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기 전에 읽고 다녀와서 다시 읽는 책이 있다.
















손일. 1956년 일본 오카야마에서 태어나 1961년에 영구 귀국. 지리학과 교수였던 분이다. 

일본 그것도 규슈만 다루고 있지만 가볍게 일독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 여행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미도 별로 없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학술적인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읽고나면 깔끔하게 정리가 된다. 여행을 다녀와서 읽으면 더욱 그렇다. 교과서 문체라고나 할까. 물론 내 생각이다. 친구들과 나가사키에 갈 때 한 부씩 복사해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흐지부지 되었지만. 규슈를 여행한다면 참고서로 삼을 만하다.


귀여운 부분도 있다.

머리말에서.

'이 책 테스트는 나 혼자서 쓰고 있지만 저자는 3명이다. (중략) 나의 초고에 맞춰 사진 정리는 김성환 교수가 하기로 했고, 지도 작업은 탁한명 박사가 맡기로 했다. 우리 셋은 10년 전 <한반도 지형론> 번역 작업도 함께한 적이 있다. 우린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가족들까지 시샘할 정도의 브로맨스를 과시한다. 하지만 요즘 이 둘은 나 몰래 각자 일본 여행을 다니는 모양이다. 그들에게도 후배나 제자가 있고 또 가족이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맺음말에서.

'나의 스승님이자 공동저자이신 손일 교수님께서 자신에게 한번 권하지도 않고 일본 여행을 다니는 내가 살짝 서운하신 모양이다. 이번에는 먼저 전화를 드려 다음 여행을 제안해봐야겠다.'


부디 세 분께서 시코쿠나 홋카이도 같은 다른 지역도 책으로 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부제가 '예순 넘은 초짜 셰프의 1인 창업 분투기'이다. 역시 손일 교수의 책이다. 전자책으로 대출 받은 책을 미용실에서 파마를 하며 기다리는 동안 술술술 페이지를 넘겼다. 전자책이 아직은 낯설어서 집중력과 인내심이 형편없다보니 읽어도 읽은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책 전반에 두루두루 실린 각종 레시피는 일회성 독서로 끝낼 게 아니었다. 배울 점이 많았다. 새책 같은 중고서적을 구입할 수 있었다. 재미는 별로 없지만 내용이 짜임새 있고 알찬, 역시나 교과서 같은 책. 이번엔 요리 분야. 다정한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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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1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3월 19일자 <한겨레 신문>에 실뱅 테송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두 마디로 압축한 그의 가치관을 옮기면,


"모험은 꿈의 연장이고, 글쓰기는 모험의 지속입니다.'

"더는 움직일 수 없을 때 무엇으로 제 갈망을 대신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묻는다면... 그 상황이 오기 전 죽음을 택할 것 같습니다."


며칠 동안 이 문장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종종 떠오르는 질문이다.

'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나무 그늘에/고요히 고요히 잠는다 해도...'(모란동백) 조용남의 노래가 떠오르기도 했다. 















도서관에서 빌려와 허겁지겁 읽는데 어떤 기시감이 스멀스멀, 이미 읽은 책이었다. 이미 읽은 내용을 까마득히 잊었는데 다시 읽은들 달라질까. 회갑을 넘기니 책도 회갑 치레를 한다. 읽다보면 읽은 책을 무의식적으로 다시 읽고 있다. 재독의 주기도 점점 짧아진다. 어쩔거나...


p.28 ' 다른 곳은 내일보다 더 아름다운 단어이다.' -폴 모랑(1888~1976) 프랑스 작가이자 외교관'



** 재독을 방지하기 위해 한 줄이라도 기록해야 싶은데 글쎄 제대로 지켜질라나...
















겉표지가 마음에 안들어서 읽을 생각이 없었는데 고영란의 글을 보고 ... 읽기를 잘 했다. 공들여 지은 집 같다고나 할까.
















역시 겉표지로 판단해선 안 되는 책이다. 일본 문학에 한 발 가까이 들어가게 해주는 고마운 책.


<꿈꾸는 도서관>에서 꼭 하나만을 건진다면, 바로 이 문장.


'이때껏 갖가지 일을 해봤지만

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네.'  

- 아와시마 진가쿠(1823~1889) 일본의 유명한 풍류객


죽기 전에 쓰는 시, 절명시라고 한다나...


*** 홍콩에서 운이 좋으면 슈퍼마켓 같은 곳에서 영화배우 양조위와 마주칠 수도 있단다. 그래서 가끔씩 홍콩에 가보고 싶다고 노래부르는 사람이 있다. 누구? 



 












p.101

허우샤오시엔과 왕가위 모두가 존경해 마지않는 오스 야스지로 감독의 묘비명에 새겨진 단 하나의 글자, '무(無)'. 세상의 시간을 정지시키고 우주의 운동을 잠시나마 멈추게 하는 그 경지를, 우리는 양조위의 얼굴에서 보았다.


양조위에 대한 책은 무조건 소장.


****대학 때 읽다가 포기한 책을 읽어보니... 그땐 참 어리고 모자라고 어리석었구나 싶다. 
















p. 336

세계는 이제 안정된 세계야. 인간들은 행복해.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고 있단 말일세. 얻을 수 없는 것은 원하지도 않아. 그들은 잘 살고 있어. 생활이 안정되고 질병도 없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행복하게도 격정이나 노령이란 것을 모르고 살지. 모친이나 부친 때문에 괴로워하지도 않아. 아내라든가 자식이라든가 연인과 같은 격렬한 감정의 대상도 없어.


p.368

"하지만 저는 안락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신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있군그래."

"그렇게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야만인은 반항적으로 말했다.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말할 것도 없이 나이를 먹어 추해지는 권리,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떨어지는 권리, 이가 들끓을 권리,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끊임없이 불안에 떨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온갖 표현할 수 없는 고민에 시달릴 권리도 요구하겠지?"

긴 침묵이 흘렀다.

"저는 그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야만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소설에서 만나는 셰익스피어의 문장들도 반갑다. 셰익스피어에게서 영감과 힌트를 얻어 작품의 세밀한 부분을 구현했는지, 아니면 자신의 글을 보증하거나 보충하는 자료로써 셰익스피어를 인용한 것인지, 읽다보면 그런 궁금증이 생긴다. 셰익스피어는 영원한 아날로그의 세계이자 작가들의 보물 창고.


***** 가까이 보아야 예쁘고, 이름을 알아야 가까워진다.

제미나이가 신세계를 열어주고 있다. 까치, 까마귀, 비둘기, 참새 정도만 구별하던 새 이름을 제미나이를 통해 새록새록 배우고 있다. 사진을 찍어서 "뭐야?" 하고 무례하게 물어도 친절하게 가르쳐주니 신통방통하다. 앞으로는 예의를 차려서 물어봐야 할 것 같다. 배우는 입장이므로.

그래서 알아낸 새는, 쇄백로, 중대백로, 왜가리, 흰뺨검둥오리 등. 청둥오리와 어울리는 흰뺨검둥오리를 처음에는 청둥오리 암컷으로 오인하여 청둥오리를 바람둥이로 생각하기도 하고, 흰뺨검둥오리 한 쌍을 보고 동성애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청둥오리는 암수의 외양이 판이하게 다르나 흰뺨검둥오리는 암수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왜가리. 이름을 알고나서 급관심이 생겼다. 일거수 일투족을 살피는 중이다. 보기만해도 뿌듯해지는 우아한 새. 특정한 장소와 특정한 시간대에 나타나 먹이사냥에 나서니, 매일 왜가리의 출근을 기다린다. 근무지 이탈도 없고, 외부인 출입도 철저히 단속하고, 한눈 팔지 않고 먹이 사냥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존의 엄중함을 상기한다. 



까만 부리와 까만 다리, 까만 발톱. 머리 뒤에 있는 두 가닥 깃털. 흰색 몸통. 쇄백로라고 한다. 볼수록 아름답지 아니한가요?

















새를 기다리는 사람, 내 마음이 그 마음. 제목에 끌려서 대출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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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6-03-29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의 관심사가 이렇게 다방면이었다는 것은 일반적인 경우일까요, 특수한 경우일까요?

nama 2026-03-29 10:56   좋아요 0 | URL
글쎄요. 세상에는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도 볼 게 많고, 갈 데 많고, 할 일도 많지 않을까요?
 

나를 포함하여 내 주변의 지인이나 친구들은 주민등록상의 생년월일이 실제와 다른 경우가 많다. 주민등록상 한 살 어린 덕분에 지금까지 일 년 젊게 살아왔는데 드디어 나도 공적으로 우대 받는 노인이 되었다. 전철 무임 승차! 


비둘기호를 아시는가. 정확한 사실을 알기 위해 제미나이한테 물었다. 다음은 답변.


'비둘기호라는 이름이 처음부터 사용된 것은 아닙니다. 1960년대까지는 특별한 명칭 없이 '보통열차'로 불렸습니다.

*명칭의 도입(1984년): 철도청이 열차 등급 체계를 정비하면서 가장 낮은 등급의 완행열차에 "비둘기"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당시 위 등급으로는 통일호, 무궁화호, 새마을호가 있었죠.)


이건 사실과 달라서 구글에서 검색해보았다. 다음은 위키백과의 답변.


<역사>

*1967년 9월 1일: 운행 개시

*1974년 8월 15일: 통일호로 통합되며 폐지


나는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비둘기호와 함께 했다. 읍사무소가 있는 동네에서 수원 소재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바람에 내 인생이 꼬였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고생은 착실하게 했다. 고등학교는 열차로 30분을 타고 내린 후 25분을 걸어야 했다. 왕복 2시간을 길에서 소비했다. 대학은 더 했다. 열차로 1시간 30분, 다시 30분을 걸었다. 왕복 4시간이 걸렸다. 열차 통학이 힘들어서 잠깐씩 자취, 하숙, 친척집 신세도 졌지만 마음이 안정이 되지 않아서 몇번 시도하고 말았다. 마음보다 몸이 힘든 쪽을 택하다보니 7년 가량을 비둘기호를 벗삼게 되었다.


내가 태어나고 성장한 동네는 중학교 4개, 고등학교 3개가 있었다.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인 중고등학교를 두고 중학교는 가장 먼 곳에 위치한 학교로 배정 받았고, 고등학교는 도내에서 가장 입학이 치열했던 곳으로 진학하게 되었다. 물론 내가 원한 것은 집 근처의 남녀공학이었는데 그게 또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대학은 수원 소재 대학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지나고보면 다 부질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비둘기호는 내가 통학하던 내내 비둘기호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70년대 중반에도 비둘기호였고 80년대에도 비둘기호였다는 말씀이다. 인터넷에 있는 정보도 의심해야 한다. 그러나 누가 비둘기호 정보를 뒤질까. 나 같은 사람이나 뒤져보며 모처럼 목에 힘을 주는 거지.


장구한 7년 간의 비둘기호 열차는 내 심신에 여행 세포를 확실하게 심었다. 열차의 리드미컬한 질주가 몸에 새겨졌다. 떠나라, 떠나라, 하고 늘 부추기는 듯했다. 학교는 책상에 앉아 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몸으로 만들어 주었고, 열차 통학은 평생 여행을 꿈꾸는 몸으로 만들어 주었다.


결론. 무임 승차를 기념하기 위해 여주에 가서 돌솥밥을 먹고 왔다. 식당 공기밥에 예민하던 차, 모처럼 밥다운 밥을 먹고 잠시 행복했는데 그만 집에 와서 뻗었다. 왕복 2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한 일이라고는 밥 먹고 온 것 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이게 다 젊을 때 열차에서 오랫동안 시달린 탓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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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잡고 도서관에 다녀왔다. 왕복 1만 보. 예전보다 걷는 속도가 한없이 느려졌다. 읽을 책은 무한하고 체력은 떨어져가고...잘 안배해야겠다고 생각은 하나...그렇게 계획적인 인간은 못 되니 그냥 되는대로 살고 되는대로 읽기로 한다. 그러나 여행은 계획대로. 




 











중고로 구하기 힘든 건 도서관에서 구할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그러나...





14쪽까지는 어찌된 일인지 복사물이 대체하고 있다. 게다가 책 왼편, 두 군데를 통째로 구멍을 뚫어 철끈으로 묶었다. 이런 책을 본 적이 있던가 없던가...내가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나...머잖아 스러져갈 생명체를 부둥켜 안고 있는 심정이랄까.
















p.226

<고도>는 한국에서는 별로 인기가 없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너무나 일본적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작심하고 일본미에 바치는 기획 소설을 쓴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이 소설은 실패하지는 않았다. 읽는 내내 교토에 가고 싶어지니 말이다.


작가 허연의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읽는 내내 교토에 가고 싶'게 하는 것은 맞지만 '한국에서는 별로 인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도서관에서 빌린 저 책의 상태를 보면 우리나라 독자의 사랑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양가적 감정이 드러난다. '너무나 일본적'인 것이지만 너무나 사랑하는 게 느껴지지 않나?


그나저나 <고도>는 교토가 주인공인 소설이다. 한마디로 교토 홍보 소설이다. 소설<꿈꾸는 도서관>의 주인공이 도서관이었듯이 말이다. 흥미로운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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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3-23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저 정도 상태의 책을 폐기하지 않은 것은 아마 지금도 꽤 읽히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네요.

nama 2026-03-23 20:13   좋아요 0 | URL
절판으로 더 이상 구하기 어려우니 아쉽지만 저마저도 고맙지요.
 

자신의 글이 실린 생애 첫 책을 버릴 수 있다? 없다?


버린 얘기 먼저.



고1 때의 교지에 내가 쓴 독후감이 실렸었다. 여름방학 과제로 <사씨남정기>를 읽고는, 숙제라는 게 그렇듯 마지못해 썼는데 덜컥 상을 받고 교지에도 실렸다. 당시 국어선생님이 가르치던 고전소설의 특징 같은 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데 아마도 국어선생님이 수업시간에 가르친 요점을 내가 쓴 글에서 한두 문장쯤 발견하고 미소를 짓지 않았을까 싶다. 이렇게 쓰고 보니 그 선생님의 조용한 미소가 떠오른다.


4년 후, 당시 절친이었던 친구가 재수 끝에 법학과에 들어갔는데 교양국어 과제물로 독후감이 필요하다며 내가 썼던 글을 달라고 했다. 그래서 그때까지 고이 간직하고 있던 저 교지를 빌려주었는데 결국 돌려받지는 못했다. 유달리 약골이었던 친구였는데 지금은 잘 살고 있는지 몹시 궁금하다. (신문 광고로 찾고 싶은 마음도 있다.) 





문체라고 할 것도 없는 글. 50년 전의 글이 고전적(?)이다 못해 고루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세로줄 쓰기까지 한몫 한다.


잊고 있었던 추억의 한 페이지를 이렇게 복원한 것은 또 한 명의 절친 덕분이다. 이 친구는 가족을 따라서 남미로 이민을 가게 되어 고등학교를 중퇴했었다. 그곳에서 5년을 살고 다시 역이민으로 돌아왔는데 그 와중에도 저 교지를 잘 간직했다. 이유는, 그 친구의 수필 한 편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리라. 재활용에 관한 관제(?)성 글이었지만(학교에서 글쓰기의 문제점) 글이 정갈하고 여운이 있는 수작이었다.


발간된 지 50년이나 된 고등학교 시절 교지를 간직했던 친구는 이제 책 정리를 하고 있다. 쌓기보다 버려야 할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망설이고 있다. 버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책의 흔적을 이렇게 남기는 건, 책을 버리는 것일까, 남기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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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3-18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나마님 연세가....ㅎㄷㄷ

nama 2026-03-18 19:46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서 노닥거린 지도 20년이 되어가네요. 그때나 지금이나 마음은 같은데...믿기지 않는 나이가 되어버렸네요.

잉크냄새 2026-03-18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겨두심이 나중에 이불킥하지 않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네요. 버리기엔 너무 애틋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nama 2026-03-19 12:53   좋아요 0 | URL
몸은 아파오고... 언젠가는 생이 끝나고...누군가는 치워야하고...뭐 그런 생각이 들면 하나씩 처분하게 되지요. 내 손을 떠나더라도 어디엔가 존재할 곳을 생각해보니 모교에 기증하는 방법도 있을 것 같네요. 앗! 제 책이 아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