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힘과 기술의 축구를 인정한다. 물론 한국을 응원하는 입장에서 아르헨티나가 운이 좋았음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한국이 먹은 모든 실점은 우리팀의 실책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불운을 탓하기 보다는 역시 실력 부족을 탓할 수 밖에 없다.

아르헨티나전을 다시 한번 복기해본다.

4:1이라는 대패의 요인은 한국 선수 개인에 있기 보다는 우리의 허술한 팀 자체로 돌리고 싶다. 아르헨티나의 모든 슛은 강력한 슛도 아니었고 특별히 상대팀 개인 플레이어의 기술이 먹혀 들어간 것도 아니다. 아르헨티나의 모든 골이 우리 수비수와 상대 공격수가 똑같은 위치에서 이루어졌다는데에서 실망감을 가진다. 아르헨티나는 전진이었고 우리는 후진이었다. 특유의 끊어먹기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 상대는 오히려 거의 골대와 일직선상에서 골들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우리 수비수의 위치가 아쉽다. 골대쪽에 밀려있더라도 수비의 포메이션을 유지만 했다면 머리로든 다리로든 충분히 끊어 놓을 수 있었는데 포메이션이 정착되지 못했을때 상대의 골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우리 수비의 백코트는 예전 90년대 축구와 다를 바 없다. 한가지 다행이라는 점은 육탄방어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작게나마 의미를 찾아본다. 육탄방어는 수비수들에게 있어서 엄청 체력소모가 요하는 수비이다. 또 육탄방어는 지역방어 대신 개인방어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운에 기댈 수 밖에 없다. 그나마 육탄방어가 없다는 점은 최소한의 수비가 팀플레이로써 가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문제는 우리의 공격에서 수비로 전환될 때 그물망 수비가 아예 무너졌다는 것이다. 앞으로 있을 나이지리아전에서는 완벽한 지역방어로써 끊어먹기가 통해야 할 듯 싶다.

또 다른 대패의 요인은 역시나 수비 진영인데 특히 우리의 오른쪽 윙백이 지워졌다는 점이다. 차두리보다 좀 더 개인기가 좋은 오범석을 넣었지만, 공격에서 딱 한 번 뒤로 돌아간 것 빼고는 오범석이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지난 그리스의 경우 차두리는 최소한 우리가 인지할 정도로 위치 선정이 괜찮았다. TV를 통해 차두리가 어디에 있었는지 어느때고 확인 할 수 있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전의 경우 오범석은 그냥 우리 수비수 한 무더기안에 있었다라고 추정할 뿐 그가 TV화면에 잡힌 경우는 거의 없었다. 윙백은 공격 성향도 중요하지만 상대가 중앙으로 볼 배급을 막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이영표의 경우 오버래핑을 자제하긴 했지만 중앙으로 볼을 배급하는 상대를 어느정도 잘 막았다. 하지만 오범석의 경우 오른쪽에 위치해야 했지만 그가 어디있었는지 지금으로서는 기억 조차도 없다. 오범석이 가령 지워졌다면(그가 오른쪽 위쪽에 위치했다면) 그 자리를 메꾸는 사람은 윙어 이거나 최소한 중앙 수비수가 될 수 밖에 없다. 만약 그 자리를 중앙 수비수가 메꿀 수 밖에 없다면 이는 매우 위험하다. 최소한 보란치는 중앙 수비수 위치에 들어와야 하는데, 오른쪽으로 너무 쏠려 있는 바람에 중앙에 위치한 선수는 왼쪽 윙백인 이영표 선수 였다. 그 말은 이영표 뒤쪽으로는 아무도 없다는 의미이다. 어느 누구도 달려 든 사람이 없었다. 물론 천천히 달려온 선수는 있었다. 그 선수가 염기훈이다. 하지만 그는 공격수 이기에 전력을 다해 들어오진 않는다. 다만 지역 방어 위주로 설렁설렁 들어 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자리에서 있을 선수는 김남일이어야 하지만 그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추정을 해보자면 그는 끊어먹을 위치 즉, 페널티 박스 쯤에 있었을 듯 싶다. 결국 중앙 수비수는 이영표가 되었을 수 밖에...

팀의 패배를 한 선수에게 뒤집어 씌울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군가가 최소한의 욕을 먹어야 한다면 그는 염기훈이 될 것이다. 염기훈은 엄연히 공격수이다. 하지만 허정무 감독이 그를 계속 기용한 이유는 그의 왼발 능력을 추켜세우는 것도 있지만 공수를 넘다드는 체력일 듯 싶다. 이는 염기훈에게 수비적인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의 수비적 능력은 거의 빵점이다. 또 그의 드리블 실력은 역대 최악이다. 그는 우리 플레이의 맥을 끊어먹는 일등 공신이다. 이것은 여러차례 평가전에서도 들어났고, 심지어 그리스전에서도 어느정도 보였다. 우리 공격의 맥을 끊는다는 것은 순간적으로 앞서 나온 수비수들에겐 지옥이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개인기가 좋은 아르헨티나 선수를 지역방어로써 막기엔 너무 늦어지게 된다. 준비도 없이 역습을 맞는다라고 할까. 암튼 나는 염기훈이 월드컵에 나왔다는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코너킥 혹은 프리킥을 위해 그를 기용했다면 정말 개도 웃을 일이다. 우리에게는 최소한 기성용이나 박주영이 있지 않은가. 암튼 허정무의 최대 실수는 염기훈의 지속 출장이다. 그것도 선발로.

이번 아르헨티나전은 너무 구멍이 많았다. 특유의 그물망 수비도 없었고 심지어 숏패스 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허다했다. 물론 우리의 숏패스 실력은 우리가 안다. 사실 허접이다. 하지만 숏패스는 삼각편대나 압박을 통해 이루어진다 봤을때 숏패스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허겁지겁 걷어내기에 바빴다는 이야기이다. 문제는 우리가 여유롭게 공격할때 상대 선수가 조금만 압박이 들어와도 허둥지둥 했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거의 모든 선수들에게 통용된 이야기이다. 너무 성급했다. 최소한 점유율이라도 높여야 했는데 그것마저도 실종됐다.

우리에게 가장 이상적 공격은 후반 초반이었다. 최소한 그때는 우리의 트레이드 마크인 압박 수비가 어느정도 통했다. 하지만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후반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확실히 체력적으로 힘든 기색이 역력했고 긴급한 백코트 순간에도 그 자리를 매운 선수들은 수비수 3명 뿐이었다. 나머지는 위에 위치했다는 의미이다. 수비수가 어느정도 지연시킬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역시나 아르헨티나는 운이 좋았다. 4골 중 2골이 하나는 자책골이고 하나는 골대 맞고 튀어나온 장면임을 상기하면 역시나 스위퍼로서의 역할을 골기퍼인 정성룡에게 떠넘긴 꼴이 되었다. 정성룡은 그 몫을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운이 없었을 뿐.

앞으로 있을 나이지리아전에는 역시나 염기훈이 들어가면 안된다. 그가 놓친 골이 안타깝긴 하지만 그 경우에 뭐라고 책망할 수는 없다. 다만 그는 여전히 우리 공격과 수비의 구멍이라는 것. 특히 공격. 한 두번 잘했다고 나는 그를 좋게 평가할 수 없다. 그는 공격수이지만 보이지도 않고, 수비를 한다고 해서 또 특출나게 막는 것도 아니다. 안타깝지만 염기훈은 아웃이 되어야 한다. 16강에 올라가더라도 그는 더 이상 나와서는 안된다.

아르헨티나전의 4:1은 사실 쪽팔린 점수이다. 하지만 차라리 이게 낫다고도 생각되어진다. 3:2나 2:1로 진 경우보다 차라리 원점에서 다시 재고할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뭐가 문제인지는 확연히 들어났다. 우리 특유의 장점은 상대의 압박이지만 또 우리의 단점은 상대의 압박이다. 우리는 압박을 할 순 있지만 압박을 당했을 경우 빠져나오기 상당히 어렵다. 압박 당하면 숏패스 조차도 되어지지도 않고 의미없는 롱패스만 양산할 뿐이다.

나이지리아전은 우리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뭐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압박에서 상대의 공을 차단하고 그게 역습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상대가 수비 위치에 모두 들어섰을 때 우리는 거의 골을 넣어본 적이 없다. 우리의 단점은 상대에서도 단점이다. 수비수 위치가 정해지기전에 압박해서 볼을 차단하고 역습한다는 것. 수비수 위치가 정해지면 우리의 최상의 공격수 박주영마저도 지워지게된다.

개인적으로 이번 경기는 안타깝지만 차라리 배수의 진을 칠 기회가 있다는 자체에 감사한다. 지난 독일 월드컵때 토고를 승리하고 프랑스에 비기면서 한층 기운이 살아나긴 했지만 스위스전에서 첫 실점하면서 무너진 것을 생각하면 차라리 나이지리아전에 배수진을 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나이지리아전은 역시나 뒷공간이다. 뒷공간 뿐이 없다. 우리의 단점은 상대에게도 단점이며 우리의 장점은 상대에게 굉장한 압박이다. 확고한 포메이션을 유지하며 한 발 한 발 전진해야 할 듯 싶다.

나이지리아전은 2:0 승리를 예상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알라딘 서재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이름이 있으니, '피터 싱어'이다. 예전에 뇌 관련 책을 읽을 때 뇌마케팅의 윤리적 충돌 부분에서 그의 이름을 들었던 적 말고는(아마 맞을듯..) 크게 관심을 가진 인물은 아니었다. 그런데 알라딘 불매운동의 기류를 타고 여러 블로그에서 이름이 들려오니 실제로 그의 책을 한번쯤 읽고 싶다는 생각도 들긴 하였지만, 조금 당황스러운 점은 불매운동에 윤리를 첨가시켜 서로 언쟁이 오고가는 이 상황이다.

이는 마치 누구 못지 않게 좋은 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열정으로 가득찬 소설가가 소설을 완성지을 재료를 구성하기도 전에 글쓰기, 맞춤법과 같은 기초적 기술과 남들이 쓴 글쓰기 관련 책에만 몰입하는 현상과도 다르지 않다고 여겨진다. 실천을 하기전에 자신의 부족분에 대해 끊임없는 실력 양성을 키우는 점은 한마디로 완벽주의이며 자신을 완벽한 준비상태로 만드는 일은 쉬운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뭔가 이슈가 내뿜는 정황과는 거리가 있다고 느껴진다. 소설보다는 글쓰기에만 중점이 맞춰진 것 처럼... 아무튼 아직 소설을 내놓지 못한 이 미래의 소설가는 글쓰기에 대한 책을 내놓았다나 뭐래나. 더구나 글쓰기에 대한 강의와 강연까지 다닌다면...대단하긴 하다. 물론 나는 이 글쓰기에 대한 책을 줄그어가면서 재밌게 읽고 있고, 아직은 소설을 내놓은 것은 아니지만, 이 작가의 소설 또한 기대한다.

앞서 말한 작가와 같이 알라딘 불매운동 관련 논쟁의 한 켠에서는 윤리책을 뒤적거리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려 살짝 웃음지었다. 내 글의 억양이 어떻게 읽힐지는 모르겠지만 조롱이나 이런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냥 이런 현상이 보인다는 것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불매운동관련 윤리적 부분은 운동에 찬성하든 하지않든 좋은 무기임에는 틀림없다. 윤리를 갖다대면 예외없이 죄인이자 피고인이지 않던가.

작년(2009) 말에 종종 들어가는 한 블로거의 글을 읽고 한번쯤 소개하고 싶었는데, 나의 블로그를 들어오시는 분들도 한번쯤 읽어보라고 링크를 건다. 링크에 걸린 블로그는 미국의 한 대학에서 사서일을 하시는 'Clio'님의 블로그이다. 책 좋아하고 도서관 좋아하시는 분들은 아마도 RSS로 받지 않을까 하지만 혹 모르고 계신 분들은 이번 기회로 이 분이 쓴 글들을 읽어보길 권한다. 소재들이 다양하며 알차다.

링크 : 마이클 샌델- 정의; 무엇이 마땅히 해야 할 올바른 일일까?










<추가...2010. 05. 29>

마이클 샌델의 책<JUSTICE>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왔다. 좀 지난 페이퍼지만 그래도 추가해본다.









2. 한 가지 글만 소개하니 휑한 감이 있어 또 다른 블로거의 글을 소개한다. 이 분도 꽤 알려진 블로거이시고, 여러 원문을 인용하여 개성있는 생각을 풀어 쓰시는 분이다.

우리의 세상이 빨리 변한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일일 것이다. 문제는 보이지 않는 변화에 있다. 보이는 변화라 하여 준비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변화에 대해 나름 비판이라든지 생각을 할 수 있겠다. 보이지 않는 변화는 지극히 자연스럽게 습득한다는 점이 무섭다. 비판없이 받아들인다고나 할까. 변화의 시점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순간 그제서야 길들여진 자신을 보고 회의감이 들 수도 있고, 모든 이들과 같이 적응하며 사는 자신의 모습을 용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찌되었든 이런 변화는 되돌리기가 우주의 규칙을 거스르는 것만큼 힘들다는 점이다.

나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듯 해서 이렇게 소개를 해본다. 결론은 각자의 몫이고, 결론을 내지 않는 것도 각자의 몫이라는 것만 일단 생각하자.

참...이 블로거는 푸그(foog)님이시다.

링크 : "할인판매" 빵집

3. 요즘 알라딘을 나가시는 분들이 계신다. 일단 나가는 것도 각자 자유겠지만, 돌아오는 것도 또한 자유다. 재미없으면 돌아오시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올 한 해 해피엔딩을 맞이한 사람이 몇 있겠냐만은 이들까지 포함하여 엔딩의 막이 내려지자마자 다시 다른 이름으로 같은 막이 올라가는 우리의 운명은 다시금 해피엔딩을 위해, 향해 또 달음박질을 한다.

2009라는 숫자는 이젠 역사속에 남고, 우리의 나이의 한때로 각인되고 저장되고 대부분 잊혀질 것이다.

해의 끝에 평생 들어보지도, 써보지도 못한, 못할 그런 올해의 사자성어, 한자어들이 뻔뻔스럽게 낯을 내밀지만

끝맺음과 시작의 이음새가 없는 우리의 인생에 새옹지마, 토사구팽만 알아도 삶의 순리를 채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진정한 해피엔딩인지는 죽을 때쯤에야 알 수 있겠지만, 그래도 한 해의 마무리가 해피엔딩이었다고 믿고 싶기는 하다.

내가 해피엔딩이라고 우겨대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 슬프다. 몇 분 안남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요즘 보는 책 중의 하나가 이석원의 <보통의 존재>이다.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있노라니, 어느틈에 나의 과거를 더듬는다.

나도 모르게 한 페이지를 넘겼는데, 과거의 단편으로부터 불려왔다.

그래서 다시 전 페이지로 돌아가 읽지도 않고 넘긴 그 페이지를 다시 읽었다.

종종 어떤 책들은 작가의 글들을 읽어내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억하고 있던 이미지들을 꺼내온다...


'그것은 인생'을 듣자.... 이 노래야말로 뚝뚝 끊어져있는 단편들을 꺼내기엔 정말 좋다. 그냥 묻혀버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요즘 알라딘이 좀 시끄럽다.도급업체를 통해 일하고 있는 노동자의 해고와 관련된 사항 때문이다. 그래서 그 노동자를 대신해서 알라딘 일부 블로거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다고나 할까. 물론 이것은 알라딘 블로거들의 생각이다. 사용자측에서는 한마디로 피해자가 아니라는 것. 다만 그 노동자가 안타깝지만 운이 없었다는 것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인 듯 하다. 물론 이렇게 설명하는 것은 그 노동자에게나 사용자(알라딘측)에게 예의 없는 말로 들릴진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이렇다.

이런 양측의 평행선으로 인해 알라딘 불매 운동이 시작되었다. 문제는 도급업체('인트잡'이라는 인력 공급업체)가 사실상 모든 과정의 핵심에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알라딘이 우선 표적이 된 듯 싶다. 과정이야 어떻든 그 노동자는 알라딘에서 일했고, 알라딘을 위해 뛰고 있었기에.

나는 불매운동에 공감한다. 다만 나는 참여를 하진 않을 것이다. 남들이 보면 재수없는 놈, 얄팍한 놈이라고 하겠지만, 이 뜻은 크게 변하지 않을 듯 싶다. 먼저 나는 개인적으로 아주 조용하게 '나만의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물론 알라딘이 아니다. 3개의 종목, 3개의 기업에 대해 나만의 소극적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긴 하지만, 아쉽게도 완벽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의 사정상 대체할 것이 마땅치 않다면 어쩔 수 없이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제품만을 불매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이 업체들의 서비스 마저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긴 한데, 쉽진 않다. 그래도 거의 이용하지 않는 편이다. 불매운동을 하고 있는 이 업체들은 나에게는 형편없음으로 인식되어진 기업들이다. 아마도 이것도 거의 바뀌지 않을 듯 싶다. 그런다고 이 기업들이 망하길 원하느냐? 그것도 아니다. 왜냐면 누군가에겐 소중한 기업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공감의 가장 큰 이유는, 소비자 입장을 떠나서 알라딘에서 근무하는 정직원 뿐만 아니라, 비정규 직원들을 어느정도 고무시킬 수 있는 운동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이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기업을 이용하는 소비자가 회사가 아닌 자신들의 복리(혹은 생존)를 위해 생각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거라는 이유 때문이다. 물론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생각의 차이는 있겠지만, 알라딘이라는 시스템을 이루는 공기(필수 불가결 요소라는 것을 알면서도 신경쓰지도 않는, 즉, 보이지 않는)같 은 존재로 보지 않고, 자신과 가족을 위해 애쓰는 사회 구성원으로 보여지고 있다는 것은 직원들에게 플러스가 됐으면 되었지, 마이너스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또 Yes24나 리브로와 같이 동종업종의 기업들에게도 일종의 경고로서 작용되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얼마나 파급효과가 크냐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겠지만, 물리적 제조업체가 아닌, 서비스업체 특히 인터넷 기반의 업체들에게는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가는 이러한 운동이 결코 무시할만한 수준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공감의 저편에 드리워져있는 우려감은 바로 직원들에게 두려움과 짜증스러움을 심어주는 것이다. 처음에는 직원들을 고무시켰지만 서서히 두려움이나 짜증스러움으로 번져갈 경우, 이것은 처음 의도한 바와는 전혀 다른 본질을 띠게 된다. 다시말해, 이 운동의 과정이 매우 애매하게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불매운동의 (유효)기한도 전혀 없고, 또 타협할 권한도 없다. 즉, 알라딘서 책을 구매하는 행위를 일시 정지 시킨다는 생각은 알라딘 서비스에 대한 전면적 거부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고, 이는 또 다른 알라딘 이용자들에게 불편함과 불쾌함을 줄 수 있다. 직원들도 당연히 영향을 받을 거란 생각이 든다. 특히 도급업체를 통해 온 사람들일 경우 더 그럴 듯 싶다.

나는 알라딘과 Yes24를 고맙게 생각한다. 물론 나의 개인적 상황에 따른 것이다. 단순히 긍정적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는 이유는 나의 삶에서 한동안 잊혀졌던 책을 Yes24의 서비스를 통해 다시금 살려낼 수 있었고, 그때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던 Yes24 블로거들에게 고마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알라딘의 경우는 기반이 인터넷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항상 인터넷 사용자를 위한 반걸음 앞선 행보를 보였다는 이유가 크다.

웹 기반이라고 해서 기업의 마인드가 항상 열려있다고는 볼 수 없다. 어떤 기업은 여전히 오프라인일 수 있다. 물론 이번 논란은 그래도 기업이라는 어쩔 수 없는 알라딘만의 오프라인 찌꺼기 마인드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알라딘의 온라인 모험 모드가 항상 좋았다. 먼저, 예전 이글루스 블로그를 운영할 때 느꼈던 거지만 이글루스와 알라딘과 협업한 것이 '라이프로그' 서비스의 도서 검색 및 포스팅이었을 것이다. 이점 때문에 내가 알라딘으로 옮겨온 계기가 되긴 했지만, 어쨌든, 그들의 온라인 모험은 재밌고도 쉽다. RSS가 널리 퍼지기 전에 '한rss'를 통한 서비스를 소개한 것도 알라딘으로 기억한다. 또 TTB라는 고객 광고 수익 프로그램은 어떤가. 이것도 당시 구글의 광고 수익 프로그램에 발맞추어 자신들의 서비스에 접목하여 이뤄낸 것이 아닌가. Yes24의 경우 이러한 광고 수익 프로그램이 한참만에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또, 이것은 부수적인 거지만, 미국의 아마존과 같은 포장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알라딘에서 말한 적이 있었다. 이것은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 서비스에 해당하겠지만, 어쨌든 항상 마인드는 온라인의 오픈 마인드를 가져야만 가능할 것이다. 또 나의 인터넷 브라우저 사용 중 70%는 파이어폭스이고, 20%는 구글 크롬이며, 나머지 10%는 MS의 익스플러러이다. 처음 파이어폭스 사용시 Yes24및 리브로, 인터파크 등등 다른 사이트들은 깨져 보였지만, 알라딘의 경우 꽤 근사하게 나왔던 기억이 있다. 정말 파이어폭스로 보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더구나 내가 사용하는 익스텐션(파이어폭스에서 사용하는 확장 기능) 중 'context search'라는 놈에 맞는 유일한 온라인 서점은 알라딘 뿐이었다. 지금도 Yes24는 안될 것이다. 나는 아마존과 알라딘을 '컨택스트 서치'에 넣고 활용한다. 이 확장기능이 뭐냐면, 인터넷 보다가 책 이름 나오면 거기에(텍스트에서) 블록만 지정한 후, 마우스 오른쪽 키를 통해 알라딘 검색 기능을 이용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새 창이 뜨면서 검색된 책이 알라딘에서 보여지는 기능이다(물론 이런 것은 사전기능으로도 이용 할 수 있다). MS의 경우 익스플로러 8버전에서 그나마 비슷하게 나오는 것 같지만, 검색 지정이 하나만 되는 듯 하다.

지금은 어떨까? 현재는 '유저스토리북' 이라는 곳을 통해 또 다른 온라인 서비스를 개척하고 있다. 물론 어떤식으로 협업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사이트는 직접 알라딘 구매 서비스와 연결된다. 모든 서비스가 알라딘의 주체적인 기획에 따른 것은 분명 아니겠지만, 이렇듯 내가 기억하고 있는 온라인에서 보인 알라딘의 행보는 작은 것도 아니고, 쉬운 것도 아니다.

글이 너무 길어지는 듯 하다. 약간은 방향성을 잃어버린듯...

어쨌든, 알라딘의 경우 온라인 유저의  입맞에 맞추어 행보해왔다는 것은 나는 몸소 체험해왔다. 그럼에도 이러한 노동자의 해고 논란에서 알라딘은 분명 유연한 행동을 하지 못한 것은 분명한 것이고, 블로거들이 요구했던 알라딘 답변 또한 상당히 메뉴얼적으로 보여진다는 데에서 실망을 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알라딘이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알라딘 이용자들이 항상 드러내놓고 있진 않지만, 알라딘이 했던 모든 것들을 하나 하나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응이 빠른 것도 있고, 늦은 것도 있지만 어쨌든 나중에 피드백으로 좋던 싫던 받게 되어있다. 앞서 나의 좋았던 기억들은 긍정적 피드백의 한 종류이고, 여러 블로거들이 내놓고 있는 불매운동은 부정적인 피드백의 한 종류일 것이다. 어쩄든 이런 것들은 알라딘을 향하고 있고, 알라딘이 접수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참여안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단순히 알라딘에 대한 좋은 인상때문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주저하고 있다는 점이다. 말 같지도 않다. 하지만 사실이다. 깊은 생각을 하기도 전에 이미 나는 왜 그런지 모르지만 주저하고 있다. 거대한 담론이라서 그래서 몇몇 블로거들이 애를 써도 안될거야라는 자포자기 때문에 그런것이 아니라, 해고 노동자의 요구를 다 들어주어도 나에게는 뭔가 찜찜한 것이 남아있을 거라는 생각때문일 듯 싶다.

이것은 정치에서도 해결 보지 못한 것이다. 여전히 과정속에 있고, 정치에 따라 흔들거린다. 경제에 따라 흔들거린다.

알라딘과 해고 노동자 사이에는 도급업체(인트잡)가 있지만, 도급업체와 알라딘, 그리고 도급업체와 도급 노동자 사이의 관계를 나는 알지 못한다. 알라딘의 입김이 도급업체에 바로 작용할지, 도급업체의 입김이 도급 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나는 알지 못한다. 왜 노동자들이 도급업체와 자발적 계약을 맺어야하는지도 나는 알지 못한다. 도급업체가 경제가 아주 활황일때도 없어질 거라는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런데 이번 논란의 해고 노동자가 원하는 데로 알라딘이 들어준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될까? 이게 찜찜한 것이다.

그렇다고 알라딘의 고용 상황이 엄청 좋아졌다고 한다면, 다음은 Yes24로 옮겨가서 불매운동을 펼칠 것인가?

물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멍하니 지켜보겠다는 말인가?'하고 말이다.

아쉽게도 나의 경우엔 정말 그렇다. 지켜보겠다는 것. 하지만 멍하니 지켜볼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앞에 온라인이 어떻네, 피드백이 어떻네 하며, 주절주절 썼다.
 
내가 불매운동을 한다면 최대한의 모든 서비스를 끊을 것이라고. 어떤 좋은 온라인 서비스를 한다해도...

또...

뭐가 되었든 나는 기억하고 있다고.


PS.
1. 이 포스팅은 주로 알라딘을 향한 말임을 알아주시길...

2. 해고 노동자 김종호씨에게 좋은 결과가 있기를...

3. 이런 불매운동의 경우 가장 중요한 점은 '바람구두'님 언급대로 '지극히 개인적인 싸움'이라는 것을...
누구를 도와주고 안도와주고를 떠나 자기자신을 위한 불매운동임을 기억해야 할 듯...
즉, 불매운동을 지속적으로 나아간대도, 불매운동을 바로 이 순간 그만둔다하더라도 다른 제3자가 뭐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봄. 단 이러한 개인적인 불매운동이  알라딘의 (비판을 넘어서) 헐뜯기로 가는 경우에는 서로 지는 게임이 될 것을 기억해야 할 듯....

4. 그나마 긍정적인 사회는 항상 기억하고 있다는 것...바로 까먹으면 요즘 처럼 됨....

5. 예전부터 '왜, 나는 알라딘을 이용하는가?'에 대해서 블로그에 글을 올려보고는 싶었는데 대략적이나마 올리게되었다. 음....오히려 유감스럽게 이런 논란속에서 써먹게 되는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