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자주 시청하지 않지만 히스토리 채널의 프로그램 하나는 즐겨보는 편이다. “릭의 복원소”란 이 프로그램은 같은 공돌이 입장에서 나를 TV 앞에 오랜 시간 앉아있게 해준다. 대략적인 내용은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고물이나 골동품 복원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양한 손님들이 등장한다. 어느 고물상에서 가져온 1920년대 전화 부스를 통째로 들고 와 복원을 맡기기도 하고, 먼지가 겹겹이 쌓인 옛날 간판을 들고 와 원상태 복원을 의뢰하기도 한다. 대략적인 견적을 뽑은 후 작업이 진행되며 정해진 기간 동안 여러 우여곡절과 에피소드를 보여주며 근사하게 복원된 결과물을 보여주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복고풍 혹은 빈티지 냄새가 물씬 나는 물건들을 40대 중반의 릭은 이런 물건들의 역사적인 이력을 줄줄 읇어대며 이 물건의 가치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첨가한다. 그리고 원본에 가장 근접한 복원방법을 선택한 후 작업을 진행해 나간다. 대부분의 의뢰인들은 결과물에 대만족을 하곤 한다.
재미있는 건 골동품과 고물을 들고 온 의뢰인의 물품을 무조건 복원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의뢰인이 들고 온 구식 소총은 이런 대표적인 예를 보여 준다
자신의 증조할아버지가 물려 준 18세기 구식 소총을 들고 왔을 때 복원소 사장 릭은 총기 전문가의 자문을 구한다. 전문가가 살펴 본 구식 머스킷(화약을 넣고 총알을 넣고 쇠막대로 누르고 발사하는 구식 소총. 임진왜란 때 왜군이 사용한 조총보다 발전한 형태)소총의 이력이 밝혀진다.
제조국은 프랑스이며 아메리카 독립전쟁 때 영국군과의 항전에서 사용했던 독립군의 대표무기였고 제작년도를 살펴보니 의뢰인의 증조부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사용했던 역사적인 물건이라는 것이다. 릭은 이런 물건은 자신이 복원하는 건 의미 없는 일이라며 복원 계획을 전면 백지화한다. 의뢰인 또한 이 물건의 의미를 인식하고 자자손손 물려 줄 것임을 밝힌다.
이 에피소드를 보며 얼마 전 모님의 출판 강연회 때 들렸던 종로가 생각났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여 주변을 둘러 볼 시간적 여유에 발품을 팔아가며 싸돌아다녔던 결과는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찌는 날씨나 도로에 늘어선 닭장차의 살풍경 때문은 아니었다.
이 간판을 보는 순간 짜증과 더불어 한숨이 나와 버렸다. 양반님들 행차하는 모습이 꼴 보기 싫거나 달리는 말을 피해 바쁜 상것들이 뒷길을 만들어 이용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근래 이 길에 늘어선 주점들은 주머니 사정 가벼운 사람들에게 일종의 휴식처이며 안식처 같은 역할을 했었다.(통나무집의 홍합탕, 불노주점의 떡볶음.혹은 전봇대집.) 이런 공간은 정신연령 다섯 살인 겉멋 잔뜩 들은 나라님 덕분에 단 시간 내에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들어선 것이 이런 모양새이다.
시간이 걸리는 보존과 복원보다 어느 한 위정자의 욕심 혹은 이권에 의해 반듯한 화강석 바닥과 유리와 철로 이루어진 공간이 들어차버린 것이다. 이것뿐일까. 르네상스라는 근사한 단어를 앞세워 한강엔 사용도 하지 못하는 수천억의 괴상한 건물체가 둥둥 떠 있고, 택시는 그 이름도 희한한 꽃담황토색으로 도색을 해버렸다.(런던이나 뉴욕처럼 명물택시를 만들겠다는 취지였으나 기사님들이 제일 꺼려하는 색깔이다. 중고차 시세가 똥값이 된다고 한다.)
예술적 감각이 부족하거나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니라면 그 분야 전문가들에게 의뢰하고 그들의 의견을 십분 반영하는 것이 제대로 된 방법이라는 사실을 사막 먼저 풀풀 날리는 라스베이거스의 조그마한 고물상 복원소 사장은 알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전 서울 시장님은 몰랐었나 보다. 하긴 콘크리트로 떡칠한 하천에다 고기 풀고 사과나무 심는 전, 전 서울 시장님이 롤모델이었으니 말한 들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임기 못 채우고 스스로 쪽박 차고 나간 것이 그나마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