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에 실을 '언어의 경계에서' 꼭지를 옮겨놓는다. 새로 번역돼 나온 라 보에시의 <자발적 복종>(도서출판b)에 대해 적었다. 세번째 번역본인데, 자세한 주석과 해제를 통해서 이 문제적인 16세기 저작의 의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한겨레(20. 03. 27) 노예는 스스로 노예다움을 포기할 수 있는가


16세기 프랑스의 젊은 인문주의자 라 보에시의 <자발적 복종>이 한차례 더 번역되었다. ‘젊은’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그가 33살에 요절했기 때문이다. 29편의 시를 남긴 시인이기도 했지만 오늘날 라 보에시라는 이름은 그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쓰고 사후에야 간행된 <자발적 복종에 대한 논설>을 통해 기억된다. ‘격문’으로도 일컬어지는 짧은 책자가 여러 차례 번역된 것은 이 저작의 특이한 현재성 덕분이다. 저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수용되고 해석된 <자발적 복종>의 운명이 한국어판에도 반영되었다고 할까.


사정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라 보에시는 당대의 인문주의자로 세 살 아래였던 몽테뉴와 절친했고(몽테뉴는 그를 ‘영혼의 형제’라고 불렀다),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그의 유고들은 몽테뉴에게 넘겨진다. 몽테뉴는 <자발적 복종>을 자신의 <에세>에 포함하여 출간하겠다고 공언하지만 끝내 생전에는 출간하지 않는다. ‘자발적 복종’의 내용이 외부에 미리 알려지면서 군주제의 폭정에 맞서 선동을 촉구하는 불온한 책자로 간주돼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실상 몽테뉴는 군주제에 반대하지 않았고 <자발적 복종>도 군주제보다는 폭정 비판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군주제에 대한 라 보에시의 태도는 모호하다.


하지만 그와 무관하게 <자발적 복종>은 민중봉기를 촉구하는 작품으로 수용되었고 이러한 위상은 18세기 프랑스혁명기에 더 강화되었다. 독재에 대한 증오를 담은 저작으로 읽히면서 라 보에시는 급기야 급진적 혁명주의자로까지 치켜세워진다. 이러한 이미지는 20세기에도 이어져서 <자발적 복종>은 프랑스 공산당의 ‘민중의 총서’에 실리고 젊은 인문주의자는 노동해방의 주창자이자 민중의 구원자로까지 격상되었다. <자발적 복종>의 앞선 번역본들이 우리에게 소개한 라 보에시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사실 <자발적 복종>의 몇몇 대목은 그런 이미지에 부합한다. “한 사람이 수십만의 사람들을 억압하고 그들에게서 자유를 약탈하는 일은 도처에서 그리고 매일같이 벌어진다”는 진단에서 “나라 전체가 그에 대한 복종에 동의하지만 않는다면 그는 스스로 무너지게 된다”는 처방까지 고려하면 그렇다. 하지만 문제는 너무도 간단해 보이는 처방이 실현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폭군에 맞서 그들을 떠받드는 것을 멈추기만 하면 민중은 자유를 쟁취할 수 있지만 “그들은 자유를 물리치고 굴레를 찬다.” 바로 이러한 현상을 라 보에시는 ‘자발적 복종’이라고 부른다. 자발적 복종 체제에서 스스로를 학대하는 자 역시 민중이다. 역설적이게도 민중은 폭정의 협력자가 되는 것이다.


적어도 라 보에시는 민중이 자발적 복종의 굴레를 걷어낼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낙관하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것은 첫째, 노예로 태어나서 노예로 자랐기 때문이다. 복종에 길들여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폭군의 통치를 받으며 비겁하고 유약해지기 때문이다. 폭군은 민중을 속이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어떤 미끼들이 있었던가. “연극, 놀이, 익살극, 공연, 검투경기, 신기한 동물들, 그림들, 그리고 그러그러한 다른 마약들”이 복종의 미끼였고 자유의 대가였다. 라 보에시의 이러한 분석은 근대 이데올로기론을 선취하는 것이면서 <자발적 복종>의 현재성을 새로 음미하게 해준다. <자발적 복종>은 해방의 가능성을 선동하기보다는 그 어려움을 숙고하게 해준다는 데서 새롭게 의의를 찾아야 할 듯싶다.
















P.S. '자발적 복종'으로부터의 해방은 홍세화 선생의 책들에서 반복되는 주제다. 더 자세히 적지 않았지만 <자발적 복종>에서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민중에 대한 라 보에시의 인식은 <1984>에서 프롤(무산계급)에 대한 조지 오웰의 인식과 닮았다. 말미에서 라 보에시는 배움의 중요성에 대해서 언급하는데, 타라 웨스트오버의 <배움의 발견>(열린책들)은 그런 맥락에서 의미를 찾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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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원의 서평집이 오랜만에 출간되었다. <책읽기의 끝과 시작>(라티오). '책읽기가 지식이 되기까지'가 부제인데, 제목과 부제가 겨냥하는 것이 모두 서평이다. '책읽기의 끝과 시작'이 서평에 대한 정의이며 책읽기를 지식으로 만들어주어야 하는 게 또한 서평의 역할이다. '오랜만'이라고 적었는데, 서평집으로는 <책과 세계>(2004)와 <주제>(2005) 이후 15년간 강의와 방송활동을 하면서 쓴 책이라고 소개된다. 그 사이에는 강의책들이 있었다. 
















"서평집이지만 서평집 그 이상이기도 하다. 단지 서평들을 모아 놓은 서평집은 하나의 주제로 일관하기가 어려워 읽고 나면 읽어야 할 책 목록만 남기 쉬운데, 이 책은 내용과 형식에 따라 주제를 일관하고 있어 부제처럼 ‘책읽기가 지식이’ 된다. 뿐만 아니라 인용이 풍부한 서평, 수준(초급, 중급, 고급)에 따라 작성된 서평, 논고, 논문, 역자 후기 등 다양한 형식의 서평을 포괄하고 있어서, 글을 쓰고자 하는 목적에 따라 참조할 수 있는 일종의 ‘책에 관한 글 쓰기’ 안내서이기도 하다."
















'책에 관한 글쓰기' 안내서를 자임하는 일종의 전략적인 서평책이다. 더 간단히는 강유원식 서평쓰기 책이라고 해도 되겠다. 강유원의 저작으로 검색되는 첫 책은 <근대실천철학연구>(1998)인데, 짐작에 학위논문과 연관돼 보이지만 나는 실물로 보지 못했고, <인터넷으로 떠나는 철학여행1>(1998)도 시리즈로 기획됐던 것 같은데 역시 보지 못했다. 내가 처음 접한 건 <책>(2003)이라는 제목의 첫 서평집. 나대로의 분류에 따르면 <책>과 <주제>에 이어지는 것이 <책읽기의 끝과 시작>이다. 아마도 <책>이 절판된 상태라 그보다 널리 알려진 <책과 세계>를 언급한 것이리라. 거기에 <몸으로 하는 공부>(2005)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들이 강유원의 서평관과 공부관을 미리 엿보게 해준다. <책읽기의 끝과 시작>은 그의 책을 읽어온 독자에게는 그 종합판으로 여겨진다. 


그의 공부관과 서평관은 <책읽기의 끝과 시작> 서문에 잘 정리돼 있다. 책읽기의 본래 목적은 지식을 얻기 위한 것이다, 지식을 얻는다는 것은 단순한 입력이 아니라 자기화이다, 책읽기를 자기화하는 필수적인 방법이 서평쓰기다, 라는 것. 책은 자기화의 '단계'(레벨)를 실제 서평과 함께 제시하고 있다. 비유컨대 '책읽기로 몸만들기' 같은 과정이다. 독서를 섭식에 비유하자면 지식의 자기화는 음식을 근육으로 만드는 일에 해당한다. 그렇게 하기 위한 근육운동이 서평쓰기이고, 이 일련의 프로세스가 공부다. 


이번 서평집에서 특이하게 생각한 건 부록인데, '아주 긴 서평'이라는 이름으로 '<장미의 이름> 읽기'가 들어가 있다. 절판됐던 <장미의 이름 읽기>(2004)을 그대로 되살려놓았는데, 원래 제목도 그렇지만 작품에 대한 자세한 '읽기'에 해당한다. '아주 긴 서평'이라는 작명은 강유원식 유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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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브로긴 2020-03-28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유원 책은 책과 세계 한권 읽었는데, 추종자들이 많은 작가더군요.
약간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호르헤 수도사 느낌도 나는 것 같습니다. ‘장미의 이름 읽기‘도 궁금하네요...

로쟈 2020-03-28 15:48   좋아요 0 | URL
방송의 영향인지도.. <장미의 이름 읽기>는 말 그대로 충실히 읽기입니다. 해석이나 평가는 최대한 배제한..
 

초판본 시리즈가 '러시아문학'에서도 나올지 몰랐다. 러시아의 대표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출판사 표기는 '푸쉬킨')의 시선집이 '1837년판 초판본'이라고 출간되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써네스트). 물론 초판본이 그런 제목으로 나왔을 리는 없다. 표지 제목은 <푸시킨 선집>이다. 한국에서는 유독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가 널리 알려져 있기에(예전에 모스크바에 있을 때 이 제목으로 나온 푸시킨 시집을 딱 한번 본 적이 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이번에 다시 나온 박형규 교수의 번역판을 포함해 몇 차례 출간됐었다. 

















"러시아의 대표 시인, 푸쉬킨의 작품을 모은 시선집이다. 낭만적이지만 결코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던 그의 시 작품들. 자유를 사랑하고 젊음과 낭만을 꿈꾸던 그의 문학을 만날 수 있다. 푸쉬킨은 러시아 시인으로서의 자기 개성, 그 거대한 정신적 에너지와 꾸밈없는 도덕적 아름다움, 모순되고 준엄하고 불가해하지만 그의 마음 속 깊이 담겨진 끝없이 소중한 러시아인의 내음과 러시아인의 삶의 세계, 그 현재와 과거, 미래, 그리고 러시아인으로서의 자신과의 끈끈한 연결고리, 그 모든 것을 투명하리만큼 자기의 완벽한 언어 속에 담아낸 서정시인이며, 그 삶의 찬미와 함께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노래한 천재적 연애시인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러시아 민중의 자유, 희망, 동경, 기대를 그의 작품 속에 충실히 반영한 시민시인이기도 하다." 

















'초판본' 시리즈가 여전히 나오고 있는 건('초판본' 한국시집 나왔을 때 불러일으킨 열풍!) 물론 상업적 기대 때문이다. 초판본에 반응하는 독자들이 꽤 있기에 멈추지 않고 나오는 것인데, 과연 푸시킨 시집에까지도 그런 현상이 이어질지 궁금하다. 


















푸시킨의 작품 가운데서는 얼마전에 <벨킨 이야기>가 표지와 제목(<눈보라>)을 바꿔서 출간돼 새롭게 주목받은 적이 있다. 한 차례 적은 대로, 특이한 현상이었다. 새 번역본이더라도 <벨킨 이야기>라는 제목이었다면 독자의 손이 가지 않았을 것이다. 독자는 <벨킨 이야기>보다는 <눈보라>를 갖고 싶었던 것이다. '초판본' 현상도 마찬가지인데, 읽기 위한 용도라기보다는 소장하기 위한 용도다. 다만 러시아어판 표지는 그렇게 특출하지 않다. 푸시킨 작품집들의 일반적인 표지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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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6 0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26 0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마트폰으로 페이퍼 쓰는 일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PC로 몰아서 적는다. 최근에 나온 책 가운데 독문학자 윤미애 교수의 <발터 벤야민과 도시산책자의 사유>(문학동네)를 어제 구입했다. '스투디움총서'의 하나로 나온 책. 주로 번역자로 활동해온 저자의 첫 단독저작이다. 소개는 이렇다. 

















"20세기 가장 중요한 비평가로 손꼽히는 발터 벤야민을 30년 이상 꾸준히 연구하며 국내외 학계와 독자 대중에게 소개해온 독문학자 윤미애 교수의 첫 단독 벤야민 연구서다. 그간 국내에 벤야민의 저작 대부분이 소개되어 있고 그의 생애와 사상을 밝히는 연구서 역시 적지 않게 출간되어 있는 상황에서, 저자는 한국 연구자로서 새로운 화두로 벤야민의 사유 지도를 펼쳐보이고자 고민했다. 그리하여 벤야민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수많은 키워드 가운데 ‘도시산책과 도시관찰’ ‘자본주의 태동기의 도시’ ‘도시에서 보낸 유년시절에 대한 회상’ 등을 골자로 삼고, 벤야민 특유의 파편적이고 사변적이며 양가적인 사유를 섬세하고 중층적으로 분석해냈다."


제목의 '도시산책자'가 새로운 키워드는 아니다. '산책자'는 보들레르와 벤야민의 공통 키워드로 잘 알려진 주제이기 때문(<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펴낸 곳도 지금은 사라진 출판임프린트 '산책자'였다). 이 주제에 대해서 적당한 분량으로 잘 갈무리해놓은 책으로 보여서 구했다.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올 8월에 예정돼 있던 독일-카프카문학기행도 취소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벤야민과 브레히트의 베를린도 만나볼 예정이었다. 가을의 프랑스문학기행도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파리는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관련해서도 의미가 있는데(보들레르와 벤야민의 파리) 코로나가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하는 수 없이 올해는 '준비'로만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다. 손바닥 발바닥으로 열심히 거울을 닦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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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르노 강의록'이 출간되고 있다. 1권이 나온 게 2012년이고(8년전이군!) 그때 <부정변증법 강의>(세창출판사)를 구입했더랬다. 이런 종류의 책이 얼마나 이어질지 궁금했는데, 2015년에 4권 <변증법 입문>이 나온 뒤로 뜸하다가 지난해에 5권 <도덕철학의 문제>가 출간되었다(목록을 보니 앞으로도 13권 정도가 더 나와야 한다). 다섯 권 가운데, <미학강의1>과 <도덕철학의 문제>를 어제 주문해서 받았다(다른 두 권은 번역이 좋지 않다는 리뷰가 있어서 보류했다). 아도르노의 내게 전작 작가가 아니어서 그의 강의록을 모두 소장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미학강의2>는 그의 <미학이론> 독해를 위해서도 마저 나오면 좋겠고 우선적으로 읽어보려 한다. '루카치와 아도르노'라는 주제에 대해서 나대로 정리해보기 위해서다(학부 1학년때쯤 들은 주제니 30년도 더 묵은 숙제다). 문학에서 '리얼리즘이냐 모더니즘이냐'라는 주제. 이제까지 나온 강의록 다섯 권을 리스트로 묶어놓는다...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도덕철학의 문제
테오도르 W. 아도르노 지음, 정진범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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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법 입문
테오도르 W. 아도르노 지음, 홍승용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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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강의 1
테오도르 W. 아도르노 지음, 문병호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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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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