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틈틈이 읽으면서 즐거웠다.

 

요즘 내 책 읽기는 건성건성이다. 만약 어떤 작가가 한 줄로 할 수 있는 말을 서너 줄로 늘려 말하는 경우, 이럴 땐 가차없이 손에서 책을 놓아버린다. 그러고보니 인간관계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쓸데없이 말이 말은 사람을 꺼려하니까.

 

그런 불친절한 심성을 가진 내가 그래도 이 책은 잘근잘근 씹으며 읽었다. 뻔한 말인데도 글이 착착 안겨오는 맛이 있었다. 그러나 얼마 전에 읽은 다음 책은,

 

 

 

 

 

 

 

 

 

 

 

 

 

 

읽다가 말았다. 말이 너무 많아서. 글은 읽는 맛이고 말은 듣는 맛인데, 말을 읽어야 하니 재미없었던 걸까? 내 취향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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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국. 이 분에 대한 기사를 읽고 어딘가에 썼는데....한참 찾다가 드디어 알아냈다.

 

http://blog.aladin.co.kr/nama/6841627

 

여운이 강하게 남아 있던 참에 마침 이 책이 발간되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허나 바로 구입하지 않았다. 도서관에 구비할 책으로 선정한 후 이제서야 입고가 되었으니 당분간은 이 책을 비롯하여 관심에서 조금씩 멀어져가는 책들을 읽어야 할 모양이다. 따끈하지 않으면 어떠랴.

 

이 책의 매력은 채현국이라는 분의 육성을 직접 읽는 맛이다. 그냥 베낀다.

 

 

잘못된 생각만 고정관념이 아니라 옳다고 확실히 믿는 것이 얼마나 험악한 고정관념이고 과오인지를...이게 중요합니다. 그냥 잘못된 것만 우리는 고정관념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천만입니다. 확실하게 아는 것 전부가 고정관념입니다.

빌 게이츠가 자본주의를 강화시키고 있는 면도 있지만, 스필버그 같은 사람이 정말로 인간의 마음 속까지 썩게 하면서 자본주의를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돈 버는 능력, 그게 최고의 정의입니다.

필자: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카톨릭은 그나마 개신교에 비해선 나름대로..
채현국: 그런 입장에서 보면 또 그렇겠지만, 도매업자다 보니까 소매업자의 막가는 짓이 좀 덜 표현되겠죠.

필자:이사장님도 아예 어릴 때는 일본이 조국이 아니라는 것도 몰랐다고요?
채현국: 전혀 몰랐지. 그걸 아는 놈은 아주 뛰어난 상류층 지식인 집안이거나 아니면 지식 있는 중상류층에서 아이가 가서 말 하지 않을 확신이 있었던 집에서만 일본이 우리나라 아니라는 말을 해줄 수 있었지, 어디서도 일본이 우리나라 아니란 말을 못했습니다. 묻기만 해도 쓸데없는 소리 한다고 야단 치고...

반기문 또 울궈먹겠다는...., 제일 중요한 것은 웃대가리 만이 아니라 그 웃대가리를 이용해 처먹는 집단....불특정인인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 이것들은 지식과 지역과 학연과 혈연, 혼연까지 맺은 집단입니다. 약간의 변동이 있을 뿐이지 그 덩어리 전체는 동일한 것들로, 앞잡이 해먹고 이용해먹는 이 집단을 언론이 다루지 않는 한 위에 보이는 그것들에게 또 협조합니다....
필자:그런 집단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채현국: 앞잡이 집단이죠...이 놈들은 대표자만 희생되면 자기들은 살아남는다는 이익집단...소련 공산당 시절에는 공산당이 소련의 주인이었죠. 미국의 주인은 결코 민중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주인도 우리 민중이 아닙니다. 그 이익집단, 앞잡이 집단이 주인이죠. 사회학자들한테 물어봤자 이 자식들 그런 얘기 안 합니다. 그 놈도 또 이 이익집단에 속하는 놈이기 때문입니다 ..학교 선생들도 이익집단 변두리에 다 속해있습니다....이걸 깨뜨려야 합니다. 없어지라는 게 아닙니다. 변하라는 겁니다. 민중과 함께 하지 않는 민중배반적인 이런 집단은 변화시켜야 합니다. 결국 너희들에게 불행이 돌아온다. ......

교황? 저렇게 훌륭한 교황을 어떻게 해서 교황으로 뽑은 이 시대에, 나는 저런 뛰어난 분이 교황이 됐기 때문에, 뛰어나서 못될 사람이 됐기 때문에 이거야말로 세기말이 되려고 저런 사람을 뽑은 것 아닌가, 속이려면 이제 저 정도 사람이 한 번 와야 속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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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2...일리치는 당시 멕시코 쿠에르나바카에서 문화교류문헌자료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 센터가 공공연하게 표방한 목적은 당시 벌어지고 있던 해외개발 운동을 뒤엎고, 또한 이른바 개발도상국이라 불리는 지역에 자원봉사자를 파견하는 활동을 멈추게 하는 것이었다. 논문은 그가 그해 초에 시카고에서 미국 청년 자원봉사자들에게 한 강연을 기록한 것으로, 단도직입적으로 봉사활동을 떠나지 말 것을 주문하는 내용이었다.

 

이 책의 첫 구절부터 눈길를 사로잡는다. 작년 kOICA 연수 이전이나 이후, 막연한 해외봉사활동에 대한 선망이 이 한 구절로 몹시 흔들린다. 구체적인 활동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하여튼 무조건 선으로만 생각했던 것이 선이 아니었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p.21....<학교 없는 사회>에서 그는(이반 일리치) 학교 교육을 소비자 사회의 기초를 만드는 의례행위로 보았다. 원래 학교school는 여유롭다는 듯이며, 일리치에 따르면 진정한 배움은 자유민만이 여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의무적이고 강요된 의례행위를 바탕으로 자유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주장은 모순적이다. 학교는 지식을 설계하고 포장하면서, 지식이란 등급별로 나누어진 것이고 공인된 일련의 과정을 통해 획득해야만 한다는 믿음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교육의 정의 자체를 독점함으로써 학교는 대안을 억제할 뿐 아니라 교육을 비롯한 여타 독점 서비스에 일평생 의존하게 만든다고 일리치는 주장한다.

 

학교라는 것, 이렇게 꼭 집어 말하고 싶었던 걸 이반 일리치의 글을 통해 확인한다.

 

'고도로 자본화된 사회는 고도로 자본화된 시민을 필요로 한다.'

----내가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이유가 되겠다.

 

이반 일리치의 글은 읽기가 쉽지 않다. 이 책은 그래도 대담집이라 좀 나은 편이긴 해도 역시 쉽게 읽을 책은 아니다.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반 일리치의 책을 어느 정도 읽어야 한다. 변명같지만, 이래저래 이 책도 끝까지 읽지 못한다. 책이 어렵고, 손목터널증후군으로 손끝이 저리고, 해야 할 일이 많고....

 

변명으로 시작하는 6월 1일 월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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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하기 싫어 선택한 도서관일이...참 많다. 서가확장으로 책 들어내고 다시 꽂았더니 이번엔 몇 년 동안 버리지 않아 쌓여 있는 폐기도서를 처리할 차례다. 어제는 450권 정리하고 오늘은 아마 그 이상이 될 터이다. 도서관을 맡은 이후 책이 잘 안 읽힌다. 책 무더기에 쌓여 있어 책을 읽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다. 그래도 몸이 고달픈 게 낫긴 하다. 책은 그냥 가만히 그 자리에 있을 뿐, 내 신경을 자극하지도, 나를 화가 나게도, 서운한 생각이 들게 하지도 않으니까.

 

오늘은 출근하자마자 폐기작업을 시작했다. 일을 눈앞에 두고 가만 있지 못하는...차라리 출근을 늦게 할 것을...7시에 출근해서는 뭔 짓인지...

 

그래도 책 한 권 건졌다. 이 책을 폐기 목록에 넣은 후 내 것으로 만들까. 다시 도서관에 살려둘까 고민 중이다.

 

 황지우의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라는 책인데 1995년에 출간되어서 사진조차 뜨지 않는다. 그러면 내 책으로 접수해도 되겠다는 말씀. ㅎㅎㅎ

 

 

 

 

 

 

 

 

 

노스텔지어

나는 고향으로 돌아왔건만
아직도 고향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그 고향...
짐승과 성자가 한 水準에 앉아 있는 지평선에
남루한 이 헌옷, 벗어두고 싶다
벗으면 생애도 함께 따라 올라오는

나의 인도, 누구의 것도 아닌 인디아!
무한이 무능이고 무능이 무죄한,
삶을 몇 번이고 되물릴 수 있는,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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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수목원장인 이유미박사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산림청에서 실시하는 연수에서 였다. 야생화나 나무메 문외한이었던 그간의 무지가 한순간 균열되면서 또 하나의 세계로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이런 것도 있었구나.'하는 놀라움에 눈이 번쩍 떠지는 황홀한 경험이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그후 내 생활이 확 바뀌었다거나 그쪽 세계로 급속히 빨려 들어갔다거나 하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나란 인간이 그렇게 바뀔 수 없다는 건 나 자신 너무나 잘 알고 있으므로. 그러나 그 놀라움과 새로움은 오래 지속되었다. 야생화와 나무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책들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수년 전의 일이다.

 

 

 

 

 

 

 

 

 

 

 

 

 

 

 

 

한달 전 드디어 말로만 듣던 최재천의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라는 책을 도서관  폐기 처분 코너에서 발견했다. 뜻밖의 횡재에 반가움을 금치 못했다. 역시 도서실 업무를 잘 맡았군, 하면서 황홀해 했다. 그러나 일상의 잡다한 업무에 지쳐 읽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오늘 비로소 완독했다. 다 읽고 난 느낌은, '동물 분야의 이유미'였다. 아마 최재천교수의 강의를 먼저 들었더라면 그 순서가 바뀌었을 지도 모른다. '식물 분야의 최재천'으로. 하여튼 두 분 모두 쉬운 글로 자신의 분야를 펼쳐주어서 고마울 따름이다.

 

 

 

 

 

 

 

 

 

 

 

 

 

 

         

 

비너스의 꽃바구니(출처: daum백과사전)

 

 

이 책이 앞으로 내 소유가 될 확률은 거의 없다.(절판된 책이 아니니 물론 새로 구입할 수도 있지만) 도서관 폐기 처분 코너에서 발견했지만 다시 살려놔야 할 임무가 내게 있으니까. 그래서 베껴본다.

자연계는 언뜻 보면 늙고 병약한 개체들은 어쩔 수 없이 늘 포식자의 밥이 되고 마는 비정한 세계처럼만 보인다. 하지만 인간에 버금가는 지능을 지닌 고래들의 사회는 다르다. 거동이 불편한 동료를 결코 나 몰라라 하지 않는다..다친 동료를 여러 고래들이 둘러싸고 거의 들어나르듯 하고...그물에 걸린 동료를 구출하기 위해 그물응 물어뜯는가 하면 다친 동료와 고래잡이배 사이에 과감히 뛰어들어 사냥을 방해하기도 한다....고래들은 또 많은 경우 직접적으로 육체적인 도움을 주지 않더라도 무언가로 괴로워하는 친구 곁에 그냥 오랫동안 있어주기도 한다.

코끼리들은 늘 신선한 물과 풀을 찾아 이동하며 살지만, 그렇게 이동하는 중에도 자기 어머니의 두개골이 놓여 있는 곳을 늘 잊지 않고 들러 한참동안 그 뼈를 굴리며 시간을 보낸다.

인간과 유전자의 거의 99%를 공유하는 침팬지 사회에서는 힘과 나이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른바 `끈`도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침팬지 사회에서는 무엇을 하느냐보다 누구를 아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

맵시벌 애벌레에게 농락당하는 거미의 운명...평소에는 우리가 흔히 보는 모양의 둥근 거미줄을 치던 거미의 몸에 맵시벌이 알을 낳아 애벌레가 자라기 시작하면 기괴한 일이 벌어진다. 거미는 홀연 섬세한 거미그물 만들기를 중단하고 강한 바람에도 끄떡없는 X자 모양의 구조를 만든다. 결국 맵시벌 애벌레는 거미를 죽이고 그 든든한 버팀 구조 한복판에 매달려 번데기를 튼다. 실험적으로 거미의 몸에서 맵시벌 애벌레를 제거하면 한 이틀 밤은 계속 애벌레가 원하는 X자형 구조를 만들지만 이내 정상적인 둥근 그물구조를 만들기 시작한다.
...우리 유전자들의 정체가 속속 밝혀지면 그중 상당수가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의 몸 속에 들어왔다 그냥 눌러앉은 바이러스들의 유전자들일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 얼마나 많은 기생생물들이 우리 몸 속에 들어와 우리로 하여금 하고 싶지 않은 크고 작은 일들을 하도로 조정하고 있을까 생각하면 적이 섬뜩하다.

한 정당이 스스로 개미라 칭할 때 대부분은 놀고 먹는 것처럼 보이는 일개미에 비유하는 것인지 아니면 국민들은 일개미처럼 죽어라 일하도록 만들고 그 위에 군림하는 여왕개미가 되고 싶은 것인지, 개미의 행동과 생태를 연구하는 나로선 뭔가 석연치 않다.

새들 중에서도 갈매기만큼이나 암수가 공평하게 자식 양육에 동참하는 예는 그리 흔치 않다. 조류학자들의 관찰에 의하면 갈매기 부부는 거의 완벽하게 열두 시간씩 둥지에 앉아 서로 알을 품는다. 그리고 나머지 열두 시간은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아들이는 바깥일을 본다. 바깥양반이나 집사람의 개념이 전혀 없는 사회다. 남녀평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갈매기가 우리 인간보다 훨씬 앞선 동물들이다.

일본에서는 `비너스의 꽃바구니(Venus`s flower basket)`라 부르는 바다 해면동물을 말려 결혼 선물로 주는 풍습이 있다. 재미있게도 이 해면동물의 몸 속에는 새우가 들어와 산다. 그런데 이 새우는 어려서는 비너스의 꽃바구니 몸에 나 있는 격자 무늬의 구멍으로 드나들 수 있지만 몇 번의 탈피를 거쳐 몸집이 커지면 더 이상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그 안에서 평생을 살게 된다. 그래서 비너스의 꽃바구니를 우리말로는 한자어를 빌어 `해로동혈(偕老同穴)`이라 부르기도 한다.
물론 새우는 비너스의 꽃바구니가 만들어준 아름다운 유리 격자 안에서 다른 포식동물들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편안하게 살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가정이라는 창살 속에 갇혀 무료한 삶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왜 일본 여성들의 사회참여도나 여권이 대체로 우리 나라 여성들에 비해 뒤지는지 조금은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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