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92 ..제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크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p.111 사람들은 보통 가난한 마을이나 에이즈에 걸린 아이에 관한 방송을 보면 마음 아파한다. 파리가 온 몸에 붙어 있는 어린이나 먼지 속에 누워있는 굶주린 가족의 사진을 보여주는 것이 기금을 모으는 데는 효과적일 것이다. 이런 방송을 볼 때마다 나 역시 마음이 너무 아프지만 후원금을 조성할 때 가난을 이용하는 것은 되도록 피한다. 이런 영상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물론 내 생각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죄책감을 마케팅 도구로 이용할 생각은 전혀 없다.

p.149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훈은 '크게 행동하라. 아니면 집에 가라'였다. 변화를 만들길 원한다면 기억해야 할 말이다. 아직도 전 세계에는 많은 문제들이 있다. 시간을 들여 열정을 보이고 싶다면 원대한 방법으로 생각하고 뛰어들어야 한다.

p.195 "실천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실천하고 있는 사람을 비난해선 안 된다."(중국속담)

** 이 책은 읽기에 따라 성공담일 수도 있고, 자기계발류일 수도 있는 책이다. 하여튼 저자는 세상을 바꾼 사람임에 틀림없다. 부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지난 인도 여행 중 콜카타의 헌책방에서 사 온 <판차탄트라>라는 어린이 동화책을 뒤적이다 발견한 사실.

먼저 판차탄트라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이렇다.

The stories of Pnachatantra, originally written in Sanskrit, are very old. Legend has it that a king who had three foolish sons engaged a versatile teacher, Vishnusarman who taught them how to be happy and be successful in life.  Pancha means five, tantra means doctrines of conduct or modes of action, namely, confidence or firmness of mind, creation of prosperity of affluence, earnest endeavour, friendship, and knowledge.

주로 동물 이야기를 통해서 생활의 지혜를 어린이에게 가르친다는 내용이다.

아랍문화권의 <칼릴라와 딤나>는 물론 <그림동화>, <아라비안나이트>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물론 우리 나라의 <별주부전>의 할아버지뻘되는 작품도 있다. <The Monkey and The Crocodile>인데, 이걸 읽으면서 생각한 점은.....'한국 고유'의 어쩌구 하는 표현을 섣불리 하면 좀 뭔가 모자라 보인다는 것이다. 어릴 적 '한국의 푸른 가을 하늘'도 그랬었다. 더 푸른 하늘도 세상엔 널려 있건만 유독 우리의 가을 하늘이 제일인 것인양 내세웠던 시절. 얼마나 자랑 거리가 아쉬웠으면 그랬을까 싶다가도 한바탕 속은 것 같은 묘한 기분이었다.

내 생각이란 것도 사실은 내게 아니고 어디서 왔겠지만서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완득이] 서평단 알림
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라딘 서평단 도서입니다)

   이 청소년 소설을 읽어 나가면서 나는 작년에 내가 담임을 맡았던 한 아이를 계속 떠올렸다. 입학식 날부터 주먹을 휘둘러서 나를 적잖이 긴장시키더니 일년 내내 그 주먹으로 여러 사건을 만들어내어 담임으로서 선생으로서의 내 무능을 일깨워 주었던 녀석. 그 녀석한테 맞고도 담임인 내게 말을 할 수 없었던 아이들. 보복이 두렵고 담임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는 무력감이 감도는 학급의 묘한 분위기. 설득도 훈계도 징계마저도 전혀 소용에 닿지 않는 상황.

 

 

그럴 즈음 미국의 교육 전문가 루비 페인 박사의 기사를 읽었다. (2007.6.12 한겨레신문)


대부분 중산층 출신인 교사들은 빈곤층 학생들의 의지부족․능력부족․태도불량 등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속수무책을 하소연한다. 그러나 페인은 이것 역시 ‘계급적 특성’의 일종으로 교사들은 가령 저소득층 학생들이 싸움을 일삼는 것은 싸움이 그들에겐 중요한 생존기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싸움하지 말라’고 설득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오히려 교사의 역할은 이들에게 ‘빈곤층을 벗어나 중산층이 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의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얻고 화이트칼라 직업을 얻고 싶으면△공식적인 자리에서 사용하는 언어 습관을 익히고 △물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버리는 등의 습관을 익히도록 교육하라는 얘기다.


얘기는 그럴 듯한데 이것도 해결책은 아니다 싶었다. 아이의 눈빛에서 희망을 읽어 내고 싶은데 소통 두절 상태에 빠진다. 서로 마음을 열지 못한다. 온갖 타이름과 훈화, 조언, 설득은 일방적인 지시 내지는 잔소리의 영역에 머무를 따름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이 아이들이 과연 ‘빈곤층을 벗어나 중산층이 되고 싶’어할까?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얻고 화이트칼라 직업을 얻고 싶’어할까? 학교 시스템에서는 이 아이들을 자극시키거나 성적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지 못한다. 성적에 관심이 있다면 그 정도로 막 나가지는 못한다. 아, 이 무능함과 막막함이라니......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보자. 장애인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주인공 완득이. 새롭고 재미있는 캐릭터인 담임이자 사회 선생인, 똥주. 이들을 둘러싼 우리의 보잘것없고 서러운 이웃들. 우선 재미있고 유쾌하다. 잘 읽힌다.

   그러나 이런 점은 너무 쉽고 안일하게 처리하지 않았나 하는 점이 몇 군데 있다.

먼저 똥주는 교회에 다닌다. 똥주를 죽이고 싶을 만큼 싫어하는 완득이는 ‘싫어하는 사람을 위해 교회를 찾았고, 좋아하는 운동을 하기 위해 체육관을 찾았다. 내 몸을 언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몰라, 내 몸을 잘 움직여줄 수 있는 체육관을 찾았다.’고 말한다. 체육관이야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다. 허나 싫어하는 사람을 죽여 달라고 기도하기 위해 가는 교회라도 교회에 나갈 정도라면 희망을 품은 아이다. 그러나 현실의 주먹짱은, 내가 알고 있는 주먹짱은 절대 이런 생각하지 않는다.

   똥주 선생. 외국인 근로자의 인간적인 대접을 위해 교회 건물을 사들여 운영하고 생활은 옥탑방에서 한다는 설정. 이게 정말 가능한 이야기인가. 악덕 기업주인 아버지의 부당함에 대한 저항이나 속죄라고 보기도 그렇고, 희생정신이 투철한 천사표로 단정하기에는 그 인물됨의 깊이가 부족해 보인다. 또 교회건물을 댄스 교습소로 전환한다는 것도 이야기이니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정윤하. 완득이의 여자 친구. 야한 만화 사건으로 범생이였던 남자 친구가 전학 간다는 부분. 정윤하의 부모가 어떻게 작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즈음 이런 일로 전학을 간다는 설정은 정말 설득력이 약하다. 이보다 훨씬 약발이 센 사건에도 아이들은 웬만해서는 그냥 버텨낸다. 아이들이 웃을 일이다.

   그러나 이런 비현실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유쾌하게 통통 튕기는 듯한 전체적인 분위기는 매우 밝고 희망적이어서 좋다. 소설 속에서나마 그래도 인간의 착한 구석을 드러내주어 이 팍팍하고 재미없는 세상을 위로해 주어야하지 않을까. 비록 그것이 한낱 이야기일지라도. 비현실적인 설정에 비해 너무 앞서가거나 오버하지 않는 잔잔한 마무리는 작가의 숨고르기와 피로 같은 것이 느껴지고 고심한 흔적이 엿보이지만 글쎄 이 주인공들의 삶에 어떤 다른 대안이 있을까 싶다.

   책을 덮으며 풀리지 않는 현실적인 고민을 다시 생각해본다. 우리의 주먹짱을 어찌할꼬?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착한나무 2008-04-27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읽고, 주제넘게 몇 자 남깁니다. 역시 현실과 소설에는 괴리가 있지요? 저도 며칠 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인데, 그래도 이만한 책이 없는 것 같기는 해요. 그래도 현실에 발 디디고 있는 희망이라서 그런지.. 선생님의 주먹짱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네요. 한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에 개입한다는 의미라서, 힘들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한 것 같아요. 잘 이겨내시기를 기도합니다.
 

 

5. 콜카타와 마지막 춤을

   정확히 오후 8시 실리구리를 출발한 야간 에어컨 디럭스 버스. 로얄이라는 수식어도 붙어 있었지, 아마. 그간 인도에서 타 본 모든 차량을 통틀어 제일 그럴싸해 보이는 버스다. 물론 우리나라의 우등 고속버스나 공항 리무진 버스 보다야 못하고 시외버스 수준에 고급스러운 좌석 시트가 보태진 정도지만 인도에서는 만나기 쉬운 버스가 아니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아서. 가격도 상당한 편이다. 다즐링의 숙소가 하루에 600Rs였는데 이 버스 요금은 일인당 800Rs나 된다. 물론 얼마간의 여행사 수수료가 포함된 가격이지만. 겨우 몸을 회복한 남편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한번쯤 타보고도 싶었다. 여행 막바지가 가까워오니 움켜잡았던 주머니도 여유가 생긴 탓이다. 그러잖아도 이번 여행은 내게 어떤 의미에서 실험적인 여행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선 그간 여행 때마다 갖고 다니던 수동 겸용 카메라를 과감하게 버리고 온 것(따라서 사진도 찍지 않았다), 평소 쓰지도 않는 가계부를 여행 때는 꼬박꼬박 기록했는데 그것도 하지 않는 것, 여행의 흔적들인 각종 팸플릿, 영수증 따위를 모으지 않는 것, 아, 이 해방감이라니!

   남편도 기력을 회복하고 딸아이도 옆에서 재잘거리고, 마지막 행선지인 콜카타로 가는 버스는 최고급이고, 세상의 무게를 모두 덜어낸 양, 자못 뿌듯한 기분으로 우쭐거렸지만 그 달콤함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이 비싼 에어컨 버스는 그 이름에 걸맞게 밤새 에어컨을 절대로 끄지 않는 것이 아닌가. 좌석마다 있는 두꺼운 담요를 틈새를 보일 새라 여기저기 꼼꼼히 여며가며 뒤집어쓰고 입고 간 고어텍스 쟈켓의 후드까지 끈을 조여 가며 썼는데도 한겨울의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는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14시간을 그렇게 달렸다. 가히 최악의 밤이었다고나 할까. 여기저기서 콜록거리는 소리가 들려도 누구 하나 에어컨을 줄여달라는 말조차 하지 않는다. 말로만 듣던 악명 높은 에어컨 버스가 바로 이것이구먼, 그래 이것도 경험이지. 여긴 인도니까.

   

   콜카타에선 순데르반스 국립공원과 샨티니케탄을 일정에 꼭 넣을 작정이었다.

다른 곳은 별 의미가 없어보여서 고려하지도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곳들에 의미를 붙이는 작업이 되었다. 둘레가 450m에 이르고 4,500여 평의 땅을 차지하고 있는 단 한 그루의 나무, 반얀트리. 뻗어 내린 줄기가 뿌리가 되어 퍼져 나가서 숲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축소판 인도 같다. 가난한 인도 서민의 삶은 길 위에서 이루어진다. 밥을 먹고, 몸을 씻고, 대소변을 보고, 이웃과 만나고, 아이들을 돌보고, 돈을 버는 일 들이 모두 길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 드넓은 땅덩어리에서 제 몸 하나 편안히 머물 곳 없는 부지기수의 사람들은 제각각 뿌리를 땅에 내리고 줄기로 서기위해 아등바등하는 나무와 같다. 그러나 숲을 이룬 나무는 그늘을 만들며 누군가의 쉼터가 되어 주지만 이 길 위의 사람들은 누군가의 거대한 그늘에 가려 하루하루 힘겹게 삶을 영위해 갈 뿐이다.

   네타지(Netaji)라는 인도 독립의 영웅 기념관도 갔었다.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수바스 찬드라 보세(Subhas Chandra Bose). 네타지로 불리는 이 유명한 영웅의 기념관을 우리가 어찌 알았으며, 알았다한들 구태여 찾아 갔으리요. 당일짜리 시티투어에 참가한 덕분에 애국심 고취시키기로 작정한 프로그램에 따라 우리도 하루짜리 인도 국민이 된 것이었다. 벵골 지방의 독립 운동사를 전시 설명한 시청사 건물에서는 시뮬레이션으로 구성된 시위 대열에도 참여하여 만세를 부르짖기도 했다.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나 인간 해방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던 암베르카드 선생이 나와 같은 무색무취의 호사가들을 보면 어떤 말을 할까?




   암베르카드: 간디 선생님, 저에게는 조국이 없습니다.

   간디: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암베르카드의 말을 끊는다) 조국이 없다니 무슨 말씀이십니까?.....박사님이야말로 그 누구보다도 훌륭한 애국자이십니다.

   암베르카드: 선생님은 저에게 조국이 있다고 하십니다만, 다시 한 번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저에게는 조국이 없습니다. 개나 돼지보다도 못한 취급을 당하면서 마실 물도 얻어먹을 수 없는 이 땅을 어떻게 저의 조국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나라의 종교가 어떻게 저의 종교가 될 수 있겠습니까? 눈꼽만한 자부심이라도 갖고 있는 불가촉천민이라면 결코 이 땅을 자랑스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땅이 우리에게 가하는 불의와 고통은 너무나 엄청납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이 나라에 불충한 생각을 품더라도 그 책임은 전적으로 이 나라에 있는 것이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암베르카드-인도 불가촉천민 해방자․현대 인도불교의 중흥자>by 디완 챤드 아히르 지음, 이명권 옮김. 에피스테메 출판)




   마지막 날 콜카타에서 다시 심한 장염에 걸린 남편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앓고 나서야 몸을 회복할 수 있었다. 14년 전 첫 인도 여행에서 돌아온 후 나는 인도 신화나 역사에 빠져들었고 그 쪽 분야의 책을 읽어 나갔는데, 이번 여행이 첫 인도 여행이었던 남편은 <암베르카드>라는 책을 먼저 손에 집어 들기 시작했다. 다시는 인도에 가지 않겠다는 말과 함께. 그나저나 나는 다시 가야 되는데, 어쩌나?




“ 이 책을 250Rs에 주신다면 저는 다시 인도에 올게요.”

“ 몇 번이나 인도에 왔었나요?”

“ 이번이 네번 째 인데요.”

“ 좋아요. 가져가요.”

우다이푸르 한 서점에서 <DK Eyewitness Travel Guides- INDIA>라는 중고책을 흥정하면서 늙수레한 서점 주인과 주고받은 약속 아닌 약속이 있는데, 어쩌나?

                                        

                                                        2008년 3월 2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4. 다즐링에서 보낸 한 철

   석가모니께서 깨달음을 얻은 도시, 보드가야. 이 성스러운 곳을 두 번이나 왔으니 인연도 이런 인연이 없으며 나는 분명 복 받은 인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자꾸 14년 전과 비교를 하게 되니 흥이 절감되고 또 다시 아그라처럼 회고적이 되려고 한다. 솔직히 이곳도 남편과 딸아이에게 불교의 최대 성지를 보여주려는 의무감 내지는 사명감으로... 나는 이번 여행의 우리 가족 가이드니까.

   보드가야에서 다즐링으로 가는 길은 한국에서 인도 가는 길 보다 훨씬 길고 어렵고 모험적이다. 보드가야의 우리가 묵은 숙소 옆 투어리스트 콤플렉스에서 기차표를 예매하는데 멀리 떨어진 가야에 있는 기차역까지 가지 않아도 되니, 처음엔 이게 웬 떡이냐 싶었다. 그런데, 일이 술술 풀린다 싶었더니 기차표 예매부터 쉽지 않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파트나까지는 기차 편이 들어맞는데 다즐링의 대문 격인 뉴잘패구리까지는 기차가 늘 만원이라며 우리가 원하는 차편의 표를 팔 수 없다고 한다. 책으로 나온 기차시간표를 구입하면 편리하다는 배낭 여행자들의 충고를 대충 흘려듣고 ‘겨우 한 달도 안되는 여행에 무슨 시간표‘ 했더니 살짝 후회가 되기도 하는데, 하여튼 물어물어 기차표를 구입하는데 성공했다. 자랑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행복은 딱 거기까지였으니.

   가야 1월 29일 13: 50 출발 --- 파트나 같은 날 16:00 도착

   파트나 같은 날 22:55 출발 --- 뉴잘패구리 1월30일 13:10 도착

   뉴잘패구리에서 지프 합승 ---- 다즐링 3~4시간 주행 끝에 도착

29일 오전부터 서둘러 오토 릭샤를 타고 가야역으로 가서 한참을 기다리고, 파트나에서 기차를 갈아탈 때까지 7여 시간을 할 일 없이 기다려야하고, 다음 날 도착한 뉴잘패구리에서 우리만을 기다린 듯한 지프에 합승하고도 한참을 기다리고, 잘 달리다가 점심 먹는다고 중간에 지프를 세운 운전기사 한참 늑장 부리고, 산간 지역이라 길이 외길이고 바로 옆으로는 협궤 열차가 지나가느라고 또 한참 지체하고, 겨우 당도하니 벌써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꼬박 이틀 걸린 셈이다.

   파트나. 7여 시간을 할 일 없이 보내야했던 곳. 이곳의 파트나 박물관은 유명해서 일부러 이곳만 보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는 곳이라기에 내리자마자 서둘렀다. cloak room에 배낭을 맡기는 데 또 한참이 걸린다. 24시간 업무를 보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교통의 중심지는 중심지인가보다. 멀미를 느낄 정도로 겹겹이 둘러싼 인파를 헤쳐 가며 서로 자기 것을 타라고 에워쌓는 사이클릭샤의 무리를 현명(?)하게 제압하고 박물관에 당도하니 오후5시가 되어간다. 폐관시간은 오후 4시 30분. 정문은 이미 반쯤 닫힌 상태. 최대한의 미소와 부드러운 표정으로 사정을 해본다. 이곳이 유명하다하여 한국에서 일부러 왔노라고. 내 미소에 화답하듯 최대한의 친절한 표정으로 되돌아 온 답변은, No! 에고, 밤 11시까지 어쩐다?

   파트나 역 집중 탐색에 들어가니 의외로 한가하게 쉴 곳도 있고 그럭저럭 있을 만한데 도대체 할 일이 없다. 역사에 딸린 식당에서 최대한 시간을 끌어가며 저녁을 먹어도, 도착과 출발을 안내해주는 전광판에서 우리가 탈 기차를 혹시 놓칠세라 시시각각 확인하고 또 확인해도, 딸아이는 지치지도 않는 지 이미 서너 번이나 읽은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를 또 손에 들고 있고 남편은 새로운 가이드북이라도 쓸 요량인지 가이드북 탐구에 빠져보지만 이 널브러진 시간 앞에서는 나약하고 초라한 모습일 뿐, 제 풀에 지쳐버린 우리는 이내 오고 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지켜본다. 밤 10시가 되어가도 줄어들지 않는 대단한 인파. 10억이 넘는다는 인도 인구를 새삼 눈으로 확인한 듯 새로운 발견이라도 한 듯 잠시 어리벙벙한 기분이 되어 전자계산기를 두드려본다. 남한의 33배라는 인도의 인구가 10억이라면 인구밀도 면에서 우리가 사는 곳은 어떤 곳일까? 4800만명×33=158400. 우엑! 15억이 넘는 곳에서 우리도 아귀같이 살고 있구나! 자국의 국력을 위해서 인구 감소를 염려하고 인구 증가를 꾀하는 정책을 어떻게 생각해야하나? 인구 문제는 ‘전 지구적 크기의 사고’로 생각해야 할 인류 과제가 아닐까, 하는 감당 못할 걱정까지 한 곳이 바로 이 파트나이다.

   드디어 다즐링. 그동안 인도에 와서 하루도 편하게 발 뻗고 자 본 적이 없었던 우리, 특히 남편이 고심 고심한 끝에 ‘벨레뷰 호텔(Bellevue Hotel)’을 골랐다. 체구가 작다는 것은 여행할 때 만큼은 축복이다. 비행기 이코노미석 자리도 절대로 좁지 않으며 형편없이 좁은 로컬 버스나 지프도 전혀 불편하지 않으며, 아직은 어린 딸아이와 싱글 침대를 함께 사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축복 때문에 늘 가운데에 껴서 자는 딸아이는 침대 사이 빈 틈에 몸의 일부가 끼기가 다반사고, 두 여자들 먼저 배려해주는 남편은 제일 좋은 이불이나 담요 등을 양보하기가 일쑤이다 보니 늘 새우처럼 움츠리고 잠에 든다. 북인도의 겨울 날씨는 만만한 게 아니어서 밤에 잘 때는 내복이나 침낭이 필요한데 평소 내복의 덕을 보지 않는 남편은 ‘꿈꾸는 나라’에서 거의 매일 밤 추위에 떨면서 잤으니 특히 고도가 높은 다즐링에서 호텔 선택에 신중에 신중을 다 할 수밖에. 

   특히 다즐링에서의 호텔은 우리 가족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한 때 달라이 라마와 함께 일을 했었다는 티베트인 주인장은 지금까지 만난 어떤 호텔 주인보다도 친절하였다. 매일 밤 뜨거운 물을 넣은 핫팩을 방에 넣어주는 배려 덕분에 마음까지도 따뜻하게 데워졌다. 방에는 난로가 있어서 110루피를 내면 10kg의 나무를 사서 불을 지필 수가 있는데 매일 저녁 난로 옆에 앉아서 불을 쬐는 맛은 여행 중 단연 최고의 낭만이었다. 14살 먹은 일하는 남자 아이가 불을 지펴주러 오는데 말끝에 붙이는 ...., Sir. 가 그렇게 예쁘고 살가울 수가 없다. 어느 때는 이 소년이 안쓰러워 그냥 돌려보내놓고 남편이 불을 붙이는 데 생각 만큼 잘 되지 않아서 종이란 종이는 모두 난로 속 불쏘시개로 쓰였는데 쇼핑 봉투, 약봉투, 각종 영수증, 하다못해 여행용 티슈까지 나중에는 떨어져나간 가이드북 겉장까지도 희생양이 되었다. 딸아이의 원망까지 들어가며 히말라야 등산학교, 동물원에서 받아온 팸플릿도 그렇게 제 수명을 다했으니, 낭만이란 그만한 대가를 치르는 법인가.

   이 난로 불붙이기의 어려움은 여기에서 겪었던 여러 어려움 중의 상징 같은 것이었으니...

- 세계 문화 유산 목록에 등재되어 있다는 토이 트레인을 타려고 몇 번이나 다즐링 역으로 달려가서 표를 알아보았지만 끝내 타 보지 못했다. 그림의 떡 같은 토이 트레인, 표 구경조차 못하다.

- 이틀 째. 콜카타 행 기차표를 예매하기위해 다즐링역으로 가서 기다란 줄 끝에 섰다.  문도 없는 역사는 산바람이 지나가는 길이라도 되는지 몇 겹을 껴입었는데도 춥다. 정전으로 예매 중단 사태. 두 시간을 추위와 싸워가며 전기가 들어오길 기다린 끝에 직원이 하는 말, “내일 아침에 오세요.”

- 이틀 째 오후. 히말라야 등산학교가 있는 동물원을 허위허위 찾아갔더니 입장불가. 매주 목요일이 쉬는 날인데 이날이 목요일이다.

- 다음 날. 아침 7시. 전날 밤 위스키를 마시고 잔 남편의 상태가 최악이다. 그래도 행동은 함께 하자고 따라나선 남편. 역에 도착하니 8시가 조금 넘은 시각. 8시 업무 시작인데 사람들이 미리들 나와 있다. 드디어 내 차례. 전날 써 놓은 예약 종이를 내미니 대기표도 끊어줄 수가 없단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니 버스 타고 가란다. 몹시 고통스러워하는 남편이 먼저 들어가 쉬겠다기에 시계를 달라고 했더니 신음처럼 한마디 한다. “손목을 끊어.” 남편은 이날 저물 무렵에야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 환전하기. 여행지 마다 두 집 건너 하나 있는 게 환전소인데 여기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래 은행에서 하자. 세 군데의 은행에 가본다. 환율이 좋고 제일 가까운 데 있는 은행엔 세 번이나 가고 은행 매니저까지 만나 문의한다. 나중에 맨 마지막으로 가 본 은행에서야 이유를 알다. 전산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환전이 불가능하단다. 옷가게를 겸한 사설 환전소를 찾아 갔더니 친절하긴 한데 환율 최악에 수수료는 최고다. 울며 겨자 먹기란 이런 거겠지.

- 타이거 힐에서 보는 일출 감상이 최고라는데 연신 안개로 자욱하다. 아침마다 옥상에 올라가서 날씨를 살핀 남편의 의견대로 이곳은 포기. 이곳을 다녀온 벨기에 청년-다즐링 들어올 때 지프를 합승했었다. 인도에 온지 5개월 반이 되었다한다.- 말이 온통 구름이었노라고 한다. 안가길 잘 한 건데 이래저래 어려운 결정이었다.

   이렇게 열거하고 보니 다즐링에서 보낸 날들이 참으로 쓸쓸해 보이겠지만 이곳은 절대 오지가 아니고 두메산골이 아니다. 인도에서 처음으로 대형 마트를 만날 수 있어서 정찰 가격으로 쇼핑할 수 있었으며 우리의 CGV같은 영화관도 있어서 영화도 즐길 수 있었다. 다즐링차로 유명한 곳이라 우아한 찻집에서 귀에 익은 음악을 들으며 제대로 된 얼그레이 홍차도 마실 수 있었다. 관광 중심지인 초우라스타 광장 주변에 있는 호텔이나 식당, 상점들은 상당히 서구화 되어있어 인도의 다른 곳 보다 깨끗하고 친절하여 오히려 인도 분위기(?)가 제일 덜한 곳이었다. 그러나 해발 2,200여 미터 위에 자리 잡은 산악 도시인 이곳의 실제 삶은 생각했던 것보다 척박하고 다른 인구 많은 도시와 별반 달라 보이지도 않았다. 급수차를 쉽게 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물 문제나 하수 문제도 쉬운 일이 아니겠고 중심지인 초우라스타 주변을 벗어나 현지인들이 사는 곳을 보면 역시 수많은 인구에 숨이 막힐 지경이 된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다즐링에서 즐겼던 위와 같은 전형적인 도시 문화, 이를테면 쇼핑, 영화 감상, 레스토랑 순례 같은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면 이곳은 참으로 쓸쓸하기 이를 데 없는 곳으로 탈바꿈된다. 타이거 힐이 생략되었기 때문일까? 호텔에서 심부름 하던 14살짜리 소년의 해맑은 미소 때문일까? 우리 내외는 이 소년을 볼 때 마다 이 소년의 미래를 걱정해주곤 했었다. 그 소년은 혼자서 노래 부르기를 즐겼으며 사람의 심금을 움직이는 미소를 지니고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