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은 크기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고 한다. 인구는 1000만 명 정도. 수도인 리스본의 인구는 50만 명.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왠지 부러운 느낌이다. 사람에게 치일 일은 드물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것보다 정말 부러운 건 그들의 언어인 포르투갈어이다. 세계에서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2억 5000만 명 정도라고 한다. 과거 식민지였던 나라들에서 포르투갈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들 나라로서는 억울한 일일 것이나 현재는 언어공동체를 이루며 친목과 단합을 다지기도 한다고 한다. 이름하여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Communidade dos Paises de Lingua Portuguesa, CPLP) 회원국은



포르투갈

브라질

앙골라

모잠비크

카보베르데

기니비사우

상투메프린시페

적도 기니

동티모르

마카오(다른 책에서는 마카오가 빠져있다)


이들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지역을 일컬어 일명 루소폰이라고도 한다.

















'루소폰에 생소한 섬나라나 소규모 국가들이 있는 것은 대항해 시대와 관련이 있습니다. 대항해 시대에 포르투갈이 본국과 식민지 사이의 항로를 개척하면서, 선원들의 괴혈병 예방과 물자 보급을 위해 주요 항로 상의 섬들을 점령한 것이 현재까지 이어져 지금의 루소폰이 되었기 때문입니다.(p.41)



어제 포스팅한 포르투갈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주앙 피르스는 교육 프로젝트를 운영하였는데 포르투갈 정부와 이견을 보이면서 돌이킬 수 없는 사이로 악화되었다고 한다. 결국 2006년 조국을 떠나 브라질에 정착하여 이전에 시도했던 프로젝트들을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좁은 땅덩어리에 게다가 수도권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살다보니 이런 언어공동체 국가들이 부럽다는 점이다. 여기 아니면 저기에서 살아갈 방법을 강구해볼 수 있다니 생각만해도 희망이 꿈틀거리는 것 같다. 여행은 말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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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신문을 보다가 우연히 알게 된 피아니스트 마리아 주앙 피르스(1944~).






우선 신문에서


'화려한 드레스 대신 간결한 옷에 짧은 머리가 그의 트레이드마크. 피르스가 녹음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집은 애호가들의 필청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다. 피르스는 경쟁을 넘어서는 '대안적 삶'을 추구한다. 생태주의자의 면모도 드러내왔다.'(한겨레신문 2022. 11. 22.)



책에서






 










포르투갈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


2013년에 있었던 로열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와의 런치타임 콘서트 일화는 유명하다.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시작했을 때 그녀는 비로소 자신이 오케스트라와 다른 곡을 준비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연주를 그만두려고 했지만,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의 독려로 결국 그 자리에서 기억을 더듬어 완벽한 아니 그보다 더 아름다운 연주를 완성해 낸다. 이 일화는 영상으로 찍혀서 그녀의 이름을 더욱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p.114






간결한 옷과 짧은 머리의 피아니스트라.....

'다시는 못 들을지도 모를' 내한 공연이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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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2-11-23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신 연주 영상, 저도 두근두근하면서 봤네요.
22일 한국 초연이라고 했으니까 바로 몇 시간 전에 연주를 마쳤겠네요.
연주 목록에 있는 Schubert piano sonata 13번과 21번은 저도 좋아하는 곡들이라서 찾아보았는데, 13번은 그녀가 연주한 영상 (다른 곳에서 연주한)이 올라와있어 들을수 있었어요.

nama 2022-11-23 07:28   좋아요 0 | URL
저도 몇 개 보았는데 젊었을 때보다 지금의 모습이 더 인상적이었어요. 쭈글쭈글한 손가락, 더 간소해진 옷차림과 짧은 머리. 연주에 집중이 잘 되더군요. 존경스러운 마음이 절로 우러났어요.

라로 2022-11-23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군요!! 지휘자도 정말 그렇고,,, 대단해요!!! 그 말 말고는 무슨 말을 할지...

nama 2022-11-26 22:56   좋아요 0 | URL
저 사건(?)으로 더 유명해졌다고 하네요. 인생 알 수 없어요~~~
 


세월호 때 안산시 합동 분향소에 갔었다. 출입문에서 분향대까지 걸어가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렇게나 많은 아이들이었다니....넓은 실내체육관 한 면을 차지한 영정과 위패, 그리고 꽃장식. 어떤 괴기영화보다도 괴기스럽고 어떤 스릴러보다도 소름끼치는 장면이었다. 영정 하나 하나를 살펴보기가 겁나고 무서웠다. 안타까운 마음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교복을 단정하게 입은 아이들 사진은 꼭 학급 출석부에 있는 사진첩 같았다. 사진첩 속 아이들이 한꺼번에 사라지다니....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잊히지 않는 장면이었다. 그후 서대문에서 시청앞광장까지 진행된 전교조 시위 대열에 참가하고, 촛불집회에도 여러 번 참가했었다. 마음이 너무나 아파서였다. 눈가에 자꾸 눈물이 맺혀서였다.




영정도 위패도 없던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 독립운동하던 시절도 아니고 고인들의 면면을 외신으로 접해야하나.


행여 국민들이 마음 아플까, 눈물 흘릴까, 잠 못 드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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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얘기를 듣고 찾아간 노추산 모정탑. 강릉 시내에서 한참 들어가는 산골마을에 노추산이 있고 그 산속에 모정탑이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노추산 모정탑길을 설명해주는 안내판이 하나 서있다.


"차순옥 여사는 강릉으로 시집와서 슬하에 4남매를 두고 지냈으나, 언제부턴가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노추산 계곡에 돌탑 3,000개를 쌓으면 집안에 우환이 없어진다는 신비한 꿈을 꾸게 되었다.


돌탑을 쌓을 장소를 찾던 중 율곡 이이 선생의 정기가 서려 있는 이곳에 26년간 돌탑 3,000개를 쌓았다.


돌탑이 늘어날수록 집안은 평온을 되찾았고 돌탑을 완성한 그즈음 차순옥 여사는 2011년 9월 향년 66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노추산 모정탑길은 율곡 구도장원비와 함께 소원성취 기원의 명소로 알려지며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곧이어 장정같은 탑이 우뚝우뚝 솟아있지만 이건 마을사람과 여행객들이 쌓은 것이고, 다음 사진의 안내석이 나와야 본격적인 차순옥 여사의 돌탑길이 시작된다.

















이 분이 차순옥 여사이다.



어떤 우환이기에, 어떤 심정이었기에 저렇게 탑을 쌓았을까. 저 위에 옮겨 적은 내용으로는 알 수가 없어서 검색을 해봤는데, 몇년 전의 안내판에는 좀 더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글에서 내가 굳이 밝힐 일은 아닌 것 같다. 더 이상 알겠다고 검색할 일도 아닌 것 같다. 마음만 무겁게 가라앉을 뿐이다. 그저 가족의 우환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렇게 탑을 쌓아야했을까 하는 심정을 헤아릴 뿐이다. 탑을 쌓는 일은 삶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서이고 무너지는 몸과 마음을 곧추 세우기 위해서였겠구나 그저 짐작할 뿐이다. 3,000개의 탑을 쌓았다는 위대함보다 돌멩이 하나하나에 서렸을 눈물과 한숨 그리고 꿈이 절절하게 다가오는 광경이었다. 






겉껍질을 벗긴 자작나무의 속살. 새하얀색 수피와 손톱으로 긁은 것 같은 갈색 가로줄무늬는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다. 노추산 모정탑을 보고 온 여운이 남아서인지 저 가로줄무늬 하나하나가 마음을 할퀴는 것 같다. 찌릿찌릿 아프다. 그림 이상의 그림이다.





머잖아 화목난로 속으로 들어갈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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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nama > 다시 읽어봐도 맞는 말씀

9년 전에 올린 글을 작년에도 올렸는데 올해 또 올린다.
엿도 아깝다. 엿 고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인데. 나라를 거저 먹으려는 자들은 엿부터 고아봐라.
고만큼이라도 땀 흘려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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