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의 여행 방법은 이렇다. 

비행기 탑승을 기준으로 전반과 후반으로 나눈다면, 전반은 내가 맡고 후반은 주로 남편이 맡는다. 여행지 선정 및 일정 짜기, 항공권 확보, 여권 관리 및 비자 신청, 가이드북 및 달러 확보, 숙소 탐색 및 예약, 배낭 꾸리기는 내가 전적으로 담당하는 데 물론 남편의 옷이나 소지품은 남편이 챙기긴 한다. 그것마저 내가 해주길 바라는 눈빛이 간절하지만 요것만은 아니 되옵니다. 중간 중간 일이 되어가는 과정을 수시로 말해주지만 남편은 건성으로 들어줄 뿐, 나도 그저 혼자 신이 나서 떠들고 있다고나 할까. 여행은 준비 과정 자체가 이미 여행에 들어간 건데 이 즐거움을 남편은 나누려하지 않는다. 모르는 걸까, 모르는 척하는 걸까. 

내가 완벽하게 꾸려놓은 배낭(이번 여행에서는 세 식구 모두의 배낭 무게를 합쳐도 10kg을 넘기지 않았다.)을 남편이 손에 들고 현관문을 나서면 그때부터 내 임무는 일단락된다. 그리고 일단 비행기에 탑승하면 무수리였던 나는 이제부터 여왕의 자리에 오른다. 남편은 이때부터 본격적인 여행지 탐색에 나서기 시작한다. 준비 과정에서 온갖 잡다한 정보를 미리 확보한 나를 데이터베이스삼아 지도부터 머리에 각인시킨다. 훌륭한 참모 덕택인지 아니면 타고난 공간지각력 덕분인지, 남편은 내가 그간 노력해온 과정을 단숨에 소화해내는 건 물론 지도력과 통솔력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현지에 도착하면 고개를 몇 번 두리번거리면서 어디로 가야할 지 방향을 잡는다. 내가 남편을 보고 이 부분에서 매번 놀라는 것은 마치 사전 답사를 갔다온 사람처럼 현지 지리를 금방 파악한다는 점이다. "우리 몰래 먼저 와 봤었어?" 한마디 해주면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남편, 귀엽다. 

주로 인터넷으로 책을 구입하지만 어쩌다 서점에 가게 되면 꼭 들러보는 곳이 여행관련서적 분야인데, 이곳은 갈 때마다 조금씩 놀라곤한다. 진화라고 해야할까, 진보라고 해야할까. 자고 일어나면 도로가 생기고 건물이 들어서는 것처럼 자고 일어나면 가이드북이 나와있고 여행 에세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이런 변화는 여행 과정에서도 일어나는데... 

분홍색과 하늘색(파랑색)으로 알록달록한 쿠폰북 모양의 항공권을 만져본 적이 언제였던가 싶게 이제는 e-ticket이 일반적이다. 이 e-ticket에 겨우 적응해가고 있는데 이번에는 한 술 더 뜬다. 발권을 무인 발권기에서 하라는 거다. 이 무인 발권기를 kiosk라고 부른 다는 것도 대한항공의 집요한 홍보 때문에 알게 되었다. 이메일로 무인 발권 방법을 알려주기- 이 이메일을 읽어봤는지 확인 이메일 다시 보내기- 출발 전날 휴대폰 문자메세지로 kiosk 사용하라고 압력가하기...완벽한 확인 사살이다.   

항공권 구입 과정에서 처음에는 애를 먹었다. 여행사(<여행박사>)에 대마도행을 일단 예약부터 하고보니 부산대리점으로 자동 연결이 되어서 부산 사람들의 구수한 사투리를 듣게 되었다. 개별 여행은 힘들 거라는 직원의 상담에 의기 소침해져 며칠 대마도행을 고민하다 취소하고 결국 홍콩행 항공권 구입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는데, 그런데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가 사는 곳이 인천이라고 말을 했었건만 부산 출발의 비행편을 예약하는가 하면 인천 출발은 서울 본사에서 알아봐야한다는 것이다. 세상에..자판 몇 번 두드려보면 다 나와있을텐데..귀찮아하는 게 역력하여 모두 취소시켜 환불 조치해버렸다. 

환불 조치 전에 그 여행사 사이트를 자세히 살펴보니, 항공권 구입을,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 내 마음대로 항공사를 선택하고 예약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래서 자신있게 환불을 요구했었는데 생각해보니 예약금을 환불하지 않고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같은 여행사이니까. 그러나 귀찮아하던 그 직원과 다시 통화하기가 싫었다. 사람이 오히려 불편한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여행사 직원이 친절할 필요가 없었던 이유가. 항공권 구입부터 공항에서의 발권이 모두 컴퓨터를 상대로 이루어지니, 80년대 초반 일찍 결혼한 친구들의 제주도 신혼 여행 때의 왁자지껄한 공항 배웅같은 것은 구전되어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이제 여행은 배웅도 환영도 없는 일상일 뿐이다. 

이렇게 컴퓨터를 상대로 한 일방적인 구입 행위를 통해 그나마 저렴해보이는 대한항공을 이용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숙소는? 어느 여행관련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홍콩 시내 중심가(침샤츄이지역)에 한인 민박이 여러 개 있었다. 그 주소이다  

http://www.hansungmotel.com/ 

http://www.monicamotel.com/ 

http://www.parkmotel.co.kr/

http://www.motelgreenhouse.com/ 

이 외에도 더 있는 것으로 알고있다. 우리는 이 중에서 모니카모텔에 묵었다. 이 숙소에서 좀 놀라웠던 점은, 우리 나라 사람들의 여행층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부모 따라온 10대부터(우리 딸) 머리 희끗희끗한 60대까지를 이 짧은 기간에 모두 보았으니 말이다. 정해진 밥 시간에 식탁에 앉아서 밥을 넘기고 있으면 이들을 향한 호기심이 스멀스멀 일어난다. 말을 걸고 싶고, 누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주기를 은근히 기대해보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아무런 얘기도 오가지 않는다. 묵묵히 밥만 먹는다, 모두들. 낡은 작은 건물의 2층과 3층에 있는 이 모텔의 숙박객은 모두 한국인이다.

외국에 있는 한인 운영 숙소를 단순하게 구분하면 이렇다. 한국인만 찾느냐, 아니면 외국인도 찾느냐. 외국인도 이용하는 숙소라면 일단 기본 서비스는 갖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별 무리가없다. 그러나 한국인만 이용하는 숙소라면 최소 한가지 이상은 눈을 감아줘야한다. 화장실의 수도 꼭지, 샤워기, 변기 등의 시원찮음은 보통이다. 있잖은가.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70~80년대 관광지의 민박집같은 시설을 떠올리면 된다.  

내가 경험한 최악은 파리의 한인 민박이었다. 때는 90년대 중반. 허름한 창고 같은 임시 건물에 칸을 막고 합판을 깔아 마굿간 비슷하게 만든 조악한 시설물이었다. 게다가 아침, 저녁 밥으로는 김치 한 가지가 반찬의 전부였다. 같은 밥상에서 먹던 장기 투숙생이 남긴 계란 부침 한 조각이 그나마 주인 아주머니가 베푼 관용이라면 관용이었다. 그 계란 부침 한 조각에 남편은 끝내 눈살을 찌푸리고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당시 임신중이었던 나는 그 음식에 손을 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모멸감이라니. 그 주인 아주머니는 하루종일 기독교 성가를 크게 틀어놓고 늘 흥얼거리고 있었다. 차라리 뽕짝이라도 틀어놨더라면 덜 미웠을 텐데... 

우리가 3일간 묵었던 홍콩의 모니카모텔은 나의 오래된 구원(오래된 원망)을 한 방에 날아가게 해주었다. 아침, 저녁 식사가 모두 훌륭했다. 반찬을 세어보니 8가지, 국도 얼큰해서 하루의 피로를 풀게 해주었다. 물론 이삼일 있다보니 그 국이라는 것도 먹다 남은 반찬을 한꺼번에 넣어 끓인 것이긴 하지만 아침밥의 국은 그래도 늘 변한다. 해외에서 이 정도의 대접을 받아본 경험이 있었던가. 밥상만으로 이 모니카 모텔은 훌륭했다. 화장실 변기가 시원찮아 늘 물이 줄줄 새는 정도라든가, 세탁 건조기가 없어 세탁한 침구를 실내에서 선풍기로 말리는 바람에 숙소 전체가 세제 냄새에 잠겨있다던가 하는 열악한 부분이 있지만, 허나 숙박비가 저렴하지 않은가. 그래도 깨끗한 숙소가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늙어가나 보다. 그런데 왜 깨끗하고 멋졌던 숙소보다 늘 꾀죄죄하고 더럽고 보잘 것 없는 숙소만 기억에 남을까.

이 글은 믿을 수 없는 내 기억력을 위해, 나를 위해 남기는 정보이다. 다음에 홍콩에 다시 갈 때를 위한 글이다. 그래서 하나 더.  

  • 가이드북:"여행박사"에서 나온 소책자 <여행박사가 먼저 다녀온 홍콩배낭노트>와 얇은 가이드북 한 권이면 족하다. 이 이상이면 책에 치이게 된다. 가이드북이 진정 본연의 빛을 발할 때는 여행을 끝내고 나서이다. 가기 전에 읽으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여행 후에 읽게 되면 내용이 확실하게 머리에 들어온다. 마치 오답노트를 들여다보는 기분이랄까.  그러나 나는 때때로 가이드북 없는 여행을 꿈꾸어본다. 잘 만들어진 각종 여행 안내서 덕분에 실제 외국어로 길을 묻거나 도움을 청할 일이 거의 없다. 외국어를 잘해야만 외국 여행을 잘할 수 있다는 것도 이제는 수정되어야한다. 적어도 홍콩 같은 대도시에서는 말이다.
  • 교통카드:공항의 customers service center에서 옥토퍼스 카드 구입(보증금 50$ 포함 150$). 온갖 탈 것을 택시를 제외하고는 다 타는 것 같음. 심지어 자판기의 음료수나 뽑기도 할 수 있음. 다 쓰고 나면 출국 전에 구입한 곳에서 Refund, please. 하면 7달러를 떼고 정산해준다. 
  • 우리의 남대문 시장이라는 몽콕 시장은 사람에 치이는 곳, 차분히 쇼핑하기에는 shopper's lane 이 좋음. 몽콕 시장에 있는 왠만한 브랜드는 거의 다 이곳에 있음. 가격도 같음. 
  • 한여름은 피할 것. 야외 사우나라고나 할까. 
  • 홍콩을 상징하는 한 곳을 뽑는다면?....홍콩섬의 에버딘이라는 곳. 잠깐 눈길만 주고 왔지만 참 묘한 풍경을 보여준다. 현대식 고층 아파트를 배경으로 포구에 여러 가지 선박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든다. 꼭 합성 사진 같다. 
  • (2010.8.12 추가기록) 지하철 Centra Staion 과 연결되어 있는 홍콩역에서 간단하게 출국 수속을 밟을 수 있다. In-town checkin이라는 표지판을 따라가면 간단하게 짐을 부칠 수 있어서 나머지 홍콩 여행을 가볍게 할 수 있다. 단, 약간의 수수료가 부과되는 데 수속시 지하철 개찰구처럼 생긴 지점을 통과해야 하는데 옥토퍼스 카드를 사용하면 된다. 몇십 달러가 드는 것 같은데 멋모르고 카드를 찍고 들어가는 바람에 꼼꼼하게 살피지 못했다.(마트에서 물건값 생각지 않고 마구 집어 넣는 습관 때문이리라.)이렇게 몸을 가볍게 한 후 란타우섬으로 가서 케이블카도 한 번 타보고 쇼핑도 하면 되는데, 주말에 케이블카를 타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엄청난 인파 때문이다....실컷 시간을 보낸 다음에 공항 가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빙빙 돌아가고 갈아타고 하는 전철은 무시하시라. 란타우섬의 통총역 가까이에 있는 버스터미널에서 S1 버스를 타면 10분이면 공항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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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간:2009년 8월 14일~8월 17일 /*환율: 홍콩1$=약 162원

서울 사는 사람이 부산이나 혹은 광주쯤 갔다와서 기행문 따위를 쓰는 일이 있을까?  

홍콩이 그렇다. 바다 건너 다른 나라라기 보다는 좀 멀리 떨어진 여느 도시 같은 인상이기 때문이다. 홍콩과의 실제거리라는 것이, 서쪽 끝인 인천에서 동쪽 끝인 강릉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이기도하다. 연휴나 휴가 때면 10시간 정도는 너끈히 걸리고도 남는 국토 동서횡단에 시달려본 사람은 알 것이다. 홍콩까지의 비행 시간, 3시간,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갈 수 있는 거리라는 것을. 

캐세이퍼시픽 항공의 비행기를 싼 맛에 몇 번 타보면 언젠가는 홍콩에 내릴 기회가 오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내 얘기다. 그래서 홍콩은 애써 피했다. 어차피 한번쯤 가게 되리라 생각했었다. 유럽 갈 때, 인도 오갈 때, 툭하면 들르는 도시가 홍콩이었다. 그러니 나의 홍콩 경험이란 것이, 참새 방앗간 같다고나 할까, 다음 비행을 기다리며 공항에서 시간 죽이기와 하룻밤 잠을 자면서 날짜를 보내는 bed city(?)가 전부인 셈이다. 결국은 지금까지 기회가 없었다는 얘기다. 흠, 부산에 몇 번이나 가봤던가. 광주는? 마음만 먹으면 주말에라도 갔다올 수 있을 것 같지만 어디 그런가. 

이번 여름 애초의 목표 여행지는 대마도였다. 늘 예산 걱정에 여행지 선정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올해는 특히 대공사에 들어간 남편의 치과 치료로 선뜻 여행에 나서기가 두려웠다. 게다가 늘 나를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내 불우하고 불쌍한 부모형제를 생각하면 우울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학교에서는 방과후 수업으로 몸의 균형이 깨져 몸은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여름방학마저 열흘간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방과후 수업을 해야만 했다. 그래도 별도로 받는 이 방과후수업 수당 덕에 옴짝달싹할 수 있었으니 한편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일찌감치 대마도를 목표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책을 읽어나가다 보니 의외로 공부하는 맛이 났다. 그간 제대로 아는 것도 없었다는 한탄 내지는 자책도 들어 모처럼 겸손해질 수 있었다. 대마도와 관련된 덕혜옹주까지 접근하게 되니 대마도의 역사 지도가 머리에 그려지기도했다. 특히 주강현의 <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를 통해서 역사를 보는 관점이 육지에서 바다로 확장되는 경험도 하게 되었는데 특히 바다를 무대로 세계를 주물렀던 제국주의 국가들의 활약상(?)은 정말 흥미진진한 읽을 거리였다. 이 책은 주로 우리나라를 둘러싼 식민 제국의 내용들이지만 이 책이 제시한 관점으로 아시아 일대의 국가들을 들여다본다면 무척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홍콩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대마도행이 홍콩행으로 바뀐 결정적인 이유는 여행사 직원의 시큰둥한 반응 때문이었다. 대마도는 대중 교통이 여의치않아 패키지로 가거나 자동차를 렌트해야한다고 하면서 걱정스럽게 상담을 해주는 것이었다. 나는 물론 운전면허증마저 없고, 남편은 해외 운전 경험 전무. 패키지 여행은 아직 할 나이가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고....부산 한 번 제대로 못봤다고 날 잡아 부산 가듯 그렇게 가게 되었다, 홍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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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수치 솔레길 트레킹(2009년 8월 5일)  


 *법수치의 소재지는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법수치리이다.   

 

 등산로가 아닌 임도를 따라 트래킹을 다녀왔다. 법수치 계곡에 작은 오두막을 지은 지 4년 만에 실행에 옮긴 일이었다.

   임도. 내가 이 단어를 접한 지는 몇 년 되지 않는다. 임도란 산불방지 등 산림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산에 만든 폭 3m~7m의 인공 도로이며 당연 비포장이다. 아무리 보아도 2m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3m 너비 도로의 실제가 궁금해서 언젠가 직접 실험을 해 본 적이 있다. 30cm 자를 두 번 연속해서 60cm를 재는 것처럼 내 몸이 자가 되어 도로에 누워보니 내 키로 딱 두 번 길이다. 정확하다.

   임도는 주로 7~9부 능선 높이쯤 되는 것 같은데 물론 아무나 들어가게 하는 것은 아니리라. 남편과 딸아이는 초입에 있는 바리케이드를 돌아서 길에 들어섰고 나는 바리케이드 밑을 통과했으니 말이다. 몇 해 전 산불로 큰 피해를 입은 양양군인지라 산불 관리는 엄격한 편으로 산불이 많이 발생하는 기간에는 산의 초입에 산불 감시인이 상주하다시피하며 산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남편과 내게는 입산금지 지역에도 들어갈 수 있는 ‘증’이 하나씩 있다. <명예산림보호지도원증>이 그것이다. 2007년 1월, 닷새에 걸친 산림청 연수를 받은 덕분에 얻을 수 있었던 ‘증’이다.

  그런데 이 ‘증’이 먹히지 않는 녀석이 있으니 바로 뱀이다. 그렇잖아도 뱀과 공생하는 동네인데 아무래도 이 뱀의 존재에 자꾸 온신경이 집중되는 거다. 이곳은 청정 지역이라 모기마저 얼마나 에너지가 충만한지 한 번 물리면 몹시 가렵고 그 자국도 한참이나 남아있어 주위 사람들이 피부병으로 오해할 정도가 된다. 이런 곳에 뱀이라니. 모르긴 몰라도 한 번 물리면 고생깨나 할 것이다.

  하루 전, 양양 시내에 나가보니 마침 장이 서는 날이다. 좌판에서 생산지 불명의 작은 금속 방울 두 개를 5,000원을 주고 샀다. 이것들을 남편과 딸아이 등산화에 매달아보니 나름 낭만적이고 음악적이면서 무슨 부적마냥 마음 한 구석이 평온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뱀이 청각이 발달했나? 하여튼 방울을 달고 출발은 했는데 그래도 여간 불안한 게 아니다. 트래킹용 샌들을 겁도 없이 맨발에 신고 있는 나는 방울도 없어 더욱 불안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란 걸을 때마다 스틱을 땅바닥에 치면서 땅을 울리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 스틱이지 마당가에 굴러  다니는 부러진 나뭇가지를 남편이 내 키에 맞게 잘라준 것일 뿐, 남편 말마따나 뱀이 나타나면 뱀을 때려잡아야 할 텐데 제발 땅울림에 스스로 물러나 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게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길 뿐이다, 뱀아, 제발.....

 

  계속 임도를 따라 걷는다. 길은 셋이 나란히 걸을 수 있는 폭이지만 빗물에 쓸려 내려가서 생긴 바닥의 홈 때문에 딸을 앞세우고 종대를 이루며 걷는다. 장대한 산들이 겹겹이 둘러싸여 있어서 산이 깊고 그늘도 더불어 깊다. 차량이 다니는 도로라서 경사도 그리 급하지 않아 불평 많은 딸아이도 소리 없이 잘 걷는다. 지리산의 오밀조밀한 오솔길이 살짝 그리워지기도 하지만 인적 없는 산길을 호젓하게 걷는 맛도 일품이다. 숨바꼭질하듯 꼬불꼬불한 산길을 걷다보면 어느 새 저 멀리 계곡과 집들이 빼꼼히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아, 저건 누구네 집이네! 반가움도 잠시 어느새 잡풀들로 좁아진 길을 헤쳐가면서 걸어야한다. 이때는 긴장감으로 스릴 만점이다. 꼭 풀 숲 어디선가 뱀이 두 눈을 부릅뜨고 우리를 주시하고 있을 것 같다. 막대기를 더 세게 땅바닥에 두드리며 걷다보니 팔목이 시큰거린다. 그러다가도 야생 산딸기라도 만나게 되면 금세 호들갑을 떨게 된다. “시식용이다.” 라는 남편의 너스레에 즐거워하면서 너 하나 나 하나 먹는다.

 

  2시간 30분이 걸리는 임도를 벗어나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산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를. 그 품이 얼마나 넉넉한지를. 산에서 내려와 이어지는 도로는 진부 방향 강릉 국도인데 아직은 비포장도로라서 옛 길을 따라 걷는 정취는 있다. 허나 너무 덥고 햇볕이 따갑다. 이때부터는 딸아이의 불만이 본격적으로 터지기 시작한다. “내가 (청소년이지) 성인이냐고...(궁시렁 궁시렁)”하면서도 잘만 걷는다. 다시 어성전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 더욱 고역스러워진다.

  어성전의 <주안식당>에서 메밀국수 한 그릇씩을 단숨에 비우고 다시 법수치 계곡으로 향한다. 이제부터는 펜션 단지가 이어지는 길이다. 처음 이 법수치에 왔을 때부터 제일 해보고 싶은 일 중의 하나가 여기 어성전부터 걸어서 올라가보는 것이었다. 드디어 오랜 염원이 이뤄지는 날이었는데....

  트래킹 전, 우리의 산행을 아낌없이 후원해주시던 펜션 <산골여행>의 주인아저씨가 멀리서 우리를 보자 반가워하신다. 여기서 다시 8km 정도는 가야 우리 오두막이 나오는데 더 이상 걷는 것은 무리이다 싶었다. 맨발에 신은 트래킹 샌들도 별 수는 없었다. 물집이 잡히고 살갗이 벗겨져 쓰라렸다. 신제품 트래킹화만 믿었더니 역시 이 고전적인 문제는 해결할 수 없나보다. 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트래킹 신발을 개발한다면 대박 중의 대박일 텐데....

 

  결국엔 우리의 오랜 친구이자 이웃인 법수치 주민인 무엽이 엄마가 차를 끌고 우리를 데리러 왔다. 못이기는 척 차에 오른다.


  미완의 트래킹이었다.  

 

  이 길을 우리는 “솔레”라고 부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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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
주강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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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면에서 생각해 볼 과제를 남기는 책이다. 미국과 일본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도 읽어야 할 책 같다. 

  1. 제대로 알아야 할 독도 문제.....p.143  독도 문제에는 한.일만이 아니라 한.미.일이라는 변수가 숨어 있는 것이다. 미국은 '독도는 일본령'이라고 일본을 지지하였다. 미국은 '독도는 한국령'이라고 말한 적이 결코 단 한 번도 없다. 그렇다면, 오늘의 미국은 독도 문제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취할까. 오늘날도 당연히 일본 입장을 지지한다. 한일간의 첨예한 문제에서 미국은 전반적으로 일본에 점수를 더 주었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친미파는 이 점은 간과하고 '혈맹론'에 목을 매고 있다. ....(미국의) 속마음은 이런 것이 아닐까. '까짓 독도, 일본에 줘버려! 아니면, 같이 쓰든지!'  .....150.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망언'이 결코 아니며, 계획적이고 중장기적인 역사적 전망 속에서 의도적으로 나온 발언이라는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독도 영유권 주장을 그저 망언, 망언 하면서 '망언을 사과하라'는 방식으로 대응해온 우리 자신부터 반성해야 한다.
  2. 이토 히로부미만 알아서는 부족하다....가쓰라 다로: '일제의 한국강점과 미국의 필리핀 식민지배 맞바꾸기'를 성사시킨 일명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당사자...다우치 마사타케:'한국병합조약'에 이완용과 함께 서명....노기 마레스케: 무력으로 일제의 조선강점을 뒷받침, 수많은 의병장들이 그의 손에 죽었다..하세가와 요시미치....소네 아라스케...그런데 이들의 실제 수령은? 아마가타 아리토모로 1896년 5월 크렘린궁에서 열린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참여하여 러시아에 한반도를 38도선에 분할하자고 제의한 육군 군벌의 수령이다. "조선이 일본의 이익선"이라는 말을 남김.
  3. 아름다운 나라 팔라우가 이렇구나....323 유엔의 마지막 신탁통치령이었던 팔라우는 1994.10.1일 독립국가로 다시 태어난다. 독립은 했지만 1944년 미국 점령으로부터 팔라우는 스페인, 독일, 일본, 미국을 거치는 식민지 4대로 접어든 것이다. 4억 5,000만 달러의 경제지원은 처음 15년간으로 약속했지만 자유협약에 의해 50년간, 즉 1994년부터 50년이 지난 2044년까지 미국이 팔라우 영토의 3분의 1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4.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거문도: 제국주의 열강들이 벌였던 각축의 축소판(417) 
  5. 대마도 제대로 이해하기...이훈의 <대마도, 역사를 따라걷다>를 함께 읽으면 완벽할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올 여름의 더위를 식혔다. 작년 여름에는<교토에서 본 한일통사>를 읽고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더위를 이겨내며  일본 관련 역사 서적을 읽노라면 무언가 다짐 같은 게 생긴다. 우선 제대로 알아야겠다. 공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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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김영하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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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8  어떤 풍경은 그대로 한 인간의 가슴으로 들어와 맹장이나 발가락처럼 몸의 일부가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가볍게 전해줄 수 없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다. 그런 풍경을 다시 보게 될 때, 우리 몸의 일부가 갑자기 격렬히 반응한다.....풍경의 장엄함도 우리 몸 어딘가에, 그 자체의 생명을 가진 채 깃든다고 믿는다. 

119. 지중해에서는 겨울을 같이 나야 비로소 이웃으로 인정해준다는 말이 있다. 

207. 정치가 혼란스러우면 많은 지식이들이 할 수 없이 정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에 따라 정치 철학은 발전하지만 그때 발전한 사상들은 그 당대에는 별 쓰임이 없는 경우가 많다. 마키아벨리 역시 피렌체의 혼란스런 정치 상황을 보며 <군주론>을 집필했지만 문제의식은 세월이 한참 흘러서야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기행문을 잘 쓴다는 게 무엇인지를 느끼게 하는 책이고나할까. 참 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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