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 5일차. 이제 후반부로 넘어간다. 브르노(체코)에서 크라쿠프(폴란드)까지는 4시간반 정도 소요될 예정. 어제 적은 대로 체코에서 아침 먹고 폴란드에서 점심먹는 날이다.

아침을 먹고 산책을 겸하여 야셀스카 거리에 다녀왔다. 어젯밤에 주소와 동선을 알아두고 실행한 일인데, 카렐 차페크와 로베르트 무질이 살았던 집이 야셀스카 거리에 있고 숙소에서는 15분쯤의 거리. 심지어 두 집은(물론 두 작가가 살았던 시기가 다르지만) 같은 거리에서 마주보고 있었다.

차페크는 1905년-1907년에 신혼의 누나집에 얹혀서 브르노의 명문 김나지움을 다녔다(앞세대의 알폰스 무하와 레오시 야나체크, 다음 세대의 쿤데라가 동문이다). 1907년 전학을 가서 김나지움 졸업은 프라하에서. 쿤데라는 같은 김나지움을 1940년대 후반에 다녔고 1948년에 졸업했다.

시차를 둔 차페크의 이웃 무질(차페크보다 10살 위다)은 가까운 곳의 브륀(지금의 브르노) 공대에 다녔다(그 공대 건물은 현재 마사릭대학 건물로 바뀌었다). 건물벽의 현판에 따르면 1898-1901년 사이의 일이다(그의 아버지가 공대 교수였다. 작년 오스트리아 문학기행 때 클라겐푸르트의 무질박물관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예기치않게도 브루노에서(물론 무질 시기에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도시 브륀이었지만) 무질을 만나다니!

짧은 시간이었지만 브르노와 곧 작별하며 멋진 선물을 챙겨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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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브르노에서 점심을 먹은 뒤에 진행한 일정을 적는다. 이번 문학기행에 브르노를 포함한 건 순전히 쿤데라를 고려해서다. 한국에서 체코문학의 존재는 전적으로 쿤데라에게 빚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나도 예외가 아니다. 프라하 혹은 체코 작가로 전세계적으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작가라면 단연 카프카에 이어서 쿤데라를 꼽게 된다(차페크가 뒤를 잇는다. 물론 체코 내부에서라면 순위가 달라진다).

하지만 쿤데라와 체코의 관계는 복잡하다. 8년전에(2017년 가을) 프라하를 찾았을 때만 해도 쿤데라는 체코 국적을 여전히 박탈당한 상태였다(서점에서 쿤데라의 책을 보지 못했다). 1975년 프랑스로 망명한 쿤데라는 1979년 <웃음과 망각의 책>이 시비거리가 되면서 체코국적을 박탈당했었다. 화해가 이루어지는 건 2019년에 와서 체코정부가 적극적으로 관계회복을 시도하면서부터다. 다시 체코 국적을 회복하게 되었고 2023년 타계한 뒤에는 유해도 고향 브르노로 옮겨진다(작년 1월). 한번 적은 대로 올 7월에 묘지에 안치된다.

모라비아지방의 중심도시여서 브르노에는 모라비아주립도서관이 있는데(체코에서 두번째로 큰 도서관이라고), 도서관 1층(우리에겐 2층)에 쿤데라도서관이 마련돼 있다. 일행이 브르노를 찾은 이유다. 점심식사 후에 곧바로 찾아간 곳도 바로 쿤데라도서관. 나중에 쿤데라박물관이 생길 지 모르겠지만(그의 생가도 브르노에 있다) 당분간은 쿤데라 아카이브 노릇을 하게 될 장소이다. 실제로 한국어판 전집을 포함해 전세계에서 나온 쿤데라 책 3000종 이상을 모아놓고 있었다.

사생활에 대해서 철저하게 비밀주의를 고수한 작가답게 쿤데라도서관에는 쿤데라 개인과 관련한 자료는 매우 제한적이었다(<프라하의 카프카>처럼 <브르노의 쿤데라> 같은 책자도 나오면 좋겠다). 다만 그의 책들만 있었다(그가 애정했던 라블레의 책 정도가 예외로 눈에 띄었다). 그럼에도 1988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그땐 송동준 교수의 독어판 번역본)으로 처음 만난 작가의 고향, 그가 묻히게 될 도시에 와서 기념사진을 찍으니 감회가 없지 않았다(문학기행을 진행하는 이유다).

쿤데라도서관 방문으로 4일차 문학일정은 마무리되었고 일행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브르노 구시가를 둘러보았다. 저녁시간이었지만 야간투어의 느낌이었다. 날이 밝으면 크라쿠프로 떠나기 전에 다시 걸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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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아침 프라하의 숙소를 떠나 이동한 곳은 비셰흐라드 묘지였다. 카렐 차페크의 무덤을 찾아가기 위해서였는데 버스로 이동한 다음 10여분 걸어들어가서 묘지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묘지앞까지.

이동중에도 살얼음이 깔린 길들이 있어서 주의해야 했는데 묘지도 안전을 이유로 문을 열지 않고 있었다(묘지를 찾는 노인들이 있다면 그럴 만하다). AI는 해가 퍼진 다음에는 문을 열어줄 수도 있다고 했는데 우리는 다음 일정이 있어서 무덤의 위치만 확인하고 걸음을 돌렸다. 이 묘지에는 프라하가 자랑하는 많은 명사들이 묻혀 있는데 차페크 외에도 알폰스 무하, 스메타나, 드보르작 등의 무덤이 묘지의 이웃들이다. 날씨가 좋은 계절에 문학예술기행으로 프라하를 찾는 이가 있다면 필히 들러야 하는 곳.

문학기행 4일차였던 어제는 차페크와 쿤데라의 날이었다. 비셰흐라드 묘지에 이어서 찾은 곳이 프라하 외곽(1시간 거리) 스타라 후티(별칭은 스트르지)의 카렐 차페크 기념관(카렐 차페크 메모리얼)이었다. 차페크의 별장이었다는 곳인데 차페크와 배우 아내 올가 샤인플루고바, 지인들과 관련된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3층건물 전체가 전시공간이어서 예상보다 규모가 컸고 자료도 많았다. 프라하 도심에 있는 카프카박물관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다만 외국인(관광객)이 드물어서인지(가이드에 따르면 주로 내국인과 수학여행 학생들이 찾는다고 한다. 이곳을 찾은 한국인은 더구나 더 드물지 않을까 싶었다) 연보를 제외하면 영어를 비롯한 다른 언어의 안내가 없어서 내용을 다 둘러보기는 어려웠다(단체방문을 예약해둔 덕분인지 기념관 직원 한글안내자료를 복사해서 나눠주었다). 카프카박물관의 꽤 규모가 있는 뮤지엄샵과도 비교되었는데 장난감 로봇을 비롯한 몇종의 기념품과 체코어 책자들만 비치돼 있었다.

그럼에도 예상보다는 훨씬 잘 꾸며진 기념관이어서 찾아온 보람을 느꼈다. 기념관 기는 길에는 겨울이라 얼어붙은 큰 연못(호수처럼도 보였는데 체코어로 연못이라고 한다)도 있고 경관이 좋았다. 다른 계절에 찾더라도 운치가 있을 것 같았다.

기념관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는 것으로 차페크 일정을 마무리하고 일행을 다시 버스에 올랐다. 이제 오후 일정을 위해 브르노로 이도할 시간. 브르노끼지는 2시간40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차량 정체로 3시간쯤 걸렸다. 이동중에는 20, 30분이 더 걸릴 것 같았지만 그보다는 일찍 도착해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보통보다 늦은 점심이기도 했지만 가장 맛있는 식사였다). 브르노에서의 일정은 따로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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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6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지만 체코는 한밤중이다(한국 기준으로는 그렇다). 문학기행 4일차가 마무리된 시점이다. 어제까지 프라하에 있었지만 지금은 브르노, 밀란 쿤데라의 고향 브르노에 와있다. 내일은 조식 이후 바로 브르노를 떠나서 점심은 폴란드의 제2도시이자, 역사도시 크라쿠프에서 먹을 예정이다. 문학기행 5일차이면서, 폴란드문학기행 1일차가 되는 셈.

오늘의 일정을 따로 정리하기에 앞서서 여기까지 들고온 쿤데라 책을 펼쳤다(여러 후보가 있었지만 첫 장편소설인 <농담>을 들고 왔다. 배경이 모라비아 지방이어서 낙점된 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함께, 쿤데라 소설들 가운데서 가장 얘깃거리가 많은 작품이다. 흔히 제목의 ‘농담‘이 작품 초반에 나오는 얀 루브빅의 농담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지만, 나는 더 중요한 농담은 후반부에 나오는 ‘역사의 농담‘이라고 생각한다. 제마넥에 대한 루드빅의 복수 시도가 어이없게 좌절되는 게 작품의 줄거리라면, 그 좌절의 원인은 시간의 경과, 곧 역사에 대한 무시다. 시간의 경과를 과소평가한 이들에게 역사는 철퇴를 내려친다(역사의 복수인가?)

인용한 대목은 루드빅이 뒤늦게 자신의 과오(복수라는 환상을 품은 것)를 깨닫는 대목이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말을 비틀자면, 지연된 복수는 복수가 아니라 짓궂은 농담으로 전락한다(비슷한 내용을 강의책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에도 적었다). 새로운 얘기가 아니지만 브르노에서 쿤데라를 읽고 있다는 기분을 내려 다시 적었다...

과거에 최면이 걸린 나는 어떤 끈으로 거기에 자신을 묶어놓으려 하고 있다. 복수라는 끈. 그러나 이 복수라는 것은 요며칠 사이에 내가 확실히 알게 되었듯이, 움직이는 자동 보도 위를 달리는 나의 그 질주만큼이나 똑같이 헛될 뿐이다. 그렇다. 내가 제마넥 앞으로 나아가 그의 따귀를 때렸어야 했던 것은 바로 그때, 대학 강당에서, 제마넥이 <교수대 아래에서 쓴 르포>를 낭독하고 있었을 때, 바로 그때였고 오로지 그때뿐이었다. 미루어진 복수는 환상으로, 자신만의 종교로, 신화로 바뀌어버리고 만다. 그 신화는 날이 갈수록 신화의 원인이 되었던 주요 인물들로부터 점점 더 분리되어 버린다. 그 인물들은 사실상(자동 보도는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움직인다) 더 이상 예전의 그들이 아닌데, 복수의 신화 속에서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채 그대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예전의 얀이 아닌 다른얀이 역시 예전의 제마넥이 아닌 다른 제마넥 앞에 서 있는 것이며, 내가 그에게 날려야 하는 따귀는 다시 되살릴 수도 다시 복구할 수도 없이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만 것이다. - P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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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에서 읽기 위해 아껴두었다가 들고 온 책이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다. 이번 체코문학기행의 핵심작가가 카프카와 쿤데라, 그리고 3인어서(물론 짧은 일정에서 다루기에 적은 수는 아니다) 불가불 다른 작가들이 빠질 수밖에 없었는데, 대표적으론 흐라발이 그렇다(하셰크와 클리마가 뒤를 잇는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작품이 번역돼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여야 한다는 점.

카프카와 쿤데라는 전집까지 나와있고, 차페크는 주요작이 거의 번역되었다. 하지만 쿤데라 세대의 체코 독자들에게 국민작가로 사랑받는다는 흐라발의 작품은 몇편 소개되었다가 절판되고 지금은 <너무 시크러운 고독>과 <이야기꾼들>만이 남아있는 상태. <고독>의 이런 멋진 서두를 보면 이 작가의 책들이 이토록 번역되지 않고 방치돼 있다는 사실이 미스터리다(이반 클리마도 그렇다).

사실 그런 이유로 체코문학 강의 때도 흐라발은 빼놓았었다(체코에서 시작해서 헝가리를 거쳐서 현재는 폴란드를 진행하는중). 더 시끄럽게 굴기 전에 흐라발을 고독에서 풀어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삼십오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다. 삼십오 년째 책과 폐지를 압축하느라 삼십오 년간 활자에 찌든 나는, 그동안 내 손으로 족히 3톤은 압축했을 백과사전들과 흡사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나는 맑은 샘물과 고인 물이 가득한 항아리여서 조금만 몸을 기울여도 근사한 생각의 물줄기가 흘러나온다.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된나는 이제 어느 것이 내 생각이고 어느 것이 책에서 읽은 건지도 명확히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지난 삼십오년간 나는 그렇게 주변 세계에 적응해왔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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