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의 힘
반칠환 지음 / 큰나(시와시학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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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시흥시에서 개발한 늠내길 1코스와 3코스를 2주에 걸쳐 걸었다. 올레길, 둘레길에서 느꼈던 바 이지만 뭇 사람들의 숱한 노력들이 숨어 있었다. 고마운 마음이 절로 들었다. 더군다나 늠내길은 도시에 자리잡고 있어서 접근하기도 수월했다. 새삼 세상을 바꾸는 힘은 이런 이름없는 사람들의 숨은 노력임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하여튼 고마운 마음에 머리가 절로 아래로 향했다. 모처럼 겸손한 마음이 들었다. 
시흥 시청 앞에서 시작되는 1코스에는 사람들이 쉴 만한 곳에 간이 쉼터를 몇 군데 꾸며 놓았다. 쉼터 주변에는 앙증맞게도 낙엽 모양의 예쁜 시들이 하얀 종이에 코팅되어 나무잎 처럼 여기 저기에 걸려 있었다. 먹을 것 다 먹고 쉴 만큼 쉬고 나서 다시 길에 나설 즈음, 시 한 수를 들여다 보았다. 느닷없이, 맨 밑에 써 있는 시인의 이름에 반가운 마음이 울컥한다. 반칠환. 분명 내가 아는 시인이다. 잠시 문창과에 적을 두었을 적에 함께 수업을 들었던 친구다. 

정호승, 김용택, 안도현 등과 나란히 걸린 그의 시를 읽자니 내 마음이 따뜻해져 왔다. 옆에 있는 남편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며 '"혹시 자기 것을 자기가 붙여 놓은 것 아닐까?"한다. 짓궂은 남편이다. 하기야  내 주위의 책 깨나 읽었다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 몇 편을 읽어본다. 


멸치에 대한 예의 

 
큰 생선은 머리 떼고, 비늘 떼고, 내장 발라내고,  
지느러미 떼면서 멸치를 통째로 먹는 건 모독이다 어찌 
체구가 작다고 염을 생략하랴 멸치에 대한 예의를 갖추자  

 
가을 
 
조는 온 힘을 다해 좁쌀로 들어간다 
벼는 온 힘을 다해 볍씨로 들어간다 
참깨는 온 힘을 다해 깨알로 들어간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어디로 들어가나  

 
젓국 가게 
 
굴젓, 
갈치젓, 
명란젓, 
오징어젓 
비린내 가득한 그 옆에 쭈그려 
상한 내 마음 한 종지 
헐값에 팔고 싶네  

 
반칠환은 참 소박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마른 몸매 때문인지도 모른다. 왠지 서러워 보이던 인상은.

반가운 마음에 그의 시집을 구입하고 다시 이런저런 시를 읽어보니 늠내길에서 읽었던 감흥이 되살아났다. 첫번째는 대강 읽고, 두번째 다시 읽어보니 참 맛이 조금씩 조금씩 음미가 되는 것 같다. 
 
그대 안녕하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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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어로 미국을 이겼다 - 가장 빨리 영어를 마스터하는 10개의 영어기술
김재연 지음 / 비욘드올(BEYOND ALL)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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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당찮은 제목이지 싶다. 이겨야겠다고 생각한다는 건, 늘 뒤따라 잡기 힘들다는 얘기에 지나지 않는다. 좀 더 겸손한 제목을 내걸었으면 하는 아쉬움에 몇 자 적어본다. 참고 사항으로. 

1.색다른 should 의 용법이 눈에 띄어서 적어둔다. 

*안내문에 자주 등장하는 should: Should you have any questions, please feel free to contact us.(질문이 있다면 기꺼이 저희에게 문의해 주십시오.) 원래는 If you should any questions...인데 if가 생략된 것으로 글을 쓸 때 많이 사용됨. 

이렇게도 쓰인단다. Please feel free to contact us should you have any questions.

또 하나의 예, Should you be interested, I can send you more information.(관심이 있으시다면 더 많은 정보를 보내드리겠습니다.) 

   I can send you more information should you be interested. 

그러나 보통은 이렇게 쓰인다. 

  If you are interested, I can send you more information. 

2. that 과 which의 차이점 

He sold the old books that were in the basement. (그는 지하실에 있는 오래된 책들만 팔았다)      

He sold the old books which were in the basement. 

He sold the old books, which were in the  basement.(이 사람이 소유하고 있던 모든 오래된 책들을 팔았다. 그 모든 오래된 책들은 지하실에 보관되어 있었다.) 

that 과 which를 구별하자면, "한정적인 의미일 때는 항상 that을 쓰고, which를 쓸 때는 항상 콤마를 앞에 붙인다."...그리고 영문을 읽을 때는 다음을 기억하자. 앞에 콤마가 없이 관계대명사로 쓰인 which를 보면, 열에 아홉은 that이 더 적절하고, 나머지 하나는 which 앞에 콤마를 삽입해야 하는 경우라는 것이다.(182쪽) 

3. 그리고 가정법.....그닥 새로운 것도 별로 없다. 중고등학교 수준에서 가정법을 제대로 배웠다면 이미 다 나와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은.....일종의 영어극복기 내지는 성공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가르치고자 하는 생각이 강하다는 것이다.  

언제까지나 영어관련서적이 복음서 같은 분위기를 풍겨야할까, 하는 묘한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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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카드, 대한민국 영어공부
송봉숙 지음 / 부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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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새로운 내용이 있을까, 혹 현재의 상황을 타파할 혁신적인 주장이 있을까. 혹 현상황을 대신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을까...하는 기대감에 책을 집어들었다.  

'원어민처럼 하려는 것은 바보짓이다.' 이 말을 유학가고서야 깨달았다고? 원어민처럼 영어를 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미친 짓이다. 절대로 될 수도 없거니와 될 필요도 없다. 죽자하니 따라해서 잘한들, 그래서 그네들과 의사소통이 원만해진들 남는 게 뭐가 있을까. 승리를 알리기 위해 죽자하고 달려와서 끝내는 죽음으로 마감했다는 이야기와 뭐가 다를까. 

세월이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조금이라도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하는-영어는 필요한 사람만 하면 되는 것이다. 태교 때부터 시작하는 영어 광풍에 온 국민이 휩싸여 있는 한 우리는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다. 식민지도 이런 식민지가 없다. 차라리 총칼 들고 싸우라면 싸우는 대상이라도 확실하지, 이 영어라는 공공의 적 앞에서는 적이 누구인지도 무엇인지도 구분이 가지 않는다. 도저히 파악되지도 않는 적 앞에서 대적거리는 커녕, 있는 것 없는 것 다 바쳐가며 온갖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조공이 또 있을까. 

(167쪽)'...영어 교육 열풍에서 빠뜨릴 수 없는 건 영어 교육 시장을 확대하려는 미국의 노력이다. 미국은 세계 여러 나라의 영어 교육 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세계가 영어 교육에 열을 올릴수록 그들의 일자리는 많아지고 영어 교육 관련 수익이 높아질 테니 말이다.'

이 대안도 없고 대책도 없는 이른바 '영어 몰입'국가에서 영어교사로 있는 이 책의 저자 얘기는 구구절절 하소연 내지는 넋두리 처럼 들린다. 이 책을 통해 무엇인가 얻을 것이라는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사실을 사실대로 썼을 뿐이고 일반의 상식을 상식대로 썼을 뿐이다. 당연하다면 너무나 당연한 얘기들이다. 이 당연한 것들을 2년 반의 유학을 톻해서 확인했다는 정도라고 할까. 

대한민국에서 영어교사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해석하며 이 책을 덮자니 심정이 착잡해진다. 숨이 턱턱 막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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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꿈꾸는 기적 : 인빅터스 - Invictu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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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객 10명 정도에 하루 한 번 상영하고 있는 영화를 보고 왔다. 원제로는  Invictusf라는 영화다.  줄거리는 생략하련다. 

다만 만델라가 감옥에서 즐겨 암송했다는 이 한 편의 시를 기억하고자 한다. 

라틴어 invictus는 unconquered의 뜻으로 '굴복하지 않는'이라는 뜻이란다. 이 시를 쓴 사람은 William Ernest Henley(1849-1903)라는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 시인으로 영문학도의 교과서인 The Norton Anthology에도 실려있다. (처음부터 알았던 건 절대 아니고 나중에 영화를 보고와서 찾아보니 있더라는 얘기. 그것도 모르고 인터넷 검색만 열심히 했다.) 

이 영화도 영화지만 이 시인에게도 흥미가 가는데....12세 때 결핵(tuberculosis of the bone)을 앓았는데 점차 그 병이 발까지 진행되어 끝내는 한 다리를 무릎 아래까지 절단해야만 했다고 한다. 25세 때였다. 1867년에는 Oxford에 들어갔고 이 시를 병원 침대에 누워서 쓴 것은 1875년이었다. 53세에 숨을 거두기까지 한 쪽 다리로 active한 삶을 영위했다고 한다. 

시 전문은 다음과 같다. 

Out of the night that covers me, 

Black as the pit from pole to pole. 

I thank whatever gods may be 

For my unconquerable soul.  

 

In the fell clutch of circumstance 

 I have not winced nor cried aloud. 

Under the bludgeoning of chance 

My head is bloody, but unbowed. 

 

Beyond this place of wrath and tears 

Looms but the Horror of the shade, 

And yet the menace of the years 

Finds and shall find me unafraid. 

 

It matters not how strait the gate, 

How charged with punishments the scroll, 

I am the master of my fate: 

I am the captain of my soul.

 마지막 두 문장의 의미만 확실히 알아도 될 것 같은 시이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다....이 영화는, 그래서, 몸으로 실천한 만델라이기에 감동적이다.

 

 *여기저기 검색하다가 재밌는 게 눈에 들어왔다. 

http://en.wikipedia.org/wiki/Invictus_(film

예를 들면, 만델라가 대만 방문 중이었을 때 회의실 이름이 대만에서 쓰는 한자인 번체자(우리도 이것을 사용하고 있다)가 아니라 중국에서 쓰는 간체자로 되어 있다는 식의, 사실과 다른 부분들을 열거하고 있다. 세상엔 똑똑하고 섬세한 사람들이 많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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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를 금하노라 -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치다
임혜지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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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가슴 속에 품은 말을 다 할 수 있을까? 가족과 여행 중 남편과 심하게 다투었던 일이나, 친구들과의 여행을 통해서 알게된 가슴 아픈 이야기들을 시원하게 기행문에 풀어 놓을 수 있을까? 콘돔이 뭐냐고 묻는 어린 딸아이에게 있는 그대로의 사용법을 말해줄 수 있을까? 때로는 첫사랑이 그립기도 하다고 배우자에게 털어놓으며 지나간 세월을 함께 아파할 수 있을까? 

얼마 전 만 해도, 아이들이 내 키를 물어오면 대강 얼버무리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냥 대수롭지 않게 내뱉어버린다."응, 150이 좀 안돼. 내가 이래봬도 미래형 인간이라는 거 알지?...." 이렇게 말하기까지는 반세기가 걸렸다. 그게 뭐라고... 

힘든 한 주일을 보냈다. 한 아이가 갔다. 얼굴도 모르고 가르친 적도 없는 아이였지만 속절없이 가버려서 가슴이 너무 너무 아팠다. 작년 담임선생님과 엄마에게 '그동안 고마웠다'고 문자를 남기고는 홀연 사라져버린 아이 소식에 내내 답답하고 슬펐다. 사고를 접한 날, 새로 부임한 교장은 교내의 네트워크 메신저로 자작시 한 편을 전체에게 날렸다. 감동은 커녕 사뭇 저의가 의심스러운, 생각없는 행동으로 치부해버리고 비웃어버렸다. 

그 우울한 와중에 이 <고등어를 금하노라>를 꾸역꾸역 읽고 있었다. '흠, 알뜰한 살림꾼이군. 너무나 도덕적이군. 바람직하게 사는 사람이군. 생각이 무척 바르군.' 내내 시쿤둥하게 읽어나갔다. 자동차가 없다고? 흠, 나는 자동차 면허도 거부한다구! 자전거 타고 다닌다구? 흠, 나는 왠만한 거리는 걸어다닌다구! 에너지를 아낀다구? 흠, 나는 내 몸 자체가 에너지 절약형 인간이라구! 

그러다가 10대의 딸아이에게 이른바 성교육을 시키는 얘기에 나는 그만 뒤집어지고 말았다. 혼자 실컷 웃었다. 눈물까지 흘려가면서. 만15세가 된 딸아이에게 콘돔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장면은 가히 이 책의 백미였으니.. 

(114쪽)...또 어디 가서 이놈의 모델을 구해 오나 고민하던 나는 냉장고를 뒤져 당근 봉지를 꺼냈다. 그중에 약간 작은 듯한 놈으로 골랐다. 너무 크면 딸아이가 보고 쇼크를 먹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고, 나중에 남자를 만났을 때 고지식하게 당근보다 작네 어쩌네 하며 남의 집 귀한 아들을 기죽이면 큰일이겠다 싶기도 했다. 

계속 이어지는 남편과의 이런 대화는 또 어떤가. 

"그, 그걸 말이라고 해? 공부도 안 끝난 애가 임신하면 어떡해? 그 애 인생은 어떻게 되고?" 

"인생이 어떻게 되긴? 우리 아직 건강하겠다, 부모가 힘껏 도와줄 텐데 아기 키우면서 공부하면 되지 무슨 걱정이야? 그런 걸로 사람 인생 안 망쳐. 그런 것보다 더 무서운 건 우울증이나 마약 같은 마음의 병이야. 그건 부모가 암만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잖아." 

<한두 번 실수로 망가지는 인생은 없어>라는 꼭지에 실린 이런 내용을 읽고는 갑자기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밝아졌다. 학교에서 돌아온 중2짜리 딸아이에게 이 부분을 읽으라고 던져주었다. 저녁밥을 지으며 내심 반응을 살펴 보았다. 헤헤 웃더니 뭔가를 계속 조잘거린다. 그 책도 재밌고 그런 책을 읽으라는 엄마도 재밌다는 투였다. 됐어! 

다음 날. 그리고 또 그 다음 날. <한두 번 실수로 ..>이 부분을 복사해서 B4 한 장과 A4 한 장에 오려붙인 후 다시 복사를 해서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아이들에게 두 명에 한 장 꼴로 돌렸다. 중3인 아이들의 반응은? 재밌다는 투인데 드러내놓고 깔깔대거나 호탕하게 웃는 아이가 없다. 비실비실 웃음만 머금는다. 어라....궁금해진 내가 물었다. "내용 어땠어? 재밌지?"..."근데 이 얘기 정말이에요?", "그 가족 좀 이상해요..." 

너희가 어떤 실수를 해도, 어떤 잘못을 해도, 그냥 말없이 사라져버리지 말기를 간절히 바란단다, 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내 뜻은 이거였는데 내 어눌한 말주변이 감히 감당해내지 못했다. 

이 책은 참 좋은 책이다. 좋은 점을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어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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