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일출 구경 따위 동경한 적이 없으니 딱히 갈 곳도 없다. 동인천에 있는 신포시장에나 가자고 나섰다. 동인천은 사실 동인천이 아니라 서인천이라야 마땅하다. 말 그대로 인천의 서쪽에 있으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 동네야말로 인천의 동쪽에 있으니 우리가 동인천이 아니냐며 동인천에 대한 어원을 따지다보니 동인천에 도착했다.

 

유명한 신포시장 입구에 있는 닭강정가게는 줄을 서서 먹는 집이라 한번도 그 맛을 본 적이 없다. 오늘 같은 추운 날에는 손님이 있을까, 없을까, 로 내기를 했다. 워낙 유명한 집이니 분명 오늘도 줄을 서야 된다, 아니다. 오늘은 날씨가 추워서 손님이 없어서 기다리지 않고 먹을 수 있다.

 

결과는? 줄을 서기는커녕 가게 안에 손님도 별로 없었다. 드디어 유명한 닭강정을 주문하고, 그리고 먹었다. 채소 반찬이 더 필요하지 않느냐고 물어주는 종업원의 친절에 감격하기도 하면서.

 

역시나 맛이 달랐다. 딸아이도 한 몫 거든다. 학교 근처에 있는 닭강정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며 사진까지 찍는다. 흐~~음, 맛있어!! 고기 한 점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어 치웠다.

 

그러고나서 소화도 시킬겸 이 골목 저 골목 다니다가 드디어 시장을 빠져나오기 직전. 그러니까 좀 전에 먹던 닭강정가게 골목이 아닌 또 다른 골목으로 나오는데, 이 두 먹자골목은 입구나 출구가 모양새가 거의 똑같아서 갈 때마다 헷갈리게 하는데, 아차 줄을 서서 먹는 닭강정집이 따로 있었다! 늘 봐왔던대로 역시나 인파가 대단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먹은 곳은 짝퉁 닭강정집? 맞다.

 

나나, 남편이나, 딸아이나...가족으로서의 동질성을 하나 꼽으라면 그건 '어리숙함'일 터이다.

"오늘 먹은 것도 맛있었는데 진짜 원조집은 어떨까? 다음에 다시 와서 먹자." 속상함이 순간 희망으로 바뀐다. 뭐 어쨌거나. 진짜로 생각하고 먹으니 맛은 있었다. 그게 뭐 중요한가. 짝퉁집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 우리 같은 사람도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세상의 1% 원조 아닌 99%의 짝퉁들에게도 희망을! 99%의 인기없는 존재들에게도 희망을! 어리숙한 99%의 무리에게도 희망을!  새해 소망을 생각해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5-01-01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01 2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가입한 유명한 여행관련 인터넷카페에서 새해 첫선물을 받았다.

나이가 배송될 수 있는 거라면 배송사절하련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맨날 땅만 보고 걷다가 작정하고 하늘만 보고 걸었다. 나무만 있는 단순한 풍경을 도시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빌딩도 아파트도 전봇대도 얼씬대지 않는다. 새들도 안전하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경기 교육계 '수업하는 교장' 논란-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670667.html

 

그러니까 벌써 40년도 더 된 옛날 일이긴 하다. 내가 살던 경기남부의 읍소재지에는 공립이 아닌 사립중학교만 4곳이 있었다. 작은 지역에 학교가 많다보니 두 학교는 한 학년에 각각 2학급, 3학급씩인 작은 학교일 수 밖에 없었다. 구슬상자를 돌려 분홍색 구슬이 걸렸던 나는 구슬색깔대로  하필  한 학년에 2학급인 제일 멀고 제일 작은 중학교에 배정되었다.

 

그때까지만해도 별 고생없이 살았던 나는 중학교에 다니는 일 자체가 큰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버스정류장, 우체국 등을 지나서 동네 끝자락에 이르면 그때부터는 거의 트레킹 수준이었다. 밭 길, 논 길, 산 길, 과수원 길, 공동묘지 길을 모두 거쳐야만 학교에 다다를 수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도 40여 분이 걸렸다.

 

설립한 지 3년 밖에 안 된 우리 학교. 어쩌다가 지금의 아이들한테 내가 다니던 이 학교 얘기를 하면 나를 묘한 눈으로 바라본다. 마치 육이오적 얘기마냥 듣는다. 전기도 안 들어오고, 수돗물도 없고, 겨울엔 난로도 없고, 심지어 교실 바닥마저 초벌구이 모양 그대로였으니 지금 생각해도 참 말이 안 되는 학교에 다녔던 것이다.

 

더 말이 안 되는 건, 학교를 설립한 이사장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도 했고, 선생님들이 월급을 안 준다고 수업거부를 하는 바람에 훌쩍훌쩍 울면서 그냥 집으로 돌아온 날도 있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모두 중학교 1학년 때 겪었다. 믿고 따르던 담임선생님은 월급 안 나온다고 우리반 아이들이 맡긴 장학적금을 월급 대신 챙겨서 학교를 그만두었다. 나는 아직도 그 이름을 잊을 수 없다. 노정자 선생님. 나도 반에서 두 번째로 저금을 많이 했었다. 우리를 '맹꽁이'로 불렀던 선생님을 우리는 친언니처럼 무척이나 따랐었는데...지금 생각해보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오죽했으면.

 

3개 학년이라야 전부 6학급인 작은 학교에 교사 수가 많을 리 없다. 국어1, 수학1. 과학1, 영어1,사회1,음악/미술1, 가정1, 체육1. 체육 담당의 코치1. 그리고 한문은 교장선생님이, 도덕은 교감선생님이 맡으셨다. 교장인 한문선생님은 말주변도 없는 어눌한 분이셨지만 마음은 따뜻한 분이셨고, 도덕을 맡은 교감선생님은 외판원같은 매끈함이 돋보이는 분이었지만 어딘가모르게 퇴출 직전의 기생 같은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이다.

 

이렇게 열악하기 짝이 없는 중학교를 다녔지만 이 학교에 다니고, 이 학교를 졸업한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의미있는 시기였음을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다. 내가 그나마 '학교'라는 곳에 몸을 두게 된 것도, 오로지 중학교 교사로 만족하게 된 것도, 걷기를 좋아하게 된 것도, 모두 내가 졸업한 중학교의 영향이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써도 온 몸이 다 젖으면서도 산길을 걷는 기쁨은 청량감 그 자체였다. 잔디와 잡초로 무성한 산길에 작은 시냇물처럼 흐르는 빗물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고, 초봄의 이름모를 야생초와 야생화나 늦가을의 단풍잎은 언제나 하교 시간을 늘어지게해서 집으로 걸어 가는데 두어 시간씩 걸리곤 했다.

 

그래서 영국의 서머힐 관련 책을 읽다보면 내가 다니던 중학교가 바로 서머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작은 학교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한 경험을 작은 중학교에서 경험했기 때문이다. 특히 선생님들과의 관계가 그랬다. 나야 워낙 외톨이 성향이 강해서 선생님 자체를 두려워하고 가깝게 지내지 못했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은 선생님들과 스스럼없이 지냈다. 물론 그 선생님들 중에는 교장,교감 선생님도 들어 있다. 약간의 경계심과 거리가 있었지만 수업 중에 만나는 교장, 교감 선생님의 약간은 초라하고 쇠락한 분위기에서 삶의 이면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교장, 교감도 수업에 투입하라는 경기도 교육감의 발언이 옛추억을 떠올려서 오늘 아침나절을 이런 글을 쓰느라고 애쓰고 있다, 지금.)

 

위의 한겨레신문 기사에 <교총은 ‘수업하는 교장’ 대신 학교 경영자로서 ‘연구하는 교장’을 제시하면서 이 교육감의 정책 철회를 요구했다.>는 구절이 있다. '연구하는 교장'이라고라...물론 연구는 한다. 어떻게 부수입을 챙기나, 어떻게 술자리를 만드나...지금까지 학교 현장에 있으면서 책 읽는 교장을 몇 명이나 보았을까. 책 읽는 교장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는 건 내 기준이겠지만 나는 적어도 교장이라면 책을 가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읽지 않는 교장은 내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연구하는 교장'은 곧 책을 읽는 교장이고, 책 읽는 교장이라면 아이들과도 능히 소통할 수 있다고 본다. 교장이 누군가. 교사중의 교사, 최고의 교사가 아닌가. 이 분들이야말로 아이들을 최고로 잘 가르칠 수 있는 분들이어야 한다. 교장선생님의 한마디 한마디를 아이들이 어떻게 감히 거부할 수 있겠는가. 일반평교사는 담임을 한 해만 하지 않아도 빈 틈이 생기고 긴장감이 떨어져 업무가 느슨해진다. 하물며 수업과는 거리가 먼 교감, 교장은 어떠하랴.

 

결론은....교장, 교감에게도 수업할 권리와 의무를 주어라. 교육현장이 많이 바뀔 것이다. 가히 혁명적으로!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땀띠 2014-12-25 16: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직 교사다. 24년차되는.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친.

흔히 학교 밖에 있는 분들은 이 글을 쓰신 분처럼 교감이나 교장이라면 교사 중의 교사 최고의 교사라고 본다. 그런데 학교 안에서 보는 교감이나 교장은 글쎄..... 수업하기 싫어서 또는 담임하기 싫어서 교감이나 교장이 되는 사람이 훨씬 많다. 아니 거의 99.99%가 그렇다. 아니면 권력지향적이다 보니 교장이 되는 경우이다. 그런 교감과 교장에게 수업을 하라는 것은 교육계를 떠나라는 말처럼 들릴것이다. 아니면 수업을 하는 교장에 대단히 모멸감을 느낄 것이다.

내가 만나 본 교장 중 책을 가까이 하고 늘 책을 읽는 교장은 딱 한 분 뿐이었다.그 분은 평교사였을 때도 어마어마한독서광이셨고, 교감을 거쳐 교장이 되었을 때에도 닥치는 대로 읽는 분이셨다. `연구하는 교장`은 바로 이런 분에게나 붙일 수 있는 표현일텐데 위 글을 쓰신 분의 표현처럼 대부분의 교장은 정말이지 무지무지 독특한 연구(?)만을 하신다. 내가 아는 책 읽는 그 교장선생님은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수업에 들어가고 싶어 하셨고, 선생님들의 갑작스런 결근이나 일들로 수업 결손이 생길 때면 어김없이 교실에 보강을 들어가셨다. 그리고 30 학급의 적지 않은 학교에서 전교생의 이름을 거의 다 알고 계셨다. 매일 복도를 순회하시고, 복도의 휴지는 맨손으로 스스럼 없이 줍고, 아무 때나 교실 뒷문으로 들어오셔서 교실 뒤에 놓인 휴지통에 손에 잔뜩 들고계신 쓰레기를 무심한 듯 버리고 가셨다. 그리곤 선생님들의 수업을 다 꿰고 계셨다.

이런 교장선생님을 이제는 볼 수 없다. 수업하기를 좋아하고 아이들 만나기를 즐기지 않는 교사는 교사도 교감도 교장도 더이상 아니다.

수업하는 교장, 그런 의무과 권리를 가진 교장이 탄생하는 날 대한민국의 교육은 살아날 것이다.


nama 2014-12-25 17:27   좋아요 0 | URL
99.99%..라는 표현, 제가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고 자제한 표현인데, 감사합니다.
책 읽는 교장, 저도 딱 한 분 뵈었지요. 역시나 다른 면모를 보였는데, 글쎄 교육청 입장으로서는 미운 털이었지요. 이런 분은 평생 두 번 만나기 힘들지요.

0.01%에 해당하는 교장이 설치는 교육현장이 되면 교육은 살아납니다. 분명.
 

 

 

퇴근길

 

물 위에 모여 있는 점들은 철새 오리떼

 

추울수록

겨울이 깊어질수록

차디찬 물 위에서 뭉치는 녀석들

 

추위도 제 것

공원도 제 것

세상이 온통 너희 것이구나. 

 

나는 오늘도 오리털 패딩을 입고 집으로 향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2-25 0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g폰 사진이 멋있어요 나름 분위기 있죠? 요새 화질 좋은 사진들이 많으니 상대적으로 분위기 있네요~ㅎㅎ

nama 2014-12-25 09:16   좋아요 0 | URL
2g폰도 처음 나왔을 때는 가히 충격이었지요. 사진까지 찍을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신기했는데 새록새록 신무기가 등장하니 머지않아 박물관행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사라지기 전에 열심히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