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도서관에서 펴내는 소식지 '오눌의 도서관'(249호)에 실은 짧은 서평을 옮겨놓는다(문장을 일부 수정했다). 후보 도서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했는데, 내가 망설임 없이 고른 건 후스의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유노북스, 2016)였다. 연휴도 끝난 참이라 비로소 새해가 시작되는 느낌인데, 새해맞이용으로 적합한 책이기도 하다. 



오늘의도서관(17년 1.2월호) 후스에게서 인생을 배우다


새해맞이용 책이 따로 있다면 인생론류의 책이 강력한 후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같은 제목의 책들이 그에 해당한다. 후스의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도 분류하자면 인생론류이다. 누구나 이런 책의 저자가 될 수 있지만, 모든 저자의 책이 독서 거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독자가 인생론 강의를 들어줄 만한 인격과 학식이 저자에게 요구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저자 후스는 자격을 충족하고도 남는다. 나부터도 후스라는 저자의 이름값 때문에 책을 손에 들었으니까.


후스는 누구인가. 천두슈와 함께 중국 신문화운동을 주도했으며 중국의 근대화와 현대화를 이끈 사상적 지도자이자 연설가. 1938년부터 1942년까지는 중국의 주미대사를 역임했고 1945년부터 1949년까지는 베이징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그를 반동 부르주아로 맹렬히 비난했던 마오쩌둥조차도 언젠가는 그의 명예가 회복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던, 20세기 중국의 대표적 사상가이자 학자가 후스이다. 중국의 국보급 학자였던 지셴린이 영원한 나의 스승으로 꼽고 있는 인물이 또한 후스다.


후스의 인생론에 해당하는 글들을 모은 이 책은 후스의 사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삶을 대하는 자세), 어떻게 배울 것인가(공부를 대하는 자세), 어떻게 관계할 것인가(세상을 대하는 자세), 세 가지 주제로 엮었다. 책장을 펼치면 인생의 의의란 무엇인가라는 첫 장에서부터 대가의 풍모가 드러난다. ‘인생의 의의라는, 허다한 인생론 책들이 힘들여 탐색하고 있는 물음을 후스는 한마디로 정리한다. “애초에 문제가 될 수도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왜인가? “인생의 의의는 우리 각자 스스로 찾아내고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후스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생명 자체는 생물학적인 사실일 뿐, 딱히 의의를 둘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사람이 태어나든 고양이가 태어나든 개가 태어나든 다를 게 뭐가 있을까요? 인생의 의의는 어떻게 태어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어떻게 사느냐에 있습니다.” 지당한 견해인가? 하지만 자고로 인류의 오랜 스승들은 특별히 어려운 말을 하지 않았다. 자명한 진리를 직시하게 했을 뿐이다. 아들에게 준 당부도 눈길을 끈다. “나는 네가 당당한 사람이 되기를 바랄 뿐 나의 효자가 될 필요는 없다.” 자식을 먹이고 가르친 건 사람의 도리일 뿐 특별한 은혜를 베푼 것이 아니므로 이를 되갚을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어려운 가르침은 아니지만 여전히 후스에게 배운다.


17. 02.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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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이 가후와 미시마 유키오, 둘다 일본 작가이기에 뭔가 연관성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내가 보탤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냥 미시마 유키오의 책을 찾다가 나가이 가후의 책만 찾고 말았다는... 그런 이야기다. 휴일마다 반복되는 스트레스는 강의책(강의에 쓸 책)을 찾는 것인데, 정확하게는 찾다가 못 찾는 것인데, 이번 주에는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가 그렇다. 



웅진지식하우스판을 강의에서 쓰는데, 이미 한번 강의에서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책장에 꽂혀진 걸 한두 주 전에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챙겨놓으려니 눈에 띄지 않는다. 중고로 구입한 청림출판본만 찾았을 뿐이다. 분명 영어본과 같이 어딘가에 꽂혀 있거나 뉘어 있을 텐데, 행방이 묘연하다(누군가 불태운 것인가?). 


자주 겪는 해프닝이어서 마인트 콘트롤은 하고 있지만 전혀 유쾌할 게 없는 일이다. 집안 여러 곳을 쑤시고 다니다 보니 얼떨결에 우치다 타츠루(타쓰루)의 <반지성주의를 말하다>(이마, 2016)를 발견한 성과는 있다(엊그제 찾으려던 책이다). 그리고 일본 화류소설의 일인자라는 나가이 가후의 책도. 



나가이의 책은 최근에 <묵동기담/스미다 강>(문학과지성사, 2017)이 추가되었다. 문학동네판 제목으로는 <강 동쪽의 기담>(문학동네, 2014)인데, 여기에 '스미다 강'과 '불꽃'이 같이 수록돼 있다. 그러니까 중복 번역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묵동기담>(문예춘추사, 2010) 한 편만 따로 출간되기도 했다. 효율을 고려하면 문학동네판이 유리하겠다. 



나가이 가후에 대해 주목하게 된 계기가 몇 가지 있는데, 하나는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정은문고, 2015)이 출간된 것. 프랑스 유학파 출신인 나가이의 도쿄 산책기인데, 그가 어슬렁어슬렁파, 내지 터덜터덜파가 된 동기가 주목 거리다. 

"수많은 일본작가가 사랑한 작가, 당대 최고의 문학가 나가이 가후의 도쿄산책기다. 탐미주의 작가로 알려진 나가이 가후를 단지 화류계의 여인을 사랑한 작가에서만 그 호기심이 멈춘다면 당신은 불행하달 수밖에 없다. 산책이란 자신이 살아온 생을 추억하는 것이라던 그의 '산책론'은 지금 이 시대에 더 빛나기 때문이다. 일본 군국주의의 뿌리 메이지시대에 태어난 나가이 가후는, 일본이 제국주의로 치달리는 가운데 차라리 군국주의를 등지고 터덜터덜 산책이나 하련다고 결심한다." 

또 다른 계기는 일본 탐미주의의 거장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평가. 그는 선배 작가인 나가이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나가이 가후는 내 예술의 혈족(血族)이다." 그러니까 다니자키 문학의 족보를 추적하기 위해서도 거쳐가야 하는 작가가 나가이다. 

한 가지 더 보태자면, 나가이 가후의 화류소설에 대해서 우에노 지츠코는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은행나무, 2012)에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대로)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렇게 보면 탐미주의 작가들과 여성주의는 잘 양립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여성을 대상화하는 것이 탐미파의 주된 수작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는 미시마의 <금각사>도 예외가 아니다. 아름다움(여성성)의 매혹과 그 극복이 작품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일본의 탐미주의 대표작들만 따로 묶어서 읽어봐도 좋겠다 싶다. 나가이 가후도 포함해서... 그나저나 <금각사>는 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일까... 



17. 0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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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보게 되는 이름이어서 적어본다. 장 필리프 투생(장 필립 뚜생). 1957년생 프랑스 작가. 1985년 <욕조>로 데뷔. "그 후 아홉 권의 소설을 출간하여 로브그리예를 잇는 후기 누보로망의 기수로 평가받고 있다." 일단 드는 생각. '살아있었네!' 데뷔작 <욕조>(세계사, 1991)가 번역돼 나왔을 때 바로 읽은 기억이 있지만, 이미 읽은 기억만 있을 뿐 줄거리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후에 <사진기>(고려원, 1994)과 <망설임>(고려원, 1994)도 소개되었지만 따라 읽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즈음에 국내에 소개된 작가로 <팡팡>(문학사상사, 1990)의 알렉산드르 자르댕과 같이 내게는 정말 오래전 프랑스 작가다. 그 투생이 귀환했다. 



<마리의 진실>과 <벌거벗은 여인>(아르테, 2017). 사실 23년만의 귀환은 아니다. 찾아보니 90년대에도 <텔레비전>(문학사상사, 1997)이 더 소개되었고, 2000년대 와서도 <사랑하기>(현대문학, 2006)와 <도망치기>(현대문학, 2008)가 나왔었다. 게다가 <사랑하기>와 <도망치기>는 '마리의 일생' 연작의 첫 두 권이다. <마리의 진실>과 <벌거벗은 여인>의 앞 이야기인 것. 프랑스어판은 2009년에 다 나온 것으로 보아 한국어판이 많이 늦었다. 아마도 <사랑하기>와 <도망치기>가 별 반응을 얻어내지 못한 탓으로 보인다(<도망치기>는 메디치상 수상작이다).

"2005년 프랑스 메디치상을 수상한 작가이자, 작가들이 사랑하는 작가인 장 필리프 투생의 장편소설. 투생이 10년에 걸쳐 발표한 '마리 4부작' 중 세 번째 작품이며, 이 소설로 투생은 2009년 데상브르상을 수상했다. <마리의 진실>은 '마리'를 둘러싼 이야기를 담은 연작 <사랑하기>, <도망치기>에 이어 그녀의 일생 중 봄과 여름을 그리고 있다."

 

연작소설이라고 하니까 <사랑하기>부터 읽어봐야 하나 싶지만, 이미 품절상태. 흠, 여러 모로 구색을 맞추기가 어렵다. 독립적인 작품이라면 상관없지만, 같은 시리즈의 책인데 네 권이 깔맞춤하여 나오면 더 좋지 않(았)을까(아르테에서 마저 나오려는지 모르겠다). 더불어, <욕조>도 다시 나오면 어떨까 싶다. 영어판을 찾아보니 대부분의 작품이 번역돼 있다. 투생은 올해 환갑을 맞게 되는데, 작가로서도 여전히 살아있다!..



17. 0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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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에 관한 페이퍼를 얼마 전에 쓴 적이 있는데, '카프카 전집'(솔출판사)의 일환으로 그의 편지와 일기가 추가되었다. 전집의 6권으로 나온 <카프카의 일기>(솔출판사, 2017)와 8권으로 나온 <밀레나에게 쓴 편지>다. <밀레나에게 쓴 편지>는 다른 번역본이 있지만 일기 완역본 출간은 처음이어서 반갑다('서프라이즈'다). 표지는 묘하게 안 맞는군(이것도 컨셉트인가 보다). 참고로 카프카의 일기 일부는 <꿈>(워크룸프레스, 2014)에도 수록돼 있다.

 

"솔출판사 <카프카의 일기>는 한국에서 최초로 출간한 카프카 일기의 완역본이다. 그동안 카프카 문학의 뿌리를 궁금하게 여기던 한국 독자들에게 이 책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실제로 카프카의 일기 속에는 일부 소설들의 습작 문장이 실려 있다. 일기는 카프카 문학의 뿌리이자 습작이었다는 의의가 있다."

사실 이 카프카 전집은 출간이 지지부진한데다 번역도 고르지 않아서 카프카 독자들에겐 '계륵' 같은 존재였는데, 이번 일기와 편지의 출간으로 점수를 좀 만회하는 듯싶다.

 

 

그래도 물론 만족스럽지는 않다. 애초에 전집 6권은 편지 모음의 하나인 <행복한 불행한 이에게>(솔출판사, 2004)였지만 이번에 나온 <카프카의 일기>로 대체되었기에 아마도 편지갈이를 해서 다시 나올 것 같다. 기존 번역을 갖고 있는 독자들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된다고 할까. 게다가 전집의 10권은 애초에 누이에게 보낸 엽서들을 묶은 <카프카의 엽서>(솔출판사, 2001)였지만 <그리고 네게 편지를 쓴다>(솔출판사, 2016)라는 단행본으로 다시 나왔었다. 전집으로선 이가 빠진 셈인데(대체 이 전집에는 컨트롤타워가 없는 것인가?), 이 또한 전집판으로 다시 나오는 것인지 궁금하다(같은 책을 세 번 구입해야 한단 말인가?!).

 

 

앞서 다른 페이퍼에서 언급했지만 밀레나에게 보낸 편지들은 범우사판과 지만지판으로도 나와 있다. 전집판이니 만큼 솔출판사판이 정본 노릇을 해주면 좋겠다. 참고로, <카프카처럼 글쓰기>(아인북스, 2014)도 편지 선집으로 나온 책이다. <행복한 불행한 이에게>의 발췌본으로 보인다.

 

 

카프카의 주요 작품들에 대해서는 강의를 진행한 적이 있지만 일기와 편지가 추가적으로 출간된 만큼, 게다가 전기와 여러 연구서도 보강한 만큼 올 가을에는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강의를 진행해보려고 한다. 그러자면 전집 말고도 읽은 게 상당하다. 우선은 <카프카답지 않은 카프카>(교유서가, 2017)부터 시작해볼까...

 

17. 0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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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으로 묘조 기요코의 <카프카답지 않은 카프카>(교유서가, 2016)를 고른다. 저자는 생소하지만(그래서 '발견'이다) 카프카 관련서로는 바로 '이 책'에 해당한다. 나로선 읽어보고픈 책이었다는 뜻이다. 


"이 책은 기존의 카프카상을 깨고 좀더 인간적이며 생생히 살아 숨쉬는 카프카의 모습을 재구성해 보여준다. 저자는 1912년 9월부터 11월까지 약 두 달 반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이 기간은 카프카의 생애 가운데 가장 풍요로운 작품 활동의 시기였다. <판결>, <실종자>, <변신>은 카프카가 생전에 출간한 작품 가운데 절반에 해당한다. 그가 이렇게 왕성한 집필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당시 카프카의 편지, 일기, 산문과 이들 작품을 시간 순으로 독해하면서 카프카의 성장 과정과 주변 환경, 내면을 종횡무진으로 엮어낸다."

1912년 9월부터 11월까지 카프카에게 가장 중요했던 인물은 첫번째(나중에는 두번째) 약혼녀가 되는 펠리스 바우어다(지금까지는 주로 펠리체라고 표기됐지만 '펠리스'라고 발음된다고 해서 이 책에서도 '펠리스'로 표기되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방대한 분량의 편지가 남아 있고 번역본으로도 나와 있다. <카프카답지 않은 카프카>는 시기 카프카의 작품과 전기 자료를 읽는 데 유용한 가이드북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도 카프카 관련서는 상당 권을 구입했는데, 가장 고대했던 책은 바로 지난 달에 나온 라이너 슈타흐의 평전 삼부작 가운데 마지막 권이다. <초년 시절>이라고 해야 할까. 연대기적으로는 가장 앞선 시기를 다루지만, 여하튼 출간 순서로는 맨마지막이었다. 



슈타흐의 책으론 서플먼트성의 <뜻밖의 카프카: 99가지 사실>이 먼저 나오기도 했는데(영어 보급판은 내년에 나온다), 브라질 출신의 철학자 미카엘 뢰비의 <프란츠 카프카>와 함께 책상 가까이에 놓고 있다. 연초의 러시아 문학기행 이후에는 한동안 카프카 읽기에 매진할 참이다...


16.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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