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있는 <셰익스피어 & 컴퍼니>라는 서점이 그렇게 유명한 줄 몰랐다. 도서관으로 배달되는 <책과 삶>이라는 독서관련 신문 기사를 보고서야 이 서점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것도 아주 최근에.

 

다행히 도서관 서가에는 위의 책이 있었고, 책은 첫장부터 흥미진진했다. 왠만한 재미있는 소설 이상이었다. 특히 이 서점을 일으킨 조지 휘트먼이라는 사람에 대한 얘기나 에피소드를 읽다보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머문다. 이런 양반을 실제 만나보면 재밌겠구나 싶었는데, 알아보니 2011년에 작고하셨단다.

 

http://www.bbc.com/news/magazine-16200094

 

p. 142.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사회주의 유토피아임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 서점을 일군 조지 휘트먼의 육성을 들어보면,

 

"사람들은 다들 일이 너무 많다고 불평해. 돈을 더 벌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요점이 뭐야? 가능한 한 적은 돈으로 살면서 남는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거나 톨스토이를 읽거나 서점을 운영하면 왜 안 되는 거지? 전혀 말도 안 되는 불평이야." (149)

 

<책과 삶>의 기사에 따르면,

 

'게스트가 될 수 있는 자격은 오직 '한 편의 에세이' 심사를 통해 주어지며, 선택된 게스트들은 매일 한 권의 책을 읽고, 몇 시간 동안 서점 일을 돕고, 짧은 자서전을 쓰기만 하면 된다. 세 가지 조건만 지키면 누구나 서점에서 글을 쓰며 머무를 수 있단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 머물며 글을 썼던 헤밍웨이처럼 말이다.'

 

p. 165...이 기록물의 화룡정점은 40년 동안 서점에서 묵어간 사람들의 자서전이었다. 엘런 긴즈버그부터 존 덴버까지 그 모든 사람들이 갈겨쓴 인생 이야기가 서점 곳곳에 숨어 있었다. 그것만 보면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를 스쳐간 수천 명의 사람들을 일별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주제는 계속 반복되었다. 주류 문화에 환멸을 느낀 사람, 상처를 어루만져줄 장소를 찾는 사람,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열망하는 사람.

 

이 책 덕분에 지난 일주일이 행복했다. 마치 내가 이 서점에 머물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래서 할 말도 많았는데...

 

아침 시간은 늘 짧다. 이제 곧 일할 시간이다. 아쉬운 마음에 저자의 마지막 말을 옮긴다.

 

(317) 내게 있어 조지보다 더 존경하는 사람은 없다. 완벽과는 거리가 멀고 어리석은 모습도 많이 갖고 있지만, 어린아이 같은 희망과 낙관주의로 가득 찬 조지는 여전히 자신이 세상을 바꾸고 자기 서점에 들어온 인간의 영혼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시니컬하기 쉬운 나이에 이런 면을 여전히 지니고 있는 조지는 내 눈에 충분히 영웅으로 보였다.

 

흠, 오늘 만이라도 '어린아이 같은 희망과 낙관주의 가득 찬' 하루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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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을 기다리는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한겨레신문에 토요일마다 실리는 <정희진의 어떤 메모> 때문이다. 톡톡 쏘는 글을 읽다보면 금세 기분이 상쾌해진다. 때론 가시같은 표현에 움찔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매력으로 다가온다. 한마디로 중독성이 강하다. 정희진의 칼럼을 읽어야 비로소 토요일이 시작되는 것이다.

 

다음은 오늘 신문에 실린 칼럼의 한 구절이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02693.html

 

다짐해도 다짐해도 금세 잊혀지는 내 좌우명. ‘지구에 머무는 동안 타인과 자연에 민폐 끼치지 말고 조용히 사라지자.’ 그러므로 괴로움에 몸부림칠 일도 없다. 조금만 견디면 된다. 괴로운 시간은 대개 “인생은 대단하다. 고로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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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8-02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먼지가 되어 좋아합니다^^

nama 2015-08-02 20:44   좋아요 0 | URL
좋은 글이죠? 톡쏘고 딱 부러진 글이지요~~
 

 

 

 

 

 

 

 

 

 

 

 

 

 

시립도서관에서 빌렸는데 결국 완독하지 못한 상태로 돌려주게 되었다. 손으로 만져봤다는 증거를 남긴다.

 

높은 1인당 에너지 소비와 극도의 전문 서비스를 바탕으로 하는 개발이 서양의 전도가 끼치는 가장 큰 해악입니다. 개발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는 생태학적으로 있을 수 없는 개념과, 출생과 사망이 일어나는 문화적 장소를 전문 서비스를 위한 무균 병동으로 대치하려는  인류학적으로 사악한 시도를 길잡이 삼아 벌이는 사업입니다. 한바탕 개발이 할퀴고 간 그 짧은 기간에, 신생아를 토해내고 죽어가는 사람을 다시 빨아들이는 병원, 취업 전/간/후의 무직자가 바삐 지내도록 운영되는 학교, 슈퍼마켓으로 오가지 않는 동안 사람들을 보관하는 고층 아파트, 차고와 차고를 이어주는 고속도로 등이 풍경 속에 문신처럼 새겨졌습니다. 분유세대가 의료원으로부터 학교로, 사무실로, 경기장으로 일평생 내몰려 다니도록 설계된 이런 시설은 이제 대성당만큼이나-대성당처럼 심미적 매력을 덧입히지는 않았지만-이상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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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히 그리고 어렵게 쓴 책이긴 한데, 내용도 참 좋은데, 참살이의 지침이 될 만한 글인데...뭐랄까. 내겐 울림이 크지 않다. 아줌마의 왕수다 같은 느낌이 든다. 그냥 '직업선택의 십계명'으로 족하다. 고민은 각자 스스로의 몫.

 

 

http://blog.aladin.co.kr/nama/4219968

부모들은 종종 교육자인 나에게 어떻게 하면 자식을 잘 키울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답하곤 한다.
"부모님들 자신이 잘 살아가야 합니다."
삶은 어떻게 자식을 잘 키우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자신의 삶은 자기가 살아내야 하는 자신의 몫이다. 자식의 삶은 자식의 몫이다. 내가 내 삶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면서 자식의 삶에 대한 걱정을 하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모르는 데서 나오는 오만이다.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삶을 걱정하는 일이란 얼마나 어리석은가? 내가 자식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있다면 신神 앞에서 신발을 벗고 살아가는 일밖에 없다. (전 거창고교장 전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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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42년 전. 우리 아버지는 방 3칸 짜리 단층집을 직접 설계한 후 흙벽돌을 구입하고 목수, 전기기술자 등을 일일이 불러  당신의 상식과 생각대로 손수 지으셨다. 50만 원 예산이었으나 결국에는 100만 원이 들어간 아담한 기와집이었다. 집의 특징이라면, 작은 마루에 한이 많으셨는지 마루만은 엄청 길고 나무로 되어 있어서 청소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과 각 방마다 벽장이 붙어 있어서 따로 장농이 필요없었다는 점이다. 이 벽장만큼은 아버지의 지혜가 함축된 나름 예술품이었다. 부엌 위에  있던 낮은 다락방도 어린 시절에 '꿈꾸는 다락방'의 역할을 톡톡히 한 곳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기저기 숨을 곳이 많았다. 집 뒤로는 길쭉한 뒤란이 있었고, 앞쪽으로는 창고 겸 욕실로 사용하던 별채도 있었다. 자그마한 창고 옥상에는 장독대도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 집이어서 이렇게 설명이 길어지지만 실제는 별로 특이할 것도 없는 그저그런 18평의 작은 집에 불과했다. 사실은 건축허가 없이 지은 집으로 공무원 생활을 30여 년이나 하신 아버지가 '알아서' 당신 생각대로 지은 집이었다. 물론 나중에 주택 양성화 기간이 있어서 등기부 등본을 뗄 수 있는 어엿한 집이 되긴 했다. 돌이켜보면 그 일련의 과정이 아버지의 전략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집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집을 손수 지으셨던 아버지가 떠오르고 과연 우리 세대의 삶이 아버지 세대보다 더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는지를 곰곰 따져보게 된다. 감히 집을 지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집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온갖 먹거리를 슈퍼마켓에서 해결하는 이 삶이 과연 바람직한지를 따져보게 된다.

 

이런 기분에 젖어있을 때 이 책을 펼치는 일은 매우 슬프고 고통스럽다. 아무데나 펼쳐 읽어도 폐부를 찌르는 말들이다.

 

인류 역사에서그 시대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가늠하는 가장 정확한 척도는 먹는 음식 중 사서 먹는 음식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마치 상품처럼 국민이 '주택'을 가질 권리를 법으로 선포한 날, 그동안 국민의 4분의 3이 자기 손으로 만들어온 집이 하루아침에 마구간 취급을 받게 되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가 건축을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이 생겨난 것이다. 자격증 있는 건축가가 그린 설계도를 제출하지 않으면 합법적으로 집을 지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카라카스 시에서는 쓰레기가 최고의 건축재료로 재활용되었지만, 이때부터는 고형페기물이 되어 처리하기 어려운 골칫거리가 되었다. 자기 손으로 집을 짓겠다는 사람은 유별난 사람이라 손가락질 받게 되었다....또한 수많은 법 조항이 생겨나 그의 독창성은 오히려 불법으로 규정되고 범죄행위라는 딱지가 붙는다....스스로 선택하는 행위로서 '집을 짓는 일'은 이제 사회 이탈자 아니면 한가한 부자가 누리는 특권이다.

 

실제로 갈수록 더 많은 아이들이 소의 젖을 먹는다. 부자나 가난한 이나 인간의 젖가슴은 말라버린다. 아이가 우유를 달라며 울음을 터뜨릴 때, 아이의 신체기관이 식료품점에 진열된 우유병에 닿기 위해 길들여지고 제 기능을 포기한 인간의 젖가슴에서 등을 돌릴 때, 또 한 명의 중독된 소비자가 탄생한다. 그리하여 인간이 자신의 세계를 꽃 피우는 데 필요한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행동은 퇴화한다.

 

오늘날 위기란 말은 의사, 외교관, 은행가, 온갖 사회 공학자가 모든 상황을 접수하고 사람들의 자유를 유보하는 상황을 의미하게 되었다. 국가도 사람처럼 중환자 리스트에 오른다.

 

 

이제 겨우 1/3 읽었는데, 그것도 얇은 소책자를.....퇴근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다. 눈도 침침하고, 숙직영감님이 창문을 단속하고 계신다. 나도 부지런히 걸어가야겠다, 멋대가리 없는 공동주택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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