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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밤을 함께 주신 신의 아이러니
호세 카를로스 카네이로 지음, 김현균 옮김 / 다락방 / 2005년 3월
평점 :
두 권의 보르헤스 단편집을 읽었다. '불한당들의 세계사'와 '픽션들'이다.
두 권의 나의 리뷰를 보면 항상 이해할 수 없다. 어렵다. 느낄 수 없다 등의 물음표 투성이 리뷰들이다.
그러나 '보르헤스'라는 (그 자체로 위대한) 책을 읽고 그 감동의 리뷰를 적은 카를로스 카네이로의 이 책은 보르헤스를 더 대단하고 동시에 더 친밀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저자는 보르헤스라는 인물을 거의 신격화하는 정도이고, 그런 이유로 이 책은 평전의 느낌보다는 어릴적 있던 위인전의 느낌이었다. 그와 6년여나마 같은 시기를 살았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책의 원제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이고 역자는 보르헤스의 삶을 가장 응축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축복의 시' 중 한 구절중 제목을 뽑았다. . 말년에 그 좋아하는 책들에 둘러쌓여 아르헨티나의 국립도서관장을 맡았건만, 그는 점점 시력을 잃어간다. 시들어가는 눈 때문에 그에게 주어진 80만권의 장서를 샅샅이 탐사하지 못하고, 극히 일부만을 누릴 수 있었고, 그러나 담담한 어조로 자신의 시력상실과 도서관에 대해 쓴 시가 바로 '축복의 시' 이다.. ' 어느 누구도 탄식이나 비난쯤으로 폄하하지 않기를, /기막힌 아이러니로 내게/ 책과 밤을 동시에 주신/ 신의 오묘함에 대한 소회를 http://blog.aladin.co.kr/misshide/704411
열여덟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이 책은 한 편의 이야기다' 에서 보르헤스의 묘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푸른 의자 그리고 이별' 에서 다시 제네바의 플렝 팔레 공동묘지에 있는 보르헤스의 무덤과 묘비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끝난다. 'Hann tekr sverthit Gram ok/ leggr i methal theira bert' (그램이 자신의 검을 집어들고 번뜩이는 쇠붙이를 두 사람 사이에 놓았다)
보르헤스는 감히 반박할 수 없는 천재였고( 저자의 의견으로는), 그 존재의 빛은 영원하며, 그 어떤 과오에도 불구하고 완벽하다. 문학 그 자체였다. 라고 한다.
그렇게 거의 신격화된 보르헤스는 그러나 동시에 친근하다. ' 그는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할아버지상 그 자체였다. 훤칠한 키에 살집 없는 몸, 눈썹까지 흰 백발, 무한을 향해 우뚝 솟은 이마, 지팡이에 의지한 연약한 풍채, 끝없는 단편과 이야기의 창안자, 현자. 분명 매력적인 할아버지 상이었다.'
채 스물이 되기도 전에 플로베르, 모파상, 졸라, 보들레르를 읽으며 프랑스어를 배웠고, 쇼펜하우어를 읽기 위해 독일어를 배우며, 영국인인 할머니에게 일찌감치 영어를 배워 영어원서고전들을 읽었다. 언어를 탐구하는걸 죽는 그 날까지 멈추지 않았으며, 책에 대한 사랑. 책의 내용말고도 책이라는 물리적 존재감마저도 지극히 사랑했었다.
타협하지 않았고, 그런 이유로 적들도 많았다. 십자대훈장을 받기 위해 산티아고를 방문했을적 독재자 피노체트 와 포옹하면서, 정치적입장과 문학적입장의 연관을 뗄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자들의 협박과 항의를 받았다. 그러나 그가 여러번 되풀이했던 그의 입장은 '정부가 없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 그런날은 그때도 지금도 미래에도 없겠지만) 라는 것이었다.
그의 평생의 한부분들을 차지한 그의 여자들. 보르헤스는 평생 가질 수 없는 여인과 플라토닉한 사랑을 했다. 그의 추종자들. 그의 친구들. 그의 적들; 스웨덴 학술원 뿐 아니라 헤밍웨이와도 독설을 주고 받는 사이였다.에 대한 이야기는 보르헤스라는 이름의 거대함을 현실로 끌어내려준다.(?)
이제 다시 보르헤스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알렙'을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앞서 읽었던 '불한당의 세계사' 와 '픽션들'도 다시.
알론소 키하노일뿐 감히 돈키호테는 되지 못했던 아무도 정의할 수 없는 아르헨티나인인 보르헤스.
http://blog.aladin.co.kr/misshide/707099
전기를 한 편의 신비로운 이야기로 쓴 카를로스 카네이로에게 박수를
'보르헤스'라는 위대한 책을 평생동안 읽고 결국 카를로스 카네이로가 쓴 이렇게 훌륭한 리뷰에 추천을.
그 훌륭한 리뷰에 달은 나의 허접한 리뷰에는 맘껏 비웃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