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바이크의 짧은 기고문과 미빌표 원고를 묶은 ‘츠바이크의 마지막 수업‘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재작년 가을에 나왔다. 특이하게도 작년봄 오스트리아문학기행 때 챙겨가지 않은 책이다. 책이 앏고 가벼운 편인데도 불구하고. 따로 이유가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여행 때마다 빼먹은 책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번 체코폴란드 문학기행을 떠나기 전, 올겨울 오스트리아문학 강의에서 읽은 작가가 츠바이크였고 다음주에는 요제프 로트로 옮겨 간다.

다작의 작가였던 만큼 츠바이크의 언제나 일부만 읽게 되는 작가인데 그럼에도 매번 전쟁(1차세대전) 전후 오스트리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요긴한 작가라는 인상이다. ‘나에게 돈이란‘ 글에서도 전후 화폐가치의 폭락(초인플레이션)이 가져온 상황이 실감나게 묘사되고 있다. ˝옛 오스트리아에서는 돈이 우리 가족 모두에게 안정감과 편안한 생활수준, 안전을 제공했었다.˝ 그러다가 전쟁이 일어나고 ‘어제의 세계‘는 무너져내렸다. 츠바이크은 작품들의 배경은 그 전과 후이다..

그러다가 1914년에 전쟁이 일어났다. 초기에만 하더라도돈은 여전히 순종하는 늙은 하인이었다. 그러나 점차 통화가비틀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1919년부터는 시간이 갈수록 햇빛 아래 버터처럼 녹아내렸다. 어느 날 아침 우리는 잠에서깨어나 재산의 절반이 사라진 것을 보았다. 마치 아무도 손대지 않았는데 마구간의 말이 홀연히 사라진 것과 같았다. 인플레이션이 범인이었고, 저녁이 되자 우리의 재산은 다시 그 절반이 되었다. 아침에 3만 마르크를 주고 신문을 샀는데, 저녁에는 5만 마르크를 줘야 했고, 다음날에는 10만 마르크를 내야 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거액의 지폐가 등장했다. 100만마르크짜리 지폐. 모두가 백만장자였다. 하지만 아주 잠깐이었다. 일주일 후 100만 마르크짜리 지폐도 가치가 떨어져 수십억 마르크를 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광풍에 둘러싸여 우리는 돈을 헤아리고 계산하려 애썼지만 허사였다. 돈이 그렇게 미친 속도로 무너지는 것을 인간의 보통 사고력으로 이해하기는 불가능했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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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공지다. 봄학기에 롯데문화센터에서는 제인 오스틴부터 브론테 자매까지 19세기 영국 여성작가들을 다시 읽는다(목요일 오후3시30분-5시10분). 지난 코로나 기간에 한 차례 읽었던 작가들인데 그 사이에 새로 번역되거나 다시 번역된 작품들이 있어서 기획하게 되었다(롯데문화센터에서는 올해 영국문학 읽기를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 구체저인 일정은 아래와 같다(3월 12일 개강)



로쟈의 영국문학 다시 읽기


특강 3월 12일_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1강 3월 19일_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2강 3월 26일_ 샬럿 브론테, <제인 에어>



3강 4월 02일_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1)



4강 4월 09일_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2)



5강 4월 16일_ 앤 브론테, <와일드펠 저택의 여인>(1)



6강 4월 23일_ 앤 브론테, <와일드펠 저택의 여인>(2)



7강 4월 30일_ 샬럿 브론테, <셜리>(1)



8강 5월 07일_ 샬럿 브론테, <셜리>(2)



9강 5월 14일_ 샬럿 브론테, <빌레뜨>(1)



10강 5월 21일_ 샬럿 브론테, <빌레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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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공지다. 아직 겨울 한복판이지만(지난 화요일이 대한이었군) 마음은 봄학기로 바삐 가는 중이다(사실은 가을일정까지도 짜놓고 있다). 현대백화점 판교점에서는 봄학기에 괴테와 실러를 읽는다(수요일 오후3시30분-5시10분). 독일문학의 초심으로 돌아간다고 할까. 괴테의 <파우스트>를 오랜만에 강의에서 다시 만난다. 실러의 희곡 절반은 처음 강의하는 작품들이어서 기대가 된다. 구체적인 일정은 아래와 같다(3월11일 개강) 



로쟈와 함께 읽는 괴테와 실러


특강 3월 11일_ 괴테, <이피게니에>



1강 3월 18일_ 괴테, <파우스트>(1)



2강 3월 25일_ 괴테, <파우스트>(2)



3강 4월 01일_ 괴테, <파우스트>(3)



4강 4월 08일_ 괴테, <파우스트>(4)



5강 4월 15일_ 실러, <도적들>



6강 4월 22일_ 실러, <간계와 사랑>



7강 4월 29일_ 실러, <돈 카를로스>



8강 5월 06일_ 실러, <발렌슈타인>(1)



9강 5월 13일_ 실러, <발렌슈타인>(2)



10강 5월 20일_ 실러, <빌헬름 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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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체코폴란드)문학기행을 마치고 어제아침에 무탈귀국했다. 출발전에는 날씨 변수에 대한 염려가 있었지만 다행히 진행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폭설 같은 예기치않은 변수를 생각해보라). 여행의 감상과 기억은 이미 창고에 자리를 잡았고 오랫동안 영혼의 ‘식량‘이 될 것이다. 프라하는 세번째 방문이어서 친구와의 재회 같은 느낌이었다면, 여행 후반부의 폴란드 도시(크라쿠프와 바르샤바)들은 첫 방문지들이어서, 게다가 기온도 더 낮은 도시들이어서 몸에 더 와닿는 느낌이었다(시각적 기억과 촉각적 기억).

여행을 마무리하는 의미로 필립 로스의 <왜 쓰는가>를 다시 펼쳤다. 출발 전날 밀란 쿤데라와의 대화 장을 읽었는데, 오늘 펼친 곳은 아이작 싱어와의 대화(폴란드에서는 이디시어 작가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망명작가 싱어까지 폴란드 수상자로 치는 듯했다). 브르노 슐츠가 대화의 화제인데, 되짚어 보니 폴란드 서점들에서 슐츠의 책을 보지 못했다(눈에 바로 띄지 않았을 뿐이겠지만). 미츠키에비츠 문학관에서 슐츠의 드로잉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고 기대했지만 볼 수 없었다(아마도 과거에 기획전이 있었던 모양). 그래서 브루노 슐츠만 여행의 공백으로 남았다. 갈리시아의 도시 드로호비치에 가볼 일이 있을까(필립 로스가 갈리시아 유대인 가계다). 그건 어렵겠지만 바르샤비의 브루노 슐츠를 찾는 건 가능할지도. 혹시나 폴란드를 다시 찾는다면 브루노 슐츠의 장소들도 챙기고 싶다...

로스: 1930년대 바르샤바에 관해 묻고 싶습니다. 슐츠는 젊은시절 리보프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그다음에는, 내가 아는 바로는, 갈리시아의 도시 드로호비치로 돌아가 여생을 고등학교에서 드로잉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에는 긴 시간 드로호비치를 떠난 적이 없었는데 삼십대 중반 또는 삼십대 후반에 이르러 바르샤바에 갑니다. 그가 당시 바르샤바에서 어떤 문화적 분위기를 만났을까요?

싱어: 슐츠에 관해서는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끔찍하게 겸손한 사람입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 타운에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가 매우 겸손하다는 것, 또 약간은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걸 보여줍니다. 큰 도시로 나가 이미 유명해진 사람들을 만나는 걸 두려워하는 촌놈 같은 기분이었을 겁니다. 아마도 그들이 자신을 놀리거나 자신을 무시하는 걸 두려워 했을 게 분명합니다. 나는 이 사람이 신경이 극도로 예민했다고 봐요. 작가가 겪을 수 있는 모든 억제가 있었어요. 사진을 보면 평생 인생과 화해를 한 적이 없는 사람의 얼굴이 보입니다. 보세요, 로스 씨, 그 사람은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여자친구는 있었던가요? - P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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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문학기행의 마지막 9일차는 연장전 같은 느낌이었다. 오늘은 조식후 곧바로 공항으로 이동할 예정이어서 엑스트라 일정들이 남아있을 뿐. 시차가 있어서 내일아침 출근시간대에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무탈귀가만 남겨놓게 된다(지방에서 오신 분들은 다시 국내여행 모드로 전환, 한고비를 더 넘어야 하지만). 모든 게 식사후 설겆이에 비유될 수 있는 일정이다.

어제의 메인식사는 바르샤바봉기박물관 방문이었다. 이미 한강의 <흰>에 대해 글을 올리기도 했지만 우리가 아는 범위에서 봉기박물관 방문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 작품은 <흰>이 유일하다. 그걸 고려해 봉기박물관 방문을 최초 일정에 추가했던 것인데, 쇼팽박물관 방문이 리모델링 공사로 무산돼(쇼팽콩쿨 기념동상 찾아가보는 것으로 대체했다. 동상주변도 공사중이었지만 멀찍이서 동상은 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마지막 핵심일정이 되었다.

방문 소감을 질문으로 표현한다면, 봉기박물관 견학을 빠뜨린 바르샤바 여행이 가능할까쯤이 되겠다. 바르샤바가 1944년 8월 봉기의 결과, 나치독일의 무자비한 파괴대상이 된 사실은 토막역사상식인데, 봉기박물관은 상식을 체험으로 바꾸어준다. 체험의 강도는 저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의 역사에서도 시민봉기와 저항의 경험은 낯설지 않아서 자연스레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3.1운동과 바르샤바봉기, 제주4.3, 그리고 80년 광주항쟁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고리들이 이어지면서 하나로 연결되는 경험.

봉기박물관을 방문하고서 일행은 한식당에서 부대찌개로 점심을 대신했다. 오후는 자유시간. 나는 나대로의 숙제를 했는데, 15-20분씩 도보로 아이작 싱어의 현판이 있는 크로치말나 거리를 지나 스탈린양식의 건축, 문화과학궁전 건물을 보고(모스크바에 온 것 같은 착시를 갖게 했다), 코스타커피점에서 브레이크타임을 가진 뒤(막간에 적자면 폴란드는 커피값이 우리보다 비싸다), 숙소 쪽으로 이동해서 문인들이 자주 찾았다는 북카페(부제니에 시비아타), 그리고 성십자가성당 옆에 있는 바르샤바 대표서점(작가의 이름을 딴 볼레스와프 프루스 서점)을 찾았다. 문학쪽에는 폴란드어 책뿐 아니라 영어책들도 같이 꽂혀 있었다. 강의에서 다루는 작가들의 대표작 폴란드어판 실물을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폴란드, 아니 문학기행의 마지막 조식을 하면서 어제의 일정을 바삐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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