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였을 때

아버지는 그러셨다.

'발이 안 보인다.'

사람도 안 보고 걸었다.

 

20대

낯선 곳을 무작정 걷곤 했다.

내 등을 보이며

수많은 사람들을 앞질렀다.

 

30대 중반에 만난 남편 왈,

'정보 요원 같다'나.

각도와 속도를

유지했다.

 

40대

추월하고 추월당하는 수가

엇비슷해졌지만

추월하는 맛이 좋았다.

 

50대

이젠 앞선 이의 등을 보며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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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5-08-30 0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60대가 되면, 그저 걸을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하게 될까요? ^^

nama 2015-08-30 07:03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그렇게 될 것 같아요.
70대는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되고요.
 

이번 주는 그간 알고 있던 수준을 뛰어넘는, 그러니까 업그레이드를 하는 시간을 보냈다.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역사, 한민족의 만주 이주와 독립운동, 일본 영주 한인집단의 형성과정, 연해주 지역의 독립운동, 사할린 한인 역사, 하와이 독립운동 등 해당분야를 연구한 분들의 강의를 들으며 나의 얄팍한 지식과 인식의 바닥을 약간 단단하게 다졌다. 자못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강의를 듣다보니 아무래도 영화 <암살>을 봐야할 듯 싶어 영화를 봤는데, 마침 그날밤 Jtbc 뉴스룸에서 영화감독 최동훈과의 인터뷰가 있었다.

 

(출처 http://news.jtbc.joins.com/html/200/NB10997200.html )

 

조금 소개해보면,

 

손석희:...대개 1930년대 얘기, 광복군의 얘기 하면 조금 흔히 하는 표현으로 올드하다 그래서 관객들이 찾아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들을 충무로에서 다 한다고 들었습니다. 혼자만 달리 생각하셨습니까?


 

최동훈: 저도 걱정이 좀 많았고요. 심지어는 저한테 이 영화는 망할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일제강점기를 되돌아보는 것을 고통스러워하거나 즐길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를 했었어요. 그리고 저도 긴장을 하긴 했는데. 근데 저의 생각은 좀 달랐어요. 저는 상업영화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좀 더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아니면 아직 우리가 영화로 보지 못했던 모습들 영화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스펙터클이라고 하는 것이 좀 더 새로운 걸 찾고자 하는 열망하고 붙어있는 것 같고요. 저는 그리고 이 시대가 정말로 패배의 시대인지는 되짚어 봐야 된다고 생각하는…

 

 

손석희: 영화에서 다룬 그 시대가? (네) 그건 좀 새로운 시각일 수도 있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최동훈: 이 시대가 저희들한테 트라우마처럼 박혀있죠. 그렇지만 실제로 저희가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찾았던 책들에서 보면 아주 많은 분들이 압록강을 건너서 만주와 중국 상해 또는 뭐 미국이나 쿠바나 멕시코 같은 데서 노동을 하시면서도 돈을 계속 보내오고, 그리고 그 무장투쟁의 역사는 실은 45년까지 계속되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나라가 없어졌다고 손 놓고 있지는 않았고 계속 싸우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리고 그것을 관객분들에게도 전달해 드리고 싶었어요.

 

 

밑줄은 위 인터뷰에서 내가 크게 공감했던 부분이다. 일주일간 배운 내용이 바로 이 부분이기도 하다. 어떤 교수님에 따르면, 우리 나라 같이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한 민족이 없다고 한다. 필리핀이나 베트남도 우리처럼 끈질기고 독하게 독립운동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일제치하에서 신음하고 있었지만 해외 여러 지역에서는 말 그대로 아주 많은 분들이 독립운동에 보탬이 되려고 무진 애를 썼다고 한다.

 

역사는 지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역사인식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라는 교수님의 마지막 말씀이 묵직한 여운을 남겼는데, 제대로 된 역사인식을 위해선 일단 지식이 밑받침이 되어야 한다. 일단 아는 게 있어야지 생각할 근거가 생기는 거니까.

 

이런저런 강의를 듣고나니 최동훈 감독의 역사 인식이 만만치가 않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고 영화<암살>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연수를 받는 와중에 틈틈이 책 한 권을 읽었다. 밥장의 책이다. ( 재미있는 이 책을 여기서 요렇게만 언급하게되어 유감이다.)

 

 

 

 

 

 

 

 

 

 

 

 

 

글도 맛깔스럽고 내용도 탄탄해서 야금야금 조금씩 읽는 맛이 좋았다. 책에 소개된 여행지, 영화, 책, 음악도 한결같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어느 페이지에서 눈이 멈췄다. 독립운동가 최재형을 소개하는 부분이었다. 연수 첫날부터 언급된 최재형은 낯선 분이어서 얼른 감이 오지 않았는데 마침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었고, 그 다음날쯤 다시 어떤 교수로부터 구체적인 내용을 듣게 되었다. 잠깐 인용해보면,

 

'최재형은 1858년 함경도에서 노비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열 살 때 형과 아버지를 따라 연해주로 이주했지만 배고픔을 참을 수 없어 열두 살에 가출하였습니다. 우연히 한 러시아인 선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선장은 그를 친아들처럼 키웠습니다. 6년간 함게 배를 타고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남부 해안까지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 뒤로 한인으로는 처음으로 러시아 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세계를 경험한데다 러시아어까지 유창해서 열여덟 살에 그는 이미 '글로벌 인재'가 외었습니다. 극동에 얼지 않는 항구를 개척하려는 러시아의 정책에 힘입어 1880년 블라디보스토크는 연해주의 중심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는 러시아어를 모르는 이주 한인 노동자들을 대변하며 도로건설에 참여하였스빈다. 군납업에도 뛰어들어 러시아 군인들에게 생필품도 납품하였습니다. 현지인 같은 러시아어 실력, 그를 따르는 한인들의 노동력, 뛰어난 사업 수완 덕택에 한인이자 러시아인이었던 그는 연해주에서 존경받는 사업가로 크게 성공하였습니다. 그런데 1904년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지고 1905년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은 일본으로 넘어갑니다. 1907년에는 헤이그 밀사사건을 계기로 고종은 퇴위되고 군대도 해산됩니다. 마침내 그는 연해주와 러시아에 흩어져 있던 한인 의병들을 모집하여 1908년 동의회를 결성합니다. 그리고 국내 진공 작전을 펼칩니다.' (177~178쪽)

 

 

1909년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할 때 그 뒤를 봐준 사람이 바로 최재형이라고 한다. 결국 1920년 최재형은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취조나 재판 없이 그대로 총살되었다고 한다. 검색해보니 이 분에 관한 책이 몇 권 있다.

 

 

 

 

 

 

 

 

 

 

 

 

 

또 한 분, 이승만의 라이벌이자 하와이에서 활동한 박용만이라는 분도 알게 되었는데 앞으로 어느 순간 다시 접하게 되겠지 싶다.

 

 

또 하나. 우리 나라 해외 동포의 수가 약 750만 명이라고 한다. 열 명 중 한 명이 타국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비율로만 보면 유대인을 제외하고 세계 1위라고 한다. 집 떠난 자식이 이렇게나 많다는데 놀랐다.

 

 

오늘도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는 태극기 게양하라고 난리다. 8월초부터 게양하라고 떠들어대기에 시큰둥했는데 오늘은 한번쯤 태극기를 휘날려야 할 듯 싶다. 

 

오늘 페이퍼는 태극기 게양 대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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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bina 2015-08-23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해외 동포수가 그리 많은지 몰랐네요.
유대인 다음 이라니 더욱 의외다 싶구요.
이또한 일제강점기의 영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일본이 더욱 미워집니다.
한 나라, 한 민족에게 백년에 가까운 세월이 되도록 끝나지 않을 영향을 끼치고도
진정 반성의 자숙을 회피하는 일본은 뭔지 ... 적개심 마저 듭니다.
위안부로, 징용으로 우리의 젊은,아니 어린(열한 살에 끌려간 위안부도 있었다네
요.)사람들 개개인의 엉망이 되어 버린 인생에 대해서 언제나 속죄 하려는지...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해외동포 이야기에서 좀 옆으로 나와 혼자 흥분했네요. ㅠ

nama 2015-08-25 07:44   좋아요 0 | URL
흥분할 만하지요, 두고두고.
그러나 일본에는 양식과 양심이 있는 멋진 사람들도 많아요.
일본이라는 나라와 일본인이라는 한 개인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할 때가 많아요.
무작정 미워할 수만도 없는, 참 착잡한 나라가 일본인 것 같아요.
계속 공부해야 할 나라지요.

sabina 2015-08-25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맞습니다.
극명한 예로,극우파의 말도 안되는 거친 시위에 맞서서 항의하는 양식있는 일본인만 보더라도 일본인이 다 나쁘달 순 없죠.
일본인이아니라, 일본은 반성과 사과를 해야 지요. 그 억울한 사람들에게.
몇 번이라도...
독일처럼 말입니다...
 

'마들렌' 하면 떠오르는 책이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이다. 명성만으로도 읽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책이지만 아직 읽을 엄두를 못내고 있다. 그렇다고 앞으로 읽을 것 같지도 않다.

 

이름으로 익히 들었던, 간혹 제과점에서 사먹기도 했던 그 '마들렌'을 드디어 만들 기회가 왔다. 오븐이 없다는 핑계로 한번도 직접 만들어볼 생각을 못했는데 때마침 이쪽 분야의 연수를 3일 간 받게 되었다. 그래봐야 수박 겉핥기에도 못미치는 수준이지만 안 해본 짓을 해본다는 건 어쨌건 흥분되는 일이다.

 

레시피대로 만드니 대충 모양과 맛이 나와서 감격스러웠지만.....재료를 들여다보면 감격은 당혹감으로 바뀌고 당혹감은 분노로 바뀐다.

 

 재료명  비율(%) 질량(g) 
 박력분  100  544 
 설탕  100  544
 계란   100       544(11개)     
 버터  100 544 
 베이킹파우더  2 11 
 레몬쥬스  1   5
 소금 0.5   3
 코팅용 초콜릿    250

 

당혹감을 일으키는 저 '100'이라는 숫자. 박력분, 설탕, 계란, 버터의 양이 똑같다. 계란은 그렇다치고 결국 이 마들렌이라는 쿠키는 밀가루, 설탕, 버터로 이루어진 열량 덩어리라는 얘기다. 몰랐으면 모를까 알고는 도저히 마음놓고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손이 자꾸 간다. 일단 맛있으니까.

 

식구들에게 먹으라고 풀어놓긴 했지만 고깃국에 후추치듯 한마디 던진다. "몸에 해로운 거야."

 

나쁜 음식은 나눠 먹어야 빨리 없어지는데 누구랑 먹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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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5-08-10 0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램수를 보니 집에서 한 가족 정도 먹을 분량은 아닌 것 같아요. 대용량!
워낙 달달, 느끼, 고칼로리이기 때문에 이런 쿠키류는 우리 나라 스낵 먹듯이 하지 않고 한두개 맛 보는 정도로만 먹는거라는데 그게 참...^^
이런 연수도 받으셨군요. 재미있으셨겠어요. 집에 오븐은 있지만 마들렌 전용 틀이 없다는 이유로 저도 아직 한번도 안만들어봤어요.

nama 2015-08-11 08:49   좋아요 0 | URL
다쿠와즈도 만들었는데, 비록 재료는 험하지만(?) 맛은 기가 막히네요. 이런 맛이라면 얼마든지 살을 쪄주마, 하고 먹을 정도예요.^^
요즘엔 연수가 무척 다양해요. 커피 연수, 스킨스쿠버 연수, 스포츠댄스 연수, 오카리나 연수, 도자기 연수....오늘부터 한국이민사 연수를 받기 시작했답니다. 얼마나 졸리던지....
 

 

 

 

 

 

 

 

 

<호야>라는 식물이 처음으로 꽃을 피웠다. 키운지 10년 쯤 되었다. 발코니에서 자라다보니 꽃도 안쓰럽게 핀다. 사진 찍다가 떨어진 꽃잎마저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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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bina 2015-08-08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호야꽃, 처음봅니다. 꽃잎을 겹쳐서 오므린 다른 꽃의 봉우리와는 달리 꽃잎허리를 꺾은
듯이 맞대고 있는 봉우리 끝이 야무지고 앙증맞네요.
3,4년 된 호야를 갖고 있는데, 꽃피우도록 잘 키워야 겠습니다. ^^
덕분에 특이하고 예쁜 꽃, 감상 잘 했습니다.

nama 2015-08-09 08:44   좋아요 0 | URL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공처럼 둥글게 뭉쳐 핀 호야꽃을 볼 수 있는데요. 저렇게 엉성하지가 않아요 ㅠㅠ 그래도 10년만에 피었으니 매우 기특합니다.
 

 

 

2년 전 대부도에서 찍은 사진....롯데가의 '왕자의 난'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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