 시간을 좀더 빠르게 돌아가게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항상 깨어있기 때문이다. 결국 현대사회의 빠른 흐름은 커피가 가지고 있는 각성제의 효과덕을 톡톡히 보았다.
 
그래서 이 소설은 현대 사회의 병폐를 지적하는 반대급부를 설정해 놓았다. '시간 늦추기 협회'가 바로 그것인데...주인공은 이 협회에 모든 의혹을 쏟아부으며 퍼즐을 하나씩 맞추어나간다.
 
유사이래 '시간이 없다(Keine Zeit)'는 말처럼 무의미한 표현은 없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갈수록 점점 많은 동시대인들이 시간의 압박을 받고 있다. 불필요하게. 요즘 사람들은 전레 없이 긴 수명을 누리면서도 언제부터인가 여가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시간은 과연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p. 90 ~ 91 '시간 늦추기 협회'의 '동기'라는 항목 中
 
이 소설에서는 세상의 빠름에 대한 모든 이유를 커피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소설속 커피가 가지는 문화사적, 인류사적, 미시사적인 의미를 통해 현대사회의 조급함과 커피에 속박당한 이 사회를 겨냥하고 있음은 자명하다. 그래서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됨으로써 멍해져버린 사회와 의욕을 잃어버린 좀비같은 현대인들을 조롱한다. 항상 깨어있어야만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깨어있음을 당연시하고, 그래야만 사회의 구성원의 역할을 한다고 믿는 사람들. 바로 이들 사람들의 풍자를 그린다.
 
그렇다고 '커피를 마시자 말자'라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커피의 부재로 인해, 사회의 부조리를 지적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바보스러운 행위는 경계하자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 않나싶다. 그러니까 작가의 인물설정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 책의 주인공은 커피 로스터와 인턴 방송 기자이다. 비록 커피 로스터의 시각으로 커피를 풀어내고 이 사회의 병폐를 보지만 결국엔 이 로스터 자신도 스스로에게 자부심만 부여하는 인물일 뿐이다. 하나의 현상을 통해 진실에 접근하려 하지만, 결국 주인공인 커피 로스터도 커피 마시는 것을 하나의 의식같이 치르는 인물이다. 그러니까 커피 로스터는 항상 커피를 마셔대기 때문에 사물의 본질을 어느정도 침착하게 볼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고, 인턴 기자는 커피를 마시면 몸의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커피와는 담을 쌓고 있는 인물이다. 재미있는 부분이다. 커피를 마셔대는 인물과 마시지 못하는 인물은 상대적이긴 하지만 역설적으로는 항상 깨어있는 자들이다. 결국 이들이 사건을 파헤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소설은 정부의 직접적인 비판이 아닌, 깨어있다고 생각하는 현대 좀비들에게 한마디 하는 소설이다. 물론 정부도 비판의 대상이긴 하지만, 이들 정부는 바로 현대 좀비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정부의 비판은 나를 포함하여 현대적 좀비일 수 있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이런 비판을 통해야만 이 소설의 완성된 퍼즐을 보지 않을까 한다. 결국 커피 로스터의 입장에서 풀린 의혹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며, 설령 의혹을 풀었다고 해서 어떠한 해법을 발견하는 것 또한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는 소설속에서 이 사회의 현상만을 보여준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해석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채.
 
커피를 통해 세상 사람들의 의욕을 통제하려는 정부. 비록 한시적이지만 이는 정부의 역사를 통해 배운 고단수의 머리쓰기이다.(근대적 계몽과 혁명은 커피와 같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정부이기에 대개혁법안에 반대 목소리를 억제하려는 정부의 머리쓰기) 
 
갈수록 목소리가 다양해지고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겨냥한 일률적인 통제를 하기 위한.
 
그렇다면 과연 커피의 향기를 풍기는 이는 누구인가. 그러니까 계몽적인 선동을 하는 인물은 누구인가.
 
예전 역사속 인물들이 커피를 마시고 계획과 선동을 준비했다면, 이 소설은 한시적으로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함으로써, 선동과 도발을 억제하려는 정부이다. 선동을 억제하기위해 보이지 않는 선동을 이용하는.
 
웃기게도 소설속 사건과 연관된 정부 관리 또한 커피를 마시는 자이다. 그들도 항상 깨어있다.(그래서 이런 머리쓰기가 가능하다. 우리모두 좀비가 되지 말자..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