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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무쌍한 나라에 살아서 그런가. 내 마음도 덩달아 늘 변화무쌍하게 바람을 탄다.  

읽고 싶은 신간에세이를 처음 쓰기 시작할 땐 나름 즐겁더니 이제는 그 기분도 시들시들해진다. 내가 거론한 책들이 그간 별로 선택을 받지 못해서인가. 이번에도 별 기대감없이 몇 권을 뽑아보지만 누군가 내 손을 들어주리라고는 애초부터 마음 먹지 않기로 한다.  

 

나는, 꼭 행복해야 하는가. 나는, 꼭 남들처럼 살아야 하는가. 나는, 꼭 조직에 충실해야 하는가. 나는, 꼭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는가. 나는, 꼭 자식을 훌륭하게 키워야 하는가. 나는, 꼭 나다워야 하는가...이렇게 질문을 던져보게 하는 이 책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나요? 

 

 

 

 

나는 이 분을 볼 때마다 우리 큰 오빠가 생각난다. 몸집도 비슷하고 몸 재주 많은 것도 비슷하다. 얼굴은 우리 오빠가 조금 더 잘 생겼는데...때를 만나지 못했다. 그보다 꿈이 없었다. 이 분의 꿈을 엿보고 싶다. 

 

 

 

 

산 속에서 사는 사람들 얘기도 궁금하지만 세상을 무대 삼아 걸릴 것 없이 사는 사람들 얘기는 더욱 매혹적이다. 잠시 고민해본다. 산 속에서 살까, 세계를 무대로 누빌까. 이 두 세계를 한꺼번에 살아보는 건 어떨까. 하여튼 재밌을 성싶다. 

 

 

 

 

 

그래도 아직은 세계를 누비고 싶다. 온갖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꿈을 아직도 꾸고 있다. 

 

 

 

 

 

기행집이다! 그래도 사람 얘기가 제일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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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1초들 - 곽재구 산문집
곽재구 지음 / 톨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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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한 초 한 초들이 꽃다발을 들고 다가와 다정하게 인사하고 다시 손을 흔들고 가는 곳', 인도의 산티니케탄. 시인 곽재구가 생의 어느 나날들을 아름답게 보낸 곳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흔적의 기록이다. 

나는 이 시인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다. 그의 유명한 시집이 <사평역에서>라는 건 알고 있지만 내 손에 잡아본 적은 없다. 어떤 책을 읽게 되는 것도 인연이어서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건 내 게으름에 대한 핑계일 뿐, 나는 이 <우리가 사랑한...>을 읽으면서 이 시인을 지금껏 잘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에 몹시 속상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난 도대체 이런 시인도 몰라보고 어디에 정신을 팔고 살았는지, 를 잠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 나도 한동안 여행에 빠져 있었고, 인도에 빠져서 수십 계절을 앓고 지냈다. 아, 과거형이 아닌데... 지금도 늘 떠날 궁리를 하고 있고 인도가 늘 그립다. 곽재구 시인이 산티니케탄에서 보낸 시간을 1초 단위로 사랑하는 것의 무게만큼 나도 인도에서 보낸 얼마 안되는 시간들을 되씹고 있으며 그후 인도를 그리워하면서 보낸 숱한 나날들이 후유증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산티니케탄. 지지난 번 인도 여행에서 콜카타에 머물 때 산티니케탄을 생각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곳을 한나절 일정으로 돌아보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보여 일찌감치 마음을 접었다. 언젠가 기회를 노려보리라, 다짐하면서.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서글퍼지기 시작했다. 과연 그곳을 갈 수 있을까? 그곳에서 음악이나 시에 빠져서 한 세월을 보낼 수 있을까? 일 년, 아니 한 달만이라도 그곳에 머물러 볼 수 있을까? 서러움 같기도 한 서글픔이 이슬비처럼 가슴을 적셔왔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을 그리워하는 건 내 지병 중의 지병이다. 

술도 안 마셨는데 이 글을 쓰고 있자니 취기가 절로 솟는다. 곽재구 시인 때문이다. 산티니케탄 때문이다. 산티니케탄에서 540일 보낸 이야기 때문이다. 시인이 사랑해마지않는 꽃 이야기 때문이다. 열 아홉 번째 생일을 열차 안에서 맞은 어린 여행자의 이야기 때문이다. 인도 여인의 옷, 사리 이야기 때문이다. 

19살 어린 여행자....(141쪽) 7월이었습니다. 7월의 인도 슬리퍼 열차 안이 얼마나 무덥고 얼마나 절망적인지 타보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그는 자신과 함께 같은 열차 칸에 탄 모든 이들에게 짜이를 한 잔씩 돌렸다는군요. 아침에 돌리고 점심에 돌리고 저녁에 돌렸습니다. 많은 이들이 바위에게 다가와 너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했습니다. 열아홉 살 어린 여행자가 자신의 생일을 기념한 이 방식에 대해 나는 경탄과 찬탄을 금치 못합니다.  

인도 여인의 옷, 사리....(335) 자연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삶의 또다른 신성한 이유를 말하기 전 인도인들이 선택한 것이 사리의 빛깔 아닌지요. 이건 현실이 아닙니다. 꿈도 아니라는 생각입니다...살아오면서 눈과 가슴이 이렇게 깊이 함께 뛰고 열락을 느낀 적은 없습니다. 햇살과 바람 속을 펄럭이며 긴 사리의 행렬이 지나갈 때 나는 잠시 하늘의 음악을 듣습니다. 하늘의 이야기와 하늘의 꽃향기를 맡습니다. 

첫 인도 여행에서 구입한 빨간 사리 한 벌을 나는 아직까지도 제대로 입어본 적이 없다. 옷으로 입지 못하면 커튼으로라도 쓰지 뭐, 생각하고 사온 사리는 그 강렬하고도 고혹적인 천상의 색깔 때문에 일상적인 사물들과는 절대로 어울릴 수 없다는 것을 내내 깨달을 뿐이다. 

그러나 이 책의 진짜 이야기는 시인이 타고르의 시를 번역하기 위해 산티니케탄에 머물었다는 것이다. 뱅골어를 배우기 위해서이다. 타고르...이 부분은 애초에 말하지 않는 게 좋을 성싶다. 곽재구 시인도 몰라봤는데 타고르를 어이 알리. 20여 년전 문고판으로 읽은 타고르의 시가 아직 내 마음에 남아있을 리도 없고. 그저 곽재구 시인이 번역한 타고르의 시를 접하고 싶을 뿐이다. 그전에 <사평역에서>를 먼저 읽어야겠다. 내가 좀 더 성의있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 시집 먼저 읽고 이글을 쓰려고 마음먹었을텐데... 

가슴 떨리게 읽은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차분한 시선으로 쓴다는 건 어렵다. 그리고 인도가 아닌가. 그러나 인도인들의 맨발에 대한 다음 부분을 읽고는 나는 드디어 회심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297) 처음엔 이 맨발이 무척 불편했습니다. 아낙들이 뜨거운 아스팔트 길 언저리를 걸어갈 때나 나이 든 이가 감자 자루를 어께에 걸치고 힘들게 걸어갈 때.....나는 인도의 능력 잇는 신들이 저들에게 샌들 하나씩을 나눠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요....인도 생활 일 년이 지난 뒤부터 나는 이 생각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인도인의 까만 발은 인도의 자연과 역사가 빚어낸 자연스러운 삶의 문양이라 여기게 된 것입니다....나 또한 가능하다면 이들처럼 맨발로 걷고 싶습니다...그런데 이게 참 잘 안 되는군요. 신발만 벗으면 될 터인데 맨발로 사람들 속을 걷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신발만 벗으면 될 터인데' 사람들은 절대로 쉽게 신발을 벗을 수 없다. 퇴근 길에 생태공원을 맨발로 걷노라면 사람들은 대개가 내 맨발에 놀라거나 이상하게 생각한다. 신발을 벗는다는 게 실은 각 개인에게는 자신에 대한 혁명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감히 말하건대, 절대로 절대로 쉽지 않은 일이다.  

인도에서는 사원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고 심지어 양말도 벗는 경우가 있는데 처음에는 그게 무척이나 낯설고 황당해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거듭할수록 묘한 매력 같은 게 느껴지면서 나중에는 자연스러움에서 오는 쾌감의 경지까지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인도 여행을 통해 얻은 게 있다면 그건 바로 맨발로 땅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맨발로 걸어보면 다른 세상을 알게 된다. 맨발로 혹 고질적인 무좀을 완치한 경험이 있다면 세상은 더욱 달리 보인다. 무좀 치료를 하는 피부과의 진료 행위가 사실은, 진실을 은폐한 상업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소 경험으로 깨우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인도인들의 맨발을 우리의 잣대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게 된다.  

 

참으로 아름다운 책을 읽었다. 산티니케탄이 더욱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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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생김새를 한번 정리해보고 싶었다.

1. 정수기 회사에서 기사가 나왔다. 말은 서비스차 나왔다고하나 7년된 정수기를 새 것으로 교체하라고 은근히 설득하기 위해서 나온 걸로 보인다. 기사가 정수기를 체크하는 동안 그 옆에 서있기도 뭣해 방으로 들어와 인터넷이나 할까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기사 왈, 

" 인터넷도 하실 줄 아세요?" 

" 인터넷이 다 뭐예요. 블로그도 운영하는데요..." 

자꾸 내 얼굴을 들여다보는 걸로 보아 못믿겠다는 표정이다. 믿거나 말거나. 

2. 퇴근 길에는 늘 걷다보니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한번은 내 또래의 어떤 아줌마가 말을 걸어온다. 

"아줌마, 매일 보네요. 어디 다니세요?" 

"예, 음....저기 학교에 근무해요." 

"아, 청소하세요?" 

"아니요. 아이들 가르쳐요. 아줌마는 어디 다니셔요?" 

"좋은 일 하시네요. 저는 저쪽에 있는 00아파트에서 청소해요." 

3. 식구들과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 6촌 동생 얘기가 나왔다. 건강이 좋지 않아 직장에 다니지 못해서 안타깝다는 말 끝에 형제 중에서 인물이 닮은 사람이 별로 없고 좀 처지는 것 같다고 말했더니, 얼마나 못생겼는지 궁금해하는 딸이 한마디 물어온다. 

"엄마 보다?" 

4. 몇 년 전 일이다. 이것도 퇴근 길에 만나는 사람과의 대화다. 종종 마주치는 한 아주머니(나보다 10년 연상쯤된다)가 뭔가 궁금했는지 말을 걸어온다. 

"아줌마는 어디 다니시우? 00공단에 다니우?" 

"아니요, 저~기 학교에 다녀요." 

"거기서 뭘하우? (혹시 학교 식당에서 일하우?)" 

"그냥.... 아이들 가르쳐요." 

"그러면 선생이우?" 

"예. 아주머니는 무슨 일 하셔요?" 

"그전에 00공단에 다니다가 지금은 쉬고 있다우." 

5. 그간 연락도 뜸하던 대학 동창이 오랜만에 전화를 했다. 얼마전 대학 총동문회에 다녀왔다며 동창들의 소식을 물고왔다. 그중에는 벌써 세상을 떠난 친구들이 둘이나 있었다. 내 기억에 그들은 인물이 곱고 상냥한 성격으로 여자인 내가 봐도 괜찮은 외모를 갖고 있었다. 가족에게 그 얘기를 하며 "역시 미인은 박명인가봐."라며 혀를 쯧쯧 찼더니, 가만히 듣고 있던 딸내미가 한마디 던진다. 

"엄마는 걱정마. 엄만, 불사조야." 

6. 가족이랑 <혹성탈출> 영화를 즐겁게 봤다. 뭔 얘기 끝에 남편이 그런다. 

"당신은 영화에 나오는 침팬지의 (얼굴은 물론) 눈도 닮았네그려. 노랗고 초록빛이 나는 게 똑같아. 흐흐흐흐흐"

7. 이건 푸릇푸릇한 내 20대의 얘기다. 친동생 같은 이종사촌동생이 어느 날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누나, 누나는 말야. 이모와 이모부의 안 좋은 부분만 닮은 것 같애." 

그러고 세월이 흘러 각각 자식을 한 둘씩을 둔 중년이 되어가고 있는데, 어느 날 이 이종사촌동생의 처되는 사람, 그러니까 올케가 이런 말은 하는 거다. 

"고모, 00(내 딸아이)는 고모와 고모부의 좋은 점만 닮았어요." 

 

진화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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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 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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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인류의 멸망이 이렇게 시작될 수도 있구나, 하는 상상력에 감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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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와 사이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커뮤니케이션 강의 지식여행자 12
요네하라 마리 지음, 홍성민 옮김 / 마음산책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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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쉽게 읽히면서도 잘 읽히지 않는다. 눈 앞에서 재밌는 얘기를 들으면서 딴 생각을 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통역사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보니 아무래도 관심이 덜 가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영어통역사에 대한 다음 얘기는 인상적으로 들렸다. 

(160쪽)..외국어를 배우는 사람은 저절로 비판정신이나 복안사고가 자연스럽게 몸메 밴다. 프랑스어, 이탈리아어......한국어 등 다양한 언어의 동시통역사들 가운데 재미있는 사람이 많은 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영어 동시통역사는 비판정신이나 복안사고가 약하다. 왜 그런지 한번 생각해 보았다. 

첫 번째 원인은, 일본 사회는 지나치리만큼 영어에 치중해서, 외국에서 생활하다 돌아온 귀국자녀만 해도 영어를 동시통역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배운 사람이 너무 많다. 그런 경쟁에서 살아남아 채용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우등생 타입이다. 주위에서 원하는 틀에 맞추다 보니 제 개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다. 

두 번째 원인은 영어밖에 할 줄 몰라서 영어로 된 정보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서 영어가 지배적인 언어이다보니, 영어를 안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정보나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는 정보가 너무 적다. 일본의 경우 과하다 싶을 만큼 영어에 치우친 사회이기 때문에 영어를 아는 것으로 사물을 보는 새로운 방식이나 지금까지 생각지 못한 발상법을 접할 기회가 적다. 

세 번째는 외국어 예찬 병이다..... 

일본인에게 제1외국어는 거의 대부분 영어다. 그래서 외국어 예찬, 즉 영어 예찬 병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외국어를 하나 더 배우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제1 외국어를 거리를 두고 냉정히 볼 수 있다. 

..영어 동시통역사가 하는 이야기가 재미없는 이유는...일본처럼 영어교육과 습득에 치우친 사회에서 영어 통역사가 된 사람은 대개 영어밖에 못하기 때문이다. ..영어는 의무교육으로 모두 배우도록 되어 있어서..모두 영어를 할 수 있다....3개 국어를 하는 사람은 각각의 언어가 상대화되어 삼각형을 이루기 때문에 하나하나를 떼어놓고 볼 수 있지만 영어의 경우는 오직 영어 하나뿐이다...영어를 습득할 때도 영어를 생명처럼 소중히 여겨 오로지 영어에만 매달리면 생각만큼 실력이 향상되지 않는다. 다른 외국어를 하나 더 공부하는 게 좋다...하나 더 배우는 것이 멀리 돌아가는 비효율적인 방법 같지만 사실은 영어를 가장 빨리 배울 수 있는 지름길이다. 

 

인용이 길었다.  "영어 동시통역사"에서 동시통역사를 빼고 보면(동시통역사의 세계를 어이알리), 즉 영어를 하는 사람들로 생각해보아도 이 요네하라 마리의 주장이 일리가 있어 보이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영어 교사라는 집단에 대입해보아도 그대로 들어맞을 성싶다. 음, 재미없는 사람들이라... 

 일본의 경우 과하다 싶을 만큼 영어에 치우친 사회이기 때문에 영어를 아는 것으로 사물을 보는 새로운 방식이나 지금까지 생각지 못한 발상법을 접할 기회가 적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영어를 안다고해서 사물을 보는 새로운 방식이나 새로운 발상법을 접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와 닿는다. 영어 하나 배우는 데도 온갖 물질적, 정신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는데도 그 결과 얻는 것은 별로 없다는 말에 기운이 좀 빠지긴하지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제2외국어 배우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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