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를 며칠 여행했다고 그 나라를 알았노라고 말할 수 있나. 그래도 내겐 값진 경험이어서 여행의 기억이 소멸하기 전에, 나중에 되새김질하기 위해 몇 자 적어두려고 한다.
1. 인도네시아는 젊은 나라
인도네시아는 평균 연령이 29세인 청년 국가라고 한다. 우리 나라는 44.5세.
많은 곳을 다닌 건 아니지만 내가 갔던 동네는 어딜 가나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광장, 거리, 전철, 유적지...모두가 활기차고 에너지가 넘치는 분위기였다. 젊은이들이 주인공인 나라처럼 보였다.
인도네시아인 여행사 사장님께 인니에서 가장 인기있는 직업이 뭐냐고 물었더니 교사라고 한다. 이유를 물었더니 "학교가 많아서요"라고 한다. 학교가 많다는 건 학생이 많다는 얘기가 된다. 우리나라도 한때 그랬었고 그땐 국가도 젊었다. 사람이건 반려견이건 나라건 늙어가는 건 애잔하다.
2. 치안
인니 관련 책에 쓰여있는 것보다 안전하고 깨끗한 인상을 받았다. 소매치기 당할지도 모르니 휴대폰을 가방에 넣고 다니라는 (잘 사는) 현지인의 조언도 있었으나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는 거리에서 그런 불상사를 보지 못했다. 우리가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도 친절하고 상인들에게서도 집요한 상혼이 보이지 않았다. 바가지를 썼다거나 사기를 당했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물론 딱 한번 있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갈 때 택시 요금이 여행을 끝내고 시내로 들어올 때에 비해 7~8천 원 정도 비쌌다. 그러나 내 기억에 어느 나라건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택시를 탔을 때 속임을 당하지 않은 예가 없었다. 불문율의 수업료다.
3. 인간 신호등(빡 오가 Pak Ogah)
자카르타의 빡 오가들은 교차로에서 교통정리를 해주는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인간 신호등. 교통경찰은 물론 아니다. 땀으로 번들거리는 새까만 얼굴을 한 남자들. 누가 시킨 것 같지는 않고 스스로 자구책 삼아 직업 삼아 거리에 나선 사람들일 것으로 추측한다. 그 옆을 지나가며 그들이 보낸 수신호의 혜택을 입은 운전자들은 차창을 열어 동전 하나씩을 그들 손에 쥐어준다. 하루종일 동전을 받아봐야 얼마나 될까. 때론 목숨이 위태로울 텐데 그들은 진지하고 성실하기 이를 데 없다. 메마르고 거친 땅에서도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는 민들레같은 강인함과 함께 삶의 고단함이 진하게 다가왔다. 그들을 보는 순간 가슴이 뻐근해지면서 수중에 있는 동전이나 단위가 작은 지폐를 탈탈 털어 운전자에게 건네게 된다. 보태시라고. 동전을 한낱 여행 기념품으로 가져가는 건 미안한 일이다.
4. 과일
농산물 시장이 가깝고 마트마다 과일이 지천으로 쌓인 동네에서 살다보니 돈이 없지 과일이 없겠나 싶었다. 인니에서는 특히 열대 과일을 마음껏 먹으리라 기대했는데...과일이 없다. 자카르타의 유명 백화점에서도 기대만큼 다양한 과일을 만날 수 없었다. 과일철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과일철이 따로 없는 우리 나라. 과일 재배 기술은 단연 우리가 낫다고 할 수밖에. 허나 철 따라 사는 게 자연스럽지 않나?
5. 커피
인도네시아의 커피 브랜드인 excelso 매장에서 선물용 커피를 샀다. 나중에 찾아보고나서야 excelso 가 나름 지명도가 있는 상품임을 알게 되었다. 200g 커피빈을 우리 돈 6,000원 정도에 구매했는데 쿠팡에서 찾아보니 자그만치 38,340원이다. 이거 이렇게 남겨도 되나 싶다. 자고로 커피 농사꾼만 억울할 일이다. 20봉지 넘게 샀으니 이것만해도 60만 원 넘게 남겼네, 했더니 딸이 그런다. 돈을 쓰고도 돈을 남겼느냐고. ㅋ
6. 팝송
영어의 위력은 팝송에서도 드러난다. 영어권 나라가 아닌데도 팝송이라는 기호가 서로를 소통시키는 역할을 한다. 영어를 못해도 팝송 한두 곡쯤 부를 수 있다면 친구 맺기가 쉬워질 듯.
디엥 고원에 다녀올 때 여행사 사장의 차량에서 흘러나오는 어떤 노래에 숨이 멎는 듯했다. 정확한 가사는 몰라도 곡조가 가슴을 파고 들어왔다. 들어본 노래같기도 하고 아닌 듯도 하고. 몽롱하고 감미롭고 센티멘탈한 이 노래는 뭐꼬? 첫인상이 강렬한 이 노래를 다시 듣게 된 곳은 자카르타로 향하는 미니버스에서였다. 열악한 버스였지만 천장에는 tv 모니터가 달려 있었고 마침 모니터에서는 노래방이 시작되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인니 여성이 마이크를 잡고 운전기사에게 무언가를 요청하니 바로 이 노래가 화면에 떴다. 그래, 바로 이 노래였다! 옆자리 인니 여성은 노래를 잘 불렀다. 음색도 좋고 영어 발음도 매끄러웠다. 그러나 바로 파악하게 되었지만 이 인니 여성은 영어를 잘 못한다. 아니 거의 못한다. 영어를 못하는데 영어 가사 발음이 왜 이렇게 좋지? 속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 남편과 이 노래를 다시 들었다. 부부애창곡으로 부르자며 연거푸 따라 불렀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부를 때마다, 인니 여행과 인니 여성이 떠오를 터. 노래의 힘이다. 팝송의 힘이다.
7. nama
nama 는 인도네시아어로 '이름'을 뜻한다. 이름이란 단어를 이름으로 쓰고 있는 나, 이렇게 싱거울 수가 있나....원.
8. 그많은 한국인은 어디에
세계 어디를 가던 꼭 마주쳤던 한국인을 이번 여행에선 거의 본 적이 없다. 자카르타 유명 백화점에서나 언뜻 본 것 같은데 그마저도 확실하지 않다. 자카르타엔 한인 교민도 많이 살고 있다고 하는데... 설마 인니 관련 여행안내서가 드물어서는 아니겠지...
9.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점
은 무엇일까? 인니에서의 마지막 날. 무릎이 아파서 가만히 누워있자니 서글퍼지기 시작했다. 우울감을 떨치기 위해서는 밖으로 나가야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 발로 걸을 수 없다면 베짝(오토바이를 개조해서 만든 2인승 인력거)이라도 타고 한바퀴 돌아보고 싶었다. 호텔앞에 늘어선 한 베짝 기사에게 100,000루피아(9,000원 정도) 지폐를 보이며 한바퀴 돌자고 이런저런 제스처로 남편이 제시하자 베짝 기사는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고일 것 같은 감상에 젖어들었다. 며칠 동안 걸어다녔던 거리와 끄라톤 왕궁, 타만사리 등을 다시 훑고 지나갔다. 거리상 미처 가보지 못한 동네도 스쳐 지나갔다. 좋았다. 그냥 좋았다. 뜨거운 날씨도 좋고 일요일의 흥겨운 분위기도 좋았다. 여행을 복습하는 기분이 들었다. 여행은 이렇게 복습이 가능해서 좋구나.
지루한 시간들이 좋았다. 더 이상 갈 데가 없고, 할 일이 없어서 물끄러미 앞을 응시하는 순간들이 좋았다. 여행에 끝이 있듯 인생에도 끝이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