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에 나온 몇 권의 책에 간단한 스크랩 스케치. 지난주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눈에 띄는 인문서는 없지만, 자본주의적 탐욕과 그로 인한 빈곤의 문제를 다룬 책들의 인상이 강렬하다. 제일 먼저 장 지글러의 <빼앗긴 대지의 꿈>(갈라파고스, 2010).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갈라파고스, 2007), <탐욕의 시대>(갈라파고스, 2008)과 함께 '장 지글러 3부작'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한겨레의 기사를 참고하면(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09789.html), "원제(‘서양에 대한 증오’)가 말해주듯 이 책에서 지글러는 서방의 과오가 자체 교정 불능의 지경에 이르렀으며 마침내 광범위한 저항을 부를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니까 책이 수신자는 '빼앗긴 대지'의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의 증오 대상인 서구인들이다(이 책으로 저자는 '인권저작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2007년 한 해 동안 빈곤으로 인한 지구촌 사망자는 5700만. 이는 6년에 걸친 제2차 세계대전 전체 기간 인명피해와 맞먹는 것이었다. 지글러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을 지속 가능케 한 것이 신자유주의요 그것을 진두지휘한 세계은행이다. 그 배후에 워싱턴이 있다. 작가 켄 사로위와 등 9명이 교수형을 당한 것은 나이지리아의 소수 매판세력과 서방의 유착, 그것이 부른 부패와 파괴를 묵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울레 시엔 코트디부아르 외무장관이 2001년 9월 공식회의에서 이런 말을 했다. “만일 여러분들이 노예제도가 자취를 감추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주십시오. 내리쬐는 뙤약볕 밑에서 또는 빗줄기 속에서 수백만의 농부들이 여러 달 동안 힘들게 노동한 대가로 얻는 상품의 가격이, 에어컨이 돌아가는 사무실에서 농부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볼 필요 없이 컴퓨터만 들여다보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노예제 폐지 이후) 방법만 바뀌었을 뿐입니다. … 흑인들은 이제 앤틸리스 제도나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는 배에 강제로 실리는 일은 없어졌으니까요. 그들은 자기 땅에 머물러 살 수 있죠. 하지만 그들이 자기 땅에서 흘린 피와 땀에 대해서 런던이나 파리, 뉴욕에서 값을 매깁니다. 노예상인들은 죽지 않았습니다. 노예상인들은 주식투기꾼으로 모습만 바꾸었을 뿐입니다.”

두번째 책도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겨냥한 것인데, 필리핀의 사회학자이자 반세계화 운동가 월든 벨로의 <그 많던 쌀과 옥수수는 모두 어디로 갔는가>(더숲, 2010). 원제는 '식량전쟁(The Food Wars)'.  

저자는 전세계 식량 위기와 식량전쟁의 원인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세계은행·IMF·WTO의 '삼각편대'를 그 원흉으로 지목한다. 경향신문의 리뷰(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1003121709525&code=900308)를 간추리면 이렇다.    

필리핀 사람들의 주식은 쌀이다. 필리핀은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쌀을 자급했다. 그러나 지금은 매년 100만~200만t의 쌀을 수입하는 처지이며, 가난한 지역에 쌀이 안전하게 배급되도록 군대까지 파견하는 실정이다. 왜 그렇게 됐을까. 필리핀 국립대학 교수이자 저명한 반세계화 운동가인 월든 벨로는 ‘식량전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세계화와 자유주의의 본질’을 파헤친다. 멀쩡했던 나라가 사람들의 주식조차 마련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게 된 배경에는 ‘녹색 혁명’이나 ‘농업 연료’에 대한 잘못된 믿음, 세계은행·국제통화기금(IMF)·세계무역기구(WTO)의 오판, 거대 곡물회사의 농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추동하는 신자유주의가 있었다. 세계은행·IMF·WTO의 삼각편대는 자유무역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구조조정을 각 나라에 강요했다. 구조조정의 핵심은 생산성과 이윤이 적은 것으로 보이던 전통적 농업이었다. 케냐, 터키, 볼리비아, 필리핀, 멕시코 등은 초기에 구조조정의 시험대에 오른 국가였다. 정부는 농업에 대한 지원을 줄였고, 전통적 자영농들은 몰락했고, 해외의 값싼 농산물이 시장을 잠식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바랐던 경쟁력 있고 빈곤 없는 세상이 왔을까. 2007~2008년 식량 위기 때문에 폭력 사태가 일어난 나라만도 30개국이 넘었다. 이는 해당 국가의 정치 위기로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세번째 책은 일본의 반핵운동가이자 저널리스트인 히로세 다카시의 <제1권력>(프로메테우스, 2010). 부제는 '자본, 그들은 어떻게 역사를 소유해왔는가'이다. 아직 리뷰기사는 뜨지 않았는데, 간단한 소개로는 "금융재벌로 대표되는 자본-권력이 어떤 방식으로 20세기를 지배했는지 속속들이 파헤친 책이다. 다치바나 다카시와 함께 일본의 대표적인 저널리스트로 손꼽히는 히로세 다카시는 JP모건과 록펠러로 대표되는 미국의 독점재벌이 어떻게 부를 축적하고 세계 정치경제를 조종해왔는지를 추적한다."  

 

인사회(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의 추천사는 이렇다. "‘1인 대안언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저널리스트이자 반핵평화운동가인 히로세 다카시의, 고유명사를 낱낱이 까발려 자본가계급 인맥을 추적한 그 필생의 작업의 신호탄이 된 문제작. 역사를 자본의 시점에서 냉정하게 응시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 이들에겐 그야말로 필독서요, 시시각각 현실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세계적인 사건이나 뉴스들을 접할 때 그것을 어떻게 읽고 판단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또 하나의 시각을 제공하는 책이다." 

'1인 대안언론'이란 말이 눈길을 끄는데, 히로세의 저작 리스트를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체르노빌의 아이들>, <위험한 이야기>, <미국경제의 지배자들>, <그들만의 제국>, <붉은 방패>, <하나의 사슬>, <금융제국>, <무기제국>, <석유제국>. <지구의 함정>, <클라우제비츠의 암호문>, <연료전지 혁명>, <로마노프 가의 황금>, <역사를 목격한 영화>, <할리우드 대가족> 등. 우리로 치면 '논픽션의 강준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책은 "JP모건과 록펠러로 대표되는 미국의 독점재벌이 어떤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고, 그 과정에서 어떤 행태를 저질렀는가? 또 그들이 세계경제를 어떻게 좌지우지했으며 그들에 의해 미국은 물론 세계의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이 어떻게 조종"되었는가를 다룬다. JP모건과 록펠러에 대해서는 두툼한 책들이 나와 있기 때문에 참조해볼 수 있겠다.   

 

   

<제1권력>에 대한 일본 독자의 서평 가운데는 "자본의 논리로 근현대사를 관통한 독보적인 저작. 내가 읽은 가운데 최고의 미국사다!"란 평도 있다고. 그러고 보니 이번주에 나온 강준만의 신작도 '미국사 산책'이다.    

 

 

10. 03. 13.  

P.S. 장 지글러의 책에서도 언급되는 나이지리아 내전에 대해서는 나이지리아 출신작가 아디치에의 소설도 참고해볼 수 있겠다. '모던 클래식'으로 나온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민음사, 2010). 소개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한국일보(10. 03. 13) 쌍둥이 자매의 삶을 뒤흔든 검은대륙의 내전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나이지리아 출신 작가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33)의 2006년 작으로, 그의 두 번째 장편이다. 1980~90년대 나이지리아 군부 독재 치하를 배경으로 억압적 가정에서 자라는 열다섯 살 소녀의 성장을 다룬 첫 소설 <보랏빛 히비스커스>(2003)로 호평을 받았던 아디치에는 이 작품으로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오렌지상을 받고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 주목할 100대 영문 소설'에 이름을 올리는 등 작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아프리카 현대문학의 거장인 치누아 아체베의 뒤를 이을 작가로 촉망받는 그는 모국에서 의과대학을 다니다가 18세에 미국 유학을 떠나 문예 창작과 아프리카 연구로 각각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미국과 나이지리아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소설은 1967~70년 나이지리아 내전을 배경으로 한다. 1960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 친영(親英) 세력인 하우사족과 갈등을 겪던 이보족이 군부 쿠데타를 통해 나이지리아 안에 '비아프라'라는 새 국가를 세우면서 나이지리아와 비아프라 사이엔 전쟁이 벌어졌다. 어릴 적 부모로부터 이 전쟁의 참상을 전해 들은 작가 아디치에는 식민 통치의 잔인한 유산, 무수한 희생자를 낳은 소수 지배자의 무책임한 행위를 알리겠다는 열망으로 작품 활동을 해왔다고 한다.

작품의 중심 인물은 이보족 출신의 엘리트 여성이자 쌍둥이 자매인 올란나와 카이네네. 서로에게 경쟁 의식을 가진 이 자매는 각각 대조적 성격의 남성들과 교제한다. 카이네네는 아프리카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나이지리아를 찾은 영국인 작가 리처드와, 올란나는 나이지리아 독립을 주장하는 개혁파 지식인 오데니그보와 사귄다. 하지만 애인이 다른 여성과 동침한 것에 좌절한 올란나가 리처드와 충동적으로 하룻밤을 보낸 탓에 자매는 반목하게 된다. 하지만 내전은 두 사람의 안온한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이런 고난 속에서 두 자매는 다시금 가족애를 회복한다.

작가는 힘있는 필체로 비극적 역사 속에서 요동치는 사랑과 배신, 질투 등 인간적 감정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한편, 아수라 같은 상황에서도 기어이 희망을 찾아내는 생의 의지를 통해 울림이 큰 드라마를 완성했다.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인 미국 작가 조이스 캐럴 오츠는 "열정적 지성으로 한 시대의 초상을 그려낸, 20세기 고전들의 훌륭한 후계자"로 아디치에를 평가했다.(이훈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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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03-14 15:53   좋아요 0 | URL
비아프라 내전을 소재로 한 소설이 나왔군요.국제스릴러물의 대가인 프레드릭 포사이트가 문명을 알린 게 비아프라 내전 르포였어요.요즘 나이지리아는 기독교인과 이슬람교도가 내전을 하고 있더군요.

로쟈 2010-03-14 16:17   좋아요 0 | URL
잘 아시는군요. 저도 기회가 되면 언젠가 아프리카문학 공부도 좀 해봐야겠어요. 5년쯤 뒤면 시간이 있으려는지...
 

<근대의 사회적 상상>(이음, 2010)이 출간된 김에 마이리스트를 만들어놓긴 했는데, 책은 아직 본격적으로 읽진 못했다. 며칠전 도서관에서 원서를 대출하고 오늘은 2002년 방한시 강연문들을 모은 <세속화와 현대문명>(철학과현실사, 2003)을 대출했다. 사정을 보아 따로 서평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다음주 한겨레21의 서평 후보이기도 했는데, 결국은 <16세기 과학혁명>만을 다루었다). 한겨레 고명섭기자의 서평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겨레(10. 03. 13) 근대 시민사회의 도화선 ‘새로운 상상’  

<근대의 사회적 상상-경제·공론장·인민주권>은 정치철학자 찰스 테일러(1931~)의 2004년 저작이다. 테일러의 저작 활동은 ‘철학적 인간학’과 ‘서구 근대성 탐구’라는 두 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 책은 서구 근대성을 ‘사회적 상상’(social imaginaries)의 관점에서 살피는 저작이다. 지은이는 근대의 사회적 상상을 특징짓는 세 가지 형식으로 ‘시장경제’ ‘공론장’ ‘인민주권’을 제시한다. 이 세 가지 형식에 대한 탐구가 이 책의 본론을 이룬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태어난 테일러는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경제학·정치학을 공부했다. 캐나다로 돌아온 뒤 맥길대와 옥스퍼드대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로 있다. 그는 일찍부터 학문활동과 정치실천을 함께 한 다소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영국에 유학하던 시절에 신좌파 정치운동을 했으며, 귀국한 뒤에는 사회민주주의 계열 신민주당의 핵심 이론가로 활동했다. 자신의 정치적 열정과 경험을 철학적으로 담론화하려는 행동주의자의 면모가 저작마다 깊이 배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정치사상은 흔히 ‘자유주의적 공동체주의’로 요약되는데, 개인의 자율성과 공동체 귀속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가 주요 고민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 고민의 과정에서 테일러는 ‘서구 근대성’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하고 해석하는 작업을 벌였는데, <근대의 사회적 상상>에서 그런 작업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지은이가 제시한 ‘사회적 상상’이라는 말은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를 연상하면 다소 수월하게 감이 잡힌다. 지은이 자신도 앤더슨의 그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본문에서 밝히고 있다. 집단적 상상이 현실적인 힘을 행사할 때 그것을 두고 ‘사회적 상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논리정연한 이론이 아니라 모호하고 흐릿한 이미지와 이야기로 퍼져나가기 때문에 ‘상상’이다. 이 사회적 상상 중에 결정적으로 근대를 규정한 세 가지 형식이 경제·공론장·인민주권이라는 것이 지은이의 기본 가정이다. 

먼저 지은이는 ‘사회적 상상’이라는 것이 어떻게 싹터서 자라나는지를 설명한다. 시작은 이론이다. “이론이란 처음에 몇몇 사람들이 주장하다가 소수 엘리트의 사회적 상상 속으로, 이어 사회 전체의 사회적 상상 속으로 침투해 들어간다.” 지은이는 17세기에 ‘근대적인 사회적 상상’을 뒷받침하는 이론이 처음 출현했으며, 그 이론을 제출한 사람이 네덜란드 법학자 휘호 흐로티위스(그로티우스·1583~1645)와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1632~1704)였다고 딱 짚어 말한다. 이 두 사람은 평등한 개인들이 계약을 체결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질서를 만든다는 관념을 이론으로 제시했다.

여기서 결정적인 것은 개인들의 평등성과 상호이익인데, 이것이 바로 근대적 도덕질서의 핵심을 구성한다. 이 근대적 도덕질서가 사회적 상상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 상상 자체를 바꾸고 진전시킨다. 그 결과로 나타난 근대의 사회적 상상체가 ‘평등한 상호이익의 세계’ 곧 ‘시민사회’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이 시민사회 가운데 첫 번째로 등장한 것이 ‘시장경제’다. 경제에 대한 근대적 이미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18세기 ‘정치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다. 평등한 개인들의 이기적 활동이 전체의 이익을 증진시킨다는 ‘보이지 않는 손’의 질서가 이 경제다.  



지은이가 강조하는 두 번째 ‘사회적 상상’은 ‘공론장’이다. 공론장을 처음 제대로 규명한 사람은 위르겐 하버마스다. 하버마스는 <공론장의 구조변동>에서 18세기에 ‘공론’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서유럽에 처음 등장했으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 일종의 토론 공간 안에서 서로 연결됐다고 말한다. 이때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묶어준 공통의 공간이 책·팸플릿·신문 같은 인쇄물이었다. 인쇄물 자체가 실제의 공간은 아니므로 공통 공간, 곧 공론장은 장소를 초월한 일종의 ‘상상적 존재’다. 그러나 이 공론장은 정치권력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테일러는 공론장이 권력의 외부에 있다는 점이야말로 고대의 아고라와 다른 점이라고 강조한다. 고대 그리스의 토론장인 아고라가 권력을 직접 행사하는 정치 내부의 장이었음과 달리, 근대의 공론장은 정치 외부에서 정치권력에 영향을 주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론장이 정치에 규범적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배후에 ‘인민주권’의 관념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공론을 만드는 것은 궁극적으로 인민이며, 이 인민이 주권자이므로 정치권력이 인민의 감독과 견제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인데, 이런 생각을 통해 ‘스스로 지배하는 주권적 인민’이라는 ‘사회적 상상’이 사회 전체로 퍼졌다. 그 결과는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이었으며, 이 두 혁명은 인민주권을 확고부동한 것으로 만들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테일러는 이 책의 근대성 논의를 더 밀고 나가, 2007년에 펴낸 대작 <세속의 시대>에서 포괄적으로 상술했다고 옮긴이는 전한다.(고명섭 기자) 

10. 0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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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나온 놀라운 책 중의 하나는 마틴 켐프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유문화사, 2010)이다. 저자는 옥스포드의 미술사학과 교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전문가이고 국내에도 이미 그의 <레오나르도>(을유문화사, 2007)가 번역돼 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단순히 미술사에 관한 책이 아니라 '레오나르도에서 하블 망원경까지'란 부제대로 과학사까지 포괄한 책으로 '시각적인 것'의 역사와 '시각적 직관'의 의미에 대해서 두루 다루고 있다. 아직 마땅한 서평이 뜨지 않아서 책소개를 일부 참고하면 "르네상스 시대 초기 원근법부터 바늘구멍 사진기, 입자 가속기, 허블 망원경, 3차원 컴퓨터 모델까지 예술가와 과학자들이 고안했던 도구를 다양하게 언급하는 이 책은 예술가로 레오나르도, 뒤러부터 사진 발명가, 현대 조각가까지 다루고 있으며. 과학자로 갈릴레오, 다윈에서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굴드, 에어빈 슈뢰딩거까지 소개하고 있다. 미술, 건축, 사진술, 천문학, 의학, 수학, 생물학 등 박학다식한 지식의 통섭을 지향하는 백과사전 같은 책이다." 

  

지은이는 시각적인 것을 바라보는 참신한 역사적 관점을 제시한다. 미술과 과학의 엄격한 경계와 구분에서 뒤로 물러섬으로써 공통 테마들을 끌어내어, 시각적인 것의 역사가 제공하는 자유와 통찰력을 누려 볼 것을 호소한다. “예술과 과학은 둘 다 지식이 무너지는 지점에서 시작된다는 것의 나의 강한 느낌이다. 시각적 직관은 미지의 세계 속을 더듬어 나아가기 위해 우리가 가진 가장 막강한 도구 중 하나다. ”레오나르도에서 허블 망원경까지 추적하는 이 탐사에서 지은이는 공간에 대한 처리와 공간 좌표의 지속성, 부분과 전체의 관계, 자연 속의 기하학, 질서와 카오스의 계, 임계성에서의 계, 카메라의 사용, 초기 사진의 신뢰성과 객관성 문제,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이미지 작업-입자 궤도, 파인만 다이어그램, 의학 스캔-등을 생각해 본다.

   

제목 자체는 불가불 메를로퐁티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동문선, 2004)을 같이 떠올리게 하는데, 비록 원제는 일치하지 않더라도 '시각적인 것'의 경험과 그 의미에 대해서 깊이 숙고해보고 싶은 욕구를 부추긴다. 책은 어제 구입했지만 독서는 좀 미뤄질 듯하다. 서평을 쓸 기회가 생기면 당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10. 03.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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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파브르만큼 친숙한 곤충학자의 이름은 없지만, 그가 쓴 <파브르 곤충기>를 다 읽은 독자는 거의 없다. 그건 기존에 나와 있는 책들이 모두 축약본이거나 각색본이기 때문인데, 이번에 드디어 제대로 된 완역본이 나왔다. 분량은 생각보다 방대하다. 10권짜리니까. 이 정도면 어린이용이라고만도 볼 수 없겠는데, '내집마련'을 하게 되면 서가 한쪽에 꽂아두고 싶다. 완역이라는 거대한 작업을 해낸 역자 김진일 교수와의 인터뷰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겨레(10. 03. 06) "왜 벌레냐고? 곤충 무게는 인류의 1만배” 

인터넷서점에서 <파브르 곤충기>를 검색하면, 200여권의 책이 좌르르 쏟아진다. 대부분 어린이물이거나 만화각색본, 또는 발췌축약본이다. 이도 아니면 일본어 축약본을 재번역한 것들이다. 이런 차에, 평생 곤충 연구에 매달려온 곤충학자 김진일(68·성신여대 명예교수)씨가 <파브르 곤충기> 열 권을 완역하여 세상에 내놓았다. 10년쯤 전에 한 완역본이 있었으되, 오래전 절판된데다 비전공자의 번역이어서인지 내용 오류가 적잖았으니, 김진일판 <파브르 곤충기>는 명실공히 완역 정본이라 하겠다. 



<파브르 곤충기>를 쓴 장 앙리 파브르(1823~1915)는 아흔세 살까지 살았다. 박물학자이자 시인 겸 철학자였던 그가 생의 말년에, 그러니까 56살부터 86살까지 30년에 걸쳐 곤충(벌레) 관찰과 실험을 동시진행 해가며 집필한 책이 <파브르 곤충기>다.

파브르는 프랑스 남쪽 지중해안의 몽펠리에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 공교롭게도 옮긴이 김진일씨 역시 그 대학에서 지중해안 모래풍뎅이 연구로 1978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학 시절 “파브르가 관찰하고 연구한 곳을 발품을 팔아 돌아다녔던” 그이기에 이번 완역본 출간은 30여년 묵은 소망을 비로소 이룬 셈이다.

3일 서울 사직동의 집필실을 찾았을 때 그는 오래도록 끌었던 일을 털어낸 듯 덤덤한 표정이었다. 뜻밖에도 그는 <파브르 곤충기>를 이미 교수 정년퇴임 한 해 전인 2006년 중반에 3년에 걸쳐 다 마친 상태였다고 말했다. 곤충 연구와 후학 양성으로 바삐 달려온 그는 만약 자신이 하지 않는다면 누가 번역할까 하는 절실함이 있었다고 했다.

“앞으로 저 원전을 번역할 사람 안 나와요. 왜냐, 연구 환경이 달라요. 저만 해도 초창기 사람이니 넓게 공부했거든요. 풍뎅이도, 나비도 이야기도. 그런데 요즘은 풍뎅이라도 모래풍뎅이 하나만 파요. 다른 풍뎅이는 몰라요. 사실 교수 말년이면 잡무도 없었고요.”

우리나라 곤충학의 권위자인 그는 국내 곤충학의 사정을 묻자 곤충 연구에 대한 세간의 무심함을 오래 감내해온 노학자답게 “도무지 한국 사람들은 ‘벌레’가 지구 생물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상상을 안 한다”며 외려 질문을 던졌다.

“이거 대답해봐요. 전세계 개미를 다 모아놓으면 무게가 얼마나 될까?” 눈만 멀뚱거리고 있는데, 그는 금세 답을 일러줬다. “어디까지나 추산이지만 개미 체중을 합치면 인간의 100배가 돼요. 개미는 전체 곤충의 100분의 1밖에 안돼요. 그러니 곤충 무게가 사람 종족의 1만배라는 얘기예요. 곤충들 기존 종명만 해도 150만개가 넘어요.”

<파브르 곤충기>에는 파브르가 곤충 관찰에 빠져 있다가 동네 아낙들에게 정신이 모자란 이 취급을 받는 일화가 나오는데, 그는 그게 남 이야기가 아니었다고 했다. “젊은 시절 벌레를 잡으러 다닐 때 ‘하필이면 왜 벌레냐’는 눈길들이었어요. 흰불나방이 창궐하던 여름, 불광동 근처를 가다 번데기를 뒤지니까, 누군가 무슨 약에 쓰냐고 묻더라고. 연구라고 했더니 저 혼자만 쓰려 안 가르쳐준다고 화를 내더라고요.”

그는 파브르의 큰 업적으로 동물행동학의 선구적 역할을 꼽았다. “동물행동학이 생물학 정식 분과가 된 게 불과 30년인데, 파브르는 이미 100년 전에 이 책을 썼어요. 행동 관찰을 통해 종마다 다 특성이 있음을 드러냈죠.”

옮긴이 역시 국내 최초로 동물행동학을 개설했다. <파브르 곤충기> 열 권에는 권마다 초입에 옮긴이의 ‘맛보기’ 글이 실렸는데, 풍뎅이 등 국내 곤충을 체계적으로 분류한 분류학자이기도 한 옮긴이가 분류학에 무지했던 파브르를 시종 비판하는 대목들도 흥미롭다. 파브르는 분류학자들에게 불평을 쏟아내며 기존 학명을 무시하고 종종 “자기 마음대로” 이름을 붙여 썼다. 옮긴이는 “파브르가 학명을 써주었다면 혼란이 덜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사실 김진일판 번역본의 특징은 파브르가 오기한 숱한 학명을 바로잡고 그가 잘못 이해했던 생물학적 사실들도 알려준다는 데 있다. “파브르는 진화론을 부정했어요. 곤충들은 ‘본능’ 행동밖에 없다는 거야.”

그가 파브르에게 가장 감탄했던 것은 ‘관찰방법’이다. “아, 이 사람이 이런 걸 쉽게 풀어가는구나. 땅속 개미가 굴을 뚫어놨지, 어떻게 그 굴 속으로 들어갈까? 지푸라기를 집어넣고 파기 시작한 거라. 아주 쉽지, 그러나 그 방법을 생각해 실천한 건 누구냐 말이지. 그게 뛰어난 거죠. 장수금풍뎅이는 갈대를 꽂아놓고 따라 들어갔지. 그걸 꽂지 않으면, 굴이 어딨는지 모르잖아요. 그걸 팍 생각해 냈다는 거. 콜럼버스의 달걀이다 이겁니다. 이 책 안에는 콜럼버스의 달걀이 정말로 많단 얘기예요.”

첫 권을 낸 지 5년여 만에 완간된 김진일판 <파브르 곤충기>에는 갈피마다 파브르의 문학적 표현들이 살아 숨쉰다. 이를테면 10권에선 유럽장수금풍뎅이의 굴 파기를 관찰하며 크레타 미궁에서 아리아드네의 실을 붙잡고 빠져나온 테세우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신화 속 이야기와 그 벌레가 살아남는 방식이 얼추 닮은꼴임을 보여주는 식이다.

“파브르가 연구 결과를 놓고 책을 냈다면 쉬웠어요. 실은 실험·관찰을 진행하며 책을 썼거든. 그런데도 도입, 본론, 결론으로 순서가 정연하거든. 곤충들 제멋대로 행동하는데, 나는 이건 천재 아니곤 불가능한 일이라고 봐요.” (허미경기자) 

10. 03. 07.   

 

P.S. 올해 나올 과학서로 기대를 갖고 있는 책은 다윈의 <종의 기원>과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 그리고 스티븐 제이 굴드의 과학에세이집 등이다. <종의 기원>과 <사회생물학>은 새 번역본. 굴드의 에세이집은 세 권 가량이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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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0-03-07 19:34   좋아요 0 | URL
저도 언젠가는 10권 다 마련해서 꽂아 두고 싶네요(한권 한권이 가볍게 볼 가격은 아니지만...;). 어렸을때 축약본을 재미있게 보고는 했었는데요. 그래도 실제 벌레들은 싫더군요. 무서워요-.-

로쟈 2010-03-08 20:18   좋아요 0 | URL
보통은 발이 많고 기어다니는 동물에 대해선 혐오감을 갖기 마련이죠...

노이에자이트 2010-03-07 20:47   좋아요 0 | URL
시튼의 동물기와 파브르의 곤충기를 모두 외워버리겠다고 결심한 적이 있었는데...좋아하는 곤충이 있나요?

로쟈 2010-03-08 20:16   좋아요 0 | URL
실제로 곤충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요.^^; 교과서에 나온 말똥구리 정도라면 모를까.

노이에자이트 2010-03-09 16:20   좋아요 0 | URL
저는 웬만한 곤충은 다 좋아해요.제일 귀여운 것은 배추벌레.여치도 좋아해요.날개를 떨면서 우는 모습은 정말 신비합니다.

비로그인 2010-03-08 14:32   좋아요 0 | URL
막내아들이 7살이고 이제 초등 1학년인데, 이녀석 꿈이 곤충학자예요. 이걸 사둬야 되는건지, 나중에 때가 되면 사는게 맞는건지...ㅠㅠ. 스물스물 지름신이 자꾸 고개를~~ㅋㅋ.

로쟈 2010-03-08 20:14   좋아요 0 | URL
곤충학자가 꿈이라면 바로 사주셔야겠는데요.^^

루체오페르 2010-03-08 16:15   좋아요 0 | URL
와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책이네요. 언젠가는...리스트에 올려놔야겠습니다.

로쟈 2010-03-08 20:14   좋아요 0 | URL
네, 소장해둘 만한 책입니다...

두리아재 2010-05-22 22:22   좋아요 0 | URL
10년전 이미 출간된 바 있는 1999년 완역본(탐구당)을 개작한 것인지? 진짜 김씨 스스로 번역한 것인지..? 곤충기 번역은 단순히 곤충전공자의 곤충 용어 지식 보다는 프랑스 어문학에 대한 깊은 인문학적 지식을 필요로 합니다.불문학자들이 10년 넘어서야 완성한 원고지 2만장의 분량의 대작을 김씨는 3년만에 번역했다고 자랑을 하는데... 글쎄요? 무언가 검증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로쟈 2010-05-22 22:36   좋아요 0 | URL
10년전 완역본이 탐구당본이군요. 찾아보니 소장하고 있는 대학도 6곳밖에 안됩니다.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이 '검증'은 해주시면 좋을 텐데요...

두리아재 2010-05-22 23:57   좋아요 0 | URL
10년전 곤충이야기 10권 전체를 통독하고나서 느낀 점은 파브르는 곤충연구자라기 보다는 철학자의 영역에 가깝다는 것이었읍니다.특히 그의 백과전서적인 박식함과 어휘 구사력은 그야말로 서사시를 읽는 느낌이었지요. 프랑스어의 세밀한 뉘앙스를 우리 말로 옮기는일은 불문학을 전공한 역자들이라 해도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겠지요. 그런데 번역에 있어서의 윤리적 기준은 매우 중요한 것이어서 신중한 처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이미 기존 번역물이 존재하고 있을때는 말이지요.위의 기사를 보면 김진일씨도 곤충 전공자로서 과거의 탐구당본을 이미 숙독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인데 그렇다면 그 자체가 의심의 여지가 없지 않군요.자신의 것이 정본이라는 홍보성의 오만함보다는 보다 겸손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과거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번역에 있어서 열화당과 예경출판사의 사례에서 보듯이 말이지요
 

책은 바로 구해놓았지만 다른 책들에 밀려 아직 읽지 못한 책은 웬디 브라운의 <관용: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갈무리, 2010)이다. 마땅한 리뷰가 올라왔기에 워밍업으로 미리 읽어둔다. 관용이 언제나 '강자'의 미덕이라는 상식을 새삼 상기시켜준다.   

   

서울신문(10. 03. 06) 관용이란 말에 속지 말라, 그 속에 정치·폭력 숨었다

이런 예를 들어 보자. 당신은 최근 같은 팀의 한 동료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처음에는 불쾌감과 함께 심한 거부감을 느꼈지만, 곧 그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전처럼 함께 일을 해 나가기로 했다. 소수자의 권리와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관용의 정신’을 발휘해서 말이다. 이런 경우 당신은 아마 스스로의 드넓은 포용력에 만족하며 “잘한 일이다.”라고 뿌듯해할 것이다. 
  
그러나 ‘관용-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이승철 옮김, 갈무리 펴냄)을 펴낸 정치철학자 웬디 브라운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이를 두고 “관용의 탈정치적 전략에 속았다.”고 평가할 것이다. 그러면서 “관용을 운운하기 전에, 소수자에게 느끼는 불쾌감의 근거가 무엇인지, 또 그것이 관용만으로 해결이 될 문제인지를 고민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홍세화 한겨레신문 기획위원이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창비 펴냄)를 통해 한국에 처음 소개한 ‘관용(톨레랑스·Tolerance)’이란 개념은, 1995년 책 출간 당시부터 우리 사회에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며 크게 유행했다. 각종 갈등의 씨앗을 품고 있던 한국 사회에서 서로 다른 것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관용은 주목받는 단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관용은 한국 사회는 물론 세계 각 지역에서 여전히 결코 의심받지 않는 가치 중 하나로 존재한다.  



하지만 브라운 교수는 이렇게 관용에 절대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를 경계한다. 그는 관용이 ‘자유’나 ‘평등’의 동의어가 아님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관용이란 이름 뒤에 숨은 정치적인 계산들과 헤게모니 투쟁, 심지어 그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의 실태를 낱낱이 고발한다. 그는 최근 20년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예로 들며, 이런 ‘관용의 폭력’이 우리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지적한다. 책에서 설명하는 관용의 탈정치성은 앞서 예로 든 성적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비슷하다.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인식 문제는 정치적·사회적으로 이해해야 할 요소가 분명 있다. “동성애자는 불쾌하다.”는 차별적 인식을 갖게 한 사회 구조는 무엇인지, 또 이런 차별을 어떻게 해결할지의 문제는 개인이 아닌 국가나 사회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관용은 이러한 국가나 사회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논리로 이용되고 있다고 브라운 교수는 말한다. 인종차별, 동성애 혐오 등 사회적 문제를 단지 관용이 부족한 개인의 탓으로만 돌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에 대한 본격적인 정치 논쟁을 피하고, 소수자들을 배려받아야 할 수동적 위치로만 몰아가면서 이들이 정치세력화되는 것도 막는다.

나아가 브라운 교수는 책의 부제로 붙였듯 이런 식으로 관용이 현대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이 될 수 있음도 지적한다. 관용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면, 사실상 소수자를 포함한 국민의 권리 보장과 계층 간의 소통을 책임져야 할 국가는 교묘하게 이 책임을 회피할 수 있고, 기득권에 대한 도전 역시 사전에 막을 수 있다.

브라운 교수는 관용이 제국주의적 침략 전쟁에도 활용되고 있다고 전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미국이 중동 국가를 상대로 벌인 수많은 전쟁에는 아이러니하게도 관용의 논리가 적용됐다. 미국은 이슬람국가나 후진국의 문명은 불관용적이기 때문에 서구 선진 국가의 관용적인 문명이 이들을 처단하고 민중을 해방시켜야 된다는 논리로 침략 전쟁을 일으켰다. 관용의 범위를 자의적으로 정하고 그것을 벗어나는 것들에는 거리낌 없이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책에서 브라운 교수는 계보학의 방법을 통해 관용 담론이 전략적으로 사용된 흐름을 추적해 간다. 애초 종교개혁 이후 종교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사용된 때부터 인도주의로 의미가 확장되고 또 최근 다문화주의의 한 담론이 되기까지, 다양하게 변화한 관용의 용법을 소개한다.(강병철기자) 

10. 03.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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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잡담] 관심가는 책 '관용 :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
    from High enough! 2010-03-06 21:00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 - 로쟈의 저공비행관용, 일명 똘레랑스.어쩐지 좀 멋있고, 어쩐지 좀 유식해 보이고, 어쩐지 좀 있어 보이는 그런 말이다. 사회의 소수자에 대한, 또는 대립적인 어떤 세력들 간의 적대적인 태도 대신 그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좀 뿌듯하고 멋있는 그런 개념이랄까 뭐 그렇다.오, 하지만 저 책의 시점은.'왜 소수자에 대한 시각이 불편한 거지?' 같은 근원적인 문제 해결은 없다는 거 알고 있니-라고 한...
 
 
노이에자이트 2010-03-06 20:40   좋아요 0 | URL
개인이 먼저 바뀌어야 하느냐 사회가 먼저 바뀌어야 하느냐는 오래된 논쟁이 생각나는군요.브라운은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소신인 듯합니다.하지만 사람은 가만 있고 사회가 바뀌나요? 개개인의 변화를 강조하면 기존체계는 그대로 유지하게 하는 보수적인 주장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글쎄올시다 입니다.

로쟈 2010-03-07 09:37   좋아요 0 | URL
저는 그 개인도 강대국의 개인이냐, 약소국의 개인이냐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주장만을 펼친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관용의 담론이 어떻게 사용됐는가를 보여주는 게 책의 강점이라고 생각하고요...

돈케빈 2010-03-07 01:05   좋아요 0 | URL
에이미 추아 <제국의 미래>도 중심키워드가 '관용'이더라구요.

로쟈 2010-03-07 09:37   좋아요 0 | URL
관용은 제국의 필수적인 미덕이기도 하지요...

2010-03-07 05: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07 0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07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