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빌려놓고는 반납 날짜가 다가와서 다급하게 몇 쪽 읽었다. 그 몇 쪽의 독서에서 얻은 이 책의 분위기는....독설 같은 역설, 허무와 냉소, 장식을 제거한 날 것 그대로, 비웃음 담긴 통찰. 이해 받고 싶으면서도 이해를 거부하는 마음, 우수와 조롱이 섞인 혜안.

 

재밌다는 일반적인 의미와는 다르게 재밌는 책이다. ㅎㅎ 이 책을 읽다보면 이런 꼬인 표현이 나도 모르게 절로 나온다는 사실.

 

예를 들면,

 

466 사람은 자기 얼굴을 볼 수 있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 더 불길한 일은 없다. 인간이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고, 자신의 눈을 들여다볼 수 없는 건 자연이 내린 선물이다.

   오직 강물이나 연못을 통해 인간은 사신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인간이 취해야 하는 자세는 상징적이다. 자신을 보는 굴욕을 행하기 위해, 인간은 허리를 굽히고 몸을 숙여야 한다.

  거울을 만든 사람은 인간의 영혼에 독을 풀었다. 

 

470 말하는 것은 타인에게 과도한 관심을 선사하는 일이다. 물고기와 오스카 와일드는, 입을 벌렸다 하면 죽음으로 직행하게 된다....

 

237 타인을 지배해야만 한다는 생각은 타인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는 의미다.

    우두머리는 종속된 존재다.

 

236 아무것에도 굴복하지 않기. 어떤 인간에게도, 어떤 사랑에게도, 어떤 이념에게도. 항상 거리를 두고 독립을 유지한다. 설사 존재한다고 해도 진리를 믿지 않으며, 진리의 유용함도 믿지 않는다. 내 생각에 이것이야말로, 생각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을 위한 정신적이고 내적인 삶의 올바른 상태다. 어딘가에 속한다는 것은 진부함을 의미한다. 믿음, 이상, 여인, 직업, 이것들은 전부 감옥과 사슬을 의미한다. 존재란 자유롭게 있는 것을 의미한다.

 

21  신들의 존재 여부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그들의 노예다.

 

 

병원에 가야 할 시간이다. 아픈 것을 치료하는 것보다 이 책을 읽는 게 더 적절한 치료가 될 듯도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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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이 여럿 있다는 건 행복이다. 이 동네 저 동네에 흩어져 있는 친구같다. 김연수의 책을 계속 찾아본다.

 

 

 

 

 

 

 

 

 

 

 

 

 

 

 

'시를 읽는 즐거움은 오로지 무용하다는 것에서 비롯한다. 하루 중 얼마간을 그런 시간으로 할애하면 내 인생은 약간 고귀해진다.'  <책을 내면서>에서 김연수가 쓴 글이다. '쓸모'를 따지지 않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늘 '잘'....하려고 노력하고, 애들한테도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고 하고, 쓸모 있는 시간을 보내려고 하고, 쓸모 없는 건 버리려고 하고. 이렇게 '쓸모'가 삶의 기준점이 되어버린 지도 오래된 것 같다. 

 

시집은 되도록 사야지, 하면서 빌려 읽는 모순. 김연수가 읽어주는 거니까 이 모순을 용서하기로 한다. 이 책에 실린 시보다 김연수의 짧막한 해설 아닌 넋두리가 더 재밌다. 사실 시 읽기는 어렵다.

 

베껴본다.

 

 

사랑은 산책자

                          이병률

 

마음이 마음을 흠모하는 것

줄 서는 것 떠드는 것

시간이 시간을 핥는 것

 

서서히 차오르는 것

그러고도 모른 체하는 것

소멸하는 것으로 존재하는 것

 

그러니까 뼈를, 그것도 목뼈를 살살 분질러뜨리는 것

서서히 떨어지는 속도를 보이는 것

 

새를 참견하는 것

주책없이 경치에 빠지는 것

장막 하나를 찟어 지독하게 덮어버리는 것

견딜 수 없이 허우적대는 것이 스스로의 요구인 것

 

의욕하자니 힘이 되는 것

왼쪽으로 갈까 오른쪽으로 갈까

방향을 얼버무리는 것

 

모퉁이를 돌기 위해 짐을 꾸리거나

주변을 무겁게 하지 않는 것

주소를 버리고 눈을 감는 것

 

사랑은 산책하듯 스미는 자,

산책으로 젖는 자

 

 

생강나무

                문성해

 

생강나무꽃은 꼭 산수유꽃처럼 생겼다

무슨 긴한 것을 나누듯

작고 노란 꽃잎들이 에둘러 앉은 모양새가 꼭 같다

 

생강나무가 산수유가 아님은 나뭇가지를 분질러보면 안다

부러진 부위에서 싸하게 번지는 생강 내음

가지를 분지르면 노란 애기똥이 묻어나오는 애기똥풀이란 꽃도 있다

 

이 고요한 식물의 세계에도

얼굴 하나만 가지고 제 이름값을 하는 연예인 같은 꽃들이 있는가 하면

제 가지를 부러뜨려야만 저를 드러낼 수 있는 자해공갈단 같은 꽃들이 있다.

 

 

'자해공갈단 같은 꽃'....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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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김에 김연수의 글을 마저 찾아 읽는다.

 

 

 

 

 

 

 

 

 

 

 

 

 

 

 

서울 가는 길에 버스에서 읽고, 친구들 기다리며 다시 몇 쪽을 더 읽는다. 오늘도 만사 제쳐두고 이 책부터 꺼내든다. 책을 우선 순위에 두어야 책을 읽게된다기 보다는 이 책이 나를 끌어당긴다. 쓸쓸한 가을도 아닌데 몇 쪽 읽다보면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핑돈다. 흔들리는 버스에서도 예술의 전당 1층 로비의 흐릿한 불빛 아래서도 쭈그리고 앉은 주방에서도 어김없이 눈가가 촉촉해진다. 약간의 구질구질함이 섞인 불순한 눈물이지만, 어쩌랴. 그것도 나인데.

 

몇 구절 옮긴다.

 

 

p. 67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큰 관심이 없다. 내가 꼭 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에는 흥미가 없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만이 내 마음을 잡아끈다. 조금만 지루하거나 힘들어도 '왜 내가 이 일을 해야만 하는가?'는 의문이 솟구치는 일 따위에는 애당초 몰두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완전히 소진되고 나서도 조금 더 소진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누구인지 증명해주는 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 견디면서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일.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20대의 내 얘기 같았다.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큰 관심이 없었다. 당연 ' 꼭 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에는 흥미가 없'었다. 그 암중모색의 탐색기간은 결국 기나긴 백수 시절로 이어지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이미 서른 살로 접어들었고 막차를 타는 심정으로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직장인이 되어 내 앞가림을 하게 되었지만 아직도 나는 다음 물음 앞에서 눈빛이 흔들리는 나 자신을 안쓰럽게 바라본다. '왜 내가 이 일을 해야만 하는가?'

 

 

몇 년후 다시 백수시절로 돌아가면 이런 간절함이 남아 있을까? 나는 도대체 뭘 찾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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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 <청춘의 문장들> 10년, 그 시간을 쓰고 말하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금정연 대담 / 마음산책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든 책.

 

10년 전에 나왔던 <청춘의 문장들>을 왜 안 읽었었지? 아마도 '청춘'이란 단어 때문이었을 게다.

'청춘'이란 단어때문에 읽기도 전에 기피했던 어렴풋한 기억이 난다. 기피 단어 '청춘'이라니...

 

바쁜 일상에 쪽잠처럼 읽는 김연수의 문장들이 마음을 촉촉하게 한다. 짧은 몇 구절에 하루의 피로를 잊는다.

 

나이가 들면 욕심도 부리지 않고, 젊을 때보다도 훨씬 현명해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절절히 느끼고 있는 요즈음, 김연수의 아래 글들에 절로 공감이 간다.

 

'책을 읽어서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면 읽을 필요가 없다' 지만 어찌 책을 안 읽을 수가 있나? 멋진 글을 만나면 '내 인생이 조금 반짝거리는' 것 같은 착각도 내 삶의 한 부분인 것을.

 

제가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사람이 나아지는 건 너무나 어렵다는 것. 예전에는 많이 배우면 나아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에요.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이 진보하진 않아요. 시간이 지난다고 세상이 진보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내 인생이 반짝반짝 빛났던 순간 역시 마찬가지다. 사회적 성공이나 대중의 주목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그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캄캄한 어둠 속에서 있을 때였다. 더 이상 소설을 못 쓸 것 같았는데, 그럼에도 몇 글자 더 썼다. 그때였다. 내 인생이 조금 반짝거린 건.

사람들은 흔히 책을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쓰면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작가나 교수 같은 사람들에게 삶의 지혜를 구하기도 하지만 행동하지 않는 한은 아는 게 아무리 많아도 무지한 사람으로 봐야만 해요. 지행합입이라는 말은 그처럼 무서운 말이에요. 특히 책 읽는 사람들에게는 말이죠.

책을 읽어서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면 읽을 필요가 없다....주자 말씀.

Q: 독자로서의 김연수를 평가한다면요?
A: ...독자의 입장에서 저는 이기적인 독자예요.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 책을 읽죠. 독서로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오만한 생각이자 불가능한 일이에요. 독서를 통해서 저는 나만을 간신히 이해할 뿐이에요. 책에 저를 맞추든 책을 제게 맞추든, 틈이 거의 안 보일 정도로 딱 붙은 상태가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독서의 자세입니다.

어쩌면 인생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알지 못해서 몰랐던 게 아니라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모르는 척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

Q: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좋아하는 외국 작가나 작품을 꼽는다면요?
A: 지금은 페르난두 페소아와 안토니오 타부키를 좋아해요. 루이지 피란델로도요. 셋 다 비슷한 카테고리 안에 있는 작가들이에요. 그와 비슷한 사람으로 구르지예프란 신비주의자도 있어요. 왜 이들이 한데 묶이냐면 다들 `나`란 여러 개의 `나`들로 구성됐다고 주장하기 때문인데, 그건 마치 내 생각과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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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 1 - 김종철 칼럼집 발언 1
김종철 지음 / 녹색평론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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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한끼 느긋하게 먹지 못하는 바쁜 와중에 이 책을 집어들었으나 결국은 또 읽다가만다. 밤에는 다음 날을 위해 서둘러 자야 하니 이래저래 책은 저발름(이 표현은 우리 엄마가 늘 사용하던 것이다. '이발름 와라.' '저발름 가라.'...)에 가 있다. 바쁘게 살려고 내가 이 지구상에 왔는지...

 

몇 구절 옮겨본다.

자본가들은 항상 자신들의 이익은 철저히 사유화하고, 손실은 국가라는 수단을 이용해 철저히 사회화하는 데 익숙해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뿌리 깊은 생리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시스템은 단순한 경제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정치의 문제이며,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되지 않는 한, 세계의 약자들은 탐욕스러운 투기꾼들이 입은 손해를 메워주기 위해서 피땀을 흘려야 하는 부조리한 운명은 언제까지나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 권력이동 현상은 민중의 각오와 행동에 따라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은 간과해서는 안된다. 선거제 대의민주주의란 본래 부르주아 독재체제를 지속시키는 정치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기초적인 사실을 기억한다면, 한 `진보 성향` 인물의 출현으로 사태의 본질이 달라지리라고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궁극적인 문제 해결의 열쇠는 민중사회의 각오와 행동에 달려 있다. 모든 권력은 밑으로부터의 강력한 요구 없이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진리이다.

지금 세계적인 경기후퇴는 자본주의의 성장 동력이 잠시나마 정체한다는 점에서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세계가 자본의 논리를 넘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낼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녹색뉴딜`이니 `녹색성장`이니 하는 것은 결국 말장난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종래의 성장논리에서 조금도 벗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래 `녹새`이란 `성장`과 양립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

그러나 우리 시대의 비극은 나치의 종말과 더불어 이 모든 게 끝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지금 우리는 뉘른베르크이 교훈에도 불구하고, 독재자에게 빌붙어 권력을 향유하려는 자들이 창궐하고, 나치식의 기만적 `이중언어`가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아마도 오늘날 가장 고약한 `이중언어`의 예는 소위 신자유주의체제가 쏟아내는 말들일 것이다. 우리는 조동자들의 목을 대량으로 자르는 것을 `구조조정`, 알짜배기 국유재산을 특권층의 사유물로 만드는 것을 `민영화`, 사회적 약자와 자연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공적 수단을 무력화시키는 것을 `규제완화`, 서민들의 재산을 강탈하는 것을 `도심재개발`이라고 부르는 데 어느새 익숙해져버렸다(서글픈 것은 이 상황의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사람일수록 이런 기만적인 언어를 몸에 붙이고, 주저 없이 입에 담는 현실이다).

경제성장 논리란 권력엘리트들이 퍼뜨려놓은 허구적인 덫일 뿐이다. 그럼에도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아직도 대댜수 지식인과 민중은 경제성장을 좀더 나은 살므이 근본 전제로 의심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이 전제르 ㄹ뿌리부터 재검토하지 않는 한, 민주의 사회경제적 자랍성과 정치적 자주성의 회복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민주주의 회복도 요원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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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6-06-21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무척 바쁘신 일상인가봅니다. 집에 있어도 점심 먹을땐 전화도 받기 싫던데요.
바쁘게 살려고 지구상에 온건 아니다라는 말을 근래 어디서 봤는데 그게 어디였는지 생각날듯 말듯 하네요 ^^ 아마 nama님은 아실듯.
오늘 밤부터 본격 장마라는데 대전의 아침 하늘은 해가 짱짱입니다. 벌써부터 덥기 시작했어요.

nama 2016-06-21 09:52   좋아요 0 | URL
ㅎㅎㅎ <나는 지구에 돈 벌러 오지 않았다>(이영광)라는 시집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어요.
오늘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가 있는 날이라고 올들어 처음으로 에어컨을 틀어주네요. 시험을 잘봐야 대접 받는 나라이다보니...
바쁜 것. 늘 종종거리다보니 마음도 늘 바빠요. 중독된 것 같아요. 빠쁜 것이 핑계가 되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