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記錄 170616

 

페미니즘, 무엇이 문제인가 독서 중, 구매

 

창살을 두고 사람과 원숭이가 창살을 붙잡고 있다. 천장을 벽을 포함한 배경은 보이지 않는다. 누가 감옥 안에 있을까? ; 인식론에 관한 책에서 있던 예화, 글이다.

 

독서를 하면서 메모를 남겼다. ; (일부 여성들 또는) 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즘의 모순과 한계를 이해를 못 하는 걸까, 안 하는 걸까? 대화도 잘 안 된다. 이게 소통의 한계인가 싶다.

 

장관 후보자의 여성관이 문제되는 기사를 읽다가 남자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검색하게 되었고, 이 책의 글쓴이에 대한 평가로 이해를 못 하는 걸까, 안 하는 걸까? 한계를 보인다라는 글을 읽었다.

 

남자란 무엇인가를 읽지 않기도 했지만, 이 책과 무관하게 창살 안팎은 어떻게 구분할까? 내가 감옥 안에 있을까? 최소한 나는 회의적 懷疑的 사고는 한다.

 

다른 부분에서는 (진보라고 여겨지는) 페미니스트들이 다른 부분에 있어 상대성을 들이대지만, 페미니즘의 기준은 절대적이며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실망한다. female gene-meme ingroup bias.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며 실망하지 않도록 하자. 구조적으로 그들을 그리로 몰아 간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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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6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립간 2017-06-16 11:53   좋아요 2 | URL
댓글 감사합니다.

≪페미니즘, 무엇이 문제인가≫, 이 책에 있는 글인데 페미니즘은 드물게 있는 낙관적인 가치관(~ism)이라고 하다군요.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 아이와 함께 170616

 

- No pain, no gain ; 종합 무술 4단

 

지난 2월부터 딸아이의 태권도 승단, 특공 무술 승단, 합기도 승단 시험이 있었다. 며칠 태권도 단증을 마지막으로 3개의 단증이 모두 집에 도착했다.

 

(학교 수업 후) 정규 태권도 수업 시간을 보낸 후 승단준비를 따로 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어 했다. 나는 닥치고 데스런의 저자 조성준 씨의 인터뷰를 이야기해 주었다.

 

조성준 씨가 말하기를 ; 보통 대개의 사람들이 편안한 상태에서 운동을 시작하여 통증이 시작하면, 충분히 운동을 했다고 생각하고 그만둔다. 그러나 나는 통증이 시작하기 전까지는 준비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통증이 시작된 이후의 운동이 진짜 운동, 자신의 운동이 발전하는 운동이다.

 

나는 딸아이에게 고통스러운 이 시간이 진정으로 네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시간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수고했다. 열매를 맺어 자랑스럽다. (이제 종합무술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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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7-06-16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o pain, no weight loss.

오거서 2017-06-16 0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말씀대로 힘들겠지만 멋진 인생을 사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합이 4단이군요. 승단을 축하합니다!

마립간 2017-06-16 08:14   좋아요 1 | URL
출근해서 잠깐 시간을 내서 포스팅하고, 아침에 해야 할 직장일 하면서 오타 및 문맥을 수정하는데 ... 그 사이에 댓글을 다셨네요.^^

종합 무술 4단은 딸아이입니다. 딸아이가 댓글을 기뻐할 것입니다. (저도 딸아이를 따라 흉내내고는 있습니다만.)

오거서 2017-06-16 08:32   좋아요 1 | URL
저희집 아이들을 보아도 남다른 노력으로 성취를 이루는 아이가 어른보다 낫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존경스럽기도 하고요. 부모로서 몹시 기쁘기도 하고요. 마찬가지로 따님도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읽는나무 2017-06-16 08: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지고 기특한 따님입니다^^
저희집 딸들에게도 태권도를 배우게 해주겠다!! 그러기만을 6개월째여서 많이 반성됩니다.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단련시켜 강인한 정신을 가진 어른이 되었을 따님의 모습이 미리 그려집니다.
멀리서 아주머니 한 명이 늘 응원하고 있다고 전해주세요^^

마립간 2017-06-16 11:11   좋아요 0 | URL
책읽는나무 님, 댓글과 격력 감사합니다.

몸의 단련이 곧 마음의 단련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가 고비 마다 잘 넘겨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6-16 0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립간님 축하드려요^^: 따님께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것도 축하드리지만, 이런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더 축하드려요^^:

마립간 2017-06-16 11:12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 님, 감사합니다.

(저의 자랑이기도 하지만,) 아이가 학교 생활로 마음이 지칠 때라서 알라딘 가족의 격려가 아이에게 힘이 됩니다.

cyrus 2017-06-16 1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따님의 승단을 축하합니다. 마립간님이 따님에게 정말 좋은 말씀 해주셨어요. ^^

마립간 2017-06-16 11:14   좋아요 0 | URL
아이에게도 격려지만, 저 역시 ‘no pain, no weight loss‘로 포만감이 없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허기감(출출함)이 있어야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으로 생활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6-16 1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후덜덜하네요. 체육가족이십니다.. ㅎㅎ

마립간 2017-06-16 11:16   좋아요 0 | URL
(어지간히 체육을 못했던,) 저의 투사가 좀 작용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필답 공부보다 신체 활동을 많이 하는 것이 인생 전체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 讀書記錄 170615

 

낯선 시선

 

이쯤에서 이 책을 정리하고 넘어가야겠다. 나는 이 책의 주장들이 낯설지 않다. 오히려 내 가치관과 상당히 맞아 떨어진다. 이제껏 내가 쓴 정희진 씨의 책, 독후감은 99% 순도의 반론으로 차 있다. 그런데 이 책의 독후감은 대부분의 정희진 씨의 주장을 지지하며 그래서 내게는 낯선 책이다.

 

단편적인 이야기를 하면 페미니즘의 주제에서 또는 페미니스트 앞에서 인종차별을 이야기하면 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내가 경험한 것은) 페미니즘의 주장을 인종차별로 덮으려는 시도로 간주하고 부정적으로 본다. 이런 경우만 긍정된다. ‘인종차별이 많이 개선되었지만 아직 인종차별이 남아 있듯이, 여성차별이 개선되었어도 야직 성차별이 존재한다.’

 

이 책은 수년간에 설쳐 수필처럼, 또는 기고되었던 글을 모아놓은 것 같다. 그러나 양성 평등을 위한 주제의 책에는 끼지 못한 글이다. 나는 이런 책이 가까운 시간에 다시 발간될 수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휴머니즘(페미니즘이 이 용어도 반대한다.)은 페미니즘을 포함할지 모르지만,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목적을 위한 실천이, 단기적이고 미시적인 목적의 결과에는 미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에 이론가의 입장이 있고 실험가의 입장이 있듯이, 사회에 대해서는 이론가의 입장과 실천가( 운동가)의 입장이 갈릴 것이다.

 

운동가의 입장이라면 자신이 작다고 느끼는 논리의 오류를 무시할 수도 있다. 상보성이 작용되는 상황에서는 입장이 바뀔 수도 있다. 이미 윤리학(을 다루는 철학)에서 절대적 윤리는 없다고 한다. 나는 정희진 씨를 그렇게 이해한다. 이 책은 일탈 逸脫이다. 그래서 낯설다. (카타르시스도 약하다.) 이 책의 부제에 메타젠더로 본’, 뒤표지 소개에 젠더를 넘어서라는 문구가 있는데,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의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페미니즘의 정체성을 잃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페미니즘이 휴머니즘이 되는 순간 페미니즘이 아닌 것이다.

 

정희진 씨가 페미니즘의 도전의 원래 제목은 페미니즘의 모순이었다. 나는 정희진 씨가 이 책의 제목을 바꾸면서 노선 line을 정했다고 생각했다. 마치 사격에서의 조준선 정열과 같다. (책 제목을 바꾸면서 내용, 구성, 편집도 바뀌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내 읽은 정희진 씨의 글 중에서 노선을 벗어난 글은 이 책이 처음이다. 낯설음이다.

 

나는 이론을 지적하지만, 운동가의 입장이라면 결과를 내어야 한다. 결과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나는 알지 못하나 일부 시각에 의하면, 페미니즘 영역에서 형식적인 진보, 답보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일간 베스트, 강남역 살인 사건 등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 영역에서 진보하고 발전하는 상황이라면, 사회나 딸아이, 그리고 나를 위해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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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讀書記錄 170614

 

≪낯선 시선≫

 

p86 ‘어른’의 존재를 당연시하는 심리는 가부장제 사회에 대한 향수 때문이다. 전 前근대저 사고다. ; 그런 면도 있지만, 나는 우리나라의 가부장제에 대한 향수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그 외에 우리나라의 오랜 특성인 ‘관계성, 가족 확장성, 심정주의’에 대한 향수다. 왜 오랫동안 이런 우리나라의 특성은 불알후드 brotherhood로서 비판받아 왔다. 그러나 다시 공동체 의식, 특히 육아와 관련된 공동체 주의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아이가 원한 것, 따스한 위로가 제공되는 사회는 반대급부로 연장자에 대한 예의와 존경을 바라는 사회이기도 하다.

 

나의 오랜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은 ‘동전의 앞뒷면으로 비유’되는 서로 상보적인 것을 동시에 주장하는 것이다.

 

동전이 원판 모양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앞면( 긍정적인 면)의 확대는 뒷면 (부정적인 면)의 확대를 유발한다. 우리나라 사람 심리에 대한 언급한 허태균 교수님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우리 한국사람 스스로가 비판하는 부정적인 심리, 문화는 그 심리 문화로 말미암아 많은 긍정적인 문화와 결과를 남겼다”고 하셨다.

 

내집단 편향 Ingroup bias. 이 용어는 여러 책에서 접해서 이 내용을 소개할 적절한 책은 떠오르지 않는다.

 

In-group favoritism, sometimes known as in-group–out-group bias, in-group bias, or intergroup bias, is a pattern of favoring members of one's in-group over out-group members. This can be expressed in evaluation of others, in allocation of resources, and in many other ways (Wikipedia)

 

알라딘 지인 한분이 평소에 ingroup bias에 대해 불알후드(brotherhood를 의미)라는 약간 비꼬는 형태로 비판을 해 왔다. 그러던 중, 어느 글에서 공동 육아에 대한 글을 올렸다.

- 마립간 ; 과거에 우리나라는 (한국 문화의 특징인) 관계성, 가족 확장성, 심정주의에 의존해서 ; 넘어진 아이들을 자신의 아이들처럼 어른들이 일으켜 주었죠.

- 마립간 ; 관계성, 가족 확장성, 심정주의 ‘의 앞면이 공동체의 공동 육아라면 뒷면은 불알후드 겠죠. 구체적으로는 아이가 원한 것, 따스한 위로에 대한 반대 급부로 연장자에 대한 예의와 존경을 바라는 사회이기도 하고요.

- 알라디너 지인1 ; 양면의 장점만 고루 활용되면 좋은 사회가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a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속한 집단 A 내의 사람에 대해 배려, 존중, 공감 등 뛰어난 인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a 앞에 집단 B에 속한 b라는 사람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a가 b를 도와줄까, 아니면 도와주지 않을까? 나는 도와주는 것에 내기를 걸겠다. a는 배려, 존중, 공감이 있는 사람이니까. 반대로 c라는 사람이 이기주의, 독선, 공감하지는 못하는 사람이라면 집단 내에 대해서도 집단 외에서도 비인간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윤리-도더걱 모순은 없다.

 

그런데 집단으로 관점을 바꾸면 집단내 ingroup의 배려, 존중, 공감, 연대는 집단외 outgroup를 배척한다. 반면 집단외에 대해 열린 마음, 관용 등이 작용하면 집단의 배려, 존중, 공감, 연대가 약화된다.

 

알라디너 지인1의 의견처럼 ; 양면의 장점만 고루 활용되면 좋은 사회가 이루어질 것 같은데, 실제는 그 두 가지가 상보적으로 이뤄진다.

 

또 다른 알라디너 지인2이 ‘동물 복지’에 관해 ‘보신탕을 먹지 않음’이 ‘개와 고양이의 복지 (문맥상 복지보다는 인간과 친밀관계에 있는 동물에 대한 존중)’으로 확대되고 이것은 모든 생명 존중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것이 개인의 관점에서는 맞는 말인데, 집단 (즉 인간 집단)에서는 개-고양이를 ingroup 함으로써 닭-돼지-소 등의 동물을 outgroup화 한다. 페미니즘에 언급되는 현학적인 용어로 더 강한 타자화 他者化된다. 과거의 소는 젊어서 논밭 일을 하고 또 죽어 고기를 제공하지만, 사육하는 사람과 가족과 비슷한 교류가 있었다. 지금은 가게 mart에서 팩에 싸인 고기일 뿐이다. 내가 보기에 보신탕-캣맘의 논쟁은 인간 사회가 outgruop에 속했던 두 포유류를 ingroup한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과거에는 outgroup의 배척이 윤리적으로 더 문제였다. 교통, 통신, 지식의 보급으로 outgroup 배척이 약화되면서 지금은 ingroup 연대의 약화가 더 문제가 되어 작은 사회 small community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여러분은 능력만큼 노동하고 필요만큼 소비하는 사회를 상상할 수 있나? 나는 체험하고 있다. 바로 우리 가족이다. 나는 능력만큼 일하고 있는데, 딸아이는 필요만큼 소비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ingroup bias 때문이다. 어느 알라디너가 마립간, 당신 딸과 나는 인간으로서 동등하니, 나도 당신 딸처럼 마립간 노동에 의해 발생한 재화를 필요만큼 사용하게 해 달라고 요구한다면 ; 나는 거부할 것이다. 당신 내 가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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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7-06-14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립간 님 위 의견은 제가 볼 때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인간 기본 속성에 관한 상식적 내용이라 볼 수 있습니다. 가타부타 논란 삼을 논제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야를 확장하면 이런 기본 상식이 유지되지 않는 때가 많습니다. 예컨대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대지진 때, 인간 기본 속성이 발동해 한국과 한국 국민들이 성금 모금 TV 생방송까지 해가면서 일본과 일본 국민들한테 구호품과 거액의 성금을 전달했었죠. 그때 일본 반응은 겉으론 안 그런 척했지만(결국 받긴 받았지만) 속으론 받지 않겠다는 혹은 받기 싫다는 그런 반응이었습니다. 아니 일본 일부에서는 노골적으로 안 받겠다, 필요없다, 가져가라고 하기까죠 했죠. 일본과 일본 국민들의 이런 심성, 이런 심리적 구조를 어떻게 이해·해석할 수 있을까요? 역으로 한국이 국가적 재난에 부닥쳤을 때 과연 일본과 일본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생방송 성금 모금 운동까지 하면서 과연 한국과 한국 국민들한테 구호품과 성금을 보내줄까요? 남한과 북한이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동족간 대량 몰살 전쟁질로 한반도 전체가 아비규환의 난리판이 됐을 때 일본과 일본 국민들은 어떻게 행동했었던가요? 요컨대 이렇게 시야를 확장해 생각해보면 위에서 마립간 님께서 얘기한 인간 기본 속성들에 대한 상식은 유지되지 않는 때가 더 많다는 겁니다. 저는 이런 점에서 과연 우리 한국에 ‘어른’들이 있었는가(있는가) 상당히 의문스럽다는 생각입니다. 그저 자신과 자신의 가족·친지라는 좁은 울타리에서만 어른이었지, 그런 울타리를 떠나서는 어른 노릇을 못했지(못하고 있지) 않느냐, 한국의 어른들이 말이죠. 그런 생각입니다.

마립간 2017-06-14 15:03   좋아요 0 | URL
qualia 님, 안녕하세요. 댓글 감사합니다.
기본적의 글의 방향이 제 글에 대한 반론으로 생각하고 재반론하겠습니다.

1) 위 글은 저와 관련된 에피소드와 제 의견이기도 하지만, ingroup bias는 학술 용어이기도 합니다. 학문은 상식적인 내용도 연구하고 증거를 모아 이론의 토대를 만듭니다. ≪Mathematica Principia≫는 ‘1+1=2’이라는 상식이라고 칭하고 민망한 것을 증명한 것이라고 합니다.

2) 지식, 교통, 통신의 발달로 outgroup bias(외부 집단의 배척)는 많이 약화되습니다. 외국( 또는 외국인)을 돕는 것은 낯설지 않습니다. qualia 님의 언급한 한국이 일본을 돕는다는 것과 같은 예는 ingruop-bias( & outgroup bias)를 설명하는 예와 유사합니다.

3) 일본의 한국에 대한 태도는 자연과학도 확률적 지식이지만, 사회과학은 확률적 지식입니다. 이 이론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고, (‘기본 상식을 뒤집는’이라고 표현하신) 반례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이론을 뒤집을 수 있는 근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4) ‘시야를 확장해 생각해보면 위에서 마립간 님께서 얘기한 인간 기본 속성들에 대한 상식은 유지되지 않는 때가 더 많다는 겁니다.’라는 것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인간 기본 속성이 유지되지 않는 때가 있을 지라도, 대부분은 인간 기본 속성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5) 저는 한국 사회의 어른도 있고, 부정적인 면만큼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Ingroup-bias나 인간 속성에 대한) qualia 님의 생각을 제가 설득할 수 없지만 qualia 님의 댓글 역시 저에게 설득적이지 않습니다.
 

 

* 讀書記錄 170613

 

낯선 시선

 

p172 어느 역사에도 여성 KKK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성은 남성과 같이 폭력적인가?’

내가 페미니즘의 비판하면서 페미니스트에게 던지는 질문에 여성은 남성과 같이 폭력적인가?’가 있다. 대부분의 페미니스트들은 남녀의 성차가 크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위 질문에 성차가 없다고 선뜻 대답하지 않는다.

 

얼마 전 지인이 여고생이 초등학생을 토막 살해한 사건을 아느냐고 내게 물었다. 그 때는 기사 제목만 봤기 때문에 내용은 모르고 그런 사건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지인 그 사건이 일어난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았다. 그 동네가 난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그 여고생 사이코패스 psychopath 아닌가요?”

 

“(내가 전문가가 아니지만,) 내용상 사이코패스가 맞는데, 의학적 정의에서 사이코패스는 생물학적 남성에만 붙는 진단입니다.”라고 말했다. 즉 어떤 여성이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연쇄 살인을 하고 그 살인방법이 아무리 잔인해도, 그리고 어마어마한 범죄 경력이 있어도 공식적인 진단에는 psychopath가 아니다. 여성이기 때문이다. 진단 조건에 남성이 들어가 있다.

 

이와 같은 진단 기준이 만들어진 이유는 남자의 범법성 犯法性 및 폭력성과 여자의 범법성 및 폭력성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준은 과학적 방법 즉 자료의 축적으로 이뤄지는데, 여자의 범법성과 폭력성은 자료를 축적하기 위한 표현이 곤란하다. (즉 여성에 대한 적절한 언어가 없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적당한 표현은 팜프 파탈 femme fatale이다. (최근에는 옴므 파탈 homme fatale이란 말도 많이 사용되지만 실체가 없는 언어유희에 불과하다.)

 

남성의 성향이 살인-폭력이라면, 여성의 성향은 사기이다. Mansplain의 대칭어가 (womanplain이 아니고) womanplaint이듯, femme fatale의 대칭어는 (homme fatale이 아니고) psychopath.

 

진화심리학에서는 남녀 두뇌사용의 차이에 따라 양극단인 모차르트와 잭 더 리퍼 Jack the ripper가 존재한다고 한다. (잭 더 리퍼가 남자인 이유는 편견 또는 정형에 근거한다.) 그러나 페미니즘에서는 환경의 차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문화-유전 공진화를 지지한다. 따라서 양쪽 주장 모두를 종합하면 적절한 (양성평등의) 사회 환경이 조성된다면 여성 연쇄 살인범 psychopath 등장도, 메갈리안의 여성 KKK단으로 진화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희진 씨나 몇 페미니스트f들은 메갈리안을 긍정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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