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에 나온 책 가운데 제목만으로 순위를 매기자면 관심도서 1위는 자오팅양의 <천하체계>(길, 2010)이다. '21세기 중국의 세계인식'이란 부제가 붙었다. 분량이 좀 얇은 편이어서 '선언적' 의미에 그치는 게 아닌가 싶어 아직 주문을 넣진 않았지만, 이런 소개문구는 나 같은 독자에게 '딱'이다('나 같은 독자'가 많지는 않은 모양인지 언론리뷰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미국을 제치고 21세기 대국을 꿈꾸는 중국의 철학은 무엇일까. 현재의 주목할 만한 중국철학자 자오팅양은 전통의 문제와 21세기 중국이 처한 세계사적 중차대한 문제에 대해 어떤 사상적 편린을 펼쳐 보이고 있는지를 이 책에서 명쾌하게 제시한다. 인류가 지금과 같이 난세에 처한 것은 '세계'는 있지만 '천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천하'란 바로 고대중국의 철인들이 갖고 있던 관념으로 천하를 얻는 일은 백성들의 마음을 얻는 것으로, 서양적 의미에서의 제국[패권] 개념과는 대립되는 중국 전통의 관념을 일컫는다.

그러니까 '세계 VS 천하', '세계체계 VS 천하체계'를 비교의 범주로 새롭게 제시하고 있는 것인데, 그것이 단지 '서양의 패권주의에서 중국의 시대로'라는 시사적 구호를 그럴 듯한 이념으로 포장한 것이 아닐까란 의혹을 사게 하면서도 한편으론 그 '그럴 듯함'에 점수를 주지 않을 수 없다.  

저자가 '천하' 관념을 통해 새롭게 세계 정치 제도를 평화롭게 이끌고 갈 구상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결국 '중국'의 입장에서 바라본 시각이고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또 다른 제국의 논리가 아닌지 면밀히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책소개에는 이미 이런 경계심도 미리 적어두고 있지만, 배울 건 배우고 취할 건 취할 수 있으리라. 1961년생이므로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는 저자의 소개는 이렇다.  

중국철학계에서 "Trouble Maker"로 일컬어지고 있는 저자는 "하나밖에 없는 현대 중국의 진정한 철학자"이자 "사유가 정밀하면서도 가장 창조적인 철학자"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하나밖에 없는'이라거나 '가장 창조적인' 같은 수식어구는 무시해도 좋겠다. 다만 'Trouble Maker'라면 그가 일으킨 'Trouble'이 어떤 것들인지 읽어봤으면 싶다('옮긴이의 말'에 들어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소개보다는 그가 리쩌허우의 제자라는 말이 훨씬 더 '구체적'이다.  

저자 자오팅양(趙汀陽, 1961~ )은 리쩌허우(李澤厚)로부터 철학을 배웠으며,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철학으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 둘의 영향, 즉 중국 고전을 통한 문제의식과 비트겐슈타인을 탐독하여 얻은 방법론적 가르침을 종합하여 저자 자신만의 독특한 철학 방법론을 세웠으니, 그것이 바로 '관점이 없는 견해'를 제시하는 것이다.

 

책의 역자도 리쩌허우의 <학설>(들녘, 2005)를 옮긴 노승현 박사다. 용장 밑에 약졸 없다고, 리쩌허우의 제자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소개다. 저자의 이미지를 찾으니 '中國哲學新星'이란 문구도 뜨는군(문득 우리는 '한국철학신성'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세계체계' 대신에 중국 전통의 '천하체계'를 내세운 만큼 자부심이 없지 않겠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다.

오로지 중국의 세계관만이 등급에서 '국가'보다 높고/큰 분석의 각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세계 정치에 관한 문제에서 중국의 세계관, 즉 천하 이론만이 유일하게 합법적인 세계 질서와 세계 제도의 이론을 고려했다. 따라서 중국이 세계를 책임지고 세계를 위한 이념을 어떻게 창조하려고 하는지가 우리의 진정한 문제여야만 한다.”

남 잘 났다는 소리니만큼 듣기에 불편할 수도 있지만, 사실 동양고전이라고 우리가 맨날 읽는 것도 <논어>이고 <맹자>이니 그런 불편함은 약간 기만적이다. '중국의 지혜'는 좋지만, '중국의 세계관'은 안된다는 태도처럼 보이니까. 

여하튼 '천하체계'란 제목 자체가 호방하다.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만한, 아니 그를 능가하는 스케일을 자랑한다. '中國哲學新星'의 실력을 감상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므로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이주의 책'이다... 

10. 0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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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지 2010-04-17 14:00   좋아요 0 | URL
오... 역시 대륙은 스케일이 다르다는 걸 다시 한 번 피부로 느끼게 해주네요..

로쟈 2010-04-18 22:21   좋아요 0 | URL
자연조건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04-17 17:03   좋아요 0 | URL
대국굴기에서 '기'를 힘주어 말하는 중국 지식인들의 대국주의는 경계할 필요가 있겠죠. 리쩌허우의 대담집인 [고별혁명]을 보면 그가 현실의 중국이 싫어 미국으로 망명했지만 중국의 패권주의나 대국주의에 대해선 비판적 시각을 보이지 않더라구요. 그의 제자는 또 모르겠지만요.
여담이지만 또 다른 망명 지식인인 시인 베이다오를 강연회를 통해 만난 적이 있는데요. 그리 중국을 비판하던 그가 미국에 이어 중국이 패권국가가 되는 것에 대해선 아무런 거부감이 없더군요. 그 정도 위상은 적어도 동아시아 국가에선 당연하다는 투로 말하는 걸 보고 꽤 놀랐습니다. 동서(東西)라 말하지 않고 중국을 동아시아의 대표라 자처하며 중서(中西)라 말하는 기만이 비판적 지식인들에게도 비켜가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로쟈 2010-04-18 22:20   좋아요 0 | URL
달리 '중국'이 아니지요. 거기에, 인구가 13억이 넘는 나라라면 그렇게 생각할 만합니다...

paul 2010-04-18 11:42   좋아요 0 | URL
<영웅>이라는 영화가 떠오르네요...양조위가 모래 사막위에 검으로 쓴 '천하'라는 글귀...ㅎㅎ

로쟈 2010-04-18 22:19   좋아요 0 | URL
사실 아주 친숙한 말이죠...

노이에자이트 2010-04-18 15:56   좋아요 0 | URL
간단히 말해서 중국의 천하관념은 조공-책봉 관계이고 이런 국제관계가 유럽처럼 약육강식하는 살벌한 관계가 아니었다는 거지요. 약소국이 다소 숨쉴 여력도 만들어 주고...우리나라 사학자들도 사대주의가 중국에 종속된 것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는 일명 '사대주의 정당화학파'가 꽤 세력이 있지요.그런데 현실적으로 21세기의 천하질서는 음...동북공정이나 서남공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구요...

로쟈 2010-04-18 22:19   좋아요 0 | URL
동북공정 같은 건 속좁은 '제국주의'의 행태죠. 천하체계는 소위 '제국'의 논리에 더 가까울 듯해요. 읽어봐야 알겠지만.

mirror 2010-04-19 02:37   좋아요 0 | URL
시민 또는 국민을 백성으로 보는 것만 해도 전근대적인 관점이 아닐까요? 현대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홉스와 로크, 루소의 정치철학에 기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이것을 대체할 이념은 새로 등장하지 않았고요. 현재의 중국의 국가체제를 용인하면서 천하를 운운하다니요. 허황된 중국 지식인의 전형을 보는것 같습니다. 지금 중국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알기위한 참고로서 이런 책이 번역되는 것은 좋지만, 실제로 중국 유학생들이 그런 생각인지는 의문입니다. 자신이 공부하는 대상이거나 유학한 나라를 과대평가하고 그것의 후광에 힘입어 행세하려는 것이 전통적인 한국의 학자들 행태였습니다. 이런 점에서 미국이나 유럽에 갔다온 이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중국이라는 나라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커다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중국유학출신들은 간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동아시아적 지적 전통은 현대사회의 미래의 대안을 제시하는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해왔고, 지금까지는 미래의 가능성도 보여준 적 없습니다.
'관점이 없는 견해'란 표현은 다른 데서 베낀 것입니다. 80년대 중반에 미국의 대표적 철학자 Thomas Nagel의 저서 이름이 'View from nowhere'입니다.

로쟈 2010-04-19 23:29   좋아요 0 | URL
'자유민주주의'를 대체할 이념은 등장하지 않았고, 사회주의의 몰락이 '역사의 종언'이라고 믿는 입장에서라면 코웃음칠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중국이 많은 문제점을 지닌 나라이므로 중국 지식인의 생각이 허황하다고 보는 것은 미국이 이상사회가 아니므로 미국 지식인의 사상을 진지하게 다룰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요. 저로선 '세계체계'라는 걸 상대화하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이번주에 나를 가장 놀라게 한 저자는 미국의 시사평론가이자 금융 전문 저술가, '비즈니스 역사가'로도 불리는 론 처노다. <금융제국 J.P. 모건>(플래닛, 2007)의 저자. 놀라운 건 '자본주의자의 원형'으로도 일컬어지는 록펠러의 두 얼굴을 다룬 책 <부의 제국 록펠러>(21세기북스, 2010)도 그의 작품이라는 사실(그냥 혼자서 뒤늦게 알고는 놀랐다는 얘기다). 두 책 모두 높은 평판을 얻은 대작이다. 국내에서도 기업가 평전이나 논픽션들이 가끔씩 나오고 있으니 전범으로 삼을 만하다. 하지만 여건상 이런 수준의 책이 나오기는 어려운 게 아닌가 싶다. 아무튼 <16세기 문화혁명>(동아시아, 2010)의 저자 야마모토 요시타카와 함께 뒤늦게 감탄하게 되는 저자다. <부의 제국 록펠러>에 대한 소개기사도 늦게나마 스크랩해놓는다.  


한국경제(10. 03. 06) 교활한 석유재벌 vs 고결한 기부왕…'록펠러의 두 얼굴' 

존이 어렸을 때,빌은 그에게 자신이 받아줄 테니 높은 의자에서 뛰어내리라고 부추기곤 했다. 그러다가 하루는 받아 안아줄 듯이 팔을 내밀고 있다가 내려버렸고,존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그때 빌은 아들에게 다시 한번 가르침을 상기시켰다. "기억하라고 했지.어느 누구도 완전히 믿어선 안 돼.이 아빠마저도 말이야." 얼마 뒤에는 클리블랜드 시내를 지나가면서 빌은 같이 가던 아들들에게 사격이나 가장행렬을 구경하려고 허둥지둥 몰려가는 군중에게 신경 쓰지 말라고 일렀다. "사람들에게 신경 쓰지 마라.되도록 사람이 몰려 있는 곳에 가지도 말고.자기 일에만 집중하는 거야."

최고의 부자이자 최고의 자선사업가인 존 D 록펠러(1839~1937)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그는 경쟁자들을 고사시키는 '냉혈 비즈니스'로 당대 제일의 갑부가 됐고 이로 인해 부도덕한 기업인이라는 비난을 받았으며 열정적이고 통 큰 자선사업과 기부,굳건한 신앙심으로 '고결한 귀족'의 이미지를 한꺼번에 보여준 인물이다.  

유명한 비즈니스 전기 작가 론 처노는 《부의 제국 록펠러 1,2》에서 상반된 그의 면면을 객관적이고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그의 내면에 두 명의 분신이 있다는 것을 자꾸 생각하게 된다. 지독한 스크루지와 너그러운 산타클로스.허풍쟁이 약장수인 아버지와 신실하고 엄격한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그의 심리적 양면성은 '냉혹한 석유재벌'과 '신앙심 깊은 자선왕'의 이미지를 동시에 빚어냈다.  



그는 맨손으로 사업을 일궜고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를 조직해 미국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90% 이상을 정유하고 판매했다. 그가 사업에서 물러났을 때 미국인들의 평균 수입은 주당 10달러였다. 1893~1901년 그의 회사 배당금은 2억5000만달러에 달했고 그 가운데 4분의 1이 그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최대한 벌고 최대한 아껴 최대한 베푸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며 평생 5억3000만달러를 기부했다. 한편으로는 학문에 관심을 보이고 대학과 의료연구 기관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개인적으로도 절제와 검소를 실천했다. '스탠더드 오일 제국'과 '자선 제국'을 함께 세운 셈이다.  



저자는 '죄악과 고결함이 한데 섞인' 록펠러의 이 같은 모습을 중심으로 남북전쟁 후 도금시대로 불릴 만큼 물질주의에 휩싸인 1870년대 미국의 역사까지 종횡으로 엮어낸다. 조지프 퓰리처와 앤드루 카네기,마크 트웨인 등 굵직한 인물들과의 사연도 드라마틱하게 비춘다. 미국비평가협회상 수상과 타임 선정 '올해 최고의 책' 등 잇달아 찬사를 받은 책.(고두현 기자) 

10. 04. 14. 

 

P.S. 한번 더 적자면, 국내에 소개된 론 처노의 책은 <금융 권력의 이동>(플래닛, 2008)까지 포함해서 3종 다섯 권이다. 소개되지 않은 후속작으론 <알렉산더 해밀턴>(2004)과 <워싱턴>(2010)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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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5 0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15 1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쿼크 2010-04-15 01:27   좋아요 0 | URL
예전에 읽었던 '니콜라 테슬라'의 책에서도 JP모건이나 록펠러가 언급되어있어서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에디슨이 주장했던 직류 발전기와 테슬라가 주장한 교류 발전기 싸움에서 테슬라가 이겨 현대의 가정에 교류 전류가 들어오긴 했지만 JP모건과의 싸움에 져 무선 송전기의 야망을 접어야 했지요. 만약 그때 JP모건이 눈감고 테슬라를 도와줬다면 아마 지금쯤이면 무선으로 전기를 공급받고 있는 세상에 살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에서야 이런 기술이 나오고 있죠. 무선으로 배터리 충전시키는 방식으로요...정확히 기억 나진 않지만, JP모건쪽에서 전선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테슬라는 모건이 준 연구비로 몰래 무선 송전 타워를 만들어 그쪽 분야를 연구하려 했다는 기억이 있습니다. 전기자동차도 모건과 록펠러 그리고 헨리 포드 때문에 결국 접어야 했다는 기록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결국 휘발유 자동차 시대를 맞이했지요... 저도 올해 안에 나름 읽을 책으로 JP모건1,2를 꼽았는데 두께가 만만치않아 읽을 수 있을지나 모르겠습니다. 여담이지만 테슬라가 죽고 난 뒤에 FBI가 테슬라 모든 자료를 가져갔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그래서 미국이 기술 강국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DKshield 2010-04-15 15:45   좋아요 0 | URL
그부분은 사실 인터넷에서 오버되었습니다.^^;;;

핵무기를 만들어낸지 50년이 지난 지금과 테슬라가 그걸 연구하던 시기는 아직 핵무기의 핵자도 모르던 시기라는 큰 차이가 있으니 말입니다. ^^;;

테슬라는 이론적으로만 가능했던것을 실행해보겠다고 노력한 것이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당대의 과학능력으로는 불가능 했다고 하더군요.
지금도 어려운 기술을 당대에 가능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죠^^:;;

루체오페르 2010-04-15 01:34   좋아요 0 | URL
록펠러에 대한 여러 일화가 있던데 사실인진 모르겠으나...
한창 전성기때 암진단을 받고 충격을 받아 이제 베푸는 삶을 살아야겠다 결심하고 기부왕으로 살다보니 몇년남았다던 삶에서 몇십년을 더 살아 90여세에 운명했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아마 이 책에서 진실여부가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정말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썼다 의 표본일지도..라는 생각이 드네요.

로쟈 2010-04-15 18:44   좋아요 0 | URL
베버의 말대로 '자본가의 원형'이지요...

푸른바다 2010-04-15 04:11   좋아요 0 | URL
록펠러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야말로 '시차적 관점'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로쟈 2010-04-15 18:43   좋아요 0 | URL
자본주의 자체가 그렇지요...

2010-04-18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18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19 0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디고의 유쾌한 문화혁명

강의가 있어서 저녁을 일찍 먹었더니 끝나고 나서 허기가 졌다. 자정이 다 돼 귀가해 라면을 끓여먹고 또 내일 강의 준비를 하기 전에(아직 책도 다 안 읽었다) 잠시 숨을 돌린다. 어제, 아니 그제 저녁 다지원 강의가 끝나고 인디고 유스 북페어 프로젝트팀이 만든 <가치를 다시 묻다>(궁리, 2010)를 뜻밖의 선물로 받았는데, 다시금 무릎에 놓는다. '새로운 시대의 가치혁명을 위하여'는 그 부제다.

 

그제 버스 안에서 서서 오면서도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영국 리즈 자택에서의 대담을 읽고 부듯해한 기억이 떠오른다(강의와도 연관이 있어서 하워드 진보다 바우만을 먼저 읽었다). 바우만 교수로선 한국인과의 만남이 아마도 임지현 교수와의 대담 이후에 처음이 아닐까.    



한국의 청소년들이 세계적인 석학을 직접 찾아가서 만나고 질문을 던지고 성실한 답변을 받아오는 일련의 과정이 아름답고도 대견하게 그려져 있다. 인디고의 유스 북페어는 격년으로 열린다고 하는데, 지난 2008년에 펴낸 책은 <꿈을 살다>(궁리, 2008)이다. 인디고에 관한 기사를 두어 차례 옮겨놓은 적은 있지만 직접 '인디고 아이들'이 펴낸 책을 보니 기대 이상이다. 나머지 대담들을 마저 읽게 되면 소감을 적기로 하고 일단은 간단한 소개를 옮겨본다.  

이 책은 전세계 6대륙에 하나의 가치쌍을 연결하여 살펴보고 있다. 북아메리카-정의와 희망, 아시아-평등과 다양성, 유럽-자유와 자기실현, 아프리카-공동체와 민주주의, 오세아니아-생명과 자연, 남아메리카-사랑과 아름다움이다. 그 대륙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중 그 대륙과 연결한 가치에 대해서 진지하게 연구하며 이를 자신의 삶 속에서 실천하는 학자, 그리고 이러한 가치를 사회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개인 또는 단체들 특히 청소년, 청년팀을 직접 만나서 인터뷰했다. 

그 '실천하는 학자'들 가운데는 노엄 촘스키나 마서 누스바움, 그리고 올해 초에 타계한 하워드 진이 포함돼 있다. 몇 번 써먹은 사진을 한번 더 우려먹는다. 정말로 보기 좋지 아니한가. 그들이 꿈꾸는 '가치혁명'이 꼭 실현되기를 기원한다. 아니 이런 작업을 진행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혁명이다...  

10. 04. 07.  

P.S. '인디고 아이들'이 펴낸 책을 몇 권 더 꼽아본다. 그들의 '행복한 책읽기'와 '꿈꾸기'가 계속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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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umanities Magazine for Young People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5-01 09:12 
    어제 중앙게르마니아 강연이 끝나고 뜻밖에도 인디고 팀원들에게 이번에 나온 국제판 <인디고>(2010년 봄호)를 선물로 받았다. 안 그래도 어제 오전에 장바구니에 넣어둔 책이다. 지난번에 <가치를 다시 묻다>(궁리, 2010)도 나를 놀라게 한 책이었는데, 깔끔한 장정의 국제판은 한번 더 놀라게 한다. 다음 세대 인문학에 대한 걱정은 내 몫이 아닌 듯하다. 하긴 지젝의 <시차적 관점>을 읽는 중학
 
 
2010-04-07 0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07 0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4-07 22:56   좋아요 0 | URL
저런 책을 읽는 청소년들의 부모나 교사가 모두 이해를 해줄까요...시험공부는 안 하고 쓸 데 없는 책 읽는다고 핀잔은 안 듣는지 모르겠습니다.

로쟈 2010-04-07 22:58   좋아요 0 | URL
부모나 교사도 여러 수준이 있으니까요...
 

이번 학기 아트앤스터디의 강좌 중에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가이드'라는 게 있다(http://blog.naver.com/artnstudy?Redirect=Log&logNo=110081840384). 문화평론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택광 교수의 강좌인데, 교재로 예고된 책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글항아리, 2010)가 이번주에 출간됐다.   

 

두 가지가 키워드인데, 먼저 '가이드'에 대한 설명. 책소개를 참조하면 이렇다.  

‘가이드guide’라는 꼬리표가 붙은 다소 생뚱맞은 이 책은 ‘이론의 종언’에 맞서 ‘이론의 복원’을 요청하는 문화평론가 이택광의 본격적인 이론적 퍼스펙티브가 담긴 저작이다. 지난 십 년 한국사회를 배회한 각종 패배주의와 냉소주의 중에서도 ‘이론 무기력증’이란 것이 있었다. 이것은 지력으로 사물의 본성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지성주의’와 지성과 이성을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는 ‘먹고사니즘’의 영향 아래 형성되었고 곧 전면화되었다. 저자는 이런 태도에 종지부를 찍고, 마르크스주의 비평과 정신분석 이론이 결합한 이론 공부와 이론적 글쓰기가 생산성과 비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저자는 푸코와 들뢰즈 이후 등장한 지젝과 랑시에르 같은 새로운 사상가들의 이론이 어떻게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유산에 발을 디디고 있으며 그들이 과거의 이론과 오늘의 정치 지형 속에서 서로 어떻게 관계 맺는지 분석함으로써, 2000년대 후반 이후 다시 범람하기 시작한 유럽 발 이론의 백가쟁명을 말끔하게 정리하고 독자들에게 ‘거시적 안목’을 마련해주고 있다.

그리고 저자가 철학자 김영민과의 대화하던 중에 나왔다는 '인문좌파'라는 말(그러니까 김영민과 이택광이 '인문좌파'의 견본이다).   

“한국사회에서 ‘교환가치’를 갖는 고전적 인문학, 군주를 보필하고 관료를 양성하는 ‘동양적 인문학’의 유령이 느껴지는 이 인문학과 구분해서 나는 인문좌파라는 말을 사용한다. 인문좌파는 단순하게 ‘정치적 좌파’라고 규정할 수 없다. 기존의 우파와 좌파의 이념 모두를 회의하는 독특한 사유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합의된 공동체의 윤리를 의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를 던지는 역할이 인문좌파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개념은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개념을 창조한다는 것은 완전히 새로 만든다는 뜻이 아니다. 필연성에 붙잡혀 있는 우발성을 풀어놓는다는 말이다. 재현체계를 벗어나는 힘을 드러내는 것이 인문좌파의 일이다. 사유가 실천이라는 명제는 여기에서 정당성을 얻는다. 다르게 사유한다는 것은 공동체의 규범을 거스르는 탈영토화를 의미한다. 이 메커니즘을 지배하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무의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백의 동요이다.”(11~12쪽)

몇 개의 규정이 중첩돼 있는데, 기존의 우파와 좌파의 이념 모두를 회의하는 사유의 주체가 제3의 포지션이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게 아니라 하더라도 '인문좌파'란 말은 그 자체로 명명효과를 갖는다. 지시대상이 없어도 의미효과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니까. 유니콘처럼. 아무려나 여러 곳에서 '인문학 가이드' 노릇을 하는 처지에서 재미있게 읽어볼 만한 책이 출간돼 반갑다(개인적으론 한 술자리에서 저자와 함께한 적이 있는데, '이론적 만담'의 최고 수준을 경험할 수 있었다. 저자는 슬라보예 지젝과 직접 통화해보겠다고 하여 일행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인문좌파'란 말이 영어에도 있는지(가능한지) 모르겠지만, 그 동네의 용어로 하자면 아마도 '라캉주의 좌파' 정도가 저자의 이론적 입장이 아닐까 싶다. 마르크스와 라캉(프로이트)이 그의 문화비평의 주된 이론적 바탕이니까.  

참고로, '라캉주의 좌파'와 그냥 '라캉주의'가 어떻게 다른지는 맹정현의 <리비돌로지>(문학과지성사, 2010) 같은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라캉에 대한 정치적 독해를 강조한 지젝(슬로베니아 라캉학파)을 전혀 경유하지 않은 라캉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언급하는 현대철학자는 들뢰즈/가타리와 푸코 정도이고, 알튀세르와 지젝은 한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데올로기'란 말도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10. 04.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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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의 인문학 위기와 강남좌파 한비야
    from 당신 덕분에 꽃이 핍니다♡ 2010-04-06 17:15 
    삶의 의미나 존재의 이유, 역사의 흐름에 대해서 이야기하거나 고민하는 사람은 ‘넘사벽’이 되어 손가락질 당하고 있습니다. 넌 그런 거 생각할 여유가 있냐면서 비아냥거림을 받아야 하는 시대죠. 경영학과를 복수전공하면서 조금이라도 취업에 유리하고자 아등바등해야 하는 대학생들의 모습과 집값과 펀드, 자기 자녀가 무슨 대학 들어갔는지 열나게 이야기한 뒤 TV와 연예인 연애이야기밖에 할 게 없는 중년층들까지, 사회는 속되게 변해갔습니다.
  2. 인문좌파와 비가시적인 정치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4-12 23:23 
    아침신문을 밤중에야 읽었다. 최근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글항아리, 2010)를 펴냈을 뿐만 아니라 한겨레21('노 땡큐!'란)과 교수신문의 연재(격주로 '세계사상지도'를 다룬다)를 새로 시작하는 등 문화비평가로서 '시즌2' 활동에 나선 이택광 교수의 인터뷰기사가 있기에 옮겨놓는다. 사실 낮에 한겨레21에서 드라마 <추노>에 대한 칼럼도 읽었기에 이런 정도의 활동 빈도라면 '기록'해두어야
 
 
구보 2010-04-06 12:47   좋아요 0 | URL
<이론적 만담의 최고 수준>에 호기심이 생깁니다.
넘치기 마련인 출판사 카피가 아니라서 더 궁금하네요.

로쟈 2010-04-07 01:09   좋아요 0 | URL
술자리 만담과 책은 또 다를 수 있는데, 여하튼 재미는 있을 거 같아요...

시몬느 2010-04-06 20:0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어제 다지원에서 인사드린 인디고 서원의 박용준입니다.
어제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많이 배우고 왔습니다.
어제 하루종일 이사를 하고, 강의를 갔더니, 강의 중간에 졸음이 와서...죄송했습니다. ^^

강의 내용뿐 아니라 '이론 투쟁'에 관한 선생님의 언급이 매우 인상깊었습니다.
의미를 둘러싼 투쟁.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그리고 늘 선생님의 건승을 빕니다!
다음에 또 인연이 닿아 뵐 수 있기를... :)

로쟈 2010-04-07 01:08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책은 뜻밖의 좋은 선물이었어요.^^

비로그인 2010-04-06 20:34   좋아요 0 | URL
"합의된 공동체의 윤리를 의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를 던지는 역할이 인문좌파의 몫이기 때문이다." ... 그냥 '철학자'나 '지식인'의 기본덕목 아닐까요? 좀더 뚜렷한 상이나 규정이 있어야 저처럼 개념이나 실천이 짬뽕인 사람들이 헷갈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여간 저는 "The Left"부터 좀 읽어봐야겠습니다.

로쟈 2010-04-07 01:10   좋아요 0 | URL
네, 그래서 지시대상이 모호하다고 적었는데, 사실 저자도 그냥 수사라고 했어요...

phrensy 2010-04-07 03:19   좋아요 0 | URL
좋은 소개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로쟈 2010-04-14 23:36   좋아요 0 | URL
^^

bplat 2010-04-14 17:52   좋아요 0 | URL
이거 추천하시는 거 맞죠? 로쟈님이 추천하시는 책이라면 믿고 질러봐야겠네요ㅎㅎ 그렇지 않아도 이제 한물간 취급을 받는 루카치를 다시 읽어보자는 문단 제목에 확 꽂혔었는데.. 이 책이 절 제대로 입문시켜 주면 좋겠네요. 물론 그전에 베이스가 어느 정도 있어야겠지만..

로쟈 2010-04-14 23:36   좋아요 0 | URL
가이드삼아 읽으셔면 될 거 같아요.^^
 

'감각의 독서가 정헤윤의 황홀한 고전 읽기'란 부제로 나온 책이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민음사, 2010)이다. 눈에 띄는 제목이고 표지다(개인적으로 <런던을 속삭여 줄게>의 표지는 나의 취향이 아니었다). 언젠가 저자를 한번 만났을 때, 연재중인 원고에 대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걸 묶어낸 것이다. 책은 <위대한 개츠비>부터 <위대한 유산>까지 15편의 고전에 대한 독서경험을 기록하고 있다. 나도 이런 유형의 책을 기획하고 있기도 해서 많은 참고가 된다. 서평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10. 03. 27) 고전 속 주인공과 나누는 대화 

똑똑! 누군가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새벽 3시다. 마음문을 열어보니 한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약혼자가 있는 여인 로테를 사랑하는 절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젊은 베르테르’다.

‘감각의 독서가’라는 별칭을 얻고 있는 <시비에스 라디오> 프로듀서 정혜윤씨의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은 독특한 고전 읽기 책이다. <세계가…>에는 지은이가 2008년 10월부터 온라인 서점 예스24 웹진과 민음사 누리집에 연재해온 독서 칼럼 중 가려뽑은 15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한겨레>에 ‘정혜윤의 새벽 3시 책읽기’를 연재하고 있는 그의 고전 읽기는 마치 고전 속의 주인공과 나누는 대화 같다. 그의 글에 유난히 슬픔, 기쁨, 분노, 안타까움 등 감정의 묘사가 많은 것도, 지은이가 고전 속 주인공과 이렇게 감정적 교우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얼른 달려나가 가련한 청년 베르테르를 껴안는다. 그 또한 “흠모하는 이의 가벼운 뿌리침 한번만으로도 치명적인 상처를 받게 되는, 너무나 가련하고 나약한 몸뚱이가 오히려 활활 타오르는 관능 그 자체였던, 그런 어린 날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 베르테르뿐이랴. 그는 <위대한 개츠비>, <폭풍의 언덕>, <마담 보바리>,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1984>, <설국>, <주홍글씨> 속의 상처 입은 주인공들에게도 문을 열고 손을 내민다.

이 주인공들과의 만남이 한번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15살에 처음 <폭풍의 언덕>을 대했을 때, 그는 온갖 기행을 저지르는 히스클리프가 죽기만을 바라면서 책을 읽어나갔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다시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을 만났을 때, 그는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절절한지 깨닫는다. 아니, 적어도 그 열정에 매혹된다. “지상에 있는 동안 한번만이라도 내가 시작한 일을 끝까지 끌고 가보고 싶기 때문”인데, 이런 변화는 아마도 두 번의 만남 사이에 그 자신이 “격렬하고 쓰라린” 세상살이와 사랑을 겪었던 탓이었으리라.

그가 만나는 주인공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다시금 되돌아보라고 조언해주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통제된 빅브러더의 세계 <1984>에서 과거 기억을 잊지 않으려 애쓰는 윈스턴 스미스와의 만남에서 그는 “사상경찰, 통제, 전쟁, 권위주의, 전체주의” 등 소설 속 세계에 충격을 받지 않는다. 지은이는 오히려 “우리가 이미 그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더 놀란”다. 윈스턴이 어딘가에 끌려가 경험했던 것은 전기고문과 약물 투여, 벌거벗겨짐, 그리고 얼굴을 물어뜯으려는 쥐의 위협인데, 우리는 쥐보다 무서운 개가 위협하는 관타나모 수용소라는 현실을 껴안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새벽 어스름이다. 마음의 문을 두드렸던 고전 속 주인공과 작별해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고전 속 주인공은 떠나가더라도, 그와 나누었던 대화는 지은이를 이미 바꾸어 놓았다. 그 깊은 절망과, 그 벅찬 기쁨과, 그 애틋한 사랑의 감정은 지은이의 가슴속에 계속 울림으로 남아 그를 ‘어제와는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출근길 북적이는 사람들은 어제와 같아 보여도, 이미 세상 또한 어제의 그 세상이 아니다. 그는 이렇게 고전 읽기를 통해 날마다 세상을 두번 살아간다.(김보근 기자) 

10. 03. 27. 

P.S. 기자의 지적대로 "그의 고전 읽기는 마치 고전 속의 주인공과 나누는 대화 같다." 내 생각엔 그게 저자의 장점이면서 동시에 단점 같다. 그는 고전과 그 주인공들에게 너무 관대하다. 그래서 인용이 많아진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어주려 하다 보니 저자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는다('새벽 3시'의 책읽기라면 크게 떠들지도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개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몇 편의 '읽기'를 읽어봤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저자의 프롤로그다. 가령 이런 저자의 고백들은 얼마나 흥미로운가. 

그때부터 고독은 시작되었다. 말 못 하는 고민 때문에 나는 집을 빠져나가 달리기를 시작했다. 나는 거의 매일 두 코스를 달렸다. 하나는 학교 운동장, 하나는 겨울이면 겨울이면 미끄러지지 말라고 늘 연탄재를 뿌려 두던 지독히 가파른 언덕. 학교 운동장을 달리는 동안 서서히 해가 지고 완전히 어둠이 내리면 어린 마음에도 알 수 없는 뭉클한 기운이 밀려오고 심장이 뛰었다. 아직 어린 여자아이의 조그만 입으로 아름답다 조아리며 멈춰 서서 지켜볼 때 이미 아름다움은 육체적 감각에 속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나는 달리는 나를 좋아하게 되었다.

한번도 달리기를 좋아해본 적이 없는 나로선 100미터를 13초대에 뛴다는 저자의 달리기 얘기가 무용담처럼 들린다.  

언덕을 달리는 것은 좀 더 힘들었지만 오랜 연습 끝에 꽤 긴 언덕을 단숨에 뛰어오를 수 있게 되었다. 언덕 정상에 거대한 보름달 대신 그보다 유혹적인 구멍가게가 있었다. 그렇게 뛰고 난 다음 구멍가게의 온갖 물건들, 우유, 보름달 빵, 두부, 빗자루, 쓰레받기, 고무장갑, 세탁비누 같은 것을 천천히 구경하다 보면 이제 집에 갈 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어서 집에 돌아갔다. 그때 구멍가게의 물건들이 언덕 밑 나의 집으로 끌어주는 나만의 중력이었다.

달리는 것만 빼면 나도 그렇고 다들 비슷한 체험을 갖고 있을 법하다. 하지만 내가 상상해보지 못한 체험도 저자는 갖고 있다.  

체육 시간 전날이면 서점에 가서 얇은 문고판 책 한 권을 사고 엄마의 커다란 팬티를 한 장 빼돌렸다. 체육 시간엔 체육 선생의 작고 예리한 눈을 피하기 위해 엉덩이와 헐렁한 엄마 팬티 사이에 문고판 책 한 권을 끼워 넣고 그 위에 체육복을 입고는 운동장에 나갔다.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친구들이 편을 가르고 공놀이를 시작할 때 나는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엉덩이 아래서 책을 꺼내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것이 말하자면 독서가 정혜윤의 독서 편력의 시작이었다. 핵심은 엉덩이로 하는 독서였다는 것.  

나는 아직도 엉덩이의 힘을 믿는다. 세상의 어떤 자리에 앉더라도 결국은 자신의 엉덩이로 앉아야 하는 것니까. 그렇게 읽은 책이 대개 고전이었다.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책이 엉덩이 밑에 숨기기게 좋았느냐. 즉 사이즈의 문제가 나의 독서 방향을 결정했다.  

독서가 정혜윤의 개성이 어디에서 기원하는가를 알게해주는 대목이다. 한데, 저자는 그 개성을 마음껏 드러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읽고 쓰고 배우는 것이야말로 한 번뿐인 인생의 쓸쓸한 일회성, 혹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 내려는 '의지'와 관련된 문제 같다"는 문제의식을 철저하게 밀어붙이지 않는다(한 번뿐인 인생의 가벼움을 다루고 있는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저자의 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건 좀 기이한 일이다. 저자의 '고전' 목록에 포함되지 않는 것일까?). 독서의 흥미를 돋우는 저자의 대범한 주장.

만약 우리에게 세계가 한 번만 진행된다면(보이는 그대로만 보는 데서 멈춘다면) 우리는 매 순간 과거의 자신이다. 확실히 우리는 한 몸 안에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갖고 있다. 한 순간에도 과거와 미래를 산다.  

하지만 여기에 이어지는 건 좀 평범한 문장이고 통념이다(징후적이게도 문장 또한 늘어지고 있다). 즉, 그는 더 진행하지 않고 멈춘다.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기를 원한다면, 내가 좀 더 나아지기를 원한다면, 미래는 좀 다르기를 원한다면 당연히 무너가 읽고 써야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빼놓지 않고 언젠가는 읽어야 할 책이 고전인데, 어떤 고전이 지금의 우리에게 적합한 대화 상대인가는 너무나 상대적인 것 같다.

 그리하여 주저앉는 문장들. 

어쨌든 정말 좋아하는 책을 만나는 것은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 살갗을 부비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똑같은 쾌감을 줄 테니 그런 순간을 놓치지 말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우린 모두 지독한 쾌락주의자로 사는 시기를 겪을 테니까.

사실 내가 기대하는 건 '극복의지'이지 '쾌감'이나 '쾌락주의'가 아니다. 책읽기가 "한 번뿐인 인생의 쓸쓸한 일회성, 혹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 내려는 '의지'와 관련된 문제"라는 것과 책읽기란 "살갗을 부비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란 주장은 과연 같은 것일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그건 나의 취향이 아니다. '어쨌든'이란 부사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취향('어쨌든'은 우리를 관대하게 만들고 게으르게 만든다). 나는 저자가 겹쳐읽는 감각보다는 엉덩이의 힘을 '실제로' 더 신뢰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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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phie 2010-03-27 21:24   좋아요 0 | URL
ㅋㅋ 엉덩이로 하는 독서라니요.. 주저앉는 문장이란 평을 보니 왠지 제 자신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글쎄 거기서 조금만 더 나아가야 할 것 같은데, 제 자신도 석연치 않게 끝나는 문장들... 이 있지요.

비로그인 2010-03-28 00:44   좋아요 0 | URL
지성적 둔부와 심미적 복부를 양립시키려면 달리기라는 실천의지가 필요하겠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