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교실에서 언성을 높이지 않는 날이 없다. 단 하루도 조용히 흘러가는 날이 없다.
급식 풍경이다. 힘 센 남학생 녀석들이 맨 먼저 밥을 타먹으려고 남 눈치 보지 않고 대뜸 식판부터 들고 달겨드는 것쯤, 그래 아침밥을 안 먹고 왔거나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을 기회가 없었다고 치자. 다 먹은 식판 까짓거 내가 버리지 않으면 누군가 버리겠지뭐, 냅둬, 하며 남의 책상 위에 올려놓거나 사물함 위에 올려놓는 거, 그래 집에서 오냐오냐 제멋대로 자라서 저럴 수도 있겠지, 한번쯤은. 그래도 지가 먹은 건 치워야겠다 싶어서 힘 약한 아이한테 맡겨버리는 거, 그래 그것도 우정이라고 우기면 그럴 수도 있겠지.
일상적으로 이런 일이 벌어진다. 매번 소리지르거나 설문지 돌려 범인 색출하는 짓의 반복이다. 지겹다.
그래도 위의 이야기는 오늘에 비하면 얘깃거리도 못된다. 사물함에서 두 개가 포개진 식판이 나왔다. 음식이 상할대로 상해서 냄새가 진동한다. 적어도 열흘은 지난 듯싶다. 어찌어찌해서 범인을 잡아냈다. 오늘 아침, 선생인 내 말을 가로채며 선생 노릇하던 녀석으로 한바탕 큰소리로 제압하고서야 제자리를 잡게 하던 녀석이었다. 그 못된 짓거리를 어찌 일일이 나열할 수 있으리오. 남에 대한 배려? 청소는 열심히? 숙제는 제대로? 말이 고와? 힘센 아이에게 빌붙어 야비한 행동 일삼기에 수업 시간에 선생들 열받게 하는 남다른 재주와 특기로 선생들 몸살 앓게 하는 놈이다.
녀석 아빠와 통화를 했다. 벌써 세번째이다. 4년 전 부모의 이혼으로 충격을 받았으며 초등2학년 때부터는 틱장애도 있었고 병원 치료도 받다가 중단했다 한다. 그 사실을 세번째 전화통화인 오늘에서야 말한다. 시간이 약이라고 믿고 싶은 게 나약한 인간 심리라는 거, 모르는 거 아니다만 그건 아니지. 선생이 부처님이냐고. 비겁한 학부모다. 처음부터 제대로 말해주었으면 좀 더 합리적인 방법을 강구했을 거다. 인정할 거 인정하고 들어가면 쉬워지는 법이니까.
녀석에게 반성문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겠다 싶었다. 그래 물었다. "너를 정상적인 아이로 생각하고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대해줄까? 아니면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걸로 인정하고 너를 이해해줄까? 너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면 그건 네 힘이나 의지로도 어찌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거거든. 널 어떻게 생각해야하니?"......얼마 후...대뜸, 일주일에 한번씩 교육청으로 상담 치료 받으러 가는 다른 녀석을 따라서 교육청으로 상담 받으러 가야겠단다. 녀석아, 상담은 니가 원한다고 다 되는 건 줄 알아? 세상이 니 맘대로 움직이는 줄 알아?"
녀석을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걸로 생각하면 마음은 가벼워지는데, 문제는 그 이상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거다. 휴....힘들다. 쓰러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