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아끼는 그림이다. 1994년, 당시 중학교 2학년인 태호가, 반 아이들의 별명을 주제로 그렸다. 야옹이, 연탄, 말, 변기, 붕어 등등. 지금쯤 장가들을 갔을게다.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 새삼 지옥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할 때가 있다. 어르고 타이르기가 아니다 싶을 때 인정사정없는 험한 말을 뽑아낸 날엔 우울해지기까지 한다. 그것도 부족해서 부모와 고통분담 차원에서 한차례 통화라도 하고나면 더욱 의기소침해진다. 오늘이 그랬다. 

고달픈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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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 감동 휴먼 다큐 '울지마 톤즈' 주인공 이태석 신부의 아프리카 이야기, 증보판
이태석 지음 / 생활성서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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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감동으로 울고 애석해서 울고 나를 돌아보고 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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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단어 인문학 산책 - EBS 이택광의 어휘로 본 영미문화
이택광 지음 / 난장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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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의 박학다식, 하면 빌 브라이슨이 떠오른다. 도대체 모르는 분야가 없는, 온갖 지식으로 넘쳐나는 그의 두뇌는, 혹시 어느 날 용량 과열로 파열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인데... 

이 책의 저자가 책의 말미에 쓴 것 처럼 (빌 브라이슨 처럼) 이 책도 영어 단어를 빌미로 여러 분야를 넘나들고 있다. 요즘 흔히 말하는 '인문학적 사유'를 시도한 책이다.  

이 책은 독자의 읽기보다 쓰는 사람이 더 즐겁지 않았을까 싶다. 단어 하나를 정해서 어원을 따지면서 분석하는 재미, 어원 분석에 따르는 여러 언어의 상관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과정, 영미 문화를 현장에서 경험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현장감있는 이야기, 그리고 평소 생각하고 있던 견해 혹은 알고 있던 잡다한 지식을 풀어쓰는 재미로 이 책을 쓰지 않았을까 싶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렇다. 어떤 단어의 어원에 관한 부분은 사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일 수 있다. 어차피 기억에는 남아있지 않을 부분이다. 그리고 단어 하나를 아는데 그리 많은 주변 얘기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차라리 단어 관련 서적을 한 권 독파하는 게 시간적으로 보나 효율면에서 보나 더 나을 수도 있다. 이 책을 한 권 다 읽어도 사실 새롭게 건질만한 단어는 별로 없다.  

그러나 이런 책의 시도는 참신하고 새롭다. 이런저런 생각할 거리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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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 Marley - Legend [2CD Deluxe] -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선정한 100대 음반 시리즈 66]
밥 말리 (Bob Marley) 노래 / 유니버설(Universal)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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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그동안 하고 싶었던 짓이나 미루었던 것들을 하나씩 해본다. 누가 막은 것도 아니고 말린 것도 아닌데 왜 망설이며 지내왔는지 모르겠다.  

그런 망설임 중의 하나...밥 말리의 음반을 구입했다. 아마 몇년 간의 망설임이었을 것이다. 밥 말리에 대해선 어느 여행서에서 읽은 후 막연히 호기심만 가지고 있었는데, 지난 겨울 방콕의 카오산로드에서 흐벅지게 만난 레게 음악이 꿈틀꿈틀 되살아나면서 다시 밥 말리를 떠올리게 된 것이다. 

흥겨움에 자신도 모르게 어깨춤을 들썩거리면서도 가슴 한쪽에 살짝 살짝 슬픔이 고이는 묘한 매력이 레게 음악 같다. 밥 말리의 목소리가 그렇다. 힘이 있으면서도 절제된 슬픔이 배어있다. 그러면서도 흥겹다. 어울릴 것 같지 않으면서 절묘하게 잘 어울린다. 그런데 또 묘한 게, 흥겨우면서도 슬프고 또한 약간씩 지루하다는 것이다. 이건 또 어떻게 설명할까? 권태를 몸짓으로 털어버리면서 흥겨움에 취하고, 조금씩 슬프면서도 마음 저 깊은 곳을 위로하는 음악이라니...

사람을 많이 만난 날은 즐거우면서도 쓸쓸하다. 

하나로 연결된 네트워크 덕분에 인천지역 초중고가 서로 통하게 되어있는데 오늘 그 덕(?)을 보았다. 몇년 만에,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육촌 동갑내기-- 육촌 동생, 오빠, 누나는 자연스러운데 동갑내기를 표현하는 데는 좀 어색한 구석이 있다. 우리 말은 서열을 따지는 데 더 적합한 것 같다--에게서 메세지가 날아왔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교감 언제 나가냐고 물으니까 그냥 살다가 그만 둘 거라고... 

근방의 학교들은 이때쯤이면 한바탕씩 떡을 싸들고 타학교 발령을 받고 떠나간 동료교사들을 위문차 방문하는게 요즈음의 풍속도이다. 올해는 내가 위문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 미운정고운정의 20년 지기 조선생, 라오스 여행을 함께 한 안선생, 친할 기회는 많지 않았지만 마음이 통할 것 같은 최선생, 강적의 대화 상대였던 민선생, 그리고 남미에서 사다준 담요로 아직까지도 고마움을 잊을 수 없는 남선생. 함께 (오늘) 밥 한끼 못한 게 내내 서운하게 남는다. 

수업시간에 나와 눈을 맞추고 호흡을 함께 나눌 줄 아는 우리반의 예쁜 한 여학생이 종례후 복도에서 넘어져 부상을 입었다. 오른쪽 귀 한부분의 살점이 v자 모양으로 떨어져 나갔다. 급히 부모에게 연락을 해서 엄마가 학교에 왔다. 내 놀란 가슴으로 엄마를 보자니 참 미안하고 가슴 아팠다. 

도서지역 출신 학생에게는 통학비나 생활비 보조를 해주는데 그 신청기한이 오늘까지여서 급하게 어제 전화로 신청한 한 학생의 사촌형이 필요한 서류를 가지고 왔다. 이작도에 있는 부모 대신이었다. 그 학부모에게 할 말이 참 많았는데 오늘 같은 날 왔더라면 오히려 정신이 없었겠지만, 좀 그렇다. 일당백하는 녀석이 아무래도 앞으로 문제가 많을텐데... 

동갑내기와의 (오전의)메신저를 빼고는 이 각각의 방문객들이 같은 시간대에 거의 동시에 교무실로 들이닥쳤다. 마치 레게 뮤직 같은 하루였다.  

아, 밥 말리...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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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사생활 창비시선 270
이병률 지음 / 창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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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의 유명한 여행 에세이 <끌림>을 아직 읽지 않았다. 따라서 이병률의 시도 이 시집이 처음이다. 그렇다. 잘 모른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그렇잖은가. 무엇인가의 첫인상을 말하기는 쉬워도 친숙해지고 잘 알게되면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더 어렵다는 것을. 

앞으로 계속 읽을 것 같은 이병률의 시와 에세이를, 더 확장된 세계를 접하기 전에  처음 내가 접한 <<바람의 사생활>>에서 마음에 와 닿았던 시들을 베껴보고 싶은 거다. 

<여전히 남아 있는 야생의 습관> 

서너 달에 한번쯤 잠시 거처를 옮겼다가 되돌아오는 습관을 버거워하면 안 된다  

서너 달에 한번쯤, 한 세 시간쯤 시간을 내어 버스를 타고 시흥이나 의정부 같은 곳으로 짬뽕 한 그릇 먹으러 가는 시간을 미루면 안 된다 

죽을 것 같은 세 시간쯤을 잘라낸 시간의 뭉치에다 자신의 끝을 찢어 묶어두려면 한 대접의 붉은 물을 흘려야 하는 운명을 모른 체하면 안 된다 

자신이 먹는 것이 짬뽕이 아니라 몰입이라는 사실도, 짬뽕 한 그릇으로 배를 부르게 하려는 게 아니라 자신을 타이르는 중이라는 사실까지도  

'자신을 타이르는 중'...나도 자신을 타이르기 위해서 수원으로 천안으로 서울로 싸다니곤 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간이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려니...나이를 먹어도 죽지 않는 이 몸에 밴 '야생의 습관'...이 시인이 여행가라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또 한 구절을 발견한다. <시장 거리>에서다. 

그는 눈을 가늘게 살살 뜨고 여기 시장 거리에 사는 일년 동안은 슬픈 일도 기쁜 일도 정말 많았어요, 하고 누긋하게 말하지만 내겐 그런 곳이 없다는 것 

괜히 그 말에 눈가에 핑그르르 핏물이 돌았으나 나를 휘감은 건 그 도저한 감정 둘이 한자리에 고이는 일이 없었다는 사실 

나도 사년을 시장 거리에 몸 기대고 산 적 있으나 기쁘지 않았으며 단지 조금 휘청였을 뿐 

순댓국 한 그릇씩을 비우는 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각자 잊었는지 소주병은 따지도 않은 채 물리고 떡집 지나 닭집 지나 반찬가게를 지나 시장 거리를 빠져나오는 길 

트럭에서 막 부려져 번거로이 아우성을 떠는 가물치때 미꾸라지떼 

그래도 더 번거로운 일은 박하게도 흐벅지게도 살아야 하는 일, 쓸쓸한 일 

일상은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그저 '쓸쓸한 일'이다. 시장 거리에 몸 기대고 살아도 단지 조금 휘청일 뿐이다. 이곳도 저곳도 나를 슬프게도 기쁘게도 하지 못한다. 이 시인이 세계를 떠도는 여행가라는 건 그래서 어쩔 수 없는 것일 게다. 

그의 시를 계속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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