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관련서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원래 그랬던 것인지도) 미국의 중국학자 토머스 메츠거의 <곤경의 탈피>(민음사, 2014)도 그 가운데 하나다. '주희.왕양명부터 탕쥔이.펑유란까지 신유학과 중국의 정치 문화'가 부제이고 1977년에 나온 책. 상당히 오래 전 책인 셈인데, 현재적 의의까지는 모르겠지만 학문사적 의의는 있는 책으로 보인다.

 

존 페어뱅크의 1세대 제자로 중국 사상과 역사를 깊이 있게 연구했으며 중국어에도 능통했던 메츠거는 이전까지 서구 동양학계를 지배하고 있던 막스 베버의 부정적 견해에 정면으로 맞선다. 주희.왕양명 등의 송대 이후 신유학 저작들을 파고들어, 중국의 역사를 관통하며 중국 근대화를 이끈 추동력이 중국 문화에 내재된 신유학적 도덕의식에 있었음을 밝힌다.

존 페어뱅크는 미국 하버드대학의 교수로 중국사학계의 태두였던 인물이다. 많은 제자들을 길러낸 걸로도 유명한데 토머스 메츠거 역시 그의 문하라는 얘기다. '신유학적 도덕의식'과 '중국 근대화'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의문이 없지 않지만 여하튼 어떤 근거에서 그런 주장을 펼치는지는 궁금하다.

 

 

한편 역자인 나성 교수는 서양 중국학계의 고전적인 저작들을 우리말로 옮겼는데, 벤저민 슈워츠의 <중국 고대사상의 세계>(살림, 2004)와 앵거스 찰스 그레이엄의 <도의 논쟁자들>(새물결, 2003)이 대표적이다. '중국 고대 철학논쟁'을 다룬 <도의 논쟁자들>은 절판된 상태. 영국 런던 대학 교수였던 그레이엄의 책으론 그의 박사학위 논문이기도 한 <정명도와 정이천의 철학>(심산, 2011)이 번역돼 있다. 이렇게 소개된다.

<정명도와 정이천의 철학>(원제: Two Chinese Philosophers)은 20세기에 서양의 중국학 연구를 주도하고 중국철학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영국의 런던 대학 교수 앵거스 찰스 그레이엄(1919~1991)의 박사 학위 논문을 기반으로 한 첫 번째 저작이다. 그레이엄은 여타 서양의 동양학 연구자와 달리 중국 사상을 ‘철학’으로 다룬 거의 유일한 학자이다. 그의 연구는 서양과 ‘다른’ 중국적 사유에서 철학적 전망을 발견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정명도와 정이천의 철학>은 이러한 철학적 전망을 반영하고 있으며 비록 분량은 적지만 넓은 시야와 풍부한 통찰력을 내포하고 있어 송대 신유학 사상에 대한 가장 정교하고도 명쾌한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14. 0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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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으로 웬덴 월러치와 콜린 알렌의 <왜 로봇의 도덕인가>(메디치미디어, 2014)를 고른다. 아침에 읽은 뉴스 기사 때문인데,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최초의 '생각하는 인공지능'이 탄생했다는 소식. 그 의미를 짚어주는 기사의 내용은 이렇다.

 

영국 레딩대가 7일(현지시간) '튜링 테스트 통과의 첫 사례'라고 선언한 '유진'은 미리 내용을 제한하지 않고 '일반적인 대화'를 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전산학과 인공지능의 역사에 큰 이정표가 우뚝 선 셈이다. 이번 '튜링 테스트 첫 통과' 판단 기준은 튜링이 1950년 철학 학술지 '마인드'에 실은 논문에서 예로 제시했던 정도의 수준이었다. 튜링은 당시 '5분간 심문을 해서 컴퓨터를 인간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30%를 넘는다'는 정도의 '검증 수준'을 예로 들었으며, 대화 내용에 대한 별도 제한은 두지 않았다. 다만, 이는 '진짜로 생각하는 능력을 지닌 컴퓨터'를 만들었다는 주장과는 다르다. '유진' 개발자들조차 그렇게 주장하지는 않는다. 문장을 생성할 수 있는 능력, 사람의 입력에 적절히 반응할 수 있는 알고리즘과데이터베이스를 갖춘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기계가 생각한다'는 것과 똑같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유진 개발자들 역시 이 프로그램이 '우크라이나에 사는 13세 소년'을 가정하고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프로그램의 첫 버전이 2001년에 나왔음을 감안하면, 이 정도로 다듬는데만 13년이 걸린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첫 튜링 테스트 통과'는 이정표로서의 의미는 매우 크지만, 이것으로 인공지능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달성된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이 분야에 그간 상당한 발전이 있었으며, 앞으로도 연구할 거리가 엄청나게 많이 남았음을 보여 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국제신문)

아무튼 '생각하는 인공지능'의 시대로 진입하게 됐다는 점은 특기할 만한데, <왜 로봇의 도덕인가>의 문제의식이 현실화된다는 의미도 있겠다. 부제대로 '스스로 판단하는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컴퓨터 윤리의 모든 것'이 SF적 현실이 아닌 실제 현실로 다가오는 것이다. 책의 난이도는 가늠할 수 없지만, 소개는 구미를 당긴다.

로봇 윤리라는 신흥 분야에 관한 최초의 입문서이자 로봇의 도덕에 관한 포괄적인 안내서다. 예일 대학교의 ‘생명윤리를 위한 학제간 센터’의 윤리학자와 인디애나 대학교의 인지과학 교수가 공저한 이 책은, 공상과학 소설의 통속적 화두에서부터 왜 로봇의 도덕에 관한 연구가 지금 필요하며 그것에 관련된 기술적 사안은 무엇인지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러고 보니 로봇 윤리를 다룬 책은 지난 해에도 나왔었다. 라파엘 카푸로 등이 쓴 <로봇윤리>(어문학사, 2013)가 그것이다. 찾아보니 '로봇윤리'가 윤리학에서 최근 부상하고 있는 '핫한' 분야인 듯싶다. 이런 변화를 보면 인생이 짧지만은 않다는 생각도 든다. 로봇과 윤리적인 문제를 토론하게 될 날도 아주 멀지는 않은 듯하니 말이다...

 

14. 06.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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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모드인 상태라 당분간은 PC방에서 원고를 쓰고 포스팅도 가능성이 높은데, 이 페이퍼 역시 PC방에서 쓴다. 저녁도 거른 상태라 간단히. '이주의 발견' 한 권만 적어놓는다. 샘 킨의 <바이올리니스트의 엄지>(해나무, 2014).

 

 

제목은 원제를 그대로 옮긴 것이고, 원제는 분명 스티븐 제이 굴드의 <판다의 엄지>(재번역돼 나오는 걸로 아는데 소식이 없다)를 염두에 두었음직한데, 그래도 제목이 주는 임팩트는 크지 않다(적어도 내게는). 부제가 '사랑과 전쟁과 천재성에 관한 DNA 이야기'인 걸 고려하면 그냥 <사랑과 전쟁과 천재성>이라고 제목을 붙이는 건 어땠을까(<사라진 엄지>도 그럴 듯하다). 'DNA 이야기'라는 걸 빼먹었다고 욕 먹을까? 여하튼 어떤 책인가.

타고난 이야기꾼인 저자 샘 킨이 흥미진진하고 아슬아슬하고 비극적인 DNA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다. 인류가 멸종할 뻔했던 사연,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소문에 시달린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 이야기, 꼬리가 달린 채 태어난 아이의 유전 질환, 존 F. 케네디의 구릿빛 피부가 지닌 비밀 등 흥미롭고 기이한 DNA 이야기가 풍요롭게 다뤄진다.

요는 흥미롭고 기이하면서 풍요로운 DNA 이야기라는 것. 하지만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소개는 우리와는 좀 거리가 있다. <사라진 스푼>(해나무, 2011)의 저자, 정도가 적절한 소개다. 우리에게는 그 한 권만 번역돼 있으니 '타고난 이야기꾼' 여부를 알기는 어렵지 않은가. 나도 '샘 킨'이 누군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다가 <사라진 스푼>의 저자라고 하니까 어림할 수 있었다. '유전학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필독해볼 만하다...

 

14. 06.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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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후일담을 팟캐스트로 들으며 머리도 식힐 겸 '이주의 발견'을 골라놓는다. 모린 머독의 <여성 영웅의 탄생>(교양인, 2014). 생소한 저자인데, 이미 소개된 적이 있다. <영웅의 딸>(청동거울, 1999)이 같은 저자의 책인데, 의외로 아직 절판되지 않았다.

 

 

<여성 영웅의 탄생>은 부제가 '융 심리학으로 읽는 강한 여자의 자기 발견 드라마'다. 내용을 대충 어림하게 해주는데, 원저가 1990년에 나왔으니 나름 오래된 책이다. "융 심리학자이자 심리 상담가인 저자가 인류의 집단 무의식이 발현된 신화·민담·동화와, 상담실을 찾은 여성들의 꿈을 분석해 ‘여성 영웅의 원형’을 찾아내고 여성 영웅이 탄생하는 과정을 규명한 책이다."

 

 

같이 떠오르는 책은 남성 영웅의 자기 발견 과정을 다룬 비교신화학자 조지프(조셉)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민음사, 2004)과 <신화의 힘>(이끌리오, 2002)다.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은 "융파 심리학의 입장을 인용하면서 다양한 영웅전설을 통해 인간의 정신 운동을 규명하는 한 편 현대 문명에 대해 하나의 재생 원리까지 제시하고 있다." 모린 머독의 책은 그 여성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덧붙여, 클라리사 에스테스의 대표작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이루, 2013)도 같이 읽어볼 만한 책. 이미 소개한 적이 있지만, "심리학자인 저자는 여성의 집단무의식 안에 시공간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어머니 늑대’ 원형을 발견하고 이를 전 세계 민담이나 설화, 동화에서 찾고 있다. 또 그 안에 숨어있는 의미와 상징을 새롭게 해석해 어머니 늑대가 여성의 삶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여성의 삶에 파탄은 어떻게 오는지, 또 어떻게 신성한 야성의 불로 이를 회복하는지 탁월한 통찰로 보여주고 있다."

 

 

'여성 영웅'을 주제로 한 책을 소개하다 보니 '여성 지도자'를 다룬 신간도 떠오른다. 독일의 첫 여성 총리 앙겔라 메르켈의 전기가 출간됐기 때문이다. 슈테판 크로넬리우스의 <위기의 시대 메르켈의 시대>(책담, 2014)가 그것이다. 자타공인 보수주의자인 이상돈 중앙대 교수도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에 대해서는 이렇게 높이 평가하고 있다.  

21세기에 가장 돋보이는 지도자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다. 자유를 그리워하던 동독의 여성 과학자가 통일 독일에서 총리가 되어 사회통합을 이루고 위기에 처한 유로 경제권을 구해낸 과정은 어떤 드라마보다 더 감동적이다. 메르켈 덕분에 독일 경제는 더욱 강해졌으며, 독일 외교는 더욱 당당해 졌다. 정치 리더십의 실종으로 혼돈에 빠져 버린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며, 국정책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준다.

'정치 리더십의 실종으로 혼돈에 빠져 버린 우리'로선 부럽기도 하거니와 눈길이 안 갈 수 없다...

 

14. 06.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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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의 칼럼 '한기호의 책통'을 읽다가 <고전은 나의 힘>(창비, 2014) 시리즈를 알게 됐다. 더 이어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사회, 역사, 철학 읽기, 세 권으로 돼 있다.

 

마침 청소년이 읽어야 할 인문고전 81편의 정수를 모아 사회, 역사, 철학 분야의 세 권으로 구성된 '고전은 나의 힘' 시리즈(창비)가 출간됐다. 고전은 요약본이나 해설서를 읽어서는 원문의 의미를 제대로 맛볼 수 없다. 이 시리즈는 세부 주제를 잘 나눈 다음 그에 적절한 책을 제대로 골라서 소개하고 있었다. 책마다의 핵심을 잘 포착해서 발췌한 글들은 문장을 잘 다음어서인지 쉽게 읽혔다. 각 장에 담긴 글들은 서로의 연결고리가 확실해 고전에 담긴 지혜와 통찰을 이해하기가 좋았다. 한 권 한 권이 수준 높은 교양서인 이 책들은 고전이 어렵고 딱딱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한기호)

성인을 위한 고전 읽기 강의는 많이 하고 있지만(거의 매일!) '청소년을 위한 고전'이라고 하면 뭔가 암담한 느낌부터 든다.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고전 회의론 이전에 독서 회의론까지 드는 게 현실이어서다. 간혹 예외적인 사례들을 접해 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대세적 회의론'이 꺾일 성싶지 않다. 

 

중학교 때부터 헤세나 카뮈 같은 작가들, 스탕달과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작가들을 으레 읽어야 하는 걸로 생각하고 실제로 읽었던 경험에 비추어 요즘 청소년들의 고전에 대한 '해맑은' 무관심은 놀라울 정도다. 하긴 내 세대라 하더라도 모두가 나 같은 고전 독자는 아니었으니 무리한 대조일 수는 있다. 그렇더라도 '고전의 힘'이라는 게 있다면, 그것이 여전히 이 시대에도 유효하다면, 무지와 무관심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여기까지 합의가 가능하다면, 문제는 어떻게 읽힐 것이냐다. <고전은 나의 힘>이 그 타개책의 하나를 보여줄지 모른다는 기대를 갖는다.

 

 

한편 만화로 보면 쉬울까 싶어서 눈길이 가는 책들도 있는데, <철학이 된 엉뚱한 생각들>(원더박스, 2014)이나 <과학이 된 무모한 도전들>(원더박스, 2014) 같은 시리즈가 그런 경우다. 두 권만 나오고 아직 더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분량도 얇고 만화로 돼 있긴 하지만, 서양철학사를 개관하고 있기에 내용까지 얄팍한 건 아니다. 오히려 아무리 만화로 설명한다고 해도 '실재' 같은 개념들을 아이들을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염려될 정도다(심지어 내게도 생소한 철학자들까지 등장한다!).

 

나의 지론은 '길은 여러 가지다'이다. 어떤 경로, 어떤 루트를 통해서건 고전의 매력과 사유의 힘에 도달할 수만 있다면 사다리는 무엇이건 좋다. 부디 고전이 너의 힘이 되기를!..

 

14. 06.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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