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앞두고 포스팅할 책 얘기들이 많지만, 난민 생활중이라(집 공사가 끝나서 내일 입주한다) 사정이 여의치가 않기에 지그문트 바우만과 레비나스 책에 관해서만 간단히 적는다.

 

 

먼저, 인디고연구소에서 기획한 '공동선 총서'의 둘째 권으로 바우만 인터뷰집이 출간됐다. <희망, 살아있는 자의 의무>(궁리, 2014)란 제목이다. 재작년에 나왔던 지젝 인터뷰집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궁리, 2012)과 마찬가지로 가장 효율적인 입문서 역할도 겸할 수 있겠다. 가장 최근에 나온 <빌려운 시간을 살아가기>(새물결, 2014)가 그런 역할에 적당한 책이었지만, 아무래도 글보다는 말이 이해하기 쉽고 간명하다. 소개도 다르지 않다.

<희망, 살아 있는 자의 의무>는 바우만 사유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적인 개념과 사유의 지평을 두루 살펴보면서, 동시에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불안을 진단하고, 그에 대한 바우만식의 진중하면서도 재기발랄한 해결책 등이 담겨 있다. 가히 바우만 사유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레비나스에 관해서도 좋은 입문서가 출간됐다. 콜린 데이비스의 <처음 읽는 레비나스>(동녘, 2014). 처음 나온 건 아니다. <엠마누엘 레비나스>(다산글방, 2001)라고 나왔었는데, 번역이 좋지 않아서 선뜻 추천할 만한 책이 못 됐다. 새 번역본을 아직 손에 들지는 못했지만 다시 번역된 책인 만큼 이전의 오류를 답습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믿는다. 개인적으로는 한창 레비나스의 책을 읽던 무렵 원서로 완독한 기억이 있는데, 명쾌한 서술이 인상적이었다. 지금은 주요 저작들도 번역돼 있고(<전체성과 무한>이 아직 빠진 상태이지만) 연구서도 몇 권 더 나와 있기 때문에 레비나스를 읽는 일이 한결 수월해졌지만 입문서로서 여전히 유효하지 않을까 싶다.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좀더 대중적인 입문서로는 알랭 핑켈크로트의 <사랑의 지혜>(동문선, 1998)이 추천할 만하고, 우치다 타츠루의 <레비나스의 사랑의 현상학>(갈라파고스, 2013)도 수준 있는 입문서다. 좀더 본격적인 독서를 원하는 독자라면 마리안느 레스쿠레의 <레비나스 평전>(살림, 2006)을 통해서 전체적인 견적을 내볼 수 있겠다.

 

흠, '처음 읽는'이라고 하니까 왠지 설레는 느낌도 나는군. 나도 '처음 읽는'으로 되돌아가고 싶다...

 

14. 0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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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낮에 교보에 들렀다가 처음 본 책인데, 러시아의 대표적 아나키스트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의 격문이 번역돼 나왔다. <청년에게 고함>(낮은산, 2014). 그의 자서전과 상호부조론이 번역돼 나온 바 있는데(자서전은 절판됐다), 이 격문은 1880년에 불어로 발표됐다 한다. 그래서 부제가 '130여 년 전 한 아나키스트의 외침'. 번역은 홍세화 선생이 맡았다.

 

“그동안 쌓아 올린 지성이나 능력과 학식을 활용하여 오늘날 비참과 무지의 나락에 떨어져 신음하는 사람들을 도울 날을 꿈꾸지 않는다면, 그것은 악덕으로 타락한 탓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꿈을 갖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그 꿈을 실현하려 무엇을 할지 물어야 할 것입니다.”라고 토해 내는 크로포트킨의 울분을, 그 호소를 쉽게 뒤로할 수 있는 청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을 옮긴 홍세화는 “크로포트킨이 살았던 격동의 시대나 이 책을 일역본으로 읽으면서 젊은 정신이 흔들리는 것을 경험했을 내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의 젊은이에게 이 문건이 도대체 무슨 의미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인가.”라고 되묻고 있다.    

 

옮긴이의 말에서 홍세화 선생은 <청년에게 고함>과 함께 자서전 <한 혁명가의 회상>을 권한다. <크로포트킨의 자서전>이라고 출간됐다가 <한 혁명가의 회상>으로 한번 더 나왔는데, 현재는 절판된 상태에서 아쉽다(<크로포트킨 자서전>으로 다시 나왔다). "19세기 유럽 노동 운동사는 물론이고, 그가 살았던 시대의 러시아 역사까지도 모두 담은 일종의 체험적 역사서". 덧붙여서 최근에 다시 나온 미셸 라공의 <패자의 기억>(책세상, 2014)도 보태고 있는데, 20세기 세계사의 벽화를 그리고 있다는 소설이다. "알프레드 바르텔르미라는 프랑스인 아나키스트의 회고록이라는 형식을 빌려 19세기 말부터 1968년 5월혁명에 이르는 격동의 ‘역사’와 그 현장의 한복판을 누볐던 ‘인간’ 군상, 그리고 그들을 사로잡았던 ‘이념’을 엮어 실제와 허구가 넘나드는 한 편의 대하드라마를 직조해냈다." 아래가 홍세화 선생의 추천사이다.  

첫 부분부터 빠져든 게 정겨운 파리의 정경 때문이었다면, 손에서 놓기 어려웠던 건 파국과 절멸 상태에 이른 한국 진보 세력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일 듯싶다. 아나키스트 주인공은 러시아혁명과 스페인내전을 거쳐 68에 이르기까지 살아남아 자신과 동료의 패배를 증언한다. 마지막 장을 넘긴 뒤 길게 남은 여운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인간과 사회를 위한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권력을 장악한다지만, 만약 그 권력이 총구에서 나온다면 그것은 이미 인간과 사회를 배반하도록 예정된 게 아닐까? 강제력의 자장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인간의 자발적 연대를 꿈꾼 아나키즘은 어쩌면 현 단계에서는 패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 책은 ‘패자들에 대한 기억을 소멸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소수의 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많은 독자가 이 소수의 특권을 누리기 바란다.

14. 0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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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얘기가 아니다. 총리와 장관 후보자들의 온갖 망언과 치부가 들춰지면서 자연스레 분노와 탄식이 터져나온다. CBS 변상욱 기자의 <대한민국은 왜 헛발질만 하는가>(페이퍼로드, 2014)란 제목 그대로다. '정치와 행정이란 이름으로 지배하고 군림하는 저들에게 분노한다!'가 부제. <굿바이 MB>(한언출판사, 2012)에 이어지는 기자 칼럼집인데, '굿바이 MB'로 마무리된 게 아니고 적어도 인사 문제에 있어서는 한술 더 뜨는 '시즌2'다. 답답한 마음에서라도 손이 가는 책.

 

민주주의로 포장되어 휘둘러지는 지배와 군림의 단면들을 적어간 시대 기록의 모음이다. 저자 변상욱은 그 지배와 군림이 어디서 왔는지를 살피기 위해 역사를 뒤적이기도 하고, 속절없이 당하는 우리를 살피고자 심리학도 참고하며, 외국의 사례나 상황을 첨부하기도 한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 <변상욱의 기자수첩>에서 만나던 통쾌한 비평에 깊이가 더해져 이 한 권의 책이 되었다.

더불어 읽어볼 만한 건 최승호 피디와 지승호의 인터뷰어의 대담 <정권이 아닌 약자의 편에 서라>(철수와영희, 2014). '철수와 영희를 위한 대자보’ 시리즈의 세 번째 권이다.

2012년 MBC에서 해고된 후 한국 탐사저널리즘 센터가 만드는 <뉴스타파>의 앵커로 활동하는 최승호 피디와 전문 인터뷰어인 지승호의 한국 언론에 대한 대담을 실었다. 최 피디의 MBC와 <뉴스타파>에서의 방송 활동을 중심으로 공영방송이 어떻게 정권의 전리품이 되는지, 정권이 어떻게 방송을 장악하고 통제하는지, 방송과 신문이 정권의 통제를 넘어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 알려 주고 있다.  

비루한 현실이라 하더라도 그나마 제 목소리를 내는 소수의 언론인들 덕분에 최악은 면하고 있는 듯싶다. 물론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 그리고 요즘 표현으로 '국가 개조'는 언론의 힘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우리 모두가 월드컵 축구경기를 볼 때처럼 두 눈 부릅뜨고 졸린 눈을 비빌 때이다...

 

14. 0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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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시즌인 만큼 축구의 관한 책을 '이주의 발견'으로 꼽는다. 데이비드 골드블라트의 <축구의 세계사>(실천문학사, 2014). 무려 1248쪽 분량. '축구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축구의 역사에 관해서는 디스커버리 총서판으로 나온 알프레드 바알의 <축구의 역사>(시공사, 1999)가 참고할 만한 책이었다.

 

영국의 스포츠저널리스트이자 축구 탐사보도 전문기자 데이비드 골드블라트의 <축구의 세계사>. 축구의 탄생과 전파가 어떻게 돈과 권력, 인종과 계급, 폭력과 저항 그리고 수많은 영웅들과 역사적인 승패 등을 교차하며 세계사를 형성했는가를 추적한다.

 

축구 얘기가 나온 김에 관련서가 더 있나 찾아보니 <축구의 역사>(일신사, 2008), <축구철학의 역사>(리북, 2011), <축구전쟁의 역사>(이지북, 2002) 등이 눈에 띈다. <축구전쟁의 역사>는 아마도 2002년 월드컵을 겨냥해서 나왔던 듯싶은데, 지금은 절판됐다(어느새 12년 전이다!).

 

 

오늘은 독일과 포루투갈이 전쟁을 치르고, 내일은 러시아와 한국이 '전쟁'을 치른다. 승패를 떠나서 후회 없는 일전을 바란다...

 

14. 0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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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과는 좀 다르게 '이달의 만화' 내지는 '이달의 르포르타주'로 고를 만한 책이 출간됐다. ‘코믹 저널리즘(Comic Journalism)’의 선구자 조 사코의 <저널리즘>(씨앗을뿌리는사람, 2014). <팔레스타인>(글논그림밭, 2002)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된 작가인데 국내에는 몇 작품이 더 소개돼 있고, <저널리즘>은 그의 대표적 만화 기사들을 모은 책이다. 6인의 한국 기자들이 번역에 참여한 점이 눈에 띈다.

 

2012년 미국에서 출간되어 이후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등지에서 번역 출간되었고, ‘2013 LA타임스 도서상’ 파이널리스트에 오르기도 한 『저널리즘』은 지난 10여 년간 『디테일즈』, 『뉴욕타임스 매거진』, 『타임』, 『하퍼스』, 『가디언』 등에 실린 사코의 단편 만화 기사 11편을 모아 6개의 챕터로 분류한 작품집으로, 진실 보도의 책무를 지닌 언론매체들이 종종 스쳐가거나 회피하는 세계 역사의 중요한 장면들이 담겨 있다. 「헤이그」편은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전범재판소에서 진행된 보스니아 내전의 전범 재판 과정을, 「팔레스타인」편은 헤브론과 가자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을, 「코카서스」편은 러시아와의 분쟁 속에서 갈 곳을 잃은 체첸 난민들 이야기를, 「이라크」편은 미국 역사의 가장 어두운 부분이라 할 수 있는 포로 고문과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들의 이야기를, 「이민」편은 아프리카의 가난과 전쟁, 폭정을 피해 유럽으로 건너가고자 하는 이들이 인구 40만의 지중해 섬나라 몰타로 몰려들면서 벌어지는 사태들을, 「인도」편은 인도의 빈곤 문제와 복잡한 카스트 제도의 실상을 담고 있다.

한겨레 안수찬 기자는 추천사에서 "이 책에는 저널리즘의 방법론을 혁파하는 실험정신과 사실의 총체를 온전히 드러내려는 장인정신이 깃들어 있다. 그것을 나는 흠모하며 시기한다. 언젠가 이런 성취가 한국에서도 이뤄질 수 있을까."라고 적었다. 나도 똑같은 기대와 바람을 가져본다...

 

14. 0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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