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배달되는 조간신문은 주로 주말에 몰아서 읽는다. 밥 해먹고, 치우고, 출근하고....신문 읽기는 사치다. 그런데 오늘은, 밤새 시름겨워 날밤을 새우다시피 하다가 어쩌다 시간이 남아 신문을 펼쳤다. 우선 김종철 칼럼 '불의한 나라의 전문가들'이 눈에 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64495.html

 

정신이 번쩍드는 문장에 아침잠을 깬다. 이런 '시름' 앞에서 간밤의 내 시름은 사치스럽기만 하다.

 

"최근 한국을 다녀간 한 일본인 지진 전문가는 지난 9월의 경주 지진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지진이 경주 인근에서 3~4개월 후 발생할지 모른다는 충격적인 예측을 했다. 이 불길한 예측이 현실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규모 6.5의 지진까지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는 한국의 원전들이 조만간 붕괴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래서 떠오른 이반 일리치의 문장.

 

오늘날 위기란 말은 의사, 외교관, 은행가, 온갖 사회 공학자가 모든 상황을 접수하고 사람들의 자유를 유보하는 상황을 의미하게 되었다. 국가도 사람처럼 중환자 리스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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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미장원이나 이발소, 떡집, 약국, 국수집, 중국음식점, 분식집....이런 곳은 단골로 정해두어야 일상이 편하다. 특히 미장원이나 이발소는 내 마음에 맞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아서 일단 어떤 곳을 단골로 삼게 되면 한동안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 남이 보기에는 그 헤어스타일이 그 헤어스타일로 보일 지 몰라도 내 딴에는 공을 들이는 곳이 머리카락이다.

 

우리 동네에는 남편이 단골로 삼은 남성전문커트가게가 있었다. 동네의 수많은 미장원과 이발소를 제치고 이곳을 단골로 삼은 이유는 단순하다. 가격 대비 솜씨가 출중한 미용사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손이 야무져서 새로 이발을 해도 가위자국이 남지 않아 매우 자연스럽고 유행을 따르는 듯 아니 따르는 듯 손님에 맞게 적당히 머리를 다듬어주었다. 그 '적당히'의 참맛을 아는 아줌마 이발사가 있는 곳이었다. 재밌게 생각되었던 건, 이 30대의 이발사는 보통 생각하는 성실성과는 거리가 먼 분이었다. 공휴일은 말할 것도 없고 평일에도 여의치 않으면 가게문을 열지 않았다. 손님들이 아쉬운 게지 이발사인 나야 아쉬울 게 뭐 있느냐, 는 식이었으나 그래도 가게는 늘 손님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친절하지 않고 자기 할 일만 하는 이발사였으나 머리 하나는 똑부러지게 깎았고 가격도 성인컷이 7,000원이어서 머리를 깎으려면 우선 가게는 열었는지, 기다리는 손님은 몇명인지 살펴보는 게 일이었다. 모든 기다림과 불편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한동안 매우 흡족해했다.

 

그런데 어느날 예고도 없이, 유리에 붙이는 종이쪼가리 하나 없이 그 이발소가 문을 닫아버렸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동네에 새로 들어선 미장원을 다니게 되면서 사유를 듣게 되었다. 문제는 임대료였다. 월세 60만원이었던 것이 갑자기 100만원으로 올랐다고 한다. 100만원이면 한 달에 (100만 원÷7000원= 142.86) 성인컷으로만 따져도 142명이다. 142명의 머리를 깎아서 그대로 가게주인에게 바쳐야 한다. 임대료라는 명목으로. 현대판 노예에 다름아니다.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평소에도 가게문을 성실하게 열지 않았던 (아마도 자존심 강한) 분이었기에 이런 상황을 참고 받아들일 수 없었으리라. 성실성에 억매이지 않고 배짱좋게 하고 싶을 때 일하는 그 분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는데, 매우 아쉽다. 그 가게앞을 지나갈 때마다 '꼭 성실하게 살아야 하나'를 늘 자문하게 했던 분. 어디에서건 무탈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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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출근할 때 차창밖으로 산책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작은 한숨을 쉬곤 한다. '나도 저렇게  아침에 산책하고 싶다. 저 사람들은 출근하는 나를 부러워할 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오늘 아침 산책길에 나섰다. 휴일모드에 젖은 몸은 무겁고 마음도 어지럽다. 퇴근할 때 걷는 습관이 몸에 배어서인지 아침산책은 참 낯설고 몸도 따라주지 않는다. 날씨 탓인가. 엇그제 완독한 스밀라의 여운인가. 그러고보니 겨우 몇장 찍은 사진도 스밀라에 나올 듯한 장면같다. 무거운 하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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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읽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 틈틈이 책을 읽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유혹도 물리쳐야 한다. 눈 앞에 애완동물처럼 늘 나만 쳐다보고 있는 인터넷을 이겨내야 하고, 처리해야 할 잡다한 일에도 눈을 감아야 한다. 허나 겨우 몇 줄 읽다보면 앞에서 읽은 내용이 벌써 가물가물한 가운데 겨우 흐름을 잡으려는 찰나 아쉬움을 달래며 손에서 책을 놓아야 한다. 그리고 책이 재밌기나 한가. 추리소설이라기에 단숨에 읽겠지, 했는데 그러기는커녕 어떤 문장은 읽고 또 읽어야 겨우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고 -직설적인 표현보다 에두르는 표현이 많은 건 번역체이기 때문일까 -  낯선 용어는 아무리 읽어도 낯설기만 하다. 견디다못해 와중에 다른 책에 손을 대기도 하는데 양다리 걸친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다.

 

온갖 유혹을 이겨내고 완독을 하고나니 내심 뿌듯하긴 한데, 무엇이 남았지? 주인공 스밀라가 강한 인상으로 남고, 덴마크와 그린란드의 관계에서 그린란드인의 강한 기질에 관심을 갖게 되고, 덴마크와 그린란드의 역사를 좀 더 알아야겠다는 호기심을 남기고, 가능하다면 그린란드에도 한번 가보고싶다는 열망을 남긴다. 소설 한 권이 이만큼 남기면 족하지 싶기도 하다.

 

이 책을 다시 읽고 싶다. 만사 제쳐두고 짧은 시간내에 오로지 이 책만 읽고 싶다. 그러나 읽지않은 책이 너무나 많이 나를 에워싸고 있다.

 

다음은 열심히 읽었다는 흔적. 덴마크인과 그린란드인의 특성을 비교한 문장이 종종 나오는데 메모해두지 않았더니 후회스럽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은 아주 적다. 성급한 성격 때문에 대화에서 빠져나오거나, 마음속으로 그 상황을 개선시키려 하거나, 언제 등장할지 준비하고 있다가 상대방이 입을 다물면 그때 무대위에 발을 내딛는다.

그 애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세상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

느린 사람들에게는 세상의 시간을 다 줘야만 한다.

오랫동안 물리적 폭력성이 인간 관계를 따라다니다 보면, 때로는 공개적으로 터뜨리는 편이 안심되기도 한다.

순록처럼 겁 많은 동물을 사냥할 때는 일부러 몇 번 씩 우리 모습을 보게 해야 해요. 일어나서 총개머리판을 흔드는 거죠.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의 뇌 속에서 공포와 호기심은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순록은 가까이 와요. 위험하다는 걸 알죠. 그래도 그처럼 움직이는 게 뭔지 와서 봐야 하는 거예요.

이름을 잘 지억 못한다는 거.....일종의 징후다. 진정으로 자기 중심적인 사람에게 주위 세계는 희미하고 이름이 없는 것이다.

썰매 여행에서 딱 하나 금지된 것이 있다면 징징대는 것이다. 징징대는 것은 바이러스로, 치명적이고 전염성이 높아 쉽게 감염되는 질병이다. 나는 징징대는 소리를 들어주는 것을 거부한다. 감정적 치졸함의 향연에 같이 엮이는 것을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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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한 당신 - 뜨겁게 우리를 흔든, 가만한 서른다섯 명의 부고 가만한 당신
최윤필 지음 / 마음산책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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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고마운 책이다. 같은 인간이지만 인간의 품격을 한층 높여준 사람들의 인생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읽는 도중이지만 뭔가 읽었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성급함으로 몇 문장 옮겨놓는다.

 

 

 

딘 포터(1972~2015) :익스트리머

돈이나 명성보다 스릴 자체를 중시하는 익스트리머들은 아무렇게나 입고 잘 씻지도 않는다. 오지에서 지내는 때가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목숨을 반쯤 내놓고 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들은 법이나 관습보다 중력에 얽매인다.....'더트백dirtbag은 한 발을 세상 바깥에 두고 사는 그들을 통칭하는 용어다. 돈벌이에 관심 없고 사회적 규범과 관습에 구애받지 않아 히피와 흡사하지만 구체적인 목표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그들과 다르다.

"인간이 난다는 게 미친 생각이란 걸 나도 안다. 하지만 언젠가 그게 가능해지려면 생각이 허용하지 않는 곳으로 누군가는 나아가야 한다."

 

 

 

 

더글러스 톰킨스(1943~2015): 노스페이스 창업자. 환경운동가

톰킨스의 1980년대는 새로운 생태주의적 각성의 시기였다......인간은 생존의 필요와 무관하게 자연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철학, 인구가 너무 많다는 각성, 자연을 살리자면 경제 패러다임을 근본부터 바꿔야 한다는 생각, 한마디로 자본주의의 미래는 없다는 깨달음.

더글러스 톰킨스는 몽상가였다 그의 꿈은 자연보호가 아닌 자연의 복원이었다...그는 뭇 생명을 자연으로서 사랑했지만 인간만큼은 反자연으로 여겼다. 자연과 항구적으로 공존하기에 인간은 못 믿을 존재였고, 또 너무 많았다. 그가 지구 끝, 인적 드문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광막한 숲과 초원, 화산과 습지와 강과 피오르해안에 제 꿈의 거처를 마련한 까닭이 그거였다. 220만 에이커(약 27억 평), 서울 면적의 열다섯 배. 그 땅은 자연의 피난처가 아니라 수복의 거점이었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는 "훗날 사람들이 이 땅을 걸을 것이다. 무덤보단 이게 더 아름답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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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oo 2016-09-18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딘 포터 글 읽고 유튜브로 영상을 여럿 찾아 봤어요. 정말 대단한 사람들 많더군요.

nama 2016-09-19 07:41   좋아요 0 | URL
아하, 유튜브가 있었네요.
그런 사람들 덕에 삶의 지평이 넓어지는 것이겠지요.

낭만인생 2016-09-20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도 있네요.. 재미난 분들이 많군요.

nama 2016-09-20 20:10   좋아요 0 | URL
지구의 크기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감동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