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 강의를 하다 보니 세계문학 전집이나 작가 전집은 늘 관심대상이다. 검색하다가 알게 되었는데(광화문의 PC방이다), 시공사에서 제인 오스틴 전집이 출간된다. 내년이 작가 사후 200주년이다. 1775년생, 1817년몰.  전집은 전7권으로 구성돼 있는데, 주요 작품들은 이미 다른 번역본으로 갖고 있지만, 세트로 나온다고 하니 '견물생심'이 생길까 염려된다. 게다가 국내 초역 작품도 포함돼 있다.

 

 

 

 

 

무슨 벽지 컨셉트로 보이는 표지도 막상 늘어놓으면 화사하게 보일 것도 같다(그런 취향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표지 때문에 망친 전집은 면하겠단 생각). 소개는 이렇다. "정확하고 감각적인 번역으로 원작의 묘미를 살리고, 독자들이 보다 편히 작품을 즐길 수 있도록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당대 영국의 관습과 표현 등은 충실한 주석을 달아 보완했으며, 사후 200주년을 기념해 영국의 로맨틱 감성을 대표하는 브랜드 캐스 키드슨과 손잡고 아름다운 프린트를 입힌 특별 에디션이다."

 

 

이에 견줄 만한 번역본으로는 민음사판의 <이성과 감성><오만과 편견><에마>가 있다. 일단 가장 많이 읽히는 번역본이다.

 

 

 

 

 

종수로만 보자면 초기 습작을 제외한 여섯 편의 장편 컬렉션을 갖고 있는 현대문화센터판도 전집에 준한다. 다만 표지가 좀 저렴해 보여서 신뢰감을 주지 못하는 게 흠이다.   

 

 

그밖에 을유문화사 세계문학전집은 <오만과 편견>과 <노생거 사원>을, 문학동네는 <설득>을 타이틀로 갖고 있다. 신청자가 적어 폐강되긴 했지만 언젠가 '제인 오스틴 읽기' 강의를 계획했을 때는 민음사판 세 권에다 다른 전집판의 번역들을 섞어서 여섯 권을 채웠었는데, 아쉬운 건 <맨스필드 파크>였다(한 종의 번역본만 있어서). 이제는 복수의 선택지가 가능하게 돼 무엇보다도 그게 반갑다. 내년이 200주기라고 하니까 적당한 시기에 오스틴 강의를 다시 개설해보아야겠다(러시아혁명 100주년이기도 하고, <무정> 발표 100주년이기도 해서 다른 강의도 이래저래 명분은 많다).

 

 

 

'시공 제인 오스틴 전집'이라고 하니까 생각나는 건 '시공 헤밍웨이 선집'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실패한 선집이다(실제로 많이 팔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드카바여서 가격도 다른 번역본들보다 비쌌고 번역에서도 뚜렷한 강점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단편집 <우리들의 시대에> 정도가 이 선집의 의의인데, 설사 대표작에 들지는 않더라도 헤밍웨이의 (실패한) 장편들까지 망라한 '전집'이었다면 좀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현대문학사에서 나온 12권짜리 헤르만 헤세 선집도 재미를 보지 못한 걸 보면, 이 또한 장담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과거 전성기에 헤밍웨이 전집이 나온 적이 있지만 현재는 사정이 그렇지 않으니까. 대표작이야 번역본이 이미 충분히, 나올 만큼 나왔다. 헤밍웨이의 졸작이라는 <강 건너 숲속으로> 같은 작품을 한번 읽어보고픈 독자도 있는 법이니까(헤밍웨이 자신은 비평가들의 혹평에 발끈해서 적극 옹호하긴 했다). 제인 오스틴 전집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해진다...

 

16. 11.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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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 전 윈도우10을 깐 이후에 PC가 좀 쾌적해진 듯싶었지만 역시나 공짜는 없는 법이었다. 갈수록 먹통이 되는 일이 잦더니 들이대는 광고가 많아지고 보안앱을 깔아야 한다는 협박도 늘어났다. 평균치의 컴맹에 속하는지라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가령 무얼 교체하거나 하드용량을 늘인다거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지내다 보니 서재는 지난주부터 때아닌 '휴가' 모드다. 간혹 안부를 물어보시는 분도 계신데, 말썽은 내가 아니라 PC라는 사실을 한번 더 적는다.

 

 

강의준비에도 쫓기다 보니 PC가 정상이라 하더라도 사실 포스팅할 시간이 별로 없는데, 그렇다고 포스팅 거리도 적은 거냐면 그건 아니다. 항상 일정한 얘깃거리는 생겨난다. 적잖은 책들이 나오고 있고 적잖은 책들을 구입하고 있으며 비교적 적잖은 책들을 읽기 때문이다. 주로 신간을 주문하지만 간혹 구간도 섞이기 마련인데, 오늘 배송받은 책 가운데는 가이 미쇼의 <문학이란 무엇인가>(스마트북, 2013)가 그에 해당한다(만 3년이 지난 건 아니지만 햇수로는 3년이 됐으니 구간이라고 해두자). 며칠 전 '문학이란 무엇인가'란 제목의 책들을 검색해보다가 발견하고 주문한 책이다.  

 

'다시 시작하는 인문학 문사철'을 표방하면서 같이 나온 책들이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와 버트런드 러셀의 <철학이란 무엇인가>인데, 카와 러셀의 책은 우리에게 친숙하고 번역본도 여러 종 나와있는 것과 견주어서 가이 미쇼의 책은 이채로울 수밖에 없다. 누가 책을 발견하고 번역을 기획했는지 궁금할 정도다.

 

저자는 프랑스 문학사가이면서 그리스와 라틴 문헌 학자라고 소개된다. <문학이란 무엇인가>는 원제가 '문학의 과학을 위한 서설'로서 터키 이스탄불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하여 1950년에 펴낸 책이라 한다. 아마 프랑스에서 잊혀진 책일 수도 있지만, 분량이 얇아서 부담이 없고 문학의 원론적인 문제들을 다시 생각해보는 데 필요한 암시나 자극 같은 게 있을까 싶어서 구입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란 원론적인 물음에, 또 그런 제목을 가진 책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된 건 문학에 입문한 지 30년이 됐으니 이젠 나대로의 문학론도 써볼 수 있지 않을까, 내지 써봐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서다. 예컨대 학부시절 읽은 김현/김주현 편의 <문학이란 무엇인가>, 유종호의 <문학이란 무엇인가>,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진 빚도 이젠 청산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 문학론은 인생론과도 관련이 없을 수 없으니 한편으론 삶과 문학에 대한 전반적인 정리의 의미도 지니게 될 것이다. 아무려나 내년에 해야 할 일의 하나로 꼽고 있는 것이 문학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자니 당연히 문학이론에도 다시 눈길을 주게 되고, 실상 얼마 전부터 조너선 컬러의 <문학이론>을 원서와 같이 펼쳐놓고는 있다(번역본은 두 종이다). 이 책도 가장 큰 미덕은 얇다는 것이다. 얇은 책은 읽는 수고를 덜어주는 대신에, 그만큼 생각할 기회를 마련해준다. 생각의 꼬투리를 제공해주는 게 이런 책의 용도인 것.

 

 

좀 두꺼운 책으로는 아우어바흐의 <미메시스>, 르네 지라르의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게리 솔 모슨의 <바흐친의 산문학> 등이 다시 읽을 거리들이다. 젊은 시절 이 책들을 처음 접하던 때보다는 읽은 작품이 많이 늘어났으니 다시 읽으면서 새롭게 얻을 수 있는 소득이 있지 않을까란 기대를 갖는다. 아무려나 이런 책들과 함께 30년 전 나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한다. 대학에 입학하여 첫 학기 수강과목으로 '문학 개론'을 선택하던 그 시절의 질문으로. 문학이란 무엇일까?..

 

16. 10. 07.

 

 

P.S. <문학이란 무엇인가>와 같이 배송된 신간은 찰스 백스터의 <서브텍스트 읽기>(엑스북스, 2016)이다. 구입하고 보니 문고본 판형인데, 최은주의 <책들의 그림자>와 가쿠타 미쓰요의 <보통의 책읽기>에 이어지는 책이다. "소설이나 짧은 이야기 안에서 플롯을 넘어서 독자들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요소"를 살펴보는 '간결한 책'. 그렇더라도 소재만 보면 좀 전문적이다. 거꾸로 (좀 전문적인) 문학 독자라면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는 책이다. 주문한 원서도 내일 도착할 듯싶은데, 주말의 읽을 거리로 맞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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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아르헨티나 작가 마누엘 푸익의 작품이 번역돼 나왔다. 1971년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인 네루다는 남미의 간판 시인이고 <거미 여인의 키스>의 작가 푸익도 독특한 작품세계를 자랑하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이번에 나온 네루다의 시집은 <모두의 노래>(문학과지성사, 2016). 제목이 낯설지 않다 싶었더니, 지금은 절판된 애덤 펜스테인의 평전 <빠블로 네루다>(생각의나무, 2005)가 나왔을 때 미키스 데오도라키스의 음반으로 같이 받았던 기억이 난다. 네루다의 시에다 곡을 붙인 것이었고 당연히 <모두의 노래>가 일부 번역됐었다. 이번에 나온 게 바로 그 완역본이다. 대표작이자 대작인데,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로만 네루다를 기억하는 독자들에게 묵직한 선물이 됨직하다.

 

 

네루다의 시집은 주로 정현종 시인의 번역으로 많이 소개되었는데, 전공자의 번역으로는 김현균,고헤선 교수의 번역본이 나와 있다. <모두의 노래>는 고혜선 교수의 번역이다. 노벨문학상 수장작가를 다루는 강의에서 내년에는 네루다도 다룰 계획이어서 나로선 더욱 반갑다.

 

 

바라건대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도 전공장의 번역으로 다시 나오면 좋겠다(정확히 이 제목이어야 한다). 정현종 시인의 번역본과 비교해서 읽어보고 싶어서다(청하판은 절판됐다).

 

 

이번에 나온 푸익의 소설은 제목이 좀 섬뜩하다.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영원한 저주를>(문학동네, 2016). " 이 책은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구사한 대화체 구성을 다시금 시도하며 그 완성도를 높인 작품이다. 또한 그가 영어로 초고를 쓴 유일한 소설로, 작품의 배경도 전작들과는 달리 라틴아메리카가 아닌 뉴욕을 택했다. 망명자 신분의 노인과 그에게 고용된 미국인 사이의 대화를 심리 게임처럼 풀어나가며,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을 넘어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도약했다."

 

중남미문학을 강의에서 다루면서 가르시아 마르케스나 바르가스 요사 등 거장의 대표작을 주로 읽었는데, 이제 기회가 되면 2열에 있는 작가들도 다뤄보고 싶다. 가장 먼저 손에 꼽을 만한 작가 중 한 명이 마누엘 푸익이다. <거미 여인의 키스> 외에 <천사의 음부>(을유문화사, 2008), <조그만 입술>(책세상, 2004) 등이 번역돼 있는데, 모두 송병선 교수의 번역이다...

 

16. 0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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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의 (소설이 아닌) 두툼한 에세이가 출간됐다. <다른 색들>(민음사, 2016). 나는 미리 영역판도 주문해서 받아놓은 터라(그의 소설 대부분도 그렇게 갖고 있다) 바로 읽을 준비가 돼 있다. 예상대로 '오르한 파묵의 모든 것'이라고 할 만한 구성이다. 부제는 '오르한 파묵의 시간과 공간, 문학과 사람들'이다. 그의 일상과 독서, 그리고 사회정치적 이슈들에 대한 생각을 빼곡하게 담고 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이 다양한 색채와 다채로운 키워드로 풀어내는 우리 인생의 이야기. 딸과 가족이 함께한 소소하고 아름다운 일상, 아침부터 저녁까지 작가의 삶을 지배하는 문학과 집필 같은 지극히 내밀한 이야기에서부터 터키 국내 인권의 현실, 정부 비판으로 인해 겪은 소송, 대지진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사회적 문제점, 유럽 내 터키의 현주소 등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향한 날카로운 시선, 나아가 파리 리뷰 인터뷰와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 등 그의 작가 인생을 빛낸 순간들까지……."

파묵의 책으로는 이제 역시나 두툼한 신작 소설 <내 마음 속의 기이함>만 번역돼 나오면 되는 듯싶다(<채식주의자>와 함께 경합을 벌였던 맨부커상 후보작이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읽기' 강의가 계기가 돼 파묵의 작품은 여러 편 강의에서 다룬 적이 있다. <내 이름을 빨강>, <새로운 인생>, <하얀성> 등인데, 아직 전모를 파악하기에는 좀 부족하다.

 

 

남은 작품들 가운데, 데뷔작인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 '처음이자 마지막 정치소설'이라고 밝힌 <눈>, 그리고 노벨상 수상 이후의 처음 발표한 <순수박물관>까지는 다루는 게 개인적인 목표이고 욕심이다(그렇게 되면 <검은 책>과 <고요한 집> 정도만 남는다). 내년에 파묵을 포함해서 터키문학을 다루거나 오르한 파묵 대표작 읽기 같은 강의를 시도해보려고 한다.

 

 

파묵을 읽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강연과 에세이로는 <소설과 소설가>와 <이스탄불>이 있다. 전담 번역자인 이난아 씨의 <오르한 파묵>도 참고가 되는데, 역자 후기 모음이어서 파묵의 책을 이미 다 갖고 있는 독자라면 실망할 수 있다.

 

<다른 색들>의 실린 독서록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와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그리고 나보코프의 <롤리타>에 대한 감상평도 포함돼 있다. 독서 경험에 한정하면 파묵이 읽은 책 대부분이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압도적인 작가라기보다는 '우리 동네 소설 잘 쓰는 형' 정도의 이미지를 내가 떠올리는 이유다(더불어 <내 마음 속의 기이함>이란 신작이 궁금한 이유인데, 과연 그에게 '기이함'이란 어떤 것일까). 사실 그의 <소설과 소설가>도 너무 평이해서 나는 놀랐었다. <다른 색들>에서는 '친근한 파묵'보다 '경이로운 파묵'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싶다...

 

16. 08. 19. 

 

 

P.S. <다른 색들>에서 눈길이 먼저 간 곳은 역시나 도스토예프스키와 나보코프에 대한 글들인데, 번역은 (예상대로) 썩 좋은 편이 아니다. 부정확하게 옮겨진 대목들이 드물지 않은데, 가령 러시아어 '나로드'(영어로 '피플')를 '서민'이라고 옮긴 것은 역자나 편집자의 둔감함을 탓하고 싶다. '민중'이나 '인민'으로 옮기는 게 적절하다. 영어의 'materialist'는 '물질주의자'로 옮겼는데, 요즘은 그렇게 쓰이는지 모르겠지만 '유물론자'로 옮기는 게 상식적이지 않나?

 

234쪽에서 도스토예프스키와 비교가 되는 다른 작가로 파묵은 '디킨스'를 예로 드는데, '디킨슨'으로 잘못 옮겨졌다. 오타가 날 수는 있지만 교정 과정에서 걸러지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그리고 239쪽 나보코프를 다룬 글의 부제가 '나보코프의 <섬>과 <롤리타>에 대하여'로 돼 있는데, <섬>은 <아다>의 오역이다. 본문에서는 작품명이 모두 <아다>라고 돼 있는데, 부제에는 엉뚱한 제목이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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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의 작가 존 윌리엄스의 또 다른 작품(무려 1973년 전미도서상 수상작) <아우구스투스>(구픽, 2016)이 번역돼 나왔다. 오래 전 작품이라 원저도 절판된 듯 보이는데 번역본이 나온 건 순전히 <스토너>에 대한 열띤 반응 때문으로 보인다. 나부터도 <스토너>의 열혈 지지자다. 윌리엄스의 모든 작품을 읽어줄 용의가 있는 건 물론이다.

 

"1965년 미국에서 발표되어 출간 50여 년이 지난 2013년 뒤늦게 유럽 독자들의 열광적 성원을 받아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던 <스토너>. <아우구스투스>는 2014년 겨울 국내에도 번역 출간되어 수많은 한국 독자들의 가슴에 커다란 반향을 남긴 <스토너>의 작가 존 윌리엄스의 마지막 작품이다. 스스로 폐기한 데뷔작을 제외하고 단 세 편의 장편소설만을 발표했던 작가의 생전 가장 주목받았던 작품은 로마의 가장 위대하고 격동적인 시기를 다루었던 세 번째 작품이자 1973년 전미도서 상 수상작이기도 한 <아우구스투스>였다. 일반적 역사소설이 방대한 서사와 스케일로 독자들에게 접근하는 반면, <아우구스투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죽음에서 시작해 아우구스투스의 최후까지 짧지 않은 시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압축적인 서사를 통한 상대적으로 적은 분량으로 묵직한 대서사에 한결 쉽게 접근했다."

한 평범한 영문학 교수의 삶을 그렸던 <스토너>와는 달리 역사적 실존 인물을 그린 작품이라 작가의 또다른 솜씨를 엿보게 될 듯싶다.

 

 

아우구스투스에 대해서는 평전과 함께 연구서들도 나와 있다. 윌리엄스의 <아우구스투스>를 좀더 실감나게 읽기 위해서 미리, 혹은 같이 참고해봐도 좋겠다. 좀더 일찍 출간됐다면 여름용 독서거리로 안성맞춤이었을 것 같은데, 이제는 따로 가능한 일정을 짜내야 할 형편이다. 추석 연휴?..

 

16. 0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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