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복 게재

 

한 할아버지가 시골에 올라 오셨다. 인도를 걷고 있는데, 길 중간을 기준으로 나누어 한 쪽 방향 통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한 방향 통행을 하지 않으니 주위 사람이 눈총을 준다. 차도를 건너는데, 횡단보도에 빨간불이 켜져 있다. 하지만 차도는 일직선으로 되어 있고, 횡단보다 양쪽은 멀리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차가 없는 것을 확인한 할아버지는 빨간불임에도 길을 건넜다. 역시 주의 사람들에게 눈총을 받는다.

 

할아버지는 집에 와서 손자와 이 이야기를 나눈다. 손자는 할아버지에게 빨간불 신호 때 길을 건너는 것은 불법적인 일이며 법을 위반하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이해할 수 가 없다. 살인이나 도둑질하는 것도 아닌 길을 건너는 것에 도덕/부도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신호등이 교통사고를 예방하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본인은 시야가 트인 도로에 차가 없는 것을 확인한 후 건넜기 때문에 교통사고와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할아버지는 일방통행이 불법적인 일이냐고 물었다. 손자는 불법적인 일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일방통행이 공중도덕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는 길을 걷는 것에 공중도덕의 도덕이 들어있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할머니께 의견을 여쭤 봤다면 아마도 “길이란 것은 걸으면 되는 것이지요. 누가 무어라 하건 말건 한 귀로 흘리세요.” 아마 뒷집 김영감도, 옆집 박영감님도 할아버지의 의견에 동조할지 모르겠다.

 

오래 전에 내가 좋아하는 알라디너 한 분이 알라딘을 탈퇴하셨는데, 중복 게재의 논쟁이었습니다. 저는 댓글로 논쟁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투표를 하였다면 중복 게제 반대에 표를 던졌을 것입니다. 얼마 전 어느 알라디너가 제게 중복 게제의 의견을 묻기에 다음과 같은 답글을 드렸습니다. (이탤릭체는 실제 답글과 다른 단어이지만, 내용상 바뀌어도 무방한 것으로 바꿨습니다.)

 

학에서는 의무적으로 논문을 제출해야 하는데, 이때, 이중게재는 광의의 표절에 해당하며 부도덕적이며 저작권을 출판사에 넘기기 때문에 불법적인 일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글을 자신에 글에 다시 쓸 때조차 인용을 표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표절이 되지요. 연구를 할 때 지원 기관을 표시합니다. 마찬가지로 서평단에서 책을 지원받을 때도 이를 표시해야 하고, 알라딘 블로그에 게제한 글을 다른 에 투고할 때도 먼저 블로그에 게제한 사실을 표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알라딘과 예스24 이중게재 문제가 되었던 당사자는 알라디너의 비난에 알라딘을 탈퇴하고 예스24에서만 활동하고 계십니다. 저는 이중게재는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지적한 것이 인신공격과 같은 방법적인 문제와 상대의 감정도 고려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논쟁에 직접 개입하지 않아 구체적인 상황은 잘 모릅니다.

 

어떤 기준이 있다고 하더라도 기준을 실감하는 개인의 차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 따라서 이중게재의 부당함을 실감하지 못하는 사람을 훈계할 생각은 없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행동없는 사고'입니다.

 

알라딘이나 예스24에서 이중게재를 금지하거나 이중게제 표기하는 것을 강제하지 않습니다. 부당할지언정 불법적인 것은 아니죠. 저작권과 관련하여 '****'님께 **님의 글(신문의 자신의 글)을 알라딘에 무단 게제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무시당했습니다.^^’

 

* 연구 출판 윤리 부정 ; 9번

 http://blog.aladin.co.kr/maripkahn/1713200

 

저는 제가 만든 에피소드에서 손자의 의견을 지지하지만, 여기서 몇 가지 짚어야 할 점은 있습니다. 할아버지 의견이 잘못되었는가? (연구) 논문과 독후감을 같은 것으로 볼 것인가, 다른 것으로 볼 것인가.

 

* 할아버지의 의견에 대해서 (**님은 지나친 가치관의 상대주의를 경계하라고 하셨지만,) 저의 의견은 N개의 사회에는 N개의 정의와 N개 도덕이 있다는 말을 준용합니다.

 

* 독서일기 <우리가 먹고 사랑하고 혐오하는 동물>

 http://blog.aladin.co.kr/maripkahn/5173445

 

* 논문과 독후감을 같은 것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문과 독후감을 공통점과 차이점에서 스펙트럼spectrum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도덕과 같이 객관적인 기준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 기술적 방법으로 ‘마냐’님은 (이 글은 제 다른 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를 남기시더군요.

 http://blog.aladin.co.kr/goodm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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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복 서평이야기와는 백만킬로미터 멀어진 글.
    from 가연님의 서재 2013-06-05 19:43 
    솔직히 이런 글을 왜 써야 되는지 모르겠고, 쓰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분명 후회할 것이다, 나중에. 하지만 쓰지 않아도 후회할 것이다. 어차피 서재에 대한 애착도 그다지 없는 몸.. 하는 심정으로 몇 마디 날카로운 말을 남긴다. 난 토론을 목적으로 이런 글을 쓰는 게 아니다. 그냥 감정적으로 화가 나서 쓰는 글이다. 말하자면 비난인 셈이다. 물론 조금은 논리적으로 보일 수 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다 논리적인 척, 에 불과하다. 그 점을 미리 밝
 
 
마립간 2013-05-28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듯이, 알라딘에서는 알라딘 법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내 가치관을 주장할 것인가? 그 당시 논란이 가라앉으면 쓸려고 했던 글을 이제야 쓰네요.

마립간 2013-05-28 15:13   좋아요 0 | URL
윗 글 내용 전반에 걸쳐 수식어가 빠졌습니다. '중복 게재라는 표시가 없는' 중복 게재 ; 중복 계재를 한다는 이런 수식어나 출처가 있는 것은 중복 게재는 나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5-28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리뷰'가 논문'은 아니기 때문에 굳이 절차'를 따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만 !!
제가 드림 님에게 지적했던 것은 다른 게 아닙니다.
< 몸젠 로마사 > 를 출판사에서 제공을 했던, 알라딘에서 제공을 했던... 핵심은
알라딘'이라는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것이기에 주체는 알라딘'이죠. 알라딘 신간평가단 주체인 md도 이 점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 최소한의 예의 " 차원에서 타 경쟁사 인터넷 서점에 이중게재하는 것을 자제하라는 당부의 말 말입니다.
저 또한 예스24에 올리던 알라디네 올리던 상관하지 않습니다. ( 개인적으로는 반대이지만 굳이 강요할 필요는 못 느낍니다. ) 다만.. 문제는
신간평가단에서 제공한 글은 최소한 알라딘'에서만 기재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라는 문제제기입니다.


마립간 2013-05-28 16:27   좋아요 0 | URL
곰곰생각하는발님과 저와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미 드*****님과의 주고받은 댓글에서 느끼고 있었습니다. 저는 ‘중복게재라는 표시가 없는 중복게재’에 중점이 있는 반면, 곰곰생각하는발님은 ‘경쟁적 관계에 있는 집단에 양다리’를 걸치는 것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예전에 한**라는 배우가 오랫동안 ** 텔레콤 광고 모델을 하다가 나중에 ## 텔레콤을 광고 모델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때도 ‘최소한 예의’라는 잣대로 논란이 일었습니다.) 반면 차인표 씨는 인터뷰에서 한 업종의 광고 모델을 하면 경쟁 업종의 모델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예의’라고 했습니다. 최소한 한** 씨는 차인표 씨처럼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죠.

신간 평가단에서 이런 공지를 한 적이 있습니다. ‘신간 평가단에서 받은 도서를 중고서점에 팔지 않았으면 한다’고요. 그때도 최소한의 예의가 언급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지키느냐 마냐는 ... (출판사에서 특히 불편하게 생각한 모양인데, 설령) 이미 받은 물건은 내 소유라고 주장한다면 중고서점에 몰래 판다고 해도 ... 글쎄요. 곰곰생각하는발님처럼 지적하는 사람도 있고, 저처럼 무시하는 사람도 있죠.

중점이 다른 이유는 삶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겠죠.

마립간 2013-05-28 17:17   좋아요 0 | URL
^^ 위 댓글의 무시는 제가 책을 판다는 것이 아니고, 혹시나 있을 지 모를 신간평가단 도서를 중고서점에 파는 사람에게 지적을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저는 차인표씨과 같은 의견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5-28 18:35   좋아요 0 | URL
일종의 상도덕이죠. 상도덕이 꼭 법적으로는 별문제는 없어도 고게 같은 업계에서는 굉장히 민감한 사안이지 않습니까. 뭐, 그렇습니다. 이런 차분한 마립간 님 분석 좋군요..흠흠.. 전 좀 덤벙대고 들떠서 차분한 글은 잘 못 쓰는 것 같습니다.

하이드 2013-05-28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제가 좋아하는 중복리뷰 이야기~
신간평가단 이야기로 어딘가서 시끄러웠던 모양이군요. 알라딘 신간평가단의 도서는 출판사에서 책을 백프로 제공 받는 것이 아니라 알라딘에서도 일부 부담하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이전에 출판사에서만 제공 받던 때에 비해 신간평가단이 원하는 핫한 책들이 올라오죠. 주체가 출판사이던 어디던, 알라딘에서 일정부분을 부담하건 부담하지 않건, 알라딘에서 하는 신간평가단으로 받은 책을 다른 인터넷 서점에 중복리뷰 하는 것은 알라딘에서 제재를 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리뷰 대회 같은 것 할 때, 타 서점에 올린 리뷰는 당선되더라도 당선 자격 박탈하는 것과 같은 맥략에서요. (이건 알라딘 뿐만 아니라 타 서점도 마찬가지)

알라딘 신간평가단에서 받은 책을 다른 인터넷 서점에 올린다면, 그건 '신간평가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고, 신간평가단의 자격이 없는 것이지요.


신간평가단으로 받은 책을 판다고요?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과 '예의'를 논할 수 있겠습니까?? 출판사에서 '드림' 도장 꽝꽝 티나게 찍고, 알라딘에서 절대 안 떨어지는 스티커 뙇 붙여서 판매되지 않게 표시하는 수밖에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5-28 18:30   좋아요 0 | URL
아마... 이름 석자 대면 다 아시는 문학평론가가 이름 석자 대면 다 아는 매우 유명한 선배 문학평론가에게 자기가 나온 책 속지에 메모를 한 후 증정을 했더군요. 그런데 그걸 제가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마... 향후 백 년이면골동품으로써 가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얻은 곳은 헌책방이었어요. 그러니깐 증정받은 선배 문학평론가는 후배 평론가가 10년만에 평론집을 출간해서 제일 먼저 증정한 건데 그걸 판 겁니다. 그거 보고 엄청 웃엇습니다. 다음부터 그 유명한 평론가 평론집은 읽지 않습니다.

+
제 얘기가 그겁니다. 비용을 출판사가 대던 알라딘이 대던 그건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일반 책을 중복 기재한 것까지 물어늘어지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데 신간평가단 제공 책 ( 공지사항에 타인터넷서점에 올리는 것은 자제하라는 공지도 있었으면서.. ) 서평을 타 서점에도 올리는 것은 예의 차원에서 그렇더군요.

마치 롯데에서 월급 받으면서 타격 코치하던 사람이 밤에는 아르바이트로 라이온스 선수 개인 타격 코치하는 것 같습니다.

마립간 2013-05-29 07:56   좋아요 0 | URL
곰곰생각하는발님, 그 책을 팔았다고 생각되는 문학평론가 ; 평론가의 아들이, 또는 평론가가 친구에게 읽을 라고 잠시 빌려주었는데, 지각없는 친구가 책방에 팔았을 수도 있으니... 이럴 가능성을 적으나 그 분의 인품의 판단은 유보하심이...

마립간 2013-05-29 08:16   좋아요 0 | URL
하이드 오랜만에 댓글을 남기셨네요. 반갑습니다. 하이드님의 서재에는 자주 방문합니다.^^

몰랐던 사실을 알았습니다. 알라딘에서 일부 부담한다는 사실이요. 신단 평가단 담당자(직원)이 있다는 사실이 알라딘의 부담이 있다는 것이지만, 책값에도 부담을 지는 줄은 몰랐습니다.

하이드님, 곰곰생각하는발님, 위 글에서 단서를 달았듯이 표시없는 중복게재가 문제이지, 중복게재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알라딘 신간 평가단에 도서를 지원받고 서평을 쓴 글을 예스24에 게재할 때는 '이 서평은 알라딘 신간 평간단에서 도서를 지원받고 서평을 쓴 글이며, 알라딘에도 중복 게재되었습니다.'라는 서평 끝에 삽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알라딘 신간 서평단에서 다른 인터넷 서점에 게재하지 않았으면 하는 권고 사항이 있으면 알라딘에만 올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귀를기울이면 2013-05-28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닷없이 끼어든다는 느낌이 들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차원에서 한마디..

신간평가단 운영 목적, 비용부담의 주체(주로 책값에만 주목하는 것같은데 시스템유지비용과 직원의 몸값도 무시할수 없을것 같습니다.), 괜찮은(?) 리뷰가 온라인 서점 선택에 미치는 영향 등을 중심으로 보면 신간평가단의 리뷰중복게재란 바람직한 못한 현상일 겁니다.

극단적인 가정이지만,
모든 평가단이 리뷰를 중복게재한다면 알라딘은 신간평가단 운영을 중지해야 할 것입니다.
비용은 혼자 부담하고 효과는 경쟁사도 같이 누리는, 전형적인 자기 발등 찍기니까요.
(당장의 이윤과 관계없는 일도 하는것으로 보아 실제로 그럴지는 모르겠지만요.)

마립간 2013-05-29 08:00   좋아요 0 | URL
귀를기울이면님 안녕하세요.

알라딘에서도 평가가 있었을 것입니다. 다른 서점에서는 중복 게재를 금지하거나 중복 게재 표시를 강제하지 않는데, 만약 알라딘에서만 그것을 강제한다면 중복게재를 찬성하는 입장의 알라디너의 반발이 심할 것으로 예상했겠죠.

신간 평가단이라는 마케팅 방식도 '자기발등찍기'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나 비용대비효과에서 유지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 발 빠른 조치

 

 

폐업을 한다고? 그럴 수도 있겠지. 그리고 발 빠르게 다시 창업. 그만한 민첩성이 없었다면 장지갑을 휘두르지도 않았을 듯. 간판만 바꿀까? 아니 이참에 회사를 바꾸면서 충성심이 약한 아랫것들을 정리 해? 이런 분들은 갑에 약하다. 갑이 납품을 허락하면 동종에 남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업종을 바꿀 듯. 불감청고소원이 아니기를, 내 생각이 소설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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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3-05-02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너무 선입견에 의해 판단한 것일까? 폐업하면 직원들은 어찌 되나?

saint236 2013-05-02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사건이었군요. 요즘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릅니다. 비행기에서도 그렇고 호텔에서도 그렇고... 마립간님 말대로 그런 분들은 갑에 많이 약하시죠...

마립간 2013-05-03 08:09   좋아요 0 | URL
인간의 억제되었던 계급 본능이 살아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빵공장 사장님은 아무래도 울고 싶은 아이 뺨 때려 준 것 같은 느낌을 주어서 글을 남겼습니다.)

페크pek0501 2013-05-03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소설 같은 일들이 뉴스를 타고 전해집니다.
님처럼 그저 소설이길 바라는 일들이요...

2013-05-03 1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탄하 2013-05-03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정말 어이를 상실하게 만드는 사건이었죠.
좀 전에도 어린이 타이레놀에 관한 글을 읽었는데,
하여간...으째 배울만큼 배우고 살만큼 산 사람들이
이런 일들을 벌이는지..ㅠ.ㅠ

마립간 2013-05-04 07:54   좋아요 0 | URL
저는 이에 대한 판단을 이렇게 합니다. ; 착한/옳은? 사람이 세상을 너무 착하게/옳게 보는 것은 맞지 않다. 세상이 악한/그른 것은 아니지만, 악한/그른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013-05-08 1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 雜記 121115

 

* 본질과 현상

 저는 스스로 플라톤주의자라고 하지만, 플라톤주의가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느 책 서문에서 ‘수학은 발견되는 것인가 아니면 발명되는 것이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데, 저로는 답하기 쉽지 않습니다. 단지 저는 발견되는 것으로 여길 뿐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떠한가. 대부분은 발명한다고 생각합니다.

 

* 초등학교 학생 갑돌이와 을돌이가 싸우고 있다. 싸움의 시작은 같은 반 아이를 돕는 것에서 시작했다. 을돌이가 자신의 것을 기부하면서 갑돌이의 물건을 자기 물건인 줄 알고 기부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을돌이는 남의 것을 기부해 놓고 미안한 기색도 없다. 어이없는 갑돌이는 을돌이에게 새것으로 물어내라고 했다. 을돌이는 갑돌이에게 남을 돕는 일에 훼방을 놓는다고 비난을 했다. 그리고 막말이 오고 같다.

 

이 사건에 대한 가치평가는

1) 남을 돕는 것은 옳은 것이다. (이론이 없을 듯)

2) 남의 물건을 자기 물건을 착각하고 기부한 것은 잘못이다. (거의 이론이 없을 듯)

3) 잘못을 했음에도 반성이 없는 것은 잘못이다. (이론이 없을 듯)

4) 이 사건에서 새 물건으로 물어내는 것 ; 정당한가, 과한가? (논란이 있을 듯)

5) 막말이 오고 갔다는 것은 나쁜 것이다. (거의 이론이 없을 듯)

 

묻고자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이 싸움의 본질은 무엇인가? 1) ~5) 사이에 싸움의 본질이 있나요?

 

* 토끼兎의 본질(이데아)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진화론자는 토끼의 본질은 원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고 현상이 본질이다라고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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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16 조선인님

제가 이해한 식으로 예를 일부분 바꿔 보겠습니다.
1) C를 돕는 것은 옳은 일이다.
2) A가 C에게 물건을 기부하는 과정에 B가 C를 위해 만든 물건을 함께 기부했고, B의 물건까지 기부했다고 명시했다.
3) B는 자기가 아니라 D가 C를 위해 만든 물건이었으므로, 잘못 표시한 A가 책임을 지고 모든 기부품을 회수하라고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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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11-15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르지만, 저도 수학은 발견한다고 믿는 쪽입니다.

갑돌이와 을돌이의 사례는 글쎄요. 본질이 무엇인지를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아마도 이 사건에서라면 후에 일어난 갑돌이의 태도로 볼 때 "그 기부가 과연 무엇을 위한 기부인가"를 묻게 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같은 반 아이를 돕는다고 할 때 '돕는다'는 행위 자체가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가?라는 질문이라고 볼 수도 있구요. 예를 들어 돕는다는 것이 철저하게 본인의 즐거움이나 혹은 자신이 그보다 낫다는 우위를 맛보기 위한 도움일 때 그 도움은 좋은 것인가의 문제 같은 것.)

개인적으로는(개인적이라는 말이 좀 웃기기는 한데) 이 사건의 경우라면 새 물건으로 물어내는 것이 정당하다고 봅니다.

(아마도 이런 댓글을 원치는 않으신 것 같고) 뻘소리지만 그저 생각나는 대로 적어봤습니다.^^

마립간 2012-11-15 15:45   좋아요 0 | URL
맥거핀님, 훌륭한 댓글입니다.

저도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잘 모르면서 습관적으로 쓰는 용어입니다.
저는 글에서도 밝혔듯이 수학을 발견한다고 생각하지만, 일반적으로 교양인들은 수학을 발견하는 쪽으로 (수리철학에서 절대주의), 수학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발명(상대주의)로 생각한다고 합니다.

갑돌이와 을돌이의 싸움은 (토끼의 비유처럼) 본질이 없다고 (또는 모두가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각자의 가치관에 의해 중점을 둔 것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중점을 달리한다면 본질이 없는 것이죠.)

물건의 보상의 경우, 역시 개인에 따라 지나치다, 적당하다고 판단하겠지만... (ㅋㅋ)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맥거핀님의 댓글을 통해 기부의 본질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니까 뻘소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조선인 2012-11-16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제가 이해한 식으로 예를 일부분 바꿔 보겠습니다.
1) C를 돕는 것은 옳은 일이다.
2) A가 C에게 물건을 기부하는 과정에 B가 C를 위해 만든 물건을 함께 기부했고, B의 물건까지 기부했다고 명시했다.
3) B는 자기가 아니라 D가 C를 위해 만든 물건이었으므로, 잘못 표시한 A가 책임을 지고 모든 기부품을 회수하라고 요구한다.

마립간 2012-11-16 10:42   좋아요 0 | URL
기본적인 사실판단에 차이가 있으니, 다른 사실에 기초한 가치판단이 다른 것은 당연한 것 같고요.^^ 그러나 이 논쟁에 본질이라고 삼을 만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인님의 댓글 이전에 건조기후님의 댓글을 통해 불명확한 것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본질과 현상 이외에 유래, 촉발, 단면, 본류, 가치충돌 등의 측면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 세상이죠.

조선인님의 사실판단으로 미뤄 저의 가치판단은 '가장 잘못한 사람은 B'네요. B가 D에게 알렸어야 했습니다. (경황이 없었겠지만.)

마립간 2012-12-06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굳이 본질이라고 한다면 불신과 오해가 되겠다.
 

 

* 無題 120423

 

 이 이야기를 언제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알라딘에서 이전에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네요.)

 

 어느 교회(제가 다니던 교회는 아님)가 있었고, 그 교회의 직분 맡은 분(장로님으로 기억함)이 계셨습니다. 그 분이 큰 잘못을 하였습니다. 그 잘못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이야기를 해 주신 분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교회에서 분열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일부 교인들은 그분에 대해 징계를 주장합니다. 그래야 옳고 그른 것이 바로 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옳음이 바로 서야 세상 사람에게 복음(성경)을 전도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그분을 용서하자고 하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교회는 사랑을 실천하는 곳인데,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징계를 한다면 세상과 다른 것이 무엇이냐고 주장합니다.

 

 잘못의 내용을 안다면 작은 잘못의 경우 용서를 하면 되고 큰 잘못이라면 징계를 해야겠지만 그 내용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잘못이 있다면 그 크기에 맞춰 징계하는 것이 옳지 무조건 용서하는 것이 옳은가라고 질문을 바꿔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 논란에 대해 내가 그 속에 있었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논란이 세상에 흔하게 논쟁되는 주제였습니다. 조선시대에 옳은 것(義)을 주장하는 사람과 어진 것(仁)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말로 바꾸면 옳은 것을 추구하는 것은 신념윤리이고 어진 것을 추구하는 것은 책임윤리라고 할 수 있죠.

 

 저는 여기서 가치 판단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의를 인보다 앞세우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그 반대가 옳은지. 저는 <남명 조식>에서 서평에서 ‘나의 경우는 의義로 주를 삼고 인仁으로 보충하는 가치관이니’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만. 의義와 인仁이 균형을 맞춰야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은 이유로 의義를 전적으로 중시하고 인仁이 없는 사람이 틀리다는 판단도 하지 못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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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은 김규항씨의 인터뷰 책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의 서평으로 준비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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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4-23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똑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는 문제 아닐까 싶습니다.
인이 더 중요한 경우도, 의가 더 중요한 경우도, 둘 다 균형을 잡을 경우도 있겠지요.

컨버그의 도덕적 단계 이론을 보면, 6단계가 바로 이런 단계입니다.
결국 자신의 신념이 문제인거죠... 그리고 이런 단계에 도달한 사람은 극소수다, 실은 5단계에 도달한 사람도 얼마 안 된다 라고 합니다.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마립간 2012-04-23 16:23   좋아요 0 | URL
저처럼 보수적인 성향, 논리-이성 지향인 사람은 항상 똑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없는 문제를 갖고 ; 일반해를 찾으려는 몹쓸 습관이 있지요. (내 안에 이 일반해의 공식을 갖고 남을 재단하려는 욕망이 숨어있다고 비판한다면... 맞는 이야기입니다.)^^

탄하 2012-04-23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의 교회 이야기는, 그 잘못을 하신 분께서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고 나설 때 가장 화목한 방법으로 끝날 것 같습니다. 어떤 종교든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고 하니까, 큰 잘못이라면 당사자가 가만히 있으면 안돼잖아요.

음, 의와 인은 뜻이 큰 단어라 꽤 판단하기 어렵지만 인을 사랑으로 보면 '의를 내세울 때 항상 인을 바탕으로 해야한다..'이상의 것은 확신하기 힘드네요.^^

마립간님은 종종 생각하기 시작하면 시간이 막 휙휙 지나가는 질문들을 남겨놓으시네요.

마립간 2012-04-24 08:24   좋아요 0 | URL
위의 이야기는 잘못을 한 분이 어떻게 행동하느냐 보다 주위의 사람들이 잘못을 한 사람을 어떤 가치관으로 바라보냐 핵심이 있습니다. 제가 그 사건을 아는 것은 아니지만 잘못을 한분은 사죄를 하고 깊이 반성했고 그에 맞는 행동을 했으리라 기대합니다.

의를 내세울 때 인을 바탕으로 해야하는 것은 인을 더 존중하는 가치관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제 취미가 쓸데 없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순오기 2012-04-24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옳은 것과 어진 것~ 양립할 수는 없을까요?
옳고도 어질게 처리하고 해결한다면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마는,
저는 그냥 내맘 편한 쪽으로 스스로 타협하거나 사안에 따라선 전사가 되기도 해요.^^

마립간 2012-04-24 08:26   좋아요 0 | URL
대부분은 옳은 것과 어진 것은 양립을 하지요. 몇몇 특수 경우에서 선택을 강요 받는데 그 결정이 어렵습니다. 비유해서 설명하지면 효자 아들이 아내에게도 잘 합니다. 평소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평생의 몇번은 어머니냐, 아내냐 선택을 하게 만듭니다.
 

無題 120412

 

* 정보의 힘

 내가 아는 어느 분, 이 분은 정치 자체에 관심이 있다기보다 제테크를 위해 정치에 관심이 있는 정도입니다. (속칭 집안이 좋아) 이분은 신뢰감이 있는 정보통?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어제 19대 총선을 앞둔 4-5일 전부터 이분이 “새누리당이 예상외로 선전하고 있다. 박근혜의 힘이 대단하다. 그리고 김...”라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느낌은 새누리당이 압승을 한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였다.) 그런 느낌은 대중매체(신문)를 통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 할 때는 잘 느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총선관련 뉴스를 보니 어제 저녁 7시쯤 출구조사 발표할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입니다. 정보의 힘을 느꼈습니다. 이런 총선 결과에 대한 예측 정보를 야권에서는 갖고 있었을까? 갖고 있다면 야권에서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어느 쪽이든 무능했습니다.

 

* 용수철

 고등학교 물리시간에 위치에너지를 배우면서 용수철(탄성체)에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비례한도, 탄성한도, 상항복점, 하항복점, 파괴 이런 용어의 설명을 포함되었습니다.

 용수철을 잡아당기면 어느 한도 내의 복원력이 작동하며, 이 복원력이 음성 되먹임처럼 작용하지만 어느 한도를 지나서는 용수철은 복원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잡아당기는 힘이 지속되면 파국으로 이르게 됩니다. (즉 용수철이 끊어진다.)

 

* 비관

 나는 비관주의자입니다. 이전에도 몇 번 알라딘 댓글에서 이야기했지만 우리나라(/사회)가 임계점을 넘은 것이 아닌가 의심했었습니다. 이번 총선을 임계점을 넘어선 사회단면으로 추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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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2-04-12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blog.aladin.co.kr/maripkahn/791213

기억의집 2012-04-12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김 뭘까요? 어휴 궁금해요.
아마 우리는 모르지만, 국정원이나 정보를 끌어모으는 기관은 알았을 거에요.
근데 이번 총선으로 박근혜는 수도권에서 별로였다지만, 나머지를 휩쓴 거 보면
박근혜한테 줄 댈려고 안달이 날 것 같아요.

2012-04-12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립간 2012-04-12 18:35   좋아요 0 | URL
위글에서 선거 원인/결과보다 주장하고 싶은 것은 파국입니다. 외부의 충격이 주어질 때, 그 충격은 약한 곳에서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이번 총선(이나 올 겨울의 대선)을 통해 이미 앏아진 중산층이 한번 더 얇아진다면 사회가 붕괴될지 모른다는 공포가 앞섭니다.

2012-04-12 2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립간 2012-04-13 08:52   좋아요 0 | URL
저도 용수철이 끊어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바라는 것과 현실은 다를 수 있습니다.

이번 선거결과를 쉽게 설명하는 방법은 김용민이 노인비하발언을 하였고 노인투표자가 많은 강원도, 충청도에서 새누리당에 몰표를 주었다입니다.

어렵게 설명하는 방법은 이미 양극화나 계급이 고착화되어 기득권에 아부하는 것이 살 길이다라고 생각했다입니다.

2012-04-13 0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13 2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14 14:37   URL
비밀 댓글입니다.