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가슴이 떨릴 때 다녀야한다며 길을 나섰다. 사전투표도 했다.

목적지는 경기도 안성의 칠장사. 임꺽정이 놀던 곳으로 한번 가보긴 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접시꽃

 

 

 

 

칠장사. '조용하기가 절간 같다'라고 할 때의 그 절간 같은 분위기가 좋다. 우리같은 할 일 없는 관광객보다 기도하러 온 분들이 더 많아 보인다. 간절하게, 절실하게 기도하고 싶은 곳이라고 할까.

 

친구가 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간김에 보탑사를 둘러보고 오란다. 친구들한테 맹신적인 기독교도라고 놀림을 당할 정도로 절 근처에는 가지도 않는 친구인데 절을 다 추천한다. 추천이유는 절이 아기자기하고 꽃을 잘 가꿔놓아서 볼만하단다.

 

 

 

옛 절터에 지은 절로 1996년 생, 초현대식(?) 절이다. 현대식 사찰의 견본을 마주한 느낌이다.

 

 

 

 

돌나물이 커다란 바위 위에서 품 넓게 자라고 있다. 하찮은 구석에서도 잘 자라는 돌나물이 저렇게 버젓한 곳에 있으니 품위마저 느껴진다. 돌나물도 그럴진대 사람이 저런 환경에서 자란다면 반듯하고 당당하지 않을까. 

 

 

 

 

경내에는 커다란 둥근 화분들이 열을 맞춰 있는데 저렇게 저마다 이름표를 달고 있다. 여느 식물원보다도 더 친절한 배려가 느껴진다. 비구니절이라더니 스님들의 마음과 손길이 섬세하다. 화분마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으나 여기에 모두 올릴 수는 없는 터.

 

 

 

 

 

 

 

 

 

 

 

 

 

 

 

 

 

 

 

 

 

 

 

 

 

 

 

칠장사의 고색창연한 누각과 대비된다.

 

 

 

어디서 본 듯한 황금불탑...미얀마... 새로운 감각이다.

조금은 낯설지만 세월이 흐르면 저 탑도 문화재로 남을 지 모를 일이다.

 

 

책은 언제 읽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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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8-06-14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으아리! 으아리가 저렇게 생긴 식물이었군요! 아하!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nama 2018-06-14 11:33   좋아요 0 | URL
으아리 세계가 깊고도 넓습니다. 아직 감도 오지 않아요. 저마다 으아리라고 하는 게 많아서요.
 

출처: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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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의 고운식물원에 가기로 한 날. 길이 막힐까봐 일찍 서둘렀다. 아침 8시 개방시간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아침밥을 행담도 휴게소에서 먹고 다시 부지런히 갔더니 8시 5분 전쯤 되었다. 다른 건 몰라도 시간 하나는 잘 지키지, 직장인의 자세가 살아있었다. 그랬더니 웬걸 개장시간이 9시라며 먼저 둘러본 후 입장료는 나중에 내라고 한다. 엉? 홈페이지에서 분명 8시를 확인했는데....

 

 

 

초입에 있는 버드나무. 버드나무 세계도 오묘하군.

 

 

 

양귀비. 영국의 현충일엔 저 꽃을 앞가슴에 단다고 하는데...오늘은 마침 우리 현충일.

 

 

 

낙우송과 호흡근. 옆에 툭 튀어나온 게 뿌리(호흡근)인데 뿌리에 필요한 산소를 대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볼수록 신기.

 

 

 

이파리와 꽃을 손으로 비비면 물고기 비린내가 난나고 하는 어성초.

 

 

 

찔레꽃과 헷갈리는 고광나무꽃.

 

 

 

 

 

 

 

 

 

 

 

 

 

 

 

서양으아리로 클레마티스라고 한다. 서양화가 폴 클레와 앙리 마티스를 합성해서 겨우 이름을 기억.

 

 

 

으아리. 꽃 이름 외우러 온 듯...

 

 

 

 

 

 

도마뱀.

 

 

 

떡갈잎수국

 

 

 

 

 

 

페튜니아(아, 어려워!)로 장식한 들어가는 길.

 

 

 

8시에 입장했으니 어언 2시간 가량 걸린 셈이다.

 

 

이런 큰 식물원은 한 개인이 유지, 관리하기가 참 만만찮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닥에 깔린 돌 하나하나에도 땀방울이 스며들었겠구나 싶으니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 시설물 하나 허투루 보아선 안 되었다. 그러나 뭐랄까. 전체적인 느낌은 백화점식 나열이 느껴졌다. 그러니 식물원이겠지만 보아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부하러 온 것도 아닌데 관람 내내 공부하는 사람처럼 들여다보고 이름 불러보고. 마치 그림전시회에 가서 작가와 작품명 들여다보는 것과 비슷했다. 쉼터가 있긴 했으나 외지거나 한가하게 앉아 있기에는 마뜩잖아 보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 때리고 있을 공간을 찾기 힘들었다. 넓은 잔디밭은 야외결혼식장으로 어울릴 성 싶었으나 한가하게 도시락을 까먹으며 앉아있을 수 장소는 아니었다. 일대가 훤히 보이는 전망대는 훌륭하나 그저 전망대이지 다리 뻗고 앉을 곳은 아니었다. 촘촘하게 서있는 팻말을 따라 일정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 것도 일종의 지시와 다름 없었다. 1,000원 내면 탈 수 있는 롤러 슬라이드는 어린 손님을 끌 수 있는 수익사업이겠으나 식물원을 유원지처럼 보이는데 일조하는 것 같다.

 

이게 아무래도 런던의 큐 가든을 갔다온 후유증이지 싶다. 그곳은 멍 때리기에는 환상적인 공간이었는데...사람이 나이들면 채움보다 비움을 생각해야 하듯 식물원도 해가 거듭할수록 적당히 비우는 법을 터득해야하지 않을까. 이 식물원은 2003년에 개원했다고 하니 사람으로치면 이제 겨우 10대일 뿐이다. 비움을 생각할 때가 아니긴 하다.

 

그러나 모쪼록 잘 만들어진 곳이니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해주면 좋겠다. 들여다보고 이름을 불러주길 고대하는 꽃과 나무들이 살고 있다. 이런 곳은 우리가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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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1월 남인도 여행을 시작할 때, 얼마 전에 단행된 화폐개혁으로 공항에서 환전하느라 애를 먹었었다. 간디가 그려진 위와 같은 천 루피짜리 지폐는 이미 사용불가 상태였다. 전 인도인이 구권 지폐를 신권 지폐로 바꾸느냐고 난리였는데 그 와중에 인도에 가게 된 것이다. 그랬었는데...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는데...

 

당했다. 분명 2,000루피짜리 지폐를 내고 1,000 루피짜리 거스름돈을 받았는데, 받는 순간에도 '좀 이상한데'라고 생각했을 뿐 깊이 의심하지 않았다. 어디에서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1루피는 한화로 약 18원. 18,000원쯤 된다. '어리숙한 외국인'이 바로 나였다.

 

일주일간의 짧은 단체 패키지 여행. 좋은 호텔에서 양질의 음식을 먹는 여행은 내가 추구하는 바가 아닌데 이번 여행은 얼떨결에 그런 호화로운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인도 여행을. 바깥 세상에 나왔으나 바깥 세상과 단절된 여행이 단체 패키지 여행이 아닌가. 그래 한번쯤 해보자. 좋은 것을 많이 봐야 좋은 일을 할 수 있다잖은가.

 

인도였지만 인도가 그리웠다. 마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처럼. 인도에서 이렇게 다녀도 되나? 혼잡한 거리, 시끄러운 경적소리, 시장에서 벌어지는 흥정들, 이방인을 향한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들, 비루먹은 개들, 집요한 호객꾼, 공기중에 배어있는 향신료 냄새, 사진 찍자고 덤벼드는 사람들, 미소지으며 다가와 이것저것 묻는 사람들, 거리에서 마시는 달짝지근한 짜이 한 잔, 밤거리의 희미한 형광등 가로등, 눈에 보이는 귀여울 정도의 가벼운 사기 등. 이런 것들이 슬슬 그리워졌다. '이번 여행에선 사기 당할 일도 없네.'하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바로 그렇게 마음을 풀고 있을 때 아무런 의심없이 저 1,000루피짜리 구권을 받은 것이다. 하, 그러면 그렇지. 역시 인도였다. 

 

그러나 인도만 그렇다고 하면 공평하지 않다. 지난번 런던에서도 비슷한 일을 당했다. 거스름돈 1파운드 동전을 1유로 동전으로 받고도 한동안 몰랐으니까. 결론은 '어리숙한 외국인'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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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 황제 - 로마보다 강렬한 인도 이야기
이옥순 지음 / 틀을깨는생각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무슨무슨 인도사를 읽어도 정리가 되지 않았던 무굴 제국의 역사가 이옥순 교수의 이 책으로 말끔히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1526년에 세워진 무굴 제국이 1857년 막을 내리기까지, 특히 제국의 전성기를 지낸 여섯 황제들 중심으로 쓴 책은 우선 재미를 보장한다.

 

여섯 황제: 바브르 - 후마윤 - 아크바르 - 자한기르 - 샤자한 - 아우랑제브

 

무굴 제국이 얼마나 잘 살았는 지를 일단 살펴보면,

 

  유럽에서 30년 전쟁(1618~1648)이 이어지면서 무굴 제국은 화약의 원료인 초석을 수출하여 많은 돈을 벌었다. 후대의 학자들은 무굴 제국의 재정이 동시대 유럽의 여느 국가보다 탄탄했ㄷ고 판단했다. 번영을 구가한 17세기 중반의 인도에는 델리와 아그라, 수라트, 라호르 등 인구가 20만이 넘는 도시가 아홉 곳이나 있었다. 동시대 유럽엔 그 정도 인구를 가진 도시가 영국의 런던, 프랑스의 파리, 이탈리아의 나폴리 세 곳뿐이었다.   163쪽

 

  제국은 땅과 인구만 거대한 것이 아니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했다. 아우랑제브 시대인 1690년, 제국의 GDP는 약 4천 1백억 원(4억 5천 달러)으로 세계 1위였다. 당시 아우랑제브의 조세 수입은 동시대 프랑스의 열 배가 넘었다. 당시 프랑스는 화려한 궁정 생활로 소문난 루이 14세 치하였다.    =207쪽

 

 

샤자한의 공작 왕좌에 대한 얘기는 처음 접하는 부분이라서 더욱 놀라웠다.

 

  돈이 많고 아버지에게서 심미안까지 물려받은 샤자한 황제는 고대 솔로몬의 왕좌 같은 신의 왕좌를 꿈꾸었다. 그가 많은 돈을 들여 만든 공작 왕좌가 그 결과였다. 샤자한의 왕좌는 초록색 사파이어로 만든 깃털을 가진 공작이 의자의 기둥을 감싸는 모양이어서 공작 왕좌라는 이름을 가졌다. 1톤이 넘는 금이 들어간 초호화 의자로 당대 세계의 금값을 올릴 정도였다.

  보석과 금으로 꾸며진 왕좌의 제작 기간은 7년이었다. 제작비도 천문학적 수준이었다. 나중에 뭄타즈 마할을 위해 만든 타지마할 건축비의 두 배였다. 루비, 다디아몬드, 에메랄드, 진주 등 각종 보석을 20킬로그램이나 촘촘하게 박은 샤자한의 왕좌는 세상에 둘도 없는 명품이었다.   -165쪽

 

이 왕좌는 1739년 무굴 제국을 침략한 페르시아의 황제 나디르 샤가 약탈한 후, 반란을 일으킨 쿠르드족에게 넘어갔는데 이후 해체되어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졌다고 한다. 현세의 가치론 10억 달러가 넘는 고가품이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영화는 직접 보아야하듯 이 책은 직접 읽어야 제 맛이어서 맛보기용으로 조금만 더 인용한다. 자한기르의 장진주사쯤 되는 시이다.

 

얼굴을 돌리지 마요, 그대 없인

한순간도 살 수 없어요.

당신이 주는 상처는

1백 건의 살인과 같아요.

 

내가 두 개의 입술을 가진 건

하나는 술을 마시기 위해서고

다른 이유는 사과하기 위해서라오.         -136쪽

 

 

 

 

그러나 이 책에서 치명적인 오타를 발견했다. 그것도 두 군데나.

 

1930년 → 1530년

 

1895년 → 1695년

 

옥에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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