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키보드(자판)가 먹통이 되는 바람에 할일은 줄었지만(!) 꽤나 불편하다. 조지아 오키프에 대한 기사 하나를 옮겨오는 데 몇십 분이 걸리는 식이니 말이다. 하는 수없이 노트북에서 마무리를 한다. 이번주 예술분야 신간들 가운데 한 권만 꼽으라면 내가 고를 책은 <조지아 오키프, 그리고 스티글리츠>(민음사, 2008)이다. '조지아 오키프'란 이름이 생소한 이라도 그녀의 '커다란 꽃 그림'은 낯익을 것이다. 그녀의 삶과 예술에 대해서는 예전에 '조지아 오키프와 산타페'(http://blog.aladin.co.kr/mramor/912676)란 페이퍼에서 다룬 바 있다. 스티글리츠는 경제학자가 아니라 사진작가이며 오키프의 남편이다. 오키프는 스티글리츠에게 영감을 준 모델로 출발하여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창조하게 된다고.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관계와 자주 비교되는 이유이다. 이번에 나온 책 <풀 블룸>(원제) 덕분에 그녀의 예술과 생애에 대해 풀 스케일로 들여다볼 수 있겠다...    

문화일보(08. 12. 05) 사진모델서 화가로… ‘美모더니즘의 女神’

#1. 그리스 신화에 피그말리온이라는 키프로스의 왕이 있다. 뛰어난 조각가이기도 한 피그말리온은 어느날 아름다운 여성을 조각하고 나서 그만 그 조각과 사랑에 빠졌다. 그는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조각과 사랑을 나눌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피그말리온이 여신에게 기도를 드리고 아틀리에로 돌아와 조각에 입을 맞추자 조각은 사람이 돼 걸어 내려왔다. 이 여성이 갈라테아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미국의 여성 화가 조지아 오키프(1887~1986)가 갈라테아라고 하면 그를 발견한 사진작가 앨프리드 스티글리츠는 오키프의 피그말리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키프는 아름다운 갈라테아에 멈추지 않고 한 사람의 예술가로 자립, “사물의 지극한 단순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능력”을 가진 미국 모더니즘의 개척자가 됐다. 오키프는 1940년대 추상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에서부터 1950년대와 1960년대 하드에지, 팝아트, 옵아트, 미니멀리즘에 이르기까지 미국 모더니즘 양식들의 기원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 단서를 제공했다.



오키프가 숨진 뒤 2001년 ‘붉은 아네모네와 칼라’는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620만달러(당시 62억여원)로 팔려 여성 화가로는 최고가를 기록했다. 스티글리츠가 찍은 오키프의 손은 2006년 소더비 경매장에서 147만2000달러(당시 15억여원)로 사진경매가 최고를 기록했다.



이 책은 저자가 10년에 걸쳐 수십명을 인터뷰하고 그에 관한 수천통의 편지 등을 읽고 쓴 오키프의 전기다. 이 책에 따르면 오키프는 엄청난 고통, 전문가로서의 실패와 정서적 좌절과 행운,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는 지혜를 갖고 있는 여성이었다.

#2. 1908년 미국 뉴욕 예술계 명사였던 스티글리츠의 291화랑은 마티스, 브랑쿠시, 세잔, 피카소 등을 미국에 처음 소개한 진보적인 화랑이었다. 1915년 시골뜨기 화가 지망생 오키프가 찾아와 스티글리츠에게 수채화 추상화를 보여줬다. 스티글리츠는 “드디어 회화사에 진정한 여성 화가가 나타났다”고 격찬했다.

오키프는 화가가 되기 위해 아버지뻘 나이의 유부남이었으나 자신을 알아준 스티글리츠와 결혼했다. 오키프는 스티글리츠와 2년동안 200점이 넘는 사진을 찍었고, 이 사진은 1921년 전시를 통해 오키프를 단숨에 유명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재능은 오히려 감수성이 강한 여신이면서 연약한 성적 대상으로 연출된 스티글리츠의 이미지에 가려져 버렸다.



#3. 이 책의 원제는 ‘풀 블룸(Full Bloom·만개·滿開):조지아 오키프의 예술과 생애’다. 오키프가 본격적으로 포착한 것은 만개한 꽃이다. 그는 꽃의 여성적 이미지에서 강렬한 전복적 의미를 추적했다. 그의 활짝 핀 꽃은 프로이트적 성적 의미를 넘어 남성의 시기와 두려움을 자극했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예술은 뉴욕의 스티글리츠를 떠나 뉴멕시코의 사막에서 홀로 칩거, 천착한 해골이다.

오키프는 골반뼈 그림에 대해 “뼈의 구멍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였을 때 나는 골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들어올려 하늘을 바라볼 때 구멍 안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 그것은 모든 인간의 파괴가 끝난 후에도 언제나 거기에 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김승현기자)

08. 12.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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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2-06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판 프리다 칼로군요.스티글리츠는 앵글로 색슨 이름은 아닌 것 같고...조상이 누구일까요?

로쟈 2008-12-06 19:22   좋아요 0 | URL
글쎄요, 저도 서양 이름엔 별로 감이 없어서... 독일이나 그 주변 같기도 하고요...

개츠비 2008-12-07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지아 오키프, 그리고 스티글리츠> 이책의 표지가 진중권 선생님의 <성의 미학>과
똑같은데요? 전 <성의 미학>인줄 알았는데 딱보고...ㅋㅋ

로쟈 2008-12-07 08:28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 책의 표지로도 쓰였죠...
 

박홍규 교수의 칼럼 두 편을 읽었다. '한국 지성의 죽음'과 '노숙자 인문학강좌'를 소재로 하는데, 둘다 오늘 읽은 것이어서 한데 묶어보았다. 나름대로 말이 되는 듯싶어 제목은 '지성의 죽음과 노숙자 인문학'이라고 붙였다. 그때 '지성'은 '한국 지성', 더 좁히면 '한국 대학의 지성'을 뜻한다. 그 지성의 죽음을 비분강개하는 필자의 어조가 조금은 장황하게 여겨지지만 "전공학과의 입문 수준을 비빔밥처럼 섞은 현재 교양교육의 전면적 부정 위에 자유인을 양성하기 위한 전인적, 학제적 교양교육으로 전면 개혁"해야 할 필요성에는 공감하기에 옮겨놓는다(한국 대학의 반지성적 풍토에 대한 일갈도 후련하다).  

교수신문(08. 12. 01) 한국 지성의 죽음, 어떻게 볼 것인가?

‘한국 지성의 죽음’이란 이 글의 제목은 주말 잠결에 부고처럼 나에게 찾아왔다. 무심코 받았다가 눈을 부비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쓸 수 있는 것은 기껏 ‘나의 죽음’뿐이다. 물론 내가 한국 지성의 대표는커녕 지성 축에 끼인다고도 절대로 생각하지 않지만 ‘한국’ 지성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이 글은 그런 이유로 내가 지성이라는 가정 하에 쓰는 지극히 서글픈 개인적 유서 같은 것에 불과하다. 나 자신을 지성이라고 말하기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음은 지성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와 관련되는데, 지성을 ‘권력과 자본을 위시한 모든 권위와 압력으로부터 독립한 자유로운 아웃사이더 아마추어 자유인-교양인-全人의 심성과 실천’이라고 보면 더욱 그렇다. 지성을 이와 다르게 정의하는 예도 많지만 이 글에서는 그렇게 정의하도록 하겠다. 이는 그 지성의 개념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니다. 도리어 그것은 매우 특별한 개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글은 나의 개인적인 독백이기 때문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지성의 개념에 따를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에게 그런 지성이 있는가. 그런 지성이 있었다가 죽었는가. 아니면 애초부터 없었고 지금까지도 없는가. 적어도 나는 그런 지성이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지만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고자 한다. 가장 원시적인 혈연, 지연, 학연과 폐쇄적인 전공의 장벽으로부터 벗어나기도 너무나 힘든 오늘의 대학과 학계와 사회에 사는 전문가란 뜻의 직업인인 교수 신세지만 말이다. 그래서 흔히들 오늘의 우리 지성에 대한 특별한 위협이 권력과 자본, 대학을 비롯한 학문기관과 저널리즘의 가공할 상업주의라고 하는 비판에 동의하면서도, 사뭇 부끄럽다. 나 자신 그런 상업주의 속에 살고 있고 그런 상업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싸움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신자유주의 이후 상업주의는 더욱 거세어져 전체주의를 방불케 하고 있어도 나는 여전히 그렇다. 그런 상업주의 대학이 싫으면 아예 그곳을 떠나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나는 비겁한 탓인지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상업주의에 반하는 지성을 말하려는 지금 나의 그런 직업적 제약이 치명적 약점인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서글프고 부끄럽지만 조금이라도 노력할 수밖에 없다.

사실 대학을 비롯한 소위 지성의 전당이라고 하는 곳들은 처음부터 상업주의의 지배를 받았고 그 자체가 상업주의에 의해 운영돼 왔다. 학생 머리수를 돈으로 센다는 사립대학은 물론이고 국공립대학도 지성의 산실이 아니라 취업학원이 된 지 오래다. 이러한 상업주의는 국가 주도의 관료주의 교육정책과 야합해 국가적 정통성마저 부여받는 천박한 관제전문가를 양산하고 있다. 그런 대학에 권력과 자본 등의 모든 압력으로부터 독립한 자유로운 아웃사이더 아마추어 지성은 존재하기 어렵다. 우리의 대학현실은 너무나도 反지성적이다. 독재적인 족벌 이사회나 시간강사의 노예적 처지나 교육의 계급화를 초래하는 과도한 등록금 문제를 포함한 대학경영의 수많은 원시적 문제점들이 최소한의 합리적인 상업주의라는 측면에서도 해결되지 못해 지성의 최저생존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업주의의 제도적 측면 이상으로 중요한 문제인 것은 정신적 상업주의인 전문주의다. 이는 지성의 참된 敵이 우리나라에서 지성이라고 흔히 말하는 전문가의 절대교리인 전문주의 자체이므로 더욱 강조될 필요가 있다. 우리 지성의 척도라고 하는 현 교육제도 하에서는 교육 수준이 높으면 높을수록 좁은 전공 지식 영역에 갇혀 전공 분야라는 직접적 관심사 밖에 있는 것을 전혀 보지 못하게 되며, 전인적인 교양을 철저히 희생시켜 특정한 권위나 규범적인 생각에만 영합하도록 만든다. 전인적 교양 없이 오로지 권력에 봉사하도록 교육된 전문가는, 철저히 비판적이고 왕성한 독립정신으로 분석과 판단을 내려야 하는 지성이 아니라 도리어 그 적이므로 그런 전문주의를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전문가가 또 다른 유사 전문가를 양성하는 현 대학제도는 지성의 전당이나 산실이 아니라 지성의 적이자 지성의 무덤이다.

이러한 상업적 전문주의는 수많은 반지성적 행태들, 즉 이기적 출세만을 위한 이익과 권력에 대한 계급적 집착, 연고주의에 뿌리박은 집단적 이기주의, 사회적 책임의 포기와 철저한 무관심, 정치적 위험을 의식한 고의의 침묵과 민중 무시, 개인보안과 비판 부재, 애국주의적인 호언장담 횡행, 철저한 자기 규제와 현실도피,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한 사상의 불모, 사대적이고 추상적인 유행 외국 학문에 대한 피상적 의존, 개성의 부재와 획일화, 회고적이고 스스로 연극화하는 변절 등등 지성의 죽음을 초래하는 현상들을 끝없이 낳고 있다. 무비판, 무책임, 무현실, 무사상, 무개성, 무지조, 무품위 등등의 각종 無의 행렬이나, 반사회, 반민중, 반민족, 반인류, 반인간, 반생태, 반인권, 반현실 등등의 각종 反의 행렬이 지금 우리 지성의 죽은 모습이다.

무엇보다도 지성이란 본질적으로 반권력적이고 비판적인 것이다. 지성은 근본적으로 결코 안이한 공식 견해나 기성의 상투적 표현, 권력이나 전통의 무조건적 추인을 거부하는 비판정신이다. 이는 언제나 정부 정책을 비판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권력과 권위에 대해 끝없이 경계하고 거부하는 태도 자체를 뜻한다. 특히 지성은 그 일상생활의 측면에서도 그 어떤 권력이나 권위와의 유착을 거부하고 그것을 위한 어떤 연고주의와도 단절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이른바 지성이란 오로지 지연, 혈연, 학연 등을 통해 지성계의 보스나 권위자의 승인을 얻으려하고, 철저히 폐쇄된 전공의 장벽에 숨어서 자기 보안을 일삼으며, 균형과 객관성과 온건성이 지성의 척도라고 보는 허위의 보수적 평판 척도를 유일한 가치인양 수호하고 있다.

이러한 반비판적인 풍토에서는 어떤 창조적 지성도 나올 수 없다. 그들의 희망은 자기 전공분야에서 국내외 저명학술지에 전문가들만이 보는 논문을 많이 실어 명성을 쌓고 돈까지 벌며, 대학의 총장을 위시한 각종 보직을 갖거나, 회사 임원이나 정부 각료의 일원이 돼 주류 지배계급에 속하는 것뿐이다. 그런 명성과 직위가 지성의 척도이자대명사로 통하는 우리 지성계라는 천박한 반지성의 공간에서 참된 지성은 소외돼 있다. 물론 그 소외는 그렇게 출세하기를 꿈꾸다가 실패한 결과라고 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벼락출세한 자들이 한국 최고의 지성이니 하고 뽐내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함도 패자의 콤플렉스 탓일지 모른다.

명색이 지성이라는 자들이 부끄러움조차 아예 모르니 최소한의 품위가 있을 리도 없다. 남녀노소 모두 당연한 먹이인 양 서서 집어먹는 시식코너처럼 주위의 사소한 이익까지도 허겁지겁 집어삼키고 권력을 쫓아 철새처럼 방랑한다. 나라를 망쳤다고 폐기처분된 옛 지성 중에는 그래도 그렇게 품위 없이 살지는 않았고 자결한 선비도 있었다 하나, 선비가 사라지고 대신 등장한 전문가는 품위를 아예 상실한 상업적 욕망의 덩어리일 뿐이다. 물론 옛 선비 대부분도 권력과 부를 향한 과거시험의 노예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외국 책들을 신주 삼아 외제 지식을 과시하는 점도 고금의 전문가가 너무 닮았다. 우리의 전문가는 그런 광신자이기는 해도 자신의 사상은 없는 점에서 죽기커녕 아직 태어난 적도 없다. 丹齋 말처럼 유사 이래 온갖 동서양 사상의 신을 모셔왔지만 자기 사상은 없다.

이런 무사상을 부끄러워하기커녕 자신의 전공 외국 지식 신들이 절대적이라고 떠벌리고, 그런 미명으로 실제의 목표인 권력과 부를 쫓는 꼴도 유사 이래 변함이 없다. 그 모든 종교 신이나 지식 신이나 우리의 현실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는 점도 같다. 이런 식민지적 절대주의 광신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학문이 패션처럼 외국 유행의 사대주의에 젖어 추상화되고 피상화되며 노예화되는 한 그런 광신은 끝나지 않으리라. 이러한 반지성의 풍토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둘러싼 권력과 자본을 위시한 모든 귄위와 압력에 대한 여러 가지 심층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전인적 교양의 지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점만 강조하기로 하자.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대학을 지성의 공동체로 만들어보고자 지난 30년간 몸담은 법학부를 떠나 교양학부로 옮겼다. 내가 경험한 법학부란 반지성적인 전문주의 교육체제의 전형이었는데, 그것이 다시 더욱 계급화된 전문주의 교육체제인 로스쿨로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밥학’이라고도 하는 출세 지향의 법학, 어용학문이니 암기수험기술이니 하는 법학을 30년이나 하면서 나는 전인적인 교양의 회생이 대학은 물론 지성의 회생에 결정적인 요소임을 절감했다. 물론 그것은 전공학과의 입문 수준을 비빔밥처럼 섞은 현재 교양교육의 전면적 부정 위에 자유인을 양성하기 위한 전인적, 학제적 교양교육으로 전면 개혁하는 것을 뜻한다. 전문주의 장벽은 너무나도 높아 어떤 교양교육 개혁의 시도도 결코 쉽지 않지만 대학을 권력과 자본을 위시한 모든 귄위와 압력으로부터 독립한 자유로운 아웃사이더 아마추어 자유인-교양인-전인의 공동체로 만들지 않는 한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 상업주의와 출세주의와 기회주의 따위에 젖어 거미처럼 사방에 발을 뻗치면서도 정작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현실을 이해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문가만이 있기에 아예 지성을 거부하고 지성에서 해방되자고 역설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권력과 이익에 의해서가 아니라 현실의 파악과 개혁에 대한 열정으로 분열된 전문 전공의 장벽을 가로질러 보편적 사상을 추구하는 유기적 교양 전인의 심성이자 실천인 지성은 결코 죽어서는 안 된다. 극도로 편향된 권력에 아첨해 타락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권력에 대해 진실을 말하고 전공의 장벽을 뛰어넘어 학제적인 비전문의 전인적인 교양의 지성은 살아야 한다. 나는 지성이 인류와 민족의 미래를 위한 유일한 대안이라는 식의 헛소리를 할 생각은 추호도없지만, 그것을 잠결에 날려버릴 정도로 무가치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아 이 글을 썼다. 혹시 자기 지성의 죽음에 대해 나처럼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동병상련의 처지에서 하소연하는 것에 불과하겠지만 말이다.

경향신문(08. 12. 04) [박홍규 칼럼]노숙자 인문학강좌

어제, 올해 마지막 노숙자 인문학강의를 했다. 괴상망측한 우익 역사교육 소동으로 시끄러운 탓만은 아니었지만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주제로 관련 영화와 예술작품들을 함께 보았다. 북한 배경의 007영화에 동남아의 집과 물소가 등장하는 것을 보고 아이들처럼 함께 웃은 것을 시작으로 서양의 동양침략을 정당화한 수많은 영화나 그림들을 노숙인들은 정확하게 보고 비판했다. 그 대부분은 그들이 생전 처음 보는 것임에도 그러했다. 아는 만큼 본다고? 아니다. 보는 만큼 안다. 아니다. 아는 게 중요하지 않다. 이해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여러 인간, 계급, 민족, 나라들이 서로 이해함이 중요하다.

올봄, 그 강의를 의뢰받자마자 즉시 수락한 것은 1970년대 노동야학 이후 그런 수업이 가장 즐거웠기 때문이다. 물론 돈 없이 말이다. 최근 수강료가 1000만원이 넘는 CEO 교양강좌 같은 것이 유행하고, 소위 우익만이 아니라 좌익이란 사람들까지도 엄청난 강사료를 받으며 그곳에서 CEO들을 가르친다고 화제지만, 교양이란 게 유한 지배계급의 특권적 사치로 타락한 게 어디 어제오늘 일인가. 게다가 교양 있는 좌우익이 함께 노닌 것도 어제오늘인가. 그래서 노숙인들은 ‘무식하기’ 이전에 ‘흉측한’ 사람들이고, 그런 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에게는 철학할 기본적 능력이 없으니 그런 강의는 무익하며 기껏 허황된 자기만족을 부추길 뿐이라고 냉소한 진보적 철학자도 있었다. 특히 최소한의 논리적 능력이 있어야 인문적 사유가 가능하고 그 능력이란 여유에서 나오는 것인데, 삶의 여유가 전혀 없는 그들에게 논리나 사유는 아예 있을 수 없고, 그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하는 것은 비인간적인 고문이라고도 했다.

서로 이해하는 마음이 교양
나는 물론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았지만 교재 선택은 고민이었다. 지난해 서울에서 비슷한 강의를 주최한 사람들에게 의뢰받은 강의가 몽테뉴여서 비슷한 고전을 검토하기도 했지만 마땅치 않았다. 그런 강좌의 원조라는 미국인은 교도소에서 플라톤을 강의한다지만 나에게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철학자 왕의 독재를 주장한 자에 불과했다. 그 미국인도 CEO 교양강좌를 하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우리 노숙인들에게 플라톤은 물론 어떤 서양인에 대해서도 강의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겨우 한 시간 강의를 위해 한 달 이상을 고민하기는 생전 처음이었지만 그래도 답이 나오지 않은 것도 처음이었다. 최소한 그들에게 도덕 설교만큼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반성, 회개, 근면, 공부, 직장, 가족, 부모 따위는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첫 시간에는 아무 생각 없이 그들을 만나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인간이면 누구나 자신과 세상을 알고 아름다움을 느끼니, 문학자, 철학자, 역사가, 예술가라는 사람들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문학, 철학, 역사, 예술을 할 수 있고, 우리 스스로 그것을 해야 그것이 비로소 가치 있는 우리의 인문학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마지막 30분 질의응답 시간은 30년 대학수업 전부보다 훨씬 열띤 분위기였다. 이렇게 각자 생각을 말하고 그 사이에 남의 생각을 자기 생각과 비교하면서 혹시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이 있으면 고쳐 하나의 결론에 이르거나, 또는 그렇지 못해도 남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인문학임에 모두 동의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인문학자다-우리 모두 철학자고, 문학자고, 역사학자고, 예술가로서, 책을 통해 말하는 것은 참된 인문학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하고 느끼며 토론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인문학이라는 끝말에 나 스스로 흥분하면서 강의를 마쳤다.

복도를 걸어 나오면서, 마침 시험을 마친 학생들이, 문제를 잘못 찍었다는 둥, 교수가 외우라고 줄쳐 준 것을 잊었다는 둥, 스펠링을 잘못 썼다는 둥 쌍욕을 하는 모습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조금 전 만났던 노숙인들과는 전혀 다른 우리의 대학생들. 그 암기시험과 욕설.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오로지 암기만으로 시험을 치르고서는 곧 망각하게 하는 우리의 교육. 그리고 그 기계적인 허무함에서 나오게 마련인 욕지거리. 이런 것을 위해 최소한의 여유와 논리능력이 필요하다고? 아이들을 저렇게 기계화시키고 그 결과로 오로지 욕설밖에 못하게 만들어 놓고는 그것을 대학이니 교육이니 교양이니 학문이라고?

암기를 학문이라 가르치는 대학
그런 교육을 시키는 자들은 그런 기계적인 짓을 그렇게 멋지게 교육이니 교양이라 치장하고 부와 명예와 권력까지 쥐고 살면서 자신처럼 돼라고 치열한 경쟁을 요구한다. 게다가 이제는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며 남을 이해하는 인문적 사고와 전혀 무관하게 철저히 남을 지배하는 보수골통 CEO로 살아온 자들이 언론과 방송을 위시한 문화, 그리고 역사교육까지 쿠데타처럼 점령하고 있다. 그들이 정치나 경제를 지배하는 이상으로 문화와 교육을 지배하는 것은 더욱 심각한 일이다. 문화와 교육, 인문과 교양, 학문과 예술은 그런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없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박홍규 영남대교수·법학)

08. 12. 04.

P.S. "우리 모두 인문학자다-우리 모두 철학자고, 문학자고, 역사학자고, 예술가로서, 책을 통해 말하는 것은 참된 인문학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하고 느끼며 토론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인문학이라는 끝말에 나 스스로 흥분하면서 강의를 마쳤다."는 대목에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책은 이번에 출간된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궁리, 2008)이다. '지적 해방에 대한 다섯 가지 교훈'이 그 부제다. 흠, 이 '지적 해방'의 문제에 대해서 뭔가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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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12-05 10:52   좋아요 0 | URL
<노동법>보다 더 두꺼운 THE LEFT가 눈에 띄네요. 나원 책을 저렇게 두껍게 만들어서야

로쟈 2008-12-06 09:52   좋아요 0 | URL
독서용이라기보다는 장서용에 가깝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12-05 17:24   좋아요 0 | URL
저는 지금도 초중고교 때 참고서 교과서 문제집만 읽다가 성인이 된 게 억울해 죽을 지경입니다.그런데 요즘은 아예 고등학교 1학년부터 저녁늦게 잡아두니...그래도 제가 학교 다닐 땐 2학년까진 6시 안에 끝났는데요.

로쟈 2008-12-06 09:55   좋아요 0 | URL
밤 9시까지의 '야자'가 기본이었죠. 요즘은 심야학원에까지 다니니까 돈 주고 몸 망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눈길을 끄는 책들이 지난주에는 여러 권 출간된 터라 '여유'가 별로 없지만, 두어 권 정도는 더 보관함에 넣었다. 그 중 하나가 시어도어 래브의 <르네상스 시대의 삶>(안티쿠스, 2008)이다. 제목 그대로 격정의 시대를 열정적으로 살아간 사람들의 삶에 대한 기록이다. 표지로 보아 화보도 많이 들어가 있는 모양이다.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국제일보(08. 11. 29) 격변과 혼란의 시대를 정면돌파한 르네상스 개척자들

'르네상스는 찬란하다. 이탈리아에서 일어났다. 또한 격변의 시대였다.'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르네상스 시대의 특징들이다. 좀 더 나아가면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를 이상으로 받아들여 이들을 부흥시킴으로써 새 문화를 창출하려는 운동이었으며, 그 범위는 사상 문학 미술 건축 등에 걸쳐 전방위적이었다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삶>은 격변과 혼란의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15명의 정치가 사업가 종교인 예술가 학자 군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대를 읽고 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불확실한 미래를 자각하고 끊임없이 투쟁하면 성공은 자연스레 따라온다는 순리를 보여주고 있다.

르네상스가 태동하던 14세기 말과 15세기 초에 나타난 중세 사회의 균열은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과 교회의 분열 등 정치적·경제적 혼란으로 시작됐다. 이 격변기에 두 가지 운동이 출현한다. 일종의 교육 프로그램이자 도덕적 개혁 운동인 인문주의(휴머니즘) 운동과 종교 개혁. 전자는 피렌체에서 발원해 이탈리아를 강타하고 점차적으로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으며, 후자는 극한 탄압 속에서도 종교 개혁이라는 큰 열매를 맺게 되었다. 경제적으로는 자본가가 새로운 사회 세력으로 등장했고, 예술가의 지위가 격상됐으며 새로운 무기들로 인해 전쟁의 양상이 달라졌다. 인쇄술은 누구에게나 학문의 기회와 함께 신분 상승의 기회를 열어 주었다. 이렇듯 중세의 위기를 가져온 혼란과 변화는 또 다른 시대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돼 주었다.

책은 크게 두 가지 특징으로 요약된다. 르네상스 시대를 찬란한 문화부흥기로 만든 정치가 사업가 종교인 예술가 등 사회 각 계층의 삶을 그들이 남긴 기록이나 전기물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면서 읽기 쉽도록 엮었다. 제1장에서는 르네상스 시대를 최초로 열었던 용기있는 두 명의 이단자,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와 교황청과 격한 갈등의 한복판에 섰던 얀 후스를 내세웠다. 고전의 정신과 만나려 했고 정신적으로 과거와 결합하고자 했던 페트라르카. 그의 노력이 세상을 통째로 변화시켜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아무도 희망의 메시지를 언급할 수 없었던 14세기 후반 고전을 공부하고 그 문체를 모방하며 그들이 사용한 언어를 사용하면서 세계를 제패한 로마인들의 성취를 함께 나눌 수 있게 됐다.

교황과 황제의 권력에 대해 굽힐 줄 모르는 신념으로 결국 화형에 처해 졌지만 종교개혁의 씨앗을 틔운 얀 후스를 비롯해 베네치아의 황금기를 만끽했던 티치아노, 종교 분쟁의 와중에서도 통치의 틀을 마련하기 위해 고뇌했던 카트린, 개인의 행동의 자유를 가장 강렬하게 부르짖었던 영원한 저항자 존 밀턴, 최초의 페미니즘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등이 르네상스 시대의 삶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쉼 없이 울타리를 넘었고 최후의 한계까지 열정적으로 맞섰다.

이와함께 르네상스 300년이 유럽 각국, 그리고 시대를 따라 관통하고 있다. 책에 등장하는 네 명의 이탈리아인, 두 명의 보헤미안인, 세 명의 영국인 등을 통해 근대 탄생에 이바지한 처절한 투쟁을 간접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주변에서 맴도는 변화를 자각했던 르네상스인들. 새로운 세계를 펼쳐 보였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들 자신은 동시대와 끊임없는 투쟁을 해야 했다.(임은정 기자)

08. 11. 30.

P.S. 생각난 김에 자크 르 고프의 <서양 중세 문명>(문학과지성사, 2008) 개정판 출간 소식도 적어두어야겠다. 나는 이전 판을 갖고 있는데, '교과서적'이라는 게 흠이지만 가장 훌륭한 중세사 교과서라는 평이다(개정판은 분량도 많이 늘어났다). "저자는 중세인의 삶의 실제가 무엇인지, 그러한 삶을 지탱하면서 제약하는 장기 지속적 구조란 무엇인가를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 현실과 상상, 지상과 천상을 넓게 관련지으면서 중세인의 삶의 실제와 구조를 총체적으로 복원해낸다." <르네상스 시대의 삶>과 나란히 꽂아둠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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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시에르의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길, 2008)와 아감벤의 <남겨진 시간>(코나투스, 2008)에 대한 서평기사를 옮겨놓는다. 내일자 대학신문에 게재되는 것이며 어제 오전에 시간에 쫓겨가며 작성한 것이다. 지면기사로서 적은 분량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충분한 분량도 아니어서 몇 가지 스케치 정도에 그치고 있다. 그것이 어떤 '윤곽'이라도 조금 드러내준다면 다행이고.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궁리, 2008)의 출간을 막판까지 기다렸지만 책은 내주에나 나오는 듯싶다...

대학신문(08. 12. 01) 새로운 사유에 동참하라 - 랑시에르와 아감벤의 신간들

최근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와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책이 연이어 출간되고 있다. 두 철학자는 작년 하반기 『대학신문』의 연재 ‘21세기의 사유들’에서도 다뤄진 바 있다. 랑시에르는 ‘알랭 바디우, 에티엔 발리바르 등과 더불어 21세기 벽두 프랑스 철학계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알튀세르의 후예 중 한 사람’이고 아감벤은 ‘정치학, 미학, 언어학, 문헌학 등 여러 주제에 대해 정치한 분석을 내놓고 있는, 2000년대 가장 많이 논의되는 사상가 중 한 명’이다. 두 사람은 21세기에 접어들어 세계적인 철학자로 주목받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덧붙여 한국어로는 올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그리고 집중적으로 소개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나란히 묶일 수 있다.

이미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 『감성의 분할』,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등이 우리말로 번역된 랑시에르는 『무지한 스승』을 비롯해 여러 권의 책이 더 소개될 예정이고(그는 이번 주에 서울대를 비롯한 국내 대학에서 방한 강연을 갖는다), 주저인 『호모 사케르』(1995)로 처음 이름을 알린 아감벤은 최근 출간된 『남겨진 시간』에 이어서 ‘호모 사케르’ 연작과 『목적 없는 수단』, 『언어와 죽음』 등의 한국어본을 더 얻을 예정이다. 멍석이 깔린 만큼 이제 필요한 것은 두 사람의 사유를 제대로 읽고 사용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겠다. 두 철학자의 신간을 중심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을 몇 가지 짚어본다.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정치에 대한 새로운 테제
알튀세르 사단의 일원으로 경력을 시작했지만 『알튀세르의 교훈』(1974)을 기점으로 스승과 작별한 랑시에르는 1970년대에 19세기 노동자의 문서고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면서 자신의 독자적인 사유의 영토를 개척한다. 그는 사회적 분배가 어떻게 이뤄지고 ‘몫이 없는 자들의 몫’은 어떻게 배제되는가 하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며 ‘정치적인 것’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도출해낸다.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1990/1998)는 그의 사유를 집약해 정리해준다.

랑시에르가 말하는 ‘정치적인 것’은 통치와 평등이라는 두 이질적인 과정의 충돌이다. 통치의 과정이란 사람들을 공동체로 조직하고 그 자리와 기능을 위계적으로 분배하는 것으로서 ‘치안(police)’을 가리킨다. 평등의 과정이란 ‘몫이 없는 자들’의 평등에 대한 요구와 그 실천을 말하며 ‘해방’이라고 이름 붙여진다. 해방을 위한 소송을 랑시에르는 ‘정치(politics)’라고 부른다. 정치적인 것이란 정치와 치안이 만나는 현장이다.

치안과 대립하는 것으로서의 정치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아르케(arche, 근본)’를 갖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아르케’의 논리, 즉 정치는 어떤 일을 시작하고 지배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자, 곧 앞장서는 자를 요구한다는 논리와 단절한다. 때문에 아나키적이며, 실상은 ‘데모스의 통치(democracy)’로서 민주주의라는 단어 자체가 지칭하는 바이기도 하다. ‘정치에 대한 열 가지 테제’에서 랑시에르가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민주주의를 특징짓는 것은 제비뽑기, 즉 통치할 자격의 부재다”. 즉, “민주주의는 시작 없는 시작이며 지배할 자격이 없는 자의 지배다”.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와 비하는 플라톤이 그랬듯이 ‘데모스의 통치’를 ‘자격을 갖지 않은 자들의 통치’로 규정하는 데서 비롯한다. 이때 기원적 의미로서의 ‘데모스(demos)’는 공동체의 이름이기 이전에 공동체의 한 부분인 빈민들의 이름이다. 하지만 이 ‘빈민들’이 경제적으로 낙후된 주민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아르케의 힘을 행사할 자격이 없는 자들’, ‘셈해질 자격이 없는 자들’, 즉 ‘몫이 없는 자들’을 가리킨다(비정규직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를 떠올려 볼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는 그렇게 ‘내쫓긴 자들’의 이름이며 정치란 그 프롤레타리아의 자기 몫에 대한 요구이고 주장이다. 정치는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만드는 것이며, 몫을 갖지 않은 자들을 다시 셈하는 것이다(그리하여 감각적인 것을 다시 나누고 분배하는 것이다). 때문에 정치의 본질은 불일치이며 불화다. 치안과 정치가 충돌하는 경계로서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는 바로 그러한 불일치와 불화가 그려내는 자국이고 흔적이다.



『남겨진 시간』, 바울의 편지에 대한 새로운 주석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와 비교될 만한 아감벤의 책은 곧 소개될 『목적 없는 수단』이다. ‘정치에 관한 노트’가 그 부제이기 때문이다. 『남겨진 시간』과 조응할 만한 랑시에르의 책은 지적 해방에 관한 다섯 차례의 강의를 묶은 『무지한 스승』일 듯싶다. 『남겨진 시간』 또한 사도 바울이 로마인에게 보낸 편지에 관한 여섯 차례의 강의록이기 때문이다.  



『호모 사케르』에서 주권의 역설적 논리를 분석하고 수용소야말로 근대성의 노모스(nomos, 규범)이면서 근대 정치의 패러다임이라고 주장했던 아감벤은 『남겨진 시간』에서 바울의 편지에 대한 치밀하고도 유려한 문헌학적 주석을 통해 그의 메시아주의가 어떤 것인지를 면밀히 조명한다. 그가 분석대상으로 삼은 것은 고대 그리스어 성경의 로마서 1장 1절을 구성하는 10개의 단어다. 아감벤은 “그리스도 예수의 종, 나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특별한 사명을 띤 사람입니다”란 뜻으로 풀이되는 이 구절의 원문 “PAULOS DOULOS CHRISTOU IESOU KLETOS APOSTOLOS APHORISMENOS EIS EUAGGELION THEOU”를 구성하는 각 단어에 주석을 붙인다. 로마서야말로 바울의 사상과 복음에 대한 증언적 요약이며, “글의 첫머리 한개 한개의 언어가 편지의 텍스트 전체를 총괄하는 형식으로 스스로 축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머리말에 대한 이해는 텍스트 전체에 대한 이해를 의미한다. 

아감벤은 ‘CHRISTOU’가 뜻하는 ‘그리스도’가 단지 ‘기름 부어진 자’를 뜻하는 헤브라이어 ‘마시아(=메시아)’를 그대로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이기에 ‘예수 그리스도’란 ‘구세주 예수’ 또는 ‘예수라는 구세주’를 가리킬 뿐이라는 점에 주의하도록 한다. 그리고 ‘소명 받음’을 뜻하는 ‘KLETOS’의 파생어 ‘클레시스(klesis)’는 루터에 의해 독일어 ‘베루프(Beruf)’로 번역되면서 ‘직업’이라는 근대적 의미까지 획득하게 됐다고 언급한다. ‘클레시스’는 바울이 쓴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고린도전서)’의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 하십시오”라는 문장에서 나온다.

바울은 이어지는 구절에서 ‘마치 -가 없는 것처럼’, ‘마치 -이 아닌 것처럼’ 살 것을 형제들에게 요구한다. 일체의 소명에 대한 기각이 아감벤이 읽어내는 바울의 메시아적 소명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리스어 ‘클레시스’가 라틴어 ‘클라시스(classis)’로 잘못 유추됐고, 다시 마르크스는 ‘신분’을 가리키는 ‘슈탄트(Stand)’와 대립되는 단어로 ‘클라스(Klasse)’를 처음 도입했다는 점. 그것이 ‘계급 없는 사회’라는 마르크스의 개념이 메시아적 시간 개념의 세속화라는 벤야민의 지적을 가능하게 한다

새로운 사유는 또다른 새로운 사유에 대한, 새로운 동참에 대한 요청이다. 비록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영어에서의 번역이라는 장벽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지만(너무 자주 등장하는 복수접미사와 잘못된 음역이 가독성을 떨어뜨린다), 랑시에르의 ‘테제’와 아감벤의 ‘강의’는 거부하기 어려운 유혹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08. 11. 30.

P.S. 서두에서 인용한 대학신문의 연재는 각각 '자크 랑시에르와 평등의 정치철학'(http://blog.aladin.co.kr/mramor/1722976)과 '아감벤과 호모 사케르의 시대'(http://blog.aladin.co.kr/mramor/1577009)라고 옮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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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알라딘 메인화면에 떠 있던 책은 얀 아르튀스-베르트랑의 사진집 <하늘에서 본 한국>(새물결, 2008)이다. 저자는 <하늘에서 본 지구>(새물결, 2004)로 잘 알려진 세계적인 사진작가. 구체적으로는 항공 사진작가이다(그의 사진들은 http://www.yannarthusbertrand2.org/ 에서 볼 수 있다). 그가 특별히 한국의 산하만을 찍은 사진집이니 반갑다(책의 출간과정은 평탄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고가 한정판이어서 일반 독자들은 서점 혹은 도서관에서나 한번 들여보고 말 듯싶지만. 그래도 미리보기의 사진들 정도는 눈요기할 수 있겠다. 겸사겸사 이 대담한 프로젝트를 진행시킨 기획자의 소감을 스크랩해놓는다.

 

세계일보(08. 11. 29) [편집장과 한권의 책] 우리가 몰랐던 우리땅의 모습들

‘하늘에서 본 한국’. 이 책을 기획하고 편집한 나는 파리에서 얀을 만나고 밤늦게 호텔로 돌아와 이 책의 지난 역사를 반추하며 이제는 추억으로 남게 될 지난 5년의 역정을 더듬으며 책의 출생 신고서를 이렇게 작성하고 있다. 책의 태어남은 마치 남녀의 사랑으로 태어나는 자식의 출생과도 흡사하다. 지고지순한 사랑의 결실인가 하면 눈물의 씨앗이기도 하고 때로 불꽃 같은 사랑의 결실로 세상에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 책 ‘하늘에서 본 한국’은, 불꽃 같은 사랑에서 태어났으나 우리 조국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이 상상도 못할 어려움 속에 숱한 눈물을 뿌리며 태어난 지독한 순애보이기도 하다.

이 책을 같이 편집한 얀의 동료 프랑수아즈는 이 책이 자신의 ‘영적인 기도서’라고 말하며 사진 인쇄의 잘못된 부분을 하나하나 ‘칼 같이’ 짚어낸다. 이 책은 침묵하는 자연과 말 못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기도라고 덧붙이며 그녀가 사진을 조심조심 만지는 모습에 나는 다만 놀라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보고 얀 사무실의 여러 스태프들이 보인 놀라운 시선들도 그녀의 해석이 과잉만은 아니라는 것을 지긋이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내 생각은 다시 5년 전, 아니 그보다 훨씬 이전인 2000년의 파리로 되돌아갔다. 파리에서 처음으로 ‘하늘에서 본 한국’의 저자인 얀의 책 ‘하늘에서 본 지구’를 보았을 때로 말이다. 그때 자연스레 든 감정은 과연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인가 하는 놀라움이라기보다는 도대체 누가 이렇게 우리 지구를 바라볼 수 있는가 하는 경이로움이었다. 그의 시선 아래 우리 지구가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거기서 어떤 인위적인 시선이나 예술가연하는 테크닉 따위는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주관=객관, 질료=형상, 리얼리즘=표현주의 같은 서양의 전통적 예술적 논의를 일거에 무의로 돌려놓고도 남을 예술적 혁명으로 비추고도 남음이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혁명’의 한가운데 사랑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하늘에서 본 한국’을 기획하게 된 것은 이러한 시선의 혁명과 사랑의 혁명 속에서 얀이라는 글로벌한 시선으로 우리 ‘조국’의 초상을 새롭게 작성해보고 싶었던 만용에서였을 것이다. 그것은 하늘의 높이에서 한발 떨어져 보면서 우리를 객관적이고 ‘성찰적으로’ 조망해보고자 하는 이카루스의 꿈이기도 했다. 동시에 그것은 ‘위기’와 ‘실용’만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우리 현실에서 또 다른 꿈과 희망을 다 같이 품어보자고 하는 초대장이기도 했다.(조형준_새물결 주간) 

08. 11. 30.

P.S. 다른 자리에서 나는 '이민갈 때 꼭 들고가야 할 책'이라고 이 책을 소개하기도 했는데, 몸은 못 가더라도 마음만은 '국외자'인 이들에게도 위안이 될 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미리보기 중의 몇 장을 옮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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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1-30 15:40   좋아요 0 | URL
두 번째 사진은 고릴라 얼굴 같네요.정말 신기한 모습이 많군요.

로쟈 2008-11-30 19:48   좋아요 0 | URL
저렇게 밭 한 가운데 조상 묘를 모시는 경우가 외국엔 거의 없다네요...

L.SHIN 2008-12-01 06:04   좋아요 0 | URL
아, 이 책, 저도 메인에서 한 번 봤을 때, 관심이 조금 생겼던 것인데.
사진들이 멋지군요.^^

로쟈 2008-12-01 08:32   좋아요 0 | URL
보급판이 나오면 좋을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