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울

 

 아마 저의 우울함의 실제적 원인은 저의 사회적 활동과 관련이 있겠지만...

 제가 읽은 한 두 개의 글은 우울함을 더합니다. (이 이야기와 관련된 것들을 시간순서대로 이야기하자면)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마가복음 10:25

 

 이 이야기들을 처음 들었을 때 언뜻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우리나라에 있는 그 많은 부유한 사람들이 부도덕하단 말인가. 만약 그 당시 시대 상황에 극빈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을 돕지 않은 것을 문제 삼는다면 이는 과도한 윤리 기준을 적용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학창시절 갑사로 가는 길에 나온 남매탑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여러 날과 밤을 의논한 끝에 처녀는 대사와 의남매(義男妹)의 인연(因緣)을 맺어, 함께 계룡산(鷄龍山)으로 돌아와, 김 화공의 정재(淨財)로 청량사(淸凉寺)를 새로 짓고

 

 정재(淨財)란 부도덕하게 모은 재산이 아니라 정직하게 깨끗하게 모은 재산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이 단어가 낯선 것일까요. 그 이후로도 정재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누군가가 정치인이나 변호사와 의사와 같은 직업군을 비난할 때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정치인이나 전문직 직종이 보다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지만, 실상은 다른 직군 예들 들면 기업에 취직해 있는 사무직이나 육체 근로자, 목사님과 스님과 같은 종교인을 포함해도 대개 비슷한 도덕성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그것이 현실이라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위와 같은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괴짜 경제학>을 읽고 나서입니다. ‘1. 교사와 스모 선수의 공통점은?’에서 여러 가지 부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특히 무인 베이글 판매에 관련된 것이 인상적입니다.

 

괴짜 경제학 ;  p 74 그리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일수록 부정행위를 더 많이 저지른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지위가 높을수록 정당한 값을 지불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출세가 하기 쉬운 것인지, 아니면 그런 환경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지는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위의 이야기를 따르면 통계(적 또는 확률)적으로 정치인이든 변호사나 의사와 같은 경제적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부도덕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며칠 전 <고독의 위로>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에

고독의 위로 ; p 98 ‘승리는 언제나 불만스러워하는 사람들의 몫이다.’라고 써있습니다. 즉 만족( 또는 자족)을 통해 행복감을 느끼면서 산다면, 경쟁에서 패하거나 정복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Metro라는 타블로이드에서 ‘부자가 거짓말 더 잘한다’라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Metro 2012. 2. 29 ;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보다 거짓말을 더 잘하고 비윤리적인 행동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부유층일수록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갖고 있어 .../상위 계층은 하위 계층에 비해 비윤리적인 행동을 3-4배나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봉주 전의원은 ‘간지 나는 좌파’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결국 옳게 (윤리적으로) 사는 것과 잘 사는 것(, 즉 사회적으로 성공한 것)과는 상충될 수 밖에 없는 것이 (치명적이지 않지만) 우울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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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3-09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하시다고요?
마립간님 서재 이미지 밑에 소개글 보면 우울이 멀리 달아날 거 같은데요.
바가지 긁는 아내인 의학과 함께 사시는군요.^^

마립간 2012-03-09 10:54   좋아요 0 | URL
책이나 가족과 지내는 시간은 매우 짧고 대부분의 시간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지내는데, 이 긴 시간이 즐겁지 못한 것이지요.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 성공한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 아이에게 제 삶을 모범으로 보이겠지만, 정직하게 살라거나 지조를 지키면서 비주류로 살라거나 자신을 희생하면서 타인을 배려하라거나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은 것이죠. 이것이 우울한 이유입니다.

2012-03-09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2-03-16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과연 행복의 촛점이 어디있는가가 문제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나는 성공하고 싶어요' 라고 미래의 꿈을 적어놓는 사람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특히 20대로 갈수록 더욱 심하더군요. 성공하면 무엇이 나아질거 같아? 라고 물을 때 막연하게 더 가지면 행복하지 않을까 라고 대답하더군요. 행복은, 과정에서 오는거야 라고 제 의견을 말해도 아직 들리지 않을거 같아 가만히 있습니다.

가진자가 더욱 부도덕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선택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자신에 대해 더 많은 통제를 해야 하는게 원인이 아닐까 싶어요. 아무래도 유혹이 많으면, 마음은 약해지기 마련이잖아요. 첫발이 무섭구요. 그렇기에 더 많은 도덕성이 요구되지 않나 하는 제 생각입니다. 저는 그 유혹이 무서워서, 가진 위치로 올라가고픈 맘이 없습니다, 그럴 능력도 없지만요......... ^^

마립간 2012-03-16 16:58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럴 능력이 없지만 지금 심정은 상류층으로 올라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 동네는 제 스타일은 아니예요. 상류층의 부도덕은 선택권이라는 것도 있지만 교통법규처럼 공통으로 적용되는 것에도 관찰되니 선택권 이외에 부도덕한 사람이 상류층으로 진출하기 쉽거나 상류상회가 도덕성을 감소시켰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코멘트]인터넷 공간에서 글을 쓴다는 것

* 알라디너 서재의 우클릭에 대한 섭섭함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어떤 일이 발생한 이유는 개인의 책임과 환경(여기서는 알라딘이라는 기업, 보편적으로는 사회)의 책임이 공존합니다.

 이번 마녀고양이 뉴스레터와 같은 경우도 ; 저처럼 감당하지 못할 주제는 아예 글을 올리지 않거나 아니면 글을 잘 못 써 뉴스레터에 채택되지 않았다면 발생하지 않습니다. 아니면 알라딘이 그와 같은 마케팅을 하지 않았어도 발생하지 않았겠죠.

 여기서 두 가지 관점이 적용됩니다. 첫 번째는 과학적 관점으로 양자의 책임이 몇 %로 나눌 수 있는가? 저는 여기에 대한 답변으로 알라딘을 뉴스레터 정책을 유지하고 (마녀고양이님은 탈퇴를 했겠죠.) 이후에 마녀고양이님과 같이 상처받는 빈도가 어느 정도인가 확인하는 것입니다. (알라딘이 정책을 바꿨으니 확인할 방법이 사라졌다.)

 두 번째 관점은 인문학적 관점인데 ; 마녀고양이님에게 99%의 책임이 있고, 기업에 1% 책임이 있다고 판별되었다고 가정을 합니다. 이 상황에서도 기업의 1%의 책임에 대한 먼저 물을 수도 있습니다.

 앞 페이퍼에 언급되었던 ‘광우병’을 예를 들겠습니다.
 예화 1) 정부의 책임자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미국 수입소를 사 먹었을 때, 광우병에 걸린 확률은 0.0,,,1%입니다. 거의 0%에 가깝죠. 우리는 미국소에 대한 정보를 드렸고, 사먹을지 말지의 선택을 여러분에게 드렸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미국소를 계속 수입할 것이고 광우병의 발생 책임은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광우병이 걱정되는 사람은 사 먹지 말라는 이야기다. vs 간단하게 말해서 악플이 걱정되는 사람은 인터넷에 글을 쓰지 말라는 이야기다.)

 여러분 중 얼마나 많은 분들이 위 글에 동의할지 모르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승자독식의 경쟁체제도 비난할 이유가 없습니다. 승자가 되면 될 것 아닌가!

 과거 뉴스레터 발송에 대한 묵인이 이번 사건에 대한 마녀고양이의 책임으로 돌리기도 합니다.
 예화 2) 마녀고양이가 의사 마립간에게 미녀고양이를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미녀고양이는 두 번이 중한 병을 앓았지만 마립간에 치료를 받고 잘 나았습니다. 마립간을 훌륭한 의사로 생각한 마녀고양이가 마녀강아지를 마립간에 소개시켜주었는데, 그만 치료받다가 사망하였습니다. 마녀고양이가 마립간에게 항의합니다.
 마립간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미녀고양이를 잘 치료해 주었을 때, 마녀고양이님도 싫지만은 않았을 것이고 좋은 의사를 소개시켜주었다고 미녀고양이에게 감사의 말을 들었을 때는 행복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제 와서 상반 감정을 느끼는 것에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이것이 수술동의서입니다. 사회에서 약관과 같은 것이죠. 여기에 보면 수술의 합병증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되어 있고, 본인이 자필서명으로 승낙했습니다. 의사에게 항의하는 사람 대부분은 논리적이지 못하죠.”

 예화 3) 어느 대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주인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박봉에 이렇게 열심히 일하니 당신은 정말로 성실한 사람입니다. 차후에 정규직 채용이 있을 때 당신을 채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달의 월급을 받았고 세 번째 월급을 받을 때, 급여가 근로기준법에도 못 미치는 급여인 것을 알고 주인에게 항의하면서 급여인상을 요구합니다. “성실한 사람인줄 알았더니 못 쓸 사람이구먼. 내가 칭찬하거나 정규직 채용을 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할 때는 싫지 않아 하면서 오히려 깜짝 행복을 느끼더니. 다른 사람은 그 급여에도 일하기도 하고, 혹시 최저 임금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조심성 있는 사람은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네. 그러니 일차적으로 책임은 본인에게 있네. 자네는 점을 쳐서 여기서 일하기로 결정했나?”

 문제점을 의식하고 본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것을 제시하지 않았다면 도덕적인면을 비판할 수 있겠지만 나중에 그것을 인식했다고 해서 문제제기 조차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알라딘에게 사과를 요청한 적 없습니다. 다만 불편 사항을 개선해달라고 요청 드렸을 뿐입니다.’ by 마녀고양이)

 어떤 의견에는 동인을 중요시하는 글도 있습니다.
 예화 4) 광주학생운동의 경우 시작의 동인動因은 일본 남학생이 한국 여학생을 희롱한데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독립운동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독립운동이 전개되려는 상황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화가 났던 부분은 이 나라의 독립 부분이 아니라 일본학생의 한국인 여학생에 대한 희롱이었으니까요. 다만, 방향이 독립운동으로 잘못 나간 거죠. 우리는 화가 났다는 결과의 원인이 어디인지를 스스로 명확히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왜 송아지 먹으라는 우유를 사람이 마시며 살고, 사과나무 번식을 위해 존재하는 사과를 먹으며 살까?

 알라딘의 뉴스레터의 선택은 알라딘의 편향을 반영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을 개인의 선택에 맡기면서 자기 검열을 한다는 것이 편향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둘 사이에는 상보적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한쪽으로 쏠리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죠.

 문제의 핵심을 '뉴스레터의 발송과 노출빈도'로 볼 수도 있는데, ‘알라딘 고객 발송 메일에 링크되었고, 이를 타고 들어온 어떤 분이 호의적이지 않은 댓글을 남겼다.’ 말씀처럼 이것은 서재의 단순 노출과 뉴스레터를 발송한다는 것은 개방성이 다르다는 것의 증거로 생각합니다. 물론 시스템의 완벽한 개선이란 있을 수 없고 스스로 조심하는 것이 최선일 것입니다. ; 마립간의 다짐 - CCTV를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도청을 의심했다.

 2005년쯤에 이 상황이 발생하였다고 가정하면
 마녀고양이님이 페이퍼를 뉴스레터로 보내 댓글로 감정적인 상처를 받았습니다. 이 때 아줌마 알라디너가 마녀고양이님을 위로합니다. 그리고 어느 알라디너( 알라딘 불매 운동 이후 활동을 중단하신 분)가 기업 알라딘에게 개선을 요구합니다. 이 상황을 보던 마립간이 ‘기업의 책임보다는 스스로가 조심해야 하지 않나’라는 페이퍼를 올립니다.
 아마 이렇게 되지 않을까 상상합니다.

 알라딘의 분위기가 바뀐 것은 알라딘 불매운동 후 opinion leader를 대거 탈퇴하였거나 활동을 중단했기 때문이겠죠. 지금의 분위기에서는 누군가 ‘알라딘 불매운동’을 제기하다면, 그 사람은 정말 우스운 사람으로 취급받을 것입니다.

cf 마녀고양이님은 ‘호들갑’이란 단어를 쓰셨는데, 마녀고양님이 호들갑을 떨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녀고양이님 서재에 댓글을 남기면서 이러쿵, 저러쿵하는 것이야 말고 ‘호들갑’이란 단어가 정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알라딘 서재 뉴스레터에 제 글이 나간 적이 있던가요? 이 정도의 글이면 무플서재에서 악플이라도 받는 서재를 탈바꿈할 수 있을까? 마립간이 마녀고양이 뉴스레터 사건을 등에 업고 어떻게 하든 떠 볼려고 발악을 하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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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1-09-15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이나 다락방님도 각자 자기의 생각을 밝혔듯이 저도 제 생각을 제 서재에 남깁니다./두분은 본인에 서재에 글을 남겼으니,
<가짜논리> 22. ‘설명’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설명과 정당화는 다르다
 


* 내재적 모순

* 천국이 그대들의 것이니라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88920.html

 저의 북부 유럽국가에 대한 생각은 국제 사회의 빈국과 부국에 대한 고찰부터 생각했습니다.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은 어떻게 1인당 국민 소득은 어떻게 그렇게 높은가?

* 디자인은 마음의 표현
http://blog.aladin.co.kr/maripkahn/3129801

 그리고 복지 국가로 유명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우리나라는 어디까지 그 나라와 닮아 갈 수 있는가?
여기 저기 주워들은 이야기는 우선 1인당 국민 소득이 높은 이유 중에 하나는 여성의 경제 활동의 참여가 높아 육아에 관한 것이 생산으로 계산되기 때문입니다.

* 자본론 입문서
http://blog.aladin.co.kr/maripkahn/3805222

 자본주의 경제에서 생산은 교환가치 즉 금액과 동일시합니다./이와 같이 계산되는 이유는 거래되지 않는 재화는 측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성의 노동이 계산되기 때문만일까? 노르웨이는 북해유전도 갖고 있습니다. 게다가 무기 수출대국입니다. 어느 것이 어떻게 기여했는지 모르겠지만, 회의가 듭니다. 과연 우리가 지향하는 국가가 맞는가?

* 도덕적 가치는 미뤄놓고, 우선 복지가 좋은 나라이니, 제가 실직을 하여도 실업 수당으로 기본 생계가 걱정 없으니, 또 의료비, 자녀의 교육비에 부담이 없으니 그 나라로 이민을 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 이민이 쉽지 않습니다. 인터넷 Q & A입니다.

 
노르웨이같은 유럽쪽은 거의 이민자를 받지않습니다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고유의 혈통이나 가문등을 많이 따지기에 유럽은 거의이민을 받지않죠 유럽인들은 자신들끼리.. 같은나라의 같은피를 지닌 자신의 민족끼리 살고 싶어하거든요. 만일, 이민을 유럽으로 가더라도, 시선이 곱지는 않을껄요.
http://ask.nate.com/qna/view.html?n=8797216

 이 이야기는 노르웨이라는 나라에 한정된 것이 아니고 철학자들이 보편적 상황에서 고민했던 것입니다. ; 집단 내로 향하는 유대감과 관용은 집단 외부에 대해 배타성을 띠고 집단 외부에 대한 이해와 관용은 집단 내의 유대감과 관용을 약화시킨다.

* 이어지는 글 6
http://blog.aladin.co.kr/maripkahn/4944339

 저는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라고 하는데, (여담이지만 진보주의에는 불관용을 관용할 것인가 하는 모순과, 집단의 내적 유대감에 의한 외적인 배타성이라는 모순이 있어 진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느 분은 오류를 지적하실 수도 있습니다. 집단의 내적 유대감에 의한 외적인 배타성은 보수의 원리라고. 맞습니다. 오히려 보수의 원리가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문구의 모순을 진보주의적 운동인 ‘작은 커뮤니티’ 운동에서 느꼈습니다. 작은 마을 운동은 구성원내의 이해와 동감으로 빈곤, 소외 등을 구제할 수 있지만, 커뮤니티 밖으로 향하는 배타성은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한 연민 ; 예를 들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에 사는 빈민에 대한 동정은 내적 유대감의 와해와 관련이 있습니다. 즉 내부적 동정(연민)과 외부적 동정(연민)은 상보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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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7-28 0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한겨레 사설에 읽은 문구입니다만,
진보 연합들의 통합을 위한 회의를 보니 다들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는데는 너무나 탁월하지만 서로의 입장을 조율하고 타협하는데는 절대적 한계를 보여, 과연 통합이 가능하겠냐고 하더군요.

사실 우리나라 보수가 수구 골통만 아니라면,
저 역시 보수 쪽에 가까우리라 생각합니다. 변화보다는 전통을 좋아하거든요.

마립간 2011-07-28 08:56   좋아요 0 | URL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희망이 있다는 것이죠. 저는 회색인이자 보수적이 측면이 꽤 있지만 수구는 아니구요. 제 가치관의 보수에는 김구 선생님이 계시고 진보에는 신채호 선생님이 계십니다. (어느 분에게 지적 받았지만 통상적이지 않죠.^^;) 변화와 전통사이에서는 유보적입니다. 저는 절대진리에 가까운 편에 서겠다는 생각뿐이죠.
 
쓰레기 더미 세상이지만, 아이들의 미래엔 희망이 있기를.

* 사필귀정事必歸正

 
제가 어렸을 때, 이 한자성어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의심을 가졌습니다. '그런가?' 어른께 여쭤 봤더니 네가 어려서 그렇지 어른 되어 긴 안목으로 보면 그렇다고 답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성적으로도 감정적으로 동의도 못하고, 이해도 못했습니다.

 
청소년기에 사필귀정에 대한 저의 해석은 ; ‘가끔은 사필귀정이 된다. 사람들은 사필귀정이 되기를 바란다.’로 바꿨습니다. 진화론은 생명뿐만 아니라 사회 현상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하는데, 사필귀정이 보편적 사회현상이라면 정正이 사邪를 진화의 압력으로 몰아냈을 것입니다.

**
 
현 우주 창조 이전에 하나님께서 또 하나의 세상을 만드셨는데, 이 세상에서는 뉴튼 역학이 작동하는 세상이었더라. 그러하니 사필귀정이 보편적 원리로 작동하였도다. 사람들이 정하게도 태어나고 사하게도 태어나지만 사필귀정이라는 작동원리가 사회진화와 만나면서 정한 사람만 남고 사회는 안정되었더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재미가 없었더라.

 
하나님께서 다시 현재의 우주를 창조하셨는데, 불완전성의 원리가 작동하는 세계를 만드시니, 가끔 사필귀정의 원리가 적용되더라. 사람들이 정하게도 태어나고 악하게도 태어나는데, 세상의 성공에 정사正邪는 별로 관계가 없더라. 세상은 혼란스럽고 사람은 갈피를 못 잡는데, 어떤 미련한 사람은 사필귀정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더라. 하나님은 그런 미련한 사람을 어여쁘게 여기셨다. (보상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 sweetmagic ; 세상은, 살아가는데 답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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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1-07-21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당연한 말이어서 무서운 말이기도 해요

마립간 2011-07-22 09:23   좋아요 0 | URL
세상이 잔인해도 현명함을 놓지 않는다면 해 볼만 합니다.

무해한모리군 2011-07-21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 삶은 고난에 대처하는 자세라고 말했던 것이 뜬금없이 생각이 납니다...
18살 먹은 무기력 환자인 조카와 싸우다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듭니다...

마립간 2011-07-22 09:24   좋아요 0 | URL
잘 지내시죠. 가족이 늘어나면 고난이 배가 됩니다.^^

마녀고양이 2011-07-22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필귀정.
저는 '바르게 처리'된다는 결론에 대한 판단이
물질적인 것인지 아니면 관념적인 것인지,
그리고 타인의 판단에 의해서인지 내가 느끼는 어떤 것인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죽을 무렵 뒤돌아보았을 때
부끄럼 적고 어느 정도 떳떳한 맘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이 사필귀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요즘 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희망 사항'이 될 수 밖에 없는 문구니까요.

마립간 2011-07-22 13:34   좋아요 0 | URL
새로운 시각이네요. 저는 항상 보편성을 지향하니까, 희망사항으로 생각했는데. 자신의 내적지향으로서의 사필귀정이라...
 

* 홀대받은 음악이라면
- 트로트 보다 국악?

 
저는 걸그룹의 음악에 대해 좋아한다고 할 수 없지만 반대하지도 않습니다. 가창력만 예술의 전부가 아니고 무용 및 무대 퍼포먼스를 비롯한 무대 예술 자체도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열광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누군가에는 감동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는 기획사에서 길러진 것을 비판합니다. 이 비판이 옳다면 타고난 가창력을 갖고 태어나지 못한 사람은 가수될 기회조차 없는 것인데 맞는 이야기일까요?

 
‘나는 가수다’에 아이돌 그룹이 출현한다고 해도 저는 반대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 방송을 안 볼 뿐이죠. (지금도 TV로 보지 못하고 인터넷으로 보고 있는데.) - ‘나는 가수다’는 포맷을 바꿀 것입니다. 가창력과 음악성을 갖춘 가수들이 무한정 공급되지 않을 테니까요.

 
누군가는 성인 취양의 공중파 프로그램이 없다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수요예술무대’나 ‘스페이스 공감’이 있(었)습니다. 방송 시간에 대한 불만도 있습니다. 황금시간대에 방송이 안 된다고. 그러나 늦은 밤이라도 열심히 시청해 주세요. 그러면 황금 시간대로 옮겨질 것입니다. 그들은 시청률에 목매는 사람들입니다.

 
트로트라고 불리는 음악 장르도 ‘가요무대’나 트로트 전용 케이블 방송도 있습니다. 그리고 남진씨나 나훈아씨의 콘서트가 매진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의 저의 판단은 ‘각자의 방식으로 문화의 한 부분인 음악을 향유한다.’입니다. 저라면 공중파 방송에만 매달리지 않고 음악 CD를 구입하거나 가수의 공연의 보러 가는 것입니다. 임재범씨의 무대 공연을 보십시오. 직접 공연을 관람한다면 얼마나 멋진 무대를 감상할 수 있겠습니까?

 
제 이야기가 공허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돈과 시간에 관련된 것인데, 공연 입장료 대신 술값(교제비)이나 아이 학원비로 충당하기를 원하죠. 제가 어느 모임에서 뮤지컬을 보러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한 적이 있는데, 다들 손사래를 치더라구요. 비싸다고. 음반도 구입하지 않고 공연도 보러가지 않고 (가끔 불법 다운로드 받고) (돈 안 드는) 공중파 방송에만 의존하려는 것은 조금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송해씨가 ‘전국노래자랑’ 사회를 맡기 전에 아마 이순주씨 진행을 맡을 즈음에는 노래를 반주하는 악단이 둘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프로그램 이름은 조금 달랐을 것이다.) 하나는 양악단(?)이고 다른 하나는 국악연주단이었습니다. 대개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출연하여 판소리 한 소절이나 시조를 읊고 가셨습니다. 언제 부터인지 국악이 아예 없어졌습니다. 공중파 방송에서도 자정쯤에 방송을 하거나 낮에 방송을 합니다. (KBS 국악한마당 ; 토요일 오후 12:10분 - 국악은 연예오락이 아니고 시사교양에 속하는 구나 ; MBC, SBS, 케이블 TV 검색이 안 됨.)

 국악은 향유되지 않는 박제로만 남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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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1-06-03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blog.aladin.co.kr/782087115/4829633

노이에자이트 2011-06-03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걸그룹들은 가창력이 좋은 사람들이 많으니 나가수에 그들이 나와도 지켜볼 만할 겁니다.특히 80년대에 얼굴도 안 되고 노래도 못한 가수들이 많았죠.지금은 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90년대는 립싱크 시대이니 더 말할 것도 없고요.대신 인물이 좋아지기 시작하죠.

아이돌 팬들의 1%정도의 관심도 중년팬들이 보여주지 못하면서 요즘애들이 좋아하는 노래는 들을 게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참 거시기하죠.

5월 둘째주인가 KBS스페셜에 배뱅이굿으로 유명한 이은관 씨의 현황을 보여주는데 상당히 재미있었어요.관심있으시면 다시보기로 보십시오.재미있게 편집했더군요.

마립간 2011-06-04 09:35   좋아요 0 | URL
덕분에 보고 싶었던 이은관 명창을 보게 되었습니다. (장구치던 분 성함이 한동안 생각이 나지 않았는데,) 최창남씨도 보이네요. 감사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6-04 20:46   좋아요 0 | URL
최창남 씨 인상이 참 독특하죠.약간 서양남자 같은 분위기...

노이에자이트 2011-06-03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진 씨 공연은 참 재밌습니다.만담 같은 것을 참 잘하더군요.나훈아 씨는 6년이나 공연을 안 하고 있네요.양평에 있다고도 하는데...

이순주 씨는 미국에 이민가서 선교사로 살고 있습니다.이제 70가까이 되었죠.

마립간 2011-06-04 09:57   좋아요 0 | URL
제가 남진씨나 나훈아씨의 공연을 본 적은 없는데, 주위 분 중 몇 분이 나훈아 공연을 보러 가고 싶은데, 표를 못 구해서 못 봤다는 이야기를 여러번 들었습니다.
이순주씨는 미국에서 한인방송을 하고 있다는 기사를 인터넷을 통해 보았습니다. 김희자씨도 궁금했는데, 소식은 없고 살아계신 겄만 확인되네요.
김인문씨 사망 소식때 이것저것 검색해 보니 마형달로 나왔던 이성웅씨도 돌아가시고 한 시대가 바뀌었다는 느낌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6-05 22:30   좋아요 0 | URL
김희자 씨도 신앙간증 같은 것 하면서 다니던데...곽규석 구봉서씨도 신앙생활에 열심이죠.곽규석 씨는 고인이 되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