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yrus 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 160904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cyrus 님의 낸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독후감과 관련하여 질문을 하셨고, 답변이 댓글로 답하기에는 중요한 것을 담고 있기에 따로 페이퍼로 작성한다.

 

cyrus 님의 댓글 ; 페미니스트에 반대했던 두 번째 이유 같은 경우,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있습니까? 여성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인정받으려면 남성처럼 행동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성이 남성처럼 행동했다는 이유로 남성들이 반감을 가졌습니다. 쇼팽의 연인 조르주 상드가 남장하면서 사교계를 출입했습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상드가 남장하고 흡연하는 행동을 사회의 질서를 깨뜨리는 일탈로 규정했습니다. 만약에 상드의 남장이 남자들이 인정했고, 손가락질을 하지 않았으면 남장한 상드는 ‘남성중심 사회 유지’에 기여한 것입니다.

저는 ‘남성중심 사회 유지에 여성이 기여한 바’라는 표현이 마치 여자가 남성중심 사회에 순응했다는 의미로 봤습니다. 이건 제 주관적인 해석입니다. 두 번째 이유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 讀書記錄 160903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http://blog.aladin.co.kr/maripkahn/8740521

 

2. 남성중심 사회 유지에 여성이 기여한 바가 있다는 것이다.

나무를 자르는 도끼에 나무로 만든 자루가 있다.

 

(주의 ; 이야기의 진행에 앞서 전칭과 특칭을 혼동하지 않기를 바란다.)

 

한 4가지 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1) 페미니즘의 주장에는 여성들이 문명, 문화에 기여한 바를 남성들이 역사에서 지웠다는 주장을 한다. ‘나는 지웠다’는 표현이 과도하지만 나는 그 의미에 동감한다. 그리고 최근에 많이 회복되었다고 생각한다. ≪수학을 빛낸 여성들≫은 내가 좋아하는 책이다. 최근에는 여성이 전쟁에 기여했다는 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도 나왔다. 이 책은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는 책(가치판단)이나 여성이 전쟁에 참여했다(사실판단)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여성이 문명, 문화에 전혀 기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문명-문화가 남성중심-가부장제 구조이니 가부장제에 기여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기여도가 너무 낮다고 판단한다. 각 분야의 언어가 남성 중심이라는 것은 대부분의 기여도는 남성에게 있다.

 

2) 두 번째는 문명-문화의 소비자로서의 기여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서 남성중심-가부장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자발적 가난’에 해당하는 것을 언급할 때는 남녀 구분이 없다.

 

p273 자본은 식민지에서 여성을 가장 값싼 노동력으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식민지 여성은 ‘자유노동자’로 규정될 수가 없다. 그러나 이렇게 생산된 상품을 시장에 판매하기 위해서는 소비가 전문이 중심지 여성이 필요하다. ; 이글을 풀어 쓰자면, (남자가 ‘축구’에 매료된 것과 같은 정도의) 여성이 ‘백화점’에 매료되어 소비를 감정의 해소의 방편이 된 상황을 역전시킨다면 보다 양성 평등 사회에 이뤄진다.

 

나는 남성중심-가부장제 사회의 형성에 여성이 기여했는지는 모르겠다고 했고, 유지에 여성이 기여했다고 했다. 만약 여성의 문명 소비가 남자의 강요와 이에 대한 순응이었다면 cyrus 님이 이야기한 ‘여자가 남성중심 사회에 순응했다는 의미’가 맞다. 하지만 나는 여성이 적극적인 소비자라고 생각한다. 오늘 날 여성의 공장식 축산의 육식, 자동차, 비행기를 이용한 해외여행, TV, 컴퓨터, 핸드폰, 에어컨, 백화점과 관련한 소비가 남자의 강요에 의한 것인지 적극적 자발적 소비인지 스스로 판단해 보시길 바란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 구조적 폭력을 제시할 수도 있다. 사회 구조의 삶이 그렇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면 한국 일제 식민지하에 공무원으로 부역한 사람의 비판에 비슷한 반론을 한다. 나는 일제 부역을 한 것이 아니라 당시 내게 주어진 삶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3) 다음은 성선택에 관한 것이다. 수년마다 결혼정보회사 배우자에 대한 조건에 대한 선호도, 그리고 결혼이 성사된 사람의 조건을 발표한다. 여성의 조건은 나이, 몸매, 얼굴 등이 상위에 올라가고 남자의 경우, 직업, 수입, 재력 등이 상위에 올라간다. (그리고 직업과 수입, 얼굴과 몸매의 순위가 바뀌면 성향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내 관점에서는 우습다. 남녀 공동으로 그 다음 순위에 학벌이 위치하고 7~8개 항목이 거의 변하지 않는다.) 이런 성선택은 남자 생물학적 생존이나 사회적 생존이 자본주의에 적합한, 문명에 적합한, 그리고 가부장제 적합한 자연선택을 유발한다.

 

4) 마지막으로 ‘방조는 동조와 같다’는 관점의 평가다.

 

* 讀書記錄 160903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만약 알라딘 마을이 정말로 양성 평등을 지향하는 모임이라면, 이런 댓글이 있어야 했다.

; 저는 이제부터 제 중학생, 고등학생인 아들에게 양성평등과 가사 노동의 저평가, 가사 노동을 하는 여성이 하찮은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오늘부터 부엌일을 시키기로 했어요.

 

만약 여성들이 자신의 자녀, 특히 아들들을 양성평등의 가치관을 만들어 주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음에도 제공하지 않았다면 그 역시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이 4가지 판단은 관점에 따라 남성중심-가부장제 사회의 순응이라고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마무리로 다시 첫 전제 조건을 다시 언급하면 여성에게 일정 책임이 있다는 것(특칭)이 모든 책임은 여성에게 있고 (전칭), 남성에게 책임 없다거나 남성보다 여성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뱀발) ‘조르주 상드의 남장’ 에피소드는 ‘메갈리안’의 경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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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9-04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봤습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읽어보고, 오늘 밝힌 마립간님의 주장을 검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마립간 2016-09-05 08:20   좋아요 0 | URL
cyrus 님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독후감을 기대해 보죠.

그러나 제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링크했지만, cyrus 님의 질문과 저의 답변은 이 책과 직접 관련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syo 2016-09-04 1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언젠가 저한테 말씀하신 깊이 있는 독서가 어떤건지 직접 보여주고 계세요. 배우는 점이 많습니다.

제가 제기한 질문도 아니고, 정확하게 파악한 것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있어서 한번 여쭤봅니다.

첫 번째 말씀하신 이유에서, 여성이 문명, 문화에 전혀 기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문명-문화가 남성중심-가부장제 구조이니 가부장제에 기여한 것이다.
는 말씀은 전혀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이를테면, ˝가부장 지수˝라는 게 있다고 하고, 여성을 노예나 도구로 여겼던 과거의 어느 시절의 가부장 지수를 100이라고 하면 현재는 얼마인지는 몰라도 100보다는 낮겠지요. 가부장 제도와 맞서고 가부장 지수를 낮추는 데 여성들이 노력해 왔지만, 아직까지 가부장 지수가 50보다 큰 상태라, 문명-문화가 여전히 가부장제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해서, 여성들이 가부장제에 기여했다고 할 수는 없는게 아닐까요?

방조는 동조와 같다고 하셨는데,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만약 그렇다고 해도, 지속적인 폭력에 노출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저항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걸 방조로 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마지막 말씀하신 전칭-특칭 이야기는 약간 치트키 같은 느낌이네요. 자명하고 너무 자명해서 특별한 의미를 생산하지 않는 문장 같달까요? 모든 여성 중 최소한 1명이라도 가부장제를 유지하는데 기여했다면 참이 되는 문장이니까요. 그런 사례를 발견했든 못했든 경험칙 상 아무도 부인하기 힘든 문장인데, 그게 결론이라면 그런 자명한 결론을 얻기 위해 정교한 논증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음, 특칭과 전칭의 의미를 바로 전달하시려면 바로 ˝`일부`여성이 가부장제 사회에 기여한 바가 있고˝ 와 같은 문장을 쓰셨으면 됐을텐데, 추후에 이렇게 괄호를 동원하시면서 보충하시더라도 처음에는 아무 한정사가 붙이지 않고 그냥 ˝여성˝이라는 단어로 표기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마립간 2016-09-05 11:17   좋아요 1 | URL
syo 님, 댓글과 질문 감사합니다. 소중한 댓글이네요. 알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날카로운 질문을 하셨습니다.

답변이 궁합니다. 저는 제 생각을 점검받기 위해 알라딘 서재 활동을 하고 있는데, 제 글이 대중적이지도 않고, 호불호가 갈리는 편입니다. 방문하시는 분만 방문하게 되는데, 제 글에 익숙해져 제 오류를 지적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페미니즘 논쟁이 처음에 2003년에 저와 어느 알라디너와 있었고, 그 분은 지금 활동을 하지 않습니다. 2015년에 다른 알라디너의 제기로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논쟁에 또 다른 한 분이 참여한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반복적인 글들이 오고 가면서 언급되었던 책과 책의 인용구, 그 글에 대한 가치판단이 뒤엉켜 있고, 제가 쓰는 글은 가급적이면 독립적인 글이 되도록 쓰려하지만 능력이 모자라 오타, 비문 등이 섞여 있습니다.

syo 님의 지적은 타당성이 있는데 지적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필력의 부족으로 발생한 내용의 오해만 해명하는 쪽으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1) 여성이 문명에 기여한 것. ; 페미니즘에서 1) 문명-자본주의는 남성중심-가부장제다. 2) 이런 사회구조는 전적으로 남성이 만들었고 남성의 책임이며, 여성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할 일이 별로 없다. 페미니즘의 베스트셀러 ≪여성혐오를 혐오한다≫가 주장하는 바입니다. 3) 남성은 여성이 사회에 기여한 것을 평가 절하한다. 이 세 가지 주장을 동시에 합니다. 저는 세 가지 주장이 동시에 성립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비판을 글에 포함시키려 하다가 문맥이 엉켰습니다.

제 의견은 여성이 당연히 사회에 기여했습니다. 마사 스튜어트는 자본주의에 기여했습니다. 자본주의가 가부장제라면 ‘마사 스튜어트’는 가부장제에 기여했죠.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문명-자본주의에 여성이 소비자로서 뿐만 아니라 생산자로서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2) 방조와 동조 ; 저는 ‘지속적인 폭력에 노출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저항하지 않는다’는 것을 방조로 정의하지 않습니다. 방조로 보지 않기 때문에 동조도 아닙니다. 제가 쓴 ‘방조’의 의미는 여성이 양성평등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았을 때 방조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죠. 아들에게 설거지를 시킴으로써 양성평등을 진전시킬 수 있는 것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방조라고 명명하든, 방조가 적절하지 않은 용어이든 이 역시 가부장제 기여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3) 전칭, 특칭 ; 남녀의 차이를 이야기할 때 개별화된 반례를 통해 일반화를 거부하는 경우를 많이 접했기 때문에 이를 비꼬기 위한 ‘약간 치트’ 끼를 담은 것이 맞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 반성을 합니다. 제 안해도 빈정거림이 있다고 지적했는데, 페미니즘에 대한 글쓰기를 하면서 나쁜 습관이 붙었습니다. 당장 고치도록 하죠.) 한정사를 쓰지 않은 이유는 의미가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래 두 문장의 의미가 다릅니다. (1) 남자는 여자보다 키가 크다. (2) 일부 여성은 남성보다 키가 크다.

제가 남성은 여성보다 키가 크다고 하니, 어떤 분이 ‘우리 엄마는 여자인데, 남자인 우리 오빠보다 키가 큰데요.’라는 식의 반론을 받았습니다.

이 글로 설명이 부족하시다면, 다시 페이퍼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립간 2016-09-05 08:24   좋아요 0 | URL
가부장지수에 관해서는 중요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마침 제가 쓰고 있는 글이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 글에 포함해서 포스팅하겠습니다.

syo 2016-09-05 09:16   좋아요 0 | URL
답변 감사합니다. 제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들을 수정할 수 있었어요.

하나 더 여쭙고 싶은건 아들을 설거지 시키는 일인데요. 아들에게 설거지를 시키는 일이 양성평등을 진작시키는 일이라 하셨는데 어째서 그런가요? 만약 가사일이 바깥일과 비교해 중요도가 떨어지지 않으므로 여성이 가정에 기여하는 바가 남성에 못지 않음을 인식시켜주려 하는 뜻이라면, 그 전제로 이미 설거지 같은 가사일이 여성의 일이라는 명제가 깔려있는 건 아닐까요? 장애인 되어보기 체험 같은 것은 장애인에 대한 배려심을 기를 수는 있지만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사람임을 일깨우는데는 그다지 효력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아들을 설거지 시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남편이 설거지하는 모습을 아들이 보게 하거나, 그게 불가능하다면, 엄마가 설거지를 하는 것은 설거지가 여자의 일이라서가 아니라 이 가정에서 내가 맡은 일이라서 하는 것이고 그 역할은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변할 수 있음을 인식시키는데 노력하는 쪽이 더 합당한 것은 아닐까 하는데 마립간님 생각이 궁금합니다.

다음 올려주실 포스팅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 주관, 객관, 간주관 間主觀

 

곰곰생각하는발 님과의 댓글 대화에서 설명했고, 내 페이퍼에 여러 번 인용되었지만, 정작 이 개념을 정리한 내 알라딘 페이퍼를 찾을 수 없어 다시 정리한다. 게다가 때마침 만들어진 생각, 만들어진 행동, 나의 꿈 사용법, 에드문트 후설, 엄밀한 학문성에 의한 철학적 개혁에 독후감을 쓰려면 주관, 객관에 대해 정의하고 시작해야 한다.

 

- 주관적 ; 자기의 견해나 관점을 기초로 하는. 또는 그런 것.

- 객관적 ; 자기와의 관계에서 벗어나 제삼자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거나 생각하는. 또는 그런 것./<철학>세계나 자연 따위가 주관의 작용과는 독립하여 존재한다고 생각되는. 또는 그런 것.

- 간주관적 ; <철학> 많은 주관 사이에 서로 공통되는 것이 있는. 또는 그런 것. [네이버 국어사전]

 

실체에 이르는 길책에 따르면 (이 글의 글쓴이 관점에 따르면), 세상을 수학, 물리, 정신으로 나누었는데, 이 세 가지가 서로 뒤엉켜 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인 것이 무엇일까? 나는 수학을 꼽았다. 그런데 수학도 순수하게 객관적일 수 없다. 수학이라는 것이 사람의 정신작용을 떠나서는 생각하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수학을 절대적으로 생각했으나, 지금은 상대적으로 생각한다. (아마추어 수학자는 절대주의 선호하나 전문 수학자는 상대주의를 받아들인다.)

 

* 우리 애인(수학)은 말이죠. http://blog.aladin.co.kr/maripkahn/9525

 

가장 주관적인 것은 뭘까? (적절한 답이 떠오르지 않지만,) 자신의 감정을 토로한 수필을 생각해 보자. 이 글이 순수하게 주관적인가? 그렇지 않다. 글쓴이의 과거 경험이라는 어느 정도의 객관성과 감정을 유발한 외부 환경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

 

철학의 초대 (원제 Invitation to Philosophy: Issues and Options에서 역시 주관과 객관으로 판단하는 가치관들이 스펙트럼으로 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주관과 객관은 선분의 양 끝점에 해당한다. 점이라는 수학적 (추상적) 개념은 실제에 존재하지 않지만, 점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듯이 우리는 주관과 객관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우리는 무엇을 주관적이다, 객관적이다라고 이야기할 때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말하지 말라고 하지 않고 대개, 대략, 비교적이라는 수식어가 생략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통상적으로 (주관, 객관의) 2분법을 사용하지만, 나는 (주관, 객관, 간주관의) 3분법을 사용한다. 간주관에 해당하는 것이 문학, 예술, 요리 등이 해당한다.

 

Aa라는 음식을 좋아하고, Bb를 좋아한다. ab 음식 중에서 좋거나 나은 음식을 결정할 수 있을까? 결정할 수 없다면 음식이란 것은 개인의 기호(주관)만이 존재할 뿐 음식을 평가할 객관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더 나아가 솜씨 좋은 요리사란 존재하지 않고, 맛 좋은 음식점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음악도 이와 비슷하다. 개인 각자의 선호가 존재하는 주관적 면이 존재하는 반면, 이 음악보다 저 음악이 훌륭하다는 객관적인 면도 존재한다.

 

빨강이 주관이면, 파랑이 객관이고 보라는 간주관이다. (정의의 엄밀성을 비추자면, 나 자신을 포함한 세상 모든 것은 간주관적이다.) 물론 3분법은 나의 임의任意. 2분법이나 4분법, 5분법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나는 파랑 쪽에 서 있는 이가 있고, 빨강 쪽에 서 있는 이가 있는데, 파랑 쪽에 서 있는 이가 파랑 끝점에 서지 않다는 이유로 빨강과 파랑이라는 객관을 뭉개려하는 것에 동의하지 못한다.

 

* 아이와 함께 160510 암묵적 제한 조건들 http://blog.aladin.co.kr/maripkahn/8482923

AB가 있는데, 누군가 A는 객관적이고 B는 주관적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B와 친분이 있는 사람 C가 이렇게 반론을 했다. “A라고 해서 완전히 객관적이지 않던데요.”

 

* 무지개와 별 http://blog.aladin.co.kr/maripkahn/639471

* 무지개와 별1 http://blog.aladin.co.kr/maripkahn/639487

  

* 당신은 아래 그림에서 몇 가지 색을 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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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6-05-13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신은 아래 그림에서 몇 가지 색을 봅니까?˝

저는 12가지 색을 보았습니다.

마립간 2016-05-13 15:31   좋아요 0 | URL
섬세하시네요.^^

2016-05-13 1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13 14: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 무제 160502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처음 읽는 셰익스피어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Captain America: Civil War>를 보지 못했지만, 개봉 첫 날부터 영화 리뷰가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이 영화에서 누가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리고 누가 옳고 그른지 한 번 생각해보자는 것이 감독의 뜻이 아니다. 감독의 의도는 ...

 

처음 읽는 셰익스피어와 관련하여

부정한 아내라고 해도 아내에게 폭력을 가한 남편의 행동은 동정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문장을 읽었다.

 

어디서 봤는지 철학이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것이라고 했다.

 

명제 1] 부정한 아내의 남편이 아내에게 폭력을 가했고 남편의 행동은 동정을 받았다.

명제 2] 부정한 아내의 남편이 아내를 살해했고 남편의 행동은 동정을 받았다.

명제 3] 부정한 아내의 남편이 아내에게 폭력을 가했고 남편은 동정을 받았다.

명제 4] (남녀를 떠나서어떤 사람이 부정한 배우자에게 폭력을 가했고 폭력을 가한 이가 폭력 유발 동기로 인해 동정을 받았다.

명제 5] 아내가 남편을 살해했고 아내의 행동은 동정을 받았다.

명제 6] 아내가 남편을 살해했고 아내는 동정을 받았다.

명제 7] 평소에 아내는 남편에게 폭력을 당했고 아내는 남편을 살해했다. 아내의 행동은 동정을 받았다.

 

명제 4]에서 폭력을 가한 사람이 남성이라고 전제하는 것은 성차별 의식의 표현이다.

 

여성이 남성에게 얼마만큼 살해당하는지는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 잘 나와 있다. 반면 이웃집 살인마에 따르면 이 빈도의 1/9 만큼에서 남성은 여성에게 살해당한다. 평생의 걸쳐 남성은 여성보다 3배의 살해 위협 속에 살고 있다. 남성이 남성을 살해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치정이다.

 

어디선가 여성의 피살 공포에 대해 남성들이 잘 공감하지 못한다는 주장을 읽었는데, 반대로 여성들은 남성이 성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가지는지 잘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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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도쿠 Sudoku

 

<KING 스도쿠 - 초급> 구매

 

여자는 논리가 부족할 것이라는 편견( 또는 정형)에 딸아이 역시 논리가 부족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안고, 아이의 부족한 점을 메워주기 위해 구입한 책. 예상보다 아이가 부담스러워 하지 않는다.

 

푼 문제의 대부분은 내가 풀었지만, 몇 문제는 나와 아이가 함께 풀었고, 몇 문제는 아이와 안해가 풀고 있다. 풀지 않은 문제는 아이를 위해 남겨 두었고, 몇 문제는 풀다가 말았다. 풀이 방법 중에 뭔가 한 가지를 놓치고 있는 느낌.

 

* 스도쿠

1) 문제 ; 3가지 제한 조건이 전제된다.

2) 풀이 ; 배제와 포함의 적용하여 풀게 된다. 불확정된 것이 많을 경우, 가정에 의해 모순의 도출(배제)이나 무모순의 확인(포함)을 통해 확정 짓게 된다.

3) ; 단일한 답안 또는 복수의 답안일 경우가 있다.

 

* 통일장 이론

통일장 이론의 강력한 후보인 초끈 이론(또는 면 이론)은 재규격화 renormalisation를 통해 결점 또는 오류를 보완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단 시간 내에 해결된 문제는 아니겠지만,) 만약 이 이론이 옳고, 재규격화를 통한 방정식이 다수 존재한다면 우리는 어떤 철학적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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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인화 文人畵

 

알라디너 yureka01 님으로부터 책 두 권을 선물 받았다. (yureka01 님께 다시 한 번 감사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소리 없는 빛의 노래>, <그리움은 언제나 광속> 한 권은 포토에세이로 분류되고, 다른 한 권은 시화집이다. 이 두 권의 책을 받고 첫 느낌은 다르고도 같다는 느낌이다. 아니 같다는 느낌이 훨씬 강했다.

 

두 권에서 내가 받은 인상은 문인화로 설명될 수 있다. ‘사진 수필집은 그림대신 사진으로 대체되었지만, 읽는 사람에 작동하는 방식은 같다.

 

변호사’, ‘의사를 우리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이라 부른다. 자본주의 시대에 이런 직종을 부러워하며 자신의 자녀가 이와 같은 전문가 직종에 종사하기를 바란다. 전문가를 expert라고 부르는데, 그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노예와 맞닿는다. 그러니까 (과거의 관점으로 본다면) 우리(의 많은 사람)는 노예가 되기를 소원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포괄적 주인은 자본주의겠지.)

 

노예와 대척되는 것은 귀족이고, 전문직 (또는 전문적 지식)에 대척되는 것은 인문학 humanities이다. 귀족은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고 음악도 하고 미술도 한다. 공부도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와 같은 서양 고전, 사서삼경과 같은 동양 고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나 열역학 법칙과 같은 자연과학 지식도 다 어우른다. 수학과 시와 음악이 많은 부분을 공유하지만 동치이거나 합동은 아니다. 현재까지는 말이다.

 

나는 문인화가 좋다. 왜 좋을까? 알라딘에 올린 나의 어느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나는 대중주의 성향보다 엘리트주의 성향이 있다. 아마 문인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제 그만 노예에서 벗어나 귀족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시서화 詩書畵는 서로 공유되는 부분과 독자적인 부분이 있어, 이 들이 어울리면 각각과 또 다른 완전체를 만들 수 있다.

 

* 옛날의 교양

http://blog.aladin.co.kr/maripkahn/452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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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09-14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쿠.감사합니다^^..

마립간 2015-09-14 13:32   좋아요 0 | URL
제가 감사하죠.^^ 안해와 아이도 책이 참 이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