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플이 알려주는 일 년 전 기록을 보고 비교 삼아 포스팅을 해본다. 작년 이맘때는 온갖 나물을 카메라에 담고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올해는 좀 썰렁하기만 하다. 겨울 끝이 길다.

(사진 올리느라 맥이 빠져서 하고 싶은 말이 증발해버렸다.)




멀리 산등성이의 잔설로 아직도 개울물이 여름마냥 수량이 많다. 잔설을 보면 자꾸 만년설이 떠오른다.




3년 전에 심은 살구나무가 드디어 꽃을 피웠다. 살구잼 만들 생각이 앞선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모습. 머위꽃.



산중에 먹을 것이라곤 쑥과 머위. 




엄나무도 겨우 기지개를 켜고 있다.




고라니께서 잡수신 명이나물. 




쇠뜨기 꽃을 보면 경계심이 생긴다. 한순간 방심하면 순식간에 잔디밭을 점령해버리는 존재, 잡초 중의 잡초라고 할까. 알고보면 쇠뜨기는 지옥을 겪어본 식물이라는데....

















(39쪽) 

쇠뜨기 무리는 약 3억 년 전인 석탄기에 크게 번영하며 일세를 풍미했다.(중략) 여러 차례 절멸 위기를 넘긴 쇠뜨기는 그 뜨거웠던 경험 때문인지 지금도 위기 관리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중략) 원자폭탄으로 모든 것이 폐허가 됐던 히로시마에서 가장 먼저 새싹을 틔운 것이 이 쇠뜨기 였다고 한다. 땅속 깊이 뿌리를 뻗은 덕분에 쇠뜨기는 방사능의 열선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녹지가 다시 되살아나는 데 50년은 걸리리라고 하던 그 죽음의 대지에 처음으로 싹을 틔운 쇠뜨기를 보고 사람들이 받은 용기와 희망은 엄청난 것이었을 것이다.(중략) 쇠뜨기는 제초제로 땅위줄기를 말려버리는 정도로는 꿈적도 안 한다. 땅속으로부터 끊임없이 부활해 나온다. 대부분의 동료가 다 사라져 버린 지금 다시 한번 땅 위에 자기 부족의 낙원을 건설하려고 쇠뜨기는 홀로 외로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지옥을 겪어본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강인함이리라.


2024. 04.11. 22대 총선 다음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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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쪽) '여행을 시작한 초기에 나는 세상의 뛰어난 경관을 보고 감탄하기 위해 길을 떠났었다. 그런데 막상 막이 오르자 인류의 절반이 다른 절반으로부터 보편적으로 억압받는 장면이 펼쳐졌다.'


(100쪽) '내가 지금까지 여행했던 세상의 모든 지방 가운데 견디기 가장 힘들었던 지역이 수컷에게 후광을 입히고 그를 숭배하는 지방이었다.' 


이렇게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말한 사람은 실뱅 테송. 입에 잘 붙지 않는 이름이지만 꼭 기억해야겠다. '작가이자 여행가. 일찍부터 극한 조건의 여행과 탐험을 일삼았고 두 발로 세상을 살며 다수의 책을 출간'한 사람. 휴머니즘을 포기한 '반더러'(유랑자). '인간 수컷의 패권이 사라지고 나면 다시 휴머니스트로 돌아가겠다'는 사람. 그가 들은 해괴한 속담을 옮겨보면,


(98쪽)

딸이 태어날 때면 벽도 따라 운다(루마니아).

딸 하나가 1000마리 짐승 떼만큼이나 걱정거리를 가져온다(티베트).

여자를 가르치는 것은 원숭이 손에 칼을 쥐여주는 꼴이다(인도).

여자는 지옥의 정문이다(인도).

신이 여자에게 주는 최대의 행복은 남편보다 먼저 죽는 것이다(아랍계).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여자로 태어나지 않게 해주셔서(유대계).


그는 '인류가 왜 스스로 영원히 '여성 살해 gynocide'죄를 저지르려는지, 또한 그런 인류를 왜 사랑해야 하는지, 아니, 왜 존중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해' 휴머니즘을 버렸다고 말한다. 잭 런던도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인간은 특히 자신의 암컷을 학대하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점에서 다른 동물들과 구분된다. 그런 짓은 늑대도, 비겁한 코요테도, 길들어 퇴화한 개도 저지르지 않는 악행이다." 라고.


차례로 딸, 아들, 아들이 태어나고 네 번째인 내가 태어났을 때 "재수없게 딸"이냐고 했다던 나의 아버지. 아버지는 얼굴을 돌리며 부정(혹은 회피)했지만 엄마가 전해 준 말이 거짓일 리는 없다. 이 한마디를 평생 기억하는 건 씁쓸하다. 잊어도 좋으련만 위와 같은 글을 만나면 어김없이 떠오르니, 세상의 아버지들은 입을 함부로 놀려서는 안된다.
















나는 실뱅 테송을 감히 '제대로 된' 작가라고 부르고 싶다. 이 책을 읽고서 든 생각이다. 


세계를 누빈 여행가답게 이 단편소설집엔 조지아, 네팔 , 텍사스, 이란, 인도, 시베리아....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짜릿한 반전은 단편소설의 정수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 중 가장 놀라운 작품은 <버그>라는 단편.


네팔의 구룽족 마을 지라온, 8시.....

여자들은 아침 식사 전에 모래톱에서 빨래하고, 빤 옷가지들을 바위 위에 넌다. 그러고 남편에게 아침밥을 차려준다. 결혼 10년 차의 아룬과 아내 칼리. 어느 날 칼리는 아침밥을 남편 대신 돼지들에게 줘버린다.

생 로랑 복음 공동체, 텍사스, 10시.....

세 살, 네 살, 여섯 살, 아홉 살, 그리고 18개월 된 아기를 둔 부부, 야콥과 앨리슨. 더 이상 임신을 원치 않는 앨리슨은 램프로 남편의 머리통을 내리친다.

케르만, 이란 남쪽 케르만 정부청사, 11시....

아들이 없는 걸 한탄하는 남편은 평소 바닥에서 밥을 먹는 네 딸과 아내가 식탁에서 밥을 먹는 걸 보고 충격을 받는다. 세상이 무너졌다고 생각한다.

인도, 구자라트주의 브란드라나푸르 마을, 12시....

지참금 없는 아내를 불태워 죽이려는 남편과 시댁 식구들. 시부모의 계략에 되려 아들이 죽는 상황.

디종, 프랑스, 13시....

코르부시온, 멕시코, 14시....

비슈케크, 키르기스스탄, 15시.....

지구 곳곳에서 '여성의 반란'이 일어난다.


실뱅 테송을 읽는 맛이 쏠쏠한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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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인기도 없고 재미도 없는 글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분에게 감사해야 할까, 분노해야 할까?


누군가 내 글을 샅샅이 들여다보고 있다. 지금 시각 새벽 4시 6분, 벌써 조회수가 111이다. 이 시각에 내 글을 읽고 있다기 보다는 매크로를 돌려 기록을 낱낱이 빼내고 있는 중이다.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하도 수상해서 이틀 전 알라딘 고객센터에 문의했더니 어제 답변이 왔다. '소수의 사람이 내 글을 검색하고 있다'고 한다.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며 계속 상태를 지켜보겠노라고 한다. 바쁜 와중에도 응대해주신 분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주목받는 일이 전혀 달갑지 않다. 당신 누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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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4-02-10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a님 새해인사 드리러 왔어요.
올해도 건강하고 행복한 일들 가득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새해복많이받으세요.^^

nama 2024-02-11 10:2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늘 작은 기쁨들로 가득한 새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2024-02-10 0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11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금 이 시각 오늘 방문자수는 740. 이게 정상인가? 뭔가 겁나기도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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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삿짐을 대강 정리한 후 빨래를 하려고 보니 세탁기가 작동을 거부한다. AS를 신청하니 일주일 후에야 가능하단다. 손빨래를 하고 싶어도, 발코니 확장형 아파트이다보니 젖은 빨래를 널어 말릴 곳이 없다, 새로 이사온 동네에서 빨래방을 찾자니 여행지에서 길거리 헤매는 기분이 나는데, 흠, 나쁘지 않다. (이건 또 뭔지...)


일주일을 꽉 채운 후 기사가 왔는데 끌끌 혀를 차신다. 세제통의 액체세제를 비우지 않고 이동해서 고장이 났단다. 121,000원을 주고 세제통을 새것으로 교체했다. 약 한 달 후 이번엔 세탁기의 두뇌에 해당하는 액정부분이 뇌사상태에 빠졌다. 역시 세제통의 액체가 뇌회로에 스며들었다며 뇌적출과 이식 수술에 들어갔다. 177,000원이 들어갔다. 지난번과 같은 기사님이었는데 나의 깊은 시름이 안돼 보였는지 출장비는 받지 않겠노라고 하신다. 고마우면서도 속이 쓰렸다.


세탁기 문제에서 한숨 돌리는가 싶었더니 이번엔 세탁기가 요동을 친다. 비행기 이착륙 소리까지는 참을 수 있는데 문제는 탈수가 끝나면 세탁기가 삐져서 전면이 한쪽으로 돌아가 있다는 것. 세탁할 때마다 삐져 돌아가니 내 마음도 삐지기 직전. 나보다 힘 센 남편만 바쁘다. 세탁기 돌려세우랴 내 눈치 살피랴.


며칠 후 새로 구입한 tv를 설치하러 온 기사분께 부탁해서 세탁기 수평을 맞췄다. 아, 이제야 한시름 놓겠구나 싶었는데... 기사분이 한말씀 하신다. 탈수할 때 소리가 나는 건 탈수부분이 고장났기 때문인데, 수리를 하거나 새것을 구입해야 한단다. 지금까지 내 생애에서 내가 구입한 세탁기가 네 대인데 그동안 얻은 교훈이 있다면, 세탁기는 고쳐서 쓰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 역시 이 지론이 맞는구나 싶었다. 고장이 났으면 눈 딱 감고 새것을 구입하는 게 속이 편하다.


며칠 동안 세탁기 검색으로 휴대폰에 코를 박고 있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던 남편, 낡은 수건 한 장을 가져오란다. 세탁기 한쪽을 들어올릴 테니 바닥에 수건을 받치라고 한다. 그러고서 조심스레 빨래를 돌렸다. 비행기 이착륙 소리도 많이 줄어들고, 요동치던 몸체도 조신해지고, 탈수과정도 얌전해졌다. 하, 내 남편은 천재인가보다. 


그런데 며칠 후. 역시 세탁기가 탈수 후에는 몸부림으로 조금씩 제자리를 이탈한다. 그럴 때마다 남편이 다시 제자리로 돌려세우는데...이 세탁기를 5년만 더 사용하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세탁기로 피곤해진 저녁. 시원하고 달콤한 과즙이 줄줄 흐르는 인천의 남동배가 그리워졌다. 2만 원이면 B급쯤 되는 배를 한아름 사서 한동안 저녁마다 베어 먹었는데, 그렇게 평생 배를 먹을 줄 알았는데 상황이 바뀌었다. 새로 이사온 동네엔 배밭이 없다. 작년만해도 쌀독에 있는 쌀처럼 떨어지면 큰 일 날것처럼 항상 쟁여놓던 사과마저 먹기 힘든 과일이 되었다. 비싸도 너무나 비싸다. 볼품 없는 사과를 비싸게 사먹으려니 차라리 눈에 담는 것도 피하게 된다.


그렇게해서 배 대신 무를 깎아먹는 저녁이 되었다. 아직은 저렴하기 이를 데 없는 무. 한조각 베어물면서 배맛을 상상하는 맛이라니. 게다가 위장병으로 시름시름 아프던 배도 무를 먹고나면 뱃속이 무탈의 평온을 되찾는다. 담석으로 고생할 때는 배를 먹고 위장이 심하게 요동치기도 했었는데 그 일도 이제는 지난 일이 되었다. 무는 無와도 통하는구나.


이름도 당찬 대파 얘기도 해야겠다. 대파는 내게 낭비의 대명사였다. 도대체 대파 한단을 끝까지 먹은 적이 없었다. 반찬에 한주먹씩 대파를 썰어 넣어도 남아도는 게 대파여서 마지막에는 종량제봉투로 직행하곤 했다. 그랬었는데 이제는 먹을만큼만 냉장고에 넣고 못다먹고 버릴 분량은 썰어서 냉동고에 얼렸더니 버리는 게 없더라는 말이다. 이런 단순한 사실을 이제야 깨닫고 대단한 일을 해낸 양 의기양양해진다. 그간 살림살이를 대충했다는 말이다. 대파를 제대로 보기 시작했다.



요즘 영화를 자주 보면서 깨닫는 것. 잘된 작품과 그저 그런 작품을 구분짓는 건 감독이 영화를 장악하고 있느냐 영화에 끌려가느냐의 차이라는 것. 교사의 수업에서 수업장악이 수업의 질을 좌우하듯 영화 역시 그렇고 조직을 이끌어가는 원리 또한 그럴 것이다. 교단에 서면 학생 하나하나의 얼굴을 살펴야 하듯 어떤 조직을 이끄는 자는 구성원 하나하나를 보려고 부단히 애써야 한다. 그건 군림이 아니다. 무는 무답게 대파는 대파답게 대접하면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게 하는 것. 부실한 세탁기를 끝까지 고쳐가며 사용하는 것. 진즉에 깨우쳤으면 나는 훌륭한 선생이 되었을 텐데....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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