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슬픈 아시안
이시이 코타 지음, 노희운 옮김 / 도솔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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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몸으로 겪으며 써내려간 글은 거칠지만 울림이 크다. 바로 이 책이 그렇다.  

이 책은 동남아시아나 인도, 네팔 등을 여행할 때 늘 맞닥뜨리게 되는 어두운 세계- 거지, 거지로 몰락한 장애인, 전쟁으로 인한 상이군인, 마약에 빠진 사람들. 어린이 유괴와 렌트차일드 등등...-를 직접 두 발로 걷고 그들과의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서 알아낸 비참한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몇번 씩을 갔어도 차마 그 세계에 눈 한번을 줄 수 없어 애써 외면하곤했던 그 비참한 세계를 이렇게 일부러 찾아가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놀랐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세상을 보겠노라고 여기저기 싸다니지만 도대체 내가 본 것은 무엇이며, 제대로 본 것은 무엇인가, 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여행자의 가벼운 흥분과 몸놀림 속에서 이국적인 풍물에 대한 보잘것 없는 호기심과 얕은 지식으로 만족하지는 않았는지...따져볼라치면 마음이 착잡해지고 부끄러워진다.  

난 도대체 세상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인도만해도 그렇다. 뭄바이의 거지들을 피할 줄만 알았지 그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렴풋이 들은 얘기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다섯 살 미만의 어린이들을 납치해서 거지들에게 렌트를 해주어 돈을 착취하고, 이후 이 렌트용 어린이가 다섯 살이 되면 팔이나 다리를 잘라서 불구로 만들어놓고는 거지 행각을 시키는 인도의 무서운 마피아 얘기에는 소름이 끼쳤다. 차마 이 정도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인도 영화에서 보는 섬뜩한 폭력성이 왜곡이 아님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요즈음에는 접하는 책 마다 나를 부끄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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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걷다 -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로 떠나는 섬 여행
강제윤 지음 / 홍익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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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돈이 많이 있다면 조그마한 섬을 통째로 하나 사서 나의 왕국을 만들면 좋겠다는 꿈. 나는 한때 이런 꿈을 꾼 적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지나간 나의 꿈이 떠올랐고 몹시 부끄러웠다.  

어쩌다 놀러 다니곤 했던 섬은 불편하기 그지 없었다. 무엇보다도 물이 아쉬웠다. 야영이라도 하게 되면 제대로 씻을 수 없어서 이내 불평불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는 어서 빨리 섬에서 벗어나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당연히 섬에서의 추억이라고 할 것도 별로 없다. 부족함과 불편을 참아낼 엄두도 못내면서 섬을 하나 사겠다니 도대체 이 무슨 황당한 꿈을 꾸었는지 모르겠다. 

누군가 이렇게 비현실적인 꿈 속을 거닐 때, 이 글을 쓴 강제윤이라는 분은 직접 두 발로 섬을 걷기 시작했다. 우리 나라에 있는 4400여 개의 섬 중에 유인도 500여 개. 10년 동안 이 유인도를 모두 걸어갈 예정이라한다. 지금까지 그는 100여 개의 섬을 걸었다고 한다. 이 책은 그간의 기록이다. 

여행이 일반화된 시대라 몇십 개국 여행은 이제 얘깃거리도 못되는 풍요의 세상에서 그의 고독한 섬 걷기 여행 기록은 나즈막하면서도 진지하게 마음 속으로 파고든다. 새로운 곳을 밟았다는 흥분이나 남이 가보지 못한 곳에 갔다는 자랑 같은 것은 이 책에서는 찾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여행기나 기행문과는 거리가 멀다. 

섬이 죽어가고 있다. 죽어가는 섬을 지키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노인들뿐이다. 이 분들이야말로 진정한 생애의 스승이고 나침반이라고 저자는 쓸쓸하게 말한다.'세계의 어느  길에서도 나는 이 나라 섬에서 만난 노인들보다 더 훌륭한 스승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다.'라고. 

(104) 강한 군사 집단이 이웃 나라를 침략하여 노략질을 하고 땅을 빼앗고 백성들을 노예로 만드는 것이 해적질과 무엇이 다를까. 역사가들은 이를 정복이란 이름으로 미화하기도 하지만 해양 왕국의 역사가 바로 해적의 역사다. 먼저 세력을 키워 나라를 세운 해적 두목은 왕이 되고 뒤에 나타난 세력은 해적으로 이름이 남겨졌을 뿐이다.....중국에서는 '관리가 되려면 먼저 도적의 수령이 되라'는 격언이 있을 정도였다. 그 격언은 여전히 이 시대 이 땅에서까지 통용된다...이 땅의 정치인들이 나라를 거덜 내는 도적질만을 일삼는 것은 그들의 뿌리가 도적의 뿌리와 같기 때문이다. 

(199) 우리는 모두가 슬픔의 후예다. 우리는 모두가 고난의 후예다. 슬픔과 고난을 견디고 살아남은 자들의 후예다. 그 모진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기란 진실로 희귀한 일이다. 살아남은 자들의 후예로 살아 있다는 것은 마침내 기적 같은 일이다.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인 삶이여! 

(210) 기도란 무엇일까? 내 안에 신이 있고 내 안에 불성이 있다면 기도란 내 안의 부처와 신에게 기원하는 것이 아닐까. 기도하는 것도 나고 소망을 이루어 주는 것도 나다. 그러므로 기도처에서의 기도는 소망을 이루기 전에 자기 스스로를 인간 정신의 높은 곳으로 이끄는 고귀한 행위다. 정신의 고양을 통해 스스로 신과 불보살의 경지에 이른 다음에야 나는 나의 기도를 이루어 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기도를 누군가 대신 해준다면 그것도 기도라 할 수 있을까? 

내 안에 있는 쓰레기 같은 못된 것들을 제대로 살펴볼 수 있어서 한 편으로는 아픈 책이다. 그러나 더욱 아파할 일이다.  

우리 나라의 섬을 다 둘러본 저자의 목소리를 언젠가 다시 듣고싶다. 그때도 지금처럼 아프다면 나는 분명 세상을 잘못 살았을테지만.... 

사실이 너무 잔혹하지 않고 꿈이 너무 비현실적이 아닌 나라에서 살았으면...버나스 쇼가 했다는 이 말에 다시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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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단 한번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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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_________선생님 

With Love, 

장영희

 

위의 빈 칸에 내 이름이 떡하니 들어간, 저자의 친필 사인이 적혀있는 이 책을 작년에 한 교과서 출판업체로부터 받았다. 교과서 선정을 앞두고 소위 로비라고 건네준 책이다. 이 책을 받고는 책상 위에 그냥 올려놓는 것만으로도 며칠간 야릇한 행복감에 젖었었다. 친필 사인의 책이라서 감동적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생각도 들지 않을 수 없었는데, 얼굴도 모르는 교사들에게 자신이 지은 교과서 홍보를 위해 기계적으로 사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20여 종이 넘는 교교서와 경쟁하다보니 어떤 외압(?)같은 것이 있었으리라는 짐작과 함께 사인의 고단함이 느껴졌다고나할까. 

솔직히 이 책을 끝까지 읽지는 않았다. 이 분의 글에서는 뭐랄까.....지적이긴한데 뭔가 절실한 생활이 부재한다고할까. 생활에서 오는 어떤 깊은 울림 같은 게 전해지지 않았다. 범생이에게서 엿보이는 단정함은 무미건조함의 다른 이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싶다.   

이 분이 집필한 교과서로 수업을 한 지도 벌써 4년째. 알게 모르게 들이마시는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이름이 입에 붙어버린 장영희. 

돌아가신 이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음에,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분이건만, 서럽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를 대신할 수 있는 말을 찾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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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목수정 글, 희완 트호뫼흐 사진 / 레디앙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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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이 있는 책이다. 당차고 야무지다. 그리고 자유롭다.

p.163 한우물을 파야한다... 집단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한 영역씩 맡아서 한우물을 죽어라 파주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러나 각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그건 어쩌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인생일 수도 있다. 난 이 거대한 사회의 나사가 아니다. 나 혼자서도 하나의 거대한 우주를 구성할 수 있다. 여러 우물을 파면서, 세상의 모든 재미를 두루 즐기면서. 

194. 한국사회에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겹겹이 둘러싼 허물들이 있다. 결혼전까지는 간신히 모르고 살다가도 결혼을 하고 단 몇 년 만에 완전히 온몸으로 체득하고 뼈저리게 부딪히며, 저항할 수 없이 미끄러져 들어가 투항하게 되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다양한 기제들. 

289. 모든 진정한 예술작품은 시대에서 튕겨져 나간다. 시대를 저항하고 조롱하고 비판하며 앞서 나간다. 우파는 오른쪽으로 가기 보다는 주어진 길을 가는 사람들이며, 좌파는 현상을 까뒤집어보고 다른 각도에서 삐딱하게 보는 사람들이다. ...우파는 사람들을 얌전히 성냥갑 안에 넣어놓고 통제하려 들며, 좌파는 어떻게 해서든 그 통제의 틀을 뛰쳐나오려 한다. ..최근 들어 깨달은 좌와 우에 대한 가장 명확한 정의는 전자는 생명을 지향하고 후자는 죽음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정신의 무한한 자유를 추구하고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 조화로운 상생을 꿈꾸며 깨어있는 존재가 좌파라면, 텔레비전 앞에서 일생의 대부분을 보내면서 일찌감치 자신의 영혼을 무덤 속에 파묻고 보수언론의 선동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생태를 파괴하는 것이 발전이라고 믿는 쪽이 우파다. 우파가 가장 싫어하는 좌파의 부류가 생태주의자라는 사실이 어떻게 우연일까.

얼마 전 읽은 김점선의 책이 떠오른다.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정신들이 있고, 그 삶을 조금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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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 미국을 누비다
장원용 지음 / 스토리나무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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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난 미국을 싫어한다. 어려서부터 왠지 미국식으로 살아온 것 같은 생각에(미군부대 근처에서 태어나고 자랐음) 미국에 대한 동경 내지는 호기심 같은 것은 추호도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며 지내왔다. 남들이 미국 여행을 들먹일 때 나는 늘 코웃음을 치며 그쪽으로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여권과 돈만 있으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외국인데 유독 미국이라는 나라는 입국 조건이 까다롭고 비자 발급 받기가 어려운 나라로 사람에게 등급을 매겨 그네들 입맛대로 받아들이는 나라이다. '흥, 비자가 없어지면 그때나 한 번 갈까, 내 그런 나라에는 절대 안간다' 그랬는데 정말 비자없이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이해하려고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무엇인가를 혹은 누군가를 비난하는 일을 보면 한심하고 답답하다. 예를 들면 전교조에 대한 막연한 적대감이나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 단순함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어찌 내 눈과 그들의 눈은 이렇게나 다를까.....이런 모습을 나는 내 자신에게서 발견한다. 내가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렇다. 

  그래서 나는 은근히 미국을 공부하고 있다. 제대로 된 시각을 갖기 위한 내 나를의 노력이다. 출근하면 먼저 인터넷으로 미국발 뉴스를 본다. 영국발 뉴스도 보는데 (둘 다 청취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그나마) 귀에 더 익숙한 건 영국 발음이다. (내 귀도 주인을 닮아 미국쪽을 거부하는지..) 그리고 미국 여행기도 기회가 닿으면 열심히 읽어준다. 홍은택의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를 명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곰곰 따져보니 미국 관련 책은 별로 읽은 게 없다. 왜 그럴까? 궁금한 게 없기 때문? 미국 문화권 혹은 미국화된 문화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 때문? 평생을 옥죄고있다고 생각하는 영어 때문?

  미국에 관한 책은 그래서 일단 날을 세우고 보는 습성이 생겼다. 그러나 늘 읽지 않은 책을 쌓아두고 차일피일 미루는 고질적인 나의 안일한 독서 행태상 마음에도 없는 미국쪽 책을 그리 쉽게 집어들지는 못한다. 날을 세우고 책을 읽는 것은 고역이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미국 관련 책은 집어 들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책. 한가족의 미국 여행기는 요란스럽지도 않고 어께에 힘을 준 책도 아니어서 읽는 내내 유쾌했다. 미국이라면 늘 날을 세우고 삐딱하게 보는 사람도 무리없이 볼 수 있는 책이고라고나 할까. 지은이의 소박한 심성이 곳곳에 드러나있어 마치 친구의 여행 얘기를 듣고 있는 것 같다. 낚싯대를 던지는 아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아버지 잘 만나 참 복도 많은 놈이다!' 생각하며 혼자 빙그레 웃었다고 하는 지은이. 이 말은 내가 우리 딸아이에게 여행 때마다 써 먹는 멘트다. 

  여행기를 읽는 재미 중의 하나는 '낯섬'이 주는 묘한 끌어당김인데 미국 여행기에는 그 '낯섬'이 절대 부족하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의 도시나 사람들 얘기가 너무나 자연스럽고 익숙하다.여기가 미국인가?  부처님 손바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손오공처럼 미국이라는 손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꼴이다.

  한 권의 부담없는 여행기를 읽고 소박한 독서의 즐거움이나 쓰려고 했는데 생각이 중구난방이다, 미국은 내가 가보고 싶은 곳이 아니라 끊임없이 경계해야 할 어려운 대상, 공부해야 할 대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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