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꾸준한 노력으로 체중이 6kg정도 빠졌다. 우선 평생을 트레이드마크처럼 지녀왔던 통통함이 얼마간 사라져버렸다. 얼굴이야 원래 큰 사이즈가 작아질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몸은 제법 가벼워졌다. 심지어 맨바닥에 앉으면 엉덩이 뼈가 아플 정도로 그 푸짐하던 엉덩이살도 빠졌다. 전에는 상상해볼 수도 없는 변화를 맞았다. 진정한 의미의 상전벽해를 몸으로 체험하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아프다. 통증이 낫기는커녕 조금씩 강도와 폭을 넓히고 있다. 어제 아픈 곳이 더 아프고 안 아프던 곳도 덩달아 아파온다. 몸은 아프다고 아우성치지만 다시 스테로이드와 면역억제제를 사용하는 병원으로 돌아가긴 싫고, 내 몸의 주인이 되어 이러저러한 방법을 강구해보지만.....길이 더디고 멀다. 마음을 다져야겠다는 생각에 책에 몰두하게 된다. 그래서 읽은 책.

 

 

 

 

 

 

 

 

 

 

 

 

 

 

 

 

이 책의 존재는 알고 있어서 언젠가는 읽으리라 벼르고 있었는데 직장의 '왕언니'가 선물로 주었다. 많이 움직이고 적게 먹고....구구절절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들인데 극단적인 부분도 없지 않다. 왜 건강관련 프로그램에서 꼭 자막으로 뜨는 구절이 있잖은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체험'일 뿐일 수 있다는. 그러나 이 책은 개인적인 체험보다는 개인적인 소소한 감상과 사유가 책의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자연을 만끽하면서 사는 사람의 자연 예찬, 일상과 의학적인 소견들이 마구 섞여있다. 낙엽더미에서 도토리 줍듯 내가 필요로 하는 부분들을 걸러내야 했다. 눈에 체를 달고 읽어야 할 듯...

 

 

 

 

 

 

 

 

 

 

 

 

 

 

 

 

 이 책의 저자는 양의로서 흔치않은 길을 걷고 있는 분이라 진정성이 느껴지나, 이 자연치유의 길은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환자를 일컫는 영단어 patient 를 말 그대로 몸으로 실천해야 한다. 인내하고 또 인내하고....이 책을 읽어도 통증을 가라앉힐 손쉬운 방법은 열리지 않는다, 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그래서 또다시 읽게 되는.

 

 

 

 

 

 

 

 

 

 

 

 

 

 

 

 

 

몹시 아파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책이다. 내가 아픈 건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위로를 얻는다. 책의 서두는 구절구절이 밑줄긋기감이다.

 

(이하 인용문) 내가 정말로 알고 싶은 것은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다./ 심각하게 아픈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것을 인정해주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질병은 삶을 위협하지만 살아갈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기도 한다/ 충만한 삶을 산다는 측면에서는 아픈 사람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보다 훨씬 더 자유로울 수 있다./ 나는 다만 내게 일어나고 있던 일이 조금이라도 인정받기를 원했다./질병은 삶을 바꿀 수 있으며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음을

 

얼마쯤 읽다가 다시 내 조급증이 발동했다. 중간부분부터 성큼성큼 읽다가, 끝부분에서 한차례 더 엿보다가 책을 덮고 말았다.

 

 

아프다고 징징거리느니 동네라도 한 바퀴 돌다와야겠다. 오후에 온다던 남편도 돌아오지 아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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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y Oliver 의 시는 이웃서재님의 글을 읽고 알게 되었는데, 검색해보니 쉽게 시를 찾을 수 있었다.

 

 

The Journey

 

One day you finally knew

what you had to do, and began,

though the voices around you

kept shouting

their bad advice-

though the whole house

began to tremble

and you felt the old tug

at your ankles.

"Mend my life!"

each voice cried.

But you didn't stop.

You knew what you had to do,

though the wind pried

with its stiff fingers

at the very foundations,

though their melancholy

was terrible.

It was already late

enough, and a wild night,

and the road full of fallen

branches and stones.

But little by little,

as you left their voices behind,

the stars began to burn

through the sheets of clouds,

and there was a new voice

which you slowly

recognized as your own,

that kept you company

as you stroke deeper and deeper

into the world,

deternined to do

the only thing you could do-

determined to save

the only life you could save.

 

어느 날, 자신이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깨달았을 때,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길을 떠나는 자의 결연함을 노래한 시인 것 같다. 황량한 밤, 거리는 나뭇가지와 돌멩이로 가득하지만 구름장 사이로 별빛이 타오르기 시작하고 자신을 격려하는 새로운 목소리도 들려오는데, 목소리는 다만 자신의 목소리, 세상 속으로 홀로 걸어가야 한다.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일, 단 하나의 생명을 구하기로 결심하고. '단 하나의 일' 은 여행일까? 구해야 할 생명은 자신일까? 다른 일도 그렇지만 여행은 절실해야 한다. 떠나는 자의 절실함 같은 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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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을 먹고, 손가락만 까딱하면 영화상영시간 알아보는 것쯤 아무것도 아닌 것을, 그냥 가서 표 끊고 기다리면 되겠지 싶어 아무 의심없이 영화를 보러 갔었다. 그런데 이게 왠 일. 영화상영은 딱 세 차례. 08:30, 12:00, 17:00. 터벅터벅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조조영화를 보기 위해 일요일지만 마음 먹고 일찍 일어났다.

 

 

mbc PD 였던 최승호의 집요함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는 영화이리라. 기록의 힘 내지는 중요성을 생각하게 된다. 덕분에 모호했던 그간의 언론탄압 과정을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무관심과 게으름으로 저간의 사정에 어두웠는데 이 영화 한 편으로 미안한 마음을 살짝 덜어낼 수 있었다. 영화 한 편으로 면죄부를 산 느낌이랄까.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지던 날. 과 친구들과 잔디밭에 앉아 교내사진사의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잡던 날이었다. 그날 사진을 왜 찍었을까. 다음 해 5.18 때는 또 다시 내린 휴교령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는 것도 없었고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뭔가를 궁리하는 것조차 금지된 시간이었다.

 

우리 부모세대에게 6,25가 있었다면 우리세대에게는 5.18과 세월호가 있다. 우리세대에게 의무가 있다면 우리가 세상에 남아 있는 날까지 제대로 알고 기억하고 저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좀처럼 변하지 않지만, 내가 알고 기억하고 저항하는 한 세상은 변하지 않을 수 없다는 믿음을 끊임없이 되새겨야 한다. 영화관람이 참여의 한 방법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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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100쪽 가량 읽었을 때,

- 카잔차키스의 책을 모조리 읽고 싶다. 이 작가의 책을 모두 읽기 위해서라면 당장 퇴직해도 여한이 없겠다. 아, 빨리 퇴직하고 싶어. 

 

200쪽 가량 읽었을 때,

- 역시 대작가야. 어, 내 생각이랑 닮았네, 우와...

 

300쪽 쯤에선

- 흐흠, 이 챕터는 건너뛰자.

 

그러다 셰익스피어 부분에선,

- 번역이 문제인가, 내 독해력이 문젠가. 졸립다. 좀 자고보자.

 

 

번역본을 읽는 게 점점 더 어렵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원본을 술술 읽을 정도의 실력은 못 되고... 거장의 책은 좀 다르긴 하다. 한 권을 마치 몇 권의 책처럼 읽게 된다.

 

이 책에 쓰인 어떤 부분을 남편에게 얘기해주다가 중간에 말이 막혀 끝을 흘려버린 적이 있다. 제대로 기억하기 위해 옮겨본다. 영국에서 왜 그렇게 언덕마다 양들이 풀을 뜯게 되었는 지를 설명해주는 내용이다.

 

환경이 어찌나 불결했던지 전염병이 돌 때마다 사람들이 쓰러져 나갔다. 14세기에는 끔찍하기 짝이 없는 <흑사병>이 돌았다. 먼저 아시아에서 시작된 병은 1347년에 키프로스를 덮쳐 쑥대밭으로 만든 다음 그리스, 이탈리아, 북아프리카로 퍼졌고 1348년 1월에는 프랑스까지 올라가 8월에 영국 해협을 건넜다. 모든 나라들이 결딴났다. 죽은 사람들을 묻어 줄 사람조차 살아남지 못한 지역들도 많았다. 영국의 4백만 인구 중에 살아남은 사람은 250만에 불과했다.

때로 <운명>의 작용이 아주 미묘하듯이, 이 끔찍한 참사가 대영 제국을 형성하는 주요 요인의 하나로 작용했다. 유린된 마을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모두 거액의 재산을 챙겼다. 버려진 지역의 공동 삼림과 들, 목초지를 자기들끼리 나누어 가졌다. 영지를 경작해 줄 일꾼을 찾을 수 없게 된 영주들은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땅을 임대하거나 처분하여 빵 값을 만들었다. 이처럼 뜻밖의 토지를 손에 넣게 된 농민들은 그 땅을 모두 경작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양 사육에 뛰어들었다. 그 바람에 양 떼가 엄청나게 불어났다. 영국은 순식간에 다량의 양모를 생산하는 나라가 되었고 그것을 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이제 예전처럼 고립된 섬나라로 머물 수 없게 된 것이다. 당장 경제적으로 다른 나라들의 시장이 필요해진 영국은 양모를 운반할 상선들과, 상선을 보호하고 바다를 장악할 군함들을 함께 제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그들의 운명은 바다를 장악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이것이 바로, 흑사병에서 목양의 필요가 생겨나고, 목양이 풍부한 양모를 낳고, 이 풍부한 재화가 상선과 군함들이 탄생하게 된 내력이다. 그리고 이 함대들이 대영 제국을 낳은 것이다!

 

이어서 이어지는 표현도 멋지다.

 

운명은 단기간 내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1시간 단위가 아니라 백 년 단위로 움직인다. 바로 이것이 <운명>이 작용하는 미묘한 방식이다. 따라서 아무리 큰 참사라도 재난이라 부를 수 없고 아무리 큰 행복이라도 행복이라 부를 수 없다. 먼 훗날 그것들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전혀 예측할 수 없으므로.

 

처음에는 꼼꼼하게 읽다가 뒤로 갈수록 대강 읽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다시 읽게 될 것 같지는 않고. 위에 옮긴 부분이라도 정확하게 기억하고자 한다. 영국의 언덕마다 하얗게 구더기처럼 깔려있는 양떼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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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D 2017-08-14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초중반까지만 꼼꼼하게 읽는 책들이 꽤 됩니다. 그런데 막상 다시 읽겠다고 놔둬도 자리만 차리하지 몇 년이 지나도 펼쳐보진 않더라구요. 기억하고 싶은 문구라도 제대로 기억하기 위한 노력, 참 소중한 것 같아요. 덕분에 풀뜯는 양에 관한 이야기는 저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네요.^^

nama 2017-08-14 23:33   좋아요 0 | URL
한 권의 책에서 한가지만이라도 확실하게 내 것으로 만들어도 책을 읽는 보람이 있지 않을까요? 이런 생각을 하면 책을 도중에 중단해도 그다지 괴롭지 않아요. 괴로워하며 굳이 끝까지 읽을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여행안내서는 여행 전과 여행하며 읽는 맛이 전혀 다르다. 여행안내서를 제대로 고르려면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서 여행을 반추할 때이다. 인생을 닮았다. 어떤 일을 끝내고나서야, 학교를 졸업하고나서야, 몇 십 년의 결혼생활을 하고나서야 비로소 전체의 윤곽이 잡히듯 여행도 그렇다. 여행을 끝내야 비로소 여행가이드북이 눈에 제대로 들어온다. 예습으로 읽든 복습으로 읽든 여행가이드북을 읽는 건 별 의미가 없다. 나중에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려나...

 

 

 

 

 

 

 

 

 

 

 

 

 

 

 

여행 가기 전에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책이다. 여행 가서 하나씩 참고하며 실전에 응용했는데, 이 책은 매우 주관적이서 일반적인 소소한 정보가 약간 부족하다. 치앙마이에 대한 애정 가득한 저자들답게 저자들이 좋아하는 곳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고 할 수 있다. 저자들에게는 '가장' 멋진 곳일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 적당히 취사선택해야 한다. 가이드북에 '가장'이라는 최상급을 붙이는 건 좀 모순이다. '가장'을 위해 생략된 것은 어쩌란 말인가. 낯선 여행지에서 필요한 건 정확하고도 요긴한 사실을 담은 정보이지 누군가의 주관적인 선호도가 개입된 부분적인 정보가 아닐 것이다.

 

 

 

 

 

 

 

 

 

 

 

 

 

 

 

 

일반적인 가이드북으로 소소하면서도 요긴한 정보들이 가득해서 한 권쯤 필요한 책이다. 위의 책과 이 책 중에서 한 권을 고르라면 나는 이 책을 고르겠다. 가이드북은 일단 실용성이 중요하니까.

 

 

 

 

 

 

 

 

 

 

 

 

 

 

 

 

여행기를 재독하는 경우는 드문 편이지만, 과연 내가 여행은 제대로 하고 왔나 싶어 다시 이 책을 꺼내 읽어보았다. 물론 치앙마이 부분만.

 

여행지에서 현지인처럼 살아보기랑 며칠 잠깐 여행하는 것의 차이가 확연히 구분된다. 현지여행사에서 일일투어를 신청하며 희희낙낙하는 우리 같은 여행자에게 이 책은 근접하기 힘든 아우라를 품고 있다. 특히 <Enough For Life>의 주인내외와 함께 어울리며 현지인처럼 살아본 것이라든가, 동네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작은 카페를 찾아 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 경험 같은 것은 흉내내기가 쉽지 않다. 단 며칠 간의 여행이란 별 것 아님을 절실히 깨닫게 해주는 책이랄까. 짧은 여행 후 이런 책을 읽는다면...흠...소금물을 들이켠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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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8-14 0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앙마이를 다녀오셨나 봅니다. 제가 최근에 어딘가에서 치앙마이 여행 후기를 읽고 치앙마이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이 글도 눈에 띄었어요.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는가 봐요.
맨 위의 글에 염색하셨다는 글을 보고서는, 오! 저도 여행지에서 염색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어요. 하핫.

nama 2017-08-14 10:36   좋아요 0 | URL
낯선 곳에서 염색을 해보니 마치 생전 처음으로 염색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미용사의 동작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각인되지요. 물론 염색의 질 따위는 따지지 않는 게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