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동네 도서관에 놀러갔다가 발견한 시 한 수가 긴 여운을 남긴다. 문예지도 오랜만이다. 예전엔 이것 저것 많이 접했었는데...그래서인가, 옛 친구를 만난 기분이다. 

시인 이원규에 대한 글이 몇 편 실려있어 살랑살랑 넘기다가 만난 시이다.  

 

족 필(足筆)   이 원 규   

 

노숙자 아니고선 함부로 

저 풀꽃을 넘볼 수 없으리 

  

바람 불면  

투명한 바람의 이불을 덮고 

꽃이 피면 파르르  

꽃잎 위에 무정처의 숙박계를 쓰는   

 

 세상 도처의 저 꽃들은 

슬픈 나의 여인숙 

 

걸어서 

만 리 길을 가 본 자만이 

겨우 알 수 있으리 

발바닥이 곧 날개이자 

 

한 자루 필생의 붓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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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학교다, 여행이 공부다 - 옥 패밀리 545일 세상 학교 이야기
박임순 지음 / 북노마드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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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의 세 자녀와 세계일주한 여행기이다. 세계일주하는 사람들은 많으나 세 자녀와 함께, 그것도 학교를 때려치우고 여행을 한다는 건 아직은 대단한 일이라서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2년 간 교사로 학교에 근무했던 이 부부 역시 학교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났다고 하는데 솔직히 이 부분에선 그리 높이 평가할 것은 못된다고 본다. 교직 20년이 넘으면 일단 연금은 확보한 셈이라서 차후의 생활은 어느 정도 보장이 되기 때문이고, 20여 년 정도 학교에 몸담았다면 학교생활에 물릴만도 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TV에 나온 이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퇴직금을 일시불로 타서 연금을 받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처음엔 약간은 밋밋하고 계몽적인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쉽게 읽히고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확실해서 책에 빠져들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이 나오는 대목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장기적인 여행이 아니고서는 경험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 역시 여러 번 어린 딸을 데리고 이곳 저곳을 배낭여행으로 다녀왔지만 이 만한 경험을 하기에는 시공간적으로 역부족이었다. 더더욱 인생의 방향을 바꿀만한 계기는 얻기 힘들었다.  

만약 그만한 영향을 받았더라면 중3짜리 딸아이를 둔 현재, 아이 교육 문제로 이렇게 갈등을 일으키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아이가 학원 다니는 것을 극도로 기피해서 아무런 사교육도 받고 있지 않기에 이 도도한 자본주의적이고 소모적인 대열에서 잠시 벗어나 있을 뿐, 이 침묵의 휴전 상황이 결코 마음 편한 것은 아니다. 차라리 아이가 착실하게 학원이라도 다녀주기를 바라는 심정이라니... 

늪에 빠진 현재의 우리나라 교육에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제대로 산다는 건 무엇일까, 를 끊임없이 고민하면서도 이렇게 우왕좌왕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화가 치밀대로 치밀지만...이럴 때 정말 이 책의 저자처럼 모든 걸 접고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나 이건 나에게는 처방전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여행. 내 주변에 우리 가족만큼 배낭여행을 다녀온 사람들도 그리 흔치 않다. 우리는 이미 여행 고수들이어서 어디를 가든 그곳을 새로운 고향으로 접수하는 건 일도 아니다. 그러기에 여행은 우리 가족에겐 해법이 아니다. 

이 책을 통해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의 용기있는 결단과 그 과정을 읽게 되었지만 그건 그들의 선택이고 방법일 뿐, 다시 새로운 고민이 시작된다. 

20세 전후의 세 자녀를 모두 독립시킨 이 저자의 <자녀 독립 프로젝트>는 내내 나에게 숙제 같은 고민 거리를 안겨주리라. 

책 말미에 있는 '자녀교육 십계명'을 찬찬히 읽어보며 마법에 걸린 듯한 현상황에서 제대로 깨어있기가 무엇인가를 계속 고민해야겠다. 

1. 부부가 포옹을 할수록 자녀는 행복해진다.  

2. 아이들의 '끌림'을 활용하라. 

3. 자녀교육은 속도보다 '방향'이다. 

4. 자녀의 실수를 기회로 삼아라. 

5. 아이들에게 자신의 일을 스스로 선택하게 하라. 

6. 부모의 권위를 버리고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라. 

7. 부드러운 동기 부여가 아이들의 잠자는 능력을 깨어나게 한다. 

8.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을 길러주어라. 

9. 아이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라. 

10. 부모의 믿음이 넘어지는 아이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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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세상을 건너는 법 - 메콩강 따라 2,850km 여자 혼자 떠난 자전거 여행
이민영 글.사진 / 이랑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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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 산책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에게 무심하다. 말을 걸 이유도, 할 말도 딱히 없어서일 게다. 그러나 애완견을 데리고 나온 경우에는 좀 다르다. 인간화된(?) 애완견이 빌미 혹은 매개가 되어 사람들이 눈빛을 주고 받고나 한 두 마디 주거니 받거니 하기도 한다.  

자전거 탄 사람은 애완견보다 좀 더 관심을 받을 수 있다. 여행 지역이 자동차로 다니기 힘든 오지인 경우에는 오토바이를 타거나 자전거를 탄 여행자들은 거의 영웅에 가까운 대접을 받을 수도 있다. 해발 3~4,000 m가 넘는 산악지역에서 자전거 탄 사람들을 만나면 말을 붙이지 않고 무심하게 지나치기가 쉽지 않다. 예의를 떠나서 그냥 말이 튀어나온다. 감탄과 존경을 자아내는 저 사람은 도대체 어떤  인간인지 궁금해져서 말을 걸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이 대개의 기행문과 다른 점이라면, 관광지나 유적지 중심이 아니라 길에서 만난 사람 중심이라는 점일 게다. 저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현지인이건 여행자건 밀착 취재에 가깝게 사람들의 속내를 잘도 끄집어내며, 만나는 사람들을 친구로 만드는 재주가 유별나다. 마음이 열려있지 않고서야 어디 그게 가능한 일인가. 

그래서, 저자가 택한 자전거 여행이 그걸 가능하게 했으리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힘들게 꾸역꾸역 험한 길을 두 바퀴로 달리는 사람들을 만나면 말이 저절로 튀어나오기 때문이리라. 자전거는 모든 여행 수단 중 가장 자연친화적인 동시에 가장 인간친화적인(?) 수단이 아닐까 싶다. 단, 도보여행 빼고. 

자전거로 세상과 소통하며 자신의 삶의 길을 모색하는 저자의 의미있는 여행을 부러운 시선으로 읽는 시간이 나로서도 참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고마움을 느끼게 하는 여행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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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세다 1.5평 청춘기
다카노 히데유키 지음, 오유리 옮김 / 책이좋은사람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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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가 막힌 문장 하나를 이 책에서 발견했다.  

(143쪽)'전통 음악을 배워 거리의 악사로 전 세계를 순회하자.'

고 마음 먹은 이 책의 지은이인 다카노는 일본의 전통 악기인 샤미센을 배우기 시작한다, 는 부분을 읽고 나는 거의 쓰러질 뻔했다. 나 역시 이런 낭만적인 생각으로 해금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해금 이전에는 시조창을 배우기도 했었다. 악기보다는 내 목소리로 하는 게 훨씬 간단하고 그럴싸해 보였기 때문인데, 결과는 시조창을 하기에는 호흡이 너무 짧아서 단전호흡으로 단련을 해야한다는 말에 그만 기가 죽고 말았다. 그래서 오랫동안의 궁리 끝에 해금을 택하게 되었는데...아무래도 나는 음악적인 소양이 아니올시다,였다. 마음 뿐이었다. 

이렇게 나를 단박에 사로잡은 이 책은 읽는 내내 정말 흥겨웠다. 책 제목만 보고는 좀 구질구질하고 우울한 내용이 아닐까 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내용이 밝고 유쾌했다. 이 책을 백수 시절에 읽었더라면 좀 더 알차게(?) 한 시절을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살짝 들었을 정도였다. 

청춘기라...눈으로는 다카노의 청춘기를 따라가며 다른 한편으로는 나 자신의 청춘기를 마음 속으로 열심히 써내려갔다. 나 같으면 이런 걸 쓸텐데, 나에게도 이런 게 있는데... 

즐거운 책 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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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나무 2011-07-14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재밌을 거 같아요. 딸이랑 같이 읽어보겠습니당.

nama 2011-07-14 21:34   좋아요 0 | URL
자취생활을 조금이라도 해본 경험이 있다면 이 책이 더욱 재밌을거예요.
 
[홀가분] 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홀가분 - 마음주치의 정혜신의 나를 응원하는 심리처방전
정혜신.이명수 지음, 전용성 그림 / 해냄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구나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지만 아무도 나를 위해서 어떻게 해줄 수 없는 외로운 상황에서 결국 나를 다독이고 나를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 뿐임을 절절하게 깨달았을 때 말이다. 

'내 맘대로 살자.' 이 부르짖음은 고등학교 때 나를 지탱해주었던 한마디였다. 이 한마디는 나를 위로해주는 친구였으며, 내 마음을 해방시키는 해방군이었으며, 머리를 시원하게 하는 산소였으며,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걸어갈 수 있게 하는 자존심이었다. 

내가 아무리 나쁜 마음을 먹고 나쁘게 행동한다 해도 절대로 주어진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라고 생각했다. 설사 내가 내 맘대로 한다고 해도 누구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혹은 나 자신을 자해한다거나 하는 행위는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당시 몸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몸뚱이는 하나에 머리가 둘 달려있는 괴물 같은 형상...그때의 내 모습이 그랬다. 늘 심한 편두통에 시달렸다. 몸이 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듯한 현기증에 한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걸어야 했다. 마음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억눌린 듯한 답답한 마음을 먼저 풀어야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말이 '내 맘대로 살자' 였다. 모든 걸 내 뜻대로, 내 맘대로 한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힘이 솟았다. 공부하는 것도 내 뜻이고 하기 싫은 것도 내 뜻이니 내 맘대로 해버리자, 까짓거. 

서서히 머리가 맑아지기 시작했다. 편두통도 어느 새 씻은듯이 사라져버렸다. 성적도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 효과 만점의 주문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대학과 그 이후는, '내 맘대로'의 정도로는 약발이 약했다. 

<홀가분>이라는 이 책은  이런 나와 같은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는 책이다. 자신을 응원하고, 자존감을 지켜주고,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자신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고 달래주는 자기 처방전 같은 것이다.  저자는,

(232쪽)"죽기 전에 '나 자신'을 조우하는 경험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래도 자신을 자신 만큼 아는 사람도 없다. 그러니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내가 나를 지켜주고 나를 위로해주고, 내가 나를 사랑해야 한다. 

책에서, (79쪽)'사람들이 쾌(긍정)의 최고 상태로  꼽은 단어' 가 바로 '홀가분'이라고 한다. '거추장스럽지 않고 가뿐한 상태'에서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심리적으로 암울하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에 나를 지탱해주었던 한마디 '내 맘대로'가 바로 '홀가분'이 아니었나 싶다. 심리적 털어내기였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마음의 켜켜이에 숨어있는 못난 것들, 소심한 것들, 부끄러운 것들에게 애정의 눈빛을 보내게 되면서 '아, 그래도 되는구나' 하고 마음의 위로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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