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중순경 인스타그램에서 '너무나 아름다워서 실제일 것 같지 않은 도시 15'라는 게시물을 보았다.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프랑스 꼴마르, 체코 체스키 크롬로프, 스위스 루체른...대부분 유럽 지역에 몰려있는데 동양쪽으로는 유일하게 일본의 시라카와고가 들어있었다. 대단히 주관적인 목록이지만 그것보다도 시라코와고를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급호기심이 당겼다. 찾아보니 우리나라 안동 하회마을 같은, 전통 가옥으로 이루어진 일본의 시골 마을로 숙박도 할 수 있단다. 대충 마음에 담아두었는데 마침 올해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될 항공 마일리지가 있음을 갑작스럽게 발견했다. 보너스 항공권이라고 공짜는 아니어서 '세금 및 유류할증료' 라는 명목으로 102,800원을 지불했다. 도착지는 나고야.


막상 현지에 가보면 호텔 숙박이나 버스표 끊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닌데 여행 전 국내에서 예약이나 예매를 앞두고는 머리가 지끈거린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여행자수표를 발행하고, 필름 카메라 목에 걸고, 손에는 지도를 펼치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어설프게 물어가며 길을 찾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절이 문득문득 그리워진다. 스마트폰 없이는 비행기 탑승도 어려운 시대. 그러나 AI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 그러면 여행이 너무 쉬워지잖아. 나고야 출발 시라카와고행 직행 고속버스 예매와 시라카와고 민박 예약을 해냈다. 어떤 일이든 해놓고보면, 알고보면 별 것 아닌 법. 두 번째는 쉽게 하련만 ...여행 준비에 머리카락이 하얗게 셌음에 틀림없다.


재미도 없는, 자랑거리 같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뭘까...를 내내 생각해본다. 나에겐 추억이고 기록이지만 이런 게 세상살이에 무슨 보탬이 될까도 생각해본다.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나 혼자 알고있기에는 좀 아까워서가 아닐까. 내 인생에서 며칠을 뚝 떼어낸 사건인데...그리고 시라카와고가 꿈결에 본 동화같은 세계 같아서. 야스나리의 <설국>에 열광하듯이 어떤 한 마을에도 열광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나고야에서 시라카와고까지는 고속버스로 2시간 40여 분이 걸린다. 그 길지 않은 거리를 주파하는데 크고 작은 터널 50여 개를 통과한다. 무엇보다도 시라카와고에 가까와질수록 쌓인 눈의 두께가 달라진다. 터널을 하나씩 통과할 때마다 탄성도 조금씩 커진다. 드디어 마지막 터널을 지나면 <설국>의 첫 문장을 자연스럽게 읊조리게 된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설국>의 배경이 되는 도시는 따로 있지만 뭐 어떠랴. 눈의 고장은 마찬가지.



갓쇼즈쿠리 집락촌. 두 손을 모으며 기도하는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일명 합장촌.

에 불을 밝히는 라이트업 행사가 연중 행사로 있는데 거의 로또 수준의 행운이 있어야 참가할 수 있다고 한다.




옛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 집




하룻밤 머문 민박집. 여러가지를 느끼게 하는 하룻밤이었다.




저녁밥과 아침밥을 주는데 이건 저녁밥. 전통 방식으로 꼬치에 끼워 화로에 구운 생선이 인상적인데 짭쪼름한 게 맛있어서 꼬리까지 먹어치웠다.




시라카와고 버스 터미널 게시판에 있는 사진을 찍은 사진. 무언가를 지켜내는 장중한 아름다움. 80년 만에 지붕을 교체할 때는 텔레비전 방송까지 했다고 한다. 소복하게 쌓인 눈을 봤으니 저 장면까지 보고 싶다면 욕심 되시겠다.




내가 찍고 내가 감탄한 사진. 우리 나라의 산과는 다른 일본 맛이 나는 풍경.


















<설국> 표지에 쓰인 사진이 바로 시라카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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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12-14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아름다워서 실제일 것 같지 않은 도시 15‘ 에 선정될 만합니다. 초가 지붕 위에 앉은 새떼인 줄 알았더니 사람이군요.

nama 2025-12-14 19:26   좋아요 0 | URL
옛 것을 지키며 사는 게 쉬워 보이진 않지만, 구경꾼 입장에서는 참으로 볼 만합니다. 하룻밤 머물며 보니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모습이 감동으로 다가오더군요.
관광객이 몰려드는 것도 장관이고요.
 

책상 앞에 앉기가 이렇게나 힘들다니... 딸이 독립하니 얼떨결에 친정 엄마가 되었고, 대장내시경으로 용종을 제거하면서 체면을 구겼던 비상사태를 벗어났고, 6도 6촌 생활(도시에서 6개월, 시골에서 6개월) 중 다시 도시로 돌아왔고, 도시로 돌아왔으니 잠시 중단했던 한겨레신문을 재구독하게 되었고. 벼르고 별러 남편 친구들 모임으로 남반구를 다녀왔고. 그리고 오늘은 난생 처음 골다공증 주사를 맞았다. 늙으면 늙은대로 새로운 세상이 다가온다는 걸 깨달은 사건. 다사다난한 와중에도 2월에 무지개 다리를 건넌 아진군이 무시로 떠올라 조용히 한숨을 삼키곤 한다.


도무지 책이 읽히지 않는데 어제는 서재 이웃님의 글을 읽고는 다급하게 영화 <국보>를 보았다. 주문한 책도 조금전에 도착해서 개봉을 기다리는데 이 책은 또 언제 읽을라나. 그간 여러 권을 들었다 놨다 했는데, 그중 끝까지 기억에 남는 것은,
















글쓰기에 관한 책은 일부러 피하는데 이 책의 저자인 김진해 교수의 글을 좋아하는지라, 분야 불문하고 눈으로 가슴으로 읽었다. 


p. 261~263

'1111법칙'이란 게 있습니다(이 글을 쓰면서 만들었습니다, 하하). 우리는 살면서 1000권의 책을 사거나 빌리거나 구경합니다. 그중에 100권을 읽습니다. 그중에서 10권이 마음에 남는 책입니다. 그중에서 1권이 자신의 세계관, 철학, 삶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인생 책'입니다. 그 1권도 시시때때로 변합니다. 중요한 건 1000권의 책이 내 앞을 지나가게 하는 겁니다. 나머지는 자동으로 됩니다.

  글쓰기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살면서 우리는 1000편의 글을 끄적거립니다. 그중에서 10분의 1 정도가 글로 완성됩니다. 그중에서 열 편은 그럴듯한 글입니다. 그중에서 하나의 글만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담은 '인생 글'이 됩니다. 그 글도 시시때때로 변합니다. 때론 아직 쓰지 않은 글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건 욕심부리지 말고 1000편의 조각 글을 무심히 만들어내는 겁니다.

   (중략)

  모든 책은 '자신'에게로 수렴됩니다. 책을 지나치게 세심하게 읽는 것은 읽는 사람을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지게 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책 읽기는 잠자고 있는 자기 고유의 시각을 발견하는 실마리 정도의 역할이면 족합니다. 책은 신줏단지가 아니라 '나'의 실마리입니다. 글도 그렇습니다.



이 책은

내 앞을 무심하게 지나가게 하기에는 아까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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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2-02 0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11법칙, 나름 생각을 많이 하도록 만듭니다.

nama 2025-12-03 06:21   좋아요 0 | URL
누군가는 이 법칙을 콩나물에 물주기로 표현합니다. 물이 밑으로 다 빠져나가는 듯하지만 그래도 콩나물은 그 물 덕분에 성장하니까요. 그러고보니 이 알라딘 서재는 콩나물 농장 같습니다. ㅎ
 
대항해 시대의 마지막 승자는 누구인가? - 근세 초 민음 지식의 정원 서양사편 4
김원중 지음 / 민음인 / 2010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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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이지만 야무지고 알차다. 목차를 잠시 살펴보면, 


- 머리말ㅣ대항해 시대의 마지막 승자는 누구인가?

1 유럽 인들은 왜 먼바다로 나가려고 했는가?
2 어떤 지식과 기술의 발전이 대항해를 가능하게 했는가?
3 포르투갈은 아시아를 정복하고 지배했는가?
4 에스파냐 정복은 포르투갈 정복과 어떻게 달랐는가?
5 아메리카의 정복자들은 누구이고 그들은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는가?
6 대항해 시대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런 식으로 질문을 던지는 글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거꾸로 책을 읽은 후에 이렇게 질문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읽기가 바빠서 실천하기 쉽지 않겠지만. 글자 빽빽한 책만 읽다가 이렇게 요약이 잘 된 책을 읽으니 달콤하다.


기억할 만한 두 가지를 적어본다.


* 에스파냐 정복은 포르투갈 정복과 어떻게 달랐는가?

p. 103  이처럼 정복 이래로 꾸준히 모습을 갖추어 간 에스파냐의 아메리카 제국은 포르투갈의 아시아 제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된다. 유럽 인들의 진출의 영향이 가장 크고, 가장 지속적으로 나타난 곳이 이곳 아메리카였다. 이곳에서 에스파냐 인들은 원주민들과 무역을 하거나, 해상 무역권을 장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건너가 정착했고, 아메리카의 거대한 영토와 수많은 현지인들을 지배하는 실질적인 제국을 건설했다. 1600년 경 포르투갈 인들이 서아프리카에서 마카오에 이르기까지 몇몇 요새와 섬들에만 머물러 있을 때 에스파냐 인들은 이미 아메리카에 에스파냐 본국보다 몇 배나 더 큰 영토를 지배하고 있었다.


p.97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발견'한 포르투갈 인들은 그 소유권을 현실화할 힘을 갖고 있지 않았고, 그에 비해 에스파냐 인들은 아메리카에 대한 지배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p. 99  에스파냐의 해외 사업이 정복과 정주와 식민화 쪽으로 나아가도록 추동한 원인은 모국에서 유래한 것도 있고 아메리카의 지역적 상황에서 유래한 것도 있었다. 재정복운동은 카스티야에서 영토 정복과 정주의 전통을 확고하게 확립해 놓고 있었다. 그러므로 1492년 재정복운동이 완성된 시점에서 볼 때 에스파냐가 아메리카에서 계속해서 영토를 획득하고 재정복을 확대 연장하는 것에 관하여 고려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콜럼버스에게는 실망스럽게도 카리브 해는 인도양에서 포르투갈 인들이 발견했던 수지맞는 교역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본토 내륙에 사는 훨씬 개화된 원주민들도 백인들과 지속적으로 교역할 만한 물품을 갖고 있지 않았다. 에스파냐 인들이 볼 때 아메리카에서 돈이 될 만한 것은 오로지 금광과 은광, 진주 어장, 비옥한 토양 뿐이었다. 이것들을 수탈하기 위해서는 몇몇 해군 기지를 발판으로 하는 해상 제국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정복과 식민지화, 필요한 노동력을 공급받기 위한 원주민의 노예화였던 것이다.


** 원주민의 노예화에 대해

p.125 (각주)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사람은 선천적으로 열등하고, 그들의 삶의 목적은 더 우월한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그는 그리스 인들에 비해 선천적으로 열등한 종족은 노예로 써도 된다고 주장했다. 또 선천적으로 열등한 종족의 저항으로 야기된 전쟁에서 포로가 된 사람들은 노예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이 이론은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는데 왜냐하면 아무도 노예 제도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이론은 16세기 이후에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의 논리는 서구에서 노예 제도의 정당성이 도전을 받을 때마다 그 윤리적 기반을 제공한 것이다. 이것은 또한 인종주의를 자극했고, 특정 '인종'의 노예화를 가능하게 해 주었다. 노예 제도를 유지하려면 열등한 인간으로 분류되는 집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인종주의의 뿌리가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구나....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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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여행은 책 <향신료 전쟁>에서 움 트기 시작했다. 거의 일 년에 걸쳐 이와 관련된 책을 꾸준하게 읽었다. 목록을 만들어 보면(이미 포스팅한 글과 겹친다.)


향신료 전쟁(최광용)

육두구의 저주(아미타브 고시, 김홍옥 역)

욕망의 향신료 제국의 향신료(로저 크롤리, 조행복 역)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김상근)

한중일의 갈림길, 나가사키(서현섭)

대항해시대의 탄생(송동훈)

바다인류(주경철)

막스 하벨라르(물타뚤리, 양승윤, 배동선 역)

암흑의 핵심(조지프 콘래드, 이상옥 역)


처음부터 의도하고 계획적으로 읽은 건 아닌데 방향이 계속 이쪽으로 향했다. 지리적으로는 서쪽에서 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잠시 아프리카(콩고)로 빠지기도 했으나 포르투갈, 스페인,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일본으로 확장되어 갔다. 마젤란은 역으로 동에서 서로 향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년간에 걸쳐 심심풀이 땅콩 삼아 아시아 일대를 별 목적 없이 돌아다닌 나의 여행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간 다녀온 인도, 말레이시아 말라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족자카르타, 마카오, 필리핀 세부 등이 한 줄로 엮인다. 물론 그 전에 스페인도 있다. 90년대 중반 무렵에 갔었다. 이렇게 어떤 흐름에 따라가다 보니 동쪽에 이르렀다. 그 끝에 나가사키가 있었다.


나가사키에 관한 책은 단연 서현섭의 이 책이 압권이다.















그런데 묘한 게, 여행 전에 읽었을 때는 페이지를 잘 넘겼는데, 여행 후 다시 읽어보려고 하니 문장 하나하나에 눈이 멈추며 페이지를 잘 넘기지 못한다는 것. 무엇을 제대로 안다는 게 어려운 일이구나, 를 깨닫는다. 두고 두고 알아가는 수밖에. 


여행 중에 그날 그날 대충 북플로 포스팅한 것 말고 가장 아쉬웠던 건 바로 카스텔라와 짬뽕 얘기이다.



p. 71 에스파냐, 포르투갈의 선교사들이 16세기 말 나가사키에 도래하여 전해준 남만 과자 카스텔라는 4백 년의 세월을 거쳐 나가사키 특산품의 간판 메뉴로 자리 잡았다...남만 요리라고 하면 에스파냐,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의 요리를 포괄적으로 지칭하고 있다.

  카스텔라가 처음 전해졌을 무렵에는 천황이나 쇼군 등에 대한 진상품으로 사용되었다. 1592년 무라야마 도안이라는 사람이 임진전쟁 때 사가의 나고야성에 머물고 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카스텔라를 '헌상'했다는 기록이 있다. 히데요시는 카스텔라 맛을 보고 좋았던지 포르투갈 요리사를 오사카성으로 데려가 카스텔라를 만들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뒤를 이어 카스텔라 원조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내 흥미는 여기에서 멈춘다. 왜냐면 내 입맛에는 나가사키의 카스텔라보다 양양의 '코코양양' 카스텔라가 더 맛있기 때문이다. 우리 식구 모두 이 점에 의견 일치. 어렸을 때 나의 어머니는 식구 중 아픈 사람이 있어 입 맛을 잃고 밥을 못 먹으면 카스텔라를 한 개 사다 주곤 하셨다. 집에서 기르던 똥개가 탈이 나서 밥을 못 먹어도 카스텔라를 하나 사와서 조금씩 떼어 주셨다. 그러면 사람도 개도 아픈 몸과 마음이 아물며 기운을 차렸다.



p.130~132  짬뽕은 나가사키에서 처음으로 상품화된 먹거리이다. 짬뽕의 원조라 알려진 천핑순은 1892년 19세 때, 단신으로 박쥐우산 1개를 들고, 중국 푸저우성으로부터 나가사키에 왔다. 그는 호기심이 많은 소년이었다. 고향 사람들에게 빌린 돈으로 리어카 한 대를 마련하여 옷가지 등을 싣고 나가사키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 행상을 했다....그는 중국인 특유의 인내심을 발휘하여 손짓 발짓을 해 가며 7년간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1899년. 26세 때 천핑순을 중국인들의 밀집 지역에 레스토랑과 여관을 겸하는 '대청국 사해루 요리 여관'을 열었다. 종업원 30명. 박쥐우산 한 개로부터 시카이로(사해루)가 탄생하는 감격의 순간이었다.....당시 개항지인 나가사키에는 푸저우 출신의 가난한 유학생들이 많았다...천핑순 사장은 오갈 데 없는 유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을 베풀었다...한창 먹을 나이인 젊은이들의 식사가 부실한 것을 보고, 값이 싸며 푸짐하고 영양 만점인 시나 우동 즉 중국 우동을 만들었다. 이 시나 우동이 '짬뽕'의 시작이다. 식재료는 돼지 뼈를 푹 고아서 만든 국물에 돼지고기, 캐비지, 숙주나물, 생선묵, 새우, 오징어, 조개 등 보통 열 가지 정도가 들어간다. 면을 밀가루에 탄산나트륨이 주성분이 도아쿠라는 재료를 넣어서 만든다. 도아쿠는 밀가루로 만든 면이 쉽게 변질되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짬뽕의 면이 지니는 특이한 맛을 내게 한다.


현재 시카이로라는 중국집은 증손자가 사장을 맡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한번 가봤는데 대기 줄이 길어서 그냥 포기하고 차이나타운에 있는 중국집에서 짬뽕을 먹었다. 맛은? 육수에서는 진한 굴맛이 나는데 짬뽕하면 떠오르는 불 맛과 매운 맛이 빠졌다. 매끈한 일본 맛이라고나 할까?


짬뽕에 이어, 책에서는 프랑스 해군 대위 로티 얘기가 나온다..피에르 로티(Pierre Loti)를 아시는지...나는 알고 있다는...23년 전 이스탄불에 갔을 때였다. 인터넷에서 읽은 피에르 로티 찻집, 꼭 가봐야겠다는 일념 하에 택시를 탔다. 외곽에 있는 공동 묘지 옆 찻집에서 로티가 차를 마시며 소설을 썼다나 어쨌다나. 그가 썼다는 소설은 지금도 번역된 게 없어서 읽을 수도 없는데 왜 그 찻집에 가고 싶었는지는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음. 한 무리의 프랑스 관광객들 틈에서 차를 한 잔 마시고 나왔는데 돌아간 줄 알았던 택시가 우리(식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한편 고맙기도 해서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데 숙소가 있는 동네에 이르렀을 때 택시비를 건넸다. 조수석에 앉아있던 나는 분명 우리 돈 2만 원에 해당하는 요금을 뒷좌석에 있던 남편에게 확인 시킨 후 기사에게 주었는데 내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2만 원 짜리 지폐를 2천 원 짜리 지폐로 바꾸고는 요금을 더 내라는 것이었다. 부리부리한 눈매의 거친 인상에 기가 죽어 그만 1만 8천 원을 더 주고 말았다. 이게 모두 피에르 로티 때문.


그러면 피에르 로티와 나가사키는 무슨 관련? 책을 보시길....


다음은 책에 없는 얘기.



군함도를 먼 발치에서 보았던 바로 그 섬 다카시마에 가는 배의 왕복승선권이다. 색깔도 모양도 크기도 예전 우리 나라 기차표와 유사하다. 우리는 생활사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으려나. 서양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였던 나가사키의 아날로그 고집이 편안하기도 하고 기이하기도 하다.





앞으로 유명해질 것 같은 기타리스트 Tomohiro Iwamatsu. 박보검 닮았으니까. 같은 날, 거리 공연과 어떤 문화재 건물 작은 콘서트를 보았으니 두 번 만난 셈. 사진도 함께 찍었다. 음악인으로 살아가는 건 쉽지 않으나... 잘 되시길 빌어요.



책을 읽고, 여행을 하다 보니 세상이 서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는다. 내가 걸은 만큼이라도 세상을 제대로 알아야겠다. 


대항해의 동쪽 완결편, 나가사키. 다음 목표는 대항해의 시작점, 포르투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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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5-09-26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진진합니다.
양양의 카스테라는 어떤 맛이기에.
양양에 가볼 이유가 또 생겼네요.

nama 2025-09-27 13:06   좋아요 0 | URL
쌀로 만들어서 촉촉하답니다.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이라고 할까요. 4, 9일은 양양 장날인데 빵이 일찍 떨어질 수 있어요. 인기가 많아요.
 

생각과 말, 글이 반짝반짝 빛나던 사람, 전유성.
그분의 죽음을 애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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