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지난 나의 글을 읽는 게 점점 더 부끄러워진다. 실망감도 감추지 못하겠다. 고작 요정도였었구나.... 그래도 기록을 해야겠다. 바닷가 모래사장을 걸을 때 내 발자국이 남겨지는 걸 생각하지 않듯 그저 꾹꾹 몇글자 써보는 거다.
늙은 체도, 젊은 체도 하기 어려운 60세가 벌써 저만치 지났다. 노화라는 새로운 인생의 국면을 대하는 게 낯설고, 버겁고, 약간 쓸쓸해지려고 한다. 한 달 하고도 보름 정도 담낭으로 고생했더니 인생의 새로운 장이 펼쳐지는 기분이 든다. 늙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좋은 점도 있다. 그전엔 지루하다고 여겨졌던 클래식 뮤직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는 것. 잠 못 이루는 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있으면 모든 곡이 귀에 착착 들어와 안기는 기분에 젖는다. 특히 kbs 의 <명음반 명연주>에서 들려주는 긴 곡들을 인내심이나 거부감 없이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책도 그렇다. 안 읽어서 그렇지 이해하지 못하는 책은 없지, 하는 자만심도 생긴다. 어쨌거나 늙는 게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고시 준비하듯 경건한 태도로 내리 읽어나가다 보니 자~알 읽혔다. 읽다보니 셰익스피어 냄새도 스멀스멀 났다. 주요 인물들의 독백 부분에서 특히 그랬다. 줄거리는 내팽개친 채 온갖 고래와 포경업 분야, 포경선 설명에 어리둥절했는데 셰익스피어의 비극 냄새라니..오, 재밌는데.
그후 한 달 보름간 병치례를 하고 겨우 읽기 시작한 책은
제대로 된 레트로의 맛을 느낄 수 있었는데 문제는 소설집이라서 단번에 읽히지 않는다는 점. 단편 읽기는 시 읽기와 비슷해서 단편 하나 읽고나면 기운이 빠지면서 나머지 작품에 흥미를 잃는다. 나이 들어도 고쳐지지 않는 이상한 나의 습성.
많은 분들이 아니 에르노를 언급하기에 궁금하던 차, 병색이 서린 얼굴을 무릅쓰고 동네 홈플러스에 갔다가 이벤트매장에서 발견한 책. 세 권에 9,900원, 한 권이면 4,000원 하는 떨이용 책더미에서 이 책을 발견하곤 쾌재를 불렀다. 129쪽의 얇은 책을 며칠 걸려 읽었다. 병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구나, 나도 별 수 없구나...하면서 읽은 책. 작가의 아버지에 대한 책인데 책 제목이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내가 만약 책을 쓴다면 엄마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해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꼭 이 책이 그랬다.
제목으로 할 말 다한 책.
지은이의 생각을 지지하고 싶어 구매했으나 잘 읽히지는 않는다. 내 삶과는 많이 동떨어져있고 나는 이미 저만치 와있다.
tv 드라마에 무심한 나로서는 저 표지에 있는 작가들 대부분이 낯설다. 그래도 동시대인으로서 작가의 삶과 생각은 궁금하다.
이제사 도서관에 다닐 수 있게 회복이 되었다.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었지만 천천히 읽기 위해 집으로 데리고 왔다. 지은이의 삶도 얼핏 엿볼 수 있어서 여운이 있는 책.
이 책에서 현조(玄祖)라는 단어를 만났다. 고조할아버지의 아버지. 5대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를 뵌 적이 없는 나로서는 너무나 낯선 단어일 수밖에.
그간 뭘 찾아 헤맸는지 윤대녕의 <상춘곡>을 이제서야 읽었다. 이젠 돈벌이로 바쁘다는
핑계도 댈 수 없는데, 이런 작품을 읽을 때마다 나의 게으름을 깨닫는다. 이 책은 <상춘곡> 하나로도 충분히 족하다. 시 같은 소설에 가슴이 아리다.
통도사 월간지.
복을 짓는 법은 간단합니다. 남이 싫어하는 일을 내가 하면 복이 됩니다. 반대로 내가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시키면 죄가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쪽에 속합니까? 법당에 들어오면서 흐트러진 신발을 정리한 적이 있다면 복을 얻으신 것이고, 남의 신발을 징검다리 삼아 꾹꾹 밟으며 들어오셨다면 복을 깎아 먹는 행동을 하신 겁니다. 일상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 기도와 수행이 잘 익으신 분이라면 저절로 복 짓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 6쪽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두툼한 책을 읽어도 나는 여전히 '남의 신발을 징검다리 삼아 꾹꾹 밟으며' 법당에 들어가는 사람. 책은 왜 읽는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