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
수키 김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작가의 약력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열세 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 이민길에 올랐다. 컬럼비아 대학 바너드 칼리지를 졸업하고 런던 대학에서 동양학을 공부했다.'

그런 그녀의 데뷔작인 '통역사'는 ' 2004년 헤밍웨이 문학상 후보에 올랐으며 경계문학상, 구스타프 마이어 우수도서상을 수상하였다. 미국 최대 서점망 반즈 앤드 노블에서 선정한 '올해의 작가10인'에 포함되었으며 프랑스, 일본, 네덜란드에도 판권이 팔리는 등 세계 문학계에 떠오르는 신예로 주목을 받고 있다. '

소위 '1.5세' 혹은 '교포' 라는 이름의 이들이 쓴 책들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줄거리에 혹했고, 젊은 미녀 작가의 얼굴에 혹했을지도 모르겠다. 책에 대한 평은 둘째치고라도 미국에서 한국인이( 아니, 한국인 1.5세가) 이렇게 대단한 평을 이끌어내다니 정말 대단하다 싶었다. 원서 뒷표지 가득한 그녀의 미모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번역본에는 책날개에 작게 있을뿐이다)

내가 혹했던 책소개는 다음과 같다.
'작품은 한국인과 미국인, 전통과 현대 등 서로 대립하는 두 가지 정체성을 안고 살아가는 한 여성의 삶을 아름답고 치밀한 문장으로 그려냄'

그리고 나를 끌어당긴건 책의 첫페이지, 첫문장이었다.  '오전 9시의 담배는 절망감의 표현이다. 11월, 비. 6호선 지하철 사우스브롱크스 역 앞의 붐비는 맥도널드, 이런 아침이 아니라면 그녀에게 흔치 않은 일이다.'

주인공인 수지는 스물 아홉살의 통역사이다. 어떤 직업에도 정착하지 못하다가 통역 에이전시에서 미국의 힘있는 자들에게 고용되어 영어 못하는 한국 이민자의 말을 통역한다.  어느 날. 그녀가 더 이상 중립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었을때 그녀는 통역사란 직업을 그만두게 된다.

읽으면서 내내 씁쓸했다.
내가 본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간 이들은 그랬다.
한국이 어려웠을 시절에 이민을 가서, 한국에 대한 온통 나쁜 기억만이 가득하고, 미국에 살면서도 '한인교회'라는 곳에 모여 한국인끼리 생활을 하고, 그러면서 '한국인들이 제일 거짓말 잘한다' 는 식의 말로 비방하고, 그들이 등돌린 한국은 아직까지 엄청 후진국상태일꺼라 생각해 대형마트에서 이것저것 챙겨주려하는 그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와서, 일주일에 칠일을 일해야 했던 그들.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 1.5세라고 말해지는 그들.

나의 많지 않은 경험에도 불구하고, 책 속에 묘사되는 것들은 너무 현실적이다.

그녀가 아버지의 입을 빌려 하는 얘기들. ' 니가 그러면 조상님들을 어떻게 보려구' ' 한국사람들은 조상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 한국에서는 가능한 빨리 결혼을 하려고 한다. 스물 다섯살만 넘어도 노처녀 딱지를 붙이고..' 미국에 와서 미국에서 벌어먹고 사는 한국인들의 미국에 대한 증오를 말한다. 이민간 이들 중에서도 자수성가하거나, 잘 사는 사람도 있을테지만, 그 보다는 더 대다수를 차지하는 야채가게, 수퍼마켓, 세탁소를 하는 '영어도 못하는' 한국인들에 대한 묘사이다.

1.5세의 눈으로 보기에 비합리적이고, 말 안되는 부모들의 행동과 말.

이 책을 미스테리물이라고 하는데, 그 사건과 결말마저 1.5세로서의 그녀의 불안한 위치에 빚지고 있다.

섬세하고, 때로는 빛나는 문장들이지만, 이 책의 소재와 주제가 그녀가 살아오고, 보아온 것에 이렇게나 많이 의존하고 있다면, 지금 준비하고 있다는 그녀의 두번째 소설을 볼 때까지 그녀에 대한 판단은 보류이다.

짧지 않은 책은 술술 넘어갔다. 작가의 눈을 통해 본 한국의 모습은 내가 보는 한국의 눈과 닮아 있고, 그래서 씁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정들과 문장들은 훌륭하다. 젊고 미모로운 한국인 1.5세가 썼다니 더 훌륭하다. 책 중에 나오는 나보코프의 일화. 미국에 온지 겨우 10여년만에 약먹은 포크너마냥 뛰어난 문장력을 발휘하여 미국인들 다 나자빠지게 죽이는 책을 썼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아.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만두 2005-10-22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하이드 2005-10-22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간만에 재밌게 본 책이에요 ^^

moonnight 2005-10-22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의 리뷰에 그만 또 솔깃해지고 맙니다. 저는 요즘 피의언어를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이 책도 읽고 싶어지네요. 보관함으로! ^^

mong 2005-10-22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깃-

panda78 2005-10-22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곧 올 텐데, 무지 기대됩니다. ^^
 
불안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5년 10월
구판절판


표지입니다.
잘 보면 겁나 촌스러운 홀딱 깨는 표지.. 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만...
애정을 가지고 봅시다.

설마 '침대 위에 앉아 있는 보통씨' 에게 실망했다고 하지는 않으실꺼죠?
미워할꺼에요오오~!

침대위에 앉아서 귀엽게 양손으로 턱을 괴고 있는 보통씨.
옆의 찐따 인형들이 부럽습니다.

뒷장에는 '책상위에 앉아 있는 보통씨'
어허! 갈수록!
귀여워집니다. 저 아래 가지런히 벗어놓은 구두 보래요.

보통의 책상일까요?

조금은 불안불안한 책껍데기를 벗기면..
앗, 적응안되는 하드커버의 심플한 시뻘건 색이 나옵니다.

펼치면 개나리노란색. 음.. 띠지는 나름 맞춘거였군요.
적응은 잘 안됩니다만.

차례에 가장 처음 나오듯이
이 책은 '정의' 로 시작합니다.
status anxiety 란 제목.
status( 지위),
status anxiety ( 지위로 인한 불안)
Thesis ( 명제) 에 대한 보통의 명쾌한 정의로 책을 시작해봅시다.

한번만 말할께요. ' 본인의 생각과 100% 맞지 않는다' 고 던져버리지는 마세요. 그러기엔 너무나 샘나게 멋진 보통이니깐요.

봉마르쉐 백화점 ( 중앙계단) , 파리, 1880
네. 여행의 기술에서처럼 흑백이긴 합니다만.
온갖 종류의 삽화, 그림, 카툰 등이 나옵니다.

그러니깐 물질적 진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닉슨과 후르시초프의 사진으로 시작합니다) 중세와 근대 유럽초기로 넘어가더니 18세기 초 영국에서 일어난 서양의 위대한 변화 얘기를 하다가 획기적인 발명품들 콘플레이크( 1895년에 j.h.켈로그가 특허를 냈다. 자신의 요양소에 입원한 사람들에게 주던 곡물 혼합물이 굳었다가 얇은 조각으로 깨지는 것을 보고 착안한 것이다) ' 드라이 클리닝'(1849년 파리의 재단사 졸리-벨랭이 발명했다. 그는 실수로 테레빈유를 식탁보에 쏟았는데,...) 등등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그러면서 그 옆페이지에 저리도 절묘하게 백화점 그림을 끼워 넣은 거에요!!

이 사진이 저 위 챕터의 시작이죠. 1959년 모스크바에서 열렸던 미국 박람회에서 '타지마할'의 부엌을 관람하는 니키타 흐루시초프와 리처드 닉슨.

" 1959년 7월 미국 부통령 리처드 닉슨은 미국의 기술과 물질적 성취를 전시하는 박람회를 개최하러 모스크바로 갔다..."

읽는 사람을 가장 강력한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는 보통의 글빨! ( 글솜씨보다 글빨! 이 어울린다구요)이라니.

리 밀러, <풀밭의 아침식사>, 1937, 피크닉을 나온 프랑스 무쟁의 초현실주의자 그룹. 왼쪽에는 뉘슈와 폴 엘뤼아르, 오른쪽에는 아래부터 아디 피델랭, 만레이, 롤랑 팡로즈.

뒷부분의 '보헤미아'를 시작하는 사진입니다.

풍자만화입니다. 예술중에 희극중에 풍자만화편에 나오는 글과 그림입니다.

" 나는 보통 6시30분에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나면서 9시면 사무실에 출근해 있지"

마음이 상냥한 만화가들은 지위로 인한 우리의 근심을 보고 우리를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놀린다. 그들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전제하에 우리를 비판한다...

재밌겠죠? 흐흐

책꽂이에 이 시뻘건 책 꽂아 놨을때의 그림.. 생각보다 그리 나쁘지 않군요.

..나쁘지 않다고 얘기해주세요.
너..너무 뻘건가요?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이드 2005-10-22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사진 맘에 안 들어 -_-;;; 하지만, 낮에 다시 찍기 귀찮다.귀찮다.

울보 2005-10-22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뻐요,,

마냐 2005-10-22 0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좋아라.
불안도 사고, 분실한 여행의 기술도 다시 지르고, 다 사고야 말테야요.....오옹...언제? 물건너로? 음음.

마늘빵 2005-10-22 0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빨간색 좋아해요. 질렀는데 아직 도착안했네요.

mong 2005-10-22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은 어제 페이퍼 보고 표지는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후배한테 삥 뜯었어요~
곧 올겁니다....저 착한거죠? ㅎㅎ

chika 2005-10-22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혹시 어제 뽐뿌질이 '보통'이라고 해서 이렇게 강력한 글을 남기시는거예요? '불안'하게시리...;;;;;;
제가 산 보통씨 책은 몽땅 하이드님에게 넘어가 산 거란거 알죠?

하이드 2005-10-22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아직 리뷰가 남았습니다. ^^

날개 2005-10-22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빨강색 강렬하군요..^^ 보통책만 눈에 확~ 띕니다..ㅎㅎ
살짜기 추천도 해주는 센스~ ^^*

moonnight 2005-10-22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뻐요. 나이가 드니 고운 색깔이 좋아지는지라 ^^;;

로드무비 2005-10-22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

하이드 2005-10-22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후진 사진에 가슴 아프고 있는데, 감사합니다. 리뷰는 열심히 써볼께요. ㅜㅜ

明卵 2005-10-23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간색 커버에 노란색 속지... 제 연습장이랑 똑같은데요ㅎㅎ 색깔에 필 꽂혀서 산 거였는데^^ 음, 읽어보고 싶네요.

미세스리 2005-10-24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 사야하니까. 언니꺼에 땡스투!
 
화가의 우연한 시선 - 최영미의 서양미술 감상
최영미 지음 / 돌베개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시대의 우울' 에 이은 두번째 책.
모네의 수련 그림이 있는 표지가 책이 놓여져 있는 곳까지 환하게 만든다.
하얀 표지에 작은 네모의 시퍼런 남빛이 있던 첫번째 책이 다소 고민스럽고, 도발적이고, 빈정거린다면, 이번의 책은 모네그림의 빛과 수련과 연못의 색깔의 화사함 만큼이나 다른 어조를 유지.. 하는듯 하다.

책의 아주 첫페이지에 나와있다. '그림은 우리네 삶의 정직한 거울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지요. 저는 여기에 아는 만큼( 살아온 만큼) 보인다' 는 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  말도 공손해졌다. 이 말이 마음을 울렸던 것은 이때까지 내가 '읽는만큼' 보인다. 라고 착각하고 있었던건 아닐까 싶어서이다.
많이 보고, 많이 읽고, 거기에 덧붙여 많이 생각하기. 어찌보면 간단한 이야기이지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지 못했었다. 책에서 보는 얘기 말고도 주관적인 이야기들이 유난히 많이 나오는 감상기라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봐야할 그림'들을 표시해가면서 그 넓은 내셔널 겔러리를 돌았던걸 생각하면, 언제나 아쉽다. 그녀는 호기심 많고, 신기한것도 많고, 열정도, 우울도 많은 인간이다.

1장 '권력의 얼굴' 의 고대이집트 왕의 초상부터 21장 '사각형 속에 길을 잃다' 의 에드워드 호퍼 까지. 그녀가 살아온만큼 플러스 내가 살아온 만큼을 그녀의 그림 감상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보는 재미와 읽는 재미가 충족되는 책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루(春) 2005-10-20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완전히 최영미에 버닝 모드군요.

하이드 2005-10-20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 - 방금 하루님 서재에서 오는 길인데 ^^ 넵.

moonnight 2005-10-20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무척 재미있게 읽었어요. 암것도 모르고 그림 좋네. 하면서 런던과 파리의 미술관들을 돌아다녔던 걸 생각하면 참 부끄러워요. ㅠㅠ 담에 갈 기회가 생길 때(언제? ;;)를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겠어요. ^^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크리스티나 페리 로시 지음, 정승희 옮김 / 작가정신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난 단편집을 좋아한다.
중남미 소설을 좋아한다.

크리스티나 페리 로시라는 작가의 프로필도 맘에 든다. ' 여성, 동성애자, 좌파'인 그녀는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을 통해 제도와 문명이라는 틀 속에서 살아가는 회의하고 주저하는 일상의 순간, 현대적 삶의 편린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무려 서른개의 단편이 있으니 책도 실하다.
제목들도 너무 멋지다. '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 '장거리 주자 멈추어서다', '언어의 심연' , '도마뱀의 크리스마스' , '침대에서 내려오기 위한 지침들' , '빛이 물고기에게 미치는 영향', '돼지에게 국화 먹이기' ...

단편들의 내용들은 '어디선가 읽은' 이라기 보다 ' 신선한 날것의 새로운' 느낌이다.
동시에 ' 지루해서 죽을 것 같은' 과 ' 잔인해서 눈쌀 찌푸리게 하는 ' 이기도 하다.

이 모든걸 다 함께 지닌 단편집이라니.
읽어볼 시도 해볼만하다.

표제작이기도 한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은 어느 정크야드에 세워진 '쓸모없는 노력' 의 기록을 모아 놓은 박물관과 그 박물관을 매일같이 방문해서 기록을 열람하는 '나'의 이야기이다.
' 가계도를 복원하고, 금을 찾아 광산을 파헤치거나, 책을 쓰는 것 같은 쓸모없는 노력을 한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복권에 당첨되는 희망을 품기도 했다.'
책에서 이야기되는 '쓸모없는' 은 머릿속에서 계속 퍼져나가서, 이 세상의 모든 행동과 꿈들이 '쓸모없는 짓'으로 분류되어 박물관 어딘가 처박혀 있을 것 같은 염세적인 마음마저 들게 한다.

그 외에도 '모나리자' 에서는 뒤샹의 '모나리자' ( 콧수염 그려진) 을 보고 스토리를 새롭게 만들어 내고 '타잔의 외침' 에서는 은퇴한 배우 자니 와이즈물러( 초대 타잔역) 에 대해 희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등 현재를 관찰해 이야기를 지어내거나, '시간이 약이다' , '창과 벽 사이' ( 스페인 숙어로 곤란에 빠졌다는 뜻) , ' 고집스런 양 한마리' 에서는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의 꼬.투.리.를 잡아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망명작가인 그녀의 경험은 '조각상들과 이방인들의 조건'  ' 도시' 와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으며,
그런 경험에서 나왔을법한 사회와의 화해. 충돌에 관한 이야기들도 ' 침대에서 내려오기 위한 지침' , ' 느슨한 줄에서 살기' 등에서 볼 수 있다.

줄거리만으로는 종합선물세트같은 단편집이 아닐 수 없다.


여기 모인 단편들을 난 '미완성' 혹은 '메모'라 부르고 싶긴 하다. 단순히 길이가 짧아서, 스토리가 완결되지 않아서만은 아니다. 평생 단편만을 썼던 보르헤스의 그 단편들에 집약된 완벽하고 완전하며 완결된 느낌을 받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가 2005-11-03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미스하이드님.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역자입니다. 뻬리 로시의 작품듦은 치밀한듯 한데 또 미완의, 열려진 구조를 갖고 있는 것같아요. 저한테는 한 가지 해석이 아니라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모호함이 뻬리 로시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저도 독자로서 시작한 번역이니 만큼 작품에 대한 독자들 반응이나 느낌이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글 남겨주셔서 반가워서 댓글 달아봅니다:)

하이드 2005-11-03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닉네임이 멋지시네요. ^^ 좋아하는 곡인데.
내용도 알차고, 새로운 스타일이라 맘에 든 책이었습니다.
처음 읽을때는 미완의 느낌이 그리 편하지 않았는데, 다양한 해석과 결말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그렇게 본다면, 또 매력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군요.
 
시대의 우울 - 최영미의 유럽 일기
최영미 지음 / 창비 / 199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리뷰를 쓰기 전에 올라와 있는 서른 아홉편의 리뷰들을 훑었다.
대부분 그녀를 '시인 최영미' 로 알고 '서른, 잔치는 끝났다' 란 강렬한 제목의 시인으로 알고 있다.
나 역시 이번에 그녀의 '서양미술사 - 문학과 미술의 특별한 만남' 을 듣기 전에는 시인으로만 알고 있던 ( 그렇다고 그녀의 시집을 찬찬히 읽어본적이 있던것도 아니였지만) 그녀가 서양사를 강의한다기에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녀는 서울대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했고 홍익대학원에서 역시 미술사를 전공한 미술사학도이다.( 그녀 자신 이 표현을 꺼릴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딱 한 번 들어봤지만, 미술사를 강의하는 그녀의 열정은 ' 자신이 가르치는 것을 정말 좋아하고, 수백번을 봤을 슬라이드를 설명하면서도 본인이 또 감탄하는' 그런 열정이었다. 그렇게 짧았던 두시간여의 강의 동안 미술사와 문학 이야기를 절묘하게 섞어내는 그녀는 본인 스스로 말솜씨가 없다. 두서없고, 어수선하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듣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었다.

강의를 신청하고 그녀 이름으로 된 책을 두 권 샀다. ' 화가의 우연한 시선'이라는 비교적 최근에 나온 표지도 아름다운 책과 '시대의 우울'이라는 자그마한 책. 무려 십여년전에 나온 책이다. 목차로 봐서는 비슷비슷한 요즘 나온 책들을 여러번 본 터라 사지 말까. 잠시 고민하며 책을 후루룩 넘기는데, 나를 사로잡는 한문장이 있어 대번에 샀다. ' 나는 '잔치는 끝났다'고 말한 적 없다'  그녀를 알기 전에 그 말은 참 도발적으로 다가왔고, 결국, 제목도 표지도 온통 블루인 이 책을 집었던 것이다.

1995년 1996년의 여행동안의 일기 속에 유럽을 혼자 떠돌았던 그녀의 모습은 지난달 이십여일간의 유럽여행을 떠올리게 했다. ' 생은 왜 내게 이다지도 낯설까. 이방의 도시를 전전하며 나는 자신과 끝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68pg '여행을 하면서 나는 점점 내 자신에 근접해갔다. 내가 어떤 인간인지, 내가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게 무엇인지. 얼마짜리 방이면 만족할 수 있는 인생인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91pg 이런류(?) 의 비슷한 유럽 일기. 함정임의 일기가 문득 생각났다. 그녀의 그 책은 묘지기행이었는데, 너무 오버된 감정으로 보기에 심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대부분인 그림 이야기에 간간히 섞여 나오는 최영미의 독백은 그대로 가슴 털썩스럽다.

이런류(?) 의 책들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이주헌의 책들이다. 그의 글은 솔직담백하며 자연스럽다.
최영미의 글? '깬다 ' 아. 이런글도 쓰는구나. 그저 이런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도 깜짝깜짝 놀라는데, 그녀가 속해있는 '서양미술사' 공부하는 무리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괜찮을까, 그녀? 두번째 책인 '화가의 우연한 시선' 의 책껍데기에는 유홍준의 추천사가 있다. ' 그녀가 내 후배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 고하는 걸보면 왕따는 아니겠지?

언뜻봐도 호오가 분명해보이는 그녀다.
좋아하는 렘브란트의 그림 앞에서는 한없이 무너지고
루벤스의 거대한 캔버스들 앞에서 탄식하며' 거 참 비싼 화폭에 엄청나게도 물감을 싸질렀군'  이라고 말한다.  피터 브뤼겔의 '꿈나라 동산' 을 보는 그녀의 감상은 다음과 같다.
' 맛있는 음식들이 지붕 위에 가득 널려 있고 포식한 세 명의 남자가 늘어지게 누워 자는 한가로운 모습. 피터 브뤼겔의 [꿈나라 동산](1956) 이다. 동화책의 삽화 같은 그림 속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 있을 법한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오른쪽에 누운 남자의 바지춤이 벌어져 있는 게 아닌가. 너무 배 터지게 먹은 탓에 허리가 잠기지 않은 것이다.  사타구니 가리개가 벌어진 틈으로 혹시.... 아무래도 긴가민가하여 그 부위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혼자서 빙그레, 캔버스 앞에서 웃었다. '꿈나라 동산'이 어린아이의 동화에서 성인만화로 건너뛰는 순간이다. 대식가와 게으름뱅이들을 위한 지상낙원을 묘사한 이 작품의 실제 의도는 과식과 게으름에 대한 비판이라는데, 아무려면 어떤가.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어디선가 이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의 기억이 새롭다. 그림 속의 과자 접시들은 얼마나 신기하고 맛있어 보였던지. 난 그 음식들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아저씨들이 부러워 군침을 흘렸었다. '132pg

http://www.abcgallery.com/B/bruegel/bruegel-3.html


딱히 할일이 없어서 미술관 돌아다녔다는 그녀.
'나는 쌀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 - 89) 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날 오후에 아까데미아 미술관을 나와 달리를 보러 바르똘로메오 교회( Chiesa S. Bartolomeo) 를 방문한 것은 순전히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였다. 내가 예약한 베네찌아발 빠리행 야간열차는 저녁 8시에 떠나는데 그때까지 무려 여섯 시간 동안 딱히 갈 데가 없었던 것이다. 점심을 먹은 뒤 리알또 다리 부근을 얼쩡거리다 심심해서 교회를 찾아들어갔다.' 190pg

호오가 분명하다고 했지만, 이 책에는 물론 그녀를 반하게 한, 그녀를 몇번이고 감탄하게 한 때로는 그녀를 무너지게 한 그림예찬들이 대부분이다. 이런류(?) 의 책들 속에서 '싫다' 는 얘기를 거의 본 적이 없기에 재미있어서 몇가지 인용하였다고 해서 오해말기를.

그래. 그녀. 시집을 낸 시인이었지? 그것도 대박친 시집.
이 책에서 그녀가 가장 열광하는 것은 '렘브란트' 가 아닐까. 그녀는 무언가 답을 찾기 위해 여행을 시작했고, 그 여행을 끝낼쯤 그 답을 찾았는지 모르겠지만, 혹은 지금까지도 찾고 있는건지 모르겠지만.그녀가 그토록 열광하는걸 보면 여행중에 여러 도시에서 만난 렘브란트의 '자화상' 들에서 가장 근접한 답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평온하게 가라앉다가도 문득 들끓고, 웃다가 다시 분노하고, 상처받는가 하면 곧 냉소한다. 놀람과 두려움의 차이를, 자포자기와 견인의 미세하고도 심오한 차이를 그보다 더 잘 표현해낸 화가는 이전에도 없고 이후에도 없으리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간의 표정을 한순간에 포착한 그의 초상은 언제 보아도 신선하고 현대적이다. 조금치의 감상도 허용하지 않고 자신을 직시하는 램브란트. 그 끔찍한 자의식은 거의 19세기의 보들레르 수준이다.

나의 신이여, 내가 형편없는 인간이 아니며 내가 경멸하는 자들보다 못하지 않다는 것을 나 자신에게 증명해줄 아름다운 시 몇편을 쓰도록 은총을 내려주소서.

- 보들레르, [빠리의 우울] -

그래, 바로 이거다. 뒤러가 세상에 대해 그토록 간절히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했다면, 램브란트와 보들레르는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했을 뿐이다. 135pg

그녀는 '그림들의 배후를 추적하는게 버릇' 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깐 좀 우아하게 말하면 '그림의 역사와 배경을 공부하는 것' 인데, 그녀의 그런 툭툭 던지는 말투는 은근히 거만한가? 겸손한가?
소크라테스이전부텀도 '요즘애들 버릇없'었듯이 시대 또한 항상 우울하다. 그래도 그 '우울' 을 힘으로 살아가는건 왠만한 예술가에게도 버거운 일일게다. 나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도 특별한 ' 우울' 은 찾아오고. 그 우울을 허용하는 시절이 있었다. 그녀의 책 제목 ' 시대의 우울' 은 나에게 그렇게 공명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anda78 2005-10-07 0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 털썩스럽다.. ^ㅂ^)b
시대의 우울, 우연히 읽고는 참 의외다 싶었어요.
서른, 잔치는 끝났다. 시 제목만 알고 있었는데, 그러면서 괜히 우습게 보고 있었는데, 참. 괜찮더라구요. ^^
화가의 우연한 시선도 좋았구요. 멋진 강연 열심히 들으시는 하이드님의 모습이 제일 멋집니다만. ^^

하이드 2005-10-07 0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너스.. 음.. 안 보인다. ^^;;

판다님. 그러게요 .그러게요. 저도 그랬는데, 정말 의외네요. 이 사람.


hnine 2005-10-07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기 시작해서는 단숨에 읽은 책 중의 하나랍니다. 작가의 강의를 어디서 들으시는지, 부럽네요. 시도 솔직하고 직선적이었지만, 저는 이 사람의 이런 수필이 제일 맘에 들더군요. 최근에 낸 소설 '흉터와 상처'는 약간 실망^ ^

클리오 2005-10-07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말, 시인인데 서양미술 쪽으로 넓혀가는 줄 알았었는데... 완전 잘못 짚었었군요.. ^^

kleinsusun 2005-10-10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강의를 어디서 들어시는거예용?
살짝꿍 알려주세용.

카페인중독 2006-09-21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녀의 그 싸한 말투때문에 자꾸 들춰보게 되요...
그 말투가 중독성이 좀 있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