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말 기사인데, 뒤늦게 눈에 띄어 옮겨놓는다. 내용은 국가기록원에서 러시아에서 입수한 북한 관련 자료들을 공개/전시했다는 것이다(간단한 뉴스 동영상도 인터넷에서 참고할 수 있다). '러시아 소재' 한국 관련 자료들의 의의와 수집 필요성을 되짚어보기 위해 한번쯤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굿데일리(06. 10. 01) 국가기록원, 러시아 정부 소장 북한관련 영상기록 제2차 공개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원장 : 김윤동)은 9월 28일 14시부터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 3층 국제회의장에서 「러시아 영상으로 본 북한의 기억」이라는 주제로 제2차 시사회를 개최한다. 지난 5월 「러시아 시각으로 본 해방과 전쟁, 그리고 외교」라는 주제로 제1차 시사회를 개최한 바 있으며, 제1차 시사회가 北韓의 政治史를 중심으로 개최되었다면, 제2차 시사회는 북한 사람들의 삶과 문화, 그리고 전후복구 등 제1차 시사회 이후 추가로 수집한 北韓의 社會와 經濟를 중심으로 개최된다.

이번에 수집한 러시아 정부 소장 북한관련 영상기록은 시기적으로 일제말기 아동들의 강제노동부터 1960년대 재일동포의 ‘北送’ 까지, 북한 정치사 이외에 1940-50년대 북한의 일상적인 모습을 다양한 각도로 생동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겠다.

제2차 시사회를 통해 공개되는 러시아 소장 북한관련 영상기록은 ① 북한의 민속경기와 각종 운동경기, ② 단군릉(檀君陵), ③ 북송 관련 기록, ④ 북한의 전후복구 광경, ⑤ 전시 지하공장의 모습, ⑥ 전시 지하당원들의 회의 장면, ⑦ 전쟁직후인 1953년 김일성의 중국․소련 방문 기록 등으로, 
▶ 이중 해방직후 북한의 민속경기 장면은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기록으로, 남쪽에서도 널리 행해졌던 닭싸움․강강수월래․널뛰기․씨름 등은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의미 있는 자료이다. 특히 그네타기와 대동강변에서의 스케이트 경주 등은 북한 사회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 특히, 1964년 도쿄에서 父女 상봉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신금단 선수가 1962년 모스크바 국제대회(육상400m)에서 자신의 세계신기록을 갱신하는 경기 장면도 국내에서는 처음 상영되는 기록이다.
▶ 북한의 문화재 관련 기록 중 눈길을 끄는 것은 檀君陵 영상이다. 단군릉 사진은 현재까지 1990년대 초 북한에서 단군릉 재건 직전에 찍은 모습만 확인되고 있는데, 이번에 공개한 단군릉은 1947년에 구소련에서 촬영한 영상자료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 ‘北送’관련 기록도 주목된다. 이제까지 ‘북송’ 자료는 일본에서 출발하는 장면만 알려졌는데, 이번에 공개되는 기록은 북한에 도착한 모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며, 북한에 도착한 재일동포와 환영하는 북한주민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더불어 북송선으로 유명한 만경봉호의 건조 직후 실내모습도 공개된다.
▶ 북한의 경제관련 영상기록 중 북한의 戰時경제의 실상을 보여주는 장면은 주목할 만 하다. 이 자료는 북한 주민들이 파괴된 공장에서 거의 손노동에 의지한 채 철강 생산을 하고, 지하공장에서 전시 물자를 생산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특히 공습을 피해 지하동굴에서 북한 로동당원들이 당원회의를 하는 모습은 국내에서 최초로 소개되는 영상기록이다.
▶ 전후 소련․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전후복구에 참여하는  장면도 공개되었다. 수풍발전소 재건, 흥남비료공장 등 각종 산업시설의 복구, 농업 부문 등에서 소련의 기술자들과 북한의 노동자들이 함께 작업하는 장면, 중국인민지원군의 대동강 철교 복구 및 평양역 개통식 장면 등은 희귀한 자료들이다. 북한과 소련을 연결하는 ‘두만강친선교’ 개통식 자료는 국내에서 상영되는 최초의 영상물로 평가되고 있다.
▶ 1950년대 북한의 외교와 관련하여 특히 주목되는 자료는 김일성이 전쟁 직후 벌인 1953년 9월 대소, 11월 대중 방문외교 기록이다. 김일성과 북한 대표단에 대한 소련에서의 환영행사, 중국 북경역 공식 환영행사 및 만찬장에서의 등소평과의 만남 등이 특징적이다.

이번에 공개한 영상자료는 제1차 수집한 영상기록과 함께, 해방직후 북한의 정치/경제/사회/문화 全 영역의 실상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이제까지 해방 직후 북한 관련 영상기록이 극히 미미하고, 얼마 안 되는 영상기록도 대부분 미국에서 수집한 영상기록이라는 점에서 러시아에서 수집한 영상기록의 가치는 매우 크다. 무엇보다 문헌 연구의 한계성을 뛰어 넘는 생동감 있는 실증적 자료라는 점에서 향후 한국현대사 연구의 확대를 위한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연휴의 마지막날이지만 집안일도 밀리고 강의준비도 밀려 있는지라 마음이 분주하던 차에 체젠 보도로 널리 알려진 러시아 여기자의 피살 속보를 접하게 되었다(기사에서도 언급되고 있지만 그녀는 청부살해 당했다). 이 소식을 전하고 있는 국내 일간지 두 곳의 기사와 함께 여기저기서 검색한 이미지 자료들을 옮겨놓는다. 모처럼 다루는 러시아 관련 기사를 음울한 내용으로 채우게 되어 유감스럽다. 분명한 건 이 또한 러시아의 얼굴이라는 사실이다. 대낮에도 활개치는 이런 류의 청부살인이 아직도 낯설지 않은 나라.  

 

한겨레(06. 10. 09) 누가 러시아의 양심을 쏘았나

 

“위험은 내 일의 일상적 부분이 됐다. 러시아 언론인으로서의 일, 내 임무이기 때문에 멈출 수 없다.” 체첸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며 러시아 정부를 줄기차게 비판한 중견 여기자가 청부살해가 분명해 보이는 총격으로 숨져 파장이 일고 있다. 체첸전쟁 현장을 누벼온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48)에게 총을 겨눈 세력이 누구인지를 두고 러시아와 친러시아적인 체첸 정부에 의혹의 눈길도 쏠린다.(*아래는 피살 소식과 함께 생전의 폴리트코프스카야를 보여주고 있는 러시아의 한 TV방송 모습.) 

 



7일 오후 4시30분(현지시각)께 모스크바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머리에 총을 맞아 숨진 채 발견된 <노바야가제타>의 폴리트코프스카야는 독보적인 언론인이다. 그는 1년 전 영국 <비비시>(BBC)와의 인터뷰에서 앞날을 예견한듯 일상화된 위협을 얘기했다. 그러나 폴리트코프스카야는 “의사가 환자한테 건강을 주고 가수가 노래하는 것처럼, 언론인의 임무는 본대로 현실을 쓰는 것”이라며 굴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옛 소련 관영지 <이즈베스티야>에서 언론계에 입문한 폴리트코프스카야는 1999년부터는 대표적 비판언론인 <노바야가제타>를 통해 2차 체첸전쟁 참상을 고발하기 시작했다. 다른 매체들이 눈귀를 닫을 때 폴리트코프스카야는 폐허가 된 체첸 수도 그로즈니 등지의 현장취재로 참상을 폭로했다. 러시아군과 체첸 정부군의 고문과 집단처형, 납치, 돈을 받고 주검을 가족한테 넘기는 행태 등이 밖으로 전해졌다. <더러운 전쟁> 등 두 권의 책으로도 수십만명이 희생된 전쟁 실상을 알렸다. <푸틴의 러시아: 실패한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삶>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비판했다(*이미지는 영역본들).

 



영국 <옵저버>는 폴리트코프스카야가 러시아군 잔학행위만 부각시켰다는 주장도 있지만, 체첸 반군의 잔혹한 전술을 비판하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이런 활동으로 국내외 여러 언론상을 받은 폴리트코프스카야는 2002년 10월 체첸 반군의 모스크바 극장 인질사태(*위의 사진) 때 중재를 위해 극장에 들어가기도 했다.

숨지던 날에도 폴리트코프스카야는 체첸 정부의 고문을 폭로하는 기사를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지난 4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폴리트코프스카야는 고문 증거를 확보했다며, 람잔 카디로프 체첸 총리한테 직접 고문당했다는 사람의 증언도 있다고 말했다. 폴리트코프스카야는 폭로기사에 대한 경찰 간부의 보복 위협 때문에 2001년 오스트리아로 피신하기도 했다.

 

2004년에는 비행기에서 마신 차 때문에 위독한 상태에 빠졌다. 그와 동료들은 암살 시도로 추정했다. 그는 또 러시아와 체첸 정부의 최고위급 인사들이 자신을 제거하겠다는 위협을 일삼았다고 말해 와, 이번 사건이 러시아와 체첸 정부 중 어느 쪽과 관련됐는지를 두고 추측이 무성하다. 사건 발생일이 푸틴 대통령 생일이고, 이틀 전이 카디로프 체첸 총리의 생일이라는 점에서 그의 희생이 두 지도자의 ‘생일 선물’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2000년 이후 러시아 언론인 12명이 청부살해로 의심되는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보도했다. 지난 6월 <노바야가제타>의 지분 5%를 인수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이번 사건이 “야만적 범죄”라고 비난했다(*<노바야가제타>는, 당연한 일이지만, 이번 피살사건과 관련하여 가장 많은 분량의 기사를 게재하고 있다).

 

Политковская была честным журналистом

범인이 머리에 권총을 난사한 점이나 희생자 곁에 총을 버리고 간 것은 청부살해의 전형적 흔적이다. 체첸 반러시아 세력과의 화해를 주창하다 1998년 피살된 갈리나 스트로모이바 두마(하원) 의원 피살사건과 이번 사건은 닮았다. 당국은 방범카메라에 잡힌 모자를 눌러쓴 범인의 모습을 단서로 추적에 들어갔다고 밝혔고, 유리 차이카 검찰총장은 수사를 몸소 지휘하겠고 밝혔다. 하지만 정치적 동기가 담긴 다른 청부살해처럼 이번에도 범행세력의 꼬리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범행세력을 잡는다면 러시아가 아니다).(이본영 기자)

 

 

국민일보(06 10. 09) ‘체첸 참상’ 보도 러시아 여기자 피살

 

러시아의 잔혹한 체첸 지배 등을 고발해온 유명 러시아 여기자가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외신들은 주로 러시아 일간지 ‘노바야 가제타’에서 활동해온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48) 기자가 7일 그녀가 거주하던 모스크바 중심부 아파트 건물 엘리베이터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은 경찰관들의 말을 인용,엘리베이터 안에서 권총 한 자루와 탄환 4발이 남겨져 있었다면서 폴리트코프스카야 기자의 온몸에서도 총상이 발견됐다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기사에 불만을 품은 전직 군인이나 우익단체 회원에 의해 살해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폴리트코프스카야 기자는 체첸 내 인권 상황을 집중 보도해 러시아 당국에 정면으로 맞섰으며 이후 여러 차례 보도를 통해 정부와의 긴장 관계를 계속해왔다. 이 때문에 2001년 10월에는 살해 위협까지 당했으며, 오스트리아 빈으로 망명했다가 귀국하기도 했다. 그녀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체첸사태 대응과 관련, 정부군의 민간인 인권유린 상황을 비판한 책도 펴낸 적이 있다.

2004년 러시아 북오세티아 공화국의 작은 도시 베슬란에서 벌어진 체첸인에 의한 학교 인질사건 때는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남부행 열차를 탔다 차를 마신 뒤 심각한 식중독 증상을 보여 취재를 하지 못하기도 했다. 당시 동료 언론인들은 이 사건이 폴리트코프스카야의 생명을 노린 암살사건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폴리트코프스카야는 2002년 체첸 반군이 모스크바 극장을 완전히 장악해 인질극을 벌일 당시 체첸 무장세력의 특별 요청을 받아 정부와 중재활동에 나서기도 했으며 2001년 러시아 언론상인 아르촘 보로비크상을 받기도 했다. 그녀는 1980년 옛 소련 치하의 모스크바 국립대학을 졸업한 뒤 공산당 기관지 이즈베스티야에 입사, 26년째 언론인으로 활동해 왔다.(신창호 기자)

 

 

06. 10. 08-09.

 

 

 

 

 

 

 

 

 

P.S. 시간이 나면 그녀가 쓴 기사와 피살과 관련된 기사들을 찾아 읽어봐야겠다(국내에는 체첸 관련 단행본이 단 한권도 출간돼 있지 않다. 한 장이 할애돼 있는 <전쟁의 풍경>(실천문학사, 2004)을 제외하면).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 그녀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며 삼가 명복을 빈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러시아 인권운동가의 죽음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7-18 22:09 
    러시아의 여성 인권운동가가 또 피살됐다. 2006년 피살된 여기자 폴리트코프스카야의 친구이기도 하다고. 러시아 인권과 법치주의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사건이어서 음울하고도 씁쓸한 소식이다. 어제 읽은 기사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9. 07. 17) 체첸 비판 러시아 인권운동가 또 피살 체첸의 인권 실태를 비판해온 러시아의 여성 인권운동가가 또다시 피살됐다. 영국 BBC방송 등은 15일 체첸 인권단체 ‘메모리얼
 
 
 

모스크바 통신에 올려놓았었던 짤막한 단편을 옮겨놓는다. 재작년 6월말 모스크바 영화제 기간에 번역한 것인데, 주인공인 '겐까'가 영화를 아주 좋아하는 영화광이기도 했다. 작가 알렉신에 대해서 내가 아는 바는 거의 없는데, 그래도 꽤 저명한 '아동문학가'라 한다(자료를 찾아보니 재작년에 그는 80세 생일을 맞았다). 주로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쓴다고 하니까 '청소년문학가'라고 해야 할는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주제는 이 시기 주인공의 ‘눈뜸’이겠다(‘아담이 눈뜰 때’ 같은 것!). 

Писатель Анатолий Алексин

원제는 ‘프라우다(=진실)’의 반대어인 ‘니프라우다(=거짓)’인데, 우리말로 자연스러운 ‘거짓말’로 옮겼다. 중학생 정도인 주인공의 나이와 제목만 가지고도 짐작할 수 있는 바는, 이 단편이 ‘겐까의 눈뜸’을 다룰 거라는 것. 무엇에 대한? 거짓(허위)에 대한. 누구의 거짓에 대한 눈뜸인지는 한번 읽어보시길. 페트루솁스카야의 <복수>와 마찬가지로 ‘정신분석적 읽기’를 한번쯤 자극하는 단편이다(역시 괄호 안에 *를 단 건 역주이다).



겐까는 16세 미만은 볼 수 없는 영화들을 보는 걸 무척 좋아했다(*러시아영화는 ‘12세 미만 관람불가’ ‘16세 미만 관람불가’ ‘18세 미만 관람불가’ 등으로 분류된다. ‘16세 미만’이면 준-성인영화이며, 러시아에서는 18세 이상이면 포르노성 영화도 관람가능하다). 그는 나이 표시가 돼 있지 않은 책들, 그러니까 어른들의 책을 읽는 것도 좋아했다(*겐까의 나이가 이 단편에서 명시돼 있지는 않지만, 대략 13-14세 정도일 걸로 보인다).

아버지가 먼저 겐까에게 ‘흡독(吸讀)’ 전쟁을 선포했다(*‘흡독’이란 단어는 작가가 ‘책빨아들이기’란 뜻으로 만든 신조어를 옮긴 것이다. 진공청소기가 빨아들이듯이 책의 내용을 흡수하는 것인데 ‘속독’을 뜻하기도 하지만 사전에 안 나오는 단어를 썼길래 ‘흡독’이라고 옮긴다). 그는 모든 군사학 수칙들에 따라서 공격해 왔다. 그는 먼저, 척후부대를 보냈다. 그 결과 겐까의 머릿속에서는 책과 저자의 이름마저 헷갈리고 있다는 게 밝혀졌다. 겐까는 쿠퍼를 쿠프린으로, 스타뉴코비치를 그리고로비치로 혼동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결정타를 먹이기 시작했다. 그는 심지어 친구들이 있는 자리에서도 아들을 비웃었다. 겐까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그때 아버지는 ‘돌격대’로 편성된 주력부대를 내보냈다.

-이젠 책을 같이 읽도록 하자!
-어떻게, 같이 읽어요? – 겐까가 놀래서 말했다. – 같이 소리내서요?
-그건 아냐… 하지만, 너무 ‘속으로만’ 읽으면 안된다. 내가 충고해 주는 대로 책을 읽어라. 그리고 같이 토론을 해보자.

저녁을 먹으면서 시험이 시작됐다.
-너 자연 묘사는 또 빼먹었니? – 아버지가 물었다.
-아무것도 안 빼먹었어요. -겐까가 변명했다.
-거짓말! 세상에서 제일 나쁜 게 거짓말을 하는 거다. 그럼 어디, 여기서 첫눈의 냄새는 무엇에 비유되고 있지?

겐까는 자리에서 멈칫했다. 당장에라도 밖으로 뛰어나가서 눈의 냄새를 맡고 싶었다. 그럼, 무엇에 비유되고 있는지 아버지한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작가는 첫눈의 냄새를 수박 냄새에 비유하고 있어! 이건 정확한 비유야! 넌 이 대목을 빼먹은 거야!(*쿠프린의 소설에 나오는 대목이라고 한다. 우리에겐 <석류석팔찌>란 작품으로 알려진 쿠프린(꾸쁘린)은 고리키와 동시대 작가로 그와 함께 흔히 ‘네오리얼리즘’ 작가로 분류된다. 1890년대 러시아 문학의 경향은 귀족적 상징주의와 체호프, 그리고 서민적 네오리얼리즘이었다.)

이따금 토론에 엄마가 끼어들기도 했다. 아버지는 금방 엄마의 의견에 동조했다. 하지만, 엄마는 화를 냈다.
-여자들한테는 버스에서나 자리를 양보하는 거예요. 논쟁에서는 그런 예의가 필요없다구요!

아침마다 엄마는 가장 먼저 일어났다. 그리고, 아버지와 겐까에게 아침을 준비해주었다. 집을 나설 때마다 아버지는 엄마의 이마에 키스를 하고 매번 똑같은 말을 했다.

-안녕, 나의 사랑스런 난쟁이!(*원어는 ‘malysh’로 러시아인들이 자주 쓰는 ‘애칭(愛稱)’인데, 원래는 ‘키가 작은 사람(=난쟁이)’을 가리킨다. 이런 류의 애칭으로 ‘토끼(zajchik)’도 있다).

그러면, 엄마는 갑자기 얼굴이 빨개졌다. 겐까는 엄마가 일찍 일어나는 것이 순전히 그 말을 듣기 위해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쟁이’란 말은 엄마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는 전혀 작은 키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소년인 아들을 부를 때, 아버지는 엄격하게 그리고 단순하게 ‘겐나지’라고 불렀다(*‘겐나지’는 애칭이 아니라 공식적인 호칭이다. 학교 출석부에나 올라가 있을. ‘겐나지’의 애칭은 ‘겐까’나 ‘게나’이다).

저녁마다 겐까는 아버지의 퇴근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는 아버지의 발걸음 소리를 대번에 알아챘다. 천천히 울리는 초인종 소리… 겐까는 무척이나 아버지에게 문을 열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엄마가 훨씬 더 기다렸을 거라는 걸 알았고, 엄마에게 양보했다. 아버지는 다시 엄마의 이마에 키스를 했고, 아침과 거의 똑같은 인사를 했다. “잘 있었어, 나의 사랑스런 난쟁이!” 하지만, 이 단어들은 훨씬 더 상냥하게 들렸는데, 왜냐하면 아버지는 틀림없이 하루 종일 엄마를 무척이나 그리워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겐까는 다정스런 말들이 질색이었지만(*겐까도 사춘기인 것이다), 엄마에게 하는 아버지의 말에서는 뭔가 아늑하고 기분 좋은 느낌을 받았다…
겐까에게 아버지는 지나가는 말로 물어보았다.
-그런데, 공부는 잘 돼가니?

그는 한번도 아들이 진실을 말하는지 확인해보기 위해서 일기장을 열어보거나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도 그 때문에 겐까는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나쁜 성적을 받아서 집으로 돌아오면, 그대로 다 얘기했다. 겐까는 꾸중을 듣지는 않았다. 대신에, 그런 저녁이면 스포츠에 대한 이야기나, 아버지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서와 마찬가지로, ‘똑똑한 사람들’과 ‘멍청한 사람들’로 분류하는 엔지니어들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겐까의 한 가지 약점에 대해서만은 아버지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약점이란 건 영화에 대한 그의 제지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 겐까가 집에 흥분해서, ‘멍해진’ 눈으로 돌아오면, 아버지는 눈으로 그에게 경고했다. “꾸며댈 생각은 하지 마라. 네가 영화보고 온 거 다 안다.”

저녁을 먹으면서 그는 아무에게도 시선을 두지 않은 채 생각에 잠겨 말했다.
-오늘 새로 영화가 들어왔더군. 재미있겠던데. 무슨 내용이지?
그러면 겐까는 내용을 다 털어놓지 않으면 안되었다.

어느날 겐까는 집에서 세 블록 떨어진 곳에서 옛날 영화를 상영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영화는 겐까가 볼 수 없었던 것인데, 처음 개봉됐을 때 겐까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었기 때문이다. 보통 때라면 겐까는 저녁 상영시간에는 보러 가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날 아버지가 늦게 돌아오신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버지에겐 중요하고도 축하할 만한 날 - 새 기계를 시험해보는 날이었다(*‘기계’에는 ‘자동차’란 뜻도 있다). 아버지가 말하길, 아직도 예기치 않은 문제들이 터져나올 가능성이 있으며, ‘멍청한’ 엔지니어들 중 누군가가 반대하고 나설 수도 있었다… 아버지는 흥분해 있었다! 아버지의 퇴근을 기다리며 엄마가 흥분해 있었을 때처럼?

겐까는 기다리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빨리 보내기 위해서라도 영화관에 더욱 가고 싶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와 엄마(특히 엄마!)의 얼굴을 보고, 모든 일이 잘 됐다는 걸, 아주 성공적으로 잘 됐다는 걸 확인해보고 싶었다…

겐까는 멀대같이 키가 큰 7학년생 조라를 같이 데리고 갔다(*7학년이면 우리의 중1 정도이다). 조라는 아무런 문제없이 모든 표를 다 살 수 있었다(*키가 크니까). 둘은 저녁 무렵의 거리를 내달렸다. 하지만, 극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늦었다는 걸 알게 됐다. 모든 표가 매진이었다. 바로 앞 상영이 끝난 시간이었다… 영화관에서는 사람들이, 불빛에 눈을 찌푸리면서(*갑자기 환한 곳에 나오니까), 외투를 걸치며 걸어나오고 있었다(*러시아에서는 모든 공연장 출입시 입구에 있는 보관소에 외투를 맡겼다가 다시 찾는다)… 그때 겐까에겐 문득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춥지 않아, 난쟁이?
겐까는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가 보였다. 아버지는 허리를 숙여서 웬 낯 모르는 금발 여자가 스카프를 매는 걸 도와주고 있었다. 겐까는 구석으로 재빨리 피하고 싶었다. 그에겐 저녁 상영시간에 영화를 보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돼 있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의지와 무관하게 위로 향했고 아버지의 시선과 부딪혔다. 그리고 겐까는 깜짝 놀라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문득 아버지도 그를 보고 놀라신 걸 알았다. 그래, 그래, 아버지가 놀라셨어! 언제나 신중하고 침착하셨던 아버지가 갑자기 바빠지셨다. 금발 여자의 손에서 어색하게 손을 빼더니, 겐까가 보기엔, 심지어 기둥 뒤로 숨으시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기둥은 전혀 그를 가려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기둥은 좁고 가는데 반해서 아버지는 거구에다가 어깨가 넓었기 때문이었다.

겐까는 아버지를 도와주었다. 그는 거리로 뛰쳐나가서는 긴 다리의 조라조차도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하지만, 어느 사거리쯤에 이르러 겐까는 걸음이 멈춰졌다. 그의 귀에선 아버지의 목소리가 윙윙거렸다. “춥지 않아, 난쟁이?” 아버지가 알록달록한 스카프를 매어주던 금발 여자는 실제로 키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겐까로선 엄마에게 속하는 말들을, 오직 엄마에게만 속하는 말들을 그녀에게도 쓰는 것은 야만적인 일로 생각되었다…

그렇다면, 기계 시험은 도대체 뭔가? 거짓말이었던 말인가? 기계라는 것 자체가 아예 없는 것인가? 아버지가 거짓말을 하신 거다… 겐까는 이 사실을 이해할 수도 없었고, 그것이 용납이 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모든 게 거짓말이란 말인가? 책에 관한 얘기들도, 아버지의 충고도, 저녁식사 때의 토론도? 모든 게, 모든 게 거짓말이다!

집에 돌아온 겐까는 곧바로 침대에 가 누웠다.
-무슨 일이니? 그렇게 상기돼서… 너 열이라도 있는 거니? –엄마가 걱정스러워하며 물어보셨다.
-걱정마세요, 엄마… 그냥 너무 피곤해서 그런 거예요! – 평소답지 않게 겐까는 다정하게 대답했다.
실제로는, 오늘 그로선 엄마가 문을 열어주었을 때 아버지가 하는 인사를 듣고 싶지 않았고, 들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04. 06. 20/ 06. 09. 22.

P.S. 아래는 2004년 11월 21일 자신의 80세 생일을 기념하는 조촐한 자리(러시아 예루살렘 도서관)에서 '테러와 아이들'이란 주제로 강연하는 노작가 알렉신의 모습. 청중들은 어릴 적에 알렉신의 이야기들을 읽고 자란 독자들로 보이지만 어느새 모두 같이 늙어가는 처지가 아닌가 싶다.

Писатель Анатолий Алекси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재작년 모스크바 통신에 러시아 단편들을 두어 편 번역해서 올려놓은 바 있었는데, 생각난 김에 페트루셉스카야의 <복수>를 이미지 버전으로 옮겨놓는다. 국내에도 일부 단편과 드라마가 번역돼 있는 작가 류드밀라 스테파노브나 페트루솁스카야(뻬뜨루셰프스까야)는 물론 이름에서 알 수 있지만, 여성작가이다. 1938년생이고, 모스크바대학의 언론학부를 졸업했다. 1972년부터 잡지에 단편들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극작가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주된 관심은 인간관계에서의 소외 현상과 비정함, 그리고 잔혹성에 있다고 한다. 최근까지도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데, 1960-90년대에 활동한 대표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작가 10명 안에 꼽힌다(아동문학작가이기도 하다).

출간된 그녀의 작품집들을 여러 권 구경할 수 있었는데, 아직 잘 정돈된 전집은 나오지 않은 듯하다. 조금 더 자세한 정보를 갖고 있지만, 3쪽짜리 단편 하나 읽을 거 가지고 크게 떠들 일도 아니어서(나는 이 작가의 이름은 들어봤었지만, 직접 작품을 접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작가소개는 이 정도에 그치도록 한다. 참고로, 문단은 원작과 일치하지 않으며, (당연한 말이지만) 번역에는 작품에 대한 나의 ‘읽기’가 얼마간 반영돼 있다(모든 번역은 원작을 얼마간 ‘구부리기’ 마련인데, ‘왜곡’과는 구별되는 이 ‘구부리기’는 번역의 불가피한 조건이기도 하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엔 괄호 안에 *표시를 하고 역주를 달았다.

한 여자가 혼자서 애를 키우는 이웃여자를 증오했다. 아이가 자라서 점점 온 집안을 뛰어다닐 때쯤 되자, 이 여자는 전혀 고의가 아닌 듯이, 복도 바닥에 끓는 물이 담긴 양동이나 가성소다(*양잿물)가 든 물통을 놓기도 하고, 복도 바로 앞에 바늘곽을 떨어뜨려놓기도 했다. 불쌍한 아이 엄마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딸아이가 아직 잘 걷지 못하는 데다가, 겨울이었기 때문에 복도로는 나가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가 방에서 널찍한 복도로 저 혼자 나갈 수 있는 시기가 오고야 말았다. 엄마는 이웃여자에게 아이가 다닐 만한 길목에 물통이 놓여있다고 주의를 환기시키거나, 혹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라에치카, 당신은 또 바늘곽을 흘렸더군요.” 그러면 이웃여자는 기억을 더듬으면서 정신머리가 없어서 그랬노라고 푸념했다.

한때 그들은 절친한 친구였다. 그럴 만한 것이 그들은 방 두 개짜리 집에 같이 사는 독신여성들이었다(*방 두 개는 각자가 쓰고, 복도나 화장실 등을 같이 쓰는 러시아식 가옥 형태이다. ‘집’이라고 옮겼는데, 대개는 아파트나 공동주택이다). 그들에겐 많은 것들이 공동의 것이었으며, 심지어 손님들도 공동의 손님이었다(*한쪽에 손님이 오더라도 같이 먹고 놀았다는 얘기다). 생일날이면 그들은 서로 선물을 주고받았다. 게다가 그들은 서로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지냈는데, 그러던 어느날 지나가 어느새 잔뜩 부른 배를 하고 다니게 되자, 라야는 그녀를 거의 미칠 지경으로 증오하기 시작했다(*‘지나’와 ‘라야’가 두 여자의 이름이다. ‘지나이다’ ‘지노치카’ 등이 ‘지나’의 별칭이며, ‘라이사’ ‘라샤’, ‘라에치카’ 등이 ‘라야’의 별칭이다).

그녀는 순전히 증오 때문에 병이 나기 시작했으며, 집에 늦게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녀에겐 벽 너머 지나의 방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내내 들려오는 듯했고, 지나가 진짜로 혼자 있는 시간에도 말소리와 노크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지나는 반대로, 라야에게 전보다 더 애착을 느꼈다. 심지어 하루는 그녀에게 말하길, 자신에게 큰언니 같은 좋은 이웃이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고 했다. 아무리 힘들 때에라도 결코 자신을 내버리지 않을 큰언니.

라야는 실제로 지나가 출산준비물을 바느질하는 걸 도와주었고, 때가 되자 그녀를 조산원에 데려다 주었지만, 단 한번도 산모와 아이를 보러 가지 않았다(*직역하면 “갈 수가 없었다”이다). 때문에, 지나는 하루 더 조산원에서 아무런 출산준비물 없이 앉아 있다가 결국, 반환 약속을 하고 누더기 같은 관용 모포에다가 아이를 감싸서 데리고 왔다(*라야가 출산준비물을 갖다 주지 않은 것이다. ‘관용 모포’란 표현에서 지나가 사설 조산원이 아닌 국영/관영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은 걸 알 수 있다. 영화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에서 주인공 카테리나가 딸을 낳은 조산원 같은 걸 떠올리면 되겠다).

라야는 아파서 못 가봤다고 변명을 했고, 내내 아프다는 핑계를 대면서 단 한번도 지나를 위해서 상점에 가지 않았고, 그녀가 물건을 사는 걸 도와주지 않았다. 그저, 어깨에 찜질 같은 걸 하면서 앉아 있었다. 그러면서, 지나가 아이를 손으로 안고 목욕탕에 갔다가, 부엌에 갔다가, 산책을 나가기도 하고, 와서 한번 보란 듯이 내내 방문을 열어놓고 있었어도 아이를 단 한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지나는 미리,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로 일거리를 바꾸었고, 재봉틀에 익숙해졌다. 그녀에겐 친척이 없었기 때문이고, 이웃 사촌이란 말은 그저 듣기 좋은 소리에 불과했다. 사실상 그녀는 아무에게도 의지할 수 없었으며, 혼자서 모든 걸 해나가고, 혼자서 짐을 날라야 했다. 딸아이가 어렸을 때, 지나는 아이를 재운 다음에 일거리를 날라왔고, 혼자서 노임을 받으러 갔다. 하지만, 딸아이가 잠자는 시간이 줄어들고 좀더 크게 되자 일이 번거로워지기 시작했다. 지나가 아이를 데리고 다녀야 하게 된 것이다. 한편, 라야는 자신의 어깨 관절에만 고집스레 매달렸고, 심지어는 그 때문에 병원에 입원도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잠깐 아이를 봐달라고 부탁하는 게 지나로선 선뜻 내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라야는 아이를 죽일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점점 자주, 버둥대는 아이를 양손에 안고서 복도를 다니면서(*복도에 위험한 것들이 있어서), 지나는 부엌 바닥에 물컵인 듯한 게 놓여 있는 걸 보거나(*가성소다가 담겨있을 듯), 탁자에 뜨거운 찻주전자가 손잡이를 늘어뜨린 채 놓여 있는 걸 보게 되었다. 하지만, 지나에겐 아무런 의심도 들지 않았다. 적어도 그녀는 “엄마라고 말해봐!”라고 말하면서 딸아이에게 항상 즐겁게 종알댔다. 하지만, 상점이나 직장에 나갈 때는 아이가 못나오게 가둬두고 다녔고, 이건 좋게 넘어가지지 않았다. 라야는 극도로 화가 났다.

지나가 무슨 일인가로 밖에 나갔을 때, 방안에 있던 아이가 잠이 깨서는, 아마도 침대에서 떨어진 듯했다. 문쪽까지 기어와서는 울어댔다. 라야는 아이가 잘 걷지 못하고, 침대에서 떨어졌으며, 빽빽 울어대는 걸로 봐서 아마도 크게 다쳤고, 바로 문 앞에 누워있는 걸로 짐작했다. 라야는 더는 울음소리를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목욕탕에서 거기 보관하고 있던 가성소다 병을 가져와서 양동이에다 따르고는 복도바닥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용액을 문 밑쪽으로 끼얹었다. 아이가 누워있는 쪽으로. 울음소리는 자지러지는 소리로 바뀌었다. 라야는 복도바닥을 닦아냈다. 양동이와 수세미와 장갑까지 모두 깨끗하게 닦았다. 그리고는 옷을 입고 병원으로 갔다.

의사가 왔다간 후에 그녀는 영화관에 갔다가 상점을 들러서 저녁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지나의 방은 불이 꺼져 있었고, 조용했다. 라야는 텔레비전을 한동안 보다가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지나는 밤새 돌아오지 않았고,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라야는 도끼를 들고와서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는 먼지투성이인 방안에서 침대 옆 바닥에 말라붙어 있는 핏자국과 문쪽에 있는 더 큰 핏자국을 보았다. 가성소다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라야는 이웃여자의 방바닥을 닦아내고, 정돈한 다음에 흥분 어린 기대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마침내 일주일쯤이 지나자 지나가 돌아왔다. 그녀는 딸의 장례를 치렀고, 주야로 일하는 직장을 다니게 됐다고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의 말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움푹 들어간 눈과 누렇게 뜨고 늘어진 피부가 그녀를 대신해서 모든 걸 말해주었다. 라야는 지나를 위로하려고도 하지 않았고, 집안에서의 삶은 이제 숨이 멎은 듯 고요했다. 라야는 혼자서 텔레비전을 보았고, 지나는 주야로 하루를 일하면 온종일 잠을 잤다. 그녀는 마치 정신이 나간 듯이, 사방에다가 딸의 사진을 걸어놓았다.

라야의 병은 더 심해져서, 그녀는 팔을 들어올릴 수도, 걸어다닐 수도 없었고, 심지어 관절주사도 도움이 되질 않았다. 의사들은 관절염이라고 진단했다. 사태는 더 나빠져서, 라야는 자신의 끼니를 챙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심지어 차를 끓일 수도 없었다(*러시아에서 차를 끓이기 위해서는 가스렌지를 켜고 성냥 등으로 불을 붙여야 한다. 우리의 갈비집에서처럼. 라야에게 그런 불을 붙일 힘도 없어졌다는 얘기다). 지나가 집에 있을 때는 그녀가 손수 라야에게 음식을 먹여주었다. 하지만, 지나가 집에 들르는 날이 점점 줄어들었고, 일이 힘들다는 핑계를 댔다. 어깨의 통증 때문에 라야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지나가 무슨 병원 같은 곳에서 간호보조원으로 일한다는 걸 알고서, 라야는 그녀에게 모르핀 같은 강한 진통제를 얻어달라고 부탁했다. 지나는 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내가 맡고 있는 일이 아니야.”

<그럼 이걸 더 많이 먹어야겠어. 나한테 30알만 세줘.>
<아니, 안돼.> 지나가 말했다. <내 손으로 죽게 하진 않을 거야.>
<하지만 나는 손을 움직일 수가 없잖아.> 라야가 따지듯이 말했다.
<넌 그렇게 값싸게 벗어날 수 없을 거야.> 지나가 말했다.
그때 환자가 초인간적인 힘으로 병을 입에 갔다 대더니, 이빨로 마개를 빼내고, 약을 몽땅 입에다 털어넣었다. 라야는 아주 오랫동안 죽어갔다. 아침이 밝아오자, 지나가 말했다.

<이제 잘 들어둬. 난 너를 속였어. 우리 레노치카(*딸의 이름)는 죽지 않았어. 아주 잘 뛰놀고 있지. 그 아인 탁아소에 있어. 나는 거기서 간호보조사로 일하고. 그리고 네가 문밑으로 끼얹었던 건 가성소다가 아니라 일반 식용소다야. 내가 바꿔놓았었지. 바닥에 있던 피, 그건 레노치카가 침대에서 떨어졌을 때 난 코피야. 그러니까, 넌 아무런 잘못도 없어. 누구도 그것 때문에 너를 문책하진 않을 거야. 하지만, 나도 잘못이 없어. 우린 서로에게 빚이 없는 거야.>

그리고 그때 그녀는 죽은 이의 얼굴에서 천천히 행복한 미소가 번져 나오는 걸 보았다.

 

 

 

 

04. 06. 03/ 06. 09. 21.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7-01-20 0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1-20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부지런도 하셔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러시아 작가, 혹은 러시아어로 소설을 쓰는 우크라이나 작가 안드레이 쿠르코프(1961- )의 작품이 번역돼 나왔다. <펭귄의 우울>(솔출판사, 2006)이 그것. 저명하다고는 하나 러시아 문학의 근황에 어두운 나로선 쿠르코프란 작가에 대해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고 몇몇 자료들을 뒤적거려보았다. 출판사와 알라딘의 책 소개 등을 자료로 하여, 이 또 다른 문학의 세계를 잠시 엿보기로 한다.  

-구소련 해체 이후, 가장 뚜렷하게 서구인들에게 현대 러시아문학을 각인시킨 작가로 꼽히는 '안드레이 쿠르코프'의 대표작. 간명하고 속도감 있는 문체로 부조리한 현실을 풍자하는 소설로, 소비에트 붕괴 후의 혼란한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안드레이 쿠르코프는, 정치와 사회를 과감하게 풍자하고 추리소설과 판타지, 순문학을 넘나드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펼쳐온 작가. <펭귄의 우울>에서는, 한 나라와 한 시대가 아닌 변화하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하는 일반적인 소시민들의 삶을 그린다. 무표정한 얼굴, 뒤뚱뒤뚱 우스꽝스럽게 걷는 애완동물 펭귄은 이들의 우울한 일상을 대변한다.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고 자본주의 물결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작은 도시 키예프. 주인공 빅토르는 여자 친구가 떠나가버린 후, 우울증 걸린 펭귄 '미샤'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날 그에게 특별한 청탁이 들어온다. 키예프의 유명 신문에 언젠가 죽을, 미지의 인물들을 위해 조문을 쓰는 것. 그러나 이 요청을 수락함으로써 빅토르와 미샤는 더이상 도망갈 수 없는 함정으로 빠져든다...

이어서 출판사쪽 소개: 우리에게 러시아문학은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로 대변되는 19세기문학 이후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20세기 문학이 물론 두 작가만큼 소개된 건 아니지만,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소비에트 해체 이후와 아무래도 혼동한 듯하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구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문학이 활발하게 번역되기 시작했는데, 그중 가장 뚜렷하게 서구인들에게 현대 러시아문학을 각인시킨 작가가 우크라이나 출신의 안드레이 쿠르코프다(*최상급은 언제나 과장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뚜렷하게 각인시킨 작가들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해야겠다).

-정치와 사회를 과감하게 풍자하고 추리소설과 판타지, 순문학을 넘나드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는 그의 소설들은 유럽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 에스파냐어, 네덜란드어, 터키어 등으로 번역되었다(*군대에선가 일어 통역원으로도 근무한 적이 있다고. 감옥의 간수 경력도 갖고 있다).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서도 능력을 발휘해 수십 여 편의 예술영화와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한 그는 베를린 영화제 심사를 맡기도 했으며, 우크라이나의 한 주간지에 ‘2005년 우크라이나를 움직이는 사람 100명’에 선정될 만큼 이미 자국과 유럽 여러 나라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들 중 이 책 <펭귄의 우울>은 일본에서도 번역되어 호평을 받은 바 있는 안드레이 쿠르코프의 대표작이다(*아래가 일역본의 표지).

(*) 한편 영역본의 제목은 <죽음과 펭귄>이며, 원저의 제목은 밝혀져 있지 않지만 <빙판으로의 소풍>이 아닌가 싶다(이걸 확인해볼 시간이 지금은 없다).


-간명하고 속도감 있는 문체로 우울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유머 있게 풍자하는 <펭귄의 우울>은 소비에트 붕괴 후의 혼란한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주인공 빅토르를 통해 한 나라와 한 시대가 아닌 변화하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하는 일반적인 소시민들의 삶을 보여준다. 무표정한 얼굴, 뒤뚱뒤뚱 우스꽝스럽게 걷는 애완동물 펭귄 또한 쿠르코프가 그리고자 하는 우울한 일상을 대변한다.

-부산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양민종 교수는 '추천의 글'을 통해 “포스트 소비에트 소설은 ‘철학’이라는 말에 경기를 일으켰다. 눈을 뜬 다음 잠자리에 들 때까지 헤겔, 마르크스-레닌을 거쳐 과학적인 사회주의에 이르는 철학의 과잉공간에서 살다가 비로소 해방을 맞았으니 이해할 법하다.” 이 소설은 “추리소설이면서도 보편성을 띤 소설로 진화한 작품”이면서 “독자에게 글 읽는 즐거움을 주는” “단숨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 내리게 하는 마법을” 가졌다고 말하고 있다.

-옮긴이이자 소설가 이나미는 “서사 면에서 스토리 전개가 매우 속도감 있고, 문장도 간결하면서 흡인력이 있고, 등장인물들은 각자 자기 위치에서 과하거나 부족함 없이 마지막까지 역할을 충실히 한다. … 소설 곳곳에서 진한 페이소스가 느껴지며, 초현실적이고, 블랙 코미디적 요소와 아이러니가 적절하게 가미되어 읽는 재미와 함께 책장을 덮고 나서도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고 평하고 있다(*그 여운에 당신도 한번 동참해 보시길).

06. 09. 01

P.S. 그러니까 지난 90년대 이후 쿠르코프는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잘 나가는 작가로 보인다. 그처럼 우크라이나인이면서 러시아어로만 작품을 쓴 가장 대표적인 작가가 니콜라이 고골(1809-1852)이다. "우울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유머 있게 풍자"한다고 하면 고골의 적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작가의 상륙을 환영한다. 쿠르코프-펭귄에게 주는 주의! 한국이란 나라도 상당히 미끄럽단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6-09-01 1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