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멸종 - 페름기 말을 뒤흔든 진화사 최대의 도전 오파비니아 3
마이클 J. 벤턴 지음, 류운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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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팬층을 가지고 있는 세계적인 드라마들 중에서 'X-File'이라는 유명한 드라마가 있다. 이 드라마는 오컬트적이며, 미스터리하고, 어느면에서는 몽환적이다. 이 드라마의 수많은 에피소드들 속에서 하나의 에피소드가 생각이 난다(사실은 두 에피소드이다. 두편이 하나의 이야기이다). 그 에피소드는 '여섯번째 멸종'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지구에 기생하고 있는 인간 사회가 만약 멸종을 당한다면 이는 여섯번째의 지구 생명체의 멸종에 포함됨을 의미한다. 물론 이 드라마의 성격상 여섯번째 멸종은 '급격한 환경변화에 따른 멸종'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그 멸종은 외계로부터의 멸종이다. 또한 이 드라마의 성격상 '갑작스런 혜성 출돌에 따른 멸종'을 가리키지도 않는다. 이 드라마에 따르면 외계로부터의 원인은 바로 외계인이다.(혹시나 고개를 갸웃거리는 분이 있을 수 있기에, 좀 더 풀어쓰자면 외계로부터 날아들어온 바이러스는 곧 인간을 숙주로 삼아 인간을 지배한다. 영화 '에일리언'이나 '인베이젼'과 유사하다. ) 그리고 멀더와 스컬리는 이러한 외계로부터의 인위적, 작위적 멸종상을 직접 경험하고 막으려 안간힘을 쓴다.

이 외계인에 의해 멸종된다는 이야기가 극적(혹은 드라마적, 드라마같은)이라면, 앞서 언급한 '지구 내부적 환경 변화' 이를테면, 온난화라든지 냉각화라든지 하는 것들은 좀 더 현실적일까? 또 혜성 출동은 얼마나 현실적일까?

작년에 구매해서 오랫동안 방치해두었다가 이번에 읽은 책은 지구 생물체의 멸종이라는 어둠속에 묻혀있는 지구 생물체의 X-File을 다룬다. 이 책의 이름은 『대멸종』(마이클 J. 벤턴, 2007, 뿌리와이파리) 이다. '뿌리와이파리'라는 출판사에서 출간하고 있는 지구 생명체의 진화와 역사를 다룬 '오파비니아' 시리즈 세번째 책이다.

만약 앞으로도 멸종이 일어날 수 있다면, 또 그것이 여섯번째에 해당된다면, 머나먼 과거에 있었던 다섯 멸종은 과연 언제, 어떻게 일어난것일까? 그리고 마지막 다섯번째 멸종과는 그 시간 간격이 엄청남에도 과연 지금의 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또 우리의 인류에게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를 알아보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이 책은 위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차근차근 하나씩 그 틀을 짜나간다. 다섯번 멸종 했다면, 언제 멸종 하였나? 이 질문에 지구 역사의 시간틀을 세우고, 그 시간틀을 잡기 위해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지 알려주고, 그 기준을 왜 그렇게 잡았는지 즉, 시간의 흐름속에서 지구 격변의 과정은 어떤식으로 자취를 남겼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방아쇠(trigger)를 당겨본다. 손가락만 까닥 했을 뿐인데, 누군가 죽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의미이다. 공룡을 포함한 과거의 수많은 생명체가 그렇게 멸종당했다.

충격적인 것은 이러한 시뮬레이션은 지구에서 발생했을 법한 진행 과정에 대한 가장 세련된 추측이라는 것이다.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현상을 앞으로 있을 법한 것으로 가정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이미 발생했던 것을 현재까지 밝혀진 자료와 통계로써 미래에도 다시한번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충격적이다. 이미 양성의 질병 인자를 가지고 있으며, 지금 우리는 그 잠복기에 있다.

책 내용으로 돌아와서, 앞서 시간틀을 잡는다고 하였는데 이 의미는 다름아닌 숨겨진 시간 간격에 대한 명명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대부분을 할애하는 '페름기 말 대멸종'은 지구 역사상 다섯번의 멸종중에서 가장 참혹한 멸종이다. 그 당시 생물종의 90~95%의 멸종을 했으리라 예측한다. 참고로 혜성이 떨어져서 공룡이 멸종한 백악기 시대의 지구 생명체의 숙청은 50%정도로 보고 있다고 나와있다.

사실, 이 책은 시간틀을 잡고(왜 페름기로 명명했는지), 그때 당시의 공간을 분석한다(다른 이름이 붙여진 시기와는 지구 환경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준다. 가령 암석의 재질이나, 공기의 구성성분등을 분석하고 가장 중요한 생물의 다양성을 화석을 통해 연구하여 그 당시의 대세가 무엇인지를 상상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단순한 멸종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지질학과 고생물학의 역사 또한 설명한다. 이 부분이 쉽지는 않다. 어느정도는 전문적일 수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각각 불리우는 이름들이 쉽지 않다는데 있다.

이렇게 분석하고 연구하고 자료를 내놓음에도 사실, 대멸종의 원인은 확실히 밝혀진 것은 아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페름기 말의)대멸종이 있었다는 것을 이젠 어느정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페름기말에 있었던 격변의 현장을 인지한지도 얼마 되지 않는다. 지금 학계에서 내놓는 '대멸종'의 의견은 다양하다. 다양한 만큼 분분하다. 혜성과의 충돌부터 온난화에 이르기까지. 모든것이 개별적일수도 포괄적일수도 있다.

이책을 쓴 저자는 지구 내부의 변화를 가장 큰 이유로 보고 있다. 물론 확실히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기에 조심스러운 면도 보여준다. 혜성과의 충돌을 보는 시각에는 매우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충돌후 발생되는 이리듐의 양이 확실히 나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러 주장하는 학자들마다 그 양이 다르다. 그래서 좀 더 체계적인 접근을 하게 되는데, 그 당시 지구 남반구의 대륙의 이동과 지각변동부터, 바닷속에서 잠자고 있는 메탄가스의 배출(혹은 고체상태로 얼어있는 메탄하이드레이트의 용해)이나 이산화탄소의 증가와 같은 기후적 요인까지 모든것을 싸잡아 이 모든것이 순차적으로 혹은 복합적으로 일으남으로써 대멸종이 발생되어졌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현재 기후의 온난화에 대한 경고로 '인간 손에 의해 자행되는 여섯번째 멸종'을 우려하는 것으로 결말을 낸다.

얼마전에 '지구를 식히는 방법'에 대한 기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클릭..)

이 기사에는 몇가지 지구의 기온을 떨어뜨리려는 인위적인 실험에 대한 소개가 나와있는데, 『대멸종』에서는 반대로 이런것들이 방아쇠로 작동하여 '그 당시 대멸종'을 유발시켰다고 보면 된다.

가령, (거칠게 예를 들자면) 기사에서는 철(Fe)을 이용하여 식물성 플랑크톤을 증식하여 이산화탄소를 소비시키자는 내용이 나와있는데, 이는 반대로 어떤 방아쇠로 인하여 플랑크톤이 대량 사멸함으로써 바닷속 생태계에는 차례차례 생태 피라미드 꼭대기까지 영향을 미치며 이는 곧 바닷속 생물의 멸종으로 이어진다.(이 메카니즘도 육상의 사멸과 연계되어 있어 약간은 복잡하다). 또 기사에서 보여주는 지구를 식히는 다른 예는 '이산화유황'을 이용한 햇빛을 차단함으로써 지구를 냉각시킨다는 생각이다. 대멸종 프로그램은 이와는 반대로 이산화유황이 발생하여 지구를 냉각시켜 빙하기로 만드는가를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까 이산화황의 발생 원인은 대규모의 화산폭발이거나 혹은 혜성 충돌로 인한 지각 변동과 그에 따른 화산폭발로 보면 된다. 이는 결국 지구를 빙하기로 이끌며 해수면의 높이를 낮춤으로써 다시금 해양 생물의 멸종을 이끌어낸다. 또한 화산폭발에 따른 또 다른 작용으로 산성비를 뿌림으로써 육상 생물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까 지구 환경및 생태계 균형의 깨짐은 멸종으로 직행하는 KTX 티켓을 끊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뉴스가 나오는 것이다.(이것도 클릭)

과학 분야, 특히 고생물학이나 지질, 생물학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이『대멸종』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든다. 다만 한가지 아쉽다면, 가격이 비싸고 중간에 지루할 수도 있다는게 흠이라면 흠일 수 있겠다. 그렇지만 책속의 사족 다 떼고, 몇가지 지구의 대멸종으로 가는 빠른 길(메카니즘)만 알아두어도 괜찮을 것도 같다는 생각이다.

끝으로, 인간의 운명은 사실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여러 물리학자들이(스티븐 호킹을 포함한) 좀 더 먼 미래의 후손들의 외계 진출을 품어보지만, 현재의 우리로서는 결국 Amor Fati(아모르 파티) 뿐일수도.

 


 

<덧붙임>

1. 이 글 초반부에 'X-File'의 에피소드를 잠깐 언급했다. 이 에피소드는 7시즌의 3-4에피소드인데(아마도), 두 에피소드가 연결되어 조금 더 긴 하나의 에피소드를 이룬다.  첫 에피소드 제목은 앞서 이야기한바와 같이 'The Sixth Extinction'이고, 두번째 에피소드의 제목은 이 글 제목인 'Amor Fati'이다.

2. 이 책을 읽는다면, 역시나 '뿌리와이파리'에서 펴낸 '오파비니아' 시리즈 나머지것들도 보면 좋을 듯 하다. 현재 '리처드 포티'의『삼엽충』까지 총 네편의 책이 나와있다.
       

3. 역시나 이 책을 읽는다면, NHK 다큐멘터리 『지구 대진화』를 우리말로 해서 더빙하여 방영한 KBS의 『경이로운 지구』라는 다큐멘터러리를 보는 것이 제일 좋을 듯 싶다. 이 다큐는 현재 DVD로 판매하고 있다. 총 6개의 에피소드(2 set)로 구성되어 있다. 

예전에도 이와 관련된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혜성 충돌과 관련된 동영상이 있으므로 잠깐 맛보기로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포스팅 제목 : <인간이 가진 눈(目)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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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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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세계가 기다려왔던 영화 한 편이 개봉을 했으니, 이 영화의 이름은『스타워즈 에피소드 1 : 보이지 않는 위협 The Phantom Menace』이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이 영화 시리즈의 트레이드마크인 'A long time ago 어쩌고 저쩌고,...' 라는 영화 도입부의 자막 설명이 화면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간 후 드디어 영화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거창한 이 시리즈의 첫 관문은 바로 은하계 공화국과 무역연합의 세금(관세)과 관련된 분쟁이었다. 사실, 무역 연합은 '관세'로 위장된 분쟁을 초래하여 은하계 공화국과의 갈등을 야기시키려는 시스 로드인 '다스 시디어스'의 하위 세력이자 위장 세력이다. 아무튼 언제가 될 지 모를 먼 미래에도 분명 '관세'는 그것이 주가 되었든, 부가 되었든 각 세력간의 충분한 분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만은 틀림없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집필했던 당시나, 지금이나 무역과 교역은 세상의 이데올로기를 녹여버리는 가장 강력한 무기임에 틀림없기에 현 시대를 반영하여 이러한 소재를 차용한 것일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스타워즈라는 영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얼마 전에 읽었던,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Bad Samaritans 부키 2007』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제목에서 두가지 냄새가 풍긴다. 하나는 나쁘다라는 이미지를 풍기는 갈취 세력에 대한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사마리아인이라는 기독교적 선한 조력자의 이미지이다. 이 두가지 이미지는 서로 상반되며, 공존할 수 없는 모순을 나타낸다. 그런데 모순되지 않고 이해할 수 있는 한가지가  개념이 있는데, 비록 그들이 행한 일은 선한 듯 보이지만, 그러한 행위 이면에는 얄팍하고 계산되어진 숨겨진 나쁜 의도를 지니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겉과 속이 다르다라고 말 할 수 있을 듯 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가난한 나라에 대해서나, 자신들의 나라(선진화된 서구 세력)에 대해서나 이중의 양식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이중의 양식이란 가난한 나라와 자신들의 나라가 아주 유사한 경제적 어려움에 부딪혔다고 가정했을 때, 이 어려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내리는 처방이 극과 극에 있다는 의미이다.  선진화된 서구 세력의 보이지 않는 위협에 대한 경고는 저자의 논리적 설명에 맞추어 많은 부분 공감이 된다.

과연, 경제란 무엇일까? 경제라는 인간 고유의 행동양식에는 다양한 수식어와 정의들이 뒤따를 것이다. 그만큼 경제가 가지는 계는 이미 복잡성을 이룬 계이다. 몇가지 요인의 조정으로 최선의 경제를 꽃피우게 하는 결정론적 성향은 이미 지나간 개념이라는 것이 대다수의 경제학자들의 인식론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이러한 경제를 구축하고, 경제 자체의 변화를 야기시키는 인자(factor)들을 찾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지고 있다. 하지만, 경제를 인간 고유의 또 다른 행동양식인 정치에 대입해보면, 경제가 가지는 불확실성보다는 결정론적 경제론이 더욱 우세하고 있다는 것에대해 부인 하지 못할 것이다. 현실의 정치란 먼 미래의 긍정적 성향을 이룩하기 위해 행해지는 것이 아니고 현재나 가까운 미래에 조준된 캐치프레이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 세력에 가장 큰 힘을 쏟게 해주는 경제에 관한 목표 제시는 미시 경제보다는 거시 경제에 맞추어지며, 이는 다양하고 자잘한 욕구나 바람에 특화된 것이 아닌, 거칠고 뚜렷한 보편적 성향에 맞추어지므로, 경제는 정치의 흐름을 탄다.

그래서 복잡하고 오묘한 현재의 경제는 정치를 등에 업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저자의 견해에 공감이 간다. 현대의 정치는 이데올로기적 성향이 많이 가시긴 하였지만, 이제는 종교적, 문화적, 지역적 세를 업은 경제 블록으로 나뉘다보니, 끊임없는 조약과 그에 따른 독소조항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글로벌화된 경제 블록들끼라의 조약은 또 다시 그 블록안의 각각의 개체들과의 또 다른 조약으로 이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경제가 세분화되고 복잡해질수록, 그에 따르는 조약들도 더욱더 세밀히 검토되고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디서나 문제가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제도의 이면성'이 그것인데, 이를 쉽게 표현한다면, '꼼수'일 듯 싶다. 여러 조약들이 가지는 무서움은 바로 그것의 해석의 차이에서 보여질 수 있으며, 이것은 완벽한 논리를 지향하지는 않는다. 완벽한 듯 싶지만, 정제된 논리로 살펴보면 '시스템의 back-door'를 마련해 놓는 것과 같은 이치일 듯 싶다. 누가? 바로 선진화된 서구 국가들이다. 그들만의 강요되고 강제된 논리로 약소국을 쉽게 주무른다(컴퓨터 시스템에서는 관리자와 같은 권한을 가지며 쉽게 드나든다는 의미).

이는 자원의 독점적 성향에 가까운 개발에서도 나타나며, 여러 경제 블록, 특히, 경제적 자립도가 거의 전무한 가난한 개체(국가)나 이들이 포함된 경제 블록들과 체결한 조약서의 행간에서도 나타난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FTA에 대해서 말들이 많다. 그런데 사실 FTA와 관련된 많은 말들을 살펴보면, 중요한 것은 FTA 체결이냐 철폐냐가 아니라 이 조약에서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균형적인 조항이 있느냐 없느냐로 나뉘어질 듯 하다. 마셜 플랜이든, 대처리즘이든, 신자유주의든 이것이 표방하는 의의나 가고자 하는 방향은 어쩌면 대세일 수 있으며, 하나의 정부가 이런 경제적 이념을 뒤엎기란 쉽지 않다. 어느 나라든 국가간 정치 세력에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을 것이며, 이는 국민 개개인이 싫든 좋든 따라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다만, 좀 더 정직한 방향으로, 원활한 소통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경제 체계속에서 힘없이 쳇바퀴를 구르며 살고 있는 힘없는 개인들이 원하는 바람일 것이다.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이것을 꼭 찝는다. 가난한 나라에 대해서는 좀 더 관용적이고, 섬세한 경제 원리들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내 생각도 저자의 멋진 논리에 감화되어 정말 동감한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을 펴는 저자의 생각에 비해서 이 책은 너무 얇다. 책이 얇다는 것은 그만큼 과거와 현재의 지구적 경제 활동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을 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앞으로의 선진국이든, 개발 도상국이든, 후진국이 추구해야 할 경제 활동에 대한 비책이랄까, 대책은 너무나 희박하다. 평평한 세상보다는 기울어진 세상에 관한 세심한 관심 표명과는 달리 그 뒷 이야기는 너무나 거칠다고 분량이 적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착한 성품에 기대해보겠다니, 저자의 안목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애꿎은 책의 두께에만 성토를 하게 된다.

경제 분야는 나에겐 정말 생소한 분야이다. 이공계통이라 그런지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시스템'에 관심이 있다보니 사람이 만든 이 system이란 것이 그게 그거일 만큼 분야를 넘어서서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이쪽 경제분야도 강건한 마음을 가지지 않고서도 책을 붙잡을 수 있게 된 듯 한데, 예전에 봤던 책 한권이 떠오른다.

예전에 봤던 책, 이 책은 '제프리 D. 삭스'의 『빈곤의 종말 The End OF Poverty 21세기 북스 2006』이다. 이 책과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라는 책에는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사물이 하나 있는데, 이것은 바로 '사다리'이다. '장하준'은 가난한 국가들이 선진국처럼 도약할 수 없도록 선진국들에 의한 '사다리 걷어차기'가 자행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으며, '제프리 D. 삭스'는 극빈의 국가들이 어느정도 자립하여 먹고 살 수 있게끔 '사다리'를 올라갈 수 있는 힘을 줘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부실한 원조로는 '사다리'를 올라가기는 커녕, 사다리를 놓을 힘도 없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 두 저자에서 '사다리'는 매우 중요하게 보인다. 또한 비슷한 듯 보이지만, 조금은 차이가 있다. 앞의 사다리는 선진국 혹은 개발 도상국으로의 일보 전진을 위한 사다리라면, 뒤의 사다리는 극빈국에서 보편의 가난한 국가로 올라서게 하는 사다리라는 점이 그렇다.

이 두 사다리를 놓고 보았을때 어쩌면 우리 세계가 추구하는 경제는 진정으로 사다리를 얼마만큼 올라갔느냐 하는 단순한 지수 혹은 수치로 표현되어지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사다리 타기는 잠재되어있든 이미 보이든간에 한 국가의 역량과 관계를 맺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중요한 것은 각 개개인 그러니까 국민들의 의지와 그들이 소속된 국가의 시스템의 역량, 그리고 외부 세계(선진국)의 원활하고 관대한 조력이 서로 조화롭게 맞물려 돌아가야만 진정한 사다리를 타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

또 다른 책 한 권을 끄집어 내겠다.'장하준'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사악한 삼총사를 언급하고 있다. 이는 WTO, IMF, 세계은행이라는 세가지의 것을 말하는데, 이 글 제일 처음에 나왔던 '스타워즈'라는 영화에서 악의 축을 담당하고 있는 '다스 시디어스'의 위장 세력인 무역 연합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들 사악한 삼총사는 원조라는 도움을 통해 가난한 국가를 도우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의 싹을 짓밟고 있다고 '장하준'은 책에서 말하고 있다. 이것이 그들 삼총사의 'Phantom Menace 보이지 않는 위협'가 될 것이다. 얼마전에 이들 삼총사 이야기에 관한 책이 한권 더 나왔다. 이것은 『불경한 삼위일체 Unholy Trinity 삼인 2007』라는 책이다. '장하준'의 책에서는 이 삼총사에 대한 활약이 그리 분명치많은 않은데, 만약 이 분야에 관심과 흥미가 있는 분이라면 이 책도 참조하면 될 듯 싶다.


<덧붙임>

1. 『나쁜 사마리아인들』과 엮어서 읽을 수 있는 책들...(읽고 있거나, 읽었거나 앞으로 읽고 싶은 책들)

     

     

첫번째 책은 앞서 소개했던바와 같이 사악한 삼총사를 이야기하고 있는 『불경한 삼위일체 Unholy Trinity 삼인 2007
두번재 책 역시 이야기한바 있는 '제프리 D. 삭스'의 『빈곤의 종말 The End of Poverty 21t세기북스 2006
세번째 책은 경제의 진화를 과학적으로 풀어쓴 『부의 기원 The Origin of Wealth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
네번째 책은 신자유주의 이후 세계 도시의 빈곤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슬럼, 지구를 뒤엎다 Planet of Slums 돌베개 2007
다섯번과 여섯번째 책은『나쁜 사마리아인들』을 통해 '장하준'이 반론을 펴게 되는 계기가 된 두 책.
'토머스 L. 프리드만'의 『세계는 평평하다 The World is Flat 창해 2006』와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The Lexus And the Olive Tree 창해 2003


2. 예전에 올렸던빈곤의 종말』과 관련된 포스트 !! ('제프리 삭스' 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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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7-12-16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네요. 님의 리뷰를 읽고, 이 책을 다시 펼쳐보게 되었습니다. :)

쿼크 2007-12-17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시장미님..감사합니다...^^
 
말들의 풍경 - 고종석의 한국어 산책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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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말들의 풍경』이라는 책의 제목에서 '말'보다는 '풍경'이라는 단어가 더 와닿는다. 제목안의 '풍경'은 우리 주변에서 반사되고, 비치는 여러 말들의 정황들을 순간 호흡을 정지시켜(나에겐 놀라움이었다--이 책을 읽는 누구든 한 홉정도는 숨을 멈추었을것이다) 그 말들의 광경을 둘러보고자함을 담고있겠지만, 나는 어느 이름모를 절간의 처마아래에 매달려 바람결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정막을 깨치는 작은 쇠종(풍경)이 떠오른다. 이 작은 '쇠종'의 울림처럼 '말'들이 은은하게 퍼지면 좋으련만, 요즘의 세상은 가벼워진 말들때문에 점점 무거워져만 가는듯하다. 하긴 어느때는 안그랬겠는가.

『말들의 풍경』을 읽고 알 수 있었던게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김현'이라는 작가이고, 또 하나는 '김현'이라는 작가가『말들의 풍경』이라는 책을 훨씬 이전에 내놓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고종석'의 '말들의 풍경'은 어찌보면 선배(김현)의 말잇기를 연장하는 선에서 선배가 품었던 말의 진정을 담아 낸 것이기도 하고, 나머지 하나는 김현 시대의 '말들의 풍경'에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던, 아니 등장하지도 않았던 21세기 초입의 새로운 말들이 풍기는 품새를 첨삭한것일수도 있겠다. 뭐가 되었든 숙성된무언가를 확장한 느낌이다(사실, 김현의『말들의 풍경』은 읽어보질 않아 두 책을 비교할수는 없을 듯 하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말보다는 체계화된 글로써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인데, 이 책이 보듬고 있는 내용이 글로 표현된 말이다보니 문어와 구어의 차이가 더욱 뚜렷하다는 느낌이다. 글은 말보다 머릿속의 하나의 회로를 더 거쳐 표현되니, 깔끔과 정제로써 사고작용의 찌꺼기를 여과하지만, 말은 좀 더 날것으로 대할 수 있으므로 좀 더 순간적이고 거칠기에 사람의 본성 그 자체일 듯싶다.

말은 지극히 휘발성이라 순간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공중으로 증발되지만(물론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메아리로 울려대는 독한 말들이 있긴하다),글은 그런 말의 속성을 이기기위해 태어난 것이므로 충격이 연타로 빗발치니 말보다 더욱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소통공간이 우주의 팽창처럼 무한히 확장되고 있는 요즘, 인터넷을 하다 횡횡하는 악플들을 보면 연타성의 글의 속성과 찰라의 충격을가하는 말의 속성이 묘하게 섞여 그런지 오래전에 TV속 치약광고에 등장하던 충치를 가장한 삼지창을 든 (귀여운) 악마보다 더 악마스럽다는 생각이다. 새로운 소통의 도구인 웹이 새로운 사회질병을 키워내는 곳으로 등장하게 된것은 역시나 주고받는 정보의 속도가 내뱉는 말만큼 빨라진 것일 수도 있겠다. 고종석의 말의 풍경에서도 지적하지만, 웹이라는 소통의 공간 혹은 도구의 이면에는 역시나 그림자가 드리워져있다. 한번 더 곱씹으면, 말에서 글로, 글에서 이미지로, 다시 이미지에서 비디오로 옮겨지는 소통의 그릇이 좀 더 자극적이고, 직설적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다. 이것도 또 하나의 풍경일 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 '고종석의 한국어 산책'이다. 산책이라함은 동네 주변을, 산길을, 들길을 가벼운 차림새로 나들이 가는 것인데, 이 책속에 들어있는 한국어에 대한 정보는 그리 가볍지는 않다.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고, 헛점이라도 찾으려고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려다가도 주저앉고만다(사실, 그런 꺼리를 찾을 재주도 지식도 없지만..).공감에 동감을 넘어서 감동에까지 이른다. 도대체 무슨 책을 읽으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지. 작가가 가진 한국어에 대한 그리고 언어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오롯이 표현해내고 머리든, 가슴이든 새기게 만드는 작가의 재능에 어떤 토끼든 아침에 꼭들러 먹어야한다는 전설속의 옹달샘만큼 샘이 치솟는다.

주제와 소재가 소리로 표현되었든, 글로 표현되었든, 온갖 말들이다 보니, 말과 글을 품었던 여러 인물들을 책속에서 만나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이다. 나 또한 이 책을 읽고 그윽한 말과글에 대해 다시한번 느낀것처럼, 작가인 고종석 또한 이런 인물들을 통해 언어에 대한 그윽함과 진지함을 만났고 성장통을 앓았으며, 아픈만큼 성장했을 것이다. 이글을 읽고 재미나다고 느낀 부분이 있는데,  재밌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누군가의 말과 글은 누군가의 생이 끝남으로써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충 이런 문구로 정리될 듯 싶다. 작가가 쓴 '김현'에 대한 글에서도 '전혜린'에 대한 글에서도, '정운영'에 대한 글에서도 이런 느낌을 받았다. 예전에 '정운영'의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라는 유작을 보았을때도 이런 감정이 파고든 적이있었다.

'누군가'의 죽음으로써 그 사람의 말과 글이 더 이상 자라지도 못하고, 씨를 퍼트리지도 못하게 된다는 것. 비록 생전에 남겨놓은 글들이 어디에선가 존재하고 있겠지만, 더 이상 이런 사람들의 사고는 진행되어지지 않고, 말과 글은 생이 끝난 그 인물의 나이대에서 멈추어 있게 된다는 것.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당연한 일일테지만, 역시나 안타까움은 느껴진다. 전혜린이 그렇다. 그녀는 자살로 인해 30대 초반에서 그녀의 모습도 멈추었지만, 그녀의 생각도, 또 더 자랄수 있는 말과 글도 모든 것이 멈춘것이다. 물론 이런 느낌은 글쟁이뿐만은 아닐것이다. 가수 김광석에게서도 느꼈으니까. 아마 감성을 파는 예술인 그리고 지식을 전파하는 지식인의 죽음이 안타까운 것은 이때문일 듯 싶다.

안타까움이 큰 이유는 그 자리를 누군가 대신하지 않는다는데에 있다. 특히 요즘이 그렇다. 지나간 사람들의 자리를 오는 사람들이 채워야하는데, 요즘 우리의 말과 글은어떠한가. 정치적이라는 미명아래 수많은 글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아니 나오지도 못하고 글쟁이들의 머릿속에만 숨어있는 판국이다. 권력과 돈의 힘아래 응당 나와야 할 글들이 전혀 다른 논지의 글들로 채워져가고 있으며, 심지어 많은 사람들의 정당한 생각의 표현, 합리적인 의심조차 가동을 멈추길 바라는 부류가 있다. 말들의 풍경을 몇몇 부류가 어거지로 바꾸고 있다. 이것이 정말 무서운 말들의 풍경일 것이다. 아무것도 표현할 수 없는 말들. 정의와 용기가 살아 꿈틀대는 말들이 자취를 감춰버린 텅빈공간. 회색의 공간. 이것이 요즘들어 자주 느끼는 내가 살고 있는 사회속 말들의 요즘 풍경이다. 지금 제대로 된 말들의 풍경을 왜곡시키고 있는 글쟁이들과 정치인들도 있다. 그들은 말들의 풍경을 제한시킨다. 말들에 굴레를 덧씌우고 있다. 그들이 알아둘 것이  한가지가 있다. 그들이 죽는다면, 그들의 글과 말들 또한 사회적 오물로 처리될 것이라고.

제대로 된 말들의 풍경은 고전이든, 한국문학이든, 외국문학이든 혹은 방송이든, 신문이든, 이 세상의 일부를 품고 있는 '누군가의' 말과 글로써 지금도 스쳐 지나가는 모든 시간에 대해, 스케치북에 정당한 생각으로 붓칠되어져야 할 것이다.


 
<덧붙임>
 
1. 다음에 읽고 싶은 고종석의 책 : 『감염된 언어』



2. 이외에도 내가 읽은 책들 중에서 '언어'의 매력과 '칼럼'의 맛이 느껴지는 책들...
(물론..기고글이 아닌 것도 있을 것이다..)

    

  

첫번째는 : 리뷰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정운영의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
두번째는 : 이어령의 『축소 지향의 일본인』과 『디지로그』
세번째는 :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이자 전 카이스트 총장이었던 로버트 러플린의 『한국인, 다음 영웅을 기다려라』

3. 이밖에 언어에 관한 스티븐 핑커의 책들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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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11-08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놓고 아직 못읽은 책인데, <감염된 언어>는 강추입니다. :)
고종석의 책 절반도 못읽었지만 제일 좋았던게 <감염된 언어> 였어요.

쿼크 2007-11-08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벌써 댓글이..<말들의 풍경>은 천천히 읽을 수록 그 가치가 더해지는 책인것 같습니다. 너무 빨리 읽어버리면, 감미할 타이밍을 놓쳐버릴 듯 합니다.. 저도 <감염된 언어> 조만간 읽으려구요..그전에 스티븐 핑거의 책부터 보구요..~~
 
새의 노래 Mr. Know 세계문학 27
시배스천 폭스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내가 『새의 노래』(시배스천 폭스 | 열린책들, 2006)라는 책을 들게 된 이유는 『서부 전선 이상 없다』(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 열린책들, 2006) 라는 책 때문이다. 레마르크의 이 책을 올해 초에 읽었었다. 참호속의 어린 병사 '파울 보이머'의 눈을 통해 전쟁의 본질을 들여다 보았는데, 시종일관 건조한 문체임에도 작가가 그의 조국(독일)에 극치의 조롱을 던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시배츠천 폭스의『새의 노래』의 배경 역시 세계 제1차 대전이다. 그리고 레마르크가 그려냈던 독일의 그 서부 전선이다. 서부 전선은 프랑스 북동부를 일컫는다.『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독일군의 시각으로, 『새의 노래』는 영국군의 시각으로 이 위선으로 치장된 전쟁을 노래한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전투들속으로 두 작가(시배스천 폭스와 레마르크)가 안내하는데로 이끌렸지만, 전쟁속의 작디 작은 개인을 그린다는 점에서 ,국적이 다른 이 작가들의 이야기는 별반 다를 것이 없었지만 그 효과는 중첩되어 이른다.

잃어버린 세대.

전쟁터의 병사들은 시간이 등져버린 세대이다. 역사가 이들 세대를 기록했지만, 수많은 개인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국가가 있기전에 국민이 있지만 이미 국민, 아니 개개인의 삶은 국가에 통채로 먹혀버렸다. 특히나 총을 들고 전쟁터에 나선 이들은 더더욱. 인간이 '적'이라는 개념을 갖는 것이 얼마나 비극적인지를 『서부 전선 이상 없다』와 『새의 노래』에서는 명확히 보여준다.

1차 대전의 특징은 가스전과 참호전, 그리고 철조망이다. 참호전이 얼마나 드셌으면, 우리가 입는 코트 이름에 참호(혹은 도랑)라는 이름을 가져다 붙였겠는가. 이 코트의 이름은 '트렌치 코트'이다. '트렌치(trench)'가 바로 참호라는 뜻이다. 그리고『새의 노래』에서 알게되었지만, 땅굴도 같이 파면서 전쟁을 치루었다. 영화속에서나 문학속에서 땅굴을 크게 다루어오지는 않았지만(땅굴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해다), 어쨌든 여기서의 땅굴은 전쟁을 치루는 아군들끼리의 계통을 가르는 경계이다. 참호는 서로 다른 이념을 가르는 경계로 해석하면 되겠다.(사실, 무의미한 해석이긴 하다.) 굳이 철조망까지 언급해본다면, 이는 상대의 참호에 다다르기 위해 비용(혹은 희생)을 치러야만 하는 고지서나 다름없다. 시배스천 폭스의 이 책은 바로 '참호전'과 '땅굴전' 그리고 '철조망'에 얽힌 전쟁이다. 그리고 주로 부각되는 것이 참호와 땅굴이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에서는 철조망이 부각된다. 이 두 책에는 흥미로운 것이 하나 있는데, 『서부 전선 이상 없다』에서는 야밤(혹은 새벽)에 독일군이 철조망 치러 나가는 모습의 묘사가 잘 나타나있다. 철조망 치는 것을 끔찍이도 치기 싫어하는 어린 병사들을 주로 다룬다. 『새의 노래』에서는 영국군이 철조망을 끊어야한다는 의지를 문맥속에서 암암리에 드러낸다.

수많은 전쟁 영화가 있겠지만, 문득 생각이 나는 영화가 있다. 본지가 오래되었고, 기억도 가물가물하여 세세한 기억은 나진 않지만 분명 맞을 듯 싶다. 영화의 제목은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가을의 전설』이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잊었다. 다만, 참호를 뛰쳐나가려는 영화속 병사들의 긴장한 모습이 단편적이긴 하지만 생생하다. 수킬로미터에 걸친 참호속에서 일렬씩 정렬한 병사들이 호각 소리에 맞추어 참호밖으로 기어올라 독일군 진지로 향하는 모습은 정말 가관이었다. 죽음을 향해 뛰어드는 형국 그 자체였으니까. 그리고 이 영화속 또 하나의 인상깊은 장면은 '철조망'에 걸린 한 병사이다. 찾아보니 이 병사는 '브래드 피트'의 극중 막내 동생이었다. 동생은 거미줄에 걸린 힘없는 곤충처럼 수차례 날개짓만 하더니, 결국 철조망에 걸린채 죽음을 맞는다. 독일군의 기관총에 난사당한다. 형인 '브래드 피트'는 울면서 구하러가지도 못하고 지켜만 본다. 그래도 이 영화는 양반이었다. 『새의 노래』에서도 비슷한 장면의 묘사가 나오는데, 철조망에 걸린 병사의 형체가 조각 조각 사라지는 모습을 차근차근 순서대로 묘사해놓았다. 그것을 보고 있는 주인공인 '스티븐'(직책은 중대장)의 마음 역시 그 병사의 형체 그대로 갈갈이 찢겨진다.



-- 그림은 '가을의 전설' 中에서...
출처 : http://blog.naver.com/blueskysite?Redirect=Log&logNo=80043905038 --


국가가 전쟁을 하는 이유는 많겠지만, 그 수많은 이유들을 단 두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단순하다. 무언가를 뺏으려하거나, 무언가를 지키려하거나. 하지만 병사들에게 있어서 이 개념마저도 희박하다. 그래서 국가는 '적'을 주입시킨다. 그 다음부터는 자동이다. 왜냐하면, 알아서 상대를 향한 분노로 몸안 가득 차게 될테니까. 자신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총알을 고이 날려주어서만은 아니다. 자신의 동료가 끔찍하게 죽어가는 것을 보고, 스스로 분노를 키우는 것이다. 이름없는 병사들은 쓰러진 또다른 이름없는 병사들을 위해 자신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한가지를 아낌없이 내던진다. 그들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것은, 그들의 목숨이다.

시배스천의 이 책은 흥미롭다. 전투신에서는 그냥 빨려들어간다. 하지만, 가끔 책을 읽는데 장애를 만난다(나에게는 그랬다). 이 책은 총 세가지 부분으로 나뉘어져있는데, 전쟁전, 전쟁 당시, 그리고 전쟁이 한참 지난후의 이야기로 나누어 놓았다. 개인의 비극사를 더욱 확장시키려는 작가의 의도가 있겠지만, 나에게는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전쟁전 그 당시 프랑스 북부는 평화롭고, 다양한 색깔이 어우러졌으며, 느렸다. 그리고 전쟁후의 이 지역은 고통의 신음소리, 질척이고 칙칙한 어두운 단색, 그리고 긴박함으로 묘사하고 있다. 물론 이 두가지 차이가 극명하니 대비를 보이긴 하지만, 전쟁에 대입되어진 개인사가 솔직히 장난스럽게 느껴진 부분도 있다. 한마디로 전쟁전의 개인의 삶을 약간은 잘못 투영시키지 않았나 하는점이다. 만약 작가가 '전쟁 = 국가의 미친 선전 + 개인의 도피'라는 공식을 다루고 싶었다면, 좀 더 설득력있는 개인사를 다뤘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다(내가 잘못된 해석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또 전쟁후는 좀 더 실망이다. 잃어버린 세대의 후손을 다루었는데, 이 역시 다뤄진 개인사의 스펙트럼이 너무 좁아 몇가지 상황을  어거지로 이어붙였다는 느낌이다. 1차 세계대전을 치루었던 할아버지의 실체를 찾음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완성시키려는 한 여인의 이야기인데, 둘의 유전자 코드가 너무 닮아있다. 역사가 주는 우연과 필연, 두가지 관점에서도 너무 어설프다.

주인공 '스티븐'이 가지고 있는 '암호만들기' 특기는 그 소재가 주는 독특성과 새로운 이야기를 이끌어낼 수 있는 파워를 가졌음에도, 너무 긴 이야기를 쓰다 작가 자신이 미처 까먹고 있다가, 뒤늦게 발견하고 부랴부랴 그 '존재의 이유'를 낭비해버린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전쟁신과 작가가 의도하려는 이야기는 특별한 어긋남없이 독자에게 전달되어지는 것 같아 이것으로 만족하긴 한다. 내가 읽고 싶은 부분은 오직 전쟁신이었기에 말이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오히려 훨씬 간결한 이야기임에도 모든 것들이 충격으로 다가왔던 바, 전쟁관련 책을 읽길 원한다면 이 책부터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덧붙임>
 
1. 제1차 세계 대전을 다룬 (내가 알고있는) 몇가지 책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열린책들'에서 출간한 것으로 읽었기에 사진을 이것으로 올린다. 정말 최고의 책이다. 이 책을 읽고 1930년에 '루일스 마일 스톤'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도 봤을 정도이다. 영화 또한 수작이다. 1931년에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다한다.

『참호에서 보낸 1460일』이라는 책은 소설은 아니지만, 충분히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1차 세계대전중의 참호와 관련된 내용들을 다큐멘터리처럼 이야기한다. 참호가 단순히 땅만 판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 휴전, 큰 전쟁을 멈춘 작은 평화』, 이 책은 영국군 병사들과 독일군 병사들간의 크리스마스 휴전을 한 이야기인데, 읽어보진 않았지만 감동의 이야기라는 것을 확신한다.

2. 혹, 좀 더 색다른 전쟁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로버트 카파'의 책 두권을 권하고 싶다.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로버트 카파 | 필맥, 2006)『로버트 카파』(알레스 커쇼 | 강, 2006)이 그것이다. 정말 재밌게 읽을 것이다. (각각의 링크는 나의 독후감이다)

3.그리고 소개할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라는 책은 개인의 삶(후손을 포함한)이 어떻게 역사에 개입당하는지, 혹은 평범한 개인이 역사속에서 어떻게 필연과 우연으로 실타래를 풀어오는지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한 꼬마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긴 하지만, 현재 그 꼬마를 잉태시킨 집안의 내력은 폭력의 역사속에서 결코 나약하지 않다. 꼬마도 강한놈이다.(링크는 간단한 나의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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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 - 설득과 통합의 리더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대한민국은 사극천하이다. 주로 MBC의 '정조 이산'을 보고 있지만, '태왕 사신기' 또한 이야기의 흐름을 한치도 놓치고 싶지 않은 드라마이다. '태왕 사신기'는 비록 '광개토대왕'의 이름만 가져다 붙인 판타지물이긴 하지만 나의 말초신경을 자극해대니, 다음 이야기에 목을 멘다. 이렇게 역사에 빠진 나의 눈은 때아닌 호사를 부리고 있다. 결국 우리 역사에 관한 책 한권을 집어 들었다. 일회성 감동이 아닌, 지극한 감정을 가슴에 새겨두고 싶어서(사실 이 감정은 책을 읽고난 후의 감정이다).

그렇게 해서 읽은 책은 '이덕일'씨의 『유성룡』이다. '유성룡'이라는 이름과 관계있는 키워드가 몇개 된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충무공 이순신'장군이다. 그리고 그 뒤를 '임진왜란', '선조' 등이 잇따른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당연히 '유성룡'을 앞세우고 '선조'와 '임진왜란' 그리고 '이순신'의 순서로 정렬된다. 사실, 정렬은 의미없다. 그러나 '유성룡' 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유성룡'의 반동인물로서 '선조'를 주저없이 내놓을 것이다. 역시나 반동인물이 '왕'인 것을 보면, 유성룡의 고초가 쉽게 추론되어질 수 있을 듯 하다. '임진왜란'이라는 배경이 더욱 더 고초를 증가시킨다.

나에게 있어서 '유성룡'은 역사속의 주변인물이다. 그만큼 이 인물을 알아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나의 무지가 크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나의 탓만은 아닌것이 역사는 기득권자를 위한 기록이기도 하며, 아무리 메마른 감정으로 당시의 상황을 살폈어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역사는 그 '기득권'의 기록을 바탕으로 해석되기에(여기에서 기득권은 '선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유성룡의 반대파인 '서인'을 의미한다), 아마도 '유성룡'이 역사를 이끄는 역할에서 점점 소외된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라는 생각이다. 어느 책에서는 '선조'때만큼 쟁쟁한 신하들을 본적이 없다라고 쓰여있는데, 임진왜란이라는 전쟁 때문에 국난을 극복하려던 당시의 조정 신하들이 다른 왕들때보다 더 부각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다(이 책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 책에서 '선조'는 전쟁을 수수방관하고 자신의 일신을 위해 조선땅을 버리려했던 인물로 묘사된다. 어느정도이냐 하면, 임진왜란이 터지자마자, 그(선조)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도망이다. 가자...북쪽으로... 물리적으로 나라가 가지는 의미는 그에게 그당시 없는 듯 보인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안녕, 가족의 안녕, 그 안녕을 위해 필요한 몇몇 신하들. 오직 그뿐이다. 왕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던 그가 조선이라는 땅덩어리를 자신과 동화시키는데 실패한 인물로 그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선조' 자신이 못되어먹은 왕은 아니다. 다만, 왕이라는 옷이 그에게 맞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유성룡'은 그런 '선조'를 곁에서 보좌하며, '선조'의 요동내부(遼動內附) - 요동으로 도망가는 것 -를 막은 인물들 중에서 가장 주동 인물로 묘사된다.

이 책은 그렇게 시작한다. '선조'가 의주로 파천(播遷) - 임금이 난을 피해 도성을 떠나는 것 - 을 떠나는 장면부터 말이다. 이런 인물위주 혹은 사건위주의 서술을 하는 역사책은 시간과 공간에 있어서 표현의 한계를 보인다. 이는 당연하다. 모든것을 한권에 담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 한계를 인식하고 좀 더 포괄적인 역사를 받아들여야만, '유성룡'이나, '선조', '임진왜란'과 같은 각각의 키워드가 의미하는 특수성을 넘어, 보편적 역사 인식을 가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렇게 몇가지 생각거리를 나에게 던져주었다.

역사 자체가 인과의 서술이기에, 당시 몇 십년간의 흐름은 그 당시에 발생했다가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시간이라는 실줄과 날줄로 꼼꼼히 엮어져있다. 첫째, 왜 '선조'일까? 둘째, 왜 서인과 동인으로 나뉘어졌을까? 셋째, 왜 임진왜란이 일어났을까? 넷째, 가장 중요한 생각거리인 왜 유성룡이란 인물이 중요할까? 정도의 몇가지 질문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바로 '이덕일'의 '유성룡'이라는 책에서 보인다. 물론, 첫째와 둘째, 셋째는 크게 언급되지 않는다. 다만 흐름에 관계되어 소개만 될 뿐이다. 그래서 이순신에 대한 사항도 적절히 나와주어 이 책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듯 하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셋째와 넷째 질문일 것이다. 셋째 질문인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이유는 그 당시 조선 주변에 흐르던 국제정세와 무관치 않다. 바로 이웃인 중국과 바다건너 일본의 상황까지도 살펴야 한다. 하지만 단순히 이 책을 읽고 쓰는 감상문이기에 넷째 질문(왜 유성룡일까라는...)에 무게를 두려 한다.

이 책의 표지에는 '설득과 통합의 리더'라는 문구가 나와있다. 단순하게 '유성룡'이라는 인물을 표현한 것 같지만, 이 책을 읽고 난후, 이와 같은 일목요연함을 보여주는 문구는 더 이상 없다라는 생각이다. 여기에서 '설득'의 재료는 그가 가진 논리성과 충직성이다. 논리를 떠나 감정으로만 대하려는 '선조'와 항상 부딪히는 것을 암시한다. '선조'가 요동으로 짐싸들고 떠나려 할 때, 요동땅에 임금의 가마가 단 일보라도 벗어난다면 더 이상의 조선은 없다라며 강력하게 밀어붙인다. 선조의 자질부족과 전략적 무능을 애써 유연히 질타하는 말이기에, 이는 정유재란까지 끝난 후, 유성룡의 탄핵에 빌미를 제공한 것으로 이 책의 저자는 보고 있다. 또, '선조'가 도성을 버리고 도망다니고 있는 당시, 과감히 세자책봉을 건의함으로써 차후 '광해군'이 자발적으로 난을 적극 타개하는데 힘을 실어준다. '광해군'을 거리를 두고 있는 '선조'에게는 마땅치 않은 고변이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조정 간신배 무리들의 모함을 뒤집어쓴, '이순신'을 위해 최선의 방어를 펼친다. 만약 '유성룡'이 그 방어에 무너졌다면, '이순신' 또한 사라졌을테이고, 그 뒤의 상황은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듯 하다. 결국, 이런 설득이라는 고변들이 쌓여 '유성룡' 자신에게 칼이 되어 돌아오니, 그는 탄핵을 당하여 그의 고장으로 쫓겨갔다. 덧불어, 유성룡의 세력 약화를 안 '이순신'은 그가 살아돌아가도 못된 무리들에게 몸 성치 않을 것이란 것을 알고(더욱이 그는 가정과 가문을 이끌고 있지 않은가), 스스로 적지로 뛰어들어 생을 마감했을 거라는 작가의 추론도 물론 포함되어 있다(결국 유성룡이 파직당한 1598년 11월 19일, 이날 이순신은 노량해전에서 적의 유탄을 맞고 전사한다).

'유성룡'의 설득이 주로 왕(선조)에게 행하여졌다면, '통합'은 자신과 같은 신하들을 향한다. 통합을 이야기하려면, 다시금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동인과 서인이 있기 이전에 '사림파'가 있었다. 이 사림파는 훈구파의 대항마였으며, 이후 앞서 언급한 것 처럼 서인과 동인으로 나뉘게 되는 것이다. '유성룡'은 동인으로 자리 잡았는데, 특히 정치함에 있어서 '서인'들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그들의 의견을 들으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어떤 해석으로는 그가 우유부단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만큼 중도를 지키려고 노력하였지만, 결국 그는 이런 붕당을 이기지 못하고 탄핵되어 파직당하게 된다. 이 책에서는 그가 어려움속에서도 조선을 소신있게 이끌려는 노력을 보여주긴 하지만, 현실의 벽앞에 무기력할정도의 쓰러짐도 보인다. 그래서 '통합'을 이루려했으나 이루지 못한 아쉬움을 책속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다시 서인들의 학문적 이념을 '송시열'이 이어받게 되고 이는 곧 노론의 집권이다. 역사의 흐름이 다시금 반복된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난 후, 병자호란이 그 뒤를 이으니 말이다.

요즘 TV에서 한창인, '정조 이산'은 어찌보면 이런 결과물에 잉태된, 긴 긴 흐름속의 하나의 여울목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선조'도 물론 그러했고.

지금은 어떠한가. 과연 우리는 흐름을 바꾸었나?  


<덧붙임>
 
1. 이 책과 함께 읽어도 좋을 역사서...

        

     

먼저.. 『사도세자의 고백』과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라는 책이 있다. 저자는 역시 '이덕일'이다.  이 외에도 이 작가의 여러 책이 있지만 우선 안읽어본 분이 계시다면 이 두권을 먼저 추천한다(참..나 또한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라는 책은 읽어보질 않았다).

그밖에 '김훈'의 『칼의 노래』가 있다. 이순신의 관점에서 본 임진왜란을 그리고 있는데, 저자의 간결한 문체가 마음에 들었던 책이다. 이 책과는 반대의 관점, 즉 일본군의 눈으로 본 임진왜란(정유재란)에 관련한 책이 있다. '조두진'의 『도모유키』라는 책이 그것이다. 이 책도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다. 이 역시도 문체가 간결하다. 기자 출신들은 다들 문체가 이러한가.

그리고  얼마전에 출간된 책으로, '기축옥사' 사건을 중점으로 한 '정여립'의 반란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무수히 많은 동인이 죽게 된다. (위에서 소개했던『유성룡』에도 이 이야기가 나온다.)

마지막, '이한우'의 군주열전 중 한편인 『선조, 조선의 난세를 넘다』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은 제목에서 보이는 것 처럼 '선조'를 임진왜란을 무사히 극복한 성군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제목이 너무 마음에 안들어 읽어보진 않했지만, 정말 성군으로 생각하는지 어떤지는 읽어봐야만 알 수 있을 듯 하다. 관심있는 분은 한번 보시고 이야기 해주시면 좋을 듯...

그 외에도 몇가지 이순신 관련 책도 있지만 몇권씩 되기에 소개를 하지 않는다.

2. 아..그냥 지나칠뻔 했는데...이 책을 빼놓을 순 없겠다.
 
 이 책은 '배기찬'의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라는 책인데, 여기에서 코리아는 옛 고조선때부터 지금의 한반도인 우리 땅을 지칭한다. 가장 큰 주안점은 동북아의 정치 판도의 변화인데, 중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의 코리아와 더불어 서양의 힘싸움을 역사적 시간 순으로 보여준다. 과연 이 책에서 보여주려는 우리나라가 겪었던 패턴은 무엇이었을까? 정말 괜찮은 책이며, 한번쯤 읽어둘만한 책이라는 생각이다. 

 
3. 이 책의 저자인 '이덕일'씨의 역사 칼럼이 있는 페이지...(링크는 한겨레 21)
--> 역사에 흥미를 가지고 계신 분은 다 아실 듯 하지만, 그래도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링크를 첨부한다. 간결하면서도 정말 좋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책을 읽으실 시간이 없으신 분들은 한번 들어가셔서 보아도 괜찮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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