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트 페이션트
알렉스 마이클리디스 지음, 남명성 옮김 / 해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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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둔해서 죄송합니다만, 말을 안 하는데 앨리샤가 어떻게 상담의 덕을 볼 수 있다는 겁니까?" 
"말하는 것만이 치료는 아니에요." 인디라가 말했다. "안정한 공간, 감정을 누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거죠. 
당신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대부분의 의사소통은 대화가 아니에요." 

잘 나가는 사진작가 남편 살해 혐의를 받지만, 침묵에 빠지고, 심신미약을 판결 받아 정신병원에 들어간 화가 앨리샤. 
세간의 화제이다가, 잊혀질 무렵, 그녀에게 강한 애착을 가진 심리삼당가 테오는 그녀가 입원에 있는 병원에 자리가 생기자 지원해서 그녀의 상담을 자처하게 된다. 

앨리샤의 일기와 테오가 앨리샤 주변 사람들을 찾아가면서 사건의 진실을, 앨리샤의 과거를, 앨리샤의 침묵을 치료하기 위한 행보가 번갈아 나온다. 화자가 앨리샤였다가, 테오였다가. 

강렬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음에도 캐릭터들이 좀 약하게 느껴졌지만, 스토리나 반전, 결말은 흥미로웠다. 캐럴 길리건의 책을 같이 읽었는데, 소년, 소녀의 억압된 심리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와서 전혀 다른 장르의 책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겹쳐서 읽혔다. 2019 아마존 최고의 미스터리 스릴러 분야에 오른 책이기도 하다. (재미 없을 수가 없음) 

"인간의 성격은 고립된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 생겨난다. 리는 보이지 않고 기억할 수 없는 힘에 의해 모양을 갖추고 완성된다. 말하자면 우리 부모에 의해서.
 
이 말이 무서운 는 명백한 이유가 있다. 기억이 형성되기도 전인 시절에 우리가 어떤 고통과 학대를 받았는지 무슨 치욕을 겪었는지 누가 알겠는가? 우리의 성격은 우리가 미처 알지도 못하는 사이 형성된 것이다." 

테오와 앨리샤가 어린 시절 받았던 학대. 비슷한 학대를 받고, 한 명은 상담가로, 한명은 범죄용의자이자 환자로 대면하게 된다.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지만. 

결핍을 지닌 아이로 자란 것은 아이의 잘못이 아니다. 결핍을 지니고 자라서 겨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데, 그 사랑이 주는만큼 보답받지 못하는 평범한 일에 무너져버리는 것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보이는게 다가 아니다. 라는건 유구한 주제이지만, 오랜만에 잘 쓰인 작품으로 봐서 좋았다. 


"불꽃놀이요?"
"사랑 말이야. 우리가 사랑을 불꽃놀이로 자주 착각한다는 이야기를 했어. 극적이고 역기능도 있는 것처럼. 하지만 진짜 사랑은 아주 조용하고 아주 고요해. 긴박하게 진행되는 드라마의 관점에서 본다면 지루하기도 하지. 사랑은 깊고 차분해. 그리고 변하지 않지. 내 생각에 너는 분명히 캐시에게 사랑을 주었어.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랑 말이야. 그런 사랑을 캐시가 되돌려줄 수 있는지 여부는 또 다른 문제지." - P140

"캐시의 행동은 그녀가 상당히 망가진 사람이란 걸 보여주고 있어. 공감이나 진실성 그리고 그저 평범한 친절함도 없는 거야. 너는 그런 인품으로 넘치는 사람인데 말이야."
(...)
"예측할 수 없고, 감정적으로 얻어낼 수 없고, 신경도 쓰지 않는 불친절한 누군가를 즐겁게 하려고 애쓰는 일, 그런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그들의 사랑을 얻어내려고 애쓰는 것. 전부 예전에 겪은 일 아니야, 테오? 익숙하지 않아?"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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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에서
스티븐 킹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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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의 날이 다가온다면, 무얼 할까? 

뭐라도 하나쯤 바로 잡을 수 있다면.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어낸거 빼고는 스티븐 킹을 떠올리기 힘들었다. 표지가 정말 멋지구요. 


보수적인 작은 마을에 멕시칸 채식 레스토랑을 열고 정착하게 된 레즈비언 부부. 마을 사람들의 냉대를 받게 되고, 언제 망하고, 지역을 뜨게 될지 모른다. 스콧은 이웃에 사는 그 부부의 개들 때문에 작은 마찰이 있었고, 좋게 해결하려고 하나 과하게 뾰족한 대응을 받게 된다.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로 인해 혹은 그 일에도 불구하고, 기분도 근력도 좋아져 날아갈것만 같은 나날이 계속되지만,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 모두에게는 0의 날이 온다. 


자신이 믿는 은퇴한 의사 앨리스에게만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을 털어놓고, 하루하루를 충만하게 살아간다. 


그에게는 다른 무엇보다도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좋은 친구들 중 하나인 고양이 빌때문에 슬펐다. 


"고양이 빌 D.는 자신의 애완 인간을 묘한 초록색 눈으로 지켜보았다." 


스티븐 킹이 고양이 스콧을 고양이 빌 D.의 애완 인간이라고 해줘서 좀 좋아. 요즘은 반려 인간이라고 하지만. 


마라톤 이야기가 나온 것도 좋았다. 마라톤 하이, 고양, 제목 elevation 엘리베이터할때 그 엘리베이션인가보다. 

고도, 고도에서. 


디디가 (개 디디 말고, 디어도라, 미시의 그이) 볼트 별명을 가지고 있을만큼 잘 달리는 여자인 것도 좋았다. 

이 책에서 가장 고양감 느껴지는 장면은 당연히 마라톤 장면이다. 절정이자 클라이막스지. 

달리기책들을 모았더니, 생각지도 못했던 달리기 책이 붙은 기분이기도 하고. 


이 책이 스티븐 킹의 가장 상냥한 책이라는 평을 봤다. 맞다. 상냥한 책이다. 

스티븐 킹 같지 않다고 했했지만, 스콧은 스티븐 킹의 인물 같긴 해. 장편소설이라기보다 중편소설 분량의 소설이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충분히 고양감 느낄 수 있는 이야기일거라고 믿는다. 


   

117번 국도는 이중 커브길을 지나 곧장 보위 개천 바로 옆으로 이어졌다. 돌멩이투성이의 얕은 강바닥을 흐르는 강물이 졸졸 웃음소리를 냈다. 스콧은 개천에서 이보다 듣기 좋은 소리가 난 적은 없다고, 폐 속 깊이 들이마신 안개낀 공기가 이보다 맛있던 적이 없다고, 길 건너편에 조밀하게 모여 있는 커다란 소나무들이 이보다 좋아 보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소나무의 톡 쏘면서도 생기 있고 다소 풋풋한 내음을 맡을 수 있었다. 들이마실 때마다 매번 호흡이 더 깊어져서 스스로 자제해 가며 들이켜야 했다.
‘이런 날에 내가 살아 있다니 정말 다행이다‘
그는 생각했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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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걸스의 서양미술사 - 편견을 뒤집는 색다른 미술사
게릴라걸스 지음, 우효경 옮김, 박영택 감수 / 마음산책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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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게릴라걸스 


말하고, 행동하는 것의 힘을 이제 좀 믿게 되었는데, 계속 말하고 행동해서 조금씩 변화의 길을 만든, 계란으로 바위쳐서 바위 꾸질하게 만들고 있는 그대들이 있었기 때문에. 물에도 닳아 없어지는 것이 바위인데, 계란으로 왜 못 부셔. 가부장제라는 바위.


" 젠틸레스키나 보뇌르, 루이스, 칼로와 이 책에 언급된, 혹은 언급될만한 여성 예술가들이 없었다면 서양미술사는 어떤 모습이었겠는가? 최근 몇십 년간 등장한 모든 위대한 여성 예술가들이 없었다면 현대 미술계는 어떤 모습이었겠는가? 지금 세대부터는 우리가 여성 예술가들을 따로 찾을 필요가 없어지도록 만들자. 여성 예술가들과 유색인 예술가들의 작품이 제대로 평가받고 전시되고 보존되도록 확실하게 만들자. 게릴라걸스는 이를 위해 미술계에 계속해서 압력을 가할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권력자들을 밝히고 조롱하고, 여성혐오자와 인종 차별주의자를 끌어내려, 발길질하고 소리치며 다음 세기까지 나아갈 것이다. 우리는 당신을 초대한다. 우리와 함께하자. 당신이 사는 곳의 갤러리들과 미술관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우리에게 말해달라. 편지를 쓰고, 포스터를 만들고, 문제를 일으키자!" 


남자의 역사가 쓰여지고 전해지는 동안 여자들이 얼마나 최근까지 같은 인간이 아니었는지를 짧게, 길게, 글로, 그림으로 보여준다. 인간은 비합리적이고, 관성은 강하지만, 아는 것, 인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단 제일 먼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나서 말하고, 쓰고. 역사를 다시 배우고, 새로운 관점으로, 써 온 사람의 눈이 아닌, 쓰이지 않았던 이야기들의 조각들을 모으고, 다시 쓰는 훌륭한 역사학자들, 거다 러너 같은. 그리고, 미술계에는 게릴라걸스가 있다. 


고릴라걸스인데, 오타 나서 게릴라걸스 되었고, 매우 잘 어울립니다. 


어쩔수 없이 심드렁한 기분이 들어버리는 것은 과거에 비해 지금이 얼마나 나아졌나 싶어서. 한 분야만 독보적으로 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대신 조금씩, 아주 커다란 2인3각, 40억1인 40억2각 같은 느낌으로 코딱지만큼씩 나아가는거지. 그러다가 한 발짝 성큼 나아가기도 하고.  


메리 카셋 이야기 좋았다. 







* 페미니즘의 작은 역사 

** 화가들은 왜 비너스를 눕혔을까 

*** 여성, 미술, 사회

****자화상 그리는 여자들 


함께 읽으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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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be00 2019-12-04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화상 그리는 여자들. 도 함께 읽기 좋을 것 같아요~~~

하이드 2019-12-04 21:37   좋아요 0 | URL
네! 추천 감사합니다.
 
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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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 최고의 사치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같은 것을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사치가 아닐까."  



약간, 견딜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못 견딜 것 같기도 하고. 


사치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봤다. 

필요 이상의 돈이나 물건을 쓰거나 분수에 넘치는 생활을 함. 


내가 가질 수 있는 것 이상의 것이어서 달콤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한 것. 


물건에서 자신의 내면에서 타인에 의존하는 것으로 '사치'가 정의되는 작가. 

'사건' 읽을 때도 참 답이 없지만, 뭐. 이런 삶도 있고, 저런 삶도 있는거지 했다. 긴가민가해서 다시 보게 된 '단순한 열정' 

'단순한 열정'을 알기 전에 읽었고, 알고 나서 읽으니 딱 저 기분이다. 견딜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못 견딜 것 같기도 한. 


하나로 독립할 수 있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서로를 더 위하며, 의지할 때에는 존재할 수 있으나, 

한 사람이라도 덜 사랑하게 되면, 그 축은 무너지게 되고, 남은 사람의 '단순한 열정'은 '순수한 고통'이 되겠지. 


그것도 인생의 한 부분이야. 라고 지나갈 수 있어서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글 쓰면서 푸는 타입인가. 


아니 에르노의 책을 읽는 경험은 다른 시공간에 빠졌다 나오는 경험이다. 다르고, 같은. 나는 저기 가지 말아야지. 하지만, 나도 저기 있었지. 저기 있을 수 있었지. 이런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이 작가의 힘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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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밖의 경제학 - 10주년 기념판, 이제 상식에 기초한 경제학은 버려라!
댄 애리얼리 지음, 장석훈 옮김 / 청림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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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비합리적이다. 인간이 합리적이라서 이익을 극대화 하는 방향으로 행동한다는 표준경제학에 반해 인간이 비합리적이라 어떻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하는지 다양한 실험과 사례로 보여주는 행동경제학. 본성에서 벗어나기는 힘들지만, 알고 있는 것이 모르고 양떼몰이 당하는 것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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