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고전'도 오랜만에 고른다. 커트 보니것(보네거트)의 <제5도살장>(문학동네, 2016)과 플로베르의 <세 가지 이야기>(문학동네, 2016)가 새 번역본으로 나와서다. 세계문학전집판으로 나오니 무게감도 달라졌다. 



<제5도살장>은 이전 번역본(아이필드, 2005)으로도 갖고 있지만 새 번역본은 세계문학전집판이라는 것 외에도 정영목 번역이라는 점이 소장가치를 높여준다. 이 참에 원서도(염가본) 구입하려 한다. 1966년작으로 <제5도살장>은 보니것의 대표작이자 반전문학의 고전으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드레스덴 폭격을 소재로 한, 커트 보니것의 대표작. 주인공 빌리 필그림은 시간과 시간 사이를 떠돌며 여행한다. 제2차세계대전 벌지 전투의 독일군 전선 후방으로, 포탄이 쏟아지는 드레스덴의 도살장으로, 트랄파마도어 행성의 동물원으로, 뉴스가 넘치는 뉴욕으로, 수소폭탄 공격을 받았다 재건된 시카고로. 유쾌하고 황당한 이야기 뒤에 숨어 있는 비관론과 허무주의, 그리고 인간에 대한 희망. 오직 보니것만이 쓸 수 있는 독특한 반전(反戰)소설이다."


<세 가지 이야기>도 초역은 아니다. <플로베르 단편집>(서문당, 1996)과 <세 개의 짧은 이야기>(문학과지성사, 1997)가 같은 작품의 번역본이다(문학과지성사판은 절판된 걸로 보인다).

"문학의 수도사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발표한 유일한 단편집이자 마지막 완성작. 말년에 이르러 어머니와 친구의 죽음 등 개인적인 고통과 함께 글쓰기의 어려움을 느끼며 회의에 빠져 있던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앞으로 글을 계속 써나갈 수 있을지 확인하려는 마음에 '구호수도사 성 쥘리앵의 전설'을 시작으로 '순박한 마음', '헤로디아'를 차례차례 써나갔고, 이렇게 <세 가지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한데 묶인 플로베르의 단편들은 평단 및 대중의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 


플로베르의 작품은 주로 <마담 보바리>와 <감정교육>을 강의에서 다루면서 여러 번 읽었지만, 한편으로 플로베르는 <성 앙트안느의 유혹>과 <살람보>의 작가이고, 내게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말년작 <부바르와 페퀴셰>나 <통상관념사전>에 덧붙여 <세 가지 이야기>까지 언젠가 플로베르의 전작 읽기에 도전해보고 싶다. 준비는 다 돼 있으나 아직은 시간이 없군...   


16. 12.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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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는 조용하게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 서거 400주년이 지나간다 싶었는데, 뜻밖의 대작이 출간되었다. 이상섭 교수의 새로운 셰익스피어 전집이 통째로 나온 것.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총 망라하고 있으며 분량도 1,800쪽에 이른다. 희곡 완역본으로는 김재남 교수와 신정옥 교수의 번역본이 나와 있지만(김정환 시인의 번역본은 아직 완간되지 않았다) 시까지 망라한 단독 번역 전집은 유일하지 않나 싶다. 



이상섭 교수는 이미 로맨스 희극전집을 펴낸 바 있기 때문에 비극 전집 정도 나올 줄 알았는데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다. 단권짜리여서 사실 강의용으로는 쓸 수 없다는 게 흠이지만(분권돼 나오면 좋겠다) 여하튼 소장용 전집판으로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국내 최초로, ‘전집’(全集)이라는 말 그대로,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44편)이 수록되었다. 이 방대한 양의 책을 번역한 이상섭 연세대 명예교수는 서양에서 가장 최근에(1990년대) 집단적으로 연구된 성과를 집적하여 세계적으로 정평이 난 ‘옥스퍼드 판 셰익스피어 전집’을 저본으로 삼았는데, 그 판본 연구가들이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에서 ‘무대 상연’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점을 주목한다. 또한 옮긴이는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의 대부분이 ‘5개의 약세 음절과 5개의 강세 음절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근거로 ‘셰익스피어는 모든 작품을 운문으로 썼다’고 역설한다. 따라서 옮긴이는, 영어와 한국어가 언어 체계는 다르지만 모든 언어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 ‘운율’을 살려 우리말의 ‘운문’(4.4조와 7.5조 형식의 변형)으로 옮기는 데 주력했다고 그 취지와 성격을 밝힌다."


올해 완간된 나쓰메 소세키 소설전집(현암사)과 함께 올해의 번역으로 꼽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사극 <코리올라누스>를 새로운 번역본으로 읽어보게 되어 무엇보다 기쁘다. 



더불어 언급하자면, 셰익스피어 대표 비극 <햄릿>의 새 번역본이 추가되었다. 설준규 교수의 창비판과 남육현 교수의 동인판(한국셰익스피어학회 편) 두 종인데, 올해 나온 번역본으로는 이경식 교수의 <햄릿>(문학동네)과 함께 주목할 만한다. 특별히 이번에 나온 창비판은 의의를 둠 직한데, "설준규 한신대 명예교수가 십여년에 걸쳐 다듬고 골라 완성한 이번 번역은 여러 권위 있는 편집본들을 꼼꼼히 대조하고 비평의 역사와 최근의 연구 성과를 두루 참조하여, 셰익스피어의 원문이 지니는 깊이와 아름다움을 적확하면서도 유려하게 새기고 있다." 


마음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국이 아니지만 공들여 나온 책을 모른 체할 수도 없다. 읽을 건 읽으면서 '시민혁명'을 이어나가도록 하자..


16.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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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작가 윌리엄 트레버의 작품이 또 한권 번역돼 나왔다. <여름의 끝>(한겨레출판, 2016). 2009년작이니까 작가 나이 여든 한 살에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단편문학의 거장으로 알려져 있지만 트레버는 18권의 장편도 발표했다. 전천후 작가라고 할까.  



사실 국내에는 지난해 단편선집 <윌리엄 트레버>(현대문학, 2015)가 출간됨으로써 처음 소개되었고, 올여름에 단편집 <비 온 뒤>(한겨레출판, 2016)가 나왔으니 '뉴 페이스'에 해당한다. 명성에 비하면 상당히 뒤늦게 소개된 셈인데, 그럼에도 "영어권의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단편작가"(뉴요커)란 평판은 기대를 안 가질 수 없게 만든다.<여름의 끝>의 간단한 소개는 이렇다.  

"윌리엄 트레버가 81세에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듯한 아일랜드의 한 작은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두 남녀의 내밀한 사랑 이야기가 이곳의 풍경, 색깔, 냄새와 소리, 빛과 그림자와 함께 섬세하게 묘사된다. 여름 한철 조용한 마을에서 일어난 누군가의 첫사랑과 과거의 사랑, 누군가의 지워지지 않는 고통과 슬픔 들이 작가 특유의 깊은 공감과 연민의 시선으로, 절제된 문장 속에 담긴다. 2009년 부커상 후보작."

<여름의 끝>이 장편이긴 하지만, 단편작가로서 더 유명한 만큼 자연스레 다른 거장들인 존 치버나 레이먼드 카버도 연상하게 한다. 각운도 얼추 맞아서 트레버-치버-카버는 '3버'로도 묶을 수 있다. 트레버는 이제 막 세 권이 출간됐지만, 치버와 카버는 사정이 달라서 거의 전집 수준으로 소개되고 있다. 


가령 존 치버는 올초에 일기와 편지가 번역되었고, <작가란 무엇인가3>(다른, 2015)에서도 인터뷰를 읽어볼 수 있으며, 세계문학문전집판으로는 <팔코너>(문학동네, 2011)와 <왑샷 가문 연대기><왑샷 가문 몰락기>(민음사, 2008)을 읽을 수 있다. 



<팔코너>는 "뛰어난 단편소설들을 통해 미국인과 미국 사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족, 결혼, 도덕 같은 가치들이 안온해 보이는 일상의 이면에서 붕괴해나가는 모습을 정밀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포착해내 '교외의 체호프'로 불린 존 치버의 네 번째 장편소설"이고, <왑샷 가문 연대기>와 <왑샷 가문 몰락기>는 연작장편소설로 세인트보톨프스라는 작은 어촌 마을 사람들 이야기다.  



치버의 단편들은 네 권으로 갈무리돼 출간되었는데, 이게 최종판인지는 모르겠다. <불릿파크>(문학동네, 2007)가 애초에는 '존 치버 전집' 1권으로 나왔다가 후속작이 없이 묻혔는데, 아마도 다시 순번을 정돈하여 나오지 않을까 싶다(그러니까 아직 완전히 정리된 상태는 아니다). 돌이켜보니 내가 제일 처음 읽은 건 <주홍빛 이삿짐트럭>(정우사, 1993)이었다.  



카버도 사정은 비슷하다. 주요 작품은 모두 번역됐지만, '전집'이나 깔끔한 '선집' 형태는 아니다. 세계문학전집으로 빠진 <대성당>(문학동네, 2014)을 제외하고 나머지 작품들이 모두 망라돼 있는지 모르겠다(가령 집사재판에는 들어 있었지만 문학동네판에서는 찾을 수 없는 작품도 있다). 


  

내가 카버를 처음 읽은 건 집사재판(1996)을 통해서였는데(그러고 보니 영화 <숏컷>의 원작자로 처음 소개된 모양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어판 해설이 수록돼 있는 게 특징이었다. 지금은 모두 절판된 상태. 분량으로는 카버 전집도 가능할 듯싶은데, 그런 기획이 잡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더라도 작품집이 출간연도나 시기별로 묶여진다면 더 좋겠다. 



치버와 카버의 사정이 그렇다는 얘기고 앞으로 트레버의 작품들도(단편만 수백 편이고 선집도 1280쪽에 이른다) 어떤 모양새로 더 소개될지 기대가 된다...   


16.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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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으로 말런 제임스의 <일곱 건의 살인에 대한 간략한 역사>(문학동네, 2016)를 고른다. 작가와 작품 모두 생소하지만, 지난해 '맨부커상' 수상작이다. 말런 제임스는 1970년 자메이카 출생인데, 캐리비안 지역 출신 작가로는 1971년 V. S. 나이폴에 이어서 두번째로 부커상 수상 작가가 되었다(나이폴의 수상작은 <자유국가에서>였군).


"'밥 말리 살해 기도'라는 1976년 12월의 실제 사건을 인물 중심, 즉 삶의 시점에서 풀어내고 있는 작품이다. 총 13명의 화자가 일곱 건의 살인과 연루된 자신의 삶을, 그 사건이 지나고 나서도 기어이 이어지고 있는 자신의 삶과 흔적을 각자의 시선에서, 각자의 언어로 전하는 형식이다. 1부에서는 사건 전날인 1976년 12월 2일의 이야기를, 2부에선 사건 당일, 3부는 3년 후, 4부는 9년 후, 5부에서는 15년 후에도 이어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영어권 최고 문학상 수상작은 어떤 주제를 어떤 수준으로 다루는지 감상해보아도 좋겠다. 아울러 맨부커상 심사위원회의 안목도 확인해볼겸. “이 작품은 범죄의 세계를 넘어 우리가 거의 알지 못했던 역사 속으로 깊숙이 안내하는 소설로, 이 시대의 고전이 될 것이다” 



맨부커상 얘기가 나온 김에 적자면, 이번주에는 수상작이 한 권 더 나왔다. 2005년 수상작인 아일랜드 작가 존 밴빌의 <바다>(문학동네, 2016)다. 애초에 '존 반빌'이란 저자명, 그리고 <신들은 바다로 떠났다>(랜덤하우스코리아, 2007)란 제목으로 나왔던 책인데, 이번에 제목을 바꾸어서(원제대로) 세계문학전집판으로 재출간되었다. 소개는 이렇다. 

"제임스 조이스와 사뮈엘 베케트를 잇는 아일랜드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존 밴빌의 대표작이자 맨부커상 수상작. 유명 작가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들이 대거 발표되어 '황금의 해'라는 별칭까지 붙은 2005년의 맨부커상은 존 밴빌의 열네번째 소설인 <바다>를 수상작으로 선정하며, "아련하게 떠오르는 사랑, 추억 그리고 비애에 대한 거장다운 통찰"이라 평했다. 아내와 사별하고 슬픔을 달래기 위해 어린 시절 한때를 보낸 바닷가 마을로 돌아와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게 된 미술사학자 맥스를 화자로 한 <바다>는, 자전적 경험과 함께 밴빌 특유의 섬세하고도 냉철한 아름다움을 지닌 문체로 슬프고도 아름다운 생의 궤적을 그려낸 소설로, '현존하는 최고의 언어 마법사'로 불리는 밴빌의 명성을 입증한다."

뛰어난 작품들이라고 하니까 두 권 모두 원서도 구해보고 싶다. 늦가을의 시간 한 토막은 맨부커상 수상작을 위해서 빼놓아야겠다...


16.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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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 강의를 하다 보니 세계문학 전집이나 작가 전집은 늘 관심대상이다. 검색하다가 알게 되었는데(광화문의 PC방이다), 시공사에서 제인 오스틴 전집이 출간된다. 내년이 작가 사후 200주년이다. 1775년생, 1817년몰.  전집은 전7권으로 구성돼 있는데, 주요 작품들은 이미 다른 번역본으로 갖고 있지만, 세트로 나온다고 하니 '견물생심'이 생길까 염려된다. 게다가 국내 초역 작품도 포함돼 있다.

 

 

 

 

 

무슨 벽지 컨셉트로 보이는 표지도 막상 늘어놓으면 화사하게 보일 것도 같다(그런 취향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표지 때문에 망친 전집은 면하겠단 생각). 소개는 이렇다. "정확하고 감각적인 번역으로 원작의 묘미를 살리고, 독자들이 보다 편히 작품을 즐길 수 있도록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당대 영국의 관습과 표현 등은 충실한 주석을 달아 보완했으며, 사후 200주년을 기념해 영국의 로맨틱 감성을 대표하는 브랜드 캐스 키드슨과 손잡고 아름다운 프린트를 입힌 특별 에디션이다."

 

 

이에 견줄 만한 번역본으로는 민음사판의 <이성과 감성><오만과 편견><에마>가 있다. 일단 가장 많이 읽히는 번역본이다.

 

 

 

 

 

종수로만 보자면 초기 습작을 제외한 여섯 편의 장편 컬렉션을 갖고 있는 현대문화센터판도 전집에 준한다. 다만 표지가 좀 저렴해 보여서 신뢰감을 주지 못하는 게 흠이다.   

 

 

그밖에 을유문화사 세계문학전집은 <오만과 편견>과 <노생거 사원>을, 문학동네는 <설득>을 타이틀로 갖고 있다. 신청자가 적어 폐강되긴 했지만 언젠가 '제인 오스틴 읽기' 강의를 계획했을 때는 민음사판 세 권에다 다른 전집판의 번역들을 섞어서 여섯 권을 채웠었는데, 아쉬운 건 <맨스필드 파크>였다(한 종의 번역본만 있어서). 이제는 복수의 선택지가 가능하게 돼 무엇보다도 그게 반갑다. 내년이 200주기라고 하니까 적당한 시기에 오스틴 강의를 다시 개설해보아야겠다(러시아혁명 100주년이기도 하고, <무정> 발표 100주년이기도 해서 다른 강의도 이래저래 명분은 많다).

 

 

 

'시공 제인 오스틴 전집'이라고 하니까 생각나는 건 '시공 헤밍웨이 선집'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실패한 선집이다(실제로 많이 팔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드카바여서 가격도 다른 번역본들보다 비쌌고 번역에서도 뚜렷한 강점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단편집 <우리들의 시대에> 정도가 이 선집의 의의인데, 설사 대표작에 들지는 않더라도 헤밍웨이의 (실패한) 장편들까지 망라한 '전집'이었다면 좀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현대문학사에서 나온 12권짜리 헤르만 헤세 선집도 재미를 보지 못한 걸 보면, 이 또한 장담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과거 전성기에 헤밍웨이 전집이 나온 적이 있지만 현재는 사정이 그렇지 않으니까. 대표작이야 번역본이 이미 충분히, 나올 만큼 나왔다. 헤밍웨이의 졸작이라는 <강 건너 숲속으로> 같은 작품을 한번 읽어보고픈 독자도 있는 법이니까(헤밍웨이 자신은 비평가들의 혹평에 발끈해서 적극 옹호하긴 했다). 제인 오스틴 전집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해진다...

 

16. 11.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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